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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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권 번호 표시(大正 7). 증언(팔리·산스크리트)이 투입되지 않은 직역단독 국면이므로 대응은 두 항 모두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이 아함 전권 453, 이 경 1). 앵커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如是`(이와 같이)의 지시어로 읽었다. 한문에 `我`가 없으므로 주어를 보태지 않았다.
一時,佛在羅閱城耆闍崛山中,與大比丘五百人俱。
한때 부처님께서 라열성 기사굴산 가운데 계시며, 큰 비구 오백 명과 함께하셨다.
주 `佛`=부처님, `比丘`=비구([구속] 그대로). `大比丘`는 「큰 비구」. `羅閱城`은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라열성) — 음의 慧琳 0356c04 〔放光般若經〕은 「羅閱祇 晉言王舍城」으로 푼다. 같은 경 0575b01.1의 `王舍城`과 같은 도시를 다른 한자로 부른다. `耆闍崛山`은 음역(기사굴산)이며 [정형구 행] 한자라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 문맥으로 옮기고 불확실 신고. 음역계통: 전거는 팔리형 Gijjhakūṭa를 싣고, 음의 慧琳 0482a18 〔音妙法蓮花經〕은 범어 「姞利駄羅矩吒」(Gṛdhrakūṭa 계통)를 전한다 — 판정하지 않는다. `比丘`도 팔리형 bhikkhu / 근대 범어형 Bhikṣu로 갈린다(전거). `山中`은 「산 가운데」, `與…俱`는 「…과 함께」.
爾時,尊者須菩提亦在王舍城耆闍崛山側,別作屋廬而自禪思。
그때 존자 수보리도 왕사성 기사굴산 곁에 있으면서, 따로 초막을 지어 선의 사유를 하였다.
주 `須菩提`는 음역으로 판별해 수보리(정착어; 뜻은 善現·善實·善吉 — 음의 慧琳 0450c06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王舍城`은 뜻옮김(王舍)이나 정착형 왕사성을 그대로 쓴다(왕이 머무는 집의 성). 0.3의 `羅閱城`과 같은 도시를 다른 한자로 적는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耆闍崛山`의 음역계통은 0.3과 같다. `山側`=산 곁. `屋廬`=초막(음의 慧琳 0653b09 〔增一阿含經〕「別舍也」); 이문 `靜屋`(宋元明). `自`는 `他` 대조가 없어 흡수하고 `亦`은 부처님이 같은 산에 계신다는 뜻이 실려 「도」로 옮겼다. `禪思`=선의 사유(사전 禪思 ⑥, 이 경에만 나온다). 이문 `自`→`坐`(宋元明).
爾時,尊者須菩提身得苦患,甚為沈重,便作是念:「我此苦痛為從何生?
그때 존자 수보리는 몸에 괴로운 병을 얻었고, 몹시 무거웠다.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의 이 괴로운 아픔은 어디로부터 생기는가?
주 `生`은 [정형구 행] 한자(jāti 정형구)이나 낱말 확정역이 없다 — 이 자리는 「(아픔이) 생기다」 동사로 옮기고 불확실 신고. `得苦患`의 得은 획득(병을 얻다). `甚為沈重`의 為는 피동(為…所)이 아니라 서술어를 받는 말로 읽었다. 문말 `為`는 의문을 받는 어기로 읽어 따로 옮기지 않았다.
復從何滅?
또 어디로부터 사라지는가?
주 `復`은 앞 물음에 이어 반복되는 뜻이 실려 「또」. `滅`=사라지다.
為至何所?」
어느 곳에 이르는가?」
주 `何所`의 所는 「곳」(처소)이며 피동·관형 표지가 아니다.
爾時,尊者須菩提便於露地而敷坐具,直身正意,專精一心,結跏趺坐,思惟諸入,欲害苦痛。
그때 존자 수보리는 곧 노지에서 앉을 깔개를 펴고, 몸을 곧게 하고 뜻을 바르게 하며, 오로지 정진하는 한마음으로 가부좌를 맺고 앉아, 여러 입을 사유하며 괴로운 아픔을 없애고자 하였다.
주 `諸入`의 入은 감각 영역(근·경의 입)으로도, 「(선정에) 들어감」으로도 읽힌다 — 저본만으로 가르지 못해 한자 독음 「입」으로 두고 불확실 신고. `害`는 「없애다」로 옮겼다(해치다 뜻; 0575c13.1 `害毒藥`과 같은 쓰임으로 맞춤). `露地`=노지(지붕 없는 땅), `坐具`=앉을 깔개, `專精`=오로지 정진(사전 專精 ⑥ 「心專一而精進」). `結跏趺坐`의 跏趺는 음의 慧琳 0353b16 〔大般若波羅蜜多經〕 참조. `於`와 `而`는 조사·어미로 흡수.
爾時,釋提桓因知尊者須菩提所念,便以偈勅波遮旬曰:
그때 석제환인은 존자 수보리가 생각한 것을 알고, 곧 게송으로 파차순에게 명하여 말하였다:
주 `釋提桓因`은 표가 「의역/혼합」으로 갈린 이름이다. 釋提+桓因 둘 다 소리로 옮긴 것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석제환인)을 쓰고 정착형 제석천으로 바꾸지 않았다(음의 慧琳 0482c21 〔音妙法蓮花經〕은 「釋迦=能, 提婆=天, 因達羅=帝」로 푼다). 음역계통: 전거의 팔리형 Sakka devānam inda와 근대 범어형 Śākradevānāmiṁdra가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波遮旬`은 표에 없는 이름(표의 `波旬`은 혼합)이며 소리로 옮긴 이름으로 판별해 파차순, 이 경 안에서 통일. `勅`=명하다, `以偈`=게송으로, `所念`=생각한 것.
「善業脫諸縛,居在靈鷲山;
「선업은 여러 얽매임에서 벗어나, 신령한 독수리산에 머물러 있다;
주 `善業`은 `須菩提`의 뜻옮김이다(음의 慧琳 0364b01 〔明度無極經〕「此譯云善實或云善業或云善吉皆一義也」). 뜻옮김이므로 뜻으로 옮기되, 「선업」은 한국어에서 업 일반어와 겹쳐 사람 이름인지 모호하다 — 한문도 같은 모호를 지닌 채 한 사람을 須菩提/善業으로 부른다(한자 흔들림). `靈鷲山`은 뜻옮김(신령한 독수리)이며 [정형구 행] 한자라 낱말 확정역이 없다 — 같은 산을 0.3은 소리(耆闍崛)로, 여기서는 뜻(靈鷲)으로 적는다. 정착형 영취산이 있으나 표의 의역 분류를 따라 뜻으로 옮겼다. `縛`=얽매임, 뒤의 `結`=매듭으로 두 한자를 구분했다. `居在`=머물러 있다.
今得極重患,樂空諸根定。
지금 몹시 무거운 병을 얻었고, 공과 여러 근의 선정을 즐긴다.
주 `樂空諸根定`은 「공과 여러 근의 선정을 즐긴다」(樂+空+諸根定)로 끊었다. 「여러 근을 비우는 선정」(樂+空諸根+定)으로도 끊을 수 있다 — 저본만으로 가르지 못함. `空`은 한자 독음 「공」, `根`은 「근」으로 두었다. 공과 선정이 겹친 말로, 사전 空定 ③ 용례(ea28 「恒樂空定」)와 같은 계열이다. `得`=얻다, `極重患`=몹시 무거운 병.
速來往問疾,覲省尊上顏;
빨리 가서 병을 묻고, 높고 존귀한 분의 얼굴을 뵙고 살피라;
주 앞 구에서 勅(명함)이 이어지므로 명령형으로 옮겼다. `來往`은 「가다」로 옮겼다(하늘에서 산으로 가는 방향). `問疾`=병을 묻다(문병), `覲省`=뵙고 살피다. 이문 `尊上`→`上尊`(宋元明)은 어순만 다르다.
既得獲大福,種德莫過是。」
이미 큰 복을 얻으니, 덕을 심는 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주 `莫過是`의 莫은 금지(-지 말라)가 아니라 「없다」(부정 대명사)로 쓰였다 — 앵커의 [금지] 표시가 이 자리 저본과 맞지 않아 저본대로 옮겼다. `種德`은 표에서 의역(Soṇadaṇḍa)으로 잡혔으나 여기서는 인명이 아니라 「덕을 심다」이다(음의 慧琳 0450a24 「種植功德」). `既得獲`=이미 얻으니.
時,波遮旬對曰:「如是。
그때 파차순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如是`는 응답어 「그렇습니다」. 파차순→석제환인(윗사람)이므로 존댓말. 표기 파차순은 0575b08.1과 같다.
尊者!」
존자시여!」
주 호칭 `尊者`는 문맥상 말을 받는 석제환인을 부른다(수보리와 같은 호칭이 쓰였다). 존자시여로 옮김.
爾時,釋提桓因將五百天人及波遮旬,譬如士夫屈伸臂頃,便從三十三天沒,來至靈鷲山中,離尊者須菩提不遠,復以此偈語波遮旬曰:
그때 석제환인은 오백 천인과 파차순을 거느리고, 마치 사내가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처럼 곧 삼십삼천에서 사라져, 신령한 독수리산 가운데 이르러 존자 수보리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이 게송으로 파차순에게 말하였다:
주 `三十三天`은 음역으로 보아 한자 독음(삼십삼천). `靈鷲山`은 [정형구 행] 한자 — 0575b10.1과 같이 뜻으로 옮기고 불확실 신고(같은 산을 耆闍崛/靈鷲로 달리 적는 한자 흔들림). `士夫`=사내, `屈伸臂頃`=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 `沒`=사라지다. `復以此偈`의 復은 앞에서 이미 게송으로 명했으므로 「다시」가 실렸다. `離…不遠`=…에게서 멀지 않은 곳.
「汝今覺善業,樂禪三昧定;
「너는 지금 선업을 깨워라, 선의 삼매와 선정을 즐기는 이를;
주 `覺`은 [정형구 행] 한자(vedanā/sambodhi 겸용)이다 — 여기서는 「깨우다」(자는 이를 깨움)로 읽었고 불확실 신고. `汝今覺善業,樂禪三昧定`은 「선업을 깨워라 / 선의 삼매·선정을 즐기는 이를」로 끊었다. 「선업이 선정을 즐기고 있다」로 끊는 길도 있다. `禪`은 한자 독음 「선」으로 두었다. `三昧`는 소리로 옮긴 말(삼매, 정착어). 禪·三昧·定이 겹쳐 선정을 이르는 말로 보인다. 釋提桓因이 파차순에게 하는 말이므로 평서·명령.
柔和清淨音,今使從禪坐。」
부드럽고 온화하고 맑고 깨끗한 소리로 지금 선정의 앉음에서 나오게 하라.」
주 `使從禪坐`는 동사가 생략되어 있다. 從(…에서)을 받아 「나오게 하라」로 옮겼다. 이문 `今`→`令`, `坐`→`起`(宋元明): 起면 「선정에서 일어나게 하라」로 뜻이 더 분명하나 본문은 大正 저본을 따랐다. 淸淨은 표(Sobhavatī)와 달리 형용사 「맑고 깨끗한」.
波遮旬對曰:「如是。」
파차순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0575b14.1과 같은 응답어.
爾時,波遮旬從釋提桓因聞語已,便調琉璃之琴,前至須菩提所,便以此偈歎須菩提曰:
그때 파차순은 석제환인에게서 말을 듣고 나서, 곧 유리 거문고를 고르고 앞으로 나아가 수보리의 처소에 이르러, 곧 이 게송으로 수보리를 찬탄하여 말하였다:
주 `琉璃`는 소리로 옮긴 보석 이름이나 정착어 「유리」. `琴`은 현악기 총칭이며 「거문고」로 옮겼다(한국 악기 거문고와 같다는 뜻은 아니다). `調`=(소리를) 고르다, `聞語已`=말을 듣고 나서, `所`=처소. 이문 `琉`→`流`(聖).
「結盡永無餘,諸念不錯亂;
「매듭이 다하여 영원히 남음이 없고, 여러 생각이 어지럽지 않으며;
주 `結`=매듭(앞의 `縛`=얽매임과 구분). `諸念不錯亂`=여러 생각이 뒤섞여 어지럽지 않다. 이문 `錯亂`→`亂錯`(宋元明)은 어순만 다르다. 파차순(아랫사람)이 수보리를 찬탄하는 게송이다.
諸塵垢悉盡,願速從禪覺。
여러 티끌과 때가 모두 다하였으니, 바라건대 속히 선정에서 깨어나소서.
주 `覺`은 [정형구 행] 한자 — 여기서는 「(선정에서) 깨어나다」. 낱말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 신고. `諸塵垢`=여러 티끌과 때.
心息渡有河,降魔度諸結;
마음이 쉬어 존재의 강을 건너고, 마를 항복시켜 여러 매듭을 건너니;
주 `有河`의 有는 앵커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생존」이라는 낱말이다 — 「존재의 강」으로 옮기고 역어 불확실 신고(후보: 존재·생존·유). `渡`와 `度`는 같은 「건너다」를 두 한자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이문 `渡`→`度`는 宋元明聖). `魔`=마(항복시킨 대상). 마음이 쉬다(`心息`).
功德如大海,願速從定起。
공덕은 큰 바다와 같으니, 바라건대 속히 선정에서 일어나소서.
주 如는 비유(…와 같다). `功德`은 한국어 정착 술어 그대로.
眼淨如蓮花,諸穢永不著;
눈의 맑음은 연꽃과 같고, 여러 더러움이 영원히 붙지 않으니;
주 `眼淨`=눈의 맑음, `諸穢`=여러 더러움, `不著`=붙지 않는다.
無歸與作歸,空定速時起。
귀의할 곳 없는 이에게 귀의처를 지어 주시니, 공의 선정에서 속히 제때에 일어나소서.
주 `無歸與作歸`는 「귀의할 곳 없는 이에게(與) 귀의처를 지어 준다」로 읽었다. 與를 「…과」로 읽어 「귀의 없음과 귀의 지음」으로 끊는 길도 있다. `空定`=공의 선정(사전 空定 ①, 증일아함 2회). `時`는 「제때에」.
渡四流無為,善解無老病;
네 흐름을 건너 무위이며, 늙음과 병이 없음을 잘 아시니;
주 `無為`는 [정형구 행] 한자(무위로 이끄는 길 정형구)이나 낱말 확정역이 없다 — 「무위」로 옮기고 불확실 신고. `渡四流無為`를 「네 흐름을 건너 무위이며」로 끊었다. 「무위의 네 흐름」으로 묶는 읽기는 서지 않는다고 보았으나 저본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善解`=잘 알다. 이문 `渡`→`度`(宋元明聖).
以脫有為災,唯尊時定覺。
유위의 재앙에서 벗어났으니, 오직 높으신 분께서는 제때에 선정에서 깨어나소서.
주 `覺`은 [정형구 행] 한자 — 「깨어나다」로 읽고 불확실 신고. `以脫`의 以는 이유를 받는 어미 「-니」로 흡수. `唯`는 오직(한정). 이문 `尊`→`願`(元明)이면 「바라건대 높으신 분께서」로 뜻이 달라지나 본문은 大正 저본을 따랐다.
五百天在上,釋種躬自來;
오백 천인이 위에 있고, 석의 종족이 몸소 왔으니;
주 `釋種`은 석제환인의 종족을 이르는지, 석가 종족을 이르는지 저본만으로 가르지 못해 한자 독음 「석의 종족」으로 두었다. 이문 `種`→`主`(宋元明)면 「석의 주인」이다. `躬自`는 「몸소」 한 말로 보아 自는 흡수했다.
欲覲聖尊顏,解空速時起。」
성스럽고 존귀한 분의 얼굴을 뵙고자 하니, 공을 아시는 분이여, 속히 제때에 일어나소서.」
주 `聖尊`=성스럽고 존귀한 분, `解空`=공을 아는 이(수보리를 부른 말; 사전의 解空 항은 없다). `空`은 한자 독음 「공」.
爾時,尊者須菩提即從坐起,復歎波遮旬曰:「善哉!波旬!汝今音與琴合,琴與音合,而無有異。
그때 존자 수보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파차순을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다! 파순이여! 너의 지금 소리는 거문고와 합하고 거문고는 소리와 합하여, 다름이 없다.
주 `波旬`은 이문에서 宋元明聖이 `波遮旬`으로 적는다. 이 장면의 파차순과 같은 사람을 줄여 부른 것으로 보아 파순으로 옮기고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 이 이름은 마(魔)의 이름 `波旬`과 동형이의일 수 있다(전거 ⚠다른 부(MA)의 대역). 음역계통: 전거의 팔리형 Pāpiman / 근대 범어형 Pāpīyas가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善哉`는 감탄 어미 「훌륭하다!」. `而無有異`는 而를 흡수하고 「다름이 없다」. `即`=곧. 평서(아랫사람에게). 이문 `音`→`聲`(宋元明), `琴`→`笒`(聖).
然琴音不離歌音,歌音不離琴音,二事共合,乃成妙聲。」
그러나 거문고 소리는 노랫소리를 떠나지 않고 노랫소리는 거문고 소리를 떠나지 않아, 두 일이 함께 합하여 비로소 묘한 소리를 이룬다.」
주 문두 `然`은 「그러나」/「그리하여」로 갈린다 — 앞의 「다름이 없다」를 받아 풀이하는 자리라 후자일 수 있다. 저본만으로 가르지 못해 기본 뜻 「그러나」로 옮기고 신고. `乃成`=비로소 이룬다. 이문 `事`→`聲`, `妙聲`→`妙音`(宋元明).
爾時,釋提桓因便往至尊者須菩提所,頭面禮足在一面坐。
그때 석제환인은 곧 존자 수보리의 처소로 가서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頭面禮足`=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② 판별). `在一面坐`=한쪽에 앉았다. `所`=처소.
爾時,釋提桓因白須菩提言:「云何善業所抱患苦有增損乎?
그때 석제환인은 수보리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선업께서 안고 계신 병고에 늘고 줆이 있습니까?
주 같은 문장 안에서 한 사람을 `須菩提`(앞)와 `善業`(뒤)으로 달리 부른다(한자 흔들림; 0575b10.1 참조). `所抱`는 관형절 「안고 계신」. `有增損`은 늘고 줆의 존재를 묻는 서술이라 有를 살렸다. 석제환인→수보리이므로 존댓말. 이문 `因` 빠짐(宋元), `白`→`曰`(元).
今此身病為從何生?
지금 이 몸의 병은 어디로부터 생깁니까?
주 `生`은 [정형구 행] 한자 — 「생기다」로 읽고 불확실 신고. 이문 `病`→`痛`(宋元明聖): 「몸의 아픔」으로 읽힌다.
身生耶?
몸에서 생긴 것입니까?
주 `身生`은 「몸에서 생긴 것」으로 읽었다([정형구 행] `生`, 불확실 신고). 뒤의 `意生`과 짝이다.
意生乎?」
뜻에서 생긴 것입니까?」
주 `意生`은 「뜻에서 생긴 것」. 표·전거의 `意生`(Manomaya kāya)은 다른 부(MA)의 대역이라 같은 말로 보지 않았다(意生身이 아니다). `生`은 [정형구 행] 한자로 불확실 신고.
爾時,尊者須菩提語釋提桓因言:「善哉!拘翼!法法自生,法法自滅;法法相動,法法自息。
그때 존자 수보리는 석제환인에게 말하였다: 「훌륭하다! 구익이여! 법마다 스스로 생기고 법마다 스스로 사라지며, 법마다 서로 움직이고 법마다 스스로 그친다.
주 `拘翼`은 소리로 옮긴 이름으로 판별해 구익(음의 玄應·慧琳 0357b19 〔放光般若經〕 「姓憍尸迦, 즉 釋提桓因」). 같은 신을 이 문장에서 釋提桓因·拘翼으로 달리 부른다(한자 흔들림). `法法`은 「법마다」. `自生·自滅·自息`의 自는 `相動`(서로)과 짝을 이루는 대조라 「스스로」를 세웠다. `生`은 [정형구 행] 한자로 불확실 신고. 수보리→석제환인은 평서로 옮겼다(청자 지위 판단은 정도평 몫).
猶如,拘翼!有毒藥,復有害毒藥。
비유하면, 구익이여! 독약이 있고 또 독을 없애는 약이 있다.
주 `害毒藥`은 「독을 없애는 약」(害毒+藥)으로 읽었다. 「해치는 독약」(害+毒藥)으로도 끊을 수 있으나 뒤의 黑法/白法이 서로 다스리는 비유와 맞게 앞의 읽기를 택했다. 구익은 0575c11.3과 같고 같은 신의 호칭이 또 달라졌다. 猶如=비유하면.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
天帝釋!此亦如是,法法相亂,法法自息。
천제석이여! 이것도 이와 같아, 법마다 서로 어지럽히고 법마다 스스로 그친다.
주 `天帝釋`은 표의 분류(음역)에 따라 한자 독음(천제석). 같은 신을 이번에는 세 번째 한자 호칭으로 부른다. `亦如是`는 생략표지 목록에 든 말이나 이 자리는 비유를 적용하는 구이며 접힌 내용이 없다(바로 뒤에 내용이 적혀 있다) — `[생략표지]`를 달지 않는다. `自息`의 自는 `相亂`과 짝이라 「스스로」.
法能生法,黑法用白法治,白法用黑法治。
법은 법을 낳을 수 있으니, 검은 법은 흰 법으로 다스리고 흰 법은 검은 법으로 다스린다.
주 `能生法`의 能은 어미 「-ㄹ 수 있다」로 흡수. `生`은 [정형구 행] 한자 — 여기서는 「낳다」(타동)로 읽고 불확실 신고. `用…治`=…으로 다스리다. `黑法·白法`은 글자대로. 이문 宋元明은 앞에 「法能滅法」이 더 있다(「법은 법을 멸할 수 있으니」).
天帝釋!貪欲病者用不淨治,瞋恚病者用慈心治,愚癡病者用智慧治。
천제석이여! 탐욕의 병은 깨끗하지 않음으로 다스리고, 성냄의 병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다스리고, 어리석음의 병은 지혜로 다스린다.
주 `者`는 주제 표지(…이라는 것은)로 흡수. `貪欲`·`瞋恚`·`愚癡`는 한국어 정착어이거나(탐욕·어리석음) 뜻으로 옮겼다(瞋恚=성냄; 음의 慧琳 0803c16 「恚憎也」). 표의 `貪欲`(Icchālobha)·`瞋恚`(Byāpāda) 등재는 다른 부의 대역이라 여기선 일반어로 읽었다. `不淨`은 한자 독음 「부정」이 「아님」의 부정(否定)과 혼동되므로 뜻으로 「깨끗하지 않음」이라 옮겼다. 호칭 `天帝釋`은 0575c14.1과 같다.
如是,釋提桓因!一切所有皆歸於空,無我、無人,無壽、無命,無士、無夫,無形、無像,無男、無女。
이와 같다, 석제환인이여! 있는 모든 것은 모두 공으로 돌아가니,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 수명이 없고 목숨이 없으며, 사내가 없고 대장부가 없으며, 형체가 없고 모양이 없으며, 남자가 없고 여자가 없다.
주 `無我·無人·無壽·無命·無士·無夫·無形·無像`은 자아를 이르는 낱말의 열거다. 壽/命, 士/夫가 각각 다른 한자이나 한국어로 구분하는 어휘가 겹쳐 역어(수명/목숨, 사내/대장부)가 후보 중 하나일 뿐이다 — 신고. `一切所有`는 「있는 모든 것」(所는 관형절). `歸於空`의 於는 조사 「으로」에 흡수. 호칭 `釋提桓因`이 다시 쓰였다(0575c14.1의 天帝釋과 같은 신).
猶如,釋提桓因!風壞大樹,枝葉彫落;雷雹壞苗,華菓初茂,無水自萎;天降時雨,生苗得存。
비유하면, 석제환인이여! 바람이 큰 나무를 무너뜨려 가지와 잎이 시들어 떨어진다; 우레와 우박이 싹을 무너뜨려 꽃과 열매가 처음 무성한데도 물이 없어 시든다; 하늘이 때맞춰 비를 내리니 싹이 돋아 살아남을 수 있다.
주 `生苗`의 `生`은 [정형구 행] 한자 — 「돋다」(싹이 나다)로 읽고 불확실 신고. `彫落`=시들어 떨어지다(彫는 凋). `自萎`의 自는 대조(他)가 없어 흡수. `得存`의 得은 가능 「-ㄹ 수 있다」. `時雨`=때맞는 비. `雷雹`은 음의 慧琳 0429b13 참조. 이문 `雷`→`雪`(聖), `菓`→`果`(宋元明).
如是,天帝釋!法法相亂,法法自定,我本所患疼痛苦惱,今日已除,無復患苦。」
이와 같다, 천제석이여! 법마다 서로 어지럽히고 법마다 스스로 안정되니, 내가 본래 앓던 쑤시는 아픔과 괴로움은 오늘 이미 없어져 다시는 병고가 없다.」
주 `法法自定`의 自는 `相亂`과 대조라 「스스로」. `所患`은 관형절 「앓던」, `疼痛`=쑤시는 아픔(음의 慧琳 0700a21 〔四分律〕 「痋動痛」), `苦惱`=괴로움(고뇌). `今日已除`=오늘 이미 없어졌다. `無復`=다시는 …이 없다. 이문 `已`→`以`(聖).
是時,釋提桓因白須菩提言:「我亦有愁憂苦惱,今聞此法無復有愁憂。
이때 석제환인이 수보리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저에게도 근심과 걱정, 괴로움과 고뇌가 있었고, 지금 이 법을 듣고 다시는 근심과 걱정이 없습니다.
주 `我亦有`의 亦은 「도」(수보리에게만 병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실림). `愁憂`=근심과 걱정. `無復有`는 「다시는 …이 없다」. 문맥상 앞 시제는 과거로 옮겼다(今聞 이전). 존댓말.
眾事猥多,欲還天上。
여러 일이 번잡하고 많아, 하늘 위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주 `猥多`=번잡하게 많다(음의 慧琳 0653b10 〔增一阿含經〕 「猥眾也」; 사전 猥多 ①). `欲還`=돌아가고자 한다. `天上`=하늘 위.
已亦有事及諸天事,皆悉猥多。」
이미 일이 있고 또 여러 하늘의 일도 있으니, 모두 다 번잡하고 많습니다.」
주 `已`는 「이미」로 옮겼다. `己`(자기)의 오자일 가능성이 있다(「저에게도 일이 있고」) — 저본이 이기므로 글자대로 옮기고 신고한다. `皆悉`=모두 다. `有事`는 일의 존재를 서술(있다). `諸天`=여러 하늘.
時,須菩提言:「今正是時,宜可時去。」
그때 수보리가 말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 제때에 가는 것이 알맞다.」
주 `正`=바로. `宜可`는 당위 어미로 흡수(「…가 알맞다」; 「마땅히」는 쓰지 않음). 수보리→석제환인 평서.
是時,釋提桓因即從坐起,前禮須菩提足,遶三匝而去。
이때 석제환인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 수보리의 발에 절하고, 세 바퀴 돌고서 떠났다.
주 `遶三匝`=세 바퀴 돌고. `而去`의 而는 흡수. 이문 `坐`→`座`(宋元明).
是時,尊者須菩提便說此偈:
이때 존자 수보리는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평서 서술.
「能仁說此語,根本悉具足;
「어짊에 능한 분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근본이 모두 갖추어졌다;
주 `能仁`은 석가모니의 뜻옮김이다(사전 能仁 ⑥ 丁福保 「釋加牟尼」·「一譯曰能仁」; 이 경에만 나온다). 의역이므로 뜻(어짊에 능한 분)으로 옮겼다. 여기서 석가모니를 가리키는지 일반 성인을 가리키는지 저본만으로 가르지 못한다. `根本`=근본.
智者獲安隱,聞法息諸病。」
지혜로운 이는 편안함을 얻고, 법을 들으면 여러 병이 그친다.」
주 `安隱`=편안함(사전 安隱 ① 증일아함 46회). `息`=그치다. `諸病`=여러 병.
爾時,釋提桓因聞尊者須菩提所說,歡喜奉行。
그때 석제환인은 존자 수보리가 설한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所說`=설한 것,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다(경 끝 정형구).
調達及二經皮及利師羅
조달과 두 경, 가죽과 이사라
주 품 끝의 요약 게송으로 보인다(각 경의 이름 열거). 10자를 5자씩 「調達及二經 / 皮及利師羅」로 끊었다. `調達`은 提婆達多의 줄임 음역(사전 調達 ⑥)으로 한자 독음. `皮`가 가죽인지 경 이름의 줄임인지 저본만으로 가르지 못한다. `利師羅`는 소리로 보아 한자 독음(이사라)으로 옮기고 확정하지 못했다.
竹膞、孫陀利善業、釋提桓
죽전, 손타리, 선업, 석제환
주 요약 게송의 이어지는 구(竹膞/孫陀利/善業/釋提桓). `竹膞`은 뜻을 세우지 못해 한자 독음 「죽전」만 적었다(한자는 이 서술에 둔다). `孫陀利`는 음역(손타리). `善業`은 須菩提의 뜻옮김(0575b10.1 참조). `釋提桓`은 釋提桓因의 줄임(음의 慧琳 0440b24는 桓 글자 삽입을 문제 삼음).
五戒品第十四
오계품 제14
주 다음 품의 제목이 이 경 끝에 붙어 있다. `五戒`=오계, `品`=품. 이 경(ea99)은 앞 품의 마지막 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