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1077

SĀ 1077

교차 검사교차 검사 18현대역 준비 중

(一〇八四)

(1084)

주 한역 쪽은 대정장 편자가 붙인 번호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sn4.9의 제목(Paṭhamaāyusuttaṃ, 「첫째 수명 경」)에 걸리는 한문 글자가 없음을 확인했다. 편자 교감주는 「S. 4. 1. 9. Āyu.」로 이 경을 팔리 상응부 4.1.9에 비정한다(편자의 비정이며 증언이 아니다). 보조 증언 sn4.1은 내용이 다른 경(Tapokamma)이라 마라가 찾아와 말하고 물러나는 틀이 겹치는 좌표에서만 매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9:0.3

AG:sa1077/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의 如는 「이와 같이」의 부사로 서며 허사 앞 자리에서 따로 옮길 것이 없다. 개경 정형구로서 팔리 Evaṃ me sutaṃ과 일치한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9:145.1

AG:sa1077/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王舍城寒林中丘塚間。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차가운 숲 가운데 언덕 무덤 사이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 [구속]. 王舍城은 정착형 「왕사성」을 쓴다. 이름의 뜻은 「왕의 집(王舍)이 있는 성」이며 팔리 Rājagaha(왕의 집)에 대응한다. 대역표는 王舍을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국 불교계 정착어 왕사성이 있어 정착형을 따랐다(§⑤ 정착어, 유형 판별은 정도평 님 몫). 寒林은 뜻으로 옮겨 「차가운 숲」으로 했다(전거 寒林←Sītavana, 팔리형은 비고에만). 丘塚은 「언덕 무덤」으로 옮겼으며 음의 자료(塚間: 慧琳 0345a18)는 「知隴反」으로 음만 풀 뿐 뜻을 정해 주지 않는다. 팔리 sn4.9/145.2는 같은 문형이나 장소가 다르다: Rājagaha의 Veḷuvana Kalandakanivāpa(죽림 가란타 먹이터)이고 한역은 한림(寒林) 무덤 사이다. 같은 도시 안에서 장소가 갈린다. 보조 sn4.1/137.2는 Uruvelā 네란자라 강가라 더 멀리 갈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9:145.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137.2

AG:sa1077/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壽命甚促,轉就後世,應勤習善法,修諸梵行。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명이 매우 짧아 후세로 옮겨 나아가니, 부지런히 선법을 익히고 청정한 삶을 닦아야 한다.[불확실]

불확실 世尊 [구속]=세존, 比丘 [구속]=비구. 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복수로 흡수했고 諸梵行의 諸도 흡수했다. 應은 당위로 어미 「-야 한다」가 졌다. 팔리에는 부름 bhikkhavo와 응답 Bhadante(145.4~145.5)가 있고 한역에는 없다: 한역은 告 한 글자로 부름(145.3)과 발화 도입(145.6)을 접었다. 팔리 145.7은 appaṃ(적다) 한 낱말이고 한역은 甚促(매우 촉박하다). 轉就後世의 轉은 「돌려 옮김」과 「점점」 두 갈래가 있어 앞의 뜻(옮겨 나아가다)으로 옮겼다(사전 轉 ① 쓰임은 다의, 팔리 gamanīyo samparāyo 「후세로 가야 한다」와 합치). 梵行은 정형구 행(brahmacariya)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정형구 행의 「청정한 삶」을 따르고 을 남긴다(대역표는 의역으로 분류). 勤習의 勤은 「부지런히」가 실린 말로 세웠다. 팔리 145.8의 세 항(후세/선/범행)은 한역 세 구와 일대일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9:145.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9:145.4~145.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9:145.6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7~145.8

AG:sa1077/0284b21.1 · 교차 검사

無有生而不死者,而世間人不勤方便專修善法、修賢修義。」

태어나서 죽지 않는 이는 없는데, 세간 사람들은 방편에 부지런하지 않아 선법을 오로지 닦지 않고, 어짊을 닦지 않고 뜻을 닦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無有生而不死者」는 팔리 Natthi jātassa amaraṇaṃ(태어난 이에게 죽지 않음은 없다)과 같다. 팔리 145.10(오래 사는 이도 백 년 또는 조금 더)은 한역에 없음을 확인했다. 한역의 둘째 문장 「而世間人不勤方便專修善法、修賢修義」는 팔리에 없는 덧붙임이다. 두 번째 而는 역접이나 어미 「-는데」로 흡수했다. 부정사 不이 「勤方便」「專修善法」「修賢修義」 셋에 다 걸리는지가 구두상 갈릴 수 있으나, 다음 좌표(0284b24.1)의 「乃至不修賢修義」가 修賢修義를 不 아래 한 덩이로 쓰므로 모두에 거는 쪽으로 읽었다. 賢은 「어짊」, 義는 「뜻」으로 옮겼는데 義에는 「이로움」(사전 義 뒤 饒益 77회)의 뜻도 있어 로 남긴다. 世間은 「세간」, 方便은 정착어 「방편」으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4.9:145.9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9:145.10

AG:sa1077/0284b22.1 · 교차 검사

時,魔波旬作是念:「沙門瞿曇住王舍城寒林中丘塚間,為諸聲聞如是說法:『人命甚促,乃至不修賢修義。』

그때 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왕사성 차가운 숲 가운데 언덕 무덤 사이에 머물며, 성문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법을 설한다. ‘사람의 목숨은 매우 짧다, 내지 어짊을 닦지 않고 뜻을 닦지 않는다.’

주 魔波旬은 魔(māra의 음역 약칭)와 波旬(pāpiman의 음역)이 모두 소리를 옮긴 것이어서 한자 독음으로 「마 파순」이라 했다. 대역표의 기계 분류(의역)와 어긋나나 저본이 이긴다. 전거: 魔波旬←Māra pāpiman/pāpimant(팔리형, 음역계통은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慧琳 0465b15 「波旬」은 「惡」의 뜻으로 풀지만 확정역으로 쓰지 않았다. 沙門=사문(정착), 瞿曇=고따마 [구속]. 聲聞은 정착어 「성문」.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표지라 「내지」로 두고 펴지 않았다. 마라가 부처님의 말씀을 옮기는 인용 안에서는 壽命이 人命으로 바뀌어 있다(앞 좌표 「壽命甚促」과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이므로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수명」과 「목숨」으로 따로 옮겼다). 팔리 sn4.9에는 마라가 혼자 생각하는 대목이 없고 마라가 곧바로 찾아간다(145.11). 보조 sn4.1/137.7은 마라가 부처님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찾아가는 것으로 한역의 「마라 자신의 생각」과 방향이 다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7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1:137.7

AG:sa1077/0284b24.1 · 교차 검사

我今當往,為作嬈亂。」

내가 이제 가서 시달리게 하고 어지럽히는 일을 짓겠다.”

주 當은 당위·미래로 어미 「-겠다」가 졌다(「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今은 「이제」로 뜻이 실려 세웠다. 為作嬈亂의 為는 「위하여」보다 作의 보조로 읽어 따로 옮기지 않았다(격·태·구문이 갈릴 수 있으나 사전 「為作 3회」가 같은 쓰임). 嬈亂은 「시달리게 하고 어지럽힘」(음의 嬈=擾, 慧琳 0442c18)으로 옮겼고 뒤의 惱亂과 한자가 다르다. 팔리에는 마라의 결의가 없고 145.11의 찾아감만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1

AG:sa1077/0284b26.1 · 교차 검사

時,魔波旬化作年少,往住佛前,而說偈言:

그때 마 파순이 변화하여 젊은이가 되어, 가서 부처님 앞에 머물러 게송으로 말하였다:

주 팔리 145.11~145.12는 「마라가 부처님께 다가가 게송으로 말하였다」이며, 한역에만 化作年少(젊은이로 변화함)가 있다. 往住佛前의 住는 「머물러」로 옮겼다. 이 경은 같은 부처님을 서술에서 佛(앞, 부처님 [구속])과 世尊(세존 [구속])으로 달리 부른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魔波旬/天魔波旬도 같은 마라를 가리키는 한자 흔들림이다. 而說偈言의 而는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2

AG:sa1077/0284b27.1 · 교차 검사

「常逼迫眾生,得人間長壽,

“항상 중생을 핍박하고, 인간의 긴 수명을 얻는다,

주 주어가 없어 「누가 중생을 핍박하고 누가 얻는가」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핍박의 주체는 이어지는 세존의 게송 「常逼迫眾生,受生極短壽」로 미루어 죽음·시간으로 보이나 본문에 쓰지 않았다). 得은 획득으로 「얻는다」, 人間은 「인간」(사전 人間 용례 「拘薩羅人間遊行」은 사람 사이의 뜻도 있다), 長壽는 「긴 수명」으로 뜻으로 옮겼다(전거 長壽←Dīghāyu). 逼迫은 慧琳 0330a20 「迫=近·急」을 참고하여 「핍박하고」로 옮겼다. 팔리 145.13 「Dīghamāyu manussānaṃ」(사람의 수명은 길다)과 「인간의 긴 수명」이 겹치고, 한역의 「항상 중생을 핍박하고」는 팔리 「na naṃ hīḷe suporiso」(훌륭한 사람은 이를 업신여기지 말라)와 어휘가 다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3

AG:sa1077/0284b29.1 · 교차 검사

迷醉放逸心,亦不向死處。」

미혹하고 취하여 방일한 마음은, 죽음의 곳으로도 향하지 않는다.”

주 저본 이문에 醉(大正) 대신 酒【聖】이 있다. 저본은 醉이 이기므로 「취하여」로 옮겼고, 聖本대로라면 「미혹과 술로 방일한 마음」이 되어 뜻이 달라진다. 放逸=방일(정착). 亦는 앞 구의 「얻는다」와 짝을 이루는 「도」로 옮겼다(「또한」을 따로 세우지 않고 조사에 흡수). 心을 주어로 읽었다. 팔리 145.14 후반 「natthi maccussa āgamo」(죽음이 오는 일은 없다)가 「죽음의 곳으로 향하지 않는다」와 겹치나 방향이 다르다(팔리: 죽음이 오지 않는다 / 한역: 마음이 죽음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팔리 「careyya khīramattova」(젖먹이처럼 지내라)에 걸리는 한문 낱말은 「迷醉放逸心」뿐이어서 뜻이 가깝지만 같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4

AG:sa1077/0284c01.1 · 교차 검사

爾時,世尊作是念:「此是惡魔來作惱亂。」

그때 세존께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것은 악마가 와서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일을 짓는 것이다.”

주 팔리 sn4.9에는 마라의 게송(145.14)과 부처님의 게송(145.15) 사이에 부처님이 마라를 알아보는 문장이 없음을 확인했다(…pe…가 걸린 자리가 아니다). 보조 sn4.1/137.11 「Atha kho bhagavā ‘māro ayaṃ pāpimā’ iti viditvā」가 같은 자리이나 「알고서」이고 한역은 「이런 생각을 하셨다」이며 「와서 괴롭힌다(來作惱亂)」가 더 있다. 惡魔는 「악마」. 앞의 嬈亂(0284b26.1)과 여기의 惱亂은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한자 흔들림)이다; 惱는 「괴롭히고」, 嬈는 「시달리게 하고」로 따로 옮겼다. 此是는 「이것은 …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9:145.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137.11

AG:sa1077/0284c02.1 · 교차 검사

即說偈言: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주 팔리 sn4.9는 부처님의 게송(145.15)을 도입 문구 없이 바로 싣는다. 보조 sn4.1/137.11은 「gāthāhi ajjhabhāsi」(게송으로 말했다)로 겹친다. 即은 「곧」(즉시)으로 세웠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9:145.15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137.11

AG:sa1077/0284c02.2 · 교차 검사

「常逼迫眾生,受生極短壽,

“항상 중생을 핍박하고, 생을 받아 수명이 지극히 짧다,

주 마라의 게송 첫 구(0284b29.1)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둘째 구만 「得人間長壽」에서 「受生極短壽」로 바꾼 대구다. 팔리 145.13과 145.15도 Dīghamāyu/Appamāyu로 대구를 이루나 팔리는 hīḷe/hīḷeyya(업신여기다)를 되풀이하고 한역은 逼迫을 되풀이한다. 受生의 受는 정형구 행의 vedanā(느낌)가 아니라 「(생을) 받다」이다. 極短壽는 「지극히 짧은 수명」. 팔리 145.15 「Appamāyu manussānaṃ」(사람의 수명은 짧다)과 겹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5

AG:sa1077/0284c04.1 · 교차 검사

當勤修精進,猶如救頭然。

부지런히 정진을 닦으라, 머리가 타는 것을 구하듯이.

주 當은 당위로 어미 「-라」가 졌고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如의 猶如는 「-듯이」로 옮겼다. 勤修精進의 勤과 精進은 겹치지만 둘 다 옮겼다. 頭然의 然은 燃(탈 연)이다(음의 慧琳 0395b24 「經中作投燃非也」). 팔리 145.16 「Careyyādittasīsova」(머리에 불이 붙은 이처럼 지내라)의 비유가 같은 뜻이나, 한역은 「구한다(救)」가 더 있고 「勤修精進」이 팔리 careyya(지내라)보다 구체적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6

AG:sa1077/0284c05.1 · 교차 검사

勿得須臾懈,令死魔忽至,

잠시도 게을리하여 죽음의 마가 갑자기 이르게 하지 말라,

주 勿得의 得은 금지를 굳히는 말로 흡수했고 勿이 令 절까지 걸리는 것으로 읽었다(「게을리하여 …가 이르게 하지 말라」). 須臾는 「잠시」(음의 慧琳 0440b19 시간의 아주 짧은 때). 死魔는 「죽음의 마」로 뜻을 풀어 옮겼다(死=죽음, 魔=앞서 쓴 「마」). 팔리 145.16 후반 「natthi maccussa nāgamo」(죽음이 오지 않는 일은 없다)와 겹치나, 한역은 금지의 명령이고 팔리는 평서다. 팔리의 maccu(죽음의 신)와 한역 死魔는 같은 개념으로 보이나 본문에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6

AG:sa1077/0284c06.1 · 교차 검사

知汝是惡魔,速於此滅去。」

네가 악마임을 안다, 속히 여기에서 사라져 가라.”

주 팔리 145.17은 「Atha kho māro…pe… tatthevantaradhāyī」로 …pe… 안쪽을 접어 두었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 보조 sn4.1/137.15 「nihato tvamasi antakā」(너는 죽음의 신이여 패하였다)와 부처님이 마라를 꾸짖는 대목이 겹치나 말이 다르다. 於此의 於는 처소 조사 「에서」가 졌고 滅去는 「사라져 가라」로 옮겼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명령의 일관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4.9:145.17

AG:sa1077/0284c07.1 · 교차 검사

天魔波旬作是念:「沙門瞿曇已知我心。」

천마 파순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문 고따마가 이미 나의 마음을 알았다.”[불확실]

불확실 天魔波旬은 대역표가 音義合璧(혼합)으로 분류했다: 天(뜻)+魔波旬(소리). 한국 불교계 정착어 「천마」에 맞추어 「천마 파순」으로 적었고 을 남긴다. 앞의 魔波旬(마 파순)과 같은 마라를 가리키는 다른 한자(한자 흔들림). 팔리 145.17의 …pe… 안쪽을 읽지 못해 unaligned로 둔다. 보조 sn4.1/137.16 「jānāti maṃ bhagavā」(세존께서 나를 아신다)와 겹치나 한역은 「내 마음(我心)」을 안다고 한다. 已知의 已는 완료로 「알았다」의 어미가 졌다. 沙門瞿曇은 「사문 고따마」.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4.9:145.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137.16

AG:sa1077/0284c08.1 · 교차 검사

慚愧憂慼,即沒不現。

부끄러워하고 근심하여 곧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145.17 끝의 「tatthevantaradhāyī」(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即沒不現」과 겹친다. 한역의 慚愧(부끄러워함)는 팔리 sn4.9에서 읽히는 자리에 없다(…pe… 안쪽은 읽지 못함). 보조 sn4.1/137.16은 「dukkhī dummano」(괴로워하고 실의한)로 憂慼(근심하고 슬퍼함)과 겹치나 慚愧에 걸리는 말은 없다. 慚愧는 팔리의 부끄러움·두려움 짝(도덕적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가리키는 술어)이 아니라 마라의 감정을 가리키므로 「부끄러워하고」로 옮겼다. 憂慼은 「근심」, 沒不現은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9:145.17

니까야 대응 일부 SN 4.1:137.16

AG:sa1077/0284c08.2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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