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4)
주 저본 교감주가 이 경 전체를 AN 10.21 Sīha(nāda)에 견준다(다카쿠스 각주 「~A. X. 21. Sīha.」). 이 좌표의 글자는 경 제목이 아니라 권수 표시 「四」뿐이어서 팔리 제목 줄(0.3 Sīhanādasuttaṃ)에 같은 것이 놓이지 않는다 — 없음확인. 경 단위 대응은 각주가 근거이고, 팔리 번호 체계가 갈리는 묶음이라(증언 파일 주의) 내용 대조는 아래 좌표들에서 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0.3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한역에는 「聞如是」 개경 정형구가 있다(정형구 파일: 이 아함 전권 453경, 이 경 1). 이 경 팔리 원문(an10.21)은 21.1 Sīho, bhikkhave…로 곧바로 시작하고 개경 문장이 없다 — 없음확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장소를 밝히는 틀 문장도 팔리 원문에 없다 — 없음확인. 정착형 「사위」「기수급고독원」을 쓴다. 뜻: 舍衛는 코살라국의 도시 Sāvatthī를 옮긴 이름으로, 慧琳 〔金剛般若波羅蜜經〕 0367c24는 室羅伐悉底國을 「聞者城」「聞物國」으로 풀고 善見律을 끌어 舍衛를 사람 이름으로도 푼다. 祇樹給孤獨園은 祇陀 태자가 나무를 바친 숲(慧琳 0368a03 「祇樹」)과 給孤獨(慧琳 0368a05: 阿那陀, 「無親屬 … 誓救孤獨」)이 바친 동산이다. 3분할 표에서 祇樹給孤獨은 5자 보류인데, 이름임을 판별하고 정착형으로 처리했으므로 유형 신고를 남긴다. 음역계통: 舍衛 ← 팔리 Sāvatthī / 범어 당대 후보 śravasthi(전거 표) —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에게 佛(여기)·世尊(0776b15.1)·如來를 섞어 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1
爾時,世尊告諸比丘:「如來成十種力,得四無所畏,在大眾中能師子吼。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여래는 열 가지 힘을 이루었고,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을 얻었으며,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할 수 있다.
주 팔리 21.10은 앞의 사자 비유(21.1–21.9: 사자가 굴에서 나와 사자후를 세 번 한다는 비유와 「Sīho」가 여래의 호칭이라는 풀이)를 받는다. 한역 저본에는 21.1–21.9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 — 없음확인(이 좌표에서 한꺼번에 신고). 팔리는 열 가지 힘을 갖춘 여래가 āsabhaṃ ṭhānaṃ을 천명하고 대중에서 사자후를 하며 범륜을 굴린다고 하는데, 한역은 그 자리에 「得四無所畏」를 세운다 — āsabhaṃ ṭhānaṃ에 해당하는 글자는 한역에 따로 없고, 두 말이 같은 자리에 선다는 사실만 적으며 같은 뜻인지는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에는 「世尊告諸比丘」 같은 도입 서술이 없고 호격 bhikkhave뿐이다. 師子는 음역(3분할)이라 「사자」, 師子吼는 정착형 「사자후」. 음역계통: 팔리 Sīha / 전거 당대 후보 sīgha. 한자 흔들림: 世尊(확정 세존)·佛·如來가 같은 분을 가리키며 한자가 갈린다. 앵커: 能=가능(할 수 있다), 得=획득(얻었으며), 如來成十種力의 成은 「이루었고」.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10
云何為十力?
무엇이 열 가지 힘인가?
주 팔리 Katamāni dasa?와 같음. 十力은 여래의 열 가지 힘(팔리 tathāgatabalāni)이다. 云何為十力의 為는 앵커가 「위하여·피동」 후보를 달지만 의문 구문의 계사(…이다)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21:21.11
於是,如來是處如實知之,非處如實知之。
이에, 여래는 옳은 자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옳지 않은 자리를 있는 그대로 안다.
주 팔리 21.12(ṭhānañca ṭhānato aṭṭhānañca aṭṭhānato yathābhūtaṃ pajānāti)와 같음. 21.13의 후렴(Yampi … idampi … tathāgatabalaṃ hoti …)은 한역에 없다 — 없음확인. 한역은 열 가지 힘마다 이 후렴을 되풀이하지 않는다(이후 좌표 모두 같다). 處를 「자리」로, 是處·非處를 「옳은 자리」「옳지 않은 자리」로 옮겼다 — 處는 같은 경 안에서 「彼處」(저곳, 0776c06.1)와 「此處」(그런 자리, 0776c22.2)로도 쓰여 한 낱말로 고정되지 않아 후보를 남긴다(사전 處 ①: 이 경 0776b17.1 등). 如實=「있는 그대로」로 이 경 안에서 고정한다. 於是의 於는 조사가 지므로 「이에」 한 낱말로 둔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21:21.1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13
「復次,如來處所,知他眾生因緣處所受其果報。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처소에서, 다른 중생이 인연과 처소에서 받는 그 과보를 안다.
주 팔리 21.14 kammasamādānānaṃ ṭhānaso hetuso vipākaṃ(업의 받아 가짐의 처소·원인·과보)이 서는 자리로, 처소(ṭhānaso)·인연(hetuso)·과보(vipāka)에 해당하는 글자가 놓인다. 한역에는 atītānāgatapaccuppannānaṃ(과거·미래·현재)과 kamma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다 — 일부. 「如來處所,知他眾生因緣處所受其果報」는 處所에서 끊는 법이 둘 이상이라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글자 순서를 그대로 두었다. 이문: 受=更【宋】【元】【明】(본문은 大正 受). 他는 自와 짝이 아니므로 「남」이 아니라 「다른」. 21.15 후렴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14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15
「復次,如來知若干種界、若干種持、若干種入,如實知之。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여러 가지 영역과 여러 가지 지님과 여러 가지 들어감을 알아, 있는 그대로 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21.18 anekadhātuṃ nānādhātuṃ lokaṃ(여러 계, 갖가지 계인 세계)이 서는 자리다. 한역은 界·持·入 셋을 나열하고 팔리에는 持·入에 해당하는 항이 없다 — 일부. 한역의 열 가지 힘 순서는 팔리와 다르다: 한역 세 번째(이 좌표)가 팔리 네 번째. 界·持·入은 「영역」「지님」「들어감」으로 글자대로 옮겼는데 뜻이 한 가지로 서지 않아 을 남긴다(사전 界 ①·入 ①은 이 경 밖 용례만 보인다). 若干의 若은 가정이 아니라 若干(여러) 복합이다. 21.19는 …pe…로 접혀 있어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18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21:21.19
「復次,如來若干種解脫、無量解脫,如實知之。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여러 가지 해탈과 한량없는 해탈을 있는 그대로 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21.20 sattānaṃ nānādhimuttikataṃ(중생의 갖가지 기울임·성향)이 서는 자리다. 한역은 解脫을 쓴다 — 같은 개념을 한역이 解脫로 옮긴 것인지 다른 것을 가리키는지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 無量解脫의 無量에 해당하는 말은 팔리에 없다. 이 구에는 知가 없고(如來若干種解脫 … 如實知之) 뒤의 知之가 진다; 이문 知若【宋】【元】【明】은 知가 있는 꼴. 한역 네 번째 = 팔리 다섯 번째. 21.21은 …pe…로 접혀 미대응.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20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21:21.21
「復次,如來知他眾生智慧多少,如實知之。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다른 중생의 지혜가 많고 적음을 알아, 있는 그대로 안다.
주 팔리 21.22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indriyaparopariyattaṃ(다른 중생·다른 사람의 근기의 높낮이)이 서는 자리다. 한역은 「智慧多少」(지혜의 많고 적음)로 옮기며 indriya에 해당하는 말이 따로 없다 — 일부. 他는 自와 짝이 아니므로 「다른」. 한역 다섯 번째 = 팔리 여섯 번째. 21.23은 …pe…로 접혀 미대응.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22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21:21.23
「復次,如來知他眾生心中所念,如實知之:有欲心知有欲心,無欲心知無欲心;有瞋恚心知有瞋恚心,無瞋恚心知無瞋恚心;有愚癡心知有愚癡心,無愚癡心知無愚癡心;有愛心知有愛心,無愛心知無愛心;有受心知有受心,無受心知無受心;亂心知有亂心,無亂心知無亂心;散心知有散心,無散心知無散心;少心知有少心,無少心知無少心;廣心知有廣心,無廣心知無廣心;無量心知無量心,有量心知有量心,如實知之。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다른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알아, 있는 그대로 안다: 욕망이 있는 마음은 욕망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욕망이 없는 마음은 욕망이 없는 마음임을 알며;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성냄이 없는 마음은 성냄이 없는 마음임을 알며;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임을 알며; 애착이 있는 마음은 애착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애착이 없는 마음은 애착이 없는 마음임을 알며; 받음이 있는 마음은 받음이 있는 마음임을 알고, 받음이 없는 마음은 받음이 없는 마음임을 알며; 어지러운 마음은 어지러운 마음이 있음을 알고, 어지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어지러운 마음이 없음을 알며;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 있음을 알고, 흩어진 마음이 없는 것은 흩어진 마음이 없음을 알며; 작은 마음은 작은 마음이 있음을 알고, 작은 마음이 없는 것은 작은 마음이 없음을 알며; 넓은 마음은 넓은 마음이 있음을 알고, 넓은 마음이 없는 것은 넓은 마음이 없음을 알며; 한량없는 마음은 한량없는 마음임을 알고, 한량 있는 마음은 한량 있는 마음임을 알아, 있는 그대로 안다.[불확실]
불확실 한역의 이 힘(다른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는 것: 욕망·성냄·어리석음·애착·받음·어지러움·흩어짐·작음·넓음·한량없음의 쌍)은 이 경 팔리의 열 가지 힘 목록에 없다. 같은 순서 자리(일곱 번째)에 팔리 21.24는 jhānavimokkhasamādhisamāpattīnaṃ saṃkilesaṃ vodānaṃ vuṭṭhānaṃ(선정·해탈·삼매·증입의 오염·정화·출정)을 아는 힘을 세운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하므로 엇갈림으로 적고, 팔리 쪽 선정의 힘에 해당하는 한역 구절은 이 경에서 찾지 못했다. 쌍의 꼴은 「有A心知有A心, 無A心知無A心」인데 亂·散·少·廣은 앞 항이 「亂心知有亂心」으로 有 없이 서고 無量은 「無量心知無量心, 有量心知有量心」으로 선다 — 글자대로 옮겼다. 有愛: 3분할 표는 有愛를 Bhava-taṇhā로 대역하나 여기서는 「有愛心」(애착이 있는 마음)이라 저본이 이겨 표를 따르지 않았다. 受心은 정형구 행의 受(vedanā)와 글자가 겹치나 「받음」으로 두고 뜻은 . 瞋恚=성냄·愚癡=어리석음(3분할 의역), 愛=애착, 少=작은, 廣=넓은, 量=한량. 이문: 「心有」【元】【明】【聖】(네 곳), 본문은 大正. 心中所念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마음속 생각」.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21:21.24
定心知有定心,無定心知無定心;解脫心知解脫心,無解脫心知無解脫心。
안정된 마음은 안정된 마음이 있음을 알고, 안정된 마음이 없는 것은 안정된 마음이 없음을 알며;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 있음을 알고, 해탈한 마음이 없는 것은 해탈한 마음이 없음을 안다.[불확실]
불확실 앞 좌표(0776b22.1)에서 이어지는 마음의 쌍이다. 팔리 21.24 쪽 판정은 앞 좌표와 같다. 定心·解脫心의 글자가 21.24의 samādhi·vimokkha와 겹칠 수 있으나 한역 문맥은 마음의 상태를 아는 힘이어서 판정하지 않는다. 定은 「안정된」으로 옮겼으며 선정·삼매 같은 술어로 고정하지 않았다 — .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21:21.24
「復次,如來盡知一切所趣心之道,或一二生、三生、四生、五生、十生、五十生、百生、千生、億百千生、無量生、成劫、敗劫、無數成敗劫中,我昔生彼處,名是,字是,食如此之食,受其苦樂,壽命長短,死此生彼,彼死生此。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모든 나아가는 곳의 마음의 길을 다 안다. 혹은 한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억 백 천 생, 헤아릴 수 없는 생, 이루어지는 겁, 무너지는 겁, 셀 수 없이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 가운데, 나는 옛날 저곳에 났을 때 이름은 이러했고, 자는 이러했으며, 이와 같은 음식을 먹었고, 그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수명은 길고 짧았다;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났다.[불확실]
불확실 앞머리 「盡知一切所趣心之道」는 팔리 21.16 sabbatthagāminiṃ paṭipadaṃ(모든 곳에 이르는 길)이 놓일 자리로 읽을 수 있으나 한역은 곧이어 전생의 생(21.26–28)을 말한다 — 팔리 세 번째 힘의 말이 한역에서는 전생을 다루는 구절 앞머리에 붙은 것으로 보여 자리바뀜으로 적고 을 남긴다. 21.17 후렴은 한역에 없다. 「一二生…」의 수열은 21.27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에 해당하나 수가 다르다(팔리: 1·2·3·4·5·10·20·30·40·50·100·1000·100000, 한역: 1–2·3·4·5·10·50·100·1000·億百千·無量). 「我昔生彼處, 名是, 字是…」는 21.27 amutrāsiṃ evaṃnāmo evaṃgotto evaṃvaṇṇo evamāhāro evaṃsukhadukkhappaṭisaṃvedī evamāyupariyanto에 해당하나, gotta·vaṇṇa에 해당하는 글자는 한역에 없고 字가 있다. 「死此生彼, 彼死生此」는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ṃ; tatrāpāsiṃ … idhūpapanno에 해당. 成劫·敗劫·無數成敗劫은 saṃvaṭṭa/vivaṭṭa-kappa 자리의 말이다. 이문: 一【大】 / 一生【宋】【元】【明】. 字는 「자」로 두었다. 앵커: 所趣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나아가는 곳」.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26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27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28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10.21:21.1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17
自憶如是無數宿命之事。
이와 같이 셀 수 없는 지난 삶의 일을 기억한다.
주 팔리 21.28 끝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이렇게 모습과 개요를 갖춘 갖가지 전생을 기억한다)의 맺음 자리다. 한역은 sākāra·sauddesa에 해당하는 말 없이 「自憶如是無數宿命之事」로 맺는다. 21.29는 후렴 반복(Yampi … seyyathidaṃ)이라 한역에 없고, 21.30은 …pe…로 접혀 미대응. 自는 他와 짝이 없는 재귀라 새기지 않았다. 宿命은 「지난 삶」으로 옮겼다 — 「숙명」은 오늘 한국어에서 운명을 뜻해 쓰지 않았다(사전 宿命 ①: 14회/9경; 사전 宿命 ③ 용례 ea130/0582b11.1 「自識宿命無數劫事」).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28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29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21:21.30
「復次,如來知眾生生死之趣,以天眼觀眾生之類,善色、惡色、善趣、惡趣,隨行所種,皆悉知之。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중생의 나고 죽음의 나아감을 안다. 하늘눈으로 중생의 부류를 보아,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좋은 갈래와 나쁜 갈래, 행을 따라 심은 것을 모두 다 안다.
주 팔리 21.31 dibbena cakkhunā …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에 해당. 한역은 「知眾生生死之趣」를 앞에 두고 天眼 서술을 뒤에 둔다(cavamāne upapajjamāne 자리). 善色·惡色=suvaṇṇa·dubbaṇṇa, 善趣·惡趣=sugati·duggati가 놓이는 자리이고, hīne paṇīte(낮은·뛰어난)에 해당하는 글자는 없다 — 일부. 「隨行所種」은 yathākammūpage 자리의 말이다(사전 隨行 ①: 5회/5경, 뒤에 所種 3). 天眼은 뜻이 서는 말이라 음독하지 않고 「하늘눈」.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31
或復眾生身、口、意行惡,誹謗賢聖,造邪見業,身壞命終,生地獄中;或復眾生身、口、意行善,不誹謗賢聖,恒行正見,身壞命終,生善處天上,是謂名為天眼清淨,觀眾生類所趣之行。
혹은 또 중생이 몸·입·뜻으로 악을 행하고, 현인과 성인을 비방하며, 삿된 견해의 업을 짓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지옥 가운데 난다; 혹은 또 중생이 몸·입·뜻으로 선을 행하고, 현인과 성인을 비방하지 않으며, 늘 바른 견해를 행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면 좋은 곳, 하늘 위에 난다. 이것을 일러 하늘눈이 맑고 깨끗하다고 이름하니, 중생의 부류가 나아가는 행을 본다.
주 21.32의 kāya-/vacī-/mano-duccarita(몸·말·뜻의 악행)=身口意行惡, ariyānaṃ upavādakā=誹謗賢聖, te kāyassa bhedā paraṃ maraṇā=身壞命終. micchādiṭṭhikā micchādiṭṭhikammasamādānā(삿된 견해를 가진 이, 삿된 견해의 업을 받아 가진 이) 두 항이 한역에서는 「造邪見業」 한 구로 합쳐진다 — 번역기법. apāyaṃ duggatiṃ vinipātaṃ nirayaṃ 넷 중 한역은 地獄(nirayaṃ 자리)만 둔다. 21.33의 sugatiṃ saggaṃ lokaṃ은 「生善處天上」으로 옮겨졌다. 「是謂名為天眼清淨, 觀眾生類所趣之行」은 21.34 Iti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의 맺음에 해당하며 한역은 清淨을 이름 풀이로 올린다. 清淨=맑고 깨끗함(3분할 표의 清淨=Sobhavatī는 도시 이름의 동형이의라 여기엔 맞지 않아 표를 따르지 않았다). 賢聖=현인과 성인(사전 賢聖), 邪見=삿된 견해(의역), 正見=바른 견해. 21.35 후렴은 …pe…로 접혀 미대응. 或復의 復는 「또」.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32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33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34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10.21:21.35
「復次,如來有漏盡,成無漏心解脫、智慧解脫;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如實知之。
「다시 다음으로, 여래는 번뇌 있음이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이루었다; 나고 죽음은 이미 다했고, 청정한 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쳤고, 다시는 더 존재를 받지 않음을 있는 그대로 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21.36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번뇌가 다하여 번뇌 없는 마음의 해탈·지혜의 해탈)에 해당한다. 한역은 뒤에 「生死已盡, 梵行已立, 所作已辦, 更不復受有」를 붙이는데 21.36에는 이에 해당하는 구가 없다 — 일부. 반대로 21.36의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현재의 법에서 스스로 알아 증득하여 머문다)에 해당하는 글자는 한역에 없다. 21.37 후렴 없음. 漏는 「번뇌」로 옮겼으나 정형구 행의 漏(āsava)는 확정 문자열이 아니어서 ; 有漏盡은 글자대로 「번뇌 있음이 다하여」, 無漏=번뇌 없는, 心解脫=마음의 해탈, 智慧解脫=지혜의 해탈(3분할 의역). 梵行=청정한 행(3분할 의역; 慧琳 〔四分律〕 0698c19 「梵言梵摩, 此云清淨」을 인용하며 확정역은 아니다). 受有=존재를 받음. 이문: 已【大】 / 以【聖】.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3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37
是謂如來有此十力,名為無著,得四無所畏,在大眾中作師子吼,轉於梵輪。
이것을 일러 여래에게 이 열 가지 힘이 있다고 하니, 집착 없는 이라 이름하며,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을 얻어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고 청정한 바퀴를 굴린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21.38 Imāni kho, bhikkhave, dasa tathāgatassa tathāgatabalāni, yehi balehi samannāgato tathāgato āsabhaṃ ṭhānaṃ paṭijānāti, parisāsu sīhanādaṃ nadati, brahmacakkaṃ pavattetī의 맺음 자리다(열 가지 힘 · 대중 가운데 사자후 · 범륜 굴림). 한역은 여기에 「名為無著」와 「得四無所畏」를 더한다 — 21.38에 없다. 無著은 이름 풀이로 올라온 말로(0777a05.1에서 외도의 입에도 나온다) 「집착 없는 이」로 옮기며 ; 전거 표의 無著 당대 후보(nalajñā)는 뜻이 맞는지 확인되지 않아 쓰지 않았다. 轉於梵輪=청정한 바퀴를 굴린다(梵=청정, 慧琳 〔四分律〕 0698c19를 인용하며 확정역은 아니다; 사전 梵輪 ①: 5회/4경). 師子 음역계통은 0776b15.1과 같다(팔리 Sīha / 당대 후보 sīgha).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21:21.38
「云何如來得四無所畏?
「어떻게 여래가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을 얻는가?
주 이 좌표부터 한역은 四無所畏(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를 풀이하는 단락(0776c22.1–0777a04.1)을 세운다. 이 경 팔리 원문(an10.21)에는 이 단락에 해당하는 문장이 없다 — 없음확인; 21.38 맺음 앞에 놓일 자리로 짚었다. 四無所畏의 네 항은 慧琳 〔大般涅槃經音義〕 0479c24가 「正等覺無畏·障道無畏·漏盡無畏·出苦道無畏」로 든다 — 저본 네 항(0776c22.2 · 0776c26.1 · 0776c28.1 · 0777a02.1)의 순서와 같지 않고 항의 짝짓기는 판정하지 않는다(인용만, 확정역 아님). 云何는 의문사구, 어미 의문형이 진다. 無所畏는 「두려울 것 없음」으로 고정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21:21.38
欲言如來成等正覺,若有眾生,欲言知者,則無此處;若復有沙門、婆羅門欲來誹謗佛,不成等正覺者,則無此處;以無此處,則獲安隱。
여래가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었다고 말하고자 하는데, 만일 어떤 중생이 안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런 자리는 없다; 또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이 와서 부처님을 비방하려 하며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지 못했다고 하는 이라면 그런 자리는 없다; 이 자리가 없으므로 곧 편안함을 얻는다.[불확실]
불확실 첫째 두려울 것 없음(등정각 항). 「欲言如來成等正覺, 若有眾生, 欲言知者」는 欲言의 주어와 知者의 내용이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 본문은 글자 순서대로 두고 . 成等正覺은 확정 「바르게 깨달으신 분」을 써서 「…이 되었다」로 옮겼다(사전 成等正覺 ①: 5회/3경). 같은 구절에 如來와 佛이 함께 나와 한자가 흔들린다 — 한역이 같은 분에게 다른 한자를 쓴다. 則無此處=그런 자리는 없다(處=자리, 0776b17.1과 같은 글자). 以無此處則獲安隱=이 자리가 없으므로 곧 편안함을 얻는다(安隱=편안함; 전거 표의 安隱 당대 후보 svastha는 참고만). 沙門은 한자 독음 「사문」, 음역계통: 팔리 Samaṇa / 근대 후보 Śramaṇa(전거 표, 판정하지 않음). 婆羅門=바라문(확정). 앵커: 若=가정(-면), 則=귀결 흡수, 者=명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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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然我今日欲言已盡有漏,設復有沙門、婆羅門、天、若魔天來,欲言未盡有漏者,則無此處;以無此處,則獲安隱。
「그러나 나는 오늘 번뇌 있음을 이미 다했다고 말하고자 하는데, 가령 또 사문이나 바라문, 하늘, 혹은 마천이 와서 번뇌 있음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런 자리는 없다; 이 자리가 없으므로 곧 편안함을 얻는다.
주 둘째 두려울 것 없음(번뇌 다함 항). 같은 발화 안에서 앞 항의 「如來」가 여기서는 「我」로 바뀐다. 「天, 若魔天」의 若은 가정이 아니라 「혹은」으로 읽었다. 設復=가령 또. 魔天=마천. 이문: 已【大】 / 以【聖】. 沙門 음역계통은 0776c22.2와 같다(팔리 Samaṇa / 근대 후보 Śramaṇ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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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次,我所說法,賢聖得出要者,如實盡於苦際。
「다시 다음으로, 내가 설한 법에서 현인과 성인이 벗어남의 요점을 얻는 이는 있는 그대로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
주 셋째 두려울 것 없음(벗어남 항). 「我所說法, 賢聖得出要者, 如實盡於苦際」는 끊는 자리가 둘이다(賢聖 | 得出要者 / 賢聖得出要 | 者). 글자 순서대로 「…얻는 이는」으로 두었다. 出要=벗어남의 요점(3분할 의역; 사전 出要 ①: 68회/34경; 사전 出要 ③ 용례 ea130/0582b29.1 「苦出要」), 苦際=괴로움의 끝(사전 苦際). 盡於苦際의 於는 조사가 지므로 「괴로움의 끝을 다한다」. 앵커: 得=획득, 所說의 所는 관형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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設有沙門、婆羅門、天、若魔天來,欲言未盡苦際者,無此處;以無此處,則獲安隱。
가령 사문이나 바라문, 하늘, 혹은 마천이 와서 괴로움의 끝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런 자리는 없다; 이 자리가 없으므로 곧 편안함을 얻는다.
주 앞 항(0776c28.1)의 맺음으로 0776c26.1과 같은 틀이다. 設有=가령. 沙門 음역계통은 0776c22.2와 같다(팔리 Samaṇa / 근대 후보 Śramaṇ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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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次,我所說內法者、墮惡趣者,設復有沙門、婆羅門來,欲言非者,則無此處。
「다시 다음으로, 내가 설한 안의 법인 것과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가령 또 사문이나 바라문이 와서 그르다고 말하려 한다면 그런 자리는 없다.
주 넷째 두려울 것 없음. 「我所說內法者、墮惡趣者」는 두 항의 나열인지(안의 법 / 나쁜 갈래에 떨어지는 것) 한 구인지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 글자 순서대로 두 항으로 옮겼다. 內法=안의 법(사전 內法 ①: 3회/3경), 墮惡趣=나쁜 갈래에 떨어짐(惡趣는 善趣 「좋은 갈래」와 짝). 非者=그르다고 말하는 이. 沙門 음역계통은 0776c22.2와 같다(팔리 Samaṇa / 근대 후보 Śramaṇa). 이 문장에는 맺음 「以無此處, 則獲安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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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謂,比丘!如來有四無所畏。
이것을 일러, 비구들이여! 여래에게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이 있다.
주 네 항을 맺는 말. 한문에는 복수 표지가 없으나 호격 「比丘」를 앞 발화의 諸比丘를 받아 「비구들이여」로 옮겼다. 有=존재 서술이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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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設有外道異學言:『彼沙門瞿曇!有何等之力,有何無畏,自稱無著最尊?』
「가령 외도, 다른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이 말하기를: 『저 사문 고따마여! 어떤 힘이 있고 어떤 두려움 없음이 있기에, 집착 없는 이, 가장 존귀한 이라고 일컫는가?』
주 외도의 질문. 外道=외도, 異學=다른 가르침을 배우는 이(사전 異學 ①: 37회, 앞에 外道 34 — 두 말이 붙어 나오는 쌍). 瞿曇은 확정 「고따마」, 음역계통: 팔리 Gotama / 근대 후보 Gautama(전거 표, 판정하지 않음). 한자 흔들림: 여기의 無畏와 앞의 無所畏가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두려움 없음」/「두려울 것 없음」으로 구별해 한자 차이를 살렸다. 自稱의 自는 他와 짝이 없어 새기지 않았다. 無著最尊은 0776c20.1의 無著과 같은 글자로 「집착 없는 이, 가장 존귀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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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等當持此十力往報之。
너희들은 이 열 가지 힘을 가지고 가서 그들에게 답하라.[불확실]
불확실 붓다의 명령. 當持의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진다. 報之의 報는 「답함」과 「알림」으로 갈리는데 앞 좌표의 외도 질문에 대한 응답이라 「답하라」로 옮겼고 . 之=앞 좌표의 외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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設復外道異學重作是說:『我等亦成就十力。』
가령 또 외도, 다른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이 거듭 이렇게 말하기를: 『우리도 열 가지 힘을 성취했다.』
주 외도의 반문. 亦은 「…도」로 뜻이 실린 자리라 옮겼다. 重作是說=거듭 이렇게 말함. 成就=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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汝等比丘復當問曰:『汝有何十力?』
너희 비구들은 다시 이렇게 물으라: 『그대에게는 어떤 열 가지 힘이 있는가?』
주 붓다의 명령 안에 든 비구의 되물음. 復當問曰의 當은 명령 어미가 지고 復은 「다시」. 汝有何十力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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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時,外道異學則不能報也,遂增其惑。
이때 외도, 다른 가르침을 배우는 이들은 답할 수 없고, 마침내 그 미혹을 더한다.
주 能=가능(할 수 있다), 則=귀결 흡수, 也=평서 종결. 增其惑=그 미혹을 더함(惑=미혹, 사전 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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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然者,我終不見沙門、婆羅門自稱言得四無所畏,除如來者。
그러한 까닭은, 나는 끝내 사문이나 바라문이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을 얻었다고 일컫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여래를 제외하고는.
주 所以然者=그러한 까닭은. 自稱言의 自는 他와 짝이 없어 새기지 않았다. 除如來者의 者는 명사화 표지이나 「여래를 제외하고는」에 흡수했다. 沙門 음역계통은 0776c22.2와 같다(팔리 Samaṇa / 근대 후보 Śramaṇ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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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比丘!當求方便,成十力、四無所畏。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하여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울 것 없음을 이루라.
주 이 경 팔리 원문에는 이 권고가 없다 — 없음확인. 當求의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진다. 方便=방편(사전 方便 ① 앞: 當求 94, 이 아함 안에서 굳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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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권고를 맺는 말. 當作是學의 當은 명령 어미 「-라」가 진다. 如是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지시(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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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의 맺음 정형구(歡喜奉行)에 해당하는 문장이 팔리 원문에 없다. 21.39 Paṭhamaṃ.은 경 구분 표지라 같은 것으로 세우지 않았다 — 없음확인. 한자 흔들림: 여기서는 佛(앞에서는 世尊·如來). 교감주: 宋·元·明본은 「奉行」 뒤의 「聞如是…歡喜奉行」을 권말에 낸다고 적는다(大正 128자 / 宋元明 130자).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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