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八四)
(1184)
주 한역 제목 자리는 경 번호뿐이고 팔리 제목 자리는 경 이름(Sundarikasutta)을 단다 — 일부. 교감주 「S. 7. 1. 9. Sundarika.」는 PTS 체계로 상윳따 7 · 품 1 · 경 9, 곧 우리 PN의 sn7.9를 가리킨다. 보조 증언 sn7.1(Dhanañjānīsutta)은 이 각주의 「7. 1」까지만 읽어 생긴 번호로 보인다 — 내용(왕사성 죽림, 다난자니 바라문녀)도 이 경과 대응하지 않으므로 PN:sn7.1에 (이의)를 단다. 각주 번호 해석이 맞는지는 정도평 님 확인 몫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0.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1: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7.9에는 개경 정형구가 없다(품 첫 경 sn7.1/187.1에만 「Evaṃ me sutaṃ」이 선다 — 팔리 편집상 품 안 둘째 경부터 생략한 것). 한역에는 있다 —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9:195.1
一時,佛在拘薩羅人間遊行,宿於孫陀利河側。
한때 부처님께서 구살라의 사람들 사이를 유행하시다가, 손타리 강가에서 묵으셨다.
주 拘薩羅·孫陀利는 음역 — 한자 독음 「구살라」「손타리」로 적는다(팔리형 Kosala · Sundarikā, 대정 대역주 0320005·0320006). 팔리는 「꼬살라에서 순다리까 강 언덕에 머무신다(viharati)」로 머묾만 말하고, 한역은 「人間遊行」(유행)과 「宿」(묵음)을 함께 말한다 — 일부. 人間은 「사람들 사이(마을 지역)」로 옮겼다(사전 人間 ① 뒤: 遊行 82).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1
爾時,世尊剃髮未久,於後夜時,結跏趺坐,正身思惟,繫念在前,以衣覆頭。
그때 세존께서는 머리를 깎으신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밤의 뒷부분에 가부좌를 맺고 앉아 몸을 바르게 하고 사유하며, 생각을 앞에 매어 두고, 옷으로 머리를 덮고 계셨다.
주 팔리는 이 장면을 바라문의 눈으로(195.5 「어떤 나무 아래 머리까지 덮고 앉아 계신 세존을 보았다」) 서술하고, 한역은 서술자가 먼저 세운다 — 자리가 다르다. 「剃髮未久」(머리 깎은 지 오래지 않음)·「後夜」·「結跏趺坐」·「正身思惟」·「繫念在前」은 팔리에 없고 「나무 아래(rukkhamūle)」는 한역에 없다. 以衣覆頭 ↔ sasīsaṃ pārutaṃ. 後夜는 밤을 셋으로 나눈 마지막 부분(사전 後夜 ⑥ 「夜間區分初中後三時」 — 후대 칸이라 참고만).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
時,孫陀利河側有婆羅門住止,夜起持祠,餘食不盡,時至河邊,欲求大德婆羅門以奉之。
그때 손타리 강가에 한 바라문이 머물고 있었는데, 밤에 일어나 제사를 받들고 나서 남은 음식이 다하지 않자, 때가 되어 강가에 이르러 덕이 큰 바라문을 찾아 그것을 바치고자 하였다.
주 팔리는 바라문 이름을 순다리까바라드와자(Sundarikabhāradvāja)로 밝히지만 한역은 이름 없이 「孫陀利河側婆羅門」(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이라 부른다 — 이 경 내내 같다. 팔리 195.2–195.3은 「불에 헌공하고 아그니호뜨라를 받들고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195.4는 「누가 이 헌공하고 남은 것을 먹을까?」라는 막연한 물음인데,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덕이 큰 바라문을 찾아 바치려 했다」로 대상을 바라문으로 좁힌다 — 엇갈림. 大德은 여기서 이름이 아니라 「덕이 큰」이라는 수식이다(전거의 Yaññadatta 대역은 ⚠다른 부(DA) 동형이의 — 이 자리에 서지 않는다). 이문: 「時至河邊」의 時가 송·원·명본에는 持 — 그 읽기면 「(음식을) 가지고 강가에 이르러」가 된다. 대정본대로 옮겼다. 持祠는 「제사를 받들다」로 옮겼다(팔리 aggihuttaṃ paricarati와 뜻이 닿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4
爾時,世尊聞河邊婆羅門聲。
그때 세존께서는 강가에서 바라문의 소리를 들으셨다.
주 팔리는 이 앞(195.6)에 바라문이 왼손에 헌공 나머지, 오른손에 물병을 들고 세존께 다가가는 장면이 있으나 한역에는 없다. 팔리 195.7은 「바라문의 발소리(padasadda)에」인데, 이문 「門+行」(송·원·명본: 婆羅門行聲 「바라문이 걸어오는 소리」)이 팔리의 발소리와 더 가깝다 — 관찰만 적고 대정본대로 「바라문의 소리」로 옮겼다. 河邊은 「강가에서」로 소리가 난 자리로 읽었다(「강가의 바라문」으로도 끊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7
聞已,謦咳作聲,却衣現頭。
듣고 나서 헛기침하여 소리를 내고, 옷을 걷어 머리를 드러내셨다.
주 却衣現頭 ↔ sīsaṃ vivari(머리를 드러냈다). 「謦咳作聲」(헛기침하여 소리를 냄)은 팔리에 없다. 謦咳는 음의(慧琳 0727b18)·사전 ⑥에서 가벼운 기침으로 풀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7
時,孫陀利河側婆羅門見佛已,作是念:「是剃頭沙門,非婆羅門。」
그때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은 부처님을 보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는 머리 깎은 사문이지 바라문이 아니다.」
주 팔리는 「이 분은 삭발했다, 이 분은 까까머리다(muṇḍo, muṇḍako)」 두 번 말하고, 한역은 「머리 깎은 사문, 바라문이 아님」으로 판단을 덧붙인다. 沙門은 음역 — 정착형 「사문」(팔리형 samaṇa).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8
欲持食還去。
음식을 가지고 돌아가려 하였다.
주 tatova puna nivattitukāmo ahosi(거기서 곧 돌아가려 했다)에 닿는다. 「음식을 가지고(持食)」는 한역에만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8
彼婆羅門復作是念:「非獨沙門是剃頭者,婆羅門中亦有剃頭,應往至彼,問其所生。」
그 바라문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문만이 머리를 깎은 이가 아니다. 바라문 가운데에도 머리를 깎은 이가 있다. 그에게 가서 그의 태생을 물어야겠다.」
주 팔리 195.10은 「여기 어떤 바라문들도 삭발한다」만 말하고, 한역은 「사문만이 아니다」를 앞에 세운다 — 일부. 所生은 「~하는 바」를 피해 「태생」(jāti)으로 명사화했다. 亦은 조사 「-도」가 졌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9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10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11
時,孫陀利河側婆羅門詣世尊所,而問之言:「為何姓生?」
그때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은 세존께 나아가 물었다. 「어떤 성에서 나셨습니까?」
주 팔리 kiṃjacco(어떤 태생인가)를 한역은 「何姓」(어떤 성씨)으로 옮겼다 — 인도의 태생(jāti)을 중국의 姓으로 옮긴 자리이나 번안으로 단정하지는 않고 개별 어휘로 신고한다. 본문의 한자 병기 「(姓)」는 걸린 항목이라 걷었다(저본의 한자는 데이터에 그대로 있다). 바라문이 세존께 묻는 말이라 존댓말로 했다(팔리도 bhavaṃ 존칭).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12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13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14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주 팔리는 도입 서술 없이 바로 게송(195.15)으로 들어간다 —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9:195.15
「汝莫問所生,但當問所行。
「그대는 태생을 묻지 말고 / 다만 행실을 물으라.
주 Mā jātiṃ puccha caraṇañca puccha와 같다. 所生·所行은 관형절 대신 「태생」「행실」로 명사화했다. 但은 「태생 말고 행실만」이라는 한정의 뜻이 실려 「다만」을 세웠다. 이문: 둘째 問이 송·원·명본에는 得(「다만 행실을 얻으라」) — 대정본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15
刻木為鑽燧,亦能生於火;
나무를 깎아 불 비비는 나무를 만들어도 / 불을 낼 수 있으니,
주 팔리 「나무에서 참으로 불(jātaveda)이 생긴다」를 한역은 「나무를 깎아 鑽燧(불 비비는 도구)를 만든다」로 구체화한다. 鑽燧는 음의(慧琳 0629a16 「火母也 … 鑽燧各異木也」)를 따라 불을 비벼 일으키는 나무로 옮겼다. 亦은 「-어도」가 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16
下賤種姓中,生堅固牟尼。
낮고 천한 종성 가운데서도 / 굳건한 모니가 난다.
주 Nīcākulīnopi muni dhitimā(낮은 가문 출신이라도 굳건한 성자)와 같다. 牟尼는 음역 — 한자 독음 「모니」(팔리형 muni). 堅固는 여기서 이름이 아니라 dhitimā에 닿는 수식이다(전거의 Kevaddha·Sāla 대역은 ⚠다른 부 동형이의 — 이 자리에 서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17
智慧有慚愧,精進善調伏,
지혜롭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 정진하여 잘 길들여졌고,
주 慚愧 ↔ hirīnisedho(부끄러움으로 자제함), 善調伏 ↔ danto damasā upeto. 팔리의 ājānīyo(혈통 좋은 준마)·saccena(진실로)는 한역에 없고, 智慧·精進은 팔리 이 자리에 없다. 有慚愧의 有는 「~이 있어」를 피해 「부끄러워할 줄 알며」로 서술화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19
究竟大明際,清淨修梵行。
큰 밝음의 끝에 이르렀고 / 깨끗이 청정한 삶을 닦았으니,
주 究竟大明際 ↔ vedantagū(베다의 끝에 이른 이) — 한역은 veda를 「大明」(큰 밝음/큰 앎)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관찰). vusitabrahmacariyo ↔ 清淨修梵行. 梵行은 3분할 표에서 의역이고 확정역이 없으며 정형구 행(No.51)에서만 「청정한 삶」으로 쓰인다 — 그 뜻을 빌려 「청정한 삶」으로 옮겼으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신고한다. 清淨은 여기서 「깨끗이」라는 수식이다(전거의 Sobhavatī 대역은 ⚠다른 부(DA) 동형이의 — 이 자리에 서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0
而今正是時,應奉施餘食。」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 남은 음식을 받들어 베풀어야 한다.」
주 팔리는 「제물을 가진 이는 그를 초대해야 한다 / 그는 제때에 공양받을 만한 이에게 헌공한다」로 일반 규범을 말하고, 한역은 「지금이 바로 그때 — 남은 음식을 바쳐야 한다」로 이 자리의 권유로 좁힌다. kālena ↔ 正是時. 붓다의 발화라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1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2
時,孫陀利河側婆羅門復說偈言:
그때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이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주 팔리는 도입 서술 없이 바라문의 게송(195.23)으로 들어간다 — 없음확인. 復은 앵커대로 「다시」로 두었으나 이 바라문의 첫 게송이므로 「이어서·이번에는」의 뜻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9:195.23
「我今吉良日,求福修供養,
「제가 오늘 길하고 좋은 날에 / 복을 구하여 공양을 닦았는데,
주 Addhā suyiṭṭhaṃ suhutaṃ mama yidaṃ(참으로 나의 이 제사는 잘 바쳐지고 잘 헌공되었다)에 닿되, 한역은 「吉良日」「求福」을 말한다. 바라문이 세존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로 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3
遇得見大士,三時最勝尊,
마침 큰 분, / 세 때에 가장 뛰어나신 존귀한 분을 뵙게 되었습니다.
주 팔리 「그러한 베다에 통달한 이(vedagū)를 보았으니」에서 vedagū 자리를 한역은 「大士」「三時最勝尊」으로 옮긴다. 三時는 과거·현재·미래인지 하루의 세 때인지 저본만으로 갈리지 않아 「세 때」로 두었다(사전 三時 ⑥은 晨朝·日中·黃昏 — 후대 칸이라 참고만). 遇得見의 得은 「~하게 되다」(획득·기회)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4
若不見佛者,當更施餘人。」
부처님을 뵙지 못했다면 / 다른 사람에게 다시 베풀었을 것입니다.」
주 Tumhādisānañhi adassanena(당신 같은 이들을 보지 못하면)와 같다. 팔리 195.26은 「다른 사람이 헌공 나머지를 먹을 것이다」, 한역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것」 — 주어 자리가 다르다. 若은 연결어미 「-면」이 졌다. 佛은 [구속] 「부처님」.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25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6
爾時,孫陀利河側婆羅門轉得信心,即持餘食以奉世尊,世尊不受,以說偈得故,如上因說偈而得食廣說。
그때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은 믿는 마음을 얻게 되어, 곧 남은 음식을 가지고 세존께 바쳤으나, 세존께서는 받지 않으셨으니, 게송을 읊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앞의 「게송을 읊어서 음식을 얻음」에서와 같이 자세히 설한다.
주 「如上因說偈而得食廣說」은 역자가 스스로 접은 생략 표지(如上·廣說)다 — 접힌 대로 두었다. 가리키는 앞 경은 텍스트가 밝히지 않는다. 팔리는 195.27–195.28 「고따마 존자께서 드십시오. 존자는 바라문이십니다」, 195.29 「게송을 읊어 얻은 것은 내가 먹지 않는다」(以說偈得故와 같은 뜻)를 갖추고, 195.30–195.36의 나머지 두 게송을 전문으로 싣는다 — 한역이 접은 안쪽이라 대조가 서지 않으므로 미대응으로 둔다. 「轉得信心」(믿는 마음을 얻게 됨)은 팔리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7~195.28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29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7.9:195.30~195.36
孫陀利河側婆羅門白佛言:「世尊!今此施食當置何所?」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이 베푼 음식은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주 팔리 「그러면 고따마 존자시여, 이 헌공 나머지를 누구에게 줄까요?」(사람을 물음), 한역 「어디에 둘까요」(자리를 물음). 佛·世尊은 각각 [구속] 「부처님」「세존」 — 한 문장 안에서 佛(서술)과 世尊(호격)이 갈려 쓰인다(한자 흔들림이 아니라 서술/호격의 쓰임 차이).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37
佛告婆羅門:「我不見諸天、魔、梵、沙門、婆羅門、天神、世人有能食此食,令身安隱者。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신들, 마라, 범천, 사문, 바라문, 천신, 세상 사람 가운데 이 음식을 먹고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이를 보지 못한다.
주 팔리의 열거(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에 한역은 「天神」을 더한다. 팔리의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빼고는(aññatra tathāgatassa vā tathāgatasāvakassa vā)」는 한역에 없다. 「몸을 편안하게 함(令身安隱)」 ↔ sammā pariṇāmaṃ gaccheyya(바르게 소화되다). 有能…者의 有는 「~이 있어」를 피해 「할 수 있는 이를」로 목적어화했다. 魔=마라, 梵=범천은 정착형.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38
汝持此食去著無虫水中,及少生草地。」
그대는 이 음식을 가지고 가서 벌레 없는 물속이나 풀이 적게 난 땅에 두어라.」
주 팔리는 「푸른 풀이 없는 곳에 버리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가라앉혀라」로 땅을 먼저, 한역은 물을 먼저 말한다 — 자리바뀜. 少生草地 ↔ appaharite, 無虫水 ↔ appāṇake udake. 及은 문맥상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이나」로 옮겼다(팔리 vā … vā와 같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7.9:195.39
時,婆羅門即持此食著無虫水中,水即烟起涌沸,啾啾作聲,如燒鐵丸投之冷水,烟起涌沸,啾啾作聲。
그때 바라문이 곧 이 음식을 가지고 벌레 없는 물속에 두니, 물에서 곧 연기가 일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칙칙 소리를 냈는데, 마치 불에 달군 쇠구슬을 찬물에 던지면 연기가 일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칙칙 소리를 내는 것과 같았다.
주 팔리 비유는 「하루 종일 달군 보습(phālo divasaṃsantatto)」, 한역은 「불에 달군 쇠구슬(燒鐵丸)」. 팔리는 소리를 네 동사(cicciṭāyati ciṭiciṭāyati sandhūpāyati sampadhūpāyati)로 말하고 한역은 「烟起·涌沸·啾啾作聲」 셋으로 말한다. 啾啾는 음의(慧琳 0655b20 〔雜阿含經〕 「眾聲也」)를 따라 의성어 「칙칙」으로 옮겼다. 涌沸는 음의(慧琳 0430c21 「水波騰起」)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40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1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2
如是彼食著無虫水中,烟起涌沸,啾啾作聲。
이와 같이 그 음식을 벌레 없는 물속에 두니, 연기가 일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칙칙 소리를 냈다.
주 evameva so habyaseso udake pakkhitto …와 같다(비유의 맺음).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43
孫陀利河側婆羅門心欲恐怖,身毛皆竪,謂為災變,馳走上岸,集聚乾木,供養祠火,令息災恠。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은 마음이 두려워지고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서, 재앙의 변괴라고 여겨 달려서 강 언덕으로 올라가 마른 나무를 모아 제사 불에 공양하여 재앙과 괴이함을 그치게 하려 하였다.
주 saṃviggo lomahaṭṭhajāto ↔ 心欲恐怖 身毛皆竪. 팔리는 이어서 「세존께 다가가 한쪽에 섰다」(195.44 뒷부분–195.45),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 마른 나무를 모아 불에 제사하여 재앙을 그치게 했다」 — 엇갈림. 心欲恐怖의 欲은 「~하려 하다/막 ~하다」로 갈려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두려워지고」로 흡수했다. 恠는 怪의 이체.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45
世尊見彼集聚乾木,供養祠火,望息災恠。
세존께서는 그가 마른 나무를 모아 제사 불에 공양하며 재앙과 괴이함이 그치기를 바라는 것을 보셨다.
주 팔리 195.46은 「한쪽에 선 바라문에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뿐이고 세존이 불 제사를 보는 서술은 없다 —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9:195.46
即說偈言: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주 gāthāhi ajjhabhāsi와 같다. 팔리의 「한쪽에 선(ekamantaṃ ṭhitaṃ)」은 한역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6
「婆羅門祠火,焚燒乾草木,
「바라문이 불에 제사하며 / 마른 풀과 나무를 태우지만,
주 팔리 「바라문이여, 나무를 쌓아 불붙이며」의 brāhmaṇa는 호격이다. 한역 婆羅門祠火는 호격(「바라문이여, 불에 제사하여」)으로도 주어(「바라문이 불에 제사하여」)로도 읽혀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 주어로 옮겼다. 호격 탈락이면 번역기법 자리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7
莫呼是淨道,能却諸災患。
이것을 깨끗한 길이라 부르지 말라, / 모든 재앙과 근심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 팔리 「청정을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밖의 것이다(bahiddhā hi etaṃ)」. 한역은 「淨道라 부르지 말라 — 재앙을 물리친다고」로 재앙 그침을 덧붙인다. 淨道는 「깨끗한 길」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8
此則惡供養,而謂為□慧;
이것은 나쁜 공양인데, / □지혜라고 여긴다.
주 저본 「而謂為□慧」의 □는 CBETA 결자다 — 지어내지 않고 □로 남겼다. 팔리 「그것으로 청정해진다고 숙련된 이들은 말하지 않는다」. 則은 계사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49
作如是因緣,外道取修淨。
이와 같은 인연을 지어 / 외도는 그것을 취해 깨끗함을 닦는다고 한다.
주 팔리 「밖의 것(bāhirena)으로 청정을 바라는 이」. 한역 「外道」가 bāhira(밖의 것)와 닿는다는 관찰만 적는다(판정하지 않음). 取修淨의 구문(「취하여 깨끗함을 닦는다」/「닦음을 깨끗함으로 취한다」)이 저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0
汝今棄薪火,起內火熾然,
그대는 이제 땔나무 불을 버리고 / 안의 불을 일으켜 활활 타오르게 하라.
주 팔리는 「바라문이여, 나는 나무 태우기를 버리고 / 안으로만 빛을 밝힌다」로 화자 자신(ahaṃ)의 일이고, 한역은 「그대(汝)는 버리고 일으키라」로 청자에게 권한다 — 같은 자리에서 인칭이 엇갈린다. 內火 ↔ ajjhattaṃ jotiṃ. 이문: 薪이 송·원·명본에는 炬(「횃불」) — 대정본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51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2
常修不放逸,常富於供養。
늘 불방일을 닦으면 / 늘 공양에 넉넉하리라.
주 不放逸은 [참고] 「불방일」 — 「게으르지 않음」의 뜻이 이 자리에 서므로 썼다. 팔리 「늘 불을 지니고 늘 마음을 모은다(niccagginī niccasamāhitatto)」. 이문: 富가 송·원·명본에는 當(「늘 공양해야 한다」) — 대정본대로 옮겼다. 두 행의 관계(조건 → 결과)는 어미로 이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3
處處興淨信,廣施設大會,
곳곳에 깨끗한 믿음을 일으키고 / 널리 큰 모임을 베풀어라.
주 팔리 같은 자리는 「나는 아라한으로서 청정한 삶을 산다」 — 엇갈림. 이문: 興이 송본에는 與 — 대정본대로 옮겼다. 施設은 여기서 「베풀어 차림」(대회를 엶)이다(전거의 pradanapyata 당대 대역은 참고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54
心意為束薪,瞋恚黑烟起,
마음은 묶은 땔나무요 / 성냄은 검은 연기로 일어나며,
주 팔리 「자만(māna)은 짐 지는 장대(khāribhāra)요 / 분노(kodha)는 연기」. kodho dhumo ↔ 瞋恚黑烟起는 닿고, 같은 첫 자리에 팔리는 māna(자만), 한역은 心意(마음)를 둔다 — 관찰만 적는다(판정하지 않음). 為는 「~이요」 계사로 옮겼다. 瞋恚는 의역 — 「성냄」.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55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6
妄語為塵味,口舌為木杓,
거짓말은 티끌 맛이요 / 입과 혀는 나무 국자이며,
주 팔리 「거짓말은 재(bhasmani)요 / 혀는 국자(sujā)」. 塵味 ↔ bhasma, 木杓 ↔ sujā, 口舌 ↔ jivhā. 塵味는 글자대로 「티끌 맛」으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6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7
胸懷燃火處,欲火常熾然。
가슴은 불을 피우는 자리이니 / 욕망의 불이 늘 활활 타오른다.
주 胸懷燃火處 ↔ hadayaṃ jotiṭhānaṃ(심장은 불자리). 「欲火常熾然」은 팔리에 없다. 熾然은 음의(慧琳 0516a19 「熾盛也」)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7
當善自調伏,消滅士夫火,
자기를 잘 길들여 / 사내의 불을 꺼 없애라.
주 팔리 「잘 길들여진 자기 자신이 사람(purisa)의 빛이다」, 한역 「스스로를 잘 길들여 士夫의 불을 꺼라」 — 같은 자리에서 빛(긍정)과 끌 불(부정)로 엇갈린다. 自는 대조가 없는 재귀라 「자기를」로 흡수했다. 當은 명령 어미가 졌다. 士夫 ↔ purisa.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58
正信為大河,淨戒為度濟,
바른 믿음은 큰 강이요 / 깨끗한 계는 건너는 나루이며,
주 팔리 「법은 호수(rahado)요, 계는 나루(sīlatittho)」. 淨戒為度濟 ↔ sīlatittho는 닿고, 첫 자리는 팔리 dhammo(법), 한역 正信(바른 믿음)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9
澄淨清流水,智者之所歎!
맑고 깨끗하며 맑게 흐르는 물이니 / 지혜로운 이가 찬탄하는 것이다!
주 Anāvilo(흐리지 않은) ↔ 澄淨, sabbhi sataṃ pasattho(선한 이들이 칭찬한) ↔ 智者之所歎. 所歎은 「~하는 바」를 피해 「찬탄하는 것」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60
人中淨天德,當於中洗浴,
사람 가운데 깨끗한 하늘의 덕이니 / 그 가운데서 목욕하라.
주 팔리 「거기서 베다에 통달한 이들이 목욕하고」. 「人中淨天德」은 「사람 가운데 깨끗한 하늘(天)의 덕」으로 글자대로 두었다 — 무엇을 가리키는지(앞 행의 물인지, 목욕하는 이인지) 저본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전거의 淨天=Brahmadeva 대역은 이름 대역이라 이 자리에 서는지 확인되지 않는다(참고만). 於中의 中은 앞 행의 물을 받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61
涉水不著身,安樂度彼岸。
물을 건너도 몸에 묻지 않고 / 편안하고 즐겁게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주 Anallagattāva taranti pāraṃ(사지를 적시지 않고 저편으로 건넌다)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62
正法為深淵,福德為下濟,
바른 법은 깊은 못이요 / 복덕은 내려가는 나루이며,
주 한역은 「물·나루 — 맑은 물 — 목욕 — 건넘」의 넉 줄 게송을 두 번 되풀이하고(0321a11–a14 / a15–a18), 팔리는 한 번만 싣는다. 이 둘째 벌의 「正法為深淵」이 팔리 dhammo rahado(법은 호수)와 더 가깝다. 下濟는 「내려가는 나루」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59
澄淨水充滿,智者所讚嘆!
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차 있으니 / 지혜로운 이가 찬탄한다!
주 0321a12.1과 같은 팔리 행에 두 번째로 닿는다. 所讚嘆은 「찬탄한다」로 서술화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60
人中天淨德,當於中洗浴,
사람 가운데 하늘의 깨끗한 덕이니 / 그 가운데서 목욕하라.
주 0321a13.1 「淨天德」이 여기서는 「天淨德」으로 글자 순서가 바뀐다 — 순서대로 옮겼다. 뜻 판별 불가는 0321a1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61
涉水不著身,安樂度彼岸。
물을 건너도 몸에 묻지 않고 / 편안하고 즐겁게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주 0321a14.1의 되풀이. 한역 저본에 두 번 있으므로 두 번 다 옮겼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7.9:195.62
真諦善調御,攝護修梵行,
참된 진리로 잘 길들이고 / 거두어 지키며 청정한 삶을 닦고,
주 팔리 「진실·법·절제·청정한 삶(saccaṃ dhammo saṃyamo brahmacariyaṃ)」의 나열을 한역은 「真諦(진실)로 잘 길들이고 攝護(절제)하여 梵行을 닦는다」로 엮는다. 真諦는 의역 — 「참된 진리」(전거의 Sacca 대역과 닿는다). 梵行의 역어는 0320c09.1과 같은 사유로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7.9:195.63
慈悲為苦行,真實心清淨,
자애와 연민을 고행으로 삼고 / 진실한 마음은 청정하며,
주 팔리 같은 자리 「바라문이여, 그 가운데 범천에 이름이 있다(majjhe sitā brahmapatti)」 — 엇갈림. 苦行은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고행」으로 썼다. 3분할 표는 苦行을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苦·行 둘 다 뜻글자라 이 자리에 서지 않고, 전거의 Cāga 대역도 ⚠다른 부(MA) 동형이의라 이 자리에 서지 않는다. 慈悲는 의역 — 「자애와 연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64
沐浴以正法,智者所稱歎。」
바른 법으로 목욕하니 /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고 찬탄한다.」
주 팔리 「곧은 이들에게 예경하라 / 그런 사람을 나는 법에 따라 사는 이라 부른다」 — 엇갈림. 한역은 목욕 비유로 게송을 맺는다. 沐浴以正法은 以가 수단 「-으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65~195.66
爾時,孫陀利河側婆羅門聞佛所說,歡喜隨喜,復道而去。
그때 손타리 강가의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길을 되돌아 떠나갔다.
주 팔리는 「훌륭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pe… 바라드와자 존자는 아라한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 귀의·출가·아라한과로 맺고, 한역은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길을 되돌아 떠났다」로 맺는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결말. 팔리 …pe…로 접힌 안쪽은 읽지 않았다. 所說은 「말씀하신 것」으로 명사화했다. 復道而去의 復은 「되돌아」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9:195.67~195.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