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101

SĀ 1101

교차 검사교차 검사 28현대역 준비 중

(一一〇八)

(1108)

주 한역 제목은 경 번호만 싣고(교감주 다카쿠스: S. 11. 3. 4-5. Akodhana. · 별역 [No. 100(37)]), 팔리 저본은 번호와 경명(Accayasuttaṃ)을 싣는다 — 둘 다 편집 표제라 일부만 겹친다고 매겼다. 대응 후보가 두 계열(莊春江·BZA의 sn11.24 / 다카쿠스의 sn11.3)로 갈려 합의 등급이 conflict다. 보조 증언 sn11.3은 경명이 Dhajagga(깃발 끝)이고 내용이 이 한역과 맞지 않아, 같은 경으로 보이지 않는다(다카쿠스 번호가 PTS 번호라 어긋났을 수 있다). 어느 계열도 정답으로 삼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은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0.3

AG:sa1101/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11.24는 Sāvatthi 도입(270.1)으로 곧장 시작하고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에 해당하는 줄이 없다. 270.1 앞자리에 놓일 자리를 짚어 없음확인으로 매겼다(접힌 …pe… 안쪽이 아니라 그 앞이다). 정형구 개경(如是我聞 이 아함 1,332경).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0

AG:sa1101/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사위〕 舍衛=정착어(「사위」). 慧琳 음의 0367c24: 室羅伐悉底國을 「聞者城」·「聞物國」·「無物不有國」으로 풀어 옮긴다(善見律은 사람 이름이라 함) — 여러 풀이가 갈려 한 뜻으로 정하지 않았다. 〔기수급고독원〕 祇樹給孤獨園을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쓰되 이름의 뜻은 다음과 같다: 祇樹=祇陀(勝) 태자가 제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에 바쳤다 하여 붙은 숲(慧琳 0368a03), 給孤獨=의역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阿那陀, 친속 없는 이를 구제하기로 맹세한 큰 부자), 園=동산. 3분할표가 이 5자를 「보류(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로 두어 이름 전체를 정착어로 판별했으나 유형 확정은 정도평 몫이다. 전거표: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 DA의 대역). 〔한자 흔들림〕 같은 대상(부처님)을 佛과 世尊으로 번갈아 쓴다(이 경 佛 6 · 世尊 2) — 확정역은 佛=부처님, 世尊=세존. 같은 장소도 祇樹(여기)·祇桓(b28.1)·精舍(c02.1)로 흔들린다. 〔대응〕 팔리 270.1 Sāvatthiyaṃ…pe… ārāme는 …pe…로 접혀 안쪽(一時·부처님이 머무심·園 이름)을 읽지 못했다 — 보이는 부분(Sāvatthi·ārāme)만 겹쳐 일부로 매겼다. 보조 sn11.3/249.1은 Sāvatthiyaṃ 한 낱말.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1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3:249.1

AG:sa1101/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晨朝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

그때 세존께서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밥을 비셨다.

주 팔리 sn11.24에는 탁발 장면이 없다. 270.1(접힌 도입)과 270.2(Tena kho pana samayena) 사이에 놓일 자리를 짚어 없음확인으로 매겼다. 晨朝=「이른 아침」(하루를 셋으로 나눈 첫 때, 사전 晨朝 ① 잡아함 157회). 著=입다(사전 著 ① 「衣持」 128; 사전 晨朝 ① 「著衣」 102). 乞食=밥을 빌다. 舍衛城=사위성(정착어, 舍衛의 뜻은 0.3). 世尊=세존 [구속]; 앞 좌표의 佛과 번갈아 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2

AG:sa1101/0291b25.1 · 교차 검사

乞食已,還精舍,舉衣鉢,洗足已,持尼師壇,著右肩上,至安陀林,布尼師壇,坐一樹下,入晝正受。

밥 빌기를 마치고 정사로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고서, 니사단을 들어 오른쪽 어깨 위에 얹고 안타림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한 나무 아래 앉아 낮의 바른 받음에 들었다.

주 팔리 sn11.24에 없는 장면(270.1과 270.2 사이). 〔尼師壇〕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니사단」으로 썼다 — 慧琳 음의 0314a08: 梵語略也, 唐譯為敷具(=坐具). 전거표 근대 후보 Niṣīdana(근대 비정이라 인용만 한다). 〔安陀林〕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安·陀 두 자에 한어 뜻이 실리지 않고 陀가 전형적인 소리 글자라 음역으로 판별하고 「안타림」으로 썼다(표와 어긋나 저본 판별을 따랐다). 전거표: Andhavana(⚠다른 부 MA의 대역). 정도평 확인 몫. 〔正受〕 入晝正受의 正受를 「바른 받음」으로 자구대로 옮겼다 — 사전 正受 ① 잡아함 249회(84경, 앞 入晝 33); 丁福保는 三昧의 의역이라 하나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만 본다. 정수/선정으로 풀지 않았다. 〔晝〕 교감주: 晝=盡【元】【明】【聖】, 본문은 大正 저본 晝. 〔舉衣鉢〕 舉=거두다(사전 舉 ① 「衣鉢」 6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2

AG:sa1101/0291b26.1 · 교차 검사

爾時,祇桓中有兩比丘諍起,一人罵詈,一人默然。

그때 기환 안에서 두 비구의 다툼이 일어나, 한 사람은 욕하고 꾸짖고 한 사람은 잠자코 있었다.

주 팔리 270.2~270.3은 두 비구가 얽혔고(sampayojesuṃ) 그중 한 비구가 허물을 지었다(accasarā)는 것까지만 말한다. 한역은 한 사람의 꾸짖음과 다른 사람의 침묵을 말한다 — 같은 자리에서 쓴 낱말이 달라 일부로 매겼다. 〔祇桓〕 祇桓=Jetavana의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기환」(明본은 洹 → 「기원」). 같은 곳을 앞에서는 祇樹로 썼다(한자 흔들림). 〔有〕 有兩比丘諍起는 「두 비구의 다툼이 일어나」로 주어화했다. 〔罵詈〕 욕하고 꾸짖음(사전 罵詈 ① 6회; 慧琳 음의 0490b18: 惡言及之曰罵, 誹謗呪詛曰詈). 〔이문〕 桓=洹【明】.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2~270.3

AG:sa1101/0291b28.1 · 교차 검사

其罵詈者,即便改悔懺謝於彼,而彼比丘不受其懺,以不受懺故。

그 욕하고 꾸짖은 이가 곧 뉘우쳐 고치고 그에게 참회하며 사죄하였으나, 그 비구가 그 참회를 받지 않았다. 참회를 받지 않은 까닭에,

주 팔리 270.4~270.5(허물을 허물로서 고백하나 그 비구가 받아들이지 않음)와 같은 줄거리다. 한역의 끝 구절 「참회를 받지 않은 까닭에」는 다음 좌표(c02.1)의 소란으로 이어지는 원인절인데 팔리에는 이 연결이 없어 일부로 매겼다. 〔懺〕 懺摩(Kṣama)의 줄임으로 한국 불교계 정착어 「참회」를 썼다(사전 懺 ⑥). 〔受〕 受는 정형구 행(vedanā)에 걸리는 글자이나 여기서는 동사 「받다」다(受其懺) — 느낌이 아니다. 〔改悔〕 뉘우쳐 고침(사전 改悔 ① 6회). 即便은 「곧」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4~270.5

AG:sa1101/0291b29.1 · 교차 검사

時,精舍中眾多比丘共相勸諫,高聲閙亂。

그때 정사 안에서 많은 비구가 함께 서로 권하고 간하며, 높은 소리로 시끄럽고 어지러웠다.

주 같은 자리(앞 좌표의 거절 뒤)에서 팔리 270.6은 「많은 비구가 세존께 나아갔다」(sambahulā bhikkhū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ṃsu)이고 한역은 「많은 비구가 서로 권하고 간하여 소란이 났다」다 — 행위 주체(많은 비구)는 같고 행위가 다르다. 〔共相〕 함께 서로(사전 共相 ① 「問訊」 55, 전체 88회; 丁福保의 자상·공상 교리어와 다르다). 〔勸諫〕 권하고 간함. 〔精舍〕 b28.1의 祇桓 안과 같은 곳을 精舍中으로 쓴다(한자 흔들림). 精舍=정사(정착어). 眾多比丘의 眾多는 「많은」(사전 眾 ① 「多比」 138).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1.24:270.6

AG:sa1101/0291c02.1 · 교차 검사

爾時,世尊以淨天耳過於人耳,聞祇桓中高聲閙亂。

그때 세존께서 깨끗한 하늘귀로, 사람의 귀를 넘어서, 기환 안의 높은 소리로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들으셨다.

주 팔리 sn11.24에는 세존이 하늘귀로 소란을 듣는 장면이 없다(270.5와 270.6 사이). 〔淨天耳〕 淨天耳를 한 덩어리 「깨끗한 하늘귀」로 읽었다. 3분할표의 淨天(Brahmadeva 대역)은 淨天耳의 앞 두 자를 끊어 낸 오적중으로 보고 쓰지 않았다. 〔過於人耳〕 過=넘다, 於=대상 조사로 흡수. 〔이문〕 桓=洹【明】.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6

AG:sa1101/0291c03.1 · 교차 검사

聞已,從禪覺,還精舍,於大眾前敷座而坐,告諸比丘:「我今晨朝乞食,還至安陀林,坐禪入晝正受,聞精舍中高聲大聲,紛紜閙亂,竟為是誰?」

듣고 나서 선에서 깨어 정사로 돌아와, 대중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아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에 밥을 빌고 돌아와 안타림에 이르러, 좌선하여 낮의 바른 받음에 들었는데, 정사 안의 높은 소리와 큰 소리로 어지럽게 뒤섞여 시끄럽고 어지러운 것을 들었다. 도대체 누구 때문인가?”

주 팔리 270.6~270.8은 비구들이 세존께 나아가 절하고 앉아 말씀드리는 장면이고, 세존이 소란을 먼저 듣고 되돌아와 묻는 이 장면은 없다. 〔覺〕 覺은 정형구 행(vedanā)에 걸리는 글자이나 여기서는 「선에서 깨어나다」(從禪覺)다 — 느낌이 아니다. 禪=禪那의 줄임 음역으로 「선」(慧琳 음의 0491b14: 禪那云靜慮). 〔坐禪〕 좌선(정착어). 〔為是誰〕 竟為是誰의 為를 「~ 때문에」로 읽고 「도대체 누구 때문인가」로 옮겼다 — 為가 「~이다」일 수도 있어 구문을 확정하지 않는다. 〔紛紜〕 어지럽게 뒤섞임(慧琳 음의 0896a13: 紛紜亂貌也). 〔이문〕 入=人【大】(CBETA 校訂이 入을 취했고 본문도 入). 諸는 「~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6

AG:sa1101/0291c04.1 · 교차 검사

比丘白佛:「此精舍中有二比丘諍起,一比丘罵,一者默然。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정사 안에서 두 비구의 다툼이 일어나, 한 비구는 욕하고 한 이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주 팔리 270.9는 두 비구가 얽혔고 한 비구가 허물을 지었다고 말한다(sampayojesuṃ · accasarā). 한역은 한 비구의 꾸짖음과 다른 이의 침묵을 말한다 — b28.1과 같은 차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는 말이라 존댓말(-습니다)로 통일했다. 〔白佛〕 白=아뢰다, 佛=부처님 [구속]. 〔者〕 一者默然의 者는 「이」로 옮겼다. 〔有〕 b28.1과 같이 주어화.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9

AG:sa1101/0291c07.1 · 교차 검사

時,罵比丘尋向悔謝,而彼不受。

그때 욕한 비구가 곧 그를 향해 뉘우쳐 사죄하였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 팔리 270.10(그 비구가 그 비구에게 허물을 허물로서 고백하나 그 비구가 받아들이지 않음)과 같다. 〔尋〕 尋=곧(사전 尋 ① 「即命」 3; ③ 용례 sa1016/0266c19.1 尋即命終도 같은 쓰임). 〔向〕 향함(대상)을 「그를 향해」로 옮겼다. 〔受〕 동사 「받아들이다」(목적어 懺이 생략됨); 정형구 행 vedanā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1.24:270.10

AG:sa1101/0291c09.1 · 교차 검사

緣不受故,多人勸諫,故致大聲,高聲閙亂。」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권하고 간하였고, 그리하여 큰 소리에 이르러 높은 소리로 시끄럽고 어지러웠습니다.”

주 팔리 270.10과 270.11 사이에 놓일 자리 — 소란의 원인을 거절에서 찾는 이 설명절은 팔리에 없다. 〔緣…故〕 緣(~로 말미암아)과 故(까닭)를 겹쳐 쓴 자리로 한 요소로 옮겼다(사전 緣 ① 556회). 〔致〕 이르다(그 결과에 이름). 〔受〕 동사 「받아들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11

AG:sa1101/0291c09.2 · 교차 검사

佛告比丘:「云何?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이르셨다: “어떠한가?

주 팔리 270.11은 곧바로 「두 어리석은 이」를 말하며, 세존이 되묻는 「어떠한가」에 해당하는 줄이 없다(270.10과 270.11 사이). 云何=「어떠한가」(의문사구라 의문 어미가 진다). 告=이르다. 佛=부처님 [구속]; 앞의 世尊(c03.1)과 흔들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11

AG:sa1101/0291c10.1 · 교차 검사

比丘!愚癡之人,人向悔謝,不受其懺,若人懺而不受者,是愚癡人,長夜當得不饒益苦。

비구여! 어리석은 사람은, 사람이 그를 향해 뉘우쳐 사죄하는데도 그 참회를 받지 않는다. 사람이 참회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긴 밤 동안 이롭지 못한 괴로움을 얻을 것이다.

주 팔리 270.11~270.13은 「두 어리석은 이: 허물을 허물로 보지 않는 이, 허물을 고백하는 이를 법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를 말한다. 한역은 뒤쪽(받아들이지 않는 이)만 어리석은 이로 들고 「긴 밤 동안 이롭지 못한 괴로움」을 덧붙인다 — 팔리에 이 결과절이 없다. 〔若…者〕 若은 연결어미 「-면」에 흡수하고 者는 조건 표지로 보아 「-면」에 싣는다(「만약」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長夜〕 긴 밤(사전 長夜 ① 205회). 〔當得〕 當은 어미 「-ㄹ 것이다」로 흡수. 〔不饒益〕 이롭지 못함(饒益=넉넉히 이롭게 함, 사전 饒益 ① 176회). 〔愚癡〕 어리석음. 〔受〕 동사 「받다·받아들이다」(정형구 행 vedanā와 다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11~270.13

AG:sa1101/0291c11.1 · 교차 검사

諸比丘!過去世時,釋提桓因有三十三天共諍,說偈教誡言:

비구들이여! 과거 세상 때에 석제환인에게 삼십삼천이 서로 다투는 일이 있었는데, 게송을 설하여 가르치고 경계하며 말하기를,

주 팔리 270.17은 「옛적에 샥까(Sakka)가 수담마 회당에서 삼십삼천을 달래면서(anunayamāno) 그때 이 게송을 말했다」다. 한역의 「삼십삼천의 다툼」과 「가르쳐 경계함」이 이 달램의 자리에 놓이나 회당 이름은 한역에 없다. 보조 sn11.3/249.6~249.7도 Bhūtapubbaṃ…으로 시작하고 249.7에 sakko devānamindo deve tāvatiṃse가 나오나 내용은 신과 아수라의 전쟁이라 낱말 수준에서만 겹친다. 〔有…共諍〕 「석제환인에게 삼십삼천의 다툼이 있었다」(삼십삼천 사이의 다툼)로 읽었으나 「석제환인이 삼십삼천과 다퉜다」로도 읽힌다 — 팔리의 anunayamāno(달램)는 앞의 읽기와 맞는다. 〔釋提桓因〕 3분할표가 「유형이 갈림」으로 둔 이름이다. 慧琳 음의 0482c21이 釋迦提婆因達羅를 「能(釋)·天(提婆)·帝(因達羅)」로 풀되 글자 자체는 소리를 옮긴 것이어서 음역으로 판별하고 한자 독음 「석제환인」을 썼다 — 유형 확정은 정도평 몫. 전거표(⚠다른 부 DA/EA의 대역): 팔리 Sakka devānaṃ Inda ↔ 근대 비정 Śākradevānāmiṁdra — 갈린 두 계통을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三十三天〕 3분할표 음역 → 한자 독음 「삼십삼천」(팔리 Tāvatiṃsā). 〔教誡〕 가르쳐 경계함(사전 教誡 ① 51회 「教授」). 〔偈〕 게송(정착어). 過去世時=과거 세상 때. 諸比丘=비구들이여.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3:249.6~249.7

AG:sa1101/0291c13.1 · 교차 검사

「『於他無害心,瞋亦不纏結,

‘다른 이에게 해침 없는 마음으로, 성냄도 얽혀 맺히지 않고,

주 한역 게송은 18줄(이 좌표부터 c23.1까지 9좌표), 팔리 게송(270.18~270.20)은 3줄이다. 이 좌표는 「다른 이에게 해침 없는 마음 · 성냄이 얽혀 맺히지 않음」, 팔리 270.18은 「성냄이 너희의 지배 아래 오기를, 벗들에게서 늙음(쇠함)이 없기를(Kodho vo vasamāyātu, mā ca mittehi vo jarā)」 — 성냄을 다루는 주제는 같으나 말하는 것이 다르다. 게송 전체가 이렇게 갈리므로, 莊春江·BZA의 sn11.24가 이 한역의 짝 경이 아닐 가능성(대응 후보 conflict)을 그대로 신고한다. 줄 대 줄 대응이 서지 않아 구간 단위로 엇갈림으로 매겼다. 〔無害〕 3분할표 의역 → 「해침 없음」 (전거표 Ahiṃsaka ⚠다른 부 EA의 대역; 사전 無害 ① 2회). 〔他〕 自와 짝을 이루지 않아 「남」이 아니라 「다른 이」로 옮겼다. 〔瞋〕 성냄(사전 瞋 ① 69회). 〔纏結〕 얽혀 맺힘(纏=번뇌, 사전 纏 ① 46회; 結 ① 112회). 〔亦〕 「도」로 흡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1.24:270.18

AG:sa1101/0291c15.1 · 교차 검사

懷恨不經久,於瞋以不住。

원한을 품어도 오래 지나지 않고, 성냄에 머물지 않으며,

주 팔리 270.19는 「비난할 수 없는 이를 비난하지 말고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Agarahiyaṃ mā garahittha, mā ca bhāsittha pesuṇaṃ)」 — 이 줄(원한이 오래가지 않음 · 성냄에 머물지 않음)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줄 대 줄이 아니라 구간 대응이다. 〔懷恨〕 원한을 품음(사전 恨 ① 31회). 〔於瞋以不住〕 以는 흡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1.24:270.19

AG:sa1101/0291c16.1 · 교차 검사

雖復瞋恚盛,不發於麁言,

비록 성냄과 화가 성하여도, 거친 말을 내지 않고,

주 「거친 말(麁言)을 내지 않음」과 팔리 270.19의 「이간하는 말(pesuṇaṃ)을 하지 말라」는 둘 다 해로운 말을 삼가라 하나 가리키는 말의 종류가 다르다(거친 말 / 이간하는 말). 〔雖復〕 雖復는 「비록」의 관용 연결이라 復의 「다시」는 세우지 않았다. 〔瞋恚〕 3분할표 의역 → 「성냄과 화」(전거표 Byāpāda). 〔麁〕 거침(麁=粗).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1.24:270.19

AG:sa1101/0291c17.1 · 교차 검사

不求彼開節,揚人之虛短。

그의 열린 마디를 구해 사람의 허황된 흠을 드날리지 않으며,

주 팔리 270.19의 「비난할 수 없는 이를 비난하지 말라(Agarahiyaṃ mā garahittha)」와 같은 구간(남의 흠을 들추지 말라는 취지)에 놓이나 말하는 내용이 다르다. 〔開節〕 開節은 「열린 마디」로 자구대로 옮겼고, 틈·허점의 뜻으로 읽을 수 있으나 본문을 풀지 않았다. 교감주: 開【大】, 關【宋】, 闕【元】【明】【聖】 — 闕節이면 「빠진 마디」, 關節이면 「관절」이라 읽는 길이 갈린다. 〔虛短〕 虛=헛됨, 短=모자람·흠; 「거짓된 흠」인지 「허황된 흠」인지 저본 문맥만으로 정하지 못했다. 〔구두〕 不이 求彼開節과 揚人之虛短 두 구에 걸린다고 읽어 한 문장으로 옮겼다. 人之의 人은 自와 짝이 아니라 「사람」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1.24:270.19

AG:sa1101/0291c18.1 · 교차 검사

常當自防護,以義內省察,

늘 자신을 막고 지키며, 뜻으로써 안을 살피라,

주 팔리 270.19와 270.20 사이에 놓일 자리 — 자신을 지키라는 줄이 팔리 게송에 없다. 〔當〕 當은 어미 「-라」로 흡수. 〔自〕 自↔他 대조가 없어 「스스로」를 세우지 않고 「자신을」로 흡수. 〔以義〕 義를 「뜻」으로 옮겼다: 의미·이로움·정의 어느 갈래인지 저본 문맥만으로는 갈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20

AG:sa1101/0291c19.1 · 교차 검사

不怒亦不害,常與賢聖俱。

성내지 않고 해치지도 않으며, 늘 어질고 성스러운 이와 함께한다.

주 팔리 270.19와 270.20 사이에 놓일 자리 — 「늘 현성과 함께함」에 해당하는 줄이 없다. 팔리 270.18의 「벗들에게서 늙음(쇠함)이 없기를(mā ca mittehi vo jarā)」과 주제(벗·함께함)가 가깝다고 볼 수도 있으나 같은 말이 아니라 이어 붙이지 않았다. 〔賢聖〕 어질고 성스러운 이(賢聖의 풀어 옮김). 〔亦〕 「도」로 흡수. 〔이문〕 怒=恕【宋】【聖】, 害=虛【聖】 — 본문은 大正 저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1.24:270.20

AG:sa1101/0291c20.1 · 교차 검사

若與惡人俱,剛彊猶山石,

악한 사람과 함께하면, 굳고 억세어 산의 돌과 같다,

주 팔리 270.20은 「성냄이 악한 사람(pāpajanaṃ)을 산이 누르듯(pabbatova) 짓누른다」 — 惡人 ↔ pāpajana, 山 ↔ pabbata가 겹치나 한역은 「악한 사람과 함께하면 굳고 억세다」, 팔리는 「성냄이 악한 사람을 누른다」로 말한다. 〔若〕 연결어미 「-면」에 흡수. 〔剛彊〕 굳고 억셈.

니까야 대응 일부 SN 11.24:270.20

AG:sa1101/0291c21.1 · 교차 검사

盛恚能自持,如制逸馬車。

성한 화에도 자신을 붙들 수 있으니, 달아나는 말 수레를 제어함과 같다,

주 팔리 게송(270.18~270.20)에 수레·말의 비유가 없다 — 270.20 뒤에 놓일 자리로 매겼다. 〔能自持〕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 自持의 自는 단순 재귀라 「자신을」로 흡수. 〔逸馬車〕 逸=달아남(慧琳 음의 0611b15: 逸走去也, 奔逸也); 馬車는 전거표에서 당대 후보 rtha. 逸馬車를 「달아나는 말 수레」로 옮겼다. 〔如〕 「~과 같다」.

AG:sa1101/0291c22.1 · 교차 검사

我說為善御,非謂執繩者。』」

나는 좋은 마부라 말하며, 줄을 잡은 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 팔리 게송 끝(270.20) 뒤에 놓일 자리 — 「좋은 마부」 정의에 해당하는 줄이 없다. 〔為〕 說為: 말하여 ~라 한다. 〔御〕 마부. 〔繩〕 줄(고삐로 풀지 않았다). 〔非謂〕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용 닫음: 이 좌표에서 게송과 세존의 말씀이 함께 닫힌다.

AG:sa1101/0291c23.1 · 교차 검사

佛告諸比丘:「釋提桓因於三十三天為自在王,常行忍辱,亦復讚歎行忍者。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석제환인은 삼십삼천에서 자재한 왕이 되어, 늘 인욕을 행하고 또한 참음을 행하는 이를 찬탄한다.

주 팔리 sn11.24에는 게송 뒤에 이 설명(샥까가 인욕을 행하고 찬탄함)이 없다 — 270.20 뒤에 놓일 자리. 〔自在王〕 自在는 「자재한」으로 옮겼고 自는 재귀가 아니라 낱말의 일부다. 〔忍辱〕 인욕(정착어); 같은 문장의 行忍者는 忍만 있어 「참음을 행하는 이」로 옮겨 忍辱/忍을 통일하지 않았다. 〔亦復〕 「또한」(뜻이 실린 첨가); 復의 「다시」는 세우지 않았다. 〔釋提桓因〕 앞(c13.1)과 같이 「석제환인」. 佛=부처님 [구속].

AG:sa1101/0291c24.1 · 교차 검사

汝等比丘正信非家,出家學道,當行忍辱,讚歎忍者,應當學!」

그대들 비구는 바른 믿음으로 집 아님으로 집을 떠나 도를 배우니, 인욕을 행하고 참는 이를 찬탄하라. 배워야 한다!”

주 팔리 sn11.24에 이 권계가 없다(270.20 뒤). 〔正信非家出家〕 非家를 「집 아님」(도착점)으로, 出家를 「집을 떠나」로 읽고 正信을 「바른 믿음으로」로 이었다 — 正信非家 / 出家學道의 끊는 자리가 둘 이상 가능해 구두를 신고한다. 3분할표: 出家는 의역 → 「집을 떠나」. 〔信〕 信은 정형구 행(saddhā: 여래에 대한 믿음)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믿음」으로 옮겼다. 〔當…應當〕 當은 어미 「-라」로, 應當은 어미 「-야 한다」로 흡수. 〔忍者〕 참는 이. 汝等=그대들.

AG:sa1101/0291c25.1 · 교차 검사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고 나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sn11.24 끝(270.20)에 맺음 정형구가 없다 — 그 뒤에 놓일 자리. 보조 sn11.3/249.31의 Idamavoca bhagavā는 비슷한 자리의 정형구이나 이 한역과 같은 경이 아니어서 대응으로 올리지 않았다. 〔所〕 「~하는 바」를 피하고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 기뻐하며 받들어 행함(慧琳 음의 0753a01: 歡=悅). 佛=부처님 [구속].

AG:sa1101/0291c27.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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