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二〇九)
(1209)
주 한역 제목은 경 번호 「(一二〇九)」뿐이다. 팔리는 경명 「9. Koṇḍaññasuttaṃ」(PN:sn8.9/0.3)을 단다 — 한쪽이 더 말하므로 partial로 잡았다. 저본의 편자 교감주가 「S. 8. 9. Koṇḍañña.」(상윳따 8.9)와 「cf. No. 100(225)」(대정장 100번의 225를 참조하라는 표지)를 달았다. 이는 편자의 대응 지시이며 본문이 아니므로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이번 조각에는 산스크리트 증언 투입물이 없어 SF 항은 모두 unaligned(아직 안 잡음)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8.9는 전문(217.1~217.19)이 주어졌고 …pe… 접힘이 없다. 217.1 「Ekaṃ samayaṃ…」으로 곧바로 열리며 「Evaṃ me sutaṃ」이 없다 → absent(없음확인). 놓일 자리는 217.1 앞이라 217.1로 짚었다. (사전 如是我聞 ②: 다른 경에서는 같은 정형구가 팔리 「Evaṃ me sutaṃ」에 equivalent로 잡히는 자리가 있다.) 如 [비유·가정] 앵커는 정형구 如是에 걸린 것이라 비유·가정으로 옮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8.9:217.1
一時,佛住瞻婆國揭伽池側。
한때 부처님께서 첨파국의 게가 못 곁에 머무셨다.
주 「一時,佛住」는 팔리 「Ekaṃ samayaṃ bhagavā … viharati」와 같다. 갈리는 것은 장소다 — 팔리는 「rājagahe … veḷuvane kalandakanivāpe」(왕사성의 대나무숲, 칼란다까 먹이터)이고 한역은 瞻婆國揭伽池側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divergent로 잡았고 어느 쪽이 옳은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고유명 처리: 瞻婆·揭伽는 소리를 옮긴 이름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첨파·게가)으로 적고, 國(나라)·池(못)·側(곁)은 뜻으로 옮겼다. 3분할 표는 둘을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한 이름 안에 음과 뜻이 섞인 것이 아니라 이름(음역)에 보통명사(池側)가 붙은 것으로 읽어 음역으로 판별했다. 전거: 瞻婆←Campā(⚠다른 부 DA의 대역), 揭伽←Gaggarā — 팔리 후보만 있고 범어 후보는 없다. 婆의 독음은 한국 한자음 「파」와 불교 독송음 「바」가 갈리는데 관용을 따라 첨파·바기사로 적었다. 佛 [구속]=부처님. 「머무셨다」는 부처님을 주어로 한 내레이션(평서)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8.9:217.1
爾時,尊者阿若憍陳如久住空閑阿練若處,來詣佛所,稽首佛足,以面掩佛足上,而說是言:「久不見世尊!久不見善逝!」
그때 존자 아야교진여는 오래 비어 한가한 아련야의 처소에 머물다가 와서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얼굴로 부처님 발 위를 덮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래 세존을 뵙지 못했습니다! 오래 온전히 이루신 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주 (1) 구조 — 팔리 217.2~217.4는 sucirasseva(오랜만에) 와서, 발에 머리로 엎드리고(sirasā nipatitvā ≈ 稽首佛足), 입으로 발에 입맞추고(mukhena paricumbati ≈ 以面掩佛足上) 손으로 문지르며(pāṇīhi parisambāhati — 한역에 없음), 이름을 밝힌다(nāmañca sāveti; 217.4 「koṇḍaññohaṃ, bhagavā, koṇḍaññohaṃ, sugatā」 저는 꼰단냐입니다, 세존이시여…선서시여). 한역은 이름을 밝히는 자리에 「久不見世尊!久不見善逝!」(오래 뵙지 못했다)를 둔다. 호격 두 겹(bhagavā·sugatā ↔ 世尊·善逝) 구조는 같고 담은 말이 다르다. 한역의 「久住空閑阿練若處」(오래 아련야에 머묾)는 팔리에 없다. (2) 面↔mukha(입·얼굴), 掩(덮다)↔paricumbati(입맞추다)는 글자가 다르다 — 판정하지 않는다. (3) 이름 — 阿若憍陳如는 소리를 옮긴 이름이다. 전거: 팔리 후보 Aññāsi-Koṇḍañña / 범어 후보(근대) Ājñātakauṁḍinya — 두 계통이 서로 다르다(음역계통; 판정하지 않음).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82b01: 「阿若多=解, 憍陳那=婆羅門姓」 — 앞부분은 「알았다」는 뜻의 소리, 뒤는 가문 이름. 3분할 표는 이 이름을 보류(5자 이상)로, 憍陳如를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팔리와 음절이 맞고(3:3) 뜻을 옮긴 흔적이 없어 음역으로 판별했다. 한국 정착형 「교진여」를 따라 아야교진여로 적고 이하 같은 이름은 교진여로 통일한다(정착어; 뜻은 위와 같음). (4) 阿練若 — 소리(전거 Arañña, ⚠다른 부 MA의 대역)라 독음 아련야. 음의 慧琳 0319c11: 「阿蘭若…寂靜處」. 空閑은 阿練若의 뜻풀이(空閑處)와 겹칠 수 있으나 판정하지 않고, 저본에 둘 다 있으므로 둘 다 옮겼다. (5) 稽首 — 음의 慧琳 0600c02 「首至地」에 기대 「머리를 조아려」. 음독(계수)은 쓰지 않았다. (6) 見 — 정형구 행(dassana) 한자이나 여기서는 단순 동사 「보다」의 높임(뵙다)으로 읽었다. 낱말 확정역이 없어 신고한다. (7) 한자 흔들림 — 한역은 같은 분(bhagavā)을 서술에서 佛(佛所·佛足), 호격에서 世尊이라 쓴다. 확정역으로 佛=부처님·世尊=세존·善逝=온전히 이루신 분 [구속]을 각각 고정했다. (8) 以·而는 조사·어미로 흡수했고 所는 명사 「곳」(佛所)으로 읽었다. 세존께 드리는 말은 합쇼체로 일관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2~217.4
爾時,尊者婆耆舍在於會中,作是念:「我今當於尊者阿若憍陳如面前,以上座譬而讚歎之。」
그때 존자 바기사는 모임 가운데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이제 존자 아야교진여의 면전에서 상좌의 비유로 그를 찬탄하겠다.”
주 (1) 팔리 217.5~217.9는 바기사에게 「etadahosi」(생각이 났다) 한 뒤, 217.6~217.8에서 217.2~217.4의 교진여 행동(엎드림·입맞춤·이름 밝힘)을 그대로 되풀이해 떠올리고, 217.9 「Yaṃnūnāhaṃ … sāruppāhi gāthāhi abhitthaveyyaṃ」(적합한 게송들로 찬탄해 보리라)로 맺는다. 한역에는 되풀이한 회상(217.6~217.8)이 없다. 한역의 「在於會中」(모임 가운데 있음)은 팔리에 없다. (2) 팔리는 「bhagavato sammukhā」(세존의 면전에서), 한역은 「於尊者阿若憍陳如面前」(존자 교진여의 면전에서) — 면전의 주인이 갈린다. (3) 팔리 「sāruppāhi gāthāhi」(적합한 게송들로) ↔ 한역 「以上座譬」. 譬가 비유인지 게송류의 말인지, 上座譬가 「상좌를 두고 하는 비유」인지 「상좌에 걸맞은 말」인지 본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저본 글자대로 「상좌의 비유」로 옮기고 불확실로 신고한다. sāruppa(적합함)와 譬(견줌)의 뜻이 겹칠 수 있으나 판정하지 않는다. (4) 上座는 한국 불교계 술어 「상좌」로 쓰고, 팔리 thera(217.14 「so thero」)에 걸린다. (5) 이문 — 會(대정) / 舍(聖本). 舍로 읽으면 「집·처소 가운데」가 되어 뜻이 달라진다. 저본 會를 따랐다. (6) 當은 어미 「-겠다」가 지므로 「마땅히」를 쓰지 않았다. 於·以는 조사로 흡수했다. 婆耆舍는 소리를 옮긴 이름이라 독음(바기사); 전거 Vaṅgīsa / Vangīsa(팔리 후보)로 팔리형은 비고에만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5~217.9
作此念已,即從坐起,整衣服,為佛作禮,合掌白佛:「世尊!欲有所說。
이 생각을 하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 팔리 217.10 「uṭṭhāyāsanā」(자리에서 일어나) ≈ 從坐起, 「yena bhagavā tenañjaliṃ paṇāmetvā」(세존 계신 쪽으로 합장하여) ≈ 合掌. 팔리 「ekaṃsaṃ uttarāsaṅgaṃ karitvā」(윗옷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는 한역 「整衣服」(의복을 가지런히 함)과 가리키는 동작이 다르고, 한역은 「為佛作禮」(부처님께 예를 올림)를 더한다. 217.11 「paṭibhāti maṃ, bhagavā」(저에게 [말이] 떠오릅니다, 세존이시여) ↔ 「世尊!欲有所說」: 호격과 반복 구조는 같고 서술어가 다르다(paṭibhāti ↔ 欲有所說). 이 좌표와 다음 좌표는 팔리 217.11 한 줄에 같이 걸린다 — 팔리가 한 줄에 둔 「bhagavā … sugatā」 짝을 한역이 두 좌표로 나눈다. 이문 — 坐(대정) / 座(宋元明): 뜻은 같다(자리). 저본을 따랐다.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것이 있습니다」로 옮기고 所說은 「~하는 바」 없이 관형절로 풀었다. 為佛 [구속]=부처님(「부처님께」). 白은 「아뢰다」. 한자 흔들림 — 서술의 佛(為佛·白佛)과 호격 世尊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인용은 다음 좌표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0~217.11
善逝!欲有所說。」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 「paṭibhāti maṃ, sugatā」 ↔ 「善逝!欲有所說」. 앞 좌표와 한 쌍의 둘째 항이며 호격만 바뀐다(sugatā ↔ 善逝). 서술어의 갈림은 앞 좌표와 같다. 善逝 [구속]=온전히 이루신 분.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1
佛告婆耆舍:「欲說時便說!」
부처님께서 바기사에게 이르셨다: “말하고자 할 때 곧 말하라!”
주 팔리 「‘Paṭibhātu taṃ, vaṅgīsā’ti bhagavā avoca」(그대에게 떠오르기를, 바기사여). 앞 좌표의 paṭibhāti(떠오름)에 대한 응답 구조는 같으나 한역은 「欲說」(말하고자 함)로 받는다. 호격 vaṅgīsā(문말)는 한역에서 「告婆耆舍」(바기사에게 이르심)로 서술에 들어 있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便은 「곧」.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2
時,尊者婆耆舍即說偈言:
그때 존자 바기사는 곧 게송을 말하였다:
주 팔리 217.13 「āyasmantaṃ aññāsikoṇḍaññaṃ bhagavato sammukhā sāruppāhi gāthāhi abhitthavi」(세존의 면전에서 적합한 게송들로 아야교진여를 찬탄하였다). 한역은 대상(교진여)·면전·적합함을 말하지 않고 「說偈」만 둔다. 偈는 정착어 「게송」. 即은 「곧」.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3
「上座之上座,尊者憍陳如,
“상좌 가운데 상좌, 존자 교진여는
주 팔리 217.14 「Buddhānubuddho so thero, koṇḍañño tibbanikkamo」: 「so thero」(그 장로)·「koṇḍañño」는 上座·憍陳如에 걸린다. 한역의 「上座之上座」(상좌 가운데 상좌)는 팔리 buddhānubuddho(붓다를 뒤따라 깨달은 이)와 말이 다르고, tibbanikkamo(맹렬히 정진하는)에 해당하는 말이 한역에 없다. 憍陳如는 b09의 아야교진여의 약칭이다(전거 憍陳如←Koṇḍañña;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소리로 판별). 之는 「가운데」로 옮긴 「X 가운데 X」꼴이다. 게송 전체는 부처님 앞의 발화라 문말을 합쇼체로 맺고(b25.1), 교진여에게 -시-는 달지 않았다. 인용은 b25.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4
已度已超越,得安樂正受。
이미 건너고 이미 뛰어넘어 안락한 바른 받아들임을 얻었고,
주 팔리 217.15 「Lābhī sukhavihārānaṃ」(안락한 머묾들을 얻는 이) ↔ 「得安樂正受」: sukhavihāra(안락한 머묾) ↔ 「安樂…正受」. 正受는 후대 풀이(사전 ⑥ 丁福保 1922)로 삼매(Samaya)에 해당하나 이는 가벼운 근거라 판정에 쓰지 않았다. 「已度已超越」(이미 건넘·뛰어넘음)은 팔리 217.14~217.15에 대응어가 없다. 正受는 낱말 확정역이 없다. 음독 「정수」는 ②가 막는 꼴이라 글자 뜻대로 「바른 받아들임」으로 옮겼고 b22.1과 통일했다. 정형구 행의 「受」(=vedanā 느낌)는 이 복합어에 적용하지 않았다(저본이 이긴다). 분절 — 「안락한 바른 받아들임」(安樂이 正受를 꾸밈)으로 읽었고, 「안락」과 「정수」 두 항으로 끊는 읽기도 있다. 得은 가능이 아니라 획득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5
於阿練若處,常樂於遠離,
아련야의 처소에서 늘 멀리 떠남을 즐기며,
주 팔리 217.15 후반 「vivekānaṃ abhiṇhaso」(멀리 떠남들을 늘) ≈ 「常樂於遠離」: abhiṇhaso≈常, viveka≈遠離. 한역은 「樂」(즐김)을 더하고 팔리는 viveka가 복수형이다. 「於阿練若處」(아련야의 처소에서)는 팔리 이 줄에 없다. 阿練若는 b09와 같은 표기·독음이다.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遠離는 「원리」(음독)가 현대어 「원리」와 겹치므로 「멀리 떠남」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5
聲聞之所應,大師正法教。
성문에게 합당한 것, 큰 스승의 바른 법의 가르침,
주 팔리 217.16 「Yaṃ sāvakena pattabbaṃ, satthusāsanakārinā」(스승의 가르침을 행하는 제자가 이루어야 할 것) ↔ 「聲聞之所應,大師正法教」. sāvaka≈聲聞, satthu≈大師, sāsana≈教로 짝이 서고, 한역은 正法을 더한다. 팔리의 pattabbaṃ(얻어야 할)은 한역에서 「所應」(합당한)이고 kārinā(행하는 이)는 한역에 없다. 한역의 두 명사구가 앞 구의 목적어인지 독립 구인지 한문이 말하지 않아 풀지 않고 명사구로 둔다. 應 [당위]는 어미로 흡수하려 했으나 「所應」이 관형절이라 「합당한 것」으로 옮겼다. 大師는 불칭이다(사전 ⑥ 瑜伽論 인용은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만 본다). 「대사」는 현대어에서 다른 뜻(큰스님)과 겹쳐 「큰 스승」으로 옮겼다. 聲聞은 정착어 「성문」, 正法은 「바른 법」.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6
一切悉皆陳,正受不放逸,
일체가 모두 펼쳐져 있고 바른 받아들임에 불방일하며,
주 팔리 217.17 「Sabbassa taṃ anuppattaṃ, appamattassa sikkhato」(배우며 방일하지 않는 이에게 그 모든 것이 이르러졌다). 一切≈sabbassa, 不放逸≈appamattassa의 짝이 선다. 「悉皆陳」의 陳은 이 줄만으로 뜻(펼치다·늘어놓다·말하다 등)이 서지 않아 가장 중립적인 「펼쳐져 있고」로 옮기고 신고한다. 팔리 anuppattaṃ(이르러졌다)과의 짝은 판정하지 않는다. 분절 — 「正受/不放逸」을 두 명사로 끊는 읽기와 「正受에 不放逸」로 읽는 읽기가 있고, 후자를 택했다. 한역에는 sikkhato(배우는 이)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不放逸은 확정 [참고] 불방일(appamāda)을 채택했다 — 뜻이 선다(방일하지 않음).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이는 이름이 아니라 교리어에 기계가 붙인 분류이고, 확정역이 유형보다 위다. 正受는 b19.1 참조(통일). 受 정형구 행은 적용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7
大德力三明,他心智明了。
큰 덕의 힘과 삼명, 타심지가 밝고 분명하며,
주 팔리 217.18 「Mahānubhāvo tevijjo, cetopariyāyakovido」 ≈ 大德力 / 三明 / 他心智明了 — 세 항이 차례대로 선다. 三明은 정착어 「삼명」, 他心智는 「타심지」이며 他는 自와 짝이 아니므로 「남」으로 세우지 않았다. 분절 — 大德力을 「큰 덕의 힘」(大德+力)으로 끊었다(사전 大德 ① 뒤: 大力·神力). 大德을 존칭 「대덕」으로 읽는 길은 택하지 않았다. 전거 표와 3분할 표가 大德을 Yaññadatta(⚠다른 부 DA의 대역)로 걸고 三明을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둘 다 이 자리에서는 이름이 아니라 교리어이다(오적중으로 보고 따르지 않음). 서술어는 한문에 없어 보충하지 않고 명사구로 이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8.9:217.18
上座憍陳如,護持佛法財,
상좌 교진여는 부처님 법의 재물을 보호하여 지니고,
주 팔리 217.19 앞줄 「Koṇḍañño buddhadāyādo」(교진여는 붓다의 상속자). 한역은 上座를 덧붙인다. buddhadāyādo(붓다의 상속자)와 「護持佛法財」(부처님 법의 재물을 보호하여 지님)는 상속과 재물의 관념이 겹칠 수 있으나 같은 말은 아니다 — 판정하지 않는다. 이문 — 財(대정) / 教(明本). 教면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보호하여 지니고」가 된다. 저본(財)을 따랐다. 護持는 「보호하여 지님」(사전 護 ①: 지키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9
增上恭敬心,頭面禮佛足。」
더욱 높아진 공경의 마음으로 머리와 얼굴을 부처님 발에 대어 절합니다.”
주 팔리 217.19 뒷줄 「pāde vandati satthuno」(스승의 발에 절한다) ≈ 頭面禮佛足. 한역은 「增上恭敬心」(더욱 높아진 공경의 마음)을 더하고 「頭面」(머리와 얼굴)을 말한다. 팔리의 satthuno(스승의)는 한역에서 佛이다. 「頭面禮足」꼴은 ②가 든 판별 예(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에 따랐다. 增上은 「증상」(음독)을 쓰지 않고 뜻으로 옮겼다. 이 좌표에서 b18.1부터 열린 인용이 닫히며, 게송 전체의 유일한 문말을 합쇼체로 맺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8.9:217.19
尊者婆耆舍說是語時,諸比丘聞其所說,皆大歡喜。
존자 바기사가 이 말을 하였을 때, 비구들이 그가 말한 것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주 팔리 sn8.9는 217.19 게송으로 끝난다(전문이 주어졌고 …pe… 접힘 없음). 이 끝맺음이 놓일 자리는 217.19 뒤라 217.19로 짚고 absent(없음확인)로 둔다. 比丘 [구속]=비구 — 한국 정착어이며 뜻은 걸식하는 수행자이다(음의 慧琳 0482a20: 苾蒭의 다섯 뜻 怖魔·乞士·淨命·淨戒·破惡). 전거: 팔리 bhikkhu / 범어 후보(근대) Bhikṣu — 두 계통이 서로 다르다(음역계통; 판정하지 않음). 諸는 복수 「-들」로 흡수했다. 所說은 관형절 「말한 것」으로 풀었다. 歡喜는 확정역이 없어 「기뻐하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8.9:2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