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094

SĀ 1094

교차 검사교차 검사 17현대역 준비 중

(一一〇一)

(1101)

주 한역 0.1은 경 이름이 아니라 경 번호(一一〇一)이고 팔리 0.3은 경 이름(Kinnusīhasuttaṃ)이라 글자로 맞물리는 자리가 없다(없음확인). 교감주 「S. 4. 2. 2. Sīha」는 다카쿠스가 단 팔리 대응 표시이며 상응부 4 · 품 2 · 경 2로 읽힌다. 본 후보 sn4.12(Kinnusīha)는 사자(Sīha)가 든 이름과 줄거리(마의 질문 게송 · 사자후)가 한문과 맞는다. 보조로 받은 sn4.2(Hatthirājavaṇṇa)는 마가 코끼리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이라 한문 줄거리(젊은이 · 사자후 게송)와 맞지 않는다 — 각주의 품 안 번호가 PN 누적번호와 달라 어긋난 것으로 보이나 미확인이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전 좌표의 SF는 unaligned(미결)로 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2:0.3

AG:sa1094/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본 후보 sn4.12 팔리 원문은 개경 정형구 없이 Ekaṃ samayaṃ으로 시작한다(없을 자리는 148.1 앞이라 148.0으로 짚음). 보조 sn4.2/138.1에는 Evaṃ me sutaṃ이 있다. 如是我聞은 정형구이며 如는 비유가 아니라 「이와 같이」(如是)의 일부로 옮겼다. 사전 如是我聞 ① 1333회 · 이 경 0.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2:148.0

니까야 대응 같음 SN 4.2:138.1

AG:sa1094/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波羅㮈國仙人住處鹿野苑中。

한때 부처님께서 바라내국 선인이 머무는 곳 녹야원 안에 머무셨다.[불확실]

불확실 처소가 갈린다 — 팔리 148.1은 사위성 기원정사(Sāvatthi, Jetavana), 한역은 바라내국 녹야원. 佛은 확정역 「부처님」[구속 253]; 한역이 이어 世尊도 쓰므로(c22.1 등)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팔리는 둘 다 bhagavā). 波羅㮈는 소리 옮김이라 한자 독음 「바라내」(㮈는 柰의 이체, 이문 宋元明 柰는 독음이 같아 본문에 영향이 없다). 전거 `波羅㮈國仙人住處鹿野苑` ← Bārāṇasī · Isipatana Migadāya(팔리형은 여기에만 둔다). 3분할표의 波羅(Sāla) 항은 波羅㮈의 앞 두 글자에서 걸린 것으로 보여 따르지 않았다. 仙人住處는 뜻글자 의역이라 「선인이 머무는 곳」으로 옮겼다. 鹿野苑은 정형구 행이 「이시빠따나 녹야원」의 정착형으로 올려 두어 정착어 「녹야원」을 그대로 쓰며, 뜻은 鹿(사슴)·野(들)·苑(동산, 慧琳 0608c24 「養禽獸曰苑」 짐승을 기르는 곳)이다. 3분할표는 處鹿野을 의역으로 분류하였으나 정형구 행은 정착형이어서 유형이 서로 달라 로 신고한다. 一時=한때, 中=안.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2:148.1

AG:sa1094/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如來聲聞作師子吼,說言:『已知!已知!』不知如來聲聞於何等法已知、已知故作師子吼?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성문이 사자후를 하여 말하기를 『이미 안다! 이미 안다!』 하는데, 여래의 성문이 어떤 법을 이미 알고 이미 알기 때문에 사자후를 하는지 알지 못하는가?

주 팔리 148.2는 세존이 큰 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신다는 장면 설정뿐이고, 비구들에게 성문의 사자후와 그 근거를 묻는 이 발화는 팔리에 없다(한역이 더 구체적이라 partial). 世尊은 확정역 「세존」[구속 252]이며 앞 좌표의 佛과 한자가 흔들린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如來=여래[구속 254], 比丘=비구[구속 265]. 告諸比丘의 諸는 「-들」로 흡수했다(모든을 세우지 않음). 聲聞은 정착어 「성문」(듣는 이 · 제자), 師子吼는 정착어 「사자후」(사자의 울부짖음, 대중 앞에서 두려움 없이 하는 선언; 사전 師子吼 ① 35회 · 앞 眾中 12). 師子는 소리 옮김(3분할표 음역)이라 독음 「사자」이다. 음역계통: 師子는 전거에 팔리형 Sīha / 당대 범어형 sīgha가 갈려 서 있다(다른 부 DA의 대역; 판정하지 않음). 比丘도 전거에 팔리형 bhikkhu / 근대 범어형 Bhikṣu(근대 비정)가 있다(확정역이 이긴다). 已知의 已는 완료로 보아 「이미 안다」로 옮기고 외침과 질문에서 같은 말로 고정했다. 於는 조사로 흡수, 何等=어떤. 맨 끝 不知…?는 주어(너희)가 생략된 반문 「알지 못하는가?」로 읽었다 — 「(너희는) 알지 못한다」는 평서 읽기도 구문상 가능하나 뒤 좌표가 답(네 진리)을 이어 주므로 질문으로 보았다. 인용은 다음 좌표 끝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2

AG:sa1094/0289c22.1 · 교차 검사

謂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跡聖諦。」

이른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 모임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 소멸의 길 자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주 팔리 sn4.12 전문에 네 진리의 열거가 없다(없을 자리는 148.2 뒤). 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跡聖諦는 낱말 확정역이 없어 분석적으로 옮겼다(聖諦=성스러운 진리, 사전 聖諦 ① 앞 道跡 105 · 苦集 103 · 苦滅 103). 集은 정형구 행에 samudaya(일어남)로 올라 있으나 낱말 확정역은 없다고 하므로 한자 뜻 그대로 「모임」으로 옮기고 일어남은 여기에만 둔다 [확정역_부재]. 滅=소멸. 道跡은 慧琳 0783b04 〔鞞婆沙阿毘曇論〕이 跡을 「足跡也」(발자취)로 풀어 「길 자취」로 옮기되 길 쪽 뜻으로 읽을 가능성은 남긴다 [술어·낱말_선택]. 謂는 「이른바」, 목적 없이 끝나는 열거라 서술 어미 「이다」를 한국어 문법상 붙였다. 앞 좌표에서 연 인용을 여기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2:148.2

AG:sa1094/0289c24.1 · 교차 검사

時,天魔波旬作是念:「沙門瞿曇住波羅㮈國仙人住處鹿野苑中,為諸聲聞說法,乃至已知四聖諦。

그때 하늘의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바라내국 선인이 머무는 곳 녹야원 안에 머물며, 성문들을 위해 법을 설하고, 내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이미 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148.4는 「큰 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한다」이고 한역은 「성문들을 위해 법을 설하되 내지 네 진리를 이미 안다」로 처소와 내용이 더 구체적이다. 天魔波旬은 3분할표 혼합형 — 天은 뜻(하늘의), 魔·波旬은 소리라 「하늘의 마 파순」으로 옮겼다. 慧琳 0449c23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는 이를 「提婆魔囉播裨」로 풀어 提婆=天, 魔囉=障礙, 播裨=罪惡이라 한다(인용일 뿐 확정역 아님). 3분할표가 魔波旬을 의역으로 분류하였으나 慧琳 0465b15 〔大般涅槃經音義〕가 소리 옮김으로 풀어 음역으로 처리했다 — 표와 어긋나 로 신고한다. 전거: 천마파순 ← Māra pāpimant, 魔波旬 ← Māra pāpiman(다른 부 DA의 대역).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天魔波旬/惡魔波旬/魔波旬). 沙門=사문(정착어, 소리 옮김), 瞿曇=고따마[구속 262]. 음역계통: 沙門은 전거에 팔리형 Samaṇa / 근대 범어형 Śramaṇa(다른 부 MA의 대역), 瞿曇은 팔리형 Gotama / 근대 범어형 Gautama(다른 부 DA의 대역)로 갈려 서 있다(판정하지 않음). 鹿野苑 · 仙人住處는 0.3과 같은 사안이다. 乃至已知四聖諦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로 보아 펴지 않고 「내지」로 두었다 — 무엇이 접혔는지 한문이 말하지 않는다 [생략표지]. 四聖諦는 앞 좌표와 맞춰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已知=이미 안다, 為諸聲聞의 諸는 「-들」로 흡수. 마의 생각이므로 청자 없는 평서이다. 인용은 다음 좌표 끝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3~148.4

AG:sa1094/0289c26.1 · 교차 검사

我今當往,為作留難。」

내가 이제 가서 방해를 하겠다.」

주 팔리 148.5는 「고따마에게 가 vicakkhukammāya 하자」이고 한역은 「가서 留難을 짓겠다」로 같은 자리에서 목적 낱말이 다르다(partial). 當往의 當은 당위·미래라 어미 「-겠다」로 흡수했다(마땅히를 세우지 않음). 我今=내가 이제. 為作留難은 사전 留難 ① 에서 앞 為作이 25/31로 굳은 짝(「為作留難」 정형)이어서 為를 作과 묶어 따로 옮기지 않고 「방해를 하겠다」로 옮겼다 — 為를 「그를 위해」로 읽을 수도 있어 신고한다. 留難은 留(붙들다)+難(어려움)이고 사전 ⑥ 후대 풀이는 「수행의 장애」이다. 위 좌표에서 연 인용을 여기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5

AG:sa1094/0289c28.1 · 교차 검사

化作年少,住於佛前,而說偈言:

변화하여 젊은이가 되어 부처님 앞에 머물러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 148.6~148.7은 마가 세존께 다가가 게송으로 말했다는 것뿐이고, 젊은이로 변해 앞에 머문다는 내용(化作年少)은 sn4.12에 없다. 보조 sn4.2/138.4에는 마가 코끼리 모습으로 변해 다가가는 대목이 있으나 변한 모습이 다르다(partial). 化作은 사전 化作 ① 앞 即 16 · 뒤 年少 21, 年少=젊은이. 住於佛前의 佛은 다시 佛이라 世尊과 한자가 흔들린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於는 조사로 흡수,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偈는 정착어 「게송」(慧琳 0483c01 〔音妙法蓮花經〕 「梵云伽陀此云頌美歌也」). 주어(마 파순)는 한문에 생략되어 한국어도 생략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6~148.7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138.4

AG:sa1094/0289c28.2 · 교차 검사

「何於大眾中,無畏師子吼,

「어찌하여 대중 가운데서 두려움 없이 사자후를 하시며,

주 大眾中=parisāyaṃ, 無畏=visārado, 師子吼=sīhova nadasi, 何=kinnu로 빠진 것도 더한 것도 없다(어순만 다르다). 마의 발화이고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존대로 통일했다(⑦). 無畏는 「두려움 없이」, 大眾은 「대중」, 於는 「-서」로 흡수. 게송 행을 그대로 유지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12:148.8

AG:sa1094/0290a01.1 · 교차 검사

謂呼無有敵,望調伏一切?」

적수가 없다고 일컬어 외치시며, 모든 것을 길들여 굴복시키기를 바라십니까?」

주 같은 자리에서 극성이 갈린다 — 팔리 148.9 Paṭimallo hi te atthi는 「그대에게 적수가 있다」이고 한역 謂呼無有敵은 「적수가 없다고 일컬어 외친다」이다. 뒤 vijitāvī nu maññasī(이겼다고 생각하는가)는 望調伏一切(모두를 굴복시키기를 바라는가)와 뜻이 가깝다. 無有는 존재 부정이라 「없다」. 謂呼는 謂(일컫다)+呼(외치다)로 보았으나 하나의 말(자칭하여 외침)로 읽을 수도 있어 끊는 자리를 신고한다. 調伏은 사전 調伏 ⑥ 후대 풀이 중 「制伏」(굴복시킴) 쪽만 취해 뜻으로 옮겼다(앞 일체 · 상대를 이기는 문맥). 一切는 「모든 것」. 이문: 敵(大正) / 歒(聖) — 본문은 大正의 敵을 따랐다. 마의 발화이므로 존대로 통일했다(⑦).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2:148.9

AG:sa1094/0290a02.1 · 교차 검사

爾時,世尊作是念:「惡魔波旬欲作嬈亂。」

그때 세존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악한 마 파순이 괴롭히고 어지럽히려 한다.」

주 sn4.12에는 세존의 이 생각 문장이 없다(없을 자리는 148.9와 148.10 사이). 보조 sn4.2/138.8의 「마 파순임을 알고 게송으로 말했다」(māro ayaṃ pāpimā iti viditvā)와 닮았으나 「괴롭히고 어지럽히려 한다」(欲作嬈亂)는 그쪽에도 없어 partial이다. 惡魔波旬은 惡(뜻, 악한)+魔波旬(소리)이라 「악한 마 파순」, 앞의 天魔波旬 · 뒤의 魔波旬과 한자가 흔들린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世尊은 확정역 「세존」. 欲作은 「-려 한다」로 어미에 흡수. 嬈亂은 慧琳 0442c18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嬈=擾也」, 0506c02 「嬈煩也」를 인용해 「괴롭히고 어지럽힘」으로 옮겼다. 붓다의 생각이므로 평서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2:148.9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138.8

AG:sa1094/0290a03.1 · 교차 검사

即說偈言: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 148.10은 인용으로 곧바로 게송이 시작하며 도입구가 없다(없을 자리는 148.10 앞). 即은 마의 게송에 곧 답하는 즉시의 뜻이 실려 「곧」으로 세웠다. 偈 · 說 · 言은 0289c28.2와 같게 옮기되 말하는 이가 붓다이므로 「말씀하셨다」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2:148.10

AG:sa1094/0290a03.2 · 교차 검사

「如來於一切,甚深正法律,

「여래는 일체의 매우 깊은 바른 법과 율에서

주 팔리 148.11은 Tathāgatā balappattā, tiṇṇā loke visattikaṃ(여래들은 힘을 얻어 세상의 집착을 건넜다)이고, 한역과 같은 것은 여래뿐이다(divergent). 팔리는 사자후(148.10)가 먼저, 여래(148.11)가 뒤인데 한역은 순서가 반대다. 如來=여래[구속 254]. 끊기: 於一切甚深正法律을 한 덩어리로 보아 於가 전체를 받게 하고 一切는 「일체의」로 걸었다 — 於一切(일체에서)에서 끊고 甚深正法律을 사자후의 대상으로 읽는 길도 열려 있다. 正法律은 3분할표가 음역(Dhammavinaya)으로 분류하였으나 正·法·律이 모두 뜻글자이고 소리 옮김이 아니라 저본을 따라 뜻으로 「바른 법과 율」로 옮겼다(「법률」은 현대 한국어에서 국가가 제정한 법규범을 가리키는 말이라 피했다). 사전 正法律 ① 13회 · AI 정렬은 sāsane 쪽을 가리키나 사람 확인 전이므로 따르지 않았다. 甚深=매우 깊은. 붓다의 발화라 평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2:148.11

AG:sa1094/0290a05.1 · 교차 검사

方便師子吼,於法無所畏。

방편으로 사자후를 하니, 법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

주 팔리 148.10 Nadanti ve mahāvīrā, parisāsu visāradā(큰 영웅들은 대중 가운데서 자신 있게 포효한다)와 사자후 · 두려움 없음이 겹치나, 한역은 「방편으로」가 더하고 두려움 없는 자리가 「대중 가운데(parisāsu)」가 아니라 「법에(於法)」이다. 가운데 지점이 갈려 partial이다. 方便은 정착어 「방편」(전거: 근대 범어형 Upāya)인데, 사전 方便 ①은 精勤方便(노력)의 짝이 많아(앞 精勤 66) 「노력으로」로 읽을 수도 있어 신고한다. 無所畏의 所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 「두려워할 것」으로 풀었다. 於는 조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10

AG:sa1094/0290a06.1 · 교차 검사

若有智慧者,何故自憂怖?」

만약 지혜 있는 이라면 무슨 까닭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가?」

주 이 반문에 해당하는 팔리 구절이 없다(없을 자리는 148.11 뒤, 148.12 앞). 若은 연결어미 「-라면」으로 흡수했고 「거든」을 쓰지 않았다. 有智慧者의 有는 존재가 아니라 소유(지혜를 지님)의 뜻이 실려 「있는」으로 두었다. 者=이. 自憂怖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로 보아 흡수했다. 何故=무슨 까닭으로, 憂怖=근심하고 두려워하다. 붓다의 발화라 평서. 위 좌표에서 연 인용을 여기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2:148.11

AG:sa1094/0290a07.1 · 교차 검사

時,魔波旬作是念:「沙門瞿曇已知我心。」

그때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내 마음을 이미 안다.」

주 팔리 148.12의 「jānāti maṃ bhagavā, jānāti maṃ sugato」(세존이 나를 안다, 선서가 나를 안다)와 비교해, 한역은 호칭이 沙門瞿曇이고 (maṃ ↔ 我心) 대상이 마음이며 같은 말의 되풀이가 없다(partial). 팔리 한 좌표(148.12)가 한역 두 좌표(0290a08.1 · 0290a08.2)에 걸려 각각 partial이다. 보조 sn4.2/138.11도 같은 문장이다. 魔波旬은 앞의 天魔波旬 · 惡魔波旬과 한자가 흔들린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사문 · 고따마[구속 262]는 0289c26.1과 같다. 已知我心=내 마음을 이미 안다(0289c22.1과 같게 고정).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138.11

AG:sa1094/0290a08.1 · 교차 검사

內懷憂慼,即沒不現。

안으로 근심과 슬픔을 품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憂慼 ↔ dukkhī dummano(괴롭고 낙담한), 即沒不現 ↔ tatthevantaradhāyī(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맞는다. 148.12는 앞 좌표 0290a08.1과 한 좌표를 나눠 쓰므로 이 좌표만으로는 partial이다. 內=안으로, 懷=품다, 憂慼=근심과 슬픔. 即沒不現은 사전 即 ① 뒤 沒不 161/976의 굳은 짝으로 즉시의 뜻이 실려 「곧」을 세웠고 沒은 「사라져」로 옮겼다. 내레이션은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2:148.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138.11

AG:sa1094/0290a08.2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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