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三三六)
(1336)
주 한역 본문에는 경 번호(大正 1336)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한자 숫자 一三三六은 자리 숫자로 옮겼다. 팔리 sn9.6/0.3은 경 이름(Anuruddhasuttaṃ)이다. 편자 교감주가 팔리 대응으로 `S. 9. 6. Anuruddha.`를, 참조로 `No. 100(356)`을 단다(편자 비정이며 증언이 아니다). 이 경에는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대응은 팔리만 단다. 투입물 `_전거_sa1329.md`의 머리글은 「大正 1329」로 되어 있어 저본의 1336과 맞지 않는다(표제어는 이 경 한자로 뽑힌 것으로 보이나 머리글 불일치를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다(`_정형구_생략표지`: 如是我聞 이 아함 전권 1332회, 이 경 1회 ·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 1332경). 앵커의 如는 `如是`(이와 같이) 한 덩어리 안에 있어 따로 옮기지 않았다. 팔리 sn9.6은 이 정형구 없이 226.1 `Ekaṃ samayaṃ`으로 바로 시작한다(`…pe…` 접힘 없이 전체를 읽어 확인한 없음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6:226.0~226.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一時는 226.1 `Ekaṃ samayaṃ`과 맞는 자리이나, 한역은 여기서 부처님이 사위국에 머문다고 하고(다음 좌표에서 아나율타 장면으로 옮긴다), 팔리는 처음부터 아나율타가 구살라에 머문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divergent`로 적고 판정하지 않는다. 佛은 `[구속]` 부처님. 舍衛國은 정착어 사위국, 祇樹給孤獨園은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옮겼다. 이름의 뜻(음의 慧琳): 舍衛 0367c24는 정음 室羅伐悉底國을 「聞者城」, 법경경의 풀이를 「聞物國」, 십이유경의 뜻풀이를 「無物不有國」이라 하고 善見律을 끌어 舍衛가 사람 이름에서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풀이가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 0368a03은 勝(太子)이 자기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여 「祇樹」라 부른다고 한다. 給孤獨 0368a05는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친속이 없는 큰 부자가 외로운 이를 구하겠다고 서원해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불렀다고 하며 옛 경은 阿那邠邸로 적는다고 한다. 園은 동산이다. 祇(소리)+樹(뜻)+給孤獨(뜻)+園(뜻)이 한 덩어리라 3분할 표의 단일 유형(보류)이 서지 않아, 정착형을 택하고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舍衛 ← 팔리 `Sāvatthī` / 범어 당대 `śravasthi`(전거 舍衛 행, ⚠다른 부(DA)의 대역). 이 경의 팔리 본문에는 Sāvatthī가 나오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9.6:226.1
爾時,尊者阿那律陀在拘薩羅人間,住一林中。
그때 존자 아나율타는 구살라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한 숲속에 머물렀다.
주 226.1의 `Ekaṃ samayaṃ`은 앞 좌표의 一時가 지고 이 좌표의 爾時는 한역의 시간 표지다. 阿那律陀는 3분할 음역이라 한자 독음 아나율타(팔리 `Anuruddha`는 비고에만; 전거 阿那律陀 행, ⚠다른 부(MA)의 대역). 拘薩羅는 음역 구살라(팔리 `Kosala`). 人間: 팔리 `kosalesu`(처격 복수)에 한역은 人間을 덧붙인다. 사전 人間 ③ 용례 `拘薩羅人間遊行`(sa101·sa1035)과 같은 꼴이고 ① 뒤 遊行 82/134이므로 「구살라 사람들 사이」로 읽었다. 「인간 세계」로 읽을 길도 있으나 이 용례 쪽을 택했다. 住一林中은 `aññatarasmiṃ vanasaṇḍe`와 맞는다. 尊者의 者는 호칭의 일부이지 명사화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1
時,有天神名闍隣尼,是尊者阿那律陀本善知識,往詣尊者阿那律陀所。
그때 이름이 사린니인 천신이 있었다. 존자 아나율타의 본래의 좋은 벗인 그는 존자 아나율타의 처소로 찾아갔다.
주 有天神名闍隣尼는 새 인물을 등장시키는 존재 서술이라 「있었다」를 세웠다(앵커의 훈독투 「~이 있어」는 쓰지 않았다). 闍隣尼는 음역 사린니(팔리 `Jālinī`, 전거 闍隣尼 행). 天神은 사전 天神 ①(잡아함 108회)·전거(당대 범어 `devata`)가 있고 한자 독음과 뜻이 같은 천신으로 옮겼다. 팔리 `aññatarā tāvatiṃsakāyikā devatā`의 삼십삼천 소속은 이 산문에 없다(게송에 나온다). 善知識은 3분할 의역이라 뜻으로 「좋은 벗」으로 옮겼다. 한국 불교 정착형 「선지식」도 있어 선택이 갈리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신고한다. 3분할 표가 단 팔리 칸 `Kallavālamutta-gāma`는 오정렬로 보여 쓰지 않았다. 本善知識 ↔ 팔리 `purāṇadutiyikā`(예전의 동반자): 한역은 「벗」, 팔리는 「동반자」로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 이문: 【聖】은 陀本을 宿命으로 적는다(尊者阿那律宿命善知識 — 「전생부터의 좋은 벗」으로 읽힐 수 있다). 本은 대정본대로 「본래」로 옮겼다. 所는 장소 접미(~의 처소)라 앵커의 「~하는 바」 훈독이 아니다. 往詣는 「찾아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2
到阿那律所,說偈言:
아나율의 처소에 이르러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
주 阿那律은 3분할 정착어라 정착형 아나율로 적고, 같은 인물을 앞에서는 阿那律陀(아나율타)로 적었다. 한역이 같은 인물에 다른 한자를 쓴다(이 경에서 阿那律陀 4회·阿那律 3회). 이문 교감주도 0368c15.1에서 판본에 따라 陀가 빠진다. 아나율 이름의 뜻은 이 투입물에 풀이 전거가 없다. 통례로는 「막힘이 없는 이」로 풀지만 투입물 밖 지식이며 전거를 대지 못한다.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阿那律 ← 팔리 `Anuruddha`(전거에는 `Aunruddha` 표기도) / 근대 범어(편자 비정) `Aniruddha`(전거 阿那律 행, ⚠다른 부(DA)의 대역). 이문: 【宋】【元】【明】은 所而(到阿那律所而說偈言). 說偈言은 「게송을 설하여 말했다」(偈는 사전 偈 ⑥ 頌과 같은 말 gāthā). 226.3 `gāthāya ajjhabhāsi`와 맞는다. 所는 장소 접미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9.6:226.3
「汝今可發願,願還生本處,
「그대는 이제 발원할 만합니다. 본래의 곳에 되돌아 태어나기를 원하십시오.
주 화자가 천신이고 청자가 존자이므로 ⑦에 따라 이 발화를 합쇼체로 통일했다(汝는 「그대」). 한문이 이 발화를 존대하는 어형을 따로 갖지는 않으므로 존칭 판단은 비고에 남긴다. 팔리 226.4 `Tattha cittaṃ paṇidhehi, yattha te vusitaṃ pure`(그곳에 마음을 두라, 네가 예전에 살던 곳)에 대해 한역은 發願·還生을 쓰고 本處는 `yattha te vusitaṃ pure`와 맞는다. 可는 가능·권유라 「~할 만하다」로 흡수했다. 發願은 사전 發願 ① 잡아함 6회 4경, 願은 요청의 동사. 生은 정형구 행 한자(생 = jāti 등)라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태어나다」로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還生은 사전 還生 ① 잡아함 26회 18경에서 앞자리 不復이 12회, 뒤자리 此世가 13회로 센 표제이며, 이 자리의 저본에서는 還을 「되돌아」로, 生을 「태어나다」로 읽었다(사전은 뜻을 정해 주지 않으므로 저본 문맥으로 정했다). 행 끝의 쉼표로 보아 本處는 다음 행의 三十三天上과 이어지는 구문일 수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4
三十三天上,五欲樂悉備。
삼십삼천 위에는 오욕의 즐거움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주 三十三天은 3분할 음역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숫자를 뜻으로 옮긴 말이라 한자 독음과 뜻이 같은 삼십삼천이 된다(팔리 `Tāvatiṃsa`는 비고에만; 전거 三十三天 행, ⚠다른 부(MA)의 대역). 五欲樂悉備 ↔ 팔리 `sabbakāmasamiddhisu`: 한역은 「다섯 욕」, 팔리는 「모든 욕망」을 쓴다. 五欲樂을 「오욕의 즐거움」으로 읽었고(「오욕과 즐거움」으로 끊는 길은 택하지 않았다), 사전 五欲 ⑥의 색성향미촉 풀이는 후대 풀이라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悉備는 「모두 갖추어져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5
百種諸音樂,常以自歡娛,
백 가지 여러 음악으로 늘 즐기고,
주 이 행과 다음 행(음악·잠)은 팔리 226.4~226.6에 대응하는 말이 없다(전체를 읽어 확인한 없음이다).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앵커). 以는 수단 조사 「으로」로, 諸는 「여러」로 옮겼고 百種과 겹치지만 둘 다 저본에 있어 남겼다. 歡娛는 사전 歡娛 ① 이 경에만 나오고(잡아함 1회), 음의 慧琳 0626c19가 娛를 「樂」(說文 「娛樂也」)으로 푸는 것을 따라 「즐기다」로 옮겼다. 이문: 【宋】【元】【明】은 娛를 嬉로 적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6:226.5~226.6
每至睡眠時,音樂以覺悟。
잠자는 때에 이를 때마다 음악으로 깨어납니다.
주 팔리에 대응이 없다(앞 좌표와 같은 자리). 睡眠은 3분할 의역이라 「잠」으로 옮겼다. 3분할·전거 표의 팔리 칸 `Thīnamiddha`(오개의 하나인 혼침)는 이 자리의 일상적 「잠」과 뜻이 달라 쓰지 않았다(전거 주의 7의 동형이의 우려). 음의 慧琳 0323b10은 睡를 「熟寐」, 眠을 「臥」로 푼다. 覺悟는 음의 慧琳 0474b12(「睡覺也 覺亦悟也」)에 따라 「잠에서 깨어나다」로 옮겼다. 사전 覺悟 ⑥ 丁福保의 「진리를 깨달음」은 후대 풀이이고 이 행의 睡眠과 이어지는 맥락에 맞지 않아 버렸다. 覺은 정형구 행 한자(vedanā/sambodhi)라 문맥으로 옮기고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音樂以覺悟는 주어가 없어 「(그가) 음악으로 깨어난다」로도 「음악이 (그를) 깨운다」로도 읽힌다. 앞 행의 즐기는 이와 같은 주체로 보고 앞의 것으로 옮겼으며 `[불확실:격·태·구문]`로 신고한다. 每至는 「~할 때마다 이르다」. 以는 수단 조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6:226.5~226.6
諸天玉女眾,晝夜侍左右。」
여러 하늘의 옥 같은 여인 무리가 낮과 밤으로 좌우에서 모십니다.」
주 팔리 226.6 `Purakkhato parivuto, devakaññāhi sobhasī`(앞세워지고 둘러싸여, 천녀들과 함께 빛난다)에 대해 한역은 侍左右(좌우에서 모신다)·晝夜(밤낮)를 쓰고 팔리의 `sobhasī`(빛난다)는 한역에 없다. 諸天은 「여러 하늘」(하늘의 신들 쪽으로 읽는 길도 있으나 玉女眾을 꾸미는 말로 보았다). 玉女는 「옥 같은 여인」, 팔리 `devakaññā`(신의 딸)와 맞는 자리다. 이 행 끝의 」는 천신 발화의 닫힘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6
尊者阿那律陀說偈答言:
존자 아나율타가 게송을 설하여 대답해 말했다.
주 팔리는 화자 교체 표지 없이 따옴표만으로 226.7로 이어진다. 이 소개 문장은 한역에만 있다. 이문: 【三】【聖】(교감주 orig)·【宋】【元】【明】【聖】(이문)에는 陀가 없다. 같은 인물이 판본 안에서도 阿那律陀/阿那律로 흔들린다(0368c09.1에서 신고).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9.6:226.6~226.7
「諸天玉女眾,此皆大苦聚,
「여러 하늘의 옥 같은 여인 무리, 이들은 모두 큰 괴로움의 무더기이다.
주 팔리 226.7 `Duggatā devakaññāyo`(천녀들은 불운한 처지다)에서 `duggatā`가 한역에서는 大苦聚이다(뜻이 이어지나 낱말이 다르며 판정하지 않는다). 아나율타의 발화는 청자가 윗사람이 아니므로 평서로 통일했다. 此皆의 皆는 「모두」. 聚는 한자가 聚이므로 「무더기」로 옮기되, 이 한자에서 오온의 蘊을 읽어 넣지 않았다. 諸天玉女眾은 0368c14.1과 같은 표기라 같은 번역을 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7
以彼顛倒想,繫著有身見。
저 뒤바뀐 생각으로 몸이 있다는 견해에 매여 집착한다.
주 繫著有身見은 팔리 226.7 `sakkāyasmiṃ patiṭṭhitā`(유신[有身] 위에 자리잡았다)와 맞는 자리이고, 以彼顛倒想(저 뒤바뀐 생각으로)은 팔리에 대응이 없다. 繫著는 사전 繫著 ⑥ 「執著과 같다」, 한역의 繫(얽맴)+著(집착)을 「매여 집착하다」로 옮겼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고 앞 행의 천녀들과 구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有身見은 3분할(身見) 의역이라 「몸이 있다는 견해」로 옮겼다. 한국 불교 정착형 「유신견」도 있어 선택이 갈리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신고한다. 見은 정형구 행 한자(dassana)이나 여기서는 「견해」로,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想은 「생각」으로 옮겼으나 오온의 想(인식)과 일반적인 「생각」을 이 문맥만으로는 가를 수 없어 `[불확실:다의어_판별]`로 신고한다. 顛倒는 음의 慧琳 0322a09가 顛을 「倒仆」(뒤집어 넘어짐)로 푼다. 彼는 이 경에서 「저」로 통일했다. 以는 「~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7
諸求生彼者,斯亦是大苦,
저곳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모든 이들, 이 또한 큰 괴로움이다.
주 팔리 226.8 `Te cāpi duggatā sattā, devakaññāhi patthitā`(천녀들에게 바람 받는[또는 천녀들을 바라는] 중생들도 또한 불운하다)에서 `patthitā`의 방향이 한역의 求生彼(저곳에 태어나기를 구함)와 같은지 이 자료로는 정할 수 없다. 낱말이 달라 `partial`로 적고 판정하지 않는다. 亦은 앞 행의 「이들은 모두 큰 괴로움」에 이어지는 「또한」으로 뜻이 실려 있어 남겼다. 斯는 「이」로 옮겼으며 求生彼者(이들) 또는 그 구함을 받는 것으로 둘 다 읽힌다. 諸는 「모든」. 求生은 사전 求生 ① 잡아함 9회 7경의 표제이고, 같은 표제의 사전 求生 ③ 용례 sa1035/0273a09.1에 「若復欲求生四王、三十三天」이 실려 있어 「태어나기를 구하다」로 옮겼다. 生은 정형구 행 한자라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8
闍隣尼當知,我不願生彼。
사린니여, 알라. 나는 저곳에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주 팔리는 천신과 존자가 두 번씩 주고받는데(226.4~6 / 226.7~8 / 226.9~10 / 226.11~15), 한역은 한 번씩(0368c10.1~0368c14.1 / 0368c16.1~0368c20.1)만 있다. 팔리 226.9~226.13(천신의 두 번째 말, 존자의 무상 게송)은 한역에 대응이 없다(전체를 읽어 확인한 없음이며, 이 좌표 앞뒤로 건너뛴다). 호격 사린니는 팔리 226.14 `jālini`와 맞으나 한역은 이 자리로 당겨 놓았다. 팔리 226.14 `Natthi dāni punāvāso`(이제 다시 머물 곳이 없다)에 대해 한역은 「원하지 않는다」(我不願生彼)로 말해 서술의 결이 다르다. 當知는 앵커대로 「마땅히」를 붙이지 않고 어미 「-라」(알라)로 흡수했다. 願은 「원하다」, 彼는 「저곳」.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14
生死已永盡,不受後有故。」
생사가 이미 영원히 다했다. 뒤의 존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주 팔리 226.15 `Vikkhīṇo jātisaṃsāro, natthi dāni punabbhavo`(태어남의 윤회가 다했다, 이제 다시 있음이 없다)와 가장 가깝다. 한역의 永(영원히)와 故(~기 때문이다)는 팔리에 없다. 故는 不受後有를 이유절로 만들어 앞 구절 生死已永盡에 걸리는 것으로 읽었다. 後有는 정형구 행 한자 `有`를 포함한 복합어로 확정역이 없어 「뒤의 존재」로 옮기고, 受는 「받다」로 옮겨 生·受와 함께 `[불확실: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사전 後有 ① 잡아함 201회 124경 가운데 앞자리 不受가 178회이고, 사전 後有 ③ 용례 sa1017/0267b28.1에 「自知不受後有」가 실려 있다. 앵커의 有는 後有 복합어 안에 있어 「~이 있어」로 풀지 않았다. 이 행 끝의 」는 아나율타 발화의 닫힘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9.6:226.15
尊者阿那律說是語時,闍隣尼天子聞尊者阿那律所說,歡喜隨喜,即沒不現。
존자 아나율이 이 말을 설할 때, 사린니 천자가 존자 아나율이 설한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는 226.15의 게송에서 끝나 맺음 장면이 없다(전체를 읽어 확인한 없음이며, 자리는 226.15 뒤다). 天神(0368c07.1)을 여기서는 天子로 적는다. 한역이 같은 인물에 다른 한자를 쓴다. 天子는 통례상 남성 천신을 가리키나 팔리의 `devatā`·`jālinī`·`purāṇadutiyikā`는 여성형이다(판정하지 않고 신고한다). 阿那律은 정착형 아나율(0368c09.1 참조). 說是語時는 「이 말을 설할 때」. 所說은 앵커대로 「~하는 바」가 아니라 「설한 것」으로 관형절로 풀었다. 歡喜隨喜는 사전 歡喜 ①(뒤 隨喜 335)·隨喜 ①(397회)의 짝 정형구로,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로 옮겼다. 即沒不現은 사전 即 ①(뒤 沒不 161)의 정형구로 即은 「곧」, 沒不現은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이 경에는 乃至 등 생략 표지가 없어(`_정형구_생략표지` 이 경 0) 펴거나 접은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