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九八)
(1198)
주 한문의 제목 칸에는 경 번호 一一九八(→1198)만 있다. 팔리는 제목(Āḷavikāsuttaṃ)과 장·상윳따 이름(PN:sn5.1/0.1~0.2)을 갖지만 한역 저본에는 그에 해당하는 글이 없다(없음확인). 교감주 `S. 5. 1. Āḷavikā.`는 편자가 단 대조 표시이지 한역 본문이 아니므로 증언으로만 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회, 이 경 1회). 如는 `如是`의 일부이므로 비유·가정의 `如`로 읽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1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은 확정 술어 [구속]. 舍衛는 정착어(사위)로 적는다. 전거 `舍衛`는 팔리형 Sāvatthī, 당대 실담형 śravasthi로 갈린다(`_전거_sa1191`; ⚠다른 부 DA의 대역) — 판정하지 않고 두 계통으로 신고한다. 이름의 뜻은 慧琳 0367c24(一切經音義 〔金剛般若波羅蜜經〕)가 범어형을 室羅伐悉底로 보아 `聞者城`·`聞物國`으로 풀고, 善見律을 끌어 舍衛가 본래 사람 이름이었다가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 전한다(인용). 祇樹給孤獨園은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뜻: 祇樹는 祇陀(Jeta)의 나무 — 慧琳 0368a03은 祇陀가 太子 이름이고 그가 나무를 불·승에 공양하여 略云祇樹라 하고, 給孤獨은 慧琳 0368a05가 `亦義譯也`라 하며 梵 阿那陀를 `無親屬·巨富多財·誓救孤獨`으로 풀어 古經의 阿那邠邸와 같다고 한다(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園=동산. 3분할이 `보류`로 둔 5자 복합이며 정착형과 의역형 사이를 이 경에서 스스로 판별한 것이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팔리 jetavane(제따 숲)은 vana이고 한역은 樹라 글자가 다르다(개별 어휘).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2
時,有阿臈毘比丘尼,住舍衛國王園精舍比丘尼眾中。
그때 아랍비 비구니가 사위국 왕의 동산 정사의 비구니 대중 가운데 머물고 있었다.
주 阿臈毘는 음역(주석 tt_id 0325011 gloss Aḷavikā; 전거 팔리형 Aḷavikā만 있다)이라 한자 독음 아랍비로 적고 팔리형은 비고에만 둔다. 王園精舍는 3분할 표에 없는 이름이다 — 王園은 뜻으로 `왕의 동산`, 精舍는 한국 불교계에서 쓰는 `정사`로 옮겼고, 이것이 한 곳의 고유 이름인지(사전 舍衛國 ① 뒤 王園 21회) 판별은 이 경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팔리 162.3은 비구니가 머무는 곳을 말하지 않고 아침 탁발로 시작하므로 한역의 거처 서술(住…眾中)은 한역에만 있다. 有는 인물을 처음 들이는 자리라 주어화로 흡수했다. 比丘尼=비구니(정착어; 慧琳 0482c07 `尼女聲`). 舍衛 음역계통은 0.3과 같다(팔리 Sāvatthī / 범어 śravasthi).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3
時,阿臈毘比丘尼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
그때 아랍비 비구니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주 晨朝(사전 晨朝 ① 뒤 著衣 102회)=이른 아침, 팔리 pubbaṇhasamaya(오전 시간)에 해당한다. 著衣持鉢은 팔리 nivāsetvā pattacīvaramādāya(속옷을 두르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와 衣의 층위가 다르다. 乞食=걸식. 舍衛城=사위성(정착어)이며 음역계통은 0.3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3
食已,還精舍,舉衣鉢,洗足,持尼師壇,著右肩上,入安陀林坐禪。
식사를 마치고 정사로 돌아와 의발을 거두고 발을 씻고, 니사단을 들어 오른쪽 어깨 위에 얹고 안타림에 들어가 좌선하였다.
주 한역에만 있는 것은 정사로 돌아와 의발을 거두고 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에 얹는 동작들이다. 팔리에만 있는 것은 vivekatthinī(멀리 떠남을 바라는 이)인데 한문에 없으므로 본문에 넣지 않았다. 舉衣鉢의 舉는 사전 舉 ① 앞 精舍 42·뒤 衣鉢 64회의 정형 쓰임에 맞춰 `거두다`로 옮겼다. 尼師壇은 음역이라 니사단으로 적는다 — 慧琳 0314a08이 `梵語略也`, 唐譯 敷具 곧 坐具라 하고, 전거는 근대형 Niṣīdana만 싣는다(인용). 安陀林은 3분할이 安陀를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자 뜻이 서지 않고 팔리 Andhavana와 소리가 맞으므로 음역(安陀)+뜻(林)으로 읽어 안타림으로 적었다(전거 팔리형 Andhavana, ⚠다른 부 MA의 대역)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팔리 andha는 `눈먼·어두운`의 뜻이나 이는 팔리 쪽 풀이이고 한역은 소리로 옮겼다. 坐禪=좌선(정착어).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4
時,魔波旬作是念:「今沙門瞿曇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有弟子阿臈毘比丘尼,住舍衛國王園精舍比丘尼眾中,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
그때 마파순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사문 고따마가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있고, 제자인 아랍비 비구니가 사위국 왕의 동산 정사의 비구니 대중 가운데 머물면서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주 팔리 162.5는 마라가 비구니에게 다가간다고만 하고 마라의 독백은 없다 — 이 독백은 한역에만 있다. 魔波旬은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주석 gloss가 Māra pāpimant이고 魔(←Māra)·波旬(←pāpiman) 모두 소리를 옮긴 글자로 읽혀 한자 독음 마파순으로 적었다. 慧琳 0465b15는 梵 摩羅=障礙, 波裨旬=罪惡으로 풀되 이는 인도어 낱말의 뜻이다(인용). 의역으로 읽으면 다른 옮김이 서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沙門은 음역이라 사문, 瞿曇은 확정 술어 [구속]에 따라 고따마. 전거: 沙門 팔리형 Samaṇa / 근대 Śramaṇa, 瞿曇 팔리형 Gotama / 근대 Gautama — 두 계통이 서므로 `음역계통`으로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慧琳 0420a16 沙門 `勤懇/勤勞`). 舍衛 음역계통은 0.3과 같다. 弟子=제자. 화자가 마라이므로 붓다를 높이지 않고 평서로 적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5
食已,還精舍,舉衣鉢,洗足已,持尼師壇,著右肩上,入安陀林坐禪。
식사를 마치고 정사로 돌아와 의발을 거두고 발을 씻고 나서, 니사단을 들어 오른쪽 어깨 위에 얹고 안타림에 들어가 좌선하였다.
주 마라의 독백 안에서 앞 동작(c19.1)을 되풀이하는 문장이다. 팔리는 이 되풀이가 없다(없음확인; 같은 동작의 팔리 대응은 c19.1이 진다). 한문이 c19.1의 `洗足`을 여기서는 `洗足已`로 쓰므로 통일하지 않고 `발을 씻고 나서`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162.5
我今當往,為作留難。」
나는 이제 가서 방해를 만들겠다.」
주 當은 어미 -겠다가 지므로 부사를 붙이지 않았다. 留難=방해(사전 留難 ① 為作 25/31회). 팔리 162.5는 목적을 두려움·전율·소름 돋음을 일으키고 멀리 떠남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것으로 풀어 말하나 한역은 留難 한 낱말로 접혀 있다. 為作의 為는 대상 표지로도 읽히나 본문에 목적어를 보태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5
即化作年少,容貌端正,往詣彼比丘尼所,語比丘尼言:「阿姨!欲何處去?」
곧 변화하여 젊은이가 되었는데 용모가 단정하였고, 그 비구니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 비구니에게 말하였다. 「아주머니!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주 팔리에는 마라가 젊은이로 변하는 일도 비구니와 주고받는 문답(c26.2~c28.1)도 없다(없음확인). 化作(사전 化作 ① 뒤 年少 21회). 阿姨는 어머니의 자매를 뜻하는 친족호칭이 부르는 말로 쓰인 것으로 보아 `아주머니`로 옮겼으나 사전·음의에 항목이 없어 근거가 얇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欲은 의지의 -려 하다. 마파순(젊은이)이 비구니에게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5
比丘尼答言:「賢者!到遠離處去。」
비구니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현자여! 멀리 떠남의 곳으로 갑니다.」
주 팔리 162.5와 162.6 사이에 놓일 문답이 없다(없음확인). 賢者는 호칭어로 확정역이 없다 — 사전 賢者 ① 잡아함 4회·4경 모두 발화 첫머리 4/4 — 그래서 `현자여`로 옮겼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遠離處(사전 遠離處 ① 2회)는 遠離를 `멀리 떠남`으로 옮겨 a01.1과 맞췄다. 비구니가 젊은이를 賢者라 부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162.6
時,魔波旬即說偈言:
그때 마파순이 곧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說偈言=게송을 설하여 말하다(팔리 gāthāya ajjhabhāsi). 即는 곧.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6
「世間無有出,用求遠離為,
「세간에는 벗어남이 없으니, 멀리 떠남을 구하여 무엇에 쓰겠습니까,
주 世間은 정착어(세간). 出은 팔리 nissaraṇa에 해당하며 같은 개념을 비구니는 a06.1에서 出要라 부른다. 팔리 vivekena(멀리 떠남으로)에 한역은 動詞 求를 더한다. `用求遠離為`의 為는 문말 의문 어기로 읽고 何가 빠져 있어 `무엇에 쓰겠습니까`로 옮겼다 [불확실:격·태·구문]. 無有는 존재의 부정이라 `없으니`. 마파순→비구니 존댓말.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7
還服食五欲,勿令後變悔。」
도로 오욕을 누리고, 뒷날 뉘우침이 생기게 하지 마십시오.」
주 五欲=오욕이 팔리 kāmaratiyo(감각적 욕망의 즐거움들)에 해당한다. 還은 `돌아가`와 `도리어`가 다 서므로 두 뜻을 아우르는 `도로`로 두었다. 服食=누리다. 變悔는 사전 悔 ① 앞 不變 9·生變 4·莫變 3회로 한 낱말(뉘우침)이며 팔리 pacchānutāpinī(뒤에 뉘우치는 이)에 해당한다. 勿令은 금지의 사역이라 `생기게 하지 마십시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8
時,阿臈毘比丘尼作是念:「是誰?
그때 아랍비 비구니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는 누구인가?
주 팔리 162.10은 `누가 사람이든 사람 아닌 것이든 게송을 말하는가` 한 문장인데, 한역은 是誰 / 欲恐怖我 / 為是人耶 / 為非人耶 / 姦狡人耶로 쪼개 배열한다(a03.2~a04.3).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9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0
欲恐怖我。
나를 두렵게 하려 한다.
주 팔리는 두려움을 일으키려는 마라의 의도(bhayaṃ chambhitattaṃ lomahaṃsaṃ)를 둘째 생각(마라임을 알아챈 뒤, 162.12)에서 말하나 한역은 첫 생각에 놓는다. 팔리의 세 낱말(두려움·전율·소름 돋음)이 한역에서는 恐怖 하나다. 欲은 -려 한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5.1:162.12
為非人耶?
사람 아닌 것인가?
주 非人(사전 非人 ① 30회·17경)은 문맥상 `사람 아닌 것`. 사전 ⑥ 丁福保의 천룡팔부·야차 풀이는 후대 풀이라 쓰지 않았다. 팔리 amanusso vā.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0
姦狡人耶?」
간교한 사람인가?」
주 팔리 162.10은 사람 / 사람 아닌 것 두 갈래만 묻는다. 姦狡人(간교한 사람)은 한역에만 있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162.10
心即念言:「此必惡魔欲亂我耳。」
마음으로 곧 생각하였다. 「이는 틀림없이 악마가 나를 어지럽히려는 것이다.」
주 한역이 같은 대상(마라)을 魔波旬(c21.1·c29.1·a15.1)과 惡魔(여기·a07.1·a14.1) 두 가지 한자로 쓴다. 통일하지 않고 마파순 / 악마로 옮겼다. 欲亂我: 팔리 162.12의 `두려움을 일으키고 멀리 떠남에서 물러나게 하려는`이 한역에서는 亂 하나로 나온다. 必은 뜻이 실려 `틀림없이`, 耳는 문말 어기사라 -것이다에 흡수했다. 念言(사전 念言 ① 앞 作是 5·心即 2회)=속으로 생각하여 말함.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2
覺知已,而說偈言:
알아차리고서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覺知는 팔리 viditvā에 해당하나 팔리는 `이는 마라 파피만이다`라 대상을 말하고 한역은 대상 없이 覺知已만 둔다. 覺은 정형구 행(vedanā 등)에 올라 있으나 여기서는 `알아차림`이라 정형구의 뜻이 아니다 —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而는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13
「世間有出要,我自知所得,
「세간에는 벗어남의 요체가 있고, 나는 얻은 것을 안다,
주 마라는 같은 개념(nissaraṇa)을 a01.1에서 出이라 하고 비구니는 出要라 한다 — 한역이 한자를 달리 쓴다. 出要는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고 확정역이 없어 `벗어남의 요체`로 옮겼다(사전 出要 ① 44회, 뒤 遠離 13회; ⑥ 丁福保 `出離生死之要道`는 후대 풀이로 가볍다; 전거 팔리형 Nissaraṇa, ⚠다른 부 MA의 대역)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팔리 paññāya me suphussitaṃ(지혜로 내가 잘 닿았다)의 `지혜`가 한역 我自知所得에는 없다.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고 所得은 관형절 `얻은 것`이다. 有는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팔리 atthi)라 남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4
鄙下之惡魔,汝不知其道。
비루하고 낮은 악마여, 너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
주 鄙下之惡魔는 팔리 pamattabandhu pāpima(방일한 자들의 벗이여, 악한 자여)와 호칭의 내용이 다르다 —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其道는 팔리 padaṃ(경지·자리)에 해당한다. 惡魔는 魔波旬과 다른 한자를 쓴 같은 대상이다(a04.4 참조). 비구니→마라는 평서(汝=너).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5
譬如利刀害,五欲亦如是,
비유하면 날카로운 칼이 해치는 것과 같으니, 오욕도 이와 같고,
주 팔리 sattisūlūpamā kāmā(창과 꼬챙이 같은 욕망들)에서 비유 도구가 둘인데 한역은 利刀 하나이고 害(해침)를 더한다. 亦는 `오욕도`의 조사 도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6
譬如斬肉形,苦受陰亦然。
비유하면 살의 형체를 베는 것과 같이, 괴로운 취착의 무더기도 그러하다.
주 팔리 khandhāsaṃ adhikuṭṭanā(무더기들은 그들의 도마)가 한역에서는 斬肉形 / 苦受陰으로 나뉘어 배열된다. 이문 形(大正) / 刑(宋·元·明)이 있어 저본 形을 따랐다 — 刑이면 `살을 베는 형벌`로 읽힌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苦受陰은 苦+受陰(괴로운 취착의 무더기; 受陰은 3분할·정형구 행의 upādānakkhandha)으로 읽었으나 苦受(괴로운 느낌, 사전 苦受 ① 49회)+陰으로 끊을 수도 있다 [불확실:구두·분절]. 受陰의 확정 술어는 아직 없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6
如汝向所說,服樂五欲者,
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오욕을 누리고 즐기는 것은,
주 팔리 162.17의 yaṃ tvaṃ kāmaratiṃ brūsi(네가 말하는 욕망의 즐거움)가 한역에서는 如汝向所說로 마라의 앞 말(a01~a02)을 가리킨다. 向=앞서, 所說은 관형절. 服樂=누리고 즐김, 者는 사물을 받는 `것`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7
是則不可樂,大恐怖之處。
이는 즐길 수 없고, 크게 두려운 곳이다.
주 팔리 arati mayha sā ahū(그것은 나에게 즐거움 없음이었다)는 `나에게`가 붙은 진술이고, 한역은 不可樂의 일반 진술에 大恐怖之處를 더한다. 則은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7
離一切喜樂,捨諸大闇冥,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떠나고, 여러 큰 어둠을 버리고,
주 팔리 sn5.1은 162.17 뒤에 162.18(서술문)만 있고 이 3행(a12~a14)에 해당하는 게송 행이 없다 — 한역에만 있다(팔리 22좌표를 모두 읽고 확인). 喜樂(사전 喜樂 ① 71회)은 喜+樂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풀었다(⑥ 丁福保의 따로 풀이는 후대라 가볍다). 一切=모든, 諸=여러로 구분했다. 闇冥=어둠(慧琳 0327b12가 暗·昧로 풀이).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162.17
以滅盡作證,安住離諸漏。
사라져 다함으로써 증득하여, 편안히 머물러 여러 번뇌를 떠난다,
주 以는 수단의 조사 -으로써. 滅盡은 `사라져 다함`으로 풀었다. 作證=증득하다(사전 證 ① 앞 身作 43회와 달리 身이 없다). 漏는 정형구 행(번뇌, āsava)이나 여기는 정형구 밖이라 확정역을 쓰지 않았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162.17
覺知汝惡魔,尋即自滅去。」
악마인 너를 알아차렸으니, 곧바로 사라져 가라.」
주 팔리는 알아차림(viditvā)을 게송 앞 서술(162.13)에 두나 한역은 게송 안에도 覺知를 둔다. 尋即는 즉시어 둘이 겹쳐 `곧바로`. 自滅去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명령(`사라져 가라`)으로도, 마라가 스스로 사라졌다는 서술로도 읽을 수 있어 명령으로 옮겼다 [불확실:격·태·구문]. 惡魔 / 魔波旬 흔들림은 a04.4 참조.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5.1:162.17
時,魔波旬作是念:「彼阿臈毘比丘尼已知我心。」
그때 마파순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 아랍비 비구니가 이미 내 마음을 알았다.」
주 팔리 jānāti maṃ(나를 안다)에 한역은 已知我心(이미 내 마음을 알았다)으로 心과 완료 已를 더한다. 彼=그.
니까야 대응 일부 SN 5.1:162.18
愁憂不樂,即沒不現。
근심하고 시름하여 즐겁지 않아,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愁憂不樂은 팔리 dukkhī dummano(괴로워하고 낙담한)에, 沒不現은 tatthevantaradhāyi(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에 해당한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5.1:16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