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일곱)
주 제목은 증일아함 안의 경 번호(저본 「(七)」)이고, 팔리 `169`는 상윳따 니까야 안의 경 번호다. 서로 다른 번호 체계라 같은 자리에 다른 수가 선다 — 내용 대응이 아니라 번호 슬롯의 형식적 대응이다. 후보 `sn17.13-20`(莊春江, single_source)은 여덟 경(17.13–17.20)을 묶은 번호 체계가 갈리는 묶음이다. 대조해 보니 이 한역의 내용(마음을 읽어 아는 붓다 · 거짓말 · 재물에 대한 집착 · 「이렇게 배우라」)은 그 첫 경 `169`와 맞는다. 다만 대조표 밖 번호이므로 같은 경이라는 판정은 이 대응 후보를 따른 잠정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7.13:169.0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팔리 169.1은 `Sāvatthiyaṃ viharati`로 바로 시작하고 서두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에 해당하는 정형구가 없다(`…pe…`는 `viharati` 뒤에 있으므로 이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놓일 자리(169.1 앞)를 짚어 `absent`로 적는다. 한문 `聞如是`는 주어 `我`가 없는 꼴이며 이 아함 전권 453회(정형구 파일). `聞`의 주어는 한문에 없으므로 한국어에 보충하지 않았다. `如`[비유·가정]은 `如是`가 굳은 연어라 「이와 같이」로 옮겼다. 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216/157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13:169.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1) 팔리 169.1 앞머리 `Sāvatthiyaṃ viharati`(사위에 머무신다)가 `一時…佛在舍衛國`과 맞는다. 한역의 `祇樹給孤獨園`은 팔리에서 `viharati` 뒤 `…pe…`로 접힌 안쪽에 있을 법하나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그 부분은 단정하지 않고 `partial`로 둔다. (2) `舍衛國` 유형 정착어 → 「사위국」. 이름의 뜻: 전거표는 팔리형 `Sāvatthī` / 범어 당대형 `śravasthi`를 함께 싣고(⚠다른 부 DA의 대역) 갈리므로 확인된 두 계통이다 —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慧琳 0367c24는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聞物國」, 또 善見律을 인용해 「舍衛者人名也」라 풀이한다(인용, 확정역 아님). (3)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가 「보류」(5자 이상)로 올린 덩어리다. 한 동산의 이름으로 판별하고 §⑤ 표의 정착어 예대로 정착형을 썼다. 구성: `祇樹`=음역 `祇`+의역 `樹`의 합벽(慧琳 0368a03: 祇陀=誓多 「此譯為勝」, 태자가 숲을 바쳐 「祇樹」), `給孤獨`은 의역(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誓救孤獨」; 전거표 팔리 `Anāthapiṇḍika`, 慧琳은 `阿那陀`로 적어 형이 다르다). 의역 `給孤獨`을 따로 뜻풀이로 옮기지 않은 것은 이 덩어리를 한 지명으로 본 판단이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남긴다. (4) `佛`(구속 「부처님」)이 여기와 마지막 좌표에서는 `佛`, c23.1에서는 같은 인물이 `世尊`(구속 「세존」)으로 나온다 — 한자 흔들림. (5) `一時` 사전 ① 459회, 뒤 `佛在` 441 → 「한때」.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1
爾時,世尊告諸比丘:「於此眾中,若有一人而作是念,我悉知之。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 만일 한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면, 나는 그것을 모두 안다.
주 팔리 169.1 `idhāhaṃ, bhikkhave,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여기 나는 어떤 사람을 이렇게 마음으로 마음을 헤아려 안다)와 맞는다: `於此眾中…一人` ↔ `ekaccaṃ puggalaṃ`, `我悉知之` ↔ `pajānāmi`. 갈림: (a) 팔리는 이어서 그 사람의 생각 내용(169.2: 황금 · 목숨 · 미녀를 위해서도 알고서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을 직접 인용하는데, 한문 `作是念`에는 「이런 생각」의 내용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문장 유무). (b) 한역은 `若…而作是念,我悉知之`가 한 문장이라,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모두 안다」로 끊어 사람의 생각으로 읽을 여지가 남는다 → `[불확실:구두·분절]`. 본문은 `我悉知之`를 붓다의 말로 읽었다(팔리가 그렇다). 앵커: `若`[가정]은 연결어미 「-면」, `於`는 조사, `而`는 흡수, `諸`는 「-들」, `有`[존재]는 「~이 있어」를 피해 「한 사람이」로 주어화(조건절을 여는 `若有`). `悉`은 뜻이 실려 「모두」로 세웠다. `作是念`은 사전 念 ① 「앞: 作是 341/1023」. `爾時` → 「그때」. 한역 `世尊`(구속)과 앞 좌표의 `佛`은 같은 인물이다 —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1
然後此人不以飲食,在大眾中而虛妄語。
그런 뒤 이 사람은 음식 때문이 아닌데도 큰 대중 가운데서 허망한 말을 한다.
주 팔리 169.2는 그 사람이 「…을 위해서도 알고서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인용으로, 항목에 황금 · 소량의 재물(`āmisakiñcikkhahetupi`) · 목숨 · 미녀가 있다(대부분 `…pe…`·생략 나열). 한역 `不以飲食`은 그 가운데 「물질적 이익」 항(`āmisa`)과 겹칠 법하나, 한역은 이를 사실 서술(`在大眾中而虛妄語`)로 세워 팔리 인용의 부정(`na…bhāseyyā`)과 방향이 다르다. 접힌 항목의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partial`로 둔다. 이문: 大正 본문은 `然後`, 宋·元·明과 三본(교감주 orig)은 `然復`이다. `復`이면 「그런데 다시」로 읽혀 뜻이 달라질 수 있어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본문은 大正 본문 `後`를 따랐다. `以`[수단·이유]는 「때문에」로 세웠다. `虛妄語`(사전 虛妄 15회)는 다음 좌표의 `妄語`(사전 49회)와 한자가 다르다 — 통일하지 않고 「허망한 말」/「거짓말」로 옮긴다. `大眾`(사전 62회 · 후대 풀이는 음역어 摩訶僧伽의 번역이라 함)는 앞 좌표의 `眾`과 구별해 「큰 대중」으로 옮겼다. `而`[접속]은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2
我或復於異時,觀見此人,生染著心,念於財物,便於大眾中而作妄語。
나는 혹은 또 다른 때에 이 사람을 살펴보니,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고 재물을 생각하여 곧 큰 대중 가운데서 거짓말을 한다.
주 팔리 169.3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lābhasakkārasilokena abhibhūtaṃ pariyādiṇṇacittaṃ sampajānamusā bhāsantaṃ`(후에 나는 그가 이득 · 존경 · 명성에 압도되어 마음이 사로잡혀 알고서 거짓말하는 것을 본다)와 틀이 같다: `異時` ↔ `aparena samayena`, `觀見此人` ↔ `passāmi`, `妄語` ↔ `musā bhāsantaṃ`. 다른 점: 한역은 압도하는 원인이 `染著心`과 `財物`(재물에 대한 집착)이고, 팔리는 `lābhasakkārasiloka`(이득 · 존경 · 명성)이다 — 개별 어휘의 갈림. 한역에는 `sampajāna`(알고서)와 `pariyādiṇṇacittaṃ`(마음이 사로잡힘)에 해당하는 항이 따로 없다. 이문: 大正 `或復`, 宋·元·明·三본 `復或` → 뜻 차이는 작지만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或復`은 「혹은 또」로 옮겼다. `生染著心`·`已生`의 `生`은 확정술어 파일의 「정형구 행」(jāti)에 올라 있으나 여기서는 「(마음을) 내다 · 일어나다」 동사이므로 그 확정역을 쓰지 않았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見`(정형구 행 dassana)도 `觀見`의 「보다」 동사다. `染著`는 사전 ① 55회, ⑥ 「愛欲之心 於外物浸染執著」(후대 풀이, 참고만) → 「물들어 집착하는」. `念於財物`의 `念`은 「생각하다」(사전 念 ① 1023회). 앵커 `復`[반복]은 `或復` 연어 안이라 별도 「다시」를 세우지 않았고, `於`×3은 조사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3
所以然者,諸比丘!財物染著甚為難捨,令人墜墮三惡道中,不得至無為之處!是故,諸比丘!已生此心,便當捨離;設未生者,勿復興心染著財物。
그렇게 되는 까닭은, 비구들이여, 재물에 물들어 집착함은 몹시 버리기 어려워 사람을 세 악도 가운데로 떨어지게 하고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미 이 마음이 생겼다면 곧 버리고 떠나라. 가령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다시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주 팔리 169.4는 `Evaṃ dāruṇo kho, bhikkhave, lābhasakkārasiloko…pe… evañhi vo…sikkhitabbanti`로, 첫 부분(이득 · 존경 · 명성은 이처럼 혹독하다) 뒤가 `…pe…`로 접혀 있다. 한역 `財物染著甚為難捨,令人墜墮三惡道中,不得至無為之處`와 `已生此心…`의 권유는 팔리에서 접힌 안쪽에 들어 있을 수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한 이상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 한문 쪽에는 `乃至` 등 생략 표지가 없다(정형구 파일), 접힌 것은 팔리 쪽뿐이다. 앵커: `所以然者`는 「까닭」을 세운 이유 구문이고 `者`는 「까닭은」의 화제 표지다. `為`는 「~이 되다」 계사(`甚為難捨`)이고 피동이 아니다. `令`[사역]은 「-게 하다」로 `墜墮`와 `不得至` 둘에 걸린다고 읽었다. 이 구두는 쉼표 위주 한문이라 갈림 여지가 있으나 의미 차이는 작다. `得`[가능·획득]은 「이르지 못한다」의 가능. `當`[당위]은 어미 「-라」, `勿`은 「-지 말라」, `是故`는 「그러므로」, `設…者`는 가정 「가령 …다면」, `復`은 금지에 붙은 「다시」(뜻이 실려 세움). `無為`는 3분할표가 의역으로 올렸다 — 뜻으로 「함이 없는 곳」으로 옮겼다(`無`+`為`, 전거표 팔리 `Asaṅkhata`, ⚠다른 부 SA의 대역). 한국 불교계의 「무위」와의 관계 및 정형구 행(asaṅkhata)이 확정역이 아니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三惡道`는 사전 ① 21회로 「세 악도」(구성 항목은 저본에 없어 풀지 않았다). `生`은 「생겨나다」 동사(위 좌표와 같은 `[불확실:다의어_판별]`). 이문: 大正 `不得至`, 宋·元·明과 三본(교감주)은 `不能得至`이다 →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본문은 大正 본문을 따랐다. 사전 染著 ① 55회.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7.13:169.4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팔리 169.4 끝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와 맞는다. 앵커 `如`[비유·가정]은 `如是`가 굳은 연어라 「이와 같이」, `當`[당위]은 어미 「-라」(팔리의 당위 분사 `sikkhitabba`와 같은 기능), `諸`는 「-들」에 흡수했다. `作是學`은 사전 學 ① 「앞: 作是 351/664」의 정형 → 「이렇게 배우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라)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7.13:169.4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의 종결 정형구(`聞佛所說,歡喜奉行`)에 해당하는 말이 팔리 원문에 없다. 팔리 169.5 `Dasamaṃ`(열째) 이하는 경 번호 · 품 이름 · 요약 게송을 달아 둔 표지라 기능이 다르다. 그래서 놓일 좌표를 짚지 못해 `PN:없음 [absent]`로 적는다.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하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사전 奉行 ① 「앞: 歡喜 450/505」, 歡喜 ① 「뒤: 奉行 450」, 이 아함 거의 모든 경(450경)의 종결 정형이다. 여기서는 같은 인물이 `佛`로 나와 c23.1의 `世尊`과 한자가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