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181

SĀ 1181

교차 검사교차 검사 21현대역 준비 중

(一一八八)

(1188)

주 한문 쪽은 경 번호 「(一一八八)」뿐이고 제목어가 없다. 편자 각주(다카쿠스) 「S. 6. 1. 2. Gārava.」는 팔리 증언 sn6.2의 제목 Gāravasuttaṃ과 같은 이름이다. 후보 등급은 conflict이나, 본문(공경·존중할 대상을 찾음)은 sn6.2의 내용과 맞고, 보조 sn6.1(Brahmāyācanasuttaṃ)은 법 설하기를 청하는 내용이라 이 경 본문과 맞지 않는다. 팔리 제목은 한역에 대응어가 없어 일부(partial)로 매겼다. 저본 머리의 번호 표기가 파일마다 다르다(저본 大正 1188 · 전거 파일 머리 大正 1181).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0.3

AG:sa1181/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회). 팔리 Evaṃ me sutaṃ와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6.2:173.1

니까야 대응 같음 SN 6.1:172.1

AG:sa1181/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欝毘羅聚落尼連禪河側菩提樹下,成佛未久。

한때 부처님께서 울비라 마을의 니련선 강가 보리수 아래에 머무르셨는데, 부처님이 되신 지 오래지 않았다.

주 고유명 처리. 欝毘羅는 음역(한자 독음 「울비라」 · 팔리형 Uruvelā는 비고에만). 尼連禪은 `_한자대역_3분할` 기계 분류가 「의역」으로 되어 있으나, 음의(慧琳 勝天王般若經 0363b14 「應云尼連禪那…」)와 팔리 Nerañjarā의 대응으로 보아 소리를 옮긴 것이어서 저본을 따라 독음 「니련선」으로 적었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河는 이름 밖의 뜻이라 「강」, 側은 「강가」. 聚落은 「마을」(음의: 慧琳 0438b03 「人所居故稱聚落」). 菩提樹는 정착어 「보리수」 — 菩提는 깨달음(bodhi)을 소리로 옮긴 말, 樹는 나무라는 뜻이므로 音義合璧(3분할 표 「혼합」)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한역이 말한 「成佛未久」는 팔리 paṭhamābhisambuddho(처음 바르게 깨달으신 이)와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팔리에 있는 ajapālanigrodhamūle(염소치기 니그로다 나무 뿌리)는 한역에 없다. 팔리 uruvelāyaṃ(처격, 울웰라에)이 한역에서는 「聚落」이 덧붙은 한 이름이 되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

니까야 대응 일부 SN 6.1:172.2

AG:sa1181/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獨靜思惟,作是念:「不恭敬者,則為大苦,無有次序。

그때 세존께서 홀로 고요히 생각하시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공경하지 않는 이는 큰 괴로움이 되고, 차례가 없다.

주 獨靜思惟 ↔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홀로 있고 홀로 앉아 있는)이며 作是念 ↔ cetaso parivitakko udapādi. 「靜思惟」는 사전 靜思 ① 이 경 0321c19.1 용례(獨靜思惟)를 참고했으나 뜻은 저본에서 세웠다. 不恭敬者 則為大苦는 팔리 173.4 앞절 dukkhaṃ kho agāravo viharati(공경 없이 사는 것은 괴롭다)의 자리이다. 無有次序 ↔ appatisso는 한역이 「차례(질서)」, 팔리가 「(남을) 의지하거나 따를 데가 없음」으로 어휘가 갈린다. 則은 귀결 어미에 흡수했고 `為…所`가 아닌 단순 계사 `為`로 읽었다. 팔리 173.4의 의문절(kaṃ nu khvāhaṃ… 누구를 공경하고 의지해 지낼까)은 한역에서 0321c24.1로 옮겨 서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3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4

니까야 대응 일부 SN 6.1:172.3

AG:sa1181/0321c19.1 · 교차 검사

無他自在可畏懼者,則於大義有所退減;有所恭敬,有次序,有他自在者,得安樂住;有所恭敬,有次序,有他自在,大義滿足。

남의 자재함도, 두려워할 만한 것도 없는 이는 큰 뜻에서 물러나 줄어드는 일이 있다. 공경하는 대상이 있고, 차례가 있고, 남의 자재함이 있는 이는 안락하게 머물 수 있다. 공경하는 대상이 있고, 차례가 있고, 남의 자재함이 있으면 큰 뜻이 가득 채워진다.

주 팔리 sn6.2(173.4~173.5 사이)와 보조 sn6.1에서 이 논리(공경·차례·남의 자재함이 있으면 큰 뜻이 채워진다)에 해당하는 문장을 찾지 못했다 — 읽은 범위에서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 他自在는 사전 他自在 ③ 용례 sa41/0009c27.2 「離他自在」(남의 자재에서 벗어남)와 같은 쓰임이라 「남이 자재함 = 남의 통제·권위」로 읽었다. 전거표가 他自在에 올린 팔리 후보 [Paranimmita-]Vasavattin은 他化自在天의 약칭 쪽 대응으로, 이 자리와 뜻이 같은지 확인되지 않는다(표면 한자만 같음). 「無他自在可畏懼者」는 「無」가 他自在·可畏懼를 함께 받는 것으로 끊었다(둘 다 없는 이). 다른 끊음(남의 자재함이 있어 두려워할 만한 것이 없는 이)도 가능하여 불확실로 남긴다. 得安樂住는 가능·획득 사이에서 「머물 수 있다」로 옮겼다. 大義는 「큰 뜻」(사전 義 ① 이 경 3회; 뜻은 저본에서 세움).

AG:sa1181/0321c21.1 · 교차 검사

頗有諸天、魔、梵、沙門、婆羅門、天神、世人中,能於我所具足戒勝、三昧勝、智慧勝、解脫勝、解脫知見勝,令我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

여러 하늘, 마라, 범천, 사문, 바라문, 하늘의 신, 세상 사람 가운데 나보다 갖춘 계가 뛰어나고, 삼매가 뛰어나고, 지혜가 뛰어나고, 해탈이 뛰어나고, 해탈의 앎과 봄이 뛰어나서, 나로 하여금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게 할 수 있는 이가 있겠는가?」

주 팔리는 이 물음(173.4 kaṃ nu… 누구를 공경하고 의지해 지낼까)을 앞에 놓고, 계·삼매·지혜·해탈·해탈지견의 다섯 온(khandha)을 하나씩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다른 사문·바라문을 의지해 지내리라」(173.6·8·10·12·14)로 풀어 늘어놓는다. 한역은 다섯을 「~勝」 한 줄로 묶어 물음 한 문장에 넣었다(구조·배열, 복합어 압축은 번역기법). 팔리의 aparipuṇṇassa…pāripūriyā(채워지지 않은 것을 채우기 위해)는 한역에 없다. 具足戒는 사전 具足戒 ③이 보이는 정착어(구족계)가 아니라 여기서는 「戒를 갖춤」이어서 「갖춘 계」로 옮겼다. 다음 좌표 0321c27.1이 `戒具足`으로 어순을 바꾸어 쓴다(한자 흔들림, 어순). 於我所는 「나보다」(비교의 기준)로 읽었다 [불확실:격·태·구문]. 魔는 魔羅(māra)의 음역을 줄인 말로 정착어 「마라」, 梵은 확정 술어 梵天(범천)의 줄임으로 보아 「범천」 — 같은 개념에 梵/梵天을 번갈아 쓴다(한자 흔들림). 天神은 「하늘의 신」(뜻으로 옮김). 頗有는 의문 어미 「-는가」에 흡수했고(음의: 慧琳 0368a10 「語辭」), 能은 「-ㄹ 수 있다」 어미로 옮겼다. 解脫知見은 「해탈의 앎과 봄」으로 풀었다. 令我~는 사역.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4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6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8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0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4

AG:sa1181/0321c24.1 · 교차 검사

復作是念:「無有諸天、魔、梵、沙門、婆羅門、天神、世人能於我所戒具足勝、三昧勝、智慧勝、解脫勝、解脫知見勝,令我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者。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여러 하늘, 마라, 범천, 사문, 바라문, 하늘의 신, 세상 사람 가운데 나보다 계 갖춤이 뛰어나고, 삼매가 뛰어나고, 지혜가 뛰어나고, 해탈이 뛰어나고, 해탈의 앎과 봄이 뛰어나서, 나로 하여금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게 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주 팔리 173.7 Na kho panāhaṃ passāmi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ttanā sīlasampannataraṃ…(나보다 계를 갖춘 다른 이를 보지 못한다)가 이 자리이다. 같은 꼴이 삼매(173.9)·지혜(173.11)·해탈(173.13)에서는 sadevake loke…pe… 로 접혀 있고 해탈지견(173.15)에서 다시 전문으로 선다 — 접힌 안쪽(173.9·11·13)은 읽지 못했으므로 이 좌표의 대응 줄에 싣지 않는다. 팔리의 「천·마·범천·사문·바라문·사람의 무리(pajā)·천과 사람」 열거와 한역의 일곱 항(諸天·魔·梵·沙門·婆羅門·天神·世人)은 항목 수와 묶음이 다르다(번역기법·열거 압축). 팔리 attanā(나보다)에 해당하는 말은 한역 `於我所`로 읽었다. 앞 좌표와 달리 `戒具足勝` 어순이다(한자 흔들림). 者는 마지막 명사화(할 수 있는 이는 없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5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7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5

AG:sa1181/0321c27.1 · 교차 검사

唯有正法令我自覺,成三藐三佛陀者,我當於彼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

오직 정법만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삼먁삼불타를 이루게 하였으니, 나는 그것을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리라.

주 팔리 173.16은 「내가 깨달은 이 법(yvāyaṃ dhammo mayā abhisambuddho)」을 그대로 공경하고 의지해 지내리라는 한 문장이다. 한역은 정법이 주어가 되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令我自覺 — 사역)로 서고, 팔리의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공경하여, 무겁게 여겨, 의지하여) 셋이 한역에서는 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의 연쇄로 불어난다. 팔리 정형구의 압축/한역의 풀어 씀은 번역기법으로 본다(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님). 自覺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스스로」를 세우지 않고 사역 「깨닫게 하여」에 흡수했다(사전 自覺 ① 이 경 0322a01.1; 복합어 「自覺」의 쓰임). 三藐三佛陀는 3분할 표가 「5자 이상 — 이름인지 먼저 판별」로 보류한 낱말인데, 이름이 아니라 정각자(sammāsambuddha)를 소리로 옮긴 호칭이다. 한역자가 소리로 옮겼으므로 독음 「삼먁삼불타」로 적었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음의 인용: 慧琳 0484b18 〔音妙法蓮花經〕 「此云正等覺」, 希麟 0950a07 「正云三藐三沒駄…此云正等覺」. 전거표: 팔리 후보 Sammāsambuddha / 근대 비정 Samyaksaṁbuddha — 두 계통이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 같은 개념을 뒤 좌표들(0322a04.1 등)에서는 等正覺(확정 「바르게 깨달으신 분」)으로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한자 흔들림이다. 當(我當於彼)은 어미 「-리라」에 흡수, 於彼의 彼는 정법. 唯有의 唯는 「오직 …만이」로 세웠다(한정).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6

AG:sa1181/0322a01.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인가?

주 팔리 sn6.2(173.16~173.17 사이)에 이 자문(自問)이 없음을 확인했다. 所以者何는 「까닭이 무엇인가」(所以=까닭). 앞의 결의(0322a01.1)에 대한 이유를 묻고 다음 좌표에서 과거·미래의 부처님을 든다.

AG:sa1181/0322a03.1 · 교차 검사

過去如來、應、等正覺亦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諸當來世如來、應、等正覺亦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

과거의 여래, 공양받을 만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도 정법을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렀고, 장차 올 세상의 여러 여래, 공양받을 만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도 정법을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 것이다.」

주 같은 내용이 팔리에서는 붓다의 생각이 아니라 범천 사함파티의 말(173.22 과거, 173.23 미래)로 선다. 한역은 붓다의 생각 안에 이 이유를 넣고, 범천은 뒤에서 이를 다시 되풀이한다(0322a16.2) — 팔리의 한 번 발화가 한역에서는 두 번(붓다의 생각·범천의 말)으로 서 있다. 한역의 「如來、應、等正覺」 세 호칭은 팔리 arahanto sammāsambuddhā 둘에 如來(tathāgata)가 더해진 열거이다. 如來·等正覺은 확정 술어(「여래」·「바르게 깨달으신 분」). 應은 낱말 확정역이 없어 아라한(arahaṃ) 호칭 응공(應供)의 줄임으로 읽고 「공양받을 만한 분」으로 옮겼다(사전 應 ⑥ 후대 풀이 「又曰應供」;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 인용)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當來世의 當은 `當來`(장차 올)로 쓰인 복합어라 「마땅히」가 아니다(사전 當來 ⑥). 같은 개념을 此 좌표는 當來世, 다음 쓰임(0322a16.2)은 未來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팔리의 bhagavanto(세존들)는 한역에 없다. 而·亦는 「머물렀고 … 도」로 흡수/뜻이 실린 「도」.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2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3

AG:sa1181/0322a04.1 · 교차 검사

爾時,娑婆世界主梵天王知世尊心念已,如力士屈伸臂頃,從梵天沒,住於佛前,歎言:「善哉!如是,世尊!如是,善逝!懈怠不恭敬者,甚為大苦……」廣說乃至「大義滿足,其實無有諸天、魔、梵、沙門、婆羅門、天神、世人於世尊所戒具足勝、三昧勝、智慧勝、解脫勝、解脫知見勝,令世尊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者。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 범천왕이 세존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서, 힘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처럼 범천에서 사라져 부처님 앞에 머물러, 찬탄하여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게으르고 공경하지 않는 이는 매우 큰 괴로움이 됩니다……」 자세히 말하여 「큰 뜻이 가득 채워집니다. 실로 여러 하늘, 마라, 범천, 사문, 바라문, 하늘의 신, 세상 사람 가운데 세존보다 계 갖춤이 뛰어나고, 삼매가 뛰어나고, 지혜가 뛰어나고, 해탈이 뛰어나고, 해탈의 앎과 봄이 뛰어나서, 세존으로 하여금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게 할 이는 없습니다.

주 (1) 앞부분은 팔리와 꼴이 같다. 知世尊心念已 ↔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173.17), 如力士屈伸臂頃 ↔ 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173.18; 力士는 말라족이 아니라 「힘센 사람」), 從梵天沒 ↔ brahmaloke antarahito(173.19; 한역의 梵天은 범천의 세계를 가리키는 쓰임), 住於佛前 ↔ bhagavato purato pāturahosi(「나타났다」 대 「머물렀다」, 개별 어휘). 팔리 173.20의 한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합장한 모습은 한역에 없다. 歎言은 「찬탄하여 말하였다」로 읽었으나 탄식의 뜻도 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善哉는 감탄 어미 「-ㅂ니다!」가 진다. 如是,世尊!如是,善逝!↔ 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173.21); 善逝는 확정 「온전히 이루신 분」. (2) 이 좌표 뒤쪽이 이 경의 큰 갈림이다: 팔리에서 범천은 「그렇습니다」 다음에 곧 과거·미래 부처님 이야기(173.22~)로 들어가지만, 한역의 범천은 붓다의 생각 전체를 되풀이한다 — 「懈怠不恭敬者,甚為大苦……」廣說乃至「大義滿足」으로 접어 두고 이어 다섯 「~勝」 부정문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접힌 자리(乃至)는 접힌 대로 두었고 펴지 않았다 [생략표지] — 접힌 안쪽은 0321c19.1~0321c21.1의 붓다의 생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한문이 가리키는 범위를 말해 주지 않는다. (3) 세존/부처님 — 같은 인물을 世尊(세존)과 佛(부처님)로 번갈아 적는 한자 흔들림. (4) 이문: 이문 신고 `尊`(宋·元·明 본에 이 글자가 없음, 교감주 「〔尊〕-【三】」) — 어느 자리의 尊인지 교감주가 위치를 말하지 않는다. 저본(大正)대로 尊을 두고 옮겼다. (5) 사전 乃至 ① 후대 풀이와 廣說 용례(sa1017/0267b07.1, sa1018/0267c17.2 「如前…廣說…乃至」)를 참고했으나 이 자리에서는 접힌 범위를 정하지 않았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정착어 「사바세계」 — 堪忍(참고 견딤)의 세계라는 뜻(음의: 慧琳 0465c06 「此云堪忍」). 娑婆世界主는 「사바세계의 주인」. 梵天王은 확정 「범천」+王 → 「범천왕」. 心念은 3분할 표대로 뜻으로 「마음속 생각」. 大義는 「큰 뜻」.

니까야 대응 같음 SN 6.2:173.17

니까야 대응 같음 SN 6.2:173.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9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0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1

니까야 대응 일부 SN 6.1:172.19~172.21

AG:sa1181/0322a07.1 · 교차 검사

唯有正法,如來自悟成等正覺,則是如來所應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者。

오직 정법만이 있고, 여래가 깨달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었으니, 곧 이것이 여래가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주 팔리 sn6.2에서 범천의 말(173.21~173.24) 안에는 이 문장에 해당하는 것이 없음을 확인했다. 같은 내용은 팔리에서 붓다의 생각(173.16)에 있다 — 한역은 붓다의 생각(0322a01.1)을 범천이 다시 되풀이한다. 앞 좌표의 「我…成三藐三佛陀」가 여기서는 「如來自悟成等正覺」로 바뀌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가 선다(三藐三佛陀/等正覺 — 한자 흔들림). 自悟의 自는 대조가 없어 흡수. 成等正覺은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었다」(확정 「바르게 깨달으신 분」 + 成). 所應은 當이 아닌 應(해야 함)이 지는 관형절로 「머물러야 할 것」. 者는 문장 끝 명사화. 唯有의 有는 정법의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는 살리되, 훈독투 연결 「~이 있어」를 피해 「~만이 있고」로 이었다(교정 회전: ⓪[5] 회피목록 「이 있어」 해소).

AG:sa1181/0322a14.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까닭이 무엇입니까?

주 팔리 범천의 말(173.21~173.24)에 이 자문(自問)이 없음을 확인했다. 범천이 말하는 자리이므로 문말을 존댓말로 했다. 앞 좌표(0322a03.1)는 붓다의 생각(평서)이다.

AG:sa1181/0322a16.1 · 교차 검사

過去諸如來、應、等正覺亦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諸未來如來、應、等正覺亦當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

과거의 여러 여래, 공양받을 만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도 정법을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렀고, 미래의 여러 여래, 공양받을 만한 분, 바르게 깨달으신 분도 정법을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물 것입니다.

주 0322a04.1과 같은 내용의 되풀이로, 팔리에서는 이 한 번이 173.22~173.23(범천의 말)에 대응한다. 한역 안에서 같은 문장이 붓다의 생각(0322a04.1)과 범천의 말(여기) 두 번 서 있다. 當來世(0322a04.1)와 未來(여기) — 한자 흔들림. 應은 0322a04.1과 같이 「공양받을 만한 분」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亦當의 當은 미래 어미 「-ㄹ 것입니다」에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2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3

AG:sa1181/0322a16.2 · 교차 검사

世尊亦當於彼正法恭敬宗重,奉事供養,依彼而住。」

세존께서도 그 정법을 공경하고 우러러 존중하며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그에 의지하여 머무르셔야 합니다.」

주 팔리 173.24 Bhagavāpi, bhante, etarahi arahaṃ sammāsambuddho dhammaññeva sakkatvā garuṃ katvā upanissāya viharatū(세존께서도 지금 법을 공경하여 의지해 지내소서; 명령법)에 대응한다. 한역의 亦當은 「머물러야 한다」(당위) 또는 「머무실 것이다」(미래)로 갈려 뜻이 한 쪽으로 서지 않는다. 문맥(범천의 권유, 팔리는 명령법 viharatu)으로 「머무르셔야 합니다」를 세웠으나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불확실로 남긴다. 팔리의 arahaṃ sammāsambuddho는 한역에서 이 자리에 말해지지 않는다. 彼正法의 彼는 「그」.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4

AG:sa1181/0322a19.1 · 교차 검사

時,梵天王復說偈言:

그때 범천왕이 다시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 Idamavoca brahmā sahampati, idaṃ vatvā athāparaṃ etadavoca(범천 사함파티는 이것을 말하고, 이것을 말한 뒤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의 자리. 한역은 「復說偈言」 하나로 접혔고 「이것을 말하였다」에 해당하는 앞절은 없다. 팔리의 Sahampati는 이름이고, 한역에는 이름이 따로 서지 않고 앞서(0322a07.1) 「娑婆世界主」가 칭호로 선다. 전거표는 梵天王에 `Brahmā Sahampati`를 후보로 올렸으나 「⚠다른 부(EA)의 대역」 표지가 붙어 있어 다른 부에서 옮겨 온 대역일 수 있다 — 이 경 문맥(sn6.2)에서는 같은 인물로 읽는다. 復는 「다시」(반복). 偈는 정착어 「게송」.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5

AG:sa1181/0322a20.1 · 교차 검사

「過去等正覺,及未來諸佛,

「과거의 바르게 깨달으신 분과 미래의 여러 부처님,

주 Ye ca atītā sambuddhā, ye ca buddhā anāgatā(과거의 정각자들, 미래의 붓다들)와 같은 꼴이다. 같은 부류를 한역은 等正覺과 佛로 나누어 쓴다(팔리도 sambuddhā/buddhā로 둘을 나눈다). 等正覺은 확정 「바르게 깨달으신 분」, 佛은 확정 「부처님」. 及은 조사 「과」로 흡수, 諸는 「여러」. 게송 행을 유지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6.2:173.26

AG:sa1181/0322a22.1 · 교차 검사

現在佛世尊,能除眾生憂。

현재의 부처님 세존께서는 중생의 근심을 없앨 수 있으니,

주 Yo cetarahi sambuddho, bahūnaṃ sokanāsano(지금의 정각자, 많은 이들의 슬픔을 없애는 이)와 같은 꼴이다. 한역의 眾生(「중생」, 정착어)은 팔리 bahūnaṃ(많은 이들)과, 憂는 soka(슬픔)와 대응하나 어휘가 다르다. 佛世尊은 한 낱말로 붙어 쓰인 호칭(사전 佛世尊 ① 이 경 0322a23.1)이어서 확정 술어 둘을 이어 「부처님 세존」으로 적었다 — 佛/世尊을 같은 개념에 겹쳐 쓰는 한자 흔들림. 能은 「-ㄹ 수 있다」 어미가 진다(팔리의 -ano 행위자 명사에는 「능히」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7

AG:sa1181/0322a23.1 · 교차 검사

一切恭敬法,依正法而住;

모두가 법을 공경하고, 정법에 의지하여 머무니;

주 Sabbe saddhammagaruno, vihaṃsu viharanti ca(모두가 정법을 존중하는 이로서 머물렀고 머문다)와 대응한다. 한역은 「정법을 존중하는 이」(saddhammagaruno) 한 낱말을 恭敬法·依正法 두 구로 풀었고, 과거·현재(vihaṃsu viharanti)의 시제 표지가 없다. 一切恭敬法은 「모두가 법을 공경한다」(一切=주어)와 「일체의 공경하는 법」(법을 꾸밈)으로 끊을 수 있다. 팔리의 sabbe(모두)가 사람을 가리키는 점과 다음 구 「如是恭敬者」가 사람을 받는 점으로 앞의 읽음을 세웠으나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불확실로 남긴다. 而는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8

AG:sa1181/0322a24.1 · 교차 검사

如是恭敬者,是則諸佛法。」

이처럼 공경하는 이,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법이다.」

주 Tathāpi viharissanti, esā buddhāna dhammatā(그렇게 앞으로도 머물 것이다, 이것이 붓다들의 법칙이다)와 맞닿는다. 是則諸佛法 ↔ esā buddhāna dhammatā(「법칙·본성」)이나 한역은 「法」으로 적고 「앞으로도 머문다」(viharissanti)는 한역에 없다. 팔리에는 Tasmā hi attakāmena, mahattamabhikaṅkhatā; Saddhammo garukātabbo, saraṃ buddhāna sāsananti(그러므로 자신을 위하는 이, 큰 것을 바라는 이는 정법을 존중해야 한다, 붓다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며)의 끝 게송 둘(173.30~173.31)이 더 있으나 한역 게송은 이 네 행에서 끝난다 — 읽은 범위에서 없음이 확인된다. 如是는 「이처럼」, 是則의 則은 판단의 「곧」(귀결 어미로 흡수되지 않음), 諸는 「모든」. 者는 「이」.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29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6.2:173.30~173.31

AG:sa1181/0322a25.1 · 교차 검사

時,梵天王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범천왕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sn6.2는 게송(173.31)에서 끝나고 맺음 문장이 없음을 확인했다. 보조 sn6.1의 끝(172.50: 「세존께 인사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그곳에서 사라졌다」)은 稽首佛足·即沒不現과 겹치나 다른 경의 끝이라 partial로만 매겼다. 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은 이 아함의 맺음 정형이다(사전 歡喜·隨喜·稽首·即 ①: 이 아함에서 歡喜隨喜 335회 등). 稽首는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음의: 慧琳 0600c02 「首至地」).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 다만 이 경의 한역에는 붓다가 소리 내어 말한 대목이 없어 所說이 가리키는 범위는 저본이 말하지 않는다. 같은 인물을 앞 좌표들에서는 世尊, 여기서는 佛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SN 6.1:172.50

AG:sa1181/0322a26.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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