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둘)
주 제목 좌표로 `二`(경 번호)만 실려 있다. 이 조각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아(직역단독) 두 증언 모두 아직 대조하지 않았다 — 그래서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적는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이 아함 전권 453회 · 사전 如是 ① 증일아함 1578회 · 이 경 0.2). `如`의 비유·가정 기능은 「이와 같이」로 졌다. 한문에 화자(`我`)가 나오지 않으므로 「나는」을 보충하지 않았다. 증언 미투입.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1) `佛`=부처님은 [구속] 확정역이다. 서술문이라 높임은 「-께서 … 계셨다」로 두되 문말은 평서다. (2) `舍衛`는 정착어(→사위)로 정착형 그대로 쓴다. 이름의 뜻: 음의(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 음의)에 「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 法鏡經譯云聞物國」, 또 善見律을 인용해 「舍衛者人名也」(사람 이름에서 나라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 뜻풀이가 갈리므로 이 비고는 인용만 하고 정하지 않는다. 전거표: 舍衛 ←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다른 부 DA의 대역) — 두 계통이 서로 다른 형으로 확인되므로 `갈림: 음역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3) `祇樹給孤獨園`은 대역표에서 「보류 — 5자 이상, 이름인지 먼저 판별」로 온 덩어리다. 판별: `祇樹`(기타 태자의 숲 — 음의 慧琳 0368a03: 「祇陀…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祇는 소리·樹는 뜻의 합성) + `給孤獨`(뜻으로 옮긴 이름 — 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 梵云阿那陀 此云無親屬 巨富多財誓救孤獨」, 외로운 이를 돌보는 사람) + `園`(동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고유명 곧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이다(작가프롬프트 §⑤ 정착어 예시와 같다). 따라서 정착형으로 썼다. 다만 `給孤獨`은 의역이라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으로 풀 수도 있으므로 정착형 선택을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신고한다. 전거표: 祇樹給孤獨園 ←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 DA의 대역, 범어 후보 없음). (4) `一時`=한때. 증언 미투입.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是中不見一法速磨滅者,憎嫉梵行。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가운데에서 빨리 닳아 없어지는 한 법을 보지 못한다. 청정한 행을 미워하고 시기함이다.
주 (1) 구두·분절 — 저본은 `者,憎嫉梵行。`으로 끊는다. `不見一法速磨滅者`(빨리 닳아 없어지는 한 법을 보지 못한다) 뒤의 `憎嫉梵行`을 앞 문장에 대한 설명(= 그 한 법은 「청정한 행을 미워하고 시기함」)으로 읽었다. `憎嫉梵行`이 `一法`을 꾸미는 관형절일 가능성은 문법상 남지만 뜻이 서지 않아 취하지 않았고, 확정은 못 한다. (2) 梵行 — `_확정술어` [정형구 행]에는 정형구 속 뜻만 있고 낱말 확정역이 없다. 한자대역 3분할이 `의역`(음독 금지)으로 분류했고 음의(慧琳 0698c19 〔四分律〕)가 「梵言梵摩 此云清淨」이라 하므로 「청정한 행」으로 뜻을 옮겼다. 한 경 안에서 이 말은 이 자리 한 번뿐이다. 전거표: 梵行 ← 팔리 후보 `Brahmacariya`(⚠다른 부 MA/SA의 대역). 정착형 「범행」으로 옮길지는 정도평 몫. (3) 이문 — 磨 ← 摩【宋】【元】【明】, 嫉 ← 𢇻【聖】, **梵行 ← 梵行人【宋】【元】【明】**(「청정한 행을 닦는 사람」으로 뜻이 달라진다). 저본(大正)은 `梵行`이므로 그대로 옮기고 이문은 본문에 들이지 않는다. (4) 磨滅=「닳아 없어지다」: 사전 磨滅 ① 증일아함 13회·11경(이 경 0569b14.1), ⑥ 丁福保 「物碾磨,則終消滅」. 速=빨리. 憎嫉=미워하고 시기하다. (5) 世尊=세존 [구속]. 이 경 안에서 같은 분이 `世尊`(0569b14.1)과 `佛`(0.3, 0569b17.1)으로 달리 불린다 — 확정역이 서로 달라(세존/부처님) 문자열을 통일하지 않고 한자대로 옮겼다. 이것은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한자 흔들림`이다. (6) 告=말씀하셨다(붓다 발화 평서). 諸比丘는 「비구들」 — `諸`의 복수는 「들」이 졌다. `於是中`의 `於`는 「에서」가 졌다. 증언 미투입.
是故,諸比丘!當修行慈忍,身行慈,口行慈,意行慈。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자애와 인내를 닦아 행하라. 몸으로 자애를 행하고 입으로 자애를 행하고 뜻으로 자애를 행하라.
주 (1) `當`은 어미 「-라」가 졌다(「마땅히」 없음). (2) `慈忍` — 증일아함 1회, 이 경에만 나오는 낱말(사전 慈忍 ① 1회·1경, ④ 별역잡아함 1). 「자애와 인내」(병렬)로 읽었다. 사전 ⑥ 丁福保는 「慈悲與忍辱」으로 푼다(후대·가볍게 본다). 「자애로운 인내」(수식)로 읽을 가능성도 남아 `[불확실:구두·분절]`로 신고한다. (3) `身行慈 · 口行慈 · 意行慈` — `行`을 동사(~으로 자애를 행하다)로 읽었다. 같은 `身行`·`口行`·`意行`이 명사(몸의 행위·입의 행위·뜻의 행위)로 쓰이는 용례가 있어(사전 身行 ① 38회·19경; 사전 身行 ③ 용례 ea130/0582b22.1 「或有眾生,身行惡、口行惡、意行…」) 「몸의 행이 자애로우며」로 읽을 가능성도 있다. 바로 앞 `修行慈忍`의 `行`과 병렬이라 동사로 취했고 `[불확실:격·태·구문]`로 신고한다. `身`·`口`·`意`는 몸·입·뜻(마음이 아니라 「뜻」)으로 옮겼다. (4) 修行=닦아 행하다(사전 修行 ① 251회·122경). (5) 是故=그러므로, 諸比丘!=호격 「비구들이여」. 증언 미투입.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如是`는 앞 가르침을 받는 「이와 같이」, `是學`의 `是`는 「이렇게」로 옮겼다.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가 졌고 `作是學`의 `作`은 「짓다」를 따로 세우지 않고 「이렇게 배우라」 한 동사구로 흡수했다(전권 `作是學` 351회 정형). 學=배우다(사전 學 ① 증일아함 664회·381경, 앞 `作是`와 351회 함께 나옴). 이 좌표로 붓다의 발화(따옴표)가 닫힌다. 증언 미투입.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맺음 정형구 `聞佛所說,歡喜奉行`(사전 歡喜 ① 450경에 `所說` 뒤, 奉行 ① 450경에 `歡喜` 뒤). `所說`의 `所`는 「~하는 바」를 쓰지 않고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기뻐하며, 奉行=받들어 행하였다. (2) 佛=부처님 [구속]. 같은 경 앞 좌표에서는 같은 분이 `世尊`으로 불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한자 흔들림`이다. 확정역이 한자마다 따로 있어 문자열은 한자대로 부처님/세존으로 갈렸다. (3) 爾時=그때. 諸比丘=비구들(내레이션이므로 평서). 증언 미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