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
(구)
주 저본의 제목 줄 「(九)」은 번호뿐이다. 팔리 증언은 같은 자리에 번호와 경 이름(Chavisutta)을 함께 단다. 그래서 일부 대응으로 달았다. 번호 자체(九 / 팔리 8)는 서로 다른 목록의 번호이므로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산스크리트는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1:0.3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이 아함 전권 453회; 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216/1578). 如는 앵커대로 「~같이」로 풀어 「이와 같이」로 옮겼다. 팔리 증언은 177.1이 「Sāvatthiyaṃ viharati…pe…」로 시작해 도입부를 …pe…로 접어 두었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absent)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이다. [불확실:저본_근거부족].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7.21:177.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팔리 177.1은 「Sāvatthiyaṃ viharati…pe…」다. 舍衛(Sāvatthī)와 「머물다(viharati)」는 대응한다. 그러나 기수급고독원 부분은 …pe…로 접힌 안쪽에 걸리므로 그 부분은 미대응이다. 그래서 전체를 일부 대응으로 달았다. [불확실:저본_근거부족]. 舍衛(사위)는 정착어이므로 정착형을 썼다. 뜻: 慧琳 一切經音義 0367c24 「案十二遊經義譯云無物不有國 … 此譯云聞者城 … 法鏡經譯云聞物國」. 갈림 음역계통: 전거 舍衛 행이 팔리형 Sāvatthī와 당대 범어형 śravasthi를 둘 다 세워 서로 다르다.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은 정착형을 썼다. 3분할 표는 5자 이상 덩어리라 「보류」로 두었으나 동산 이름으로 판별했다. 祇樹는 祇陀 태자의 나무라는 이름(慧琳 0368a03), 給孤獨은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로 옮긴 의역 이름(慧琳 0368a05 「亦義譯也」)이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한자 흔들림: 이 경은 같은 분을 이 좌표와 0571a04.1에서 佛, 0570c27.1에서 世尊으로 적는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각각 있으므로(佛=부처님, 世尊=세존) 확정역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1:177.1
爾時,世尊告諸比丘:「受人利養甚重不易,令人不得至無為之處。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사람의 이익과 봉양을 받는 것은 매우 무겁고 쉽지 않으니, 사람이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주 팔리 177.1의 「dāruṇo, bhikkhave, lābhasakkārasiloko」(무서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득·존경·명성은)와 짝지었다. 한역은 「甚重不易」, 팔리는 dāruṇo로 낱말이 다르고(개별 어휘), 한역에만 「令人不得至無為之處」가 있다(문장 유무). 「爾時世尊告諸比丘」에 해당하는 도입은 팔리에서 …pe…로 접혀 있어 그 부분은 미대응이다. 한자 흔들림: 앞 좌표들의 佛과 달리 여기는 世尊이다(확정역 세존).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갈림 음역계통: 전거 比丘 행이 팔리형 bhikkhu와 근대 비정 Bhikṣu를 둘 다 세워 서로 다르다. 판정하지 않는다. 比丘는 확정역 「비구」. 受人利養甚重不易: 受의 주어와 목적어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사람의 이익과 봉양을 「받는 것」인지, 사람이 이익과 봉양을 「받는 것」인지). 앞의 읽기로 옮겼다. 不易도 「쉽지 않다」와 「바뀌지 않는다」가 모두 가능하다. [불확실:격·태·구문]. 受는 정형구 행 낱말(vedanā)과 한자가 같으나 여기는 「받다」의 동사이다.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겼다. 利養은 확정역이 없어 「이익과 봉양」으로 풀었다(음독 「이양」을 피함). 사전 利養 ① 80회·23경, 뒤 「甚重」 5회; 음의 利養 慧琳 0484b19는 음 풀이뿐이라 뜻 근거가 아니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令人不得至는 사역(令)과 가능의 부정(不得)이라 「이르지 못하게 한다」. 無為는 3분할 표의 의역에 따라 뜻으로 「함이 없는」으로 옮겼다. 한국 불교계 정착 술어 「무위」(정형구 행 無為)와 같은 말이지만 그 행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이문: 之를 宋·元·明 세 본이 뺀다(교감주). 저본이 大正이므로 「곳」 앞의 관형을 살렸다. 인용부호는 저본대로 여기서 열고 0571a03.1에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1:177.1
所以然者,利養之報,斷入人皮,以斷皮,便斷肉;以斷肉,便斷骨;以斷骨,便徹髓。
그러한 까닭은, 이익과 봉양의 과보가 끊어 사람의 가죽에 들어가니, 가죽을 끊고 나서 곧 살을 끊고, 살을 끊고 나서 곧 뼈를 끊고, 뼈를 끊고 나서 곧 골수를 꿰뚫기 때문이다.
주 팔리 177.2는 가죽 단계를 여섯으로 센다: chavi(겉가죽) → camma(가죽) → maṃsa(살) → nhāru(힘줄) → aṭṭhi(뼈) → aṭṭhimiñja(골수). 한역은 皮 → 肉 → 骨 → 髓 넷이다. 한역에는 힘줄에 해당하는 항이 없고 chavi와 camma가 皮 하나로 나온다(문장 유무). 끝말도 팔리는 「골수에 닿아 머문다(āhacca tiṭṭhati)」, 한역은 「徹髓」(꿰뚫는다)로 다르다(개별 어휘). 팔리 주어 lābhasakkārasiloko(이득·존경·명성)에는 명성(siloka)에 해당하는 한자가 한역에 없고, 한역은 「利養之報」(이익과 봉양의 과보)로 「報」를 더한다. 이 대응은 낱말 대 낱말의 판정이 아니라 자리의 짝지음이다. 所以然者는 「그러한 까닭은 … 때문이다」. 斷入人皮의 斷入은 「끊어 들어가」, 利養之報는 확정역이 없어 앞 좌표처럼 「이익과 봉양의 과보」로 풀었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以斷皮, 便斷肉의 以는 이미 끝난 일을 가리키는 「-고 나서」로 읽었다(이문에서 宋·元·明이 已로 읽는 것과 뜻이 맞는다). 便은 순접 「곧」. 이문: 두 곳의 以를 宋·元·明이 「已」로 읽는다. 저본이 大正이므로 大正대로 옮겼고 뜻은 같다. 사전 斷肉 ① 2회·1경(이 경 두 곳뿐)이라 용례는 얇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1:177.2
諸比丘!當以此方便,知利養甚重。
비구들이여! 이 방편으로 이익과 봉양이 매우 무거움을 알라.
주 팔리 177.3의 「Evaṃ dāruṇo kho, bhikkhave, lābhasakkārasiloko…pe…」와 짝지었다. 팔리의 evaṃ(이와 같이)이 놓인 자리에 한역은 「以此方便」이 놓이고, 팔리에 없는 「知」가 한역에 있다. 그러나 두 낱말이 같은 낱말의 옮김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는 뒤가 …pe…로 접혀 있어 …pe… 이후는 미대응이다. 當以此方便의 當은 어미 「-라」로 흡수하고 「마땅히」를 세우지 않았다. 以는 수단 조사 「-으로」로 옮겼다. 方便은 정착어 「방편」(전거: 근대 편자 비정 Upāya, 낱말 확정역 없음; 사전 方便 ① 「以此 38」). 利養은 0570c27.1과 같은 사안이다.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이문: 宋·元·明은 諸 앞에 「是故」를 더한다(교감주 「(是故)+諸」). 저본이 大正이므로 더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21:177.3
若未生利養心便不生,已生求令滅之。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이익과 봉양의 마음은 곧 생기지 않으며, 이미 생겼다면 그것을 없어지게 하기를 구하라.
주 팔리 177.3은 「…pe…」로 이 구간이 접혀 있다.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불확실:저본_근거부족]. 若은 앵커대로 연결어미 「-면」이 져서 「생기지 않았다면」, 令은 사역이므로 「없어지게 하기를」, 求는 「구하라」. 生은 정형구 행 낱말 生(jāti)과 한자가 같으나 여기는 「생겨나다」다. 낱말 확정역이 없다. [불확실:확정역_부재]. 未生·已生·不生은 사전 不生 ① 「已生 24」 등의 쌍을 이루는 쓰임이다. 便不生은 「곧 생기지 않는다」(진술)로 옮겼으나, 이문에서 宋·元·明이 「應使」로 읽으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당위)가 된다. 저본이 大正이므로 大正대로 옮겼고 이문 때문에 [불확실:저본_이문·자형]을 남긴다. 이문: 已를 聖본이 「以」로 읽는다. 뜻은 같다. 利養心은 0570c27.1과 같은 사안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7.21:177.3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팔리 177.3의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이와 같이 그대들은 배워야 한다, 비구들이여)와 같은 말이다. 한역은 「如是」「諸比丘」「當作是學」의 순서고 팔리는 evañhi … bhikkhave … sikkhitabbaṃ의 순서다(호격의 자리가 다르나 뜻은 같다). 如是는 부사구, 當作是學은 當을 「-라」 어미로 흡수하여 「이렇게 배우라」. 學은 사전 學 ① 「作是 351」의 정형 연쇄. 인용부호를 여기서 닫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7.21:177.3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증언에는 177.3의 마지막 인용부호 뒤에 맺음 정형구가 없고 곧바로 번호 「Aṭṭhamaṃ」(여덟째, 177.4)이 온다. 맺음 구절이 놓일 자리 뒤에 접힘 표지(…pe…)도 없으므로 없음(absent)으로 달았다. 한자 흔들림: 앞에서 世尊으로 적던 분을 여기서는 佛로 적는다(확정역 부처님).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말씀하신 것」. 歡喜奉行은 정형 종결구(사전 歡喜 ① 「所說 450 · 奉行 450」; 음의 歡喜 慧琳 0753a01은 음·자형 풀이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21:1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