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二三八)
(1238)
주 이 좌표의 한문은 경 번호 (一二三八)뿐이고 제목 글자가 없다. 팔리 sn3.18의 제목 Kalyāṇamittasuttaṃ(0.3)에 걸리는 한역 글자가 없어 없음확인(absent)으로 적는다. 교감주 원문은 「S. 3. 2. 8. Appamāda. [No. 100(65)]」인데, 앞은 다카쿠스의 PTS 번호와 제목이고 [No. 100(65)]는 다른 대조본의 번호로 보이나 이 투입물에 그 본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후보 합의 등급은 conflict다 — 본 후보 sn3.18(BZA + 莊春江)과 보조 후보 sn3.2(다카쿠스, 번호 그대로 · 대조표 밖)가 갈린다. sn3.2의 제목은 Purisasuttaṃ(탐·진·치 셋)이어서 이 경의 한문과 내용이 닿지 않고, 닿는 것은 서두의 틀(0.3, 0339a14.1)뿐이다. 다카쿠스 각주의 제목 Appamāda도 sn3.18의 제목(Kalyāṇamittasuttaṃ)과 다르다. 어느 계열도 정답으로 삼지 않고 사실만 적는다. 이 경은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모든 좌표의 SF 항을 unaligned로 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18: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3.18은 서두를 「Sāvatthinidānaṃ.」 한 줄로 접어 두었다. 如是我聞에 걸리는 팔리 글자(Evaṃ me sutaṃ)가 이 텍스트에 펴져 있지 않아, 접힌 자리와 같이 보아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로 둔다. 앵커 如×1은 「이와 같이」의 일부로 새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18:129.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佛=부처님은 [구속]. 舍衛(사위)는 정착어 —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은 梵音을 室羅伐悉底로 보고 뜻으로는 「聞物/聞者城/無物不有國」 등으로 풀며, 善見律을 인용해 사람 이름 舍衛에서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 전거 대장: 팔리형 Sāvatthī, 범어형(당대) śravasthi — 두 계통이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다만 이 행은 DA 대역이라는 ⚠이 붙어 있다).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은 3분할표가 「보류」(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로 올렸으나, §⑤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어의 예로 들므로 정착형으로 두고 을 단다. 뜻: 慧琳 0368a03〔金剛般若波羅蜜經〕 — 祇樹는 祇陀(Jeta, 勝) 태자가 공양한 숲의 나무, 0368a05 —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梵語 阿那陀(阿那邠邸)이며 「친족이 없고 큰 부자로서 고독한 이를 구하기로 맹세한 이」, 園은 동산. 팔리 증언은 이 이름을 펴지 않고 Sāvatthinidānaṃ으로 접었다(그래서 partial). 보조 sn3.2의 113.1도 같은 접힘 표지다. 一時=어느 때, 앵커 時는 쓰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2:113.1
時,波斯匿王獨靜思惟,作是念:「世尊正法,現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自覺證知此法,是善知識、善伴黨,非是惡知識、惡伴黨。」
그때 파사익왕은 홀로 고요히 사유하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의 바른 법은 현재의 법에서 모든 타오름을 떠나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통달하여 눈앞에 보이고, 깨달아 증득하여 아는 이 법은,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니다.」
주 (1) 파사익: 波斯匿王은 3분할표가 음역(한자 독음)으로 올렸으나 한자 독음은 「파사닉」이고 한국 불교계 정착형은 「파사익」이다 — 정착형을 썼고 이하 같다. 慧琳 0365a07〔仁王般若經〕 月光王, 0474c01·0479c19〔大般涅槃經音義〕 勝軍王·和悅, 希麟 0952c21 波斯=鉢羅犀那逝多 「勝軍」으로 풀어 이름의 뜻이 갈린다. 전거: 팔리형 Pasenadi(129.2 rājā pasenadi kosalo). (2) 善知識·善伴黨·惡知識·惡伴黨: 확정역 없음. 知識은 「벗」(사전 善知識 ⑥ 丁福保: 知人乃朋友之義)으로 옮겨 「좋은 벗」, 伴黨은 「동반자의 무리」로 옮겼다. 정착형 「선지식」은 스승의 뜻으로 굳어 있어 이 문맥(청정한 행의 절반 = 벗)과 어긋날 수 있어 쓰지 않았다 — 후보가 둘이라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이며 이하 같은 낱말은 이 선택을 따른다. 팔리 kalyāṇamitta·kalyāṇasahāya·kalyāṇasampavaṅka. (3) 正法: 확정역 없음 → 「바른 법」(정착형 「정법」과 병존), 이하 같다. (4) 現法: 現=현재의, 法=법으로 새기고 離諸熾然의 처소로 읽었다. 현세/법 어느 쪽인지 갈릴 수 있어 [불확실:다의어_판별]. (5) 熾然=타오름(慧琳 0516a19 「熾=盛, 猛火」). 諸=모든. (6) 自覺의 自: 단순 재귀이고 自↔他 대조가 본문에 없어 흡수했다. (7) 이 한문 정형(現法…自覺證知)에 걸리는 팔리 글자는 129.4에 없다 — 팔리는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잘 설해진 법) 한 낱말이다(개별 어휘). (8) 한문은 계사문(「이 법은 좋은 벗이다」)이고 팔리는 속격구문(so ca kho kalyāṇamittassa …: 그것은 좋은 벗을 가진 이의 것)이다(구조, 번역기법으로 함께 신고). (9) 팔리 129.3은 왕이 앉은 뒤 부처님께 하는 말 속에 사유(rahogatassa paṭisallīnassa)를 보고하고, 한역은 사유를 먼저 서사로 세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3~129.4
作是念已,往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獨靜思惟,作是念:『世尊正法,現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自覺證知,是則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홀로 고요히 사유하여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세존의 바른 법은 현재의 법에서 모든 타오름을 떠나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통달하여 눈앞에 보이고, 깨달아 증득하여 압니다. 이는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닙니다.』」
주 往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白佛言의 서사 틀은 보조 sn3.2의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 abhivādetvā / ekamantaṃ nisīdi / etadavoca에 닿는다(틀만 닿고 말의 내용은 닿지 않아 partial). 본 후보 sn3.18의 129.2는 이미 앉은 상태(Ekamantaṃ nisinno)에서 시작해 나아가 절하는 서술이 없다(문장 유무). 사유가 한역에서는 서사(0339a11.1)와 발화 안(여기)에 두 번 서고, 팔리는 발화 안에서 한 번 보고된다(구조·배열). 한 사람을 서술에서는 佛, 호칭에서는 世尊으로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稽首: 音義 慧琳 0600c02 「稽首=머리가 땅에 이름」, 0698c05 「頭至地」 — 「머리를 조아리고」로 새겼다. 往詣佛所의 所는 처소(계신 곳)이며 「~하는 바」가 아니다. 作是念已의 已는 완료로 「~하고 나서」. 이 발화는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왕의 말은 존댓말로 통일했고 안긴 생각도 같은 높임을 따랐다. 是則의 則은 귀결 허사로 어미에 흡수(0339a11.1에는 則 없이 같은 문장이 선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129.4
니까야 대응 일부 SN 3.2:113.2~113.4
佛告波斯匿王:「如是,大王!如是,大王!世尊正法、律,現法離諸熾然,不待時節,通達現見,緣自覺知,是則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부처님께서 파사익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대왕이여! 그렇다, 대왕이여! 세존의 바른 법과 율은 현재의 법에서 모든 타오름을 떠나고, 때를 기다리지 않으며, 통달하여 눈앞에 보이고, 깨달음에 말미암아 알며, 이는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니다.
주 如是, 大王! 如是, 大王!는 Evametaṃ, mahārāja, evametaṃ, mahārāja!(129.5)와 같다. 이 如는 비유가 아니라 긍정 응답이라 「그렇다」로 새겼다. 팔리 129.6은 「mayā」(내가) 설한 법이라 1인칭인데 한역은 부처님이 제 입으로 「世尊正法」이라 3인칭으로 말한다(번역기법 가능성은 있으나 판정하지 않는다). 世尊正法、律: 전거 대장 正法、律 ↔ Dhammavinaya, 팔리 129.6~129.7은 dhammo 하나다 — 「바른 법과 율」로 새겼다. 佛(서술)/世尊(자기 지칭)이 한 인물에 쓰인다(한자 흔들림). 緣自覺知: 緣을 「~에 말미암아」로 새겼고 自는 흡수했다. 緣이 수단인지 대상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불확실:격·태·구문]. 앵커 則은 어미에 흡수. 따옴표는 한문대로 이 좌표에서 열어 0339b07.1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5~129.7
所以者何?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는 129.24의 Mamañhi에서 불변화사 hi(왜냐하면)로 이유를 잇고 물음을 세우지 않는다. 한역은 물음의 꼴(所以者何)로 세운다. 이유를 잇는 기능만 닿는다. 앵커 所以=까닭, 者=명사화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4
我為善知識,眾生有生法者,解脫於生,眾生有老、病、死、憂、悲、惱、苦者,悉令解脫。
나는 좋은 벗이 되니, 중생으로서 태어남의 법을 지닌 이는 태어남에서 해탈하고, 중생으로서 늙음, 병,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는 이는 모두 해탈하게 한다.
주 팔리 129.24는 jātidhammā / jarādhammā / byādhidhammā / maraṇadhammā /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adhammā의 다섯 묶음을 각각 「~에서 풀려난다」로 나란히 세운다. 한역은 生法을 따로 세우고 老·病·死·憂·悲·惱·苦 일곱을 한 묶음으로 합쳐 「모두 해탈하게 한다」(悉令)로 닫는다 — 항목 수와 묶음이 다르다(구조·배열, 개별 어휘). 한역은 이 설명을 0339b04.2에서 한 번 더 한다(팔리는 한 번). 解脫於生은 令이 없는 자동사로 읽었고 뒤는 悉令解脫이라 사역이다. 生法의 사전 ⑥(丁福保 「人法/我法」 풀이)은 이 문맥과 맞지 않아 쓰지 않았다. 為善知識의 為는 「~이 되다」. 有×2는 「~을 지닌 이/~이 있는 이」의 관형절로 풀었다. 者×2는 「이」. 令=「~하게 하다」, 於는 조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4
「大王!我於一時住王舍城山谷精舍。
「대왕이여! 나는 어느 때 왕사성의 산골짜기 정사에 머물렀다.[불확실]
불확실 시간 표지 於一時는 팔리 ekaṃ samayaṃ에 닿고(於는 조사로 흡수), 머문 곳이 갈린다 — 한역은 王舍城山谷精舍, 팔리 129.8은 sakkesu(사까족 가운데) nagarakaṃ nāma sakyānaṃ nigamo(사까족의 마을 나가라까)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곳을 말하므로 divergent로 적고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王舍城(왕사성)은 3분할표가 의역(王舍→뜻)으로 올렸으나 §⑤가 왕사성을 정착어로 예시하므로 정착형을 썼다. 뜻: 王舍=「왕의 집」(전거 대장 팔리형 Rajagaha, ⚠MA 대역). 山谷精舍가 이름인지 보통명사(산골짜기에 있는 정사)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산골짜기 정사」로 풀고 을 단다. 精舍=정사(사전 精舍 ① 134회, 정착형).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18:129.8
時,阿難陀比丘獨靜思惟,作是念:『半梵行者是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그때 아난타 비구가 홀로 고요히 사유하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청정한 행의 절반은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니다.』
주 팔리는 아난다가 와서 앉은 뒤 말로 한 번 한다(upaḍḍhamidaṃ, bhante, brahmacariyassa — yadidaṃ kalyāṇamittatā …). 한역은 같은 말을 먼저 아난타의 사유(여기)로 세우고 다음 좌표에서 발화로 되풀이한다 — 사유 서술은 한역에만 있다(문장 유무), 팔리는 추상명사 mittatā(벗됨)이고 한역은 사람 낱말(善知識)이다. 阿難陀(아난타)는 정착어 — 慧琳 0349c13〔大般若波羅蜜多經〕 「唐云慶喜, 舊曰阿難은 梵語를 줄인 것」, 0482c03도 같다. 팔리형 Ānanda(⚠DA 대역). 半梵行의 梵行은 3분할표가 의역으로 올린 대로 「청정한 행」으로 새겼다(慧琳 0698c19 「梵=清淨」). 확정 술어 [정형구 행]의 梵行은 한자 확정역이 아니므로 문맥으로 새겼다. 者는 주제 표지로 「~은」. 比丘=비구는 [구속].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12~129.13
作是念已,來詣我所,稽首我足,退坐一面,白我言:『世尊!我獨靜思惟,作是念:「半梵行者是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내가 있는 곳에 와서 내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나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홀로 고요히 사유하여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청정한 행의 절반은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닙니다.」』
주 팔리 129.9~129.11(다가옴 · abhivādetvā · ekamantaṃ nisīdi · etadavoca)과 129.12~129.13(upaḍḍham …)에 닿는다. 한역은 아난타의 사유(앞 좌표)를 발화 안에서 되풀이한다(구조·배열). 來詣我所의 所는 처소이고, 사전 표제 「我所」(아소, ‘나의 것’을 뜻하는 술어)는 이 자리에서 쓰이지 않는다 — 인용하지 않는다. 같은 인물을 아난타가 호칭에서는 世尊, 앞의 부처님 말씀 안에서는 我로 가리킨다. 이 발화의 청자가 부처님이라 아난타의 말은 존댓말이고 안긴 생각도 같은 높임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9~129.13
我時告言:『阿難!莫作是語,半梵行者是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내가 그때 일러 말하였다: 『아난이여! 이런 말을 하지 말라, 청정한 행의 절반은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니다.
주 阿難은 앞 좌표의 阿難陀를 줄인 꼴이다(慧琳 0482c03 「阿難陀 此云慶喜」) — 같은 인물을 한역이 두 꼴로 쓴다(한자 흔들림). 莫作是語 뒤의 쉼표로 이어진 半梵行者…를 한문은 닫지 않았다. 금한 「이 말」의 내용을 되풀이한 것으로 읽으면 뒤의 所以者何·純一滿淨…(팔리 129.15~129.16 mā hevaṃ … Sakalameva hidaṃ …)과 흐름이 맞고, 부처님이 직접 단언한 것으로 읽으면 뒤와 어긋난다. 직역은 한문의 쉼표 그대로 이었고 인용 어미나 따옴표를 더하지 않았다. 팔리의 mā hevaṃ은 두 번, 한역은 한 번이다. 따옴표는 이 좌표에서 열어 0339b07.1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14~129.15
所以者何?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 129.16의 hi(Sakalameva hidaṃ …)가 이유를 잇는다. 한역은 물음의 꼴로 세운다. 이유를 잇는 기능만 닿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16
純一滿淨,梵行清白,謂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순일하고 가득 차 깨끗하며 청정한 행이 맑고 희니,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라 이르고, 나쁜 벗이나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니라 이른다.
주 純一滿淨 梵行清白은 팔리 sakalam(온전한)에 닿는 한역 정형이다. 純一=섞임 없이 하나(사전 純一 ⑥ 「無雜曰純, 無二曰一」), 滿淨=가득 차 깨끗함, 清白=맑고 희다(사전 清白 ① 32회). 謂의 주어와 대상(앞의 청정한 행을 가리키는지 뒤의 벗을 가리키는지)이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불확실:격·태·구문]이며 직역은 앞 절을 주제로 읽었다. 팔리는 129.18~129.23(좋은 벗이 팔정도를 닦게 한다는 설명과 …pe… 접힘)이 이 자리 뒤에 오는데 이 구간에 걸리는 한역 좌표는 없다(문장 유무).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이 구간은 한역 쪽에 좌표가 없다는 사실만 적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16~129.17
所以者何?
까닭은 무엇인가?
주 0339a21.1과 같다. 팔리 129.24의 Mamañhi(hi=왜냐하면)에 이유를 잇는 기능만 닿는다. 한역에서 이 물음 뒤에 오는 설명이 앞(0339a21.2)과 뒤(0339b04.2)에서 반복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4
我常為諸眾生作善知識。
나는 늘 모든 중생을 위해 좋은 벗이 된다.
주 팔리 129.24의 Mamañhi, ānanda, kalyāṇamittaṃ āgamma(나를 좋은 벗으로 삼아)에 닿는다. 팔리는 「나를 좋은 벗으로 삼아」(대격 + āgamma)이고 한역은 「나는 늘 중생을 위해 좋은 벗이 된다」(能動). 常=늘, 為=「~을 위해」(사전 常為 ① 20회), 諸=모든. 作善知識의 作은 「~이 되다」의 서술.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4
其諸眾生有生故,當知世尊正法,現法令脫於生;有老、病、死、憂、悲、惱、苦者,離諸熾然,不待時節,現令脫惱苦,見通達,自覺證知。
그 모든 중생은 태어남이 있기에, 세존의 바른 법이 현재의 법에서 태어남에서 벗어나게 함을 알라; 늙음, 병,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이 있는 이는 모든 타오름을 떠나고, 때를 기다리지 않고, 지금 번민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보고 통달하고, 깨달아 증득하여 안다.
주 0339a21.2와 같은 설명(팔리 129.24)을 한역이 한 번 더 한다. 當知는 앵커대로 어미 「-라」로 흡수해 「알라」로 옮기고 한국어 어순에 맞춰 목적절 뒤로 옮겼다(축자 어순은 「태어남이 있기에 알라 — 세존의 바른 법이…」). 有老…苦者 이하는 離諸熾然·不待時節·現令脫惱苦·見通達·自覺證知의 주어가 (가) 바른 법인지(앞 좌표의 정형이 법의 속성이었다) (나) 고통이 있는 이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고, 令이 붙은 現令脫惱苦와 붙지 않은 離諸熾然이 섞여 있다. 직역은 주제어를 「~이 있는 이는」으로 세우고 동사를 한문대로 이었다. 現令脫惱苦의 現은 「지금」, 見通達은 「보고 통달함」. 앵커 令×2=「~하게 하다」, 於×1은 조사로 흡수, 自는 흡수(대조 없음), 者는 「이」, 有×2는 「~이 있는/있기에」. 生故의 故는 「~기에」.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4
是則善知識、善伴黨,非惡知識、惡伴黨。』」
이는 좋은 벗이며 좋은 동반자의 무리이고, 나쁜 벗이 아니며 나쁜 동반자의 무리가 아니다.』」
주 팔리 129.25~129.26(Iminā kho etaṃ, ānanda, pariyāyena veditabbaṃ yathā sakalamevidaṃ brahmacariyaṃ — yadidaṃ kalyāṇamittatā …)의 결론에 닿는다. 팔리는 「이 방식으로 알아야 한다, 온전한 청정한 행이 이것이다」라는 앎의 명령형이고 한역은 단언이다. 이 좌표 뒤 팔리 129.27~129.45(불방일에 의지해 사는 훈계와 왕의 후궁·귀족·군대·백성이 본받는다는 반복)는 한역에 걸리는 좌표가 없다(문장 유무). 닫는 『』」는 한문대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25~129.26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 129.46은 「Idamavoca…pe…」로 접혀 있다. 접힌 안쪽(게송을 잇는 말)이 이 한역과 맞는지 읽지 못해 unaligned로 둔다. 即=곧, 爾時=그때. 世尊은 [구속] 세존. 偈言은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로 새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18:129.46
「讚歎不放逸,是則佛正教,
「불방일을 찬탄하니, 이것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요,
주 不放逸=불방일은 [참고] 확정역이며 전거(Appamāda)와 팔리 appamādo가 이 자리 뜻과 맞아 썼다. 讚歎不放逸은 팔리 129.48 Appamādaṃ pasaṃsanti(불방일을 찬탄한다)에 닿는다. 팔리 129.47의 Bhoge patthayamānena, uḷāre aparāpare(재물을 바라는 이에게 …)와 puññakiriyāsu paṇḍitā(공덕 짓는 일에서 현자들이)는 한역에 없고, 是則佛正教(이것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는 팔리에 없다. 教는 「가르침」(명사). 佛=부처님은 [구속]. 是則의 則은 어미에 흡수. 正教는 「바른 가르침」(사전 正教 ① 6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3.18:129.47~129.48
修禪不放逸,逮得證諸漏。」
선을 닦아 불방일하면, 이르러 얻어 모든 번뇌를 증득한다.」
주 팔리 129.49~129.51은 appamatto ubho atthe adhiggaṇhāti paṇḍito(방일하지 않는 현자는 두 가지 이익을 얻는다 …)로 현세와 내세의 이익을 말한다. 한역은 선(禪)을 닦아 번뇌를 증득한다고 하여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divergent). 이문: 漏를 聖本은 滿으로 읽는다(교감주 「漏【大】,滿【聖】」). 大正 본문대로 漏를 따르고 [불확실:저본_이문·자형]을 단다. 漏는 [정형구 행]에 든 한자라 확정역이 아니고 문맥으로 「번뇌」라 새겼다. 증득의 대상이 「번뇌 그 자체」인지(「번뇌의 다함」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지만 글자대로 옮겼다. 逮得은 「이르러 얻다」(音義 慧琳 0327c07 「逮=及」). 禪은 dhyāna를 줄인 음역으로 정착형 「선」. 앵커 得·諸는 이 새김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18:129.49~129.51
佛說此經已,波斯匿王聞佛所說,歡喜隨喜,作禮而去。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파사익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절하고 떠났다.
주 팔리 129.51이 경의 끝이고 그 뒤에 맺음 정형이 없다(이 자리에 접힌 표지도 없다). 한역의 맺음(聞佛所說, 歡喜隨喜, 作禮而去)은 팔리에 놓일 자리가 없어 없음확인(absent)으로 적는다. 佛說·經은 「설하시고 나자·이 경」, 所說은 「설하신 것」(관형절). 歡喜隨喜는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사전 隨喜 ① 397회), 作禮는 「절하고」(사전 作禮 ① 202회). 而는 흡수. 波斯匿王은 0339a11.1 서술의 표기를 따른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18:12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