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〇六四)
(1064)
주 한문 0.1은 경 번호 「(一〇六四)」뿐이고 제목 글자가 없다. 팔리 PN 0.3은 제목 Acirapakkantasuttaṃ이므로 이에 대응하는 한문 글자는 없음이 확인된다. 교감주 「S. 17. 35-36. Rathapakkanta. [No. 100(3)]」는 편자 각주이며, 그 제목 Rathapakkanta는 우리 PN 제목 Acirapakkanta와 다르고 번호도 17.35-36 두 경에 걸려 있다(증언 파일은 sn17.36을 「저본 없음」으로 표시). 어느 쪽이 맞는지 판정하지 않고 사실만 적는다. 숫자는 한문 숫자(一〇六四)를 자릿수대로 아라비아 숫자로 옮겼다. 산스크리트 증언 파일은 투입되지 않아 산스크리트 항은 달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0.3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제공된 팔리 sn17.28 원문은 184.1 Ekaṃ samayaṃ으로 바로 시작하고 개경 정형구(Evaṃ me sutaṃ)가 없다. 한문 如是我聞(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 이 경 0.2)은 如를 「이와 같이」의 일부로 보고(정형구) 我聞을 「나는 들었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1
一時,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머무르셨다.
주 佛은 [구속] 「부처님」. 한문은 같은 대상을 佛(0.3·c02.1·c16.1·b27.1)과 世尊(b27.1 호칭·c11.1)으로 달리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며, 팔리는 전부 bhagavā다. 확정역대로 부처님/세존으로 고정하고 흔들림만 신고한다. 王舍城은 정착형 「왕사성」(§⑤가 정착어 예로 든 형태)을 썼다. 3분할 표는 王舍을 의역으로 1차 분류했으나 §⑤ 본문이 왕사성을 정착어로 들므로 정착형을 쓰고 이름의 뜻을 여기 적는다 — 王舍=왕의 집(팔리 Rājagaha, raja=왕+gaha=집). 迦蘭陀는 음역(표: Kalandaka)이라 독음 「가란타」, 竹園은 뜻을 옮긴 이름(팔리 Veḷuvana, veḷu=대나무)이라 「대나무 동산」. 전거 `王舍城迦蘭陀竹園` → Rājagaha Veḷuvana Kalandakanivāpa. 팔리 184.1은 같은 도시의 다른 처소를 든다 — gijjhakūṭe pabbate(독수리봉 산). 또 팔리에만 acirapakkante devadatte(제바달다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가 붙는다. 한문에는 둘 다 없고 본문은 한문대로 두었다. 竹園은 「죽림정사」류 정착형이 아니라 이 경의 글자대로 옮겼으므로 표기 유형 판별을 불확실로 남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7.28:184.1
爾時,提婆達多有利養起,摩竭陀王阿闍世毘提希子日日侍從五百乘車,來詣提婆達多所,日日持五百釜食,供養提婆達多,提婆達多將五百人別眾受其供養。
그때 제바달다에게 이양이 일어났고, 마갈타 왕 아사세 비제희의 아들이 날마다 오백 대의 수레를 시종으로 거느리고 제바달다에게 찾아와서, 날마다 오백 솥의 음식을 가지고 제바달다에게 공양하였으며, 제바달다는 오백 사람을 거느리고 따로 무리를 이루어 그 공양을 받았다.
주 팔리 184.3은 세존의 말씀 속에서 제바달다에게 lābhasakkārasiloko(이득·존경·명성)가 일어났다고만 하고, 한문이 서술자의 말로 길게 전하는 아사세의 수레·음식 공양은 팔리에 없다(문장 유무·구조·배열). 利養은 한국 불교계에서 쓰는 「이양」을 그대로 썼다(사전 利養 ① 잡아함 16회·7경). 팔리는 세 항인데 한역은 한 낱말이다(개별 어휘). 有利養起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에게 일어났다」의 주어를 세우는 자리로 보아 흡수했다. 음역·정착: 提婆達多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제바달다」(慧琳 一切經音義 0419c13 「唐言天授」 인용, 팔리형 Devadatta는 비고에만). 摩竭陀는 음역 「마갈타」(팔리 Māgadha). 阿闍世는 정착형 「아사세」이며 이름의 뜻은 음의가 未生怨으로 푼다 — 慧琳 0464c03 「此云未生怨也」 · 0475c23 「此云未生惌」(팔리 Ajātasattu. 음의 인용이며 확정이 아니다). 毘提希子는 毘提希를 음역 독음하고 子를 뜻으로 옮겨 「비제희의 아들」(전거 `摩竭陀王阿闍世毘提希子` → Māgadha Ajātasattu Vedehiputta). 음의의 摩竭 항목(慧琳 0577a24 「海中大魚」)은 국명 摩竭陀와 다른 말이라 인용하지 않는다. 侍從五百乘車는 왕이 오백 승의 수레를 시종으로 거느린다는 뜻으로 읽었으나 侍從이 능동(거느림)인지 피동(시종받음)인지 문법이 갈린다(격·태·구문). 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음의 百乘 慧琳 0360c15 「乘駕也」), 釜는 솥으로 옮겼고 부피 단위일 가능성도 남는다. 所는 「~에게」로 흡수했다. 別眾은 사전 別眾 ① 잡아함 3회·1경(앞 百人 3 · 뒤 受其 3)으로 이 경에서만 쓰이며, ⑥ 丁福保는 율의 술어(突吉羅罪)로 풀지만 후대의 눈이라 가볍게 보고 글자대로 「따로 무리를 이루어」로 옮겼다(다의어_판별). 受는 「받다」이며 느낌(vedanā)이 아니다 — 정형구 행의 受는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 문맥으로 옮기고 확정역_부재로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3
時,有眾多比丘晨朝著衣持鉢,入王舍城乞食,聞提婆達多有如是利養起,乃至五百人別眾受其供養。
이때 많은 비구들이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제바달다에게 이와 같은 이양이 일어났다는 것, 내지 오백 사람이 따로 무리를 이루어 그 공양을 받는다는 것을 들었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다 — 접힌 안쪽을 펴지 않았고(§⑧), b21.1의 어느 부분까지가 접혔는지 한문은 말해 주지 않는다. 팔리 sn17.28에는 비구들이 이 소문을 듣는 대목이 없고 184.2에서 세존이 바로 비구들을 부르신다. 比丘는 [구속] 「비구」. 眾多는 「많은」(諸가 아니다). 有(眾多比丘 앞)는 주어 세움으로 흡수. 時는 「이때」, 앞 爾時는 「그때」로 구분했다. 晨朝著衣持鉢·入~乞食는 정형구(사전 晨朝 ① 뒤 著衣 102). 같은 연결을 持鉢 쪽에서 보면 사전 持鉢 ① 앞 著衣 128이다. 如是는 「이와 같은」. 受其供養의 受는 「받다」(b21.1 참조).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2
乞食已,還精舍,舉衣鉢,洗足畢,往詣佛所,稽首佛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等晨朝著衣持鉢,入王舍城乞食,聞提婆達多有如是利養起,乃至五百人別眾受其供養。」
걸식을 마치고 정사로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발 씻기를 마치고,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저희는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제바달다에게 이와 같은 이양이 일어났다는 것, 내지 오백 사람이 따로 무리를 이루어 그 공양을 받는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 비구들이 돌아와 부처님께 보고하는 이 대목 전체가 팔리에 없다(184.2에서 세존이 먼저 비구들을 부르신다). 乃至는 b25.1과 같은 접힌 표지이며 펴지 않았다. 한문은 같은 대상을 佛(往詣佛所·稽首佛足·白佛)과 世尊(호칭)으로 달리 쓴다 — 확정역대로 부처님/세존으로 고정하고 흔들림만 신고한다. 정형구: 稽首는 「머리를 조아리고」(음의 慧琳 0600c02 「首至地也」 · 0698c05 「頭至地也」 인용, 「계수」로 음독하지 않았다). 舉衣鉢은 「옷과 발우를 거두고」(사전 舉 ① 앞 精舍 42 · 뒤 衣鉢 64). 洗足畢은 「발 씻기를 마치고」, 乞食已는 「걸식을 마치고」. 精舍는 정착형 「정사」.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는 발화이므로 문말을 존대(~습니다)로 통일했다(§⑦). 我等은 「저희」. 所(佛所)는 「계신 곳」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2
佛告諸比丘:「汝等莫稱是提婆達多所得利養。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제바달다가 얻은 이양을 기리지 말라.
주 팔리 184.2는 세존이 제바달다를 두고(devadattaṃ ārabbha) 비구들을 부르시는 말뿐이고, 「칭송하지 말라」는 금지는 팔리에 없다. 佛은 [구속] 부처님이며 이 좌표의 佛도 앞 b27.1의 흔들림(佛/世尊)에 든다. 諸比丘의 諸는 복수 「-들」로 흡수했다(앵커: 남발 주의). 汝等은 「너희」. 莫은 「~지 말라」. 稱은 「기리다(칭송)」로 읽었으나 「일컫다·말하다」 가능성이 있어 불확실로 남긴다. 是는 뒤의 명사구 전체를 꾸미는 「이」로 두었다(「이 제바달다」로도 읽힌다). 所得은 「얻은」(관형절, 「~하는 바」 회피).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2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所以者何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정형구로 「그 까닭은 무엇인가」(所以=까닭, 者=명사화, 何=무엇). 팔리 184.2와 184.3 사이에는 이에 해당하는 물음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3
彼提婆達多別受利養,今則自壞,他世亦壞。
저 제바달다는 따로 이양을 받아 지금은 무너지고, 다른 세상에서도 또한 무너진다.
주 팔리 184.3은 attavadhāya(자신을 죽이기 위해)·parābhavāya(패망을 위해)로 하나의 목적격 구조이고, 한문은 今(이 세상)과 他世(다른 세상) 두 시점으로 갈라 말한다. 어느 쪽 항이 어느 항에 겹치는지 이 좌표에서는 판정하지 않는다. 自壞의 自는 他와 대조되지 않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他世의 他는 「다른 세상」의 일부). 팔리 atta-와 한문 自가 겹칠 수 있음은 비고로만 둔다. 則은 「는」으로 흡수(귀결). 亦은 今/他世 병렬이 실려 「또한」을 썼다. 別受는 사전 別受 ① 잡아함 1회·1경, 이 경에서만 나오며 「따로 받아」(b21.1의 別眾과 짝). 彼는 「저」.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3
譬如芭蕉、竹、蘆,生果即死,來年亦壞;提婆達多亦復如是,受其利養,今世則壞,他世亦壞。
비유하면 파초와 대나무와 갈대는 열매를 맺으면 곧 죽고, 다음 해에도 또한 무너진다; 제바달다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이양을 받아 이 세상에서는 무너지고, 다른 세상에서도 또한 무너진다.
주 팔리는 kadalī·veḷu·naḷa 세 식물을 각각 하나의 비유(184.4~184.9, 각각 evameva kho ... devadattassa로 닫힘)로 세우고, 한역은 芭蕉·竹·蘆를 한 비유로 접었다(구조·배열). 芭蕉는 3분할 표대로 뜻으로 옮겨 「파초」(전거 Kadalī 후보), 竹은 「대나무」, 蘆는 「갈대」. 이문: 蘆 / 籚【宋】 — 저본(大正)의 蘆를 따른다. 팔리에는 即死·來年亦壞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문장 유무). 生果의 生은 「맺다」이며 정형구 행의 生(jāti)이 아니라 문맥으로 옮겼다(확정역_부재, 이후 莫生·生果의 生도 같다). 即은 「곧」, 譬如는 「비유하면」, 亦復如是는 「또한 이와 같아서」. 受其利養의 受는 「받다」. 則은 「는」, 今世는 「이 세상」.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4~184.9
譬如駏驉,受胎必死;提婆達多亦復如是,受諸利養,今世亦壞。
비유하면 거허는 태를 받으면 반드시 죽는다; 제바달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여러 이양을 받아 이 세상에서도 또한 무너진다.
주 駏驉는 이 경에만 나오는 낱말(사전 駏驉 ① 잡아함 2회·1경)이라 한자 독음 「거허」를 쓰고 뜻을 비고에 둔다 — 음의 慧琳 0656b26 〔別譯阿含經〕 「謂似騾而小牛父馬子是也」 인용. 팔리는 assatarī(노새)다. 駏驉와 같은 짐승인지 판정하지 않고 갈림만 신고한다. 受胎는 글자대로 「태를 받으면」. 諸利養의 諸는 앞 受其利養(그 이양)과 달리 한역이 諸를 골랐으므로 「여러」로 살렸다. 팔리는 attavadhāya·parābhavāya(자신의 파멸·패망을 위해)를 말하는데 한문은 이 좌표에서 今世亦壞만 말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10~184.11
他世亦壞,彼愚癡提婆達多隨幾時受其利養,當得長夜不饒益苦。
다른 세상에서도 또한 무너지며, 저 어리석은 제바달다는 얼마의 때를 따라 그 이양을 받는 만큼, 긴 밤 동안 이익이 되지 않는 괴로움을 얻을 것이다.
주 팔리 184.12는 Evaṃ dāruṇo kho, bhikkhave, lābhasakkārasiloko(이득·존경·명성은 이렇게 가혹하다)로 비유를 맺는데,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긴 밤 동안 이익이 되지 않는 괴로움을 얻는다」고 말한다(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 隨幾時 구문은 「얼마 동안이든 ~하는 만큼」으로 읽을 수도 있어 직역을 「얼마의 때를 따라 ~하는 만큼」으로 두고 불확실로 남긴다. 當得은 어미 「-ㄹ 것이다」로 흡수(마땅히 불사용). 長夜는 「긴 밤 동안」(사전 長夜 ① 잡아함 205회·98경, 뒤 當得 12). 不饒益苦의 饒益은 「이익이 되다」(사전 饒益 ① 앞 長夜 18 · 뒤 苦 19). 愚癡는 「어리석은」(음의는 음만 풀이).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7.28:184.12
是故,諸比丘!當如是學:『我設有利養起,莫生染著。』」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배우라. 『내게 설령 이양이 일어나더라도 물들어 집착함을 일으키지 말라.』」
주 팔리 184.13은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이렇게 너희는 배워야 한다)까지만이고 배울 내용인 『我設有利養起,莫生染著』은 팔리에 없다. 是故는 「그러므로」, 當如是學의 當은 어미 「-라」로 흡수. 設은 가정·양보 「설령 ~더라도」, 有利養起의 有는 흡수(「내게 … 일어나더라도」). 染著은 「물들어 집착함」(사전 染著 ① 잡아함 103회·47경 · ⑥ 丁福保는 후대의 눈). 莫生의 生은 「일으키다」(b21.1·c04.1의 생과 같은 확정역_부재).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13
爾時,世尊即說偈言: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팔리는 184.14 Idamavoca bhagavā 뒤 184.15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이렇게 말하고 선서께서 다시 스승으로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선서·스승 호칭을 쓰고, 한문은 世尊과 即說偈言으로 옮긴다. 世尊은 [구속] 「세존」이며 앞 좌표에서 佛로 쓰인 같은 대상이다(한자 흔들림). 即은 「곧」(즉시의 뜻이 실림), 說偈言은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8:184.15
「芭蕉生果死,竹蘆實亦然,
「파초는 열매를 맺어 죽고, 대나무와 갈대의 열매도 또한 그러하며,
주 팔리 184.16 Phalaṃ ve kadaliṃ hanti, phalaṃ veḷuṃ phalaṃ naḷaṃ(열매가 파초를 죽이고, 열매가 대나무와 갈대를 죽인다)과 식물 셋·뜻이 같다. 팔리는 열매가 죽이는 타동이고 한문은 열매를 맺어 죽는 자동으로 말한다. 竹蘆實亦然의 實을 「열매」(명사)로 읽어 「열매도 또한 그러하며」로 옮겼으나 「열매 맺음」(동사)으로도 읽힌다. 이문: 蘆 / 籚【宋】【元】 — 저본의 蘆를 따른다. 生果의 生은 c04.1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7.28:184.16
駏驉坐妊死,士以貪自喪。
거허는 임신으로 말미암아 죽고, 사람은 탐욕으로써 망한다.
주 팔리 184.17 Sakkāro kāpurisaṃ hanti, gabbho assatariṃ yathā(존경이 못난 사내를 죽이니, 노새를 임신이 죽이듯이)는 사람 앞에 먼저 서고 짐승이 뒤에 오는데, 한문은 거허가 앞이고 사람이 뒤다(구조·배열). 사람을 죽이는 것이 팔리는 sakkāra(존경), 한문은 貪(탐욕)이다(개별 어휘). 士는 「사람」으로 옮겼으나 「선비·남자」로도 읽혀 불확실(팔리 kāpurisa와의 대응은 판정하지 않는다). 坐는 「말미암아」(원인). 自喪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팔리 attavadhāya의 atta-와 겹칠 가능성은 비고에만 둔다. 이문: 妊 / 任【聖】 — 저본의 妊을 따른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7.28:184.17
常行非義行,多知不免愚,
늘 이롭지 않은 행을 행하고, 많이 알아도 어리석음을 면하지 못하니,
주 팔리 시구는 184.16~184.17의 두 줄(네 구)로 끝나고 이 두 구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제공된 팔리 원문 범위에서 확인). 非義行의 義는 「이로움」으로 옮겼다 — 사전 義 ① 잡아함 446회·188경, 뒤 饒益 77(앞 좌표 不饒益과 이어지는 짝). 「뜻·의미」, 「의로움」 가능성이 남는다. 常은 「늘」, 行은 동사와 명사 모두 「행」으로 두었다. 多知는 「많이 알아도」(양보로 읽음), 不免愚는 「어리석음을 면하지 못하니」.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17
善法日損減,莖枯根亦傷。」
선한 법은 날로 덜어지고 줄어들며, 줄기가 마르고 뿌리도 또한 상한다.」
주 이 두 구도 팔리에 해당 구가 없다. 善法은 3분할 표가 Sudhammā와 짝지어 「혼합(音義合璧)」으로 1차 분류했으나, 이 자리는 시구 안의 일반 낱말로 읽혀 저본대로 「선한 법」으로 옮겼다(사전 善法 ① 잡아함 179회·58경, 앞 一切 33·未生 18, 뒤 不放 30). 이름으로 읽을 근거가 이 좌표에 없으므로 표기 유형 판별을 신고만 한다. 日損減은 「날로 덜어지고 줄어들며」, 莖枯根亦傷은 「줄기가 마르고 뿌리도 또한 상한다」(亦은 줄기와 뿌리의 병렬이 실려 「또한」을 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17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해 마치시자,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184.18은 pañcamaṃ(다섯째)이라는 경 수 표지뿐이고 맺음 정형구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佛은 [구속] 「부처님」, 比丘는 [구속] 「비구」. 已는 완료 「마치시자」, 所說은 「설하신 것」(관형절), 歡喜奉行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사전 奉行 ① 앞 歡喜 829). 한문이 맺음에서 佛로 쓴 대상을 앞에서는 世尊으로도 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8:18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