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〇九八)
(1098)
주 이 좌표의 한문은 경 번호(一〇九八)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교감주(orig·equivalent)가 「S. 4. 2. 10. Rajja.」를 단다 — 상윳따 4, 둘째 품, 열째 경, 곧 왕 경(Rajjasutta)이며 莊春江 번호 sn4.20과 맞는다(편자 비정이고 한문 실판독이 아니다). 팔리 제목 행(sn4.20/0.3 「Rajjasuttaṃ」)은 이름을 갖고 한역은 번호만 가져 한쪽이 덜하므로 일부(partial)다. 보조 증언 sn4.2(Hatthirājavaṇṇasutta, 마라가 코끼리 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는 다카쿠스 번호가 CST 누적 번호와 어긋난 것으로 보이고 내용도 이 경과 맞지 않아 대응 줄에 매기지 않았다(다만 끝 정형구는 sn4.20/156.17과 같다). 이번 조각에 산스크리트 증언 투입물이 없어 산스크리트 항은 달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4.20은 「Ekaṃ samayaṃ …」(156.1)로 곧바로 시작하며 「Evaṃ me sutaṃ」이 없다(전문 확인, 접힌 곳 없음) — 없음확인(absent). 보조 sn4.2/138.1에는 있으나 다른 경이다. 如是의 「~같이」는 지시의 「이와 같이」이며 비유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20:156.1
一時,佛住釋氏石主釋氏聚落。
한때, 부처님께서 석씨의 돌 주인 석씨 마을에 머무르셨다.
주 一時↔「Ekaṃ samayaṃ」, 佛住↔「bhagavā viharati」는 같으나 머문 곳이 다르다 — 팔리는 「kosalesu … himavantapadese araññakuṭikāyaṃ」(코살라 사람들 가운데 히말라야 지방의 숲속 오두막)이고 한역은 석씨 마을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이라 엇갈림(divergent). 佛=부처님([구속]). 釋氏는 音義合璧이다 — 釋은 소리(전거표 팔리 후보 Sakka), 氏는 뜻(씨족;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91a20 「氏者所以別子孫之所出」)이어서 「석씨」로 적었고, 팔리형(Sakka)과 범어형이 갈리는 계통은 판정하지 않는다. 石主는 3분할표대로 뜻으로 옮겨 「돌 주인」(전거표 팔리 후보 Silāvatī는 다른 부(MA) 대역이고 이 경 팔리에는 대응 지명이 없다). 聚落=마을(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38b03 「聚…小鄉日聚人所居故稱聚落」; 사전 聚落). 끊기가 「釋氏 / 石主釋氏聚落」(석씨, 곧 돌 주인 석씨 마을)일 수도 있으나 본문은 저본 순서대로 두었다. 같은 마을이 c14.1에도 나오며 표기를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20:156.1
爾時,世尊獨一靜處,禪思思惟,作是念:「頗有作王,能得不殺,不教人殺,一向行法,不行非法耶?」
그때 세존께서 홀로 고요한 곳에서 선으로 생각하고 사유하시며 이런 생각을 하셨다: 「혹 왕이 되어서 죽이지 않을 수 있고, 남을 시켜 죽이게 하지도 않으며, 한결같이 법을 행하고 법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 일이 있는가?」
주 156.2 「rahogatassa paṭisallīnassa … cetaso parivitakko udapādi」(홀로 있고 홀로 앉아 …마음의 생각이 일어났다)↔獨一靜處·禪思·作是念. 156.3 「sakkā nu kho rajjaṃ kāretuṃ ahanaṃ aghātayaṃ ajinaṃ ajāpayaṃ asocaṃ asocāpayaṃ dhammenā」(왕으로서 …할 수 있을까)에서 「ahanaṃ aghātayaṃ」(죽이지 않고 죽이게 하지 않으며)은 不殺·不教人殺과 같고, 「ajinaṃ ajāpayaṃ asocaṃ asocāpayaṃ」 두 쌍은 한문에 없다. 「dhammenā」(법에 따라)는 한역에서 一向行法·不行非法 두 구로 풀려 있어 구조가 다르다. 頗有: 주어가 사람인지 사태인지 저본만으로 가려지지 않아 팔리 「sakkā」(~할 수 있을까)와 합치되는 「~하는 일이 있는가」로 옮겼다(사전 頗有 ① 30회, 뒤 一法·色常·法修;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368a10 「普我反或作叵語辭也」). 能得: 能이 어미 「-ㄹ 수 있다」로 지고 得은 겹쳐 세우지 않았다. 不教人殺: 教=시키다, 人=남. 禪思思惟: 禪思=선으로 생각함(사전 禪思 ① 76회, 앞 靜處 15·뒤 思惟 8), 思惟=사유. 耶는 의문 어미로 흡수. 법(法)은 사전 法 ① 그대로 「법」.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2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3
時,魔波旬作是念:「今沙門瞿曇住石主釋氏聚落,獨一禪思,作是念:『頗有作王,不殺生,不教人殺,一向行法,不行非法耶?』
이때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사문 고따마가 돌 주인 석씨 마을에 머물며 홀로 선으로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 『혹 왕이 되어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 죽이게 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법을 행하고 법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 일이 있는가?』
주 마가 읽은 세존의 생각을 c12.1과 거의 같은 말로 되풀이해 인용한다. 팔리 156.4 「cetasā cetoparivitakkamaññāya」(마음으로 마음의 생각을 알고)는 읽었다는 말뿐이고 생각의 내용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c12.1은 能得不殺, 여기는 不殺生으로 적는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殺/殺生). 옮김도 「죽이지 않고」/「살생하지 않고」로 한자를 따라 갈랐다. 魔波旬: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기계 1차 분류)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65b15 「具足梵云稱嚩摩羅波裨旬」는 魔·波旬 모두 소리를 옮긴 것으로 푼다 — 저본·전거와 어긋나 소리로 보고 정착형 「마 파순」으로 적었다. 전거표 팔리 후보 「Māra pāpiman」, 波旬은 팔리 Pāpiman / 근대 범어 Pāpīyas로 갈리는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沙門=사문(정착어, 「힘써 닦는 이」: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20a16 「勤懇」·0477b19 「勤勞」; 팔리 Samaṇa / 근대 범어 Śramaṇa 계통이 갈린다). 瞿曇=고따마([구속]; 팔리 Gotama / 범어 근대 Gautama). 따옴표: 바깥 「는 c17.1에서 닫히고 안쪽 『는 이 좌표 끝에서 닫히지 않는다 — 저본 그대로 두었다(안쪽 』는 있으나 바깥 」는 c17.1). 時(이때)는 앞 爾時(그때)와 가르고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4
我今當往,為其說法。」
나는 이제 가서 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겠다.」
주 我今當往은 팔리 156.4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세존께 다가갔다)와 닿는다. 為其說法(그를 위하여 법을 설하겠다)는 팔리에 없다. 當은 어미 「-겠다」가 진다. 說法=설법(정착어).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4
化作年少,往住佛前,作是言:「如是,世尊!如是,善逝!可得作王,不殺生,不教人殺,一向行法,不行非法。
젊은이로 변화하여 부처님 앞에 가서 머물러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합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왕이 되어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 죽이게 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법을 행하고 법 아닌 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 化作年少(젊은이로 변화함)는 sn4.20에 없다(보조 sn4.2/138.4에는 코끼리 왕의 모습으로의 변화가 있으나 다른 경이다). 往住佛前↔156.5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作是言↔「etadavoca」. 如是 두 번은 팔리에 없는 응답어다. 156.6 「kāretu, bhante, bhagavā rajjaṃ, kāretu, sugato, rajjaṃ ahanaṃ aghātayaṃ …」은 호칭을 먼저 부르는 명령법(왕권을 행하소서)이고, 한역은 가능(可得)으로 조건 나열을 먼저 두고 호칭은 c20.1에서 되풀이한다 — 자리바뀜. 可得: 可(가능/허락 양독)와 得이 겹쳐 「-ㄹ 수 있다」로만 옮겼다. 팔리 명령법의 허락 뜻은 비고로만 둔다. 化作=사전 化作 ③ 「sa1077/0284b27.1 …化作年少,往住佛前」과 같은 정형. 住는 「머물러」로 옮겼다. 善逝=온전히 이루신 분([구속]; 팔리 sugata). 한자 흔들림: 한 좌표에 佛(佛前)과 世尊(호격)이 함께 나온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이 부처님/세존으로 각각 있어 한국어도 갈렸다). 따옴표: 이 좌표는 「로 열고 닫지 않는다(c20.1에서 닫힘).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5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4.20:156.6
世尊!今可作王,善逝!今可作王,必得如意。」
세존이시여! 이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이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뜻대로 됨을 얻으실 것입니다.」
주 호칭을 바꿔 같은 말을 두 번 하는 틀은 팔리 156.6 「kāretu, bhante, bhagavā rajjaṃ, kāretu, sugato, rajjaṃ」과 같다. 팔리는 호칭이 말머리, 한역은 호칭 뒤에 今可作王이 붙는다. 必得如意(반드시 뜻대로 됨을 얻는다)는 팔리 156.6에 없다. 如意=뜻대로 됨(사전 如意 ① 13회). 可는 c17.2와 같이 「-ㄹ 수 있다」로 옮겼다. 존칭: 마가 세존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4.20:156.6
爾時,世尊作是念:「惡魔波旬欲作嬈亂。」
그때 세존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악마 파순이 괴롭히고 어지럽히려 한다.」
주 sn4.20은 156.6에서 156.7로 곧바로 세존의 물음(「Kiṃ pana me tvaṃ, pāpima, passasi …」)으로 넘어가며, 세존이 마를 알아보는 서술이 없다(전문 확인). 보조 sn4.2/138.8의 「māro ayaṃ pāpimā iti viditvā」는 다른 경의 문장이다. 惡魔波旬=악마 파순. 한자 흔들림: 같은 존재를 魔波旬(c14.1)·惡魔波旬(이 좌표)·魔·波旬(c22.1·c29.1)으로 다르게 적는다. 嬈亂=괴롭히고 어지럽힘(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42c18 「嬈…擾也…擾煩也」; 사전 嬈亂 ③ 「為作嬈亂」). 欲作은 어미 「-려 한다」로 흡수. 존칭: 세존의 생각이라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20:156.7
而告魔言:「汝魔波旬!何故作是言:『作王!世尊!作王!善逝!可得如意。』
마에게 말씀하셨다: 「너 마 파순아!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느냐: 『왕이 되십시오! 세존이시여! 왕이 되십시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뜻대로 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 156.7 「Kiṃ pana me tvaṃ, pāpima, passasi yaṃ maṃ tvaṃ evaṃ vadesi」는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그리 말하느냐」이고 한역 何故作是言은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느냐」라 물음의 초점이 다르다. 156.8의 인용은 호칭 두 번과 함께 「ahanaṃ aghātayaṃ …dhammenā」 조건을 되풀이하는데, 한역은 조건을 빼고 可得如意를 더한다.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魔·魔波旬: 이 좌표에 魔(告魔言)와 魔波旬(汝魔波旬)이 함께 나온다 — 한자 흔들림. 인용 속 「作王!」은 마의 말이므로 마가 세존께 하는 존댓말(「되십시오」)을 유지했다. 따옴표: 바깥 「는 c23.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7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8
?」
?」
주 부호만 있는 좌표다. 물음표와 닫는 따옴표로, 팔리 156.8 끝 「…dhammenā’’’ti?」의 물음 표지·인용 닫음과 같은 기능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20:156.8
魔白佛言:「我面從佛聞作是說:『若四如意足修習多修習已,欲令雪山王變為真金,即作不異。』
마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부처님으로부터 면전에서 이렇게 말씀하심을 들었습니다: 『네 가지 뜻대로 됨의 발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고 나서, 설산왕이 변하여 참 금이 되게 하고자 하면, 곧 이루어 다르지 않다.』
주 팔리 156.9~156.10은 마가 「세존께서는 네 가지 신통의 토대(cattāro iddhipādā)를 닦으셨고 …원하신다면 히말라야를 황금이라 결의하실 수 있고 그것은 황금이 될 것」이라 직접 단정한다. 한역은 이를 「부처님께 들은 말씀」의 인용(c24.1)과 그 적용(c26.1) 둘로 나눈다. 팔리의 「yānīkatā vatthukatā anuṭṭhitā paricitā susamāraddhā」(수레로 삼고 터전으로 삼고 …)는 한문에 없다. 四如意足: 확정역이 없다. 如意=뜻대로 됨, 足=발(팔리 iddhipādā의 뒷마디, 곧 토대에 해당하는 자리)로 풀어 「뜻대로 됨의 발」로 적었다. 한국 불교계 정착형 「사여의족」은 이 직역에서 음독을 피한다(神足→신통과 같은 판단이며 神足이 아니다). 修習多修習=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힘(팔리 bhāvitā bahulīkatā에 해당). 雪山王=3분할표대로 뜻으로 옮겨 「설산왕」(설산=눈 덮인 산, 王=산 가운데 왕; 교감주 「雪山 Himavanta.」, 전거표 팔리 후보 Himavapabbatarājā는 다른 부(MA) 대역). 即作不異: 作의 목적어가 한문에 없다 — 「곧 이루어 다르지 않다」로만 옮기고 무엇이 다르지 않은지는 정하지 않았다. 面從佛聞: 面=면전, 從=으로부터. 若은 연결어미 「-면」이 지고 已는 「-고 나서」로 흡수. 令=-게 하다. 따옴표: 안쪽 『는 이 좌표에서 닫히고 바깥 「는 c27.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9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0
世尊今有四如意足,修習多修習,令雪山王變為真金,如意不異。
세존께서는 지금 네 가지 뜻대로 됨의 발을 가지고 계시며,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시어, 설산왕이 변하여 참 금이 되게 하시어 뜻대로 되어 다르지 않습니다.
주 世尊今有四如意足↔156.9 「Bhagavatā kho, bhante, cattāro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 令雪山王變為真金↔156.10 「himavantaṃ pabbatarājaṃ suvaṇṇaṃ tveva adhimucceyya」, 如意不異↔「suvaṇṇañca panassa」(그것이 황금이 될 것이다). 팔리는 「Ākaṅkhamāno」(원하신다면)로 조건을 세우나 이 좌표에는 조건어가 없다. 有는 소유를 서술하는 자리(존재 자체의 서술)라 「가지고 계시며」로 옮겼다. 四如意足 옮김은 c24.1과 같은 사안이다(술어·낱말_선택). 令 이하는 결과로 읽어 「하시어」로 이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9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0
是故,我白世尊:『作王!世尊!作王!善逝!可得如意。』」
그러므로 저는 세존께 아룁니다: 『왕이 되십시오! 세존이시여! 왕이 되십시오!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뜻대로 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 마의 청이 한역에서는 c17.2·c20.1, c22.1(세존의 인용), 이 좌표까지 세 번 나오고, 팔리는 156.6과 156.8(세존의 인용)로 두 번이다. 이 좌표 끝에서 c24.1에서 연 바깥 「가 닫힌다. 是故=그러므로.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6
佛告波旬:「我都無心欲作國王,云何當作?
부처님께서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도무지 국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주 팔리는 156.10 마의 말 바로 뒤에 156.11 게송으로 넘어가며, 세존이 왕이 될 마음이 없다고 말하는 문장이 없다(전문 확인) — 이 자리가 놓일 곳을 156.11 앞으로 짚었다. 都無心: 都=도무지(강조가 실려 세움), 無心欲作國王=국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云何當作: 作의 목적어가 한문에 없어 「어떻게 하겠느냐」로만 옮겼다(當은 어미 「-겠-」). 한자 흔들림: 이 좌표는 佛(서술)·波旬(호칭 대상)이고 앞 좌표들은 世尊·魔波旬이다. 따옴표: 바깥 「는 a01.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20:156.11
我亦無心欲令雪山王變為真金,何由而變?」
나는 또한 설산왕이 변하여 참 금이 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변하겠느냐?」
주 c29.1과 같은 자리에 걸린다(팔리에 없음 확인). 亦=또한(앞 구 我都無心과 짝을 이루어 뜻이 실려 세움). 何由而變: 何由=무엇으로 말미암아, 而는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20:156.11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 156.11은 소개 없이 바로 게송으로 시작한다. 偈=게송(정착어;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83c01 「梵云伽陀此云頌」). 即=곧.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20:156.11
「正使有真金,如雪山王者,
「설사 설산왕 같은 참 금이 있다 해도,
주 156.11 「Pabbatassa suvaṇṇassa, jātarūpassa kevalo」(산만 한 황금, 순전한 금 전부)와 같은 큰 금 덩이 이야기다. 한역은 「설산왕」과 견주고 팔리는 「산의 황금」이라 한다. 正使=설사(사전 正使 21회, 뒤 放逸·無所). 者는 「~같은 것」으로 명사화하되 修飾語처럼 앞으로 돌려 「설산왕 같은 참 금」으로 옮겼다. 이문: 正→政【聖】(뜻 같음), 者→言【元】(言이면 「설산왕 같다고 말하는」으로 읽힐 수 있음) — 본문은 大正 저본(正·者)을 따랐다. 게송 첫 구라 따옴표 「가 열린다(a05.1에서 닫힘).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1
一人得此金,亦復不知足。
한 사람이 이 금을 얻어도 또한 다시 만족을 알지 못한다.
주 156.12 「Dvittāva nālamekassa」(그 두 배도 한 사람에게 모자란다)↔一人得此金,亦復不知足: 팔리는 양(두 배)으로, 한역은 만족을 모름으로 말한다. 得=얻다. 亦復은 「또한 다시」로 옮겼다(얻고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뜻이 실려 세움). 知足=만족을 알다(사전 知足).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2
是故智慧者,金石同一觀。」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금과 돌을 똑같이 하나로 본다.」
주 是故智慧者↔156.12 「iti vidvā samañcare」(이렇게 아는 이는 바르게 행하라)는 일부 겹치나, 金石同一觀(금과 돌을 똑같이 본다)은 팔리에 없다. 팔리 둘째 게송 156.13~156.16(「Yo dukkhamaddakkhi …」)은 한역에 없다(전문 확인, 접힌 곳 없음). 智慧=지혜. 觀=보다. 따옴표: a03.1에서 연 「가 여기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20:156.13~156.16
時,魔波旬作是念:「沙門瞿曇已知我心。」
이때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이미 내 마음을 알았다.」
주 156.17 「jānāti maṃ bhagavā, jānāti maṃ sugato」(세존이 나를 안다, 선서가 나를 안다)는 호칭이 세존·선서이고 대상이 「나」이다. 한역은 沙門瞿曇이라 부르고 대상이 「내 마음(我心)」이다. 沙門瞿曇은 c14.1과 같게 「사문 고따마」로 통일했다. 已知=이미 알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7
內懷憂慼,即沒不現。
안으로 근심과 슬픔을 품고,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156.17 「dukkhī dummano tatthevantaradhāyī」(괴로워하고 낙담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內懷憂慼,即沒不現. 「tatthevantaradhāyī」와 沒不現은 같고, 「dukkhī dummano」(형용 둘)는 한역에서 內懷憂慼(안으로 근심과 슬픔을 품음)이라 동사+명사 구조로 바뀌었다. 憂慼=근심과 슬픔. 沒不現=사라져 나타나지 않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4.20:15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