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182

SĀ 1182

교차 검사교차 검사 26현대역 준비 중

(一一八九)

(1189)

주 한문 저본의 제목 자리는 경 번호뿐이다. 팔리는 경 이름(Brahmasuttaṃ)을 싣는다. 교감주 「S. 47. 18. Brahmā.」는 大正藏 편자가 단 대조 표지이며 저본이 아니다. 이 경은 투입물에 산스크리트 증언이 없어 팔리 항만 단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0.3

AG:sa1182/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투입된 팔리 sn47.18 전문에서 개경부(384.1)는 「Ekaṃ samayaṃ」으로 곧장 시작하며 「Evaṃ me sutaṃ」이 없다. 팔리 쪽에 개경 정형구가 없음을 읽어 확인했으므로 absent다. 앵커 如×1은 「~같이」(如是의 구성소)로 흡수하지 않고 정형구 「이와 같이」로 옮겼다. 사전 「如是我聞」 ②의 정렬(sa1/0.2 ↔ sn22.12/12.1 [equivalent] 등)은 다른 경의 용례이며 이 경의 증언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1

AG:sa1182/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欝毘羅聚落尼連禪河側菩提樹下,成佛未久。

한때 부처님께서 울비라 마을 니련선강 가의 보리수 아래에 머무르시며, 부처님이 되신 지 오래되지 않았다.

주 一時=ekaṃ samayaṃ, 佛住=bhagavā viharati, 欝毘羅=uruvelāyaṃ, 河側=najjā nerañjarāya tīre, 成佛未久=paṭhamābhisambuddho로 대응한다. 갈리는 곳은 나무 이름이다. 한문은 菩提樹이고 팔리는 ajapālanigrodhe(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다. 한역을 팔리형으로 바꾸지 않았다. 확정 술어: 佛=부처님[구속]은 成佛의 佛에도 그대로 적용했다(저본 6회). 유형 판별: 欝毘羅는 3분할 표가 음역으로 올렸고 전거가 Uruvelā를 든다(음역, 울비라). 尼連禪은 표가 의역(Nerañjarā, 3:4)으로 분류했으나 한자가 팔리 음절과 소리로 맞고 玄應 음의가 「應云尼連禪那」로 음역형을 밝히므로 음역으로 보아 독음(니련선)을 썼다. 음의 玄應·慧琳 0363b14 〔勝天王般若經〕은 같은 이름에 「不樂著河」라는 뜻풀이를 단다(인용만 하고 본문에 들이지 않음). 전거 尼連禪 ↔ Nerañjarā는 ⚠다른 부(DA)의 대역이다. 聚落은 음의 慧琳 0438b03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小鄉日聚 人所居故稱聚落」에 기대어 뜻으로 「마을」이라 했다. 菩提樹는 정착어다. 표가 菩提를 혼합(Bhaddiya)으로 올렸으나 Bhaddiya와는 소리가 맞지 않는 기계 오분류로 보이며, 저본 문맥(成佛 직후의 나무)에서 菩提=bodhi 음역+樹 의역의 음의합벽 곧 「보리수」(깨달음의 나무라는 뜻)로 읽었다. 전거 菩提樹는 근대 비정 Bodhidruma만 든다. 欝毘羅聚落 안에서 欝毘羅는 지명, 聚落은 보통명사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1

AG:sa1182/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獨靜思惟,作是念:「有一乘道能淨眾生,度諸憂悲,滅除苦惱,得真如法,謂四念處。

그때 세존께서 홀로 고요히 생각하시며 이런 생각을 하셨다. “한 수레의 길이 중생을 맑힐 수 있고, 근심과 슬픔을 건너고, 괴로움과 번민을 없애며, 진여의 법을 얻으니, 이른바 사념처이다.

주 대응은 384.2(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 cetaso parivitakko udapādi) ↔ 獨靜思惟 作是念, 384.3 ↔ 有一乘道…謂四念處, 384.4(cattāro satipaṭṭhānā)다. 갈리는 점: (가) 한문 一乘道가 팔리 ekāyano maggo다. 한문은 乘(수레)을 쓰므로 직역하고, 뒤 게송 乘斯道·乘此度와 같은 어형으로 맞추려 「수레」를 택했다. 「하나로 가는 길」로 읽을 여지가 남아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단다(사전 一乘 ① 17회·6경 모두 淨眾生 앞뒤 정형구). (나) 팔리의 nibbānassa sacchikiriyāya(열반의 실현)에 해당하는 말이 한문에 없고, 한문의 得真如法이 ñāyassa adhigamāya와 맞닿는다. 真如는 정착어(진여)이며 사전 真如 ① 7회·5경이고 이 경 말고는 득진여법 정형구로만 나온다. 대응어는 단정하지 않는다. (다) 팔리의 sattānaṃ visuddhiyā(중생의 청정)는 能淨眾生이고, sokaparidevānaṃ samatikkamāya는 度諸憂悲, dukkh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ya는 滅除苦惱다. 한문 동사들의 주어가 一乘道인지 중생인지 한문 자체로는 열려 있으나, 팔리 구조와 같은 줄이므로 一乘道를 주어로 읽었다(증언에서 들인 것이 아니라 能 앞의 주어가 이어진다는 문법 판단). 有는 존재 서술을 한국어 주어(「~이」)로 흡수했다. 能은 「-ㄹ 수 있다」, 度는 「건너고」로 옮겼다. 四念處는 정착어(사념처)이며 뜻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으로 팔리 cattāro satipaṭṭhānā에 해당한다(표가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念處는 뜻을 옮긴 한역이다). 世尊=세존[구속]. 爾時獨靜思惟의 思惟는 3분할 표가 의역으로 올린 것이 맞아 뜻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384.4

AG:sa1182/0322a29.1 · 교차 검사

何等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Katame cattāro?와 같다. 何等은 「무엇」, 為는 서술어 노릇(계사)이라 피동(為…所)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7.18:384.5

AG:sa1182/0322b02.1 · 교차 검사

身身觀念處,受、心、法法觀念處。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념처, 느낌·마음·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념처이다.

주 팔리 384.6은 kāye vā bhikkhu kāyānupassī vihareyya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까지 풀어 쓴다. 한문은 身身觀念處로 압축하고 ātāpī…domanassaṃ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다. 또 受、心、法法觀念處는 한문이 受·心 뒤의 반복(受受觀·心心觀)을 접은 것으로, 팔리 384.7의 vedanāsu vā…pe… citte vā…pe… dhammesu vā…와 맞서는 자리다. 이 접힘의 안쪽은 팔리 쪽이 …pe…로 접어 둔 자리이므로 그 안쪽 대응은 읽을 수 없다(unaligned에 해당). 본문은 한문의 압축 그대로 두었고 「受·心·法」을 각각 법법관처럼 읽을지 법만 읽을지는 구두·분절 불확실로 남긴다. 觀念處=사전 觀念 ① 109회·42경(앞 「身身」 54회 · 「法法」 43회). 念處는 정착어(념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6~384.7

AG:sa1182/0322b03.1 · 교차 검사

若有人不樂四念處者,則不樂如聖法;不樂如聖法者,則不樂如聖道;不樂如聖道者,則不樂甘露法;不樂甘露法者,則不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어떤 사람이 사념처를 즐기지 않으면 성스러운 법과 같은 것을 즐기지 않고; 성스러운 법과 같은 것을 즐기지 않는 이는 성스러운 길과 같은 것을 즐기지 않으며; 성스러운 길과 같은 것을 즐기지 않는 이는 감로의 법을 즐기지 않고; 감로의 법을 즐기지 않는 이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주 팔리 384.8~384.9는 같은 자리에서 「ekāyano ayaṃ maggo … cattāro satipaṭṭhānā」를 되풀이해 맺는다. 한문은 같은 자리에 「四念處를 즐기지 않으면 …」의 사슬 조건문을 두며, 팔리 전문에 이 사슬이 없다(…pe… 접힘 밖이므로 absent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는 divergent로 판정). 사전 聖道 ②에 [AI 정렬] sa533/0139a23.1 ↔ PN:sn52.2/900.3 [partial] 「yesaṃ kesañci cattāro satipaṭṭhānā viraddhā, viraddho tesaṃ ariyo maggo」가 있어 같은 사슬이 다른 팔리 경에 걸릴 가능성이 있으나, 이 경의 투입 팔리에는 없으므로 대응으로 잡지 않는다. 불확실: 如聖法·如聖道의 如가 「~와 같은 것」(비유)인지 「~에 맞는 것(如法)」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가장 축자인 「같은 것」으로 두었다. 앵커 如×4는 비유·가정 표시. 若은 「-면」, 則은 귀결에 흡수, 者는 「~하는 이」로 옮겼다. 聖法·聖道는 사전상 聖法 ① 32회·14경, 聖道 ① 23회·7경이며 확정 술어는 없다. 甘露法은 정착어(감로)이며 한자는 「단 이슬」을 뜻하는 의역이고 전거는 Amata를 든다(표는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甘露는 뜻 옮김). 不解脫은 해탈하지 못한다(사전 不解 ① 61회·30경). 生老病死憂悲惱苦는 [정형구 행]의 生을 확정역으로 쓰지 않고 「태어남」으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18:384.8~384.9

AG:sa1182/0322b03.2 · 교차 검사

若樂修四念處者,則樂修如聖法;樂修如聖法者,則樂如聖道;樂如聖道者,則樂甘露法;樂甘露法者,得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사념처를 즐겨 닦으면 성스러운 법과 같은 것을 즐겨 닦고; 성스러운 법과 같은 것을 즐겨 닦는 이는 성스러운 길과 같은 것을 즐기며; 성스러운 길과 같은 것을 즐기는 이는 감로의 법을 즐기고; 감로의 법을 즐기는 이는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을 얻는다.”

주 앞 좌표(0322b03.2)의 반대 방향 사슬이다. 팔리 대응 판정은 앞 좌표와 같다. 한문에서 樂修(즐겨 닦다)와 樂(즐기다)가 섞이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사전 樂修 ① 11회·6경). 得은 「가능·획득」 중 획득으로 읽어 「해탈을 얻는다」로 옮겼고, 앞 좌표의 不解脫과 짝이다. 이 좌표 끝의 따옴표는 a29.1에서 연 부처님 생각의 인용을 닫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7.18:384.8~384.9

AG:sa1182/0322b07.1 · 교차 검사

爾時,娑婆世界主梵天王知佛心念已,譬如力士屈伸臂頃,於梵天沒,住於佛前,作是歎言:「如是,世尊!如是,善逝!有一乘道能淨眾生,謂四念處,乃至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왕이 부처님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나서, 마치 힘센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처럼, 범천에서 사라져 부처님 앞에 머물러 이렇게 감탄하며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한 수레의 길이 중생을 맑힐 수 있습니다. 이른바 사념처이니, 내지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에서 해탈합니다.”

주 대응: 知佛心念已=bhagavato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384.10), 譬如力士屈伸臂頃=seyyathāpi nāma balavā puriso samiñjitaṃ vā bāhaṃ pasāreyya…(384.11), 於梵天沒=brahmaloke antarahito(384.12), 住於佛前=bhagavato purato pāturahosi(384.12), 如是世尊 如是善逝=evametaṃ bhagavā evametaṃ sugata(384.14, equivalent), 有一乘道…謂四念處=384.15~384.16. 갈림: (가) 팔리 384.13(한쪽 어깨에 윗옷을 걸치고 합장하여 …)에 해당하는 말이 한문에 없다. 한문 끝의 稽首는 이 자리가 아니라 c02.1이다. (나) 팔리 384.17~384.21은 사념처의 정의와 맺음을 되풀이한다. 한문은 乃至로 접었다.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이므로 펴지 않았다 [생략표지]. (다) 팔리는 brahmā sahampati이고 한문은 娑婆世界主梵天王이다. 娑婆(사바)는 음의 慧琳 0482c22·0465c06이 「堪忍」으로 풀이하며(인용) 한문은 「사바 세계의 주인」으로 한 이름을 풀어 옮겼다. 전거 梵天王 ↔ Brahmā Sahampati(⚠다른 부(EA)의 대역). 판정하지 않는다. 사바세계는 정착어이며 뜻은 「(사바=감인) 세계」다. 梵天王은 3분할 표가 음역(Brahmā)으로 올렸으므로 독음을 쓰되 梵天=범천[구속]을 안에 두어 「범천왕」으로 적었다. (라) 於梵天沒의 梵天은 앞 구속 梵天(brahmā 신)과 달리 거주처(brahmaloka)를 가리켜 보인다. 확정 문자열을 바꾸지 않고 「범천」으로 두며 [불확실:확정역_오적중]. (마) 力士는 사전 力士 ③ 용례 「譬如多力士夫」(힘센 사람)에 기대어 「힘센 장사」로 풀었다(음독 역사 금지). 屈伸臂頃은 팔을 굽혔다 펴는 짧은 사이다. 팔리는 펴고 굽히는 순서(samiñjitaṃ…pasāreyya, pasāritaṃ…samiñjeyya)가 둘 다 나오고 한문은 한 번이다 [번역기법]. 心念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올려 뜻으로 옮겼다. 住於佛前의 住는 「머물러」로 두었다. 善逝=온전히 이루신 분[구속](호칭, 합쇼체 존대 맥락). 世尊=세존[구속]. 화자는 범천이고 청자는 부처님이므로 합쇼체로 통일했다. 앵커: 有는 「~이」로 흡수, 能은 「-ㄹ 수 있다」, 於는 처소 조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10~384.21

AG:sa1182/0322b10.1 · 교차 검사

時,梵天王復說偈言:

그때 범천왕이 다시 게송을 읊어 말하였다.

주 팔리 384.22(Idamavoca brahmā sahampati)와 384.23(Idaṃ vatvā athāparaṃ etadavoca)이 한문 復說偈言에 맞닿는다. 팔리의 앞 문장(앞 말씀을 마쳤다는 맺음)은 한문에 따로 없다. 復는 「다시」(앞 발화에 이어 게송을 더하는 뜻이 실림). 偈는 정착어(게송).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2~384.23

AG:sa1182/0322b14.1 · 교차 검사

「謂有一乘道,見生諸有邊,

“한 수레의 길이 있다고 이르고, 태어남과 여러 존재의 끝을 보아,

주 팔리 384.24의 ekāyanaṃ jātikhayantadassī(한 갈래 길 / 태어남이 다하는 끝을 보는 이)에 맞닿는다. 한문은 見生諸有邊(태어남과 여러 존재의 끝을 봄)이며 jātikhaya(태어남의 다함)와 한자가 다르다. 謂는 「이르다」로 풀었다. 이 게송 줄의 주어는 한문에 없다. 팔리는 jātikhayantadassī(보는 이)가 붓다이므로 문맥상 부처님이지만, 한문 본문에서는 주어를 세우지 않고 어미를 중립(-고, -아)으로 두었다. 諸有는 사전 諸有 ① 115회·82경에서 「존재들」의 결박(諸有結)에 걸리는 낱말이다. 有를 「존재」로 풀었고 확정 술어는 아니다. 生諸有가 「생과 여러 존재」인지 「태어나는 여러 존재」인지는 갈린다. 앵커 諸×1·有×2는 복수·존재 표시. 게송은 줄을 유지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4

AG:sa1182/0322b16.1 · 교차 검사

演說於正法,安慰苦眾生。

바른 법을 연설하여 괴로운 중생을 위로합니다.

주 팔리 maggaṃ pajānāti(길을 안다)에 演說於正法이, hitānukampī(이로움을 위해 연민하는 이)에 安慰苦眾生이 맞닿는다. 한문은 길을 「안다」가 아니라 법을 「연설한다(演說)」고 말하므로 동사가 갈린다. 正法은 「바른 법」으로 풀었고(사전 正法 ① 265회·103경), 苦는 「괴로운」,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게송 두 줄 뒤에 종결어미를 둔 것은 범천의 존대 화법에 맞춘 것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4

AG:sa1182/0322b17.1 · 교차 검사

過去諸世尊,以乘斯道度;

과거의 세존들께서 이 길을 타고 건너셨고;

주 팔리 etena maggena tariṃsu pubbe(옛날에 이 길로 건넜다)에 맞닿는다. 한문은 以乘斯道度이며 「길을 탄다(乘)」는 은유가 있고 팔리는 maggena(길로)다. 乘은 앞 一乘道에서와 같은 「수레/타다」로 맞추었다. 以는 수단 조사 「-로써」를 동사 「타고」에 흡수했다. 過去는 「과거」(사전 過去 ① 281회·151경), 諸는 복수라 「들」로 흡수했다. 世尊=세존[구속]. 팔리는 과거 붓다를 가리키는 말을 이 줄에 두지 않는다(pubbe=이전에). 한문은 諸世尊(여러 세존)이 주어를 보탠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5

AG:sa1182/0322b18.1 · 교차 검사

當來諸世尊,亦度乘斯道。

장차 올 세존들께서도 또한 건너시리니, 이 길을 타고서이다.

주 팔리 tarissanti(장차 건널 것이다)에 맞닿는다. 大正은 度乘斯道이며 宋·元·明은 乘度斯道다(이문 app_id 0322003, 교감주 「度乘=乘度【三】」). 본문은 大正 읽기(度乘)를 따랐다. 乘度였다면 「이 길을 타고 건너시리니」로 읽혔을 자리다. 當來는 「장차 올」(사전 當來 ① 60회·34경), 앵커 當은 「-ㄹ 것」이 지는 자리라 부사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亦은 앞 줄(過去)과의 병렬에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世尊=세존[구속].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5

AG:sa1182/0322b19.1 · 교차 검사

現在尊正覺,乘此度海流,

지금의 존귀한 정각께서 이것을 타고 바다의 흐름을 건너,

주 팔리 taranti oghaṃ(홍수를 건너는 이들)에 乘此度海流가 맞닿는다. 팔리의 홍수(ogha)가 한문에서는 海流(바다의 흐름)다. 現在尊正覺은 팔리에서 ye ca taranti(지금 건너는 이들)에 해당하는 자리이며, 한문은 「正覺」으로 지금의 붓다를 가리킨다. 正覺은 사전 正覺 ① 56회·42경에서 붓다의 지칭·지혜 양쪽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존귀한 정각(을 이루신 분)」으로 읽을지 「정각」만 쓰는지 한문 하나로는 서지 않아 [불확실:다의어_판별]을 남긴다. 現在는 「지금」, 尊은 「존귀한」으로 풀었다. 海流는 3분할 표에 없고 사전에도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7.18:384.25

AG:sa1182/0322b20.1 · 교차 검사

究竟生死際,調伏心清淨,

생사의 끝에 끝까지 이르고, 마음을 조복하여 청정하게 하며,

주 팔리 sn47.18은 384.25에서 게송을 맺고 384.26(aṭṭhamaṃ)으로 끝나며, 이 줄부터 c01.1까지에 맞는 문장이 투입된 팔리 전문에 없다. …pe… 접힘이 이 자리에 걸리지 않으므로 absent다. 究竟은 동사로 「끝까지 이르다」로 풀었고(사전 究竟 ① 184회·98경), 生死際는 이 경에서만 나오는 낱말(사전 生死際 1회·1경)이며 「생사의 끝」으로 풀었다. 調伏은 정착어(조복)의 풀이로 「마음을 조복하여」, 清淨은 3분할 표 의역이라 뜻 쪽(청정)을 따른다. 心이 목적어인지 주어인지(마음이 조복되어 청정함) 한문만으로 갈려 목적어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1.1 · 교차 검사

於生死輪轉,悉已永消盡;

생사의 바퀴 돎은 모두 이미 영원히 사라져 다하고;

주 팔리 대응 없음(앞 좌표와 같은 판정). 生死輪轉의 轉은 「돎」(사전 轉 ① 277회·113경에서 起·向 두 갈래)이고, 사전 生死輪 ① 15회·7경 중 迴·輪迴 용례를 참고했다. 於는 처소 조사이나 한국어에서 주제 조사 「은」으로 흡수했다. 悉已永消盡의 悉·已·永는 각각 「모두 · 이미 · 영원히」로 뜻이 실려 부사를 세웠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2.1 · 교차 검사

知種種諸界,慧眼顯正道。

갖가지 계를 알고, 지혜의 눈으로 바른 길을 드러냅니다.

주 팔리 대응 없음. 種種諸界의 界는 사전 界 ① 296회·57경(앞 「種種」 47회)의 용례를 따라 「계」(정착형)로 옮겼다. 諸는 복수로 흡수했다. 慧眼은 「지혜의 눈」으로 풀었다(오안의 하나로 쓰이는 정착어 혜안과 같은 말이나 뜻을 살렸다). 顯正道는 「바른 길을 드러낸다」이며 사전 顯正 ① 3회·3경(顯正法)이다. 앞 줄들의 끝을 이어 이 줄에서 종결어미를 두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3.1 · 교차 검사

譬若恒水流,悉歸趣大海,

마치 항하의 물 흐름이 모두 큰 바다로 돌아가 나아가듯이,

주 팔리 대응 없음. 譬若는 앵커가 若을 [가정] 「-면」으로 표시했지만 여기서는 譬如와 같은 비유 표지(마치 ~같이)라 「-면」이 아니다. 恒水流는 3분할 표가 의역(Gaṅga, 3:2)으로 올렸으나 恒은 Gaṅgā의 음역이고 水는 뜻이다(음의합벽). 한문은 河 없이 恒水라 쓰며, 정착형은 「항하」다. 정착형 「항하」를 쓰되 한문에 河가 없다는 점을 여기 밝히고 유형 판별 불확실을 남긴다. 전거 恒水流 ↔ Gaṅga(팔리형)를 든다. 悉歸趣大海는 「모두 큰 바다로 돌아가 나아가다」(歸趣; 사전 趣 ① 135회·64경). 大海는 「큰 바다」(사전 大海 ① 32회·21경).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4.1 · 교차 검사

激流浚漂遠,正道亦如是。

세찬 흐름이 깊이 흘러 멀리 떠가니, 바른 길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주 팔리 대응 없음. 激流는 사전 激流 1회·1경이고 음의 慧琳 0676a18 〔正法念經七十卷〕이 「謂流急也 …邪疾急曰激也」로 물살이 급함을 풀었다(인용). 浚漂遠에서 浚(깊게 파다/치다)와 漂遠(떠서 멀리 가다)의 연결이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깊이 흘러 멀리 떠가니」는 가장 축자인 읽기이며 [불확실:뜻_판별불가]를 남긴다. 正道亦如是의 亦은 앞 비유와 병렬하는 자리에 뜻이 실려 「또한」, 如是는 「이와 같다」로 두었다. 正道는 사전 正道 ① 18회·15경이며 「바른 길」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5.1 · 교차 검사

廣智善顯示,逮得甘露法,

넓은 지혜가 잘 드러내 보이고, 감로의 법에 이르러 얻어,

주 팔리 대응 없음. 廣智는 사전 廣智 ① 5회·4경에서 廣智慧의 줄임말로 쓰이는 일이 많다. 여기서 사람(넓은 지혜를 가진 분)인지 수단(넓은 지혜)인지 한문에 조사가 없어 주어로 읽었다. 逮得은 음의 慧琳 0327c07 〔大般若波羅蜜多經〕이 「逮及也」(미치다)로 풀며(인용), 사전 逮得 ① 115회·104경(뒤 「般涅」 73회 · 「己利」 16회)에서 「이르러 얻다」다. 甘露法=감로의 법(정착어). 善은 「잘」, 顯示는 「드러내 보이다」(사전 顯示 ① 19회·13경).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6.1 · 교차 검사

殊勝正法輪,本所未曾聞,

뛰어난 바른 법의 바퀴, 본래 일찍이 들은 적 없는 것을,

주 팔리 대응 없음. 殊勝은 3분할 표가 의역(Saviṭṭha, 2:3)으로 올렸으나 Saviṭṭha는 고유명이라 이 자리에 맞지 않는다. 한자 뜻을 따라 「뛰어난」으로 옮겼다(표는 기계 1차 분류이고 저본이 이긴다). 正法輪은 「바른 법의 바퀴」(사전 正法輪 2회·2경). 所未曾聞은 앵커대로 「~하는 바」를 쓰지 않고 관형절 「들은 적 없는」으로 풀었다. 本은 「본래」, 未曾은 「일찍이 ~한 적 없다」다. 이 줄과 다음 줄(轉)은 한 문장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7.1 · 교차 검사

哀愍眾生故,而為眾生轉。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까닭에 중생을 위하여 굴립니다.

주 팔리 대응 없음. 哀愍은 「가엾이 여기다」(사전 哀愍 ① 63회·41경, 뒤 「故」 19회). 같은 형태 以哀愍故는 사전 哀愍 ③ 용례 sa1016/0266c14.1 · sa1018/0267c14.1에 있다. 為眾生轉의 為는 「위하여」(…所 구조가 없어 피동이 아니다),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轉은 「굴리다」로 두었다(법륜 굴림). 앞 줄의 목적어 「정법륜」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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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1182/0322b28.1 · 교차 검사

覆護天人眾,令度有彼岸,

천신과 사람의 무리를 덮어 보호하여, 존재의 저 언덕을 건너게 하니,

주 팔리 대응 없음. 覆護는 「덮어 보호하다」(사전 覆 ① 80회, 護 ① 207회). 天人은 사전 天人 ① 42회·34경(앞 「七有」 25회 · 뒤 「往生」 22회)에서 「천신과 사람」이다. 후대 丁福保의 풀이(사전 天人 ⑥)도 天與人이나 가장 가벼운 칸이라 참고만 한다. 令度有彼岸에서 有가 앞 度의 목적어 「존재」인지(존재의 저 언덕) 앞 구절에 속하는지 갈려 [불확실:구두·분절]을 단다. 앵커 令은 「-게 하다」, 有는 존재 서술이나 이 자리에서는 「존재(bhava)」의 뜻이 실린 것으로 읽었다. 사전 彼岸 ① 78회·30경(度彼岸 용례), 度는 「건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b29.1 · 교차 검사

是故諸眾生,咸皆稽首禮。」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절합니다.”

주 팔리 대응 없음. 是故는 「그러므로」, 諸는 「모든」, 咸皆는 같은 뜻의 두 글자 연용이라 「모두」로 한 번만 옮겼다. 稽首는 음의 慧琳 0600c02 〔明度經〕·0698c05 〔四分律〕이 「首至地也」로 풀며(인용), 「머리를 조아려」로 옮겼다. 이 좌표 끝의 따옴표는 b10.1에서 연 범천 발화의 인용을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5

AG:sa1182/0322c01.1 · 교차 검사

爾時,梵天王聞佛所說,歡喜隨喜,稽首佛足,即沒不現。

그때 범천왕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sn47.18은 384.26(aṭṭhamaṃ, 「제8경」 맺음 표지)으로 끝나며 이 맺음(듣고 기뻐함·절·사라짐)에 맞는 문장이 없다. 이문: 爾에 대해 宋·元·明이 글자 없음(app_id 0322004, 교감주 「〔爾〕-【三】」). 본문은 大正 읽기(爾時)를 따랐다. 歡喜隨喜는 사전 歡喜 ① 1340회·1164경(앞 「所說」 1151회 · 뒤 「奉行」 829회 · 「隨喜」 335회)의 짝 자리로, 이 경은 奉行 없이 隨喜로 이어진다. 隨喜 ① 397회·340경이다. 한 낱말로 「기뻐하고 따라 기뻐한다」로 옮겨 두 글자를 모두 살렸다(음의 歡喜 慧琳 0753a01 「悅也」 인용). 聞佛所說의 所는 「~하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 「설하신 것」이다. 稽首佛足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다」를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로 옮겼다. 即은 「곧」, 沒不現은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다. 梵天王=범천왕(梵天=범천[구속]), 佛=부처님[구속].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7.18:384.26

AG:sa1182/0322c02.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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