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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한역 제목 자리에는 경 번호만 있고 제목 글자가 없다(판본 체제). 팔리 `sn7.16/0.3`은 번호와 이름(6번째 경)을 함께 달아 한쪽이 더 말하므로 일부. 교감주(다카쿠스) `S. 7. 2. 6.`은 상윳따 7 · 제2품 · 6번째 경이라는 표기다. 투입물이 보조 증언으로 준 `sn7.2`(Akkosa 경)는 이 한역과 내용이 닿지 않는다 — `7. 2`를 경 번호로 읽은 후보로 보이며, 대응에 쓰지 않았다. 교감주 cf.의 `[No. 100(78)]`은 대정장 교차참조 표지로 보이나 이번 투입물에 그 본문이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물에 없어 미대응.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앵커 如×1은 「이와 같이」의 지시 꼴이라 따로 비유·가정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팔리 202.1은 `Sāvatthinidānaṃ`(사위 서두 정형구를 한 낱말로 접은 표지)뿐이라 개경 정형구의 안쪽은 읽지 못했다 — 접힌 구간에 걸리므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7.16:202.1
一時,佛在拘薩羅人間遊行,至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구살라의 사람 사는 곳을 두루 다니시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셨다.
주 (1) 한자 흔들림 —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에 이 경에서 佛(0.3 · 0307c14.1 · 0307c21.1)과 世尊(0307c12.1 · c12.2 · c13.1 · c15.1)을 섞어 쓴다. [구속] 확정역대로 각각 「부처님」 「세존」으로 고정하고 흔들림을 신고한다. (2) 舍衛 — 정착어 「사위」. 뜻: 팔리 Sāvatthī에 해당하는 도시 이름. 음의(慧琳 0367c24)는 義譯으로 「聞者城」 「聞物國」 「無物不有國」을 들고 善見律은 舍衛를 사람 이름으로 푼다 —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 두 계통이 갈린다(음역계통 · 확인된 두 계통이며 불확실이 아님; 계통 칸은 정도평 몫), ⚠다른 부(DA)의 대역. (3) 祇樹給孤獨園 — ⑤의 정착어 예에 「기수급고독원」이 있어 정착형으로 썼다. 그러나 給孤獨은 같은 ⑤가 의역 예(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로 드는 이름이고 3분할 표도 5자 이상이라 `보류`로 두었으므로 유형이 충돌한다 — 정도평 판단 몫. 뜻: 祇樹는 Jeta(祇陀) 태자의 숲(음의 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給孤獨은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이를 구하기로 서원한 장자의 별칭(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誓救孤獨時人以為其號」), 園은 동산. 전거: 팔리 후보 Jetavana · Anāthapiṇḍika, ⚠다른 부(DA). (4) 拘薩羅 — 음역(3분할 표) → 한자 독음 「구살라」. 팔리형 Kosala, ⚠다른 부(DA/MA). (5) 人間遊行 — 人間은 「사람 사는 곳」, 遊行은 「두루 다님」으로 풀었다(사전 人間 ① 잡아함 134회, 앞 薩羅 44 · 뒤 遊行 82 / 사전 遊行 ① 124회, 앞 人間 84). 人間을 「인간 세계」로 읽는 길도 열려 있으나 이 정형구의 쓰임(구살라 지방을 돌아다님)에 맞춰 위와 같이 옮겼다. 從은 c08.1에서 「~에서」. (6) 팔리 202.1에서 눈에 보이는 짝은 사위(Sāvatthī)뿐이다. 拘薩羅人間遊行과 祇樹給孤獨園의 짝은 접힌 안쪽에 있을 수 있어 문장 유무를 판정하지 않는다(저본_근거부족).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1
時,有婆羅門名曰違義,聞沙門瞿曇從拘薩羅國人間遊行,至舍衛國祇樹給孤獨園。
그때 이름이 ‘뜻을 어기는 이’라 불리는 바라문이, 사문 고따마가 구살라국에서 사람 사는 곳을 두루 다니다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렀다는 것을 들었다.
주 (1) 違義 —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고 주석(tt_id 0307012)이 Paccanīkasāta를 단다. 뜻으로 옮겨 「뜻을 어기는 이」, 이후 「뜻을 어기는 바라문」으로 통일했다. 違=어기다, 義=뜻(0307c10.1 `反其義`의 義와 같은 글자라 이름과 그의 계획이 한 글자로 맞물린다). 팔리 Paccanīkasāta는 paccanīka(맞섬 · 거스름) + sāta(좋아함)로 분석되는 이름인데 sāta에 해당하는 글자가 한역에 없다(어형 풀이는 직역 작가의 것; 전거에 주의 표시 없음). (2) 有 — 새 인물을 세우는 존재문이다. 「~이 있어」 훈독투를 피해 주어로 세우고 「이름이 …라 불리는 바라문이」로 흡수했다(앵커 有×1). (3) 沙門 — 정착어 「사문」. 뜻: 출가 수행자의 총칭. 음의 인용: 慧琳 0420a16 「勤懇」, 0439c20 「止息…劬勞」, 0477b19 「勤勞 · 內道外道之總名」. 전거: 팔리 Samaṇa / 근대 Śramaṇa — 갈린 두 계통(음역계통), ⚠다른 부(MA). (4) 婆羅門 — [구속] 「바라문」. 음의 慧琳 0325c03 「淨行」. 전거: 팔리 Brahmaṇa · Brāhmaṇa / 근대 Brāhmaṇa(음역계통), ⚠다른 부(DA). (5) 瞿曇 — [구속] 「고따마」. 전거: 팔리 Gotama / 근대 Gautama(음역계통), ⚠다른 부(DA). (6) 祇樹給孤獨園 · 舍衛國 — 0.3 서술과 같다(정착형 + 유형 충돌 신고). (7) 팔리 202.2는 이 바라문이 사위에 산다(paṭivasati)고만 하고, 한역이 말하는 「부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는다」는 문장이 없다. 한역에는 팔리의 「산다」가 없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2
聞已,作是念:「我當往詣沙門瞿曇所,聞所說法,當反其義。」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사문 고따마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겠다. 설하는 법을 듣고 그 뜻을 거스르겠다.」
주 (1) 當×2 — 두 번 모두 의지를 나타내는 어미 「-겠다」가 진다(앵커). 「마땅히」는 쓰지 않았다. 두 의도(가다 / 거스르다)를 한 문장으로 합치지 않고 각각 어미를 달아 두 문장으로 옮겼다. (2) 所×2 — 瞿曇所의 所는 처소 명사 「곳」, 聞所說法의 所는 관형절(「설하는 법」). 「~하는 바」는 쓰지 않았다. (3) 往詣=「나아가다」, 같은 한자는 같은 말로 통일(c12.1). (4) 反=「거스르다」. 違義의 違와 같은 개념이나 한자가 달라 통일하지 않았다. (5) 팔리 대응: 202.3 etadahosi ↔ 作是念, 202.4 ↔ 我當往詣…所, 202.5 ↔ 聞所說法,當反其義. 팔리는 「사문 고따마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거스르겠다」(paccanīkāssa)로 법과 뜻의 구분이 없고, 한역은 「설하는 법을 듣고 그 뜻(義)을 거스른다」로 義를 세운다. 한역의 聞已도 팔리에 없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3~202.5
作是念已,往詣精舍,至世尊所。
이런 생각을 하고 나서 정사로 나아가, 세존께서 계신 곳에 이르렀다.
주 (1) 精舍 — 정착어 「정사」. 뜻: 수행자가 머무는 건물(사전 精舍 ① 잡아함 134회 · 81경, 뒤 舉衣 41). 팔리 202.6은 세존이 노지(abbhokāse)에서 경행한다고 하고 건물이 없어 장소가 갈린다(c12.2 서술 참조). (2) 世尊 — [구속] 「세존」. 한역이 같은 개념에 佛과 世尊을 섞어 쓴다(한자 흔들림). (3) 作是念已의 已는 완료(「하고 나서」). 所×1은 처소 「곳」. (4) 팔리 202.7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 往詣精舍,至世尊所. 한역의 精舍가 더 있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7
爾時,世尊無量眷屬圍繞說法。
그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권속에게 둘러싸여 법을 설하셨다.
주 팔리 202.6은 같은 자리에서 「그때 세존은 노지에서 경행하고 있었다」고 하고, 한역은 권속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신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엇갈림). 또 팔리는 이 상황을 바라문이 다가가기 전(202.7 앞)에 두고 한역은 도착(0307c12.1) 뒤에 둔다(구조·배열). 無量=「한량없는」(사전 無量 ① 이 경 0307c12.2). 眷屬=정착어 「권속」, 뜻: 가까이 따르는 사람들(전거 당대 범어 후보 panivara, 전거 표기대로; 음의 慧琳 0559b13은 반절뿐이라 뜻 풀이 없음). 圍繞=「둘러싸다」. 說法=「법을 설하다」. 世尊은 [구속] 「세존」, 佛/世尊 흔들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7.16:202.6
世尊遙見違義婆羅門來,即默然住。
세존께서는 뜻을 어기는 바라문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시고 곧 말없이 머무르셨다.
주 即×1은 즉시 「곧」(앵커). 默然=「말없이」 — 사전 默然 ①은 默然而許(침묵으로 승낙) 용례가 많으나(뒤 受請 25) 여기는 승낙 문맥이 아니라 침묵해 서 있는 자리라 「말없이」로 풀었다. 住=「머무르다」. 팔리에는 세존이 멀리서 보고 침묵한다는 문장이 없다 — 202.7(다가감)과 202.8(바라문의 말) 사이에 바로 말이 이어진다(없음확인). 世尊: [구속],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16:202.7~202.8
違義婆羅門白佛言:「瞿曇說法,樂欲聞之!」
뜻을 어기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고따마께서 법을 설하시는 것을, 듣기를 즐겨 바랍니다!」
주 (1) 瞿曇說法,樂欲聞之 — 瞿曇을 호격(「고따마여, 법을 설해 주십시오」)으로 끊을지, 瞿曇說法을 주제절로 받을지 한문만으로 갈린다. 편자 표점이 瞿曇 뒤에서 끊지 않고 之가 說法을 되받는 꼴이라 주제절로 읽었다. 팔리 202.9 bhaṇa samaṇadhammaṃ(말하시오, 사문의 법을)은 명령형이라 호격 읽기를 지지하지만 증언이므로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2) 樂欲=「듣기를 즐겨 바람」(사전 樂欲 ① 이 경 포함 4회뿐; ⑥ 丁福保 「樂者願也好也」는 후대 참고). (3) 白佛言=「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佛은 [구속] 「부처님」(한자 흔들림). (4) 존칭 —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존댓말로 통일. (5) 팔리 202.8의 바라문이 걷는 세존께 다가가 말한다는 서술과 202.9의 명령형 요청 ↔ 한역의 발화. 요청의 꼴이 다르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8~202.9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 세존께서는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即×1은 「곧」(앵커). 偈=「게송」(사전 偈 ① 앞 即說 206). 팔리는 이 도입 문장 없이 202.9 요청에서 바로 게송(202.10)으로 들어간다(없음확인). 世尊: [구속],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16:202.9~202.10
「違義婆羅門,未能解深義,
「뜻을 어기는 바라문은 깊은 뜻을 아직 이해할 수 없다,
주 未能 — 앵커 能×1 [가능]은 어미 「-ㄹ 수 있다」가 지므로 「이해할 수 없다」, 未는 「아직」. 解=「이해하다」(사전 解 ① 앞 中廣 22, 뜻 풀이는 저본 문맥에서) — 知(「알다」, 0307c20.1)와 구별했다. 深義=「깊은 뜻」(義=뜻, 0307c10.1 `反其義`와 통일). 팔리 202.10 na paccanīkasātena suvijānaṃ subhāsitaṃ(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이는 잘 말해진 것을 쉽게 알지 못한다)의 짝: 違義婆羅門 ↔ paccanīkasāta, 未能解 ↔ na suvijānaṃ, 深義 ↔ subhāsita. 한역은 「깊은 뜻」, 팔리는 「잘 말해진 것」이라 대상의 성격이 다르다(개별 어휘)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10
內懷嫉恚心,欲為法留難。
속으로 시기하고 성내는 마음을 품어, 법에 대하여 방해를 놓으려 한다,
주 內懷=「속으로 품다」. 嫉恚心=「시기하고 성내는 마음」(嫉=질투, 恚=성냄). 欲=「-려 한다」. 為法留難 — 為作留難 정형구의 줄임꼴로 보아 「법에 대하여 방해를 놓다」(사전 留難 ① 잡아함 31회 · 28경, 앞 為作 25). 앵커 為×1은 `為…所` 피동이 아님을 확인했다. 팔리 202.11 upakkiliṭṭhacittena(더럽혀진 마음으로) sārambhabahulena ca(다툼이 많아서) — 눈에 보이는 짝은 內懷嫉恚心에 걸리고 欲為法留難은 팔리 가시 범위에 짝이 없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11
調伏違反心,諸不信樂意,
어기고 거스르는 마음과 믿고 즐거워하지 않는 모든 생각을 조복하고,
주 (1) 調伏의 목적어를 違反心과 諸不信樂意 둘로 읽었다(동사 하나에 목적어 둘). 諸不信樂意를 앞 동사에서 떼어 읽는 길도 한문만으로는 열려 있다(구두·분절). 팔리 202.12 vineyya sārambhaṃ appasādañca cetaso가 한 동사에 두 목적어이므로 앞의 읽기를 지지하나 증언이라 한문 구조만 따랐다. (2) 調伏 — 정착어 「조복」, 뜻: 다스려 누름(사전 調伏 ① 잡아함 181회 · 80경). (3) 違反=「어기고 거스르는」(違=어기다, 反=거스르다). (4) 不信樂 — 不信과 樂을 이어 읽어 믿음과 즐거워함의 없음으로 풀었다(사전 不信 ① 잡아함 47회 · 26경 · 이 경 0307c18.1; 사전 樂 ① 잡아함 960회 · 300경). 信樂을 한 낱말로 묶는 용례는 사전 樂 ③ 칸에서 확인되지 않아 근거로 삼지 않았고, 저본 글자만으로 읽었다. 意=「생각」(義=뜻과 구별). 諸=「모든」(복수가 실린 자리). (5) 팔리 sārambha(다툼 · 격앙) ↔ 違反(어김 · 거스름)은 어휘가 갈린다. 팔리 yo…sa 구문의 yo 절에 해당하는 자리를 한역은 조건으로 잇는다(번역기법, 0307c19.1)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12
息諸障礙垢,則解深妙說。」
모든 장애가 되는 때를 그치게 하면, 깊고 묘한 말씀을 이해한다.」
주 (1) 障礙垢 — 「장애가 되는 때」(수식)로 옮겼다. 「장애와 때」(병렬)로도 끊을 수 있다(구두·분절). 垢=「때」(번뇌의 다른 이름, 사전 垢 ⑥ 후대 참고). 息=「그치게 하다」(사전 息 ①). 諸=「모든」. (2) 則×1은 귀결 「-면」에 흡수했다(앵커). 解深妙說=「깊고 묘한 말씀을 이해한다」. (3) 이문 — 교감주 `礙=閡【聖】`: 大正 본문은 礙, 聖本은 閡. 본문은 저본 礙를 따랐다. 두 글자 모두 「막다」의 뜻이라 뜻은 갈리지 않는다고 본다(작가의 판단). (4) 팔리 202.13 āghātaṃ paṭinissajja(원한을 내려놓고) sa ve jaññā subhāsitaṃ(그는 잘 말해진 것을 알리라) ↔ 息諸障礙垢,則解深妙說. 팔리는 관계-상관 구문(yo…sa)이고 한역은 조건 則으로 잇는다 —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라 번역기법. 어휘: āghāta(원한 · 악의) ↔ 障礙垢, subhāsita ↔ 深妙說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13
時,違義婆羅門作是念:「沙門瞿曇已知我心。」
그때 뜻을 어기는 바라문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이미 내 마음을 알았다.」
주 已知=「이미 알았다」(知=알다, 解=이해하다와 구별). 我心의 心=「마음」. 팔리는 게송 뒤 바로 202.14 Evaṃ vutte로 이어져 바라문의 이 생각 문장이 없다(없음확인). 沙門 · 瞿曇 · 婆羅門은 c08.1의 처리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7.16:202.13~202.14
聞佛所說,歡喜隨喜,從座起而去。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1) 所×1은 관형절(「설하신 것」), 而×1은 「~어」로 흡수(앵커). 佛은 [구속] 「부처님」, 한자 흔들림. (2) 歡喜隨喜=「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사전 歡喜 ① 1340회, 뒤 隨喜 335 · 奉行 829 / 사전 隨喜 ② AI 정렬 abhinanditvā anumoditvā 용례). (3) 팔리 202.14 Evaṃ vutte(이렇게 말해지자) ↔ 聞佛所說. 202.15는 abhikkantaṃ…pe…(감탄과 귀의 선언)로 접혀 있다. 한역에는 귀의 · 재가신자 선언이 없고, 팔리의 눈에 보이는 범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남이 없다. …pe…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그 안쪽에 관한 판정은 미결이다 → 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SN 7.16:202.14~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