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078

SĀ 1078

교차 검사교차 검사 16현대역 준비 중

(一〇八五)

(1085)

주 이 좌표는 한역 본문이 아니라 대정장 경 번호만 싣는다(저본에 제목 글자가 없다). 팔리 sn4.10/0.3의 경 제목(Dutiyaāyusuttaṃ)에 놓일 한역 글자가 없으므로 없음확인으로 적는다. 교감주(orig) "S. 4. 1. 10. Āyu."는 편자(다카쿠스)의 팔리 대응 표시로, 끝의 Āyu가 sn4.10의 제목과 맞는다. `_팔리증언`의 보조 후보 sn4.1(Tapokamma)은 이 각주를 "4. 1."까지만 끊어 읽은 결과로 보이며, 제목이 맞지 않는다 — 사실만 적고 판정하지 않는다. "[No. 100(24)]"는 대정장 100번(별역잡아함) 24경을 가리키는 표시로 보이나 이 투입물로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경은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0:0.3

AG:sa1078/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는 「~같이」로 옮기고, 是我聞의 어순은 한국어 문법에 맡겼다. 팔리 Evaṃ me sutaṃ과 같다. 이 경은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SF 대응을 적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10:146.1

AG:sa1078/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寒林中丘塚間。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차가운 숲 가운데 언덕 무덤 사이에 머무셨다.

주 같은 자리(경이 설해진 곳)에서 다른 곳을 말한다. 팔리 sn4.10은 rājagahe(왕사성)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로 대나무숲의 칼란다까 먹이터에 머무신다고 하고, 한역은 王舍城 寒林中 丘塚間이다. 도시(王舍城↔rājagahe)와 一時(↔ekaṃ samayaṃ), 佛住(↔bhagavā … viharati)는 맞는다. 고유명사 처리: 王舍城은 정착어 「왕사성」 그대로이며, 이름의 뜻은 「왕의 집이 있는 성(rājagaha)」이다(`_한자대역_3분할`은 王舍를 의역으로 기계 분류했으나 §⑤가 왕사성을 정착어의 예로 든다). 寒林은 의역으로 보아 「차가운 숲」으로 옮겼다 — `_한자대역_3분할`·`_전거` 모두 팔리 Sītavana를 후보로 대고, 이어지는 丘塚間(언덕 무덤 사이)으로 보아 무덤이 있는 숲이다. 한역이 가리키는 곳이 팔리의 Veḷuvana와 다르다는 사실만 신고한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bhagavā)에 이 좌표에서는 佛, 0284c11.1에서는 世尊을 쓴다. 확정역은 佛=부처님, 世尊=세존으로 각각 고정했다. 丘塚은 丘(언덕)와 塚(무덤)의 병렬로 읽었다. 사전 塚間 ③ 용례 sa1077/0.3 같은 구절.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0:146.2

AG:sa1078/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一切行無常,一切行不恒、不安,非穌息,變易之法,乃至當止一切有為行,厭離、不樂、解脫。」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모든 행은 무상하고, 모든 행은 항상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으며, 숨 돌려 쉬는 것이 아니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내지 모든 유위의 행을 그치고, 싫어하여 떠나고, 즐거워하지 않고, 해탈하라.」

주 도입(爾時 世尊告諸比丘 ↔ Tatra kho bhagavā…pe… etadavoca)은 팔리가 …pe…로 접은 안쪽(비구들을 부르는 말)을 읽지 못하므로 보이는 부분만 일부로 맞췄고, 告諸比丘가 팔리에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설법 내용은 엇갈린다 — 팔리는 사람의 수명이 짧다는 말(Appamidaṃ, bhikkhave, manussānaṃ āyu 이하 146.4~146.7)이고, 한역은 행의 무상을 말하는 정형구(一切行無常 … 乃至 … 厭離·不樂·解脫)다.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이므로 펴지 않고 「내지」로 두었다. 當止의 當은 어미 「-라」가 지게 했다. 當의 범위가 止 하나인지 厭離·不樂·解脫까지인지는 乃至로 접힌 탓에 저본만으로 못 정해, 이어진 네 동사를 한 명령으로 묶었다(不樂을 「즐거워하지 않고」로 옮김). 行은 앵커에 확정역이 없어 정착 술어 「행」으로 두었다. 穌息은 「숨 돌려 쉬는 것」으로 옮겼다 —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633a02 「小爾雅 更生曰穌 穌亦息也」, 0777c14 「聲類 更生曰穌 亦休息也 謂更息也」; 사전 穌息 ① 잡아함 27회·5경, ④ 다른 역자 용례 0(이 역자 고유). 일체는 「모든」, 無常은 정착 술어 「무상」, 不恒은 「항상하지 않고」로 가렸다. 諸比丘의 諸는 복수 「-들」이 졌다. 이문: 穌↔蘓【聖】(자형 이체, 저본 大正의 穌를 따름).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bhagavā)에 佛(0.3)·世尊(여기)을 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0:146.4~146.7

AG:sa1078/0284c11.1 · 교차 검사

時,魔波旬作是念:「今沙門瞿曇住王舍城寒林中,為諸聲聞說如是法:『一切行無常、不恒,非穌息,變易之法,乃至當止一切有為,厭離、不樂、解脫。』

그때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사문 고따마가 왕사성의 차가운 숲 가운데 머물며, 성문들을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설하고 있다. 『모든 행은 무상하고 항상하지 않으며, 숨 돌려 쉬는 것이 아니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내지 모든 유위를 그치고, 싫어하여 떠나고, 즐거워하지 않고, 해탈하라.』

주 時 魔波旬 ↔ Atha kho māro pāpimā의 주어 도입만 맞고, 마라가 속으로 하는 말(사문 고따마가 지금 …설법한다)은 팔리 sn4.10에 없다. 따옴표는 저본대로 안쪽 『』만 닫고 바깥 「」는 다음 좌표(0284c17.1)에서 닫는다. 고유명사: 魔波旬을 `_한자대역_3분할`은 의역(Māra)으로 기계 분류했으나 `_전거`는 「Māra pāpimant」로 魔(Māra)와 波旬(pāpimant) 둘을 대고, 음의는 두 글자 모두 소리로 푼다 — 一切經音義(慧琳) 0465b15 「具足梵云 稱嚩摩羅波裨旬」, 0369a10 「梵語正云波俾掾 唐云惡魔」. 이에 음역으로 보아 한자 독음 「마 파순」으로 옮겼으나 표의 분류와 어긋나므로 신고한다. 瞿曇은 확정역 「고따마」, 沙門은 음역(전거 Samaṇa, 근대 Śramaṇa)이나 정착 술어 「사문」으로 옮겼다. 聲聞은 정착 술어 「성문」이고 諸는 복수 「-들」이다. 法은 「법」. 마라가 읊는 말은 0284c11.1과 같지만 둘째 一切行·不安이 빠지고 一切有為行이 一切有為로 行이 빠져 있다 — 한역 안의 다름이다. 行·穌息·當止·乃至의 처리는 0284c11.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8

AG:sa1078/0284c13.1 · 교차 검사

我當往彼,為作嬈亂。」

나는 저이에게 가서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일을 하겠다.」

주 마라의 혼잣말(찾아가 괴롭히겠다)에 해당하는 말이 팔리 sn4.10에는 없다(146.7과 146.8 사이에 놓일 자리). 앞 좌표의 인용을 닫는 「」가 여기 있다. 我當往彼의 當은 어미 「-겠다」가 졌다. 為作嬈亂의 為는 행위가 향하는 대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읽어 「-에게」에 흡수했다(앞 往彼의 彼=사문 고따마와 같은 대상). 嬈亂은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42c18 「嬈 擾也」 「擾煩也」에 따라 「괴롭히고 어지럽히는」으로 옮겼다. 사전 嬈亂 ① 앞 「欲作 23 · 為作 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0:146.7~146.8

AG:sa1078/0284c17.1 · 교차 검사

即化作年少,往詣佛所,住於佛前,而說偈言:

곧 변화하여 젊은이가 되어 부처님의 처소로 찾아가 부처님 앞에 머물러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往詣佛所 ↔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而說偈言 ↔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gāthāya ajjhabhāsi로 맞는다. 즉 化作年少(젊은이로 변함)와 住於佛前(부처님 앞에 머묾)은 한역에만 있다. 即은 「곧」, 化作은 「변화하여 ~이 되어」(사전 化作 ① 뒤 「年少 21」), 年少는 「젊은이」, 所는 「처소」의 장소 명사로 읽어 「하는 바」로 풀지 않았다. 於는 조사 「에」가 졌고 而는 흡수했다. 偈는 정착 술어 「게송」. 한자 흔들림: 한역이 bhagavā에 佛(여기)·世尊(0284c11.1·0284c21.1)을 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8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9

AG:sa1078/0284c17.2 · 교차 검사

「壽命日夜流,無有窮盡時,

「수명은 낮과 밤으로 흐르며 다하여 끝나는 때가 없고,

주 無有窮盡時 ↔ jīvitaṃ nūparujjhati(목숨은 끊기지 않는다)는 맞는다. 壽命日夜流 ↔ Nāccayanti ahorattā(밤낮은 지나가지 않는다)는 한역에 부정이 없고 「흐른다(流)」로 되어 있다 — 팔리와 같은 말이 아니다. 존칭: 이 게송은 마라가 부처님께 하는 말이므로 §⑦에 따라 존댓말로 통일하며, 이 행은 문말이 아니라 연결형으로 두고 다음 행(0284c20.1)에서 맺는다. 無有窮盡時의 有는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가 아니라 無有의 한 낱말이므로 「~이 있어」로 풀지 않고 「끝나는 때가 없고」로 옮겼다. 日夜는 「낮과 밤」(저본 순서대로), 壽命은 「수명」.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0

AG:sa1078/0284c19.1 · 교차 검사

壽命當來去,猶如車輪轉。」

수명은 오고 가리니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것과 같습니다.」

주 壽命當來去 ↔ Āyu anupariyāyati, 猶如車輪轉 ↔ nemīva rathakubbaraṃ(바퀴테가 수레바퀴통을 둘러싸듯)에 해당하나, 팔리는 수레의 일부(테·바퀴통)로 비유하고 maccānaṃ(죽는 이들의)이 있으며 한역은 車輪 전체가 돈다고 하고 이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當來去는 當+來去(오고 감)로 읽고 當을 어미 「-리니」가 지게 했으나, 當來가 한 낱말(장차·내세, 사전 當來 ① 60회, 뒤 「有愛 17」)로 붙는 읽기도 가능해 구두를 못 박지 않고 신고한다. 猶如는 「마치 ~와 같다」, 轉은 「돈다」. 존댓말 통일(§⑦)은 0284c19.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1

AG:sa1078/0284c20.1 · 교차 검사

爾時,世尊作是念:「此是惡魔欲作嬈亂。」

그때 세존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는 악마가 괴롭히고 어지럽히려 하는 것이다.」

주 부처님이 마라를 알아보는 말에 해당하는 것이 본 팔리 sn4.10에는 없다(마라의 게송 146.11과 부처님의 게송 146.12 사이에 놓일 자리). 보조 증언 sn4.1/137.11(Atha kho bhagavā "māro ayaṃ pāpimā" iti viditvā …)에는 알아보는 말이 있어 일부로 매겼다 — 한역은 作是念「此是惡魔欲作嬈亂」으로 생각의 내용(괴롭히려 한다)이 더 실려 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māro pāpimā)을 魔波旬(0284c13.1·0284c26.1)과 惡魔(여기)로 달리 쓰며, bhagavā도 佛/世尊으로 달리 쓴다. 惡魔는 「악마」, 此是는 「이는 ~것이다」, 欲은 「-려 하는」, 嬈亂은 0284c17.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0:146.11~146.12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137.11

AG:sa1078/0284c21.1 · 교차 검사

即說偈言: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는 부처님의 게송을 별도 도입 없이 바로 내놓는다(146.12). 한역의 即說偈言은 그 도입을 한역이 갖춘 것이며 팔리와 갈린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주어는 세존(앞 좌표)이므로 존경 「-시-」를 쓴다. 即은 「곧」.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2

AG:sa1078/0284c21.2 · 교차 검사

「日夜常遷流,壽亦隨損減,

「낮과 밤으로 늘 옮겨 흐르고, 수명도 따라서 덜어지고 줄어들며,

주 日夜常遷流 ↔ Accayanti ahorattā(밤낮은 지나간다)는 맞고 常(늘)은 한역에만 있다. 壽亦隨損減 ↔ jīvitaṃ uparujjhati(목숨은 끊긴다)는 한역이 「덜어지고 줄어든다」로 점진의 뜻이 있어 일부로 맞췄다. 亦는 뜻이 실리지 않아 조사 「도」가 졌다. 이문: 減↔滅【聖】(교감주) — 저본 大正의 減을 따랐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2

AG:sa1078/0284c23.1 · 교차 검사

人命漸消亡,猶如小河水。

사람의 목숨은 점차 스러져 없어지니 마치 작은 강물과 같다.

주 人命漸消亡 ↔ Āyu khīyati maccānaṃ(죽는 이들의 목숨은 줄어든다), 猶如小河水 ↔ kunnadīnaṃva odakaṃ(작은 강들의 물처럼)이 맞는다. 漸(점차)이 한역에만 더 있어 일부로 매겼다. 팔리 maccānaṃ(죽는 이들)은 人命의 人으로 읽었다. 猶如는 「마치 ~와 같다」, 小河水는 「작은 강물」.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3

AG:sa1078/0284c24.1 · 교차 검사

我知汝惡魔,便自消滅去。」

나는 너 악마를 안다, 곧 소멸해 가라.」

주 이 두 구(我知汝惡魔 便自消滅去)에 해당하는 말이 본 팔리 sn4.10에는 없다(부처님의 게송 146.13과 마라의 반응 146.14 사이에 놓일 자리). 한역의 부처님 게송은 3행(여섯 구)이고 팔리는 4구다. 便自消滅去는 서술인지 명령인지 저본만으로 가르기 어렵다 — 앞 구가 「너를 안다」고 선언하고 이어 마라가 사라지는 흐름에 따라 명령형으로 옮겼다. 自는 단순 재귀로 읽어 흡수했다(自↔他 대조 없음). 消滅은 「소멸해」, 便은 「곧」. 사전 消滅 ③ 용례 sa1089/0288b16.1 「已知汝波旬 即自消滅去」가 같은 정형구다. 惡魔는 魔波旬과 다른 한자로 같은 마라를 가리킨다(0284c21.1 참조).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10:146.13~146.14

AG:sa1078/0284c25.1 · 교차 검사

時,魔波旬作是念:「沙門瞿曇已知我心。」

그때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이미 내 마음을 알았다.」

주 팔리는 마라가 "jānāti maṃ bhagavā, jānāti maṃ sugato(세존께서 나를 안다, 선서께서 나를 안다)"라고 두 번 말하는데, 한역은 한 번이며 부르는 말도 沙門瞿曇이고 알아본 것도 我心(내 마음)으로 팔리 maṃ(나를)과 다르다. 팔리에는 작시념(생각했다)에 해당하는 말이 따로 없고 인용 표지(ti)만 있다. 已知는 「이미 알았다」로 옮겼다. 魔波旬·瞿曇·沙門의 처리는 0284c1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4

AG:sa1078/0284c26.1 · 교차 검사

慚愧憂慼,即沒不現。

부끄러워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憂慼 ↔ dukkhī dummano(괴로워하고 낙담해)는 맞고, 慚愧(부끄러워함)는 한역에만 있다. 即沒不現 ↔ tatthevantaradhāyī(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는 맞으나 팔리는 장소(tattha)를, 한역은 시간(即)을 낸다. 憂慼은 憂(근심)와 慼(슬퍼함)의 병렬로 읽었다. 慚愧는 여기서는 마음의 부끄러움이므로 정착 술어 「참괴」로 두지 않고 풀어 옮겼다(사전 慚愧 ① 38회, 뒤 「憂慼 4」). 沒은 「사라져」, 不現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멸(消滅)과 달리 沒을 쓴 것은 0284c25.1과의 한자 구분을 따른 것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0:146.14

AG:sa1078/0284c26.2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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