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三六)
(1136)
주 한역은 경 번호(一一三六)만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는 번호와 경 이름(Candūpamasuttaṃ)을 함께 둔다. 大正 교감주(Candropama (Hoernle, P. 40) S. 16. 3. Candupama.)는 편자가 단 것으로, 산스크리트 사본 경 이름과 팔리 상윳따 16.3을 가리킬 뿐이며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산스크리트는 제시된 실판독이 첫 문장(Evaṁ mayā śrutam)에서 시작해 제목 자리를 읽지 못했으므로 unaligned.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146.1은 「Sāvatthiyaṃ viharati…pe…」로 시작 정형구를 접어 두었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 산스크리트 Evaṁ mayā śrutam은 실판독으로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6.3:146.1
一時,佛住舍衛國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르셨다.
주 (1) 舍衛國은 정착어(사위). 이름 뜻은 음의 慧琳 0367c24가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법경경 번역 「聞物國」이라 전한다. 팔리 Sāvatthiyaṃ(146.1)과 같은 도시다. (2) 大正은 舍衛國이나 宋·元·明本은 王舍城(이문 0299012)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Rājagṛhe로 宋·元·明 읽기와 같고 팔리는 大正 읽기와 같다. 본문은 大正을 따르고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는다. 迦蘭陀竹園이 王舍城의 동산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 大正 읽기는 한 구 안에서 어긋날 수 있으나 이는 증언에서 얻은 지식이므로 비고로만 둔다(사전 竹園 ③ 용례 「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3) 迦蘭陀는 음역 → 한자 독음 「가란타」. 전거표는 팔리 Kalandaka, 근대 비정 Kāraṁḍava/Karaṁḍa로 갈린다고 적는다(⚠다른 부(MA) 대역, 계통은 판정하지 않음). 음의 慧琳 0601c04는 迦蘭䭾迦를 새 이름이라 풀고 竹林과 이어 놓는다. 이 경의 팔리 원문은 이 구간이 접혀 있어 팔리형은 전거표 인용이다. (4) 竹園은 3분할표에 없는 이름으로 뜻(竹+園)이 서는 의역으로 판별해 「대나무 동산」. 한국 불교계 정착형 「죽원」 여부는 정도평 몫이라 불확실 신고. 팔리는 一時·迦蘭陀竹園에 해당하는 말이 접힌 구간 안에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1
爾時,世尊告諸比丘:「當如月譬住,如新學,慚愧軟下,攝心斂形而入他家。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달의 비유처럼 머물러라. 처음 배우는 이처럼 부끄러워하고 부드럽게 낮추어, 마음을 거두어 잡고 몸을 여미어 다른 집에 들어가라.
주 구조: 팔리는 「달과 같이 집들을 찾아가라 — 몸을 끌어당기고 마음을 끌어당기며」, 한역은 「달 비유로 머물고 … 마음을 거두고 몸을 여미어 집에 든다」로 순서가 다르다. 한역은 마음→몸, 팔리·산스크리트(avakṛṣya kāyam avakṛṣya cittam, 다음 단락 실판독)는 몸→마음이다. 어휘: 한역 住는 산스크리트 viharata(머물다)와 같고 팔리 upasaṅkamatha(찾아가다)에는 없다. 慚愧는 산스크리트 hrī(실판독)와 같고 팔리 본문에는 없다. 如新學은 산스크리트 nityaṁ navakā iva에서 nityaṁ(늘)이 한역에 없고 學이 더해진다. 팔리 niccanavakā에서 같은 자리다. 軟下는 팔리 appagabbhā(거칠지 않음)와 산스크리트 apragalbha(다음 단락) 자리에 선다. 어휘 대응은 판정하지 않는다. 攝心斂形의 斂은 聖本에서 控(교감주, 0299c10과 같은 자리). 他家는 自와 짝이 아니므로 「남」이 아니라 「다른 집」. 月譬住는 「달의 비유처럼 머물라」로 읽었다(月譬 = 달에 견줌).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6.3:146.1~146.2
如明目士夫臨深登峰,攝心斂形,難速前進。
눈 밝은 사내가 깊은 곳에 임하고 봉우리에 올라 마음을 거두어 잡고 몸을 여미어 빨리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것과 같다.
주 팔리는 사내가 「낡은 우물·산의 험한 곳·강의 험한 곳」을 내려다볼 때(세 항) 몸과 마음을 끌어당긴다고 한다. 한역은 臨深·登峰 두 항에 難速前進을 더하고 마음→몸 순서다. 明目(눈 밝은)은 산스크리트 실판독 cakṣuṣmāṁ puruṣo와 같고 팔리 puriso에는 없다(한역=산스크리트≠팔리). 산스크리트 실판독에는 jarôdapānaṁ vā nadī-du[rga]…가 있어 우물·강 항이 보이나 한역 深·峰과 어느 항이 맞는지 판정하지 않는다. 前=難(聖本, 교감주 0299013): 聖本이면 「難速難進」.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3~146.4
如是,比丘如月譬住,亦如新學,慚愧軟下,御心斂形而入他家。
이와 같이 비구는 달의 비유처럼 머물고, 또한 처음 배우는 이처럼 부끄러워하고 부드럽게 낮추며,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여미어 다른 집에 들어간다.
주 앞 좌표(0299c07.1)와 같은 구성이다. 팔리 「evameva kho, bhikkhave, candūpamā kulāni upasaṅkamatha」는 2인칭 복수 명령인데, 한역 「如是,比丘如月譬住」는 比丘를 주어로 읽으면 평서, 호격으로 읽으면 명령이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evam eva candrôpamā viharatā는 명령형. 끊는 자리를 정하지 못해 평서로 옮기고 불확실 신고. 亦는 달 비유와 새로 배우는 이 비유 두 가지가 겹치는 자리라 「또한」을 세웠다. 御心은 산스크리트 …kṛṣya cittaṁ(끌어당김) 자리에 서는 글자로 攝·控과 어휘가 갈린다(번역기법으로 읽을 수 있으나 판정하지 않음). 斂=控(聖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6.3:146.5~146.6
迦葉比丘如月譬住,亦如新學,慚愧軟下諸高慢,御心控形而入他家。
가섭 비구는 달의 비유처럼 머물고, 또한 처음 배우는 이처럼 부끄러워하며 모든 높은 교만을 부드럽게 낮추고,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억제하여 다른 집에 들어간다.
주 迦葉은 정착어(가섭). 음의 慧琳 0441a01 「具云迦攝波 此曰飲光 … 一家之姓氏」·0370b20 「正梵音云迦攝波 … 天竺國之大姓」은 이 이름이 성(姓)임을 전한다. 팔리 Kassapa. 이 경 저본에는 「큰」이 붙지 않으나 상윳따 16 맥락이 마하깟사빠이다(증언 지식). 軟下諸高慢은 軟下가 諸高慢을 목적어로 받는 구문으로 읽었다. 산스크리트 실판독 hrīmāṁ kuleṣv apragalbhaḥ(부끄러움 있고 집들에서 거만하지 않음)와 팔리 appagabbho가 서는 자리다. 배열은 앞 좌표와 같다. 控形의 控은 끌어당겨 누른다는 뜻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6.3:146.7~146.8
如明目士夫臨深登峰,御心控形,正觀而進。」
눈 밝은 사내가 깊은 곳에 임하고 봉우리에 올라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억제하여 바르게 살펴 나아가는 것과 같다.」
주 팔리는 사내 비유를 한 번(146.3~146.4)만 들고 가섭 대목(146.7~146.8)에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 팔리 146.7~146.8 사이에 비유가 없음을 본문에서 확인했다(접힘 없음). 한역은 가섭에게 비유를 다시 든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가섭 대목 뒤에 tadyathā cakṣuṣmāṁ puruṣo … avakṛṣya kāyam avakṛṣya cittaṁ vyavalokayed evam eva Kāśyapo hi bhikṣuś를 두어 한역과 같이 비유를 되풀이한다(한역=산스크리트≠팔리). 앞 비유(0299c08.1)가 難速前進으로 맺는 데 비해 여기는 正觀而進으로 맺는다. 산스크리트 vyavalokayed(둘러봄)와 正觀의 대응은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8
佛告比丘:「於意云何?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뜻에 어떠한가?
주 팔리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는 같은 문장 안에서 질문 내용(kathaṃrūpo …)으로 이어지나 한역은 於意云何와 질문을 두 좌표로 나눈다. 산스크리트는 실판독 kiṁ ma…까지만 보여 maññatha에 해당하는지 글자 수가 모자라나 자리상 같은 말로 읽힌다(partial로만 단다). 告比丘는 諸가 없지만 청중이 여럿이고(다음 좌표 諸比丘) 집합 호칭이라 「비구들」로 옮겼다. 이하 諸 없는 호칭(白佛·告比丘)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9
比丘為何等像類應入他家?」
비구는 어떤 모습의 부류로서 다른 집에 들어가야 하는가?」
주 팔리 kathaṃrūpo bhikkhu(어떤 모습의 비구)가 arahati kulāni upasaṅkamituṃ(집을 찾아갈 자격이 있는가)에 해당한다. 像類는 모습·부류로 읽어 「모습의 부류」로 고정하고(이하 같은 말을 같은 방식으로 씀),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 신고. 為는 「~로서」(피동 아님). 산스크리트는 제시된 실판독이 앞 좌표의 kiṁ ma…에서 끊겨 이 자리를 읽지 못했으므로 unaligned.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9
諸比丘白佛言:「世尊是法根、法眼、法依,唯願廣說!諸比丘聞已,當受奉行。」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이십니다. 부디 널리 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구들은 듣고 나서 받아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주 팔리는 「법들은 세존을 뿌리·이끄는 이·의지처로 한다(mūlakā·nettikā·paṭisaraṇā). 세존께 그 말씀의 뜻이 떠오르게 하시기를 …」이고 한역은 世尊이 法根·法眼·法依라고 주어를 세존 쪽으로 돌린 문장이다. 法眼과 팔리 nettikā(이끄는 이)는 형태만 가깝게 보일 뿐 판정하지 않는다(사전 法眼 ① 앞 法根 51 · 뒤 法依 51: 이 정형구로 굳은 표현). 法依는 「법의 의지」로 옮기고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 신고. 팔리 dhāressanti(마음에 새기리라)는 受奉行 자리에 서며 한역은 「받아 받들어 행함」이다. 廣說은 「널리 설함」을 청하는 동사로 쓰여 생략 표지가 아니다(정형구 표의 廣說 이 경 2건은 0299c15.1과 0300a05.1의 이 자리로 읽힘). 그래서 [생략표지] 신고를 달지 않았다. 唯願은 「부디 …를 바란다」로 옮기고 唯의 한정은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10~146.12
佛告諸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그대들을 위해 설하겠다.
주 팔리는 첫 질문에서는 이 말을 두지 않는다(146.12 다음이 바로 세존이 허공에 손을 움직이는 146.13). 팔리의 같은 정형구(Tena hi …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i)는 둘째 질문 뒤 146.27~146.28에만 있다. 한역은 이 정형구가 두 번 나온다(여기와 0300a07.1). 諸는 宋·元·明·聖本에 없다(교감주 0299016). 諦聽은 음의 希麟 0949c19 「諦審也 … 聆也」에 따라 「자세히 듣고」.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12~146.13
若有比丘於他家心不縛著貪樂,於他得利,他作功德,欣若在己,不生嫉想,亦不自舉,亦不下人。
비구가 다른 집에서 마음이 얽매이고 달라붙어 탐내어 즐기지 않고, 남이 이익을 얻고 남이 공덕을 지음에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기뻐하며, 질투하는 생각을 내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지도 않고 남을 낮추지도 않으면,
주 배열: 팔리는 허공의 손 비유(146.13~146.14)를 먼저 들고 그 뒤에 일반 비구의 마음(146.15~146.18)을 말한다. 한역은 이 대목을 비유보다 앞(여기)에 두고 비유 뒤 0299c24.1에서 다시 말한다. 문장 유무: 팔리의 「이익을 바라는 이는 얻고 복을 바라는 이는 짓게 하라(labhantu … karontu)」가 한역에 없고, 한역의 不生嫉想·不自舉·不下人이 팔리에 없다. 어휘: 팔리 na sajjati na gayhati na bajjhati(달라붙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묶이지 않는다) 세 동사에 한역은 縛著·貪樂이 선다. 於他得利는 「남이 이익을 얻음」으로 읽었으나 「남에게서 이익을 얻음」으로도 읽힐 수 있어 불확실 신고(뒤의 他作功德과 짝지어 앞의 읽기를 택하고, 팔리 paresaṃ lābhena(남들의 이익에)와도 합치한다). 他는 自舉와 짝이 서므로 「남」, 他家는 「다른 집」. 亦不…亦不…는 「~도 않고 ~도 않는다」로 흡수했다. 若은 「-면」이며 이 조건절의 주절은 0299c20.1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6.3:146.15~146.18
如是像類比丘應入他家。」
이와 같은 모습의 부류인 비구가 다른 집에 들어가야 한다.」
주 팔리 「evarūpo kho, bhikkhave, bhikkhu arahati kulāni upasaṅkamituṃ」과 뜻이 같으나 팔리는 비유 뒤에 오고 한역은 비유 앞에 온다(0299c18.1 비고 참조). 像類는 앞(0299c14.2)과 같이 「모습의 부류」.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16.3:146.18
爾時,世尊以手捫摸虛空,告諸比丘:「我今此手,寧著空、縛空、染空不?」
그때 세존께서 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시며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나의 지금 이 손이 허공에 달라붙겠느냐, 허공에 묶이겠느냐, 허공에 물들겠느냐?」
주 팔리는 세존이 허공에서 손을 움직인(cālesi) 뒤 「이 손은 허공에서 달라붙지도 붙잡히지도 묶이지도 않는다」고 평서로 말한다. 한역은 같은 내용을 질문으로 바꾸어 비구들에게 묻고(0299c23.1 대답)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0299c29.1~0300a02.1). 동사: 팔리 sajjati·gayhati·bajjhati 셋에 한역은 著·縛·染 셋이며 gayhati(붙잡힘)에 맞는 글자는 없고 染이 더해진다. 捫摸는 음의 慧琳 0404b21·0445b18 「捫摸 猶以手撫持也」에 따라 「어루만지다」. 虛空과 뒤의 空은 같은 개념에 다른 글자를 쓴 것(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空은 허공의 줄임으로 읽어 「허공」으로 옮겼고, 空이 다른 뜻일 가능성은 열어 두어 불확실 신고. 著空·縛空·染空의 空은 줄이지 않고 세 번 되풀이했다. 寧…不은 「~겠느냐」 의문으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13~146.14
比丘白佛:「不也,世尊!」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주 팔리 146.14는 평서로 결론을 말하며 대답이 없다(접힘 없음). 한역의 문답 구조에서만 나오는 대답이다. 也는 평서 어미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14
佛告比丘:「比丘之法常如是:不著、不縛、不染心而入他家。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비구의 법은 늘 이와 같다: 달라붙지 않고 묶이지 않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다른 집에 들어간다.
주 팔리 146.15 「evameva kho, bhikkhave, yassa kassaci bhikkhuno … cittaṃ na sajjati na gayhati na bajjhati」에 해당한다. 한역은 比丘之法常如是로 일반 규정임을 앞세우고 不著·不縛·不染으로 맺는다. 팔리의 gayhati 자리에 染이 선다(0299c22.1 참조). 앞의 일반 규정(0299c18.1)과 겹치는 내용이므로 같은 팔리 자리에 두 좌표가 걸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15
唯迦葉比丘以不著、不縛、不染之心而入他家,於他得利及作功德,欣若在己,不生嫉想、不自舉、不下人,其唯迦葉比丘應入他家。」
오직 가섭 비구만이 달라붙지 않고 묶이지 않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다른 집에 들어가고, 남이 이익을 얻고 공덕을 지음에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기뻐하며, 질투하는 생각을 내지 않고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남을 낮추지 않으니, 오직 그 가섭 비구만이 다른 집에 들어가야 한다.」
주 팔리 146.19~146.22는 가섭에 대해 같은 마음(na sajjati …)과 labhantu …, yathāsakena lābhena … evaṃ paresaṃ lābhena attamano hoti sumano(자기 이익에 기뻐하듯 남의 이익에 기뻐함)를 말한다. 한역 欣若在己(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기뻐함)가 이에 해당하고, 不生嫉想·不自舉·不下人은 팔리에 없고, 마지막 「가섭만이 들어가야 한다(應入他家)」도 팔리 가섭 대목에 없다(팔리 arahati는 일반 비구 문장 146.18에만 있다). 唯(오직)는 한역에서 한정의 뜻이 실려 세웠고 팔리 Kassapassa에는 없다. 其는 지시·강조로 읽어 「그」. 於他得利及作功德은 「남이 이익을 얻고 공덕을 지음」으로 읽으며 0299c18.1과 같은 불확실이 걸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19~146.22
爾時,世尊復以手捫摸虛空,告諸比丘:「於意云何?
그때 세존께서 다시 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시며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뜻에 어떠한가?
주 한역은 허공의 손 문답을 한 번 더 되풀이한다(0299c29.1~0300a02.2). 팔리는 가섭 대목(146.19~146.22)에서 둘째 질문(146.23)으로 바로 넘어가며 되풀이가 없다(접힘 없음). 復은 되풀이 자체를 말하는 뜻이 실려 「다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22~146.23
我今此手,寧著空、縛空、染空以不?」
나의 지금 이 손이 허공에 달라붙겠느냐, 허공에 묶이겠느냐, 허공에 물들겠느냐?」
주 0299c22.1과 같은 문장이나 문말이 不이 아니라 以不이다. 以不을 否와 같은 문말 의문으로 읽어 같은 의문 종결로 옮겼고, 以를 「이미」(已)로 읽을 가능성은 열어 두어 불확실 신고. 팔리에는 이 되풀이가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22~146.23
諸比丘白佛言:「不也,世尊!」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주 0299c23.1과 같다. 이 경은 앞의 대답 白佛(0299c23.1)과 여기 白佛言으로 서술이 조금 달라진다. 번역은 두 말 모두 「사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22~146.23
佛告比丘:「其唯迦葉比丘心常如是,以不著、不縛、不染之心入於他家。」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오직 그 가섭 비구만이 마음이 늘 이와 같아, 달라붙지 않고 묶이지 않고 물들지 않는 마음으로 다른 집에 들어간다.」
주 0299c25.1의 앞 절과 같은 내용을 되풀이한다. 팔리 146.19 (Kassapassa … cittaṃ na sajjati na gayhati na bajjhati)에 해당하나 이미 0299c25.1이 같은 팔리 자리에 걸려 있다. 팔리의 gayhati 자리에 染. 其唯의 其는 지시·강조로 읽어 「그」.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19
爾時,世尊告諸比丘:「何等像類比丘應清淨說法?」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어떤 모습의 부류인 비구가 청정하게 법을 설해야 하는가?」
주 팔리 둘째 질문은 「어떤 모습의 비구에게 청정하지 않은 설법이 있고, 어떤 모습의 비구에게 청정한 설법이 있는가」 두 가지를 함께 묻는다. 한역 질문은 청정한 설법만 묻고, 청정하지 않은 설법은 대답(0300a07.2)에서만 나온다. 이 경의 3분할표는 清淨을 DA의 도시 이름(Sobhavatī)으로 의역 처리했으나 여기서는 일반 낱말이다(전거표 ⚠다른 부(DA)의 대역, 동형이의). 표를 적용하지 않고 「청정하게」로 옮겼다. 於意云何가 이 질문에는 앞서지 않는다(0299c14.1과 다름).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23
諸比丘白佛:「世尊是法根、法眼、法依,唯願廣說!諸比丘聞已,當受奉行。」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뿌리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이십니다. 부디 널리 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구들은 듣고 나서 받아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주 0299c15.1과 같은 정형구이다(그 비고 참조). 이문(0299015)은 0299c15.1의 唯=惟(聖)에만 걸리고 이 좌표에는 교감주가 없다. 廣說은 생략 표지가 아니라 청하는 동사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24~146.26
佛告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그대들을 위해 설하겠다.
주 팔리 「Tena hi, bhikkhave,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bhāsissāmi」에 해당한다. 팔리는 이어서 비구들의 승낙(146.29 Evaṃ, bhante)과 「세존이 이렇게 말씀하셨다」(146.30)를 두나 한역에는 이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PN:sn16.3/146.29~146.30 absent). 당위 當은 어미 「-겠다」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27~146.28
若有比丘作如是心為人說法:『何等人於我起淨信心,為本已當得供養衣被、飲食、臥具、湯藥。』
비구가 이와 같은 마음을 지어 남을 위해 법을 설한다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깨끗한 믿음의 마음을 일으키면, 그것을 근본으로 삼은 뒤에 옷과 이불, 음식, 침구, 탕약의 공양을 얻으리라.』
주 팔리 146.32의 생각은 「내 법을 들어 주었으면, 듣고서 깨끗한 믿음을 일으켰으면, 믿는 이들이 믿음의 표시를 해 주었으면(pasannākāraṃ kareyyuṃ)」이다. 한역은 듣는 단계(suṇeyyuṃ)가 없고, 믿음의 표시(pasannākāra)를 옷·이불·음식·침구·탕약 같은 구체물 공양으로 열거한다. 臥具는 전거표에 당대 범어 śeyanāsanaṃ가 달려 있으나(근거 인용만) 이 경에는 산스크리트 대응이 읽히지 않는다. 何等人於我起淨信心,為本已當得供養…은 「어떤 사람이 믿음을 일으켜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공양을 얻을까」 같은 의문·바람으로도, 위처럼 조건·결과로도 읽혀 불확실 신고(為本已의 已는 「~한 뒤에」로 읽음). 若有比丘는 「비구가 …하면」으로 흡수했고 有의 존재 서술은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31~146.33
如是說者,名不清淨說法。
이와 같이 설하는 것은 청정하지 않은 설법이라고 이름한다.
주 팔리 「evarūpassa kho, bhikkhave, bhikkhuno aparisuddhā dhammadesanā hoti」와 뜻이 같다. 者는 「~하는 것은」으로 명사화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6.3:146.33
「若復比丘為人說法,作如是念:『世尊顯現正法、律,離諸熾然,不待時節,即此現身,緣自覺知,正向涅槃,而諸眾生沈溺老、病、死、憂、悲、惱、苦,如此眾生聞正法者,以義饒益,長夜安樂。』
「또 비구가 남을 위해 법을 설하면서 이와 같이 생각하면: 『세존께서 바른 법과 율을 드러내 보이시니, 모든 타오름을 떠나고 시절을 기다리지 않으며 바로 이 현재의 몸에서 스스로 깨달아 앎에 말미암아 열반으로 바르게 향한다. 그런데 모든 중생은 늙음, 병, 죽음,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 가라앉아 빠져 있으니, 이러한 중생으로서 바른 법을 듣는 이는 뜻으로써 이익이 넉넉하여 긴 밤 동안 안락하다.』
주 팔리 146.35의 정형구(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에 한역 離諸熾然·不待時節·即此現身·緣自覺知·正向涅槃이 서나 항이 하나씩 맞지 않는다. 不待時節은 akāliko와 뜻이 겹쳐 보이고 ehipassiko에 해당하는 구는 없으며 나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정형구 해석은 하지 않고 한자대로 옮겼다. 팔리 146.36 「내 법을 듣고 알고 그대로 실천했으면」에 해당하는 것은 한역의 「중생이 바른 법을 듣고 뜻으로 이익이 넉넉하여 긴 밤 안락함」이며 내용이 같지 않다. 한역 而諸眾生沈溺…은 중생의 괴로움을 말하는 문장으로 팔리 이 자리에 없다. 구문: 離諸熾然 이하의 주어가 법인지 세존인지, 緣自覺知의 緣, 以義饒益의 능동·피동이 문법만으로 서지 않아 한 읽기를 택했다. 悲는 여기서는 憂悲惱의 「슬픔」이고 다음 좌표 慈悲의 「연민」과 뜻이 갈린다. 憂·悲·惱는 확정역이 없어 근심·슬픔·번민으로 옮겼다. 沈溺은 음의 慧琳 0322c14 「沈沒也 … 沒水中」에 따라 「가라앉아 빠지다」. 熾然은 음의 慧琳 0516a19 「熾盛也 … 猛火也」에 따라 「타오름」. 世尊이 여기서 正法、律의 주어로 서는 반면 뒤(0300a17.1)에는 如來가 같은 자리에 선다. 即는 「바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34~146.36
以是正法因緣,以慈心、悲心、哀愍心、欲令正法久住心而為人說,是名清淨說法。
이 바른 법의 인연으로써, 자애의 마음, 연민의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바른 법이 오래 머물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설한다. 이것을 청정한 설법이라 이름한다.
주 팔리 146.37 「dhammasudhammataṃ paṭicca, kāruññaṃ paṭicca anuddayaṃ paṭicca anukampaṃ upādāya」(법의 훌륭함에 말미암아, 연민·동정·배려에 말미암아)와 146.38 「evarūpassa … parisuddhā dhammadesanā hoti」에 해당한다. 以是正法因緣은 paṭicca(말미암아) 쪽 구문과 가깝다. 한역은 마음이 慈·悲·哀愍·欲令正法久住 네 가지이고 팔리는 세 가지(kāruñña·anuddayā·anukampā)이며 慈와 欲令正法久住心에 해당하는 항이 팔리에 없다(어휘 대응은 판정하지 않음). 悲는 여기서는 慈悲의 「연민」(앞 좌표 憂悲惱의 「슬픔」과 갈림). 令은 「-게 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37~146.38
唯迦葉比丘有如是清淨心為人說法,以如來正法、律,乃至令法久住心而為人說。
오직 가섭 비구만이 이와 같은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위해 법을 설하니, 여래의 바른 법과 율로써, 내지 법이 오래 머물게 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설한다.
주 [생략표지] 乃至는 접힌 대로 두었다(앞 좌표의 慈心·悲心·哀愍心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펴지 않는다). 팔리는 가섭에 대해 앞의 정형구와 마음을 그대로 되풀이한다(146.39~146.42). 한역은 되풀이하지 않고 有如是清淨心으로 앞을 받는다. 한자 흔들림: 같은 사안(붓다의 정법·율)을 앞(0300a10.2)은 世尊, 여기는 如來로 가리킨다. 如來는 확정역(여래), 世尊도 확정역(세존)이어서 한 글자씩 고정했다. 이문(0300001): 說은 宋·元·明本에 說法. 有는 「가지고」(소유)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6.3:146.39~146.42
是故,諸比丘!當如是學、如是說法,於如來正法、律,乃至令法久住心為人說法。」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배우고 이와 같이 법을 설하라. 여래의 바른 법과 율에 대하여, 내지 법이 오래 머물게 하는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법을 설하라.」
주 [생략표지] 乃至는 접힌 대로 두었다(0300a17.1과 같은 접힘). 팔리 146.43은 「가섭 또는 가섭과 같은 이로 너희를 가르치겠다. 가르침을 받은 너희는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Kassapena vā … ovadissāmi … tathattāya paṭipajjitabba)」로 맺는다. 한역은 가섭을 본받으라는 말 없이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법을 설하라」로 맺어 같은 자리에서 다른 말을 한다. 當은 명령 어미에 흡수했다. 學은 「배우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6.3:146.43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 경 끝의 정형구(佛說此經已 … 歡喜奉行)에 해당하는 말이 팔리에 없다. 팔리 146.44 Tatiyaṃ은 상윳따 안의 경 번호 표시(세 번째)이며 이 자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所說은 「설하신 것」으로 관형절로 풀었다. 歡喜는 음의 慧琳 0753a01 「歡喜悅也」.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6.3: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