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
(아홉)
주 제목 자리에는 숫자 九만 있다. 저본이 더 말해 주지 않아 숫자만 옮겼다. 증언은 이 입력에 주어지지 않아 대응은 미대응이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정형구 표: 이 아함 전권 453회, 이 경 1회). 聞의 주어는 한문에 없어 그대로 두었다. 如는 비유 앵커대로 「~같이」로 옮겼다. 증언 미제공.
一時,佛在羅閱城迦蘭陀竹園所,與大比丘眾五百人俱。
한때 부처님께서는 나열성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 큰 비구 대중 오백 사람과 함께 계셨다.
주 佛=부처님, 比丘=비구는 [구속] 확정역. 迦蘭陀는 3분할 표대로 음역으로 보아 한자 독음 「가란타」로 적었다. 팔리 후보 Kalandaka, 근대 범어 후보 Kāraṁḍava / Karaṁḍa로 갈린다(전거 迦蘭陀, 다른 부(MA)의 대역 표시 있음). 계통은 판정하지 않는다. 音義 慧琳 0601c04 〔出生菩提心經〕은 迦蘭䭾迦를 새 이름으로 푼다(참고). 竹園은 뜻으로 옮긴 말로 보아 「대나무 동산」으로 옮겼다(사전 竹園 ① 증일아함 45회, 迦蘭陀竹園所 36경). 羅閱: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音義 慧琳 0356c04 〔放光般若經〕이 「羅閱祇晉言王舍城」으로 풀고 이문(宋·元·明)도 羅閱祇로 읽으므로 소리를 옮긴 이름으로 판단해 한자 독음 「나열」로 적었다(표와 어긋나 저본이 이김). 정착형 「왕사성」은 저본에 없는 한자(王舍城)의 말이라 쓰지 않았다. 팔리형 Rājagaha는 비고에만. 유형 판별은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이문: 羅閱 → 羅閱祇(宋·元·明), 城 → 域(宋·元). 大正 본문을 따랐다. 所는 처소 표지로 「동산에」에 흡수(훈독투 「~하는 바」 회피). 大比丘眾은 「큰 비구 대중」(사전 大比丘 ① 83회). 與…俱는 「함께 계셨다」로 옮겼다. 증언 미제공.
爾時,世尊告諸比丘:「云何,諸比丘!頗有見提婆達兜清白之法乎?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비구들이여! 혹시 제바달두의 맑고 흰 법을 보는 이가 있는가?
주 世尊=세존, 比丘=비구는 [구속] 확정역. 붓다의 발화는 청자와 무관하게 평서로 통일했다. 云何는 의문 호격 앞의 담화 표지로 「어떤가」. 頗有는 질문 대상이 있는지를 묻는 존재 서술이라 「~이 있는가」를 살렸다(사전 頗有 ① 발화 첫머리 12/38). 頗는 音義 慧琳 0368a10에서 「語辭」로 풀려 「혹시」로 옮겼다(참고). 提婆達兜는 음역으로 한자 독음 「제바달두」(전거 提婆達兜 ↔ 팔리 후보 Devadatta, 5회; 音義 慧琳 0820b02 「達兜 梵語訛也 即提婆達多也」). 清白之法: 清白은 음독으로 늘어놓지 않으려 「맑고 흰」으로 옮겼으나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사전 清白 ⑥(丁福保)은 「無漏之善法」으로 풀지만 후대 눈이라 쓰지 않았다. 見은 `[정형구 행]` 한자(dassana)라 낱말 확정역이 없다. 이 자리는 「보다」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乎는 문말 의문 어미에 흡수. 증언 미제공.
然復提婆達兜為惡深重,受罪經劫不可療治。
그러나 다시 제바달두는 악을 행함이 깊고 무거워, 죄를 받아 겁을 지나도록 치료할 수 없다.
주 復은 반복 앵커대로 「다시」. 為惡의 為는 「행하다」(위하여·피동 아님). 受는 `[정형구 행]` 한자(vedanā)라 낱말 확정역이 없다. 이 자리는 동사 「받다」(죄를 받음)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受罪經劫不可療治는 「죄를 받아 겁을 지나도록 치료할 수 없다」로 한 흐름으로 읽었다. 受罪經劫과 不可療治를 끊어 읽는 길도 있다. 療治: 音義 慧琳 0469b23 「療即治也」, 「止病也」(참고). 사전 療治 ① 증일아함 25회, 不可療治 20회. 증언 미제공.
於我法中,不見毫釐之善可稱記者。
나의 법 가운데에서 털끝만 한 선도 일컬어 기록할 만한 것을 보지 못한다.
주 於我法中의 於는 조사 「에서」에 흡수. 毫釐는 털끝과 아주 작은 단위를 겹친 말로 「털끝만 한」. 稱記의 記는 기록·기억·수기 따위로 갈리는 다의어다(사전 記 ① 58회 · 앞: 可稱 12). 저본 문맥만으로는 「일컬어 기록할 만한」으로 읽었으나 다른 길도 열려 있어 [불확실:다의어_판별]. 見은 `[정형구 행]` 한자(dassana)라 낱말 확정역이 없다. 이 자리는 「보다」로 옮겼다. 不見은 사전 不見 ① 증일아함 136회. 한자 흔들림: 여기서는 毫釐之「善」, 0567a24.1에서는 같은 자리에 毫釐之「法」이라 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문: 善 → 善法(宋·元·明), 毫 → 豪(聖). 大正 본문을 따랐다. 증언 미제공.
以是之故,我今說提婆達兜諸罪之原首不可療治。
이 까닭에 나는 지금 제바달두의 여러 죄의 근원과 으뜸이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 以是之故는 「이 까닭에」로 흡수. 諸罪의 諸는 종류가 여럿임을 나타내는 「여러」. 原首는 확정역이 없고 「근원과 으뜸」으로 두 글자를 모두 살렸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구문: 「제바달두의 여러 죄의 근원과 으뜸이」 치료할 수 없다는 읽기(제바달두의 모든 죄의 원수라는 사람 자체가 치료할 수 없다고 읽을 길도 있다)로 두 가지 구문이 서 있어 [불확실:격·태·구문]. 이문: 今 → 於今(宋·元·明). 大正 본문을 따랐다. 증언 미제공.
猶如有人而墮深廁,形體沒溺,無有一淨處。
마치 어떤 사람이 깊은 뒷간에 떨어져 몸이 잠기고 빠져, 깨끗한 곳이 하나도 없는 것과 같다.
주 猶如는 비유 표지로 「마치 ~와 같다」에 걸었다. 有人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사람을 도입하는 말이라 「어떤 사람이」로 주어화했다. 而는 흡수. 沒溺은 「잠기고 빠져」. 無有一淨處는 「깨끗한 곳이 하나도 없다」. 이문: 有 없음(宋·元·明), 有人의 有가 없는 판본이 있다. 大正 본문을 따랐다. 증언 미제공.
有人欲來濟拔其命,安置淨處,遍觀廁側及彼人身,頗有淨處,吾欲手捉拔濟出之。
어떤 사람이 와서 그의 목숨을 건져 뽑아내어 깨끗한 곳에 안치하고자 하여, 뒷간 곁과 그 사람의 몸을 두루 살펴보니, 혹시 깨끗한 곳이 있다면 내가 손으로 붙잡아 뽑아 건져 꺼내고자 한다.
주 有人은 「어떤 사람이」로 주어화. 濟拔(其命)과 拔濟(出之)는 같은 낱말의 순서만 뒤집힌 꼴이다. 濟拔은 「건져 뽑아내어」, 拔濟는 「뽑아 건져」로 옮겼다. 사전 濟拔 ① 이 경에만 나온다, 拔濟 ① 증일아함 4회. 頗有淨處에서 頗는 가정·질의로 「혹시」. 有는 깨끗한 곳이 있는지 존재 자체를 묻는 자리라 「있다면」을 살렸다. 이 구절을 질문으로 읽을 길도 열려 있다. 吾欲手捉拔濟出之는 저본이 따옴표 없이 이어 쓴 속말을 평서 「~고자 한다」로 옮겼다. 彼人身의 彼人은 뒷간에 빠진 사람이다(다음 좌표 0567a23.1의 彼人은 구하러 온 사람이다). 증언 미제공.
彼人熟視,無一淨處而可捉者,便捨而去。
그 사람이 자세히 살펴보아도 붙잡을 만한 깨끗한 곳이 하나도 없어, 곧 버리고 떠난다.
주 이 좌표의 彼人은 구하러 온 사람이다(앞 좌표 0567a21.1의 彼人身은 빠진 사람). 熟視는 「자세히 살펴보다」. 無一淨處而可捉者에서 而는 흡수, 者는 명사화로 「붙잡을 만한 깨끗한 곳」. 便은 「곧」. 증언 미제공.
如是,諸比丘!我觀提婆達兜愚癡之人,不見毫釐之法而可記者,受罪經劫不可療治。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내가 어리석은 사람 제바달두를 살펴보니 털끝만 한 법도 기록할 만한 것을 보지 못하고, 죄를 받아 겁을 지나도록 치료할 수 없다.
주 比丘=비구는 [구속] 확정역. 如是는 비유 앵커대로 「이와 같이」. 提婆達兜愚癡之人은 「어리석은 사람 제바달두」(동격). 愚癡는 음독이 아닌 「어리석은」(사전 愚癡 ① 65회). 한자 흔들림: 0567a18.1은 毫釐之「善」, 여기는 毫釐之「法」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문: 法 → 善法(宋·元·明), 毫 → 豪(聖). 大正 본문을 따랐다. 見은 `[정형구 행]` 한자(dassana)라 낱말 확정역이 없어 「보다」로 옮겼다. 受는 `[정형구 행]` 한자(vedanā)이나 이 자리는 동사 「받다」다. 둘 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증언 미제공.
所以然者,提婆達兜愚癡專意,偏著利養,作五逆罪已,身壞命終,生惡趣中。
그러한 까닭은, 제바달두가 어리석어 뜻을 오로지 하여 이익과 봉양에 치우쳐 집착하고, 다섯 가지 거스르는 죄를 짓고 나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나쁜 갈래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이다.
주 所以然者는 「그러한 까닭은」 + 문말 「~때문이다」. 者는 명사화·화제 표지. 利養은 확정역이 없어 「이익과 봉양」으로 풀었다(사전 利養 ① 증일아함 80회; ⑥ 丁福保 「以利養身」은 후대 눈이라 무게를 낮췄다). 이 경 안에서 세 번 모두 같게 옮긴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五逆罪는 한국 불교계의 정착형 「오역죄」가 있으나 그 풀이를 먼저 두려고 「다섯 가지 거스르는 죄」로 풀어 옮겼다. 확정역이 아니다. 惡趣는 「나쁜 갈래」(사전 惡趣 ⑥ 「眾生以惡業之因而趣之所」, 참고). 生은 `[정형구 행]` 한자(jāti)라 낱말 확정역이 없고, 여기는 동사 「태어나다」로 옮겼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身壞命終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증언 미제공.
如是,諸比丘!利養深重,令人不得至安隱之處。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익과 봉양은 깊고 무거워, 사람을 편안한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주 令은 사역 「~게 한다」. 不得至는 가능·획득의 得이 부정에 걸려 「이르지 못하게」. 安隱之處의 安隱은 安穩과 같은 말로 「편안한」으로 풀었다(사전 安隱 ⑥ 「與安穩同」; 전거 安隱 ↔ 당대 범어 후보 svastha). 확정역이 없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이문: 之 없음(宋·元·明). 大正 본문을 따랐다. 증언 미제공.
是故,諸比丘!以生利養心,便當捨離;若未生者,勿興染心。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익과 봉양의 마음이 생겼으면 곧 버리고 떠나라.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물든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
주 是故는 「그러므로」. 以生利養心: 대정 본문은 以이고 宋·元·明은 已이다. 以를 수단·이유의 조사로 풀면 「~으로」로 걸리지 않아, 앞 절을 가정으로 읽어 「생겼으면」으로 흡수했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便當捨離의 當은 어미 「-라」에 흡수하고 「마땅히」를 붙이지 않았다. 若未生者의 若은 연결어미 「-면」이 지고 者는 흡수. 勿興은 금지 「-지 말라」. 染心은 「물든 마음」(사전 染心 ⑥ 「愛著之心,婬欲之心」, 참고). 生은 `[정형구 행]` 한자(jāti)라 낱말 확정역이 없어 이 자리는 「생기다」로 옮겼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이문: 便 없음(宋·元·明), 染 → 染著(元·明). 大正 본문을 따랐다. 증언 미제공.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如是는 「이와 같이」.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에 흡수. 作是는 「이렇게」. 이 좌표에서 붓다의 발화가 닫힌다. 증언 미제공.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주 比丘=비구, 佛=부처님은 [구속] 확정역. 所說의 所는 「말씀하신 것」으로 관형절 처리. 歡喜奉行은 종결 정형구다(사전 歡喜 ① 뒤 奉行 450, 奉行 ① 앞 歡喜 450). 증언 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