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二一六)
(1216)
주 한문 쪽은 경 번호(一二一六)뿐이다. 번호 표지라 팔리 제목(`3. Pesalasuttaṃ`, PN:sn8.3/0.3)과 낱말을 견줄 수 없어 사실(없음)도 대응(같음)도 세우지 않고 미대응으로 둔다. 편자 교감주는 `S. 8. 3. Pesalātimaññanā.`와 `[No. 100(251)]`(cf.)를 단다 — 팔리 제목형이 편자 교감주(Pesalātimaññanā)와 주어진 팔리 본문(Pesalasutta)에서 다르나 한문 저본에 제목 낱말이 없어 갈림으로 세우지 않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이번 투입물에 없어 모든 좌표의 SF 항을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8.3: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주어진 팔리 본문(sn8.3)은 211.1이 곧바로 `Ekaṃ samayaṃ`으로 열려 `Evaṃ me sutaṃ`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음을 확인했다(`…pe…`로 접힌 구간도 아니다) → 없음확인. 이 경의 팔리 판본이 개경 정형구를 생략하는 관행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개경 정형구, 발화 첫머리 0/1333). 如는 고정된 구 「如是」 안에서 「이와 같이」로 흡수하며 비유·가정으로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8.3:211.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一時↔`Ekaṃ samayaṃ`(한때)은 맞으나 장소와 주인공이 엇갈린다 — 한역은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팔리 211.1은 바기사 장로가 알라위(Āḷavī)의 아깔라웨 탑묘(Aggāḷave cetiye)에서 화상 니그로다깝빠(Nigrodhakappa)와 함께 머문다. 한역에는 알라위·화상이 없고 팔리 본문에는 사위(舍衛)가 없다 → 엇갈림. 저본이 이기므로 한문대로 옮겼다.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저본 1회 일치). 「머무셨다」는 내레이션 평서에 부처님 높임을 얹은 것이다. 舍衛(사위)는 정착어이며 음역이다: 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이 「梵語訛也…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此譯云聞者城法鏡經譯云聞物國」, 「十二遊經義譯云無物不有國」을 전한다(사전 舍衛國 ⑤). 전거: 舍衛 ←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 — 둘 다 서고 서로 달라 음역계통으로 신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다른 부 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은 5자 이상 보류 항목이었으나 사찰 이름이므로 정착어로 판별하고 정착형 그대로 쓴다. 이름이 뜻하는 것: 祇樹=祇(陀 태자의 음역)+樹(뜻) — 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也」, 給孤獨=뜻으로 옮긴 이름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 慧琳 0368a05 「亦義譯也梵云阿那陀此云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古經云阿那邠邸」, 園=동산. 곧 「기타(祇陀) 태자의 나무와,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급고독)의 동산」. 전거 대역은 Jetavana / Anāthapiṇḍika(DA, ⚠다른 부)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8.3:211.1
時,尊者婆耆舍自以智慧堪能善說,於法聰明梵行所生憍慢心,即自心念:「我不利,不得利,得苦不得樂,我自以智慧輕慢於彼聰明梵行者,我今當說能生厭離偈。」
그때 존자 바기사는 자기 지혜로 잘 설할 수 있어, 법에 총명하고 청정한 삶을 사는 데서 생겨난 교만한 마음에 곧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익이 없고, 이익을 얻지 못하고, 괴로움을 얻고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나는 자기 지혜로 저 총명하고 청정한 삶을 사는 이들을 업신여겼으니, 나는 이제 싫어하여 떠남을 일으킬 수 있는 게송을 설하겠다.」
주 (1) 팔리 211.2 `attano paṭibhānena aññe pesale bhikkhū atimaññati`는 한 가지 까닭(자기 paṭibhāna)을 대는데 한역은 둘(智慧堪能善說 / 於法聰明梵行)을 댄다. 智慧↔paṭibhāna, 聰明梵行者↔pesale bhikkhū, 輕慢↔atimaññati는 어휘가 다르다(개별 어휘). 憍慢心에 해당하는 말은 팔리 산문 쪽에 없다. (2) 211.3 `etadahosi`↔即自心念은 같은 구조. 211.4~6 `alābhā vata me, na vata me lābhā; dulladdhaṃ…suladdhaṃ`↔我不利,不得利,得苦不得樂: 利의 짝은 맞고, 苦·樂은 dulladdhaṃ/suladdhaṃ과 어형이 달라 개별 어휘로 신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 `vata`(참으로)는 한문에 없다. (3) 211.7의 `attanāva attano vippaṭisāraṃ uppādetvā`(자기 안에 뉘우침을 일으키고)는 한문에 없고, 한문의 「我今當說能生厭離偈」(게송을 지으려는 뜻을 밝힘)는 팔리에 없다(문장 유무). 211.7은 c07.1에도 걸린다. (4) 구두·분절: 於法聰明梵行所生憍慢心은 (가) 본문 채택 — 자기가 법에 총명하고 청정한 삶을 산다는 데서 교만이 생김, (나) 뒤의 於彼聰明梵行者와 병행 — 법에 총명한 청정행자들에 대해 교만이 생김, 두 갈래로 읽힌다. 이문 法→彼【明】은 (나)를 거드나 저본(大)은 法이다. 所生은 관형절 「생겨난」으로 풀었다. (5) 이문 憍→高【宋】【元】【明】(高慢心): 뜻 차이는 작다. (6) 梵行은 [정형구 행]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청정한 삶」으로 옮기고 불확실로 남긴다 — 慧琳 0698c19 〔四分律〕 「梵言梵摩此云清淨」(⚠다른 부 MA의 대역 Brahmacariya). 厭離(싫어하여 떠남)도 확정역이 없다(사전 厭離 ① 잡아함 76회). 聰明은 의역(3분할)이라 「총명」, 전거 당대 paṇita. 婆耆舍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바기사」, 전거 Vaṅgīsa/Vangīsa. 偈=게송(정착). 自↔他 대조가 없어 自는 「자기」·「마음속」으로 흡수했다. 當→「-겠다」, 能→「-ㄹ 수 있다」, 堪能은 사전 ① 잡아함 108회. 者는 수 표지가 없으나 부류를 가리켜 「이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2
니까야 대응 같음 SN 8.3:211.3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4~211.6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7
即說偈言:
곧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 211.7 `tāyaṃ velāyaṃ imā gāthāyo abhāsi`(그때 이 게송들을 말했다)가 即說偈言과 맞고, `attanāva attano vippaṭisāraṃ uppādetvā`(자기 안에 뉘우침을 일으킨 일)는 한문에 없다. 같은 팔리 좌표가 앞 좌표(0331c03.1)에도 걸린다. 即는 「곧」(즉시)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7
「瞿曇莫生慢,斷慢令無餘,
「고따마여, 자만을 내지 말라, 자만을 끊어 남음이 없게 하라,
주 瞿曇은 [구속] 확정역 「고따마」(저본 1회 일치). 팔리 211.8 `Mānaṃ pajahassu gotama`의 호격 gotama와 맞는다 — 한문은 호격을 문두에 둔다. 莫生慢(자만을 내지 말라)↔mānaṃ pajahassu(자만을 버려라): 동사가 다르다(생기지 않게 함 / 버림). 斷慢은 pajahassu 쪽에 더 가깝다. 팔리 `mānapathañca`(자만의 길도)는 한문에 짝이 없다. 無餘↔asesaṃ은 팔리에서 다음 행(211.9) 첫머리에 서므로 자리가 갈린다(구조·배열). 令은 「-게 하라」(사역), 莫은 「-지 말라」(금지). 전거: 瞿曇 ← 팔리 Gotama / 근대 범어 Gautama — 둘 다 서고 달라 음역계통으로 신고하며 판정하지 않는다(⚠다른 부 DA의 대역). 사전 慢 ① 잡아함 88회, 無餘 ① 128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8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8.3:211.9
莫起慢覺想,莫退生變悔。
자만의 느낌과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물러나 변하는 뉘우침을 내지 말라,
주 팔리 211.9 `Asesaṃ mānapathasmiṃ, samucchito vippaṭisārī huvā cirarattaṃ`(자만의 길에서 남김없이 …빠져 오래 뉘우치는 이가 되었다)과 자리가 맞는다. 變悔↔vippaṭisārī: 사전 悔 ② AI 정렬 sa1018/0267c20.1 ↔ PN:sn35.57/74.15 [equivalent]에서 같은 쌍이 보인다. 팔리는 과거 사실의 서술이고 한문은 금지(莫)라 서법이 갈린다(번역기법). 慢覺想은 팔리에 곧바로 짝이 없고 `mānapathasmiṃ`과 자리만 겹친다. 覺은 느낌/깨달음/헤아림으로, 想은 생각/지각으로 갈래가 있어(사전 覺 ① 잡아함 590회, 사전 想 ① 잡아함 849회) 문맥 판정이 서지 않아 「느낌과 생각」으로 옮기고 불확실로 남긴다. 退는 「물러나」, 變悔는 「변하는 뉘우침」으로 글자대로 옮겼다(사전 生變 ① 4회, 悔 ① 62회). 起와 生은 같은 한자로 통일하지 않고 각각 「일으키다」「내다」로 구별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9
莫隱覆於他,埿犁殺慢墮,
다른 이에게 숨기고 덮지 말라, 자만에 죽어 니리에 떨어진다,
주 莫隱覆於他는 211.10 `Makkhena makkhitā pajā`와 자리가 맞고 隱覆(숨겨 덮음)은 makkha의 한역어로 보이나 판정하지 않는다(사전 隱覆 ① 잡아함 10회). 他는 自와 짝이 아니라 「다른 이」로 옮겼다. 埿犁殺慢墮는 5자 구절이므로 이름이 아니다 — 안의 埿犁는 지옥을 소리로 옮긴 음역 일반명사이므로 한자 독음 「니리」(편자 대역주 cb:tt: Māngatā nirayam upapannā, 팔리 단독·범어 없음). 殺慢墮의 구문: 본문은 「자만에 죽어 …떨어진다」로 읽었다. 이는 자만이 추락의 원인이라는 한문 문맥에 따른 것이며, 팔리 211.10·211.11의 `mānahatā nirayaṃ papatanti / upapannā`와 합치한다는 점은 비고로만 둔다. 대안 읽음(자만을 죽이고 떨어진다 등)은 문맥에서 서지 않아 채택하지 않았다. 팔리에서는 nirayaṃ이 앞, 한문에서는 埿犁가 앞이나 墮의 자리는 211.10 papatanti 쪽이고 대역주는 211.11 말미를 가리켜 두 좌표에 걸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10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11
正受能除憂,見道住正道。
바른 받아들임이 근심을 없앨 수 있고, 도를 보아 바른 도에 머문다,
주 211.12 `Na hi socati bhikkhu kadāci, maggajino sammāpaṭipanno`(비구는 결코 슬퍼하지 않는다, 길의 승리자이며 바르게 닦는 이). 한문 除憂(근심을 없앰)는 능동이고 팔리는 슬퍼하지 않음이다. maggajino의 뒷부분(승리자)은 한문에 짝이 없고, 팔리의 주어 bhikkhu도 한문에 없다. 正道↔sammāpaṭipanno는 자리만 맞는다. 正受는 낱말 확정역이 없고 글자대로 「바른 받아들임」이라 옮겼다 — 사전 正受 ① 잡아함 249회, ⑥ 丁福保(후대·가볍게 봄)는 삼매의 다른 이름으로 푼다. 이 풀이는 인용일 뿐 확정역이 아니다. 能은 「-ㄹ 수 있다」로 어미에 흡수했다. 見道는 여기서 동사+목적어(도를 봄)로 읽었고, 사전 見道 ⑥(三道의 하나)의 술어로 읽을 가능성은 채택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12
其心得喜樂,見道自攝持,
그의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 도를 보아 자신을 거두어 지닌다,
주 211.13 `Kittiñca sukhañca anubhoti, dhammadasoti tamāhu pahitattaṃ`(명성과 즐거움을 누린다, 법을 보는 이·정진하는 이라 그를 부른다). 喜樂↔sukha는 자리가 맞으나 kitti(명성)는 한문에 없다(문장 유무). 見道自攝持가 dhammadasa·pahitatta를 옮긴 것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喜樂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읽었다(사전 喜樂 ① 71회, ⑥ 喜=의식, 樂=오식의 후대 풀이는 채택하지 않음). 自攝持의 自는 단순 재귀라 「자신을」로 흡수했다(사전 自攝 ③ 용례 sa1073 「亦應自攝持」, ⑥ 南山戒疏). 得은 획득의 「얻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13
是故無礙辯,清淨離諸蓋。
그러므로 걸림 없는 말솜씨요, 청정하여 여러 덮개를 떠난다,
주 211.14 `Tasmā akhilodha padhānavā, nīvaraṇāni pahāya visuddho`. 是故↔tasmā는 같다. 清淨離諸蓋↔nīvaraṇāni pahāya visuddho: 蓋=nīvaraṇa, 離=pahāya, 淨=visuddha로 짝이 맞으나 순서가 바뀐다(한문은 淸淨→離蓋, 팔리는 버림→청정). 無礙辯↔akhilodha padhānavā는 어휘가 다르다. 蓋는 [정형구 행]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고 글자대로 「덮개」로 옮겼다(니까야 쪽 정형구 행은 「장애」를 쓰는 듯하나 확정역으로 쓰지 않았다). 無礙辯의 辯은 「말솜씨」, 礙는 막음·걸림(음의 慧琳 0484c06 「礙止也」). 이문 礙→閡【聖】: 뜻 차이 없음. 淸淨의 3분할 팔리 Sobhavatī는 DA의 도시명 동형이의라 적용하지 않았다. 諸는 「여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14
斷一切諸慢,起一切明處,
온갖 여러 자만을 끊고, 온갖 밝음의 자리를 일으킨다,
주 211.15 `Mānañca pahāya asesaṃ, vijjāyantakaro samitāvī`. 斷…慢↔mānañca pahāya, 一切↔asesaṃ은 짝이 맞는다(앞의 無餘↔asesaṃ은 211.9). 起一切明處는 `vijjāyantakaro`와 어휘가 다르고 한문은 「일으킨다」, 팔리는 「지혜로 끝을 짓는 이」라 구문이 갈린다. 明處는 이 경에만 나오는 낱말이다(사전 明處 ① 1회, ⑥ 五明處). 글자대로 「밝음의 자리」로 옮겼다. 一切와 諸는 둘 다 옮겨 「온갖 여러」로 두었다. 一切 전거 당대 범어 sarva(참고).
니까야 대응 일부 SN 8.3:211.15
正念於三明,神足他心智。」
세 가지 밝음에 바르게 생각하고, 신통과 다른 이 마음에 대한 지혜.」
주 팔리 211.15의 후반 `vijjāyantakaro samitāvī`에서 vijjā(明)만 겹치고 正念·神足·他心智는 팔리에 짝이 없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구문: 正念於三明, 神足他心智는 (가) 於가 三明만 받고 神足·他心智는 따로 나열되거나 (나) 於가 셋을 모두 받을 수 있어 술어가 비는 구절이므로 동사를 보태지 않고 명사로 맺었다. 三明은 3분할 표가 「혼합」으로 쳤으나 두 글자 모두 뜻으로 옮긴 말(三=셋, 明=밝음)이라 음역 부분이 없고, 저본에 비추어 의역으로 처리했다. 한국 불교계 정착형이 「삼명」이나 이 구절에서는 「세 가지 밝음」으로 풀어 앞 행(明處)과 글자를 맞췄다. 전거: 三明 ↔ Te-vijjā. 神足은 pāṭihāriya(상위)/iddhi(하위) 겸용 한자이나 他心智와 나란한 항목이라 하위어 쪽 「신통」으로 읽었다(사전 神足 ① 13회). 他心智는 「다른 이 마음에 대한 지혜」(사전 他心智 ① 10회, ⑥ 十智之一). 正念은 낱말 확정역이 없어 글자대로 「바르게 생각하고」로 옮겼다(사전 正念 ① 232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8.3:211.15
時,尊者婆耆舍說此生厭離偈已,心得清淨。
그때 존자 바기사는 이 싫어하여 떠남을 일으키는 게송을 설하고 나서, 마음이 청정함을 얻었다.
주 주어진 팔리 본문(sn8.3)은 211.15의 게송으로 끝나며 한문의 맺음(게송을 마치자 마음이 청정해짐)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음을 확인했다(`…samitāvī’’ti.`로 닫히고 접힌 구간 없음) → 짚을 좌표가 없어 PN:없음. 淸淨은 c13.1과 같은 한자이므로 같은 「청정」으로 옮겼고 한자 흔들림은 없다. 得은 획득의 「얻다」, 已는 완료의 「-고 나서」. 偈는 「게송」(정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