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
(여덟)
주 제목은 증일아함 안의 경 번호(저본 「(八)」)이고, 팔리 `169`는 상윳따 니까야 안의 경 번호다. 서로 다른 번호 체계라 같은 자리에 다른 수가 선다 — 내용 대응이 아니라 번호 슬롯의 형식적 대응이다. 후보 `sn17.13-20`(莊春江, single_source)은 여덟 경(17.13–17.20)을 묶은 번호 체계가 갈리는 묶음이다. 대조해 보니 이 한역의 내용(재물 때문에 대중 가운데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사람 · 「이렇게 배우라」)은 그 첫 경 `169`와 맞는다(169.2의 「목숨을 위해서도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 항, 169.3의 후일 거짓말). 다만 대조표 밖 번호이므로 같은 경이라는 판정은 이 대응 후보를 따른 잠정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17.13:169.0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팔리 169.1은 `Sāvatthiyaṃ viharati`로 바로 시작하고 서두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에 해당하는 정형구가 없다(`…pe…`는 `viharati` 뒤에 있어 이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놓일 자리(169.1 앞)를 짚어 `absent`로 적는다. 한문 `聞如是`는 주어 `我`가 없는 꼴로 이 아함 전권 453회(정형구 파일). `聞`의 주어는 한문에 없으므로 한국어에 보충하지 않았다. `如`[비유·가정]은 `如是`가 굳은 연어라 「이와 같이」로 옮겼다. 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216/157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17.13:169.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1) 팔리 169.1 앞머리 `Sāvatthiyaṃ viharati`(사위에 머무신다)가 `一時…佛在舍衛國`과 맞는다. 한역의 `祇樹給孤獨園`은 팔리에서 `viharati` 뒤 `…pe…`로 접힌 안쪽에 있을 법하나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단정하지 않고 `partial`로 둔다. (2) `舍衛國` 유형 정착어 → 「사위국」. 이름의 뜻: 전거표는 팔리형 `Sāvatthī` / 범어 당대형 `śravasthi`를 함께 싣고(⚠다른 부 DA의 대역) 서로 갈리므로 확인된 두 계통이다 —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慧琳 0367c24는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聞物國」, 善見律을 인용해 「舍衛者人名也」라 풀이한다(인용, 확정역 아님). (3)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가 「보류」(5자 이상)로 올린 덩어리다. 한 동산의 이름으로 판별해 §⑤ 표의 정착어 예대로 정착형을 썼다. 구성: `祇樹`=음역 `祇`+의역 `樹`의 합벽(慧琳 0368a03: 祇陀=誓多 「此譯為勝」, 태자가 숲을 바쳐 「祇樹」), `給孤獨`은 의역(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誓救孤獨」; 전거표 팔리 `Anāthapiṇḍika`, 慧琳은 `阿那陀`로 적어 형이 다르다). 의역 `給孤獨`을 따로 뜻풀이하지 않은 것은 이 덩어리를 한 지명으로 본 판단이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남긴다. (4) 같은 인물을 여기와 마지막 좌표에서는 `佛`(구속 「부처님」), 다음 좌표에서는 `世尊`(구속 「세존」)으로 적는다 — 한자 흔들림. (5) `一時` 사전 ① 459회, 뒤 `佛在` 441 → 「한때」.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1
爾時,世尊告諸比丘:「於此眾中而作是念:『正使命斷,不於眾中而作妄語。』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생각한다: ‘설령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대중 가운데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주 팔리 169.2는 어떤 사람의 생각을 인용한다: 「이 존자는 황금 한 닢 · 백 닢, … 목숨(`jīvitahetupi`)을 위해서도, 미녀를 위해서도 알고서 거짓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역 `正使命斷,不於眾中而作妄語`는 그 가운데 목숨 항(`命`)만 세우고 황금 · 은 · 재물 · 미녀 등의 나열은 없다(팔리의 나열 안쪽은 `…pe…`로 접혀 있어 안쪽은 읽지 못했다). 또 팔리는 169.1 끝 `ekaccaṃ puggalaṃ ev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mi`(어떤 사람을 이렇게 마음으로 마음을 헤아려 안다)로 이 인용을 이끄는데 한문 이 자리에는 그에 해당하는 서술이 없다(문장 유무). 한문 `於此眾中而作是念`은 주어가 없다 — 팔리의 `ekaccaṃ puggalaṃ`(어떤 사람)을 한국어에 들여오지 않았고, 이어지는 `此人`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이 좌표에서는 한문이 밝히지 않는다 → `[불확실:격·태·구문]`. 한역은 `作是念`에 이어 곧 인용을 열고, 팔리는 `evaṃ…pajānāmi –`로 인용을 연다. `正使`는 사전 正使 ① 「발화 첫머리 10/65」이고, 사전 正使 ③ 용례 ea136/0584c04.1 · ea145/0590b07.1이 「설령 ~할지라도」의 양보절이다. ⑥의 `正使`(번뇌의 본체, 후대 술어)는 아함 문맥과 어긋나 버렸다. 앵커 `使`[사역]은 `正使` 안의 굳은 연어이므로 「-게 하다」를 세우지 않았다. `命斷`은 「목숨이 끊어지다」(사전 命 ① 500회). `於`×2는 조사, `而`×2는 흡수, `諸`는 「-들」. `作是念`은 사전 念 ① 「앞: 作是 341/1023」. 의지를 서술하는 인용이라 「-겠다」로 옮겼다(한문에 `當`은 없다). 한역 `世尊`(구속)과 앞 좌표의 `佛`은 같은 인물이다 —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2
我或復於異時觀見此人,生染著心,念於財物,便於大眾中而作妄語。
나는 혹은 또 다른 때에 이 사람을 살펴보니,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고 재물을 생각하여 곧 큰 대중 가운데서 거짓말을 한다.
주 팔리 169.3 `Tamenaṃ passāmi aparena samayena lābhasakkārasilokena abhibhūtaṃ pariyādiṇṇacittaṃ sampajānamusā bhāsantaṃ`(후에 나는 그가 이득 · 존경 · 명성에 압도되어 마음이 사로잡혀 알고서 거짓말하는 것을 본다)와 틀이 같다: `異時` ↔ `aparena samayena`, `觀見此人` ↔ `Tamenaṃ passāmi`, `妄語` ↔ `musā bhāsantaṃ`. 다른 점: 한역은 원인이 `染著心`과 `財物`(재물에 대한 집착)이고 팔리는 `lābhasakkārasiloka`(이득 · 존경 · 명성)다 — 개별 어휘의 갈림. 한역에는 `sampajāna`(알고서)와 `pariyādiṇṇacittaṃ`(마음이 사로잡힘)에 해당하는 항이 따로 없다. `生染著心`의 `生`은 확정술어 파일의 「정형구 행」(jāti)에 올라 있으나 여기서는 「(마음을) 내다」 동사이므로 그 확정역을 쓰지 않았고, `觀見`의 `見`(정형구 행 dassana)도 「보다」 동사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或復`은 「혹은 또」로 옮겼고 `復`[반복]은 이 연어 안이라 별도 「다시」를 세우지 않았다. `染著` 사전 ① 55회, ⑥ 「愛欲之心 於外物浸染執著」(후대 풀이, 참고만) → 「물들어 집착하는」. `念於財物`의 `念`은 「생각하다」(사전 念 ① 1023회). `於`×3은 조사로 흡수, `而`은 흡수. `大眾`(사전 ① 62회, ⑥은 음역어 摩訶僧伽의 번역이라 풀이)은 앞 좌표의 `眾`과 구별해 「큰 대중」, `妄語`(사전 ① 49회)는 「거짓말」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7.13:169.3
所以然者,諸比丘!財物染著甚為難捨,令人墮三惡道中,不得至無為之處!是故,諸比丘!已生此心,便當捨離;若未生者,勿復興心染著財物。
그렇게 되는 까닭은, 비구들이여, 재물에 물들어 집착함은 몹시 버리기 어려워 사람을 세 악도 가운데 떨어지게 하고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미 이 마음이 생겼다면 곧 버리고 떠나라. 만일 아직 생기지 않았다면 다시 재물에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주 팔리 169.4는 `Evaṃ dāruṇo kho, bhikkhave, lābhasakkārasiloko…pe… evañhi vo…sikkhitabbanti`로, 첫 부분(이득 · 존경 · 명성은 이처럼 혹독하다) 뒤가 `…pe…`로 접혀 있다. 한역 `財物染著甚為難捨,令人墮三惡道中,不得至無為之處`와 `已生此心…`의 권유는 팔리의 접힌 안쪽에 들어 있을 수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한 이상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다. 한문 쪽에는 `乃至` 등 생략 표지가 없다(정형구 파일). 앵커: `所以然者`는 「까닭」을 세운 이유 구문이고 `者`는 「까닭은」의 화제 표지. `為`는 「~이 되다」 계사(`甚為難捨`)이며 피동이 아니다. `令`[사역]은 「-게 하다」로 `墮`와 `不得至` 둘에 걸린다고 읽었다. `得`[가능·획득]은 「이르지 못한다」의 가능. `當`[당위]은 어미 「-라」, `勿`은 「-지 말라」, `是故`는 「그러므로」, `若…者`는 가정 「-면」(어미가 진다, 「거든」은 쓰지 않음), `復`은 금지에 붙은 「다시」(뜻이 실려 세움). `無為`는 3분할표가 의역으로 올렸으므로 뜻으로 「함이 없는 곳」으로 옮겼다(`無`+`為`, 전거표 팔리 `Asaṅkhata`, ⚠다른 부 SA의 대역). 한국 불교계의 「무위」와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았고 정형구 행(asaṅkhata)은 확정역이 아니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三惡道`는 사전 ① 21회, 「세 악도」(구성 항목은 저본에 없어 풀지 않았다). `生`은 「생겨나다」 동사(위 좌표와 같은 `[불확실:다의어_판별]`). 이문 셋: (a) 大正 `墮`, 宋·元·明 `墜墮`(뜻 차이 없음); (b) 大正 `不得至`, 宋·元·明 `不能得至`; (c) 大正 `已生`, 聖本 `以生` — `以生`이면 「~로써 낳으면」 꼴이 되어 구문이 달라진다. 본문은 모두 大正 본문을 따랐고 `[불확실:저본_이문·자형]`로 신고한다. 사전 染著 ① 55회.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7.13:169.4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팔리 169.4 끝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nti`(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배워야 한다)와 맞는다. 앵커 `如`[비유·가정]은 `如是`가 굳은 연어라 「이와 같이」, `當`[당위]은 어미 「-라」(팔리의 당위 분사 `sikkhitabba`와 같은 기능), `諸`는 「-들」에 흡수했다. `作是學`은 사전 學 ① 「앞: 作是 351/664」의 정형 → 「이렇게 배우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라)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17.13:169.4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의 종결 정형구(`聞佛所說,歡喜奉行`)에 해당하는 말이 팔리 원문에 없다. 팔리 169.5 `Dasamaṃ`(열째) 이하는 경 번호 · 품 이름 · 요약 게송을 달아 둔 표지라 기능이 다르다. 그래서 놓일 좌표를 짚지 못해 `PN:없음 [absent]`로 적는다. 앵커 `所`[피동·명사화]는 「하는 바」가 아니라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사전 奉行 ① 「앞: 歡喜 450/505」, 歡喜 ① 「뒤: 奉行 450」, 이 아함 거의 모든 경(450경)의 종결 정형이다. 여기서는 같은 인물이 `佛`로 나와 앞의 `世尊`과 한자가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