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EĀ 59

EĀ 59

교차 검사교차 검사 13현대역 준비 중

(七)

(7)

주 저본 제목 자리에 번호만 선다(「(七)」). 팔리 증언의 이 자리에는 번호 「1」(1.0)과 서수 표지 「Paṭhamaṃ」(1.9)가 서 있으나 두 번호는 서로 다른 묶음의 차례라 맞대어 재지 않았다(미대응).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1:1.0

AG:ea59/0.1 · 교차 검사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한역은 「聞如是」로 열고 「我」가 없다. 앵커의 如[비유·가정]는 여기서 비유가 아니라 「이와 같이」의 지시라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고 한 구로 옮겼다(사전 如是 ① 앞 「聞」 451/1578, 이 경 0.2). 개경 정형구 「聞如是」는 이 아함 전권 453회(정형구 표). 팔리 1.1 「Evaṃ me sutaṃ」(이와 같이 나에 의해 들렸다)에는 「me」(나)가 있고 한역 이 좌표에는 「我」가 없다 — 한쪽이 덜 말한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1

AG:ea59/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舍衛」는 정착어(한자대역표)라 정착형 「사위」로 적고 國은 그대로 옮겼다. 이름의 뜻: 慧琳 음의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 항)가 「聞者城」·「聞物國」·「無物不有國」(없는 물건이 없는 나라)으로 풀고, 이어 善見律을 끌어 사람 이름(舍衛)에서 나온 국명이라 전한다(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표: 舍衛 ← 팔리형 Sāvatthī / 당대 범어형 śravasthi로 두 계통이 갈린다 —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다른 부(DA) 대역 주의 표지가 붙어 있다). 한역은 「國」(나라)을 붙이고 팔리 1.2는 「sāvatthiyaṃ」(사위티에, 처격)이다. 「祇樹給孤獨園」은 한자대역표가 5자 이상이라 정형구 조각일 수 있다며 보류한 항목이다. 이름으로 판별해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고 유형 확정은 정도평 몫이라 불확실로 남긴다. 뜻: 祇樹는 祇陀(Jeta, 勝)의 나무숲(慧琳 0368a03 — 태자가 자기 나무를 공양해 「祇樹」),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 阿那陀=無親屬, 「誓救孤獨」), 園은 동산이다. 팔리 1.2는 「jetavane anāthapiṇḍikassa ārāme」(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이다. 전거표는 이 한자 묶음에 팔리 후보만 싣고 범어 후보가 없으며 다른 부(DA) 대역 표지가 붙었다. 한역의 「佛」은 확정역 「부처님」이고 팔리 1.2의 주어는 「bhagavā」(세존 확정어의 팔리 낱말)이다 — 같은 자리에서 낱말이 다르다. 또 같은 경이 14.1·19.1에서는 같은 이를 「世尊」이라 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같음 AN 1.1:1.2

AG:ea59/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我於此眾中,不見一法最勝最妙,眩惑世人,不至永寂,縛著牢獄,無有解已。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이 대중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묘하며 세상 사람을 현혹하여 영원한 고요에 이르지 못하고 감옥에 묶여 붙어 풀려남이 없게 하는 한 법을 보지 못한다.

주 앵커 확인: 於[처소·대상]는 「~가운데서」 조사로 흡수, 諸는 「비구들」의 복수로 흡수, 有[존재]는 「無有解已」의 일부라 「풀려남이 없다」로 흡수했다. 爾時는 「그때」, 世尊은 확정역 「세존」, 比丘는 「비구」, 붓다의 발화라 평서. 「不見」의 見은 정형구 행(dassana)만 있고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보다」로 옮기고 확정역 부재로 남긴다(전거표: 不見 ← 당대 범어 napaśyami, 팔리 후보 없음 — 참고). 「一法」은 사전 一法 ① 151회로 「한 법」, 뒤에 이어지는 최승(最勝)·최묘(最妙)·眩惑世人·不至永寂·縛著牢獄·無有解已를 모두 이 「一法」을 꾸미는 말로 읽었다. 이 가운데 眩惑世人 이하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 같은 경 16.1의 「令人不至永寂,縛著牢獄,無有解已」를 근거로 「世人」이 영원한 고요에 이르지 못하고 묶이는 쪽이라 읽었다(끊는 자리와 주어는 불확실). 眩惑: 慧琳 음의 0653b04(增一阿含經 항)가 「眩惑亂也亦闇不明也」로 풀며 사전 眩惑 ① 증일아함 2회·이 경 외 ea60에만 나온다. 永寂: 사전 寂 ⑥ 丁福保 「涅槃之異名」은 후대 풀이라 가볍게만 참고했다. 牢獄: 慧琳 음의 0393c08. 팔리 1.3 「Tatra kho bhagavā bhikkhū āmantesi」(그곳에서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셨다)는 爾時世尊告諸比丘와 일부 겹친다(「그곳에서」 대 「그때」). 한역에는 팔리 1.4 「bhikkhavo ti」(비구들이여 하고)·1.5 「Bhadante ti …」(비구들의 응답)·1.6 「Bhagavā etadavoca」(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의 부름과 응답이 없다. 한역의 「不見一法…」는 팔리 1.7 「Nāhaṃ … aññaṃ ekarūpampi samanupassāmi yaṃ evaṃ purisassa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나는 사람의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아 서 있는 다른 한 가지 색도 보지 못한다)와 일부 겹친다 — 팔리는 「rūpa」(색)로 한정하고 한역은 「法」으로 일반화하며 「최승·최묘·현혹·고요에 이르지 못함·묶임」을 더한다. 「世尊」과 같은 경 0.3·25.1의 「佛」은 같은 이를 다른 한자로 적은 것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3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7

AG:ea59/0563a14.1 · 교차 검사

所謂男子見女色已,便起想著,意甚愛敬,令人不至永寂,縛著牢獄,無有解已,意不捨離,周旋往來,今世後世,迴轉五道,動歷劫數。」

이른바 남자가 여자의 모습을 보고 나서 곧 생각과 집착을 일으키고, 마음이 몹시 사랑하고 공경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한 고요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감옥에 묶여 붙게 하여 풀려남이 없게 하며, 마음이 버리고 떠나지 못하여 두루 돌아 오가며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 다섯 갈래를 돌고 돌아 걸핏하면 겁의 수를 지나게 된다.”

주 앵커 확인: 所謂는 「이른바」, 令[사역]은 「令人不至永寂」에서 실제 사역이라 「~하게 하다」로 살렸고, 有[존재]는 「無有解已」의 일부로 흡수했다. 見…已의 已는 앞 사건이 끝난 뒤를 뜻하는 「~한 뒤」이고 便은 「곧」. 이문(0563002): 대본의 「女色」을 宋·元·明본은 「女人色」으로 적는다(「女」 뒤에 「人」). 본문은 대본대로 옮겼다. 女色의 色은 낱말 확정역이 없어 「모습」으로 옮기고 술어·낱말 선택으로 남긴다(팔리 1.7·1.8 「itthirūpaṃ」(여자의 색); 21.1·24.1의 「見」·「諸色」과 같은 「色」). 見은 정형구 행(dassana)만 있어 확정역 부재. 「想著」는 사전 著 ① 앞 「起想」 21·이 경 16.1·24.1에 걸린 말로, 想(생각)과 著(붙음)를 병렬로 읽을지 한 낱말(생각으로 붙음)로 읽을지가 서지 않아 「생각과 집착」으로 옮기고 뜻 판별불가로 남긴다. 意는 낱말 확정역이 없어 「마음」으로 옮겼고(이 경에는 「心」이 나오지 않아 둘이 겹치지 않는다) 술어·낱말 선택으로 남긴다(사전 意 ① 앞 「身口」 69). 愛敬은 「사랑하고 공경하다」(사전 愛敬 ① 40회). 「縛著牢獄,無有解已」는 14.1과 같은 짜임이다. 捨離는 「버리고 떠나다」, 周旋往來는 「두루 돌아 오가다」, 今世後世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 迴轉五道는 「다섯 갈래를 돌고 돌다」(五道는 사전 ⑥ 丁福保에서 지옥·아귀·축생·인·천의 다섯 곳이라 하나 후대 풀이라 인용만; 전거표: 迴轉 ← 당대 범어 marivartta, 팔리 후보 없음), 動歷劫數는 「걸핏하면 겁의 수를 지나게 되다」(사전 歷劫 ① 3회·動 ① 뒤 「歷劫」 2). 팔리 1.7·1.8은 「itthirūpaṃ … purisassa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여자의 색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서 있다)까지만 말한다. 한역은 이를 「남자가 여자의 모습을 본 뒤 생각과 집착을 일으킨다」는 과정으로 풀고, 팔리에 없는 「영원한 고요에 이르지 못함·묶임·풀려남 없음·두 세상을 오감·다섯 갈래를 돎·겁의 수를 지남」을 잇는다 — 한쪽이 더 말한다(일부).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7

니까야 대응 일부 AN 1.1:1.8

AG:ea59/0563a16.1 · 교차 검사

爾時,世尊便說偈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주 爾時는 「그때」, 便은 앞 사건을 잇는 「곧」으로 두었다. 說偈曰은 「게송을 설하여 말씀하셨다」. 팔리 an1.1에는 게송이 없다 — 산문이 1.8로 끝나므로 이 도입 문장이 놓일 자리가 팔리에 없음을 확인했다(없음확인). 「世尊」은 확정역 「세존」이며, 같은 경이 25.1에서는 「佛」이라 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19.1 · 교차 검사

「梵音柔軟聲,如來說難見;

범음의 부드러운 소리는, 여래가 보기 어렵다고 설한다.

주 앵커 확인: 如[비유·가정]는 「如來」라는 이름의 일부라 비유로 세우지 않았다. 「如來」는 확정역 「여래」. 「梵音柔軟聲」은 梵音과 柔軟聲이 이어진 말로 둘의 관계(같은 말인지, 범음의 성질인지)가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범음의 부드러운 소리」로 옮기고 구문 불확실로 남긴다. 「梵音」은 사전 梵音 ① 증일아함 3회·ea444 「梵音難及,由柔軟響故」에 쓰이며 ⑥ 丁福保는 부처님의 음성 상(相)이라 하나 후대 풀이라 가볍게만 참고했다. 한국 불교계에서 쓰이는 「범음」으로 두고 梵의 뜻(범천·청정)은 판별하지 않았다(술어·낱말 선택). 「柔軟」은 한자대역표가 의역으로 분류하고 [참고] 확정어가 「곱게 자람」(sukhumāla)이다. 이 자리의 柔軟은 소리(聲)를 꾸미므로 「곱게 자람」이 서지 않아 저본대로 「부드러운」으로 옮기고 확정역 오적중으로 신고한다(전거표: 柔軟 ← 팔리 Sukhumāla). 「難見」은 「보기 어렵다」로 옮기고 소리를 보기 어렵다는 말의 주어·목적어가 서지 않아 구문 불확실에 함께 둔다. 見은 정형구 행만 있어 확정역 부재. 「說」은 붓다의 자기 지칭이라 평서. 「如來」는 앞(14.1·19.1)의 「世尊」·(0.3·25.1)의 「佛」과 같은 이를 가리키는 다른 한자다(한자 흔들림). 팔리 산문에는 게송이 없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0.1 · 교차 검사

或復有時見,繫念在目前。

혹은 또 때로 보고, 생각을 매어 눈앞에 둔다.

주 앵커 확인: 復[반복]은 「或復」라는 굳은 말의 일부로 읽어 「다시」를 세우지 않고 「또」로 약하게 옮겼다. 有[존재]는 「有時」(때로)에서 부사로 흡수했다. 見은 정형구 행만 있어 확정역 부재이며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구문 불확실). 「繫念」은 사전 繫念 ① 증일아함 34회(앞 「正意」 18·뒤 「在前」 33·「在目」 1)에서 「생각을 매다」의 뜻으로 쓰이며, 慧琳 음의 0358c22는 係를 「結束也亦連綴不絕也」로 풀어 같은 방향이다. 「在目前」의 在는 「둔다」로 옮겼으나 「생각이 눈앞에 있다」로도 읽혀 주어가 서지 않는다(구문 불확실). 팔리 산문에 이 자리가 없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1.1 · 교차 검사

亦莫與女人,往來與言語;

여자와 오가지도 말고 더불어 말하지도 말라.

주 앵커 확인: 莫[금지]은 「-지 말라」, 亦[역시]는 「~도」 조사로 흡수했다(앞 행에 금지가 서 있지 않아 「또한」을 따로 세울 뜻이 실리지 않았다). 與는 「~와 더불어」로 두 번 나오는데 「與女人,往來」는 「여자와 오가다」, 「與言語」는 「더불어 말하다」(앞의 女人을 받는 생략)로 읽었다. 女人은 사전 女人 ① 증일아함 201회, 전거표: 女人 ← 당대 범어 strī, 팔리 후보 없음(참고). 붓다의 발화라 평서. 팔리 산문에 이 자리가 없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2.1 · 교차 검사

恒羅伺捕人,不得至無為。

늘 그물을 쳐 엿보아 사람을 잡으니, 무위에 이르지 못한다.

주 앵커 확인: 得[가능·획득]은 「不得至」에서 「~할 수 없다」(가능)로 옮겼고(전거표: 不得 ← 당대 범어 aprapati — 참고), 為[위하여·피동]는 「無為」라는 낱말의 일부라 피동·목적으로 세우지 않았다. 「羅」는 사전 羅 ①의 용례가 모두 음역자(尸婆羅·拘絺羅 등)라 이 자리에는 서지 않는다 — 그물을 치다(동사)로 읽었다(다의어 판별로 남긴다). 伺는 엿보다(사전 伺 ① 8회, 伺察), 捕는 잡다. 주어(여자·색으로 읽히는 것)가 생략되어 있다. 「無為」는 한자대역표가 의역으로 분류하지만 한국 불교계에서 쓰는 정착어로 읽어 「무위」로 적고, 정형구 행(asaṅkhata)에 한국어 예시도 「무위」임을 근거로 하되 낱말 확정역은 없어 확정역 부재로 남긴다(전거표: 無為 ← 팔리 Asaṅkhata, 다른 부(SA) 대역 표지). 팔리 산문에 이 자리가 없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3.1 · 교차 검사

「是故,諸比丘!當除諸色,莫起想著。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여러 모습을 없애라. 생각과 집착을 일으키지 말라.

주 앵커 확인: 是故는 「그러므로」, 當[당위·미래]는 어미 「-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따로 세우지 않았고, 莫[금지]은 「-지 말라」, 諸×2는 「비구들」과 「여러 모습」의 복수로 흡수했다. 諸色의 色은 16.1의 女色과 같은 「色」이라 같은 「모습」으로 옮기고 술어·낱말 선택으로 남긴다(사전 諸色 ① 증일아함 3회). 想著는 16.1과 같은 「생각과 집착」으로 옮기고 뜻 판별불가를 남긴다. 붓다 발화라 평서(명령형). 팔리 산문에 이 권계가 없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4.1 · 교차 검사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앵커 확인: 如[비유·가정]는 「이와 같이」라는 지시로 쓰였고 비유가 아니다. 當[당위·미래]는 어미 「-라」가 진다. 作是學의 作은 「作是念」류 관용이라 따로 옮기지 않고 「이렇게 배우라」로 흡수했다(사전 學 ① 앞 「作是」 351/664). 팔리에 이 권계가 없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4.2 · 교차 검사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앵커 확인: 所[피동·명사화]는 「설하신 것」 관형절로 풀었고 諸는 「비구들」로 흡수했다. 歡喜奉行은 이 아함 450경에서 「所說」 뒤에 이어 오는 맺음 정형구다(사전 歡喜 ① 앞 「所說」 450/672, 奉行 ① 앞 「歡喜」 450/505). 이 좌표의 주어를 「佛」로 적은 것은 한역이 앞(14.1·19.1)에서 「世尊」이라 한 같은 이를 다른 한자로 적은 것이다(한자 흔들림). 팔리 산문은 맺음 정형구 없이 끝난다 — 놓일 자리가 없음을 확인했다(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1:1.8

AG:ea59/0563a25.1 · 교차 검사

❖

함께 볼 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