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327

SĀ 1327

교차 검사교차 검사 12현대역 준비 중

(一三三四)

(1334)

주 저본은 제목 문장 없이 대정장 경 번호 (一三三四)만 싣는다. 팔리 쪽에는 제목 Akusalavitakkasuttaṃ이 있어 한쪽에만 있는 자리이며, 한역에 제목이 없음을 저본에서 확인했으므로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저본 교감주에 `S. 9. 11. Ayoniso.`와 `[No. 100(354)]`가 달려 있다 — 편자(다카쿠스 각주 0368b09)의 대응 표시일 뿐 판정 근거로 쓰지 않았고, 팔리 제목(Akusalavitakkasutta)과 각주의 이름(Ayoniso)이 다르다는 사실만 신고한다. 이 조각에는 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았다. 팔리 증언은 후보 sn9.11 한 경(합의 등급 multi_source)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11:0.3

AG:sa1327/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잡아함 정형 개경구다(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발화 첫머리 0/1333; 이 경 1회). 如(앵커: 비유·가정)는 「이와 같이」로 옮기고 문말은 평서로 닫았다. 팔리 sn9.11은 이 자리의 정형구(Evaṃ me sutaṃ) 없이 곧바로 Ekaṃ samayaṃ(231.1)으로 시작한다. 팔리 본문이 접힘 없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그 자리가 놓일 좌표 231.1 앞을 없음확인으로 적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11:231.1

AG:sa1327/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一時는 팔리 Ekaṃ samayaṃ(231.1)과 자리가 맞는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는 설정은 팔리 sn9.11에 없다 — 팔리 231.1은 주어가 어떤 비구(aññataro bhikkhu)이고 처소는 구살라의 숲이다(문장 유무). 佛은 확정 술어 [구속] 「부처님」. 舍衛(사위)는 정착어로 정착형 그대로 쓴다 — 도시 이름이며 팔리형 Sāvatthī. 한역 음의: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는 舍衛가 인도어 이름을 옮긴 것이라 하고 풀이를 여럿 든다(「聞者城」「聞物國」, 선견율의 사람 이름 舍衛에서 온 국호 등).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도 정착형으로 쓴다 — 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이라 표가 보류로 분류했으므로 이름임을 스스로 판별해 정착어로 처리하고 ``을 남긴다. 뜻: 祇樹는 祇陀 태자가 자기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여 줄여 「祇樹」라 불렀다는 풀이(慧琳 0368a03〔金剛般若波羅蜜經〕),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 전거 대장 팔리 Anāthapiṇḍika), 園은 동산 — 곧 기수의 숲에 있는,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가 바친 동산이다. 住는 내레이션 평서이되 부처님 주어에 -시-를 단다. 음역계통: 舍衛는 전거 대장에 팔리 `Sāvatthī` / 범어(당대 실담) `śravasthi`로 갈린다(⚠다른 부(DA)의 대역) —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전거 대장에 팔리 `Jetavana, Anāthapiṇḍika`만 있다(⚠다른 부(DA)의 대역).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1

AG:sa1327/0.3 · 교차 검사

時,有異比丘在拘薩羅人間,住一林中,入晝正受,起不正思惟。

그때 다른 어떤 비구가 구살라 사람들 사이에서 한 숲속에 머물며, 낮에 바른 받음에 들어 바르지 않은 사유를 일으켰다.

주 比丘는 확정 술어 [구속] 「비구」. 有異比丘의 有(앵커: 존재)는 「~이」로 주어화해 「다른 어떤 비구가」로 옮긴다(사전 有 ① 뒤 異比 81). 異는 팔리 aññatara(어떤)의 자리로 보이나 본문은 한문대로 둔다. 拘薩羅는 음역이므로 한자 독음 「구살라」, 팔리형 Kosala/Kosalā는 비고에만(전거 대장 ⚠다른 부(DA/MA)의 대역; 이 경에서는 팔리 kosalesu와 자리가 맞는다). 人間은 「사람들 사이」로 두었다 — 「拘薩羅人間」은 구살라 지방을 가리키는 정형이다(사전 人間 ① 앞 薩羅 44 · 뒤 遊行 82). 住一林中은 팔리 aññatarasmiṃ vanasaṇḍe(어떤 숲에)와 자리가 맞는다. 入晝正受: 晝는 聖本이 盡으로 읽는 이문이 있으나 大正 본문 晝를 따랐다(사전 正受 용례 sa101/0.3 「入晝正受」와 같은 꼴). 正受는 확정역이 없어 뜻으로 「바른 받음」이라 옮겼다 — 삼매·선정의 번역어로 전해지나(사전 正受 ⑥ 丁福保 1922: 三昧의 한 번역,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 본다) 본문에서 풀지 않았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신고한다. 팔리 divāvihāragato(낮 머묾에 들어갔다)와 자리가 맞는다. 受는 확정 술어 [정형구 행](vedanā)에 걸리는 글자이나 여기서는 正受의 일부이지 느낌(vedanā)이 아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起不正思惟: 思惟는 표가 의역으로 분류하나 「사유」는 일반 한국어 낱말이라 한자 음독 나열이 아니어서 그대로 쓴다. 팔리 231.2는 「악하고 해로운 사유들을 사유한다」(pāpake akusale vitakke vitakketi)이고 231.3은 세 가지 열거(kāmavitakka·byāpādavitakka·vihiṃsāvitakka)인데, 한역은 이를 不正思惟 한 말로 접었다 — 열거는 한역에 없으므로 231.3은 없음확인이다(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11:231.3

AG:sa1327/0368b10.1 · 교차 검사

時,彼林中止住天神作是念:「此非比丘法,止住林中,入晝正受,而起不正思惟,我今當往方便善覺悟之。」

그때 그 숲속에 머물러 사는 천신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것은 비구의 법이 아니다. 숲속에 머물며 낮에 바른 받음에 들어 바르지 않은 사유를 일으킨다. 내가 이제 가서 방편으로 그를 잘 깨우치리라.”

주 팔리 231.4는 숲에 사는 신(devatā)이 비구를 가엾이 여기고(anukampikā) 이익을 바라며(atthakāmā) 일깨우려(saṃvejetukāmā) 비구에게 간다고 서술문으로 적는데, 한역은 신의 독백(「此非比丘法…」)으로 옮겼다(구조·배열; 인도어 서술을 직접 화법으로 옮긴 번역기법일 수 있어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팔리의 연민·이익 동기어는 한역에 없고 한역의 「이것은 비구의 법이 아니다」는 팔리에 없다. 天神은 「천신」, 전거 대장 당대 범어 `devata`(팔리 devatā와 자리가 맞는다). 當(앵커: 당위·미래)은 어미 「-리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而는 흡수. 方便은 한국 불교계 정착어 「방편」(사전 方便 ① 앞 精勤 66 · 뒤 正念 58은 다른 쓰임이며 여기서는 수단으로 쓰였다). 善覺悟之: 확정 술어 [참고] `善覺`→「사밋디」는 이 자리에서 이름이 아니라 「善(잘)+覺悟(깨우치다)」이므로 저본대로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오적중]`으로 신고한다(3분할 표의 혼합 분류도 같은 기계 적중이다). 覺은 [정형구 행](vedanā)에 걸리는 글자이나 여기서는 覺悟의 일부로 느낌이 아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覺悟(깨우치다)는 사전 悟 ① 앞 自覺 5 · 正法 6의 쓰임과 같은 방향이며, 음의 慧琳 0454a12 등은 자형 풀이만 한다. 往은 宋·元本이 生으로 읽는 이문이 있으나 大正 往을 따랐다. 晝는 앞 좌표와 같은 이문(聖本 盡), 正受는 앞 좌표(0368b10.1)와 동일한 사안이다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止住는 「머물러 사는/머물며」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4

AG:sa1327/0368b11.1 · 교차 검사

時,彼天神而說偈言:

그때 그 천신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주 而(앵커: 접속)는 흡수. 說偈言은 「게송으로 말하였다」(偈 사전 ① 앞 而說 189; 음의 慧琳 0483c01은 偈를 伽陀의 옮김으로 풀이). 팔리 231.5는 비구에게 다가가(upasaṅkamitvā) 비구를 향해(taṃ bhikkhuṃ) 게송들로 말했다고 하는데, 한역에는 다가감과 청자 지시가 이 문장에 없다(앞 좌표 「我今當往」은 의도만 말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5

AG:sa1327/0368b14.1 · 교차 검사

「何不正思惟,覺觀所寢食?

“어찌하여 바르게 사유하지 않고, 각관이 자고 먹는 것이 되는가?

주 게송 첫 줄이다. 어려운 자리이며 두 가지가 서지 않아 신고한다. (1) 何不正思惟: 「어찌 ~하지 않는가」(何不)로 읽어 「바르게 사유하지 않고」로 옮겼으나, 不正思惟를 한 덩어리 명사(바르지 않은 사유)로 읽어 「어찌하여 바르지 않은 사유로」로 읽을 수도 있다 — 앞 산문의 不正思惟(0368b10.1)와 같은 말이다. (2) 覺觀所寢食: 所 구문의 태가 서지 않는다. 앵커는 「~하는 바」를 관형절로 풀라 하므로 「각관이 자고 먹는 것이 되는가」(각관이 머물러 먹는 처소가 된다는 읽기)로 옮겼고, 「각관에 먹히는가」로도 읽힌다. 팔리 231.6은 「이치에 맞지 않는 작의로 너는 사유들에게 먹힌다」(ayoniso manasikārā, so vitakkehi khajjasi)로 후자와 방향이 같으나 본문은 저본대로 두었다. 覺觀은 확정역이 없어 정착형 「각관」으로 두었다 — 음의 慧琳 0478c11〔大般涅槃經音義〕에 「玉篇云覺警也察也觀見也視也 …唐三藏譯為尋伺也」; 사전 覺觀 ① 7회 · 6경; 사전 覺觀 ③ 용례 「覺觀夜起烟」(sa1072/0282c08) · 「諸覺觀氣味」(sa1074/0283b19). 覺은 [정형구 행](vedanā)에 걸리는 글자이나 覺觀의 일부로 느낌이 아니다. 이문: 覺을 聖本은 學, 寢을 宋本은 使로 읽는다 — 「覺觀所使」면 「각관이 부리는 바」가 되어 읽기가 달라진다(위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大正 본문을 따랐다. 화자 천신의 청자는 비구이나 한문에 존대 표지가 없고 훈계 어조이므로 평서로 두었다(이하 게송 동일).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6

AG:sa1327/0368b15.1 · 교차 검사

當捨不正念,專修於正受。

바르지 않은 생각을 버리라, 바른 받음을 오롯이 닦으라.

주 當(앵커: 당위)은 어미 「-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於(앵커: 처소·대상)는 조사로 흡수. 不正念의 念은 「생각」으로 옮겼다(사전 念 ① 앞: 作是 373). 當捨不正念은 팔리 ayoniso paṭinissajja(이치에 맞지 않은 것을 버리고)와 같은 방향이다. 그러나 專修於正受(바른 받음을 오롯이 닦으라)는 팔리 yoniso anucintaya(이치에 맞게 거듭 생각하라)와 같은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한다 — 갈림의 사실만 적고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專修는 사전 專修 ① 7회 · 6경; 사전 專修 ③ 용례 「專修繫念」(sa1031/0271a16). 正受는 0368b10.1과 동일한 사안이다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7

AG:sa1327/0368b16.1 · 교차 검사

遵崇佛法僧,及自持淨戒,

부처님, 법, 승가를 따르며 높이고, 또 청정한 계를 지니며,

주 佛法僧의 佛은 확정 술어 [구속] 「부처님」, 僧은 확정역이 없어 「승가」(사전 佛法僧 ① 6회 · 6경; 사전 佛法僧 ③ 용례 「信佛法僧寶」, sa1140/0305c16). 遵崇은 「따르며 높이고」; 宋·元·明本이 遵을 尊으로 읽는 이문이 있으나 大正 遵을 따랐다(교감주 orig는 【三】, mod는 【宋】【元】【明】으로 표기가 어긋난다). 自持淨戒의 自는 단순 재귀로 보아 흡수했다 — 自↔他 대조가 없다(팔리 attano「자기의」와 자리가 맞는다). 淨戒는 「청정한 계」(사전 持淨 ① 8회 · 7경). 팔리 231.8은 「스승·법·승가·자기의 계들을 의지하여」(satthāraṃ dhammamārabbha, saṅghaṃ sīlāni attano)로, 佛↔satthā(스승), 遵崇↔ārabbha(~에 의거하여)의 어휘가 갈린다. 한역은 세 보배를 따르고 높이는 행으로, 팔리는 기쁨이 일어나는 근거로 적는 구문 차이가 있으나 이는 번역기법일 수 있어 단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8

AG:sa1327/0368b17.1 · 교차 검사

常生隨喜心,喜樂轉勝進。

늘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라. 기쁨과 즐거움이 점점 뛰어나게 나아간다.

주 隨喜는 뜻으로 옮긴 말이므로 「따라 기뻐하는」으로 옮겼다(정착어 「수희」와 같은 말; 사전 隨喜 ① 397회, 용례는 주로 歡喜隨喜 정형). 팔리 pāmojjaṃ(환희)과 자리가 맞는다. 常生隨喜心은 앞 줄의 명령(「當…」)이 이어지는지 조건절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앞 줄을 이어 명령으로 읽고 뒤 줄을 결과로 끊었다(`[불확실:격·태·구문]`). 生은 [정형구 행](jāti)에 걸리는 글자이나 여기서는 「(마음을) 일으키다」로 쓰였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喜樂은 「기쁨과 즐거움」(사전 喜樂 ① 71회 · 40경)으로 팔리 pītisukhaṃ과 자리가 맞는다. 轉은 「점점」, 勝進은 「뛰어나게 나아감」. 팔리 asaṃsayaṃ(의심 없이)은 한역에 없다. 隨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9

AG:sa1327/0368b18.1 · 교차 검사

以心歡喜故,速究竟苦邊。」

마음이 환희하기 때문에 속히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

주 以…故는 「~때문에」로 흡수. 歡喜는 「환희」(사전 歡喜 ① 1340회, 용례는 주로 歡喜隨喜·歡喜奉行 정형; 음의 慧琳 0753a01). 究竟苦邊은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로 옮겼다(사전 究竟 ① 뒤 苦邊 100; 용례 sa1019/0268b02 「究竟苦邊」). 팔리 231.10 tato pāmojjabahulo(그 뒤 환희가 많아져), dukkhassantaṃ karissasi(괴로움의 끝을 지을 것이다)와 같은 방향이나 速(속히)은 팔리에 없고, 팔리의 bahulo(많음)는 한역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10

AG:sa1327/0368b19.1 · 교차 검사

時,彼天神說偈勸發已,彼比丘專精思惟,盡諸煩惱,得阿羅漢。

그때 그 천신이 게송을 말하여 권하여 일으키고 나자, 그 비구가 오롯이 정진하여 사유하여 모든 번뇌를 다하고 아라한을 얻었다.

주 說偈勸發已의 勸發은 「권하여 일으키다」(사전 勸發 ① 3회 · 3경; 丁福保 후대 풀이 「勸人使發佛道之心」은 가볍게 본다). 팔리 231.11은 비구가 신에게 일깨워져(saṃvejito) 경각심을 얻었다(saṃvegamāpādi)에서 끝난다 — 勸發↔saṃvejito는 자리가 맞으나, 한역의 「專精思惟 盡諸煩惱 得阿羅漢」(오롯이 정진해 사유하고 번뇌를 다해 아라한이 됨)은 팔리에 없다(한쪽이 더 말한다). 專精은 「오롯이 정진하여」(사전 專精 ① 뒤 思惟 65; 丁福保 후대 풀이 「心專一而精進於道」는 가볍게 본다). 諸(앵커: 복수)는 「모든」. 煩惱는 「번뇌」. 得(앵커: 가능·획득)은 획득 「얻었다」. 阿羅漢은 음역이므로 한자 독음 「아라한」; 음의 慧琳 0441b10〔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에 「應供·煞賊·不生·遠惡」 등 여러 풀이를 든다. 음역계통: 전거 대장 阿羅漢은 팔리 `Arahatta / Arahaṁ` / 근대 편자 비정 `Arhat(Arhan)`으로 갈린다(⚠다른 부(DA/EA)의 대역) —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11:231.11

AG:sa1327/0368b20.1 · 교차 검사

❖

함께 볼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