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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Ā 367

EĀ 367

교차 검사교차 검사 19현대역 준비 중

(三)

(셋)

주 제목 자리에는 번호 표시 「(三)」만 서 있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쪽 제목 좌표(0.3)는 번호와 경 이름을 함께 실어 한쪽이 더 말한다(부분). 저본의 교감주(orig)에 다카쿠스 각주 「~S. 22. 57. Sattaṭṭhāna.」가 달려 있다 — 편자의 대응 주기이며 판정 근거로 쓰지 않았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57:0.3

AG:ea367/0.1 · 교차 검사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 저본에 `我`가 없다 — 한문대로 두었다. 팔리 쪽은 `Sāvatthinidānaṃ` 한 낱말로 접혀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57:57.1

AG:ea367/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은 확정역(`[구속]`) 「부처님」. 같은 경에서 붓다를 가리키는 말이 `世尊`(0745b08.1)·`佛`(0745b24.2)로 갈린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각각의 확정역(세존·부처님)을 그대로 쓰고 통일하지 않았다. `舍衛`는 `_한자대역_3분할`의 정착어 「사위」 — 이름의 뜻은, 음의 `舍衛國`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이 「無物不有國」·「聞者城」·사람 이름에서 비롯됨(善見律 인용) 등으로 전한다(인용만, 판정하지 않음). 전거 표의 팔리형(`Sāvatthī`)과 당대 범어형(`śravasthi`)이 갈리므로 확인된 두 계통이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 — 한 이름으로 읽어 `祇樹`(음역 祇+뜻 樹, 음의 `祇樹` 一切經音義(慧琳) 0368a03 「梵語也…誓多此譯為勝」 인용)는 「기수」, `給孤獨`은 의역이라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給孤獨` 0368a05 「亦義譯也…誓救孤獨」 인용), `園`은 「동산」으로 옮겼다. 표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쓸 수도 있다 — 어느 쪽으로 정할지는 정도평 몫이다. 팔리 쪽은 `Sāvatthinidānaṃ`에 접혀 있어 미대응. 祇樹給孤獨園은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둔다(정착어 목록, 2026-10-20 정도평 확정) — 祇(음역 이름)의 나무(樹)와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給孤獨)의 동산(園)이라는 뜻.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57:57.1

AG:ea367/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當觀七處之善,又察四法,於此現法之中名為上人。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일곱 곳의 좋음을 살피고, 또 네 가지 법을 헤아려라. 이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위의 사람이라 이름한다.

주 같은 자리에서 한역은 `七處之善`(일곱 곳의 좋음)과 `四法`(네 가지 법)을, 팔리는 `sattaṭṭhānakusalo`와 `tividhūpaparikkhī`(세 겹의 살핌)를 든다 — 앞은 대응하나 뒤가 다르다(`四`/세 겹). `於此現法之中`과 `imasmiṃ dhammavinaye`도 어휘가 갈리고, 팔리의 `kevalī vusitavā`에 해당하는 말은 한역에 없다.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名為上人`은 `uttamapurisoti vuccati`와 같은 자리에 선다. `世尊`은 확정역 「세존」, 비구는 확정역 「비구」. `上人`은 확정역이 없고 「인간을 넘어선 법」의 `上人法`과 쓰임이 달라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읽어 「위의 사람」으로 옮겼다. `現法`은 「이 세상의 삶」 쪽 뜻으로도 읽히나 한자대로 「현재의 법」으로 두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當觀`·`又察`의 `當`은 어미에 흡수했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觀`은 「살피다」, `察`은 「헤아리다」로 가르고 이 경 안에서 통일한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2

AG:ea367/0745b08.1 · 교차 검사

云何,比丘!觀七處之善?

어떻게, 비구여! 일곱 곳의 좋음을 살피는가?

주 물음의 자리가 같다. 한역은 `觀七處之善`, 팔리는 `sattaṭṭhānakusalo hoti`로 동사가 다르나 같은 물음이다. `云何`는 어미 의문형에 흡수하되 「어떻게」로 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57:57.3

AG:ea367/0745b09.1 · 교차 검사

於是,比丘!以慈心遍滿一方、二方、三方、四方,四維上下,亦復如是,盡於世間以慈心遍滿其中。

여기서, 비구여! 자애로운 마음으로 한 방향, 두 방향, 세 방향, 네 방향에 두루 가득 채우고, 네 모서리와 위아래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세상을 다하여 자애로운 마음으로 그 안에 두루 가득 채운다.

주 같은 자리의 `Idha, bhikkhave, bhikkhu`와 `於是,比丘`는 맞으나 내용이 다르다 — 한역은 자애의 마음을 사방에 채우는 일을, 팔리는 물질 등을 아는 일을 든다. `四維`는 네 모서리(음의 `四維` 一切經音義(慧琳) 0368a09 「維隅也」 인용). `世間`은 3분할 의역이라 「세상」. `以慈心`의 `以`는 조사 「-로」. 이문: 二方 없음【聖】.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4

AG:ea367/0745b10.1 · 교차 검사

悲、喜、護心,空,無相、願,亦復如是。

연민, 기쁨, 지키는 마음, 공, 모습 없음, 원도 또한 이와 같다.

주 팔리 57.5는 물질의 즐거움·위험·벗어남을 아는 일을 들어 내용이 다르다. `悲、喜、護心`의 `心`이 셋에 다 걸리는지 갈린다 [불확실:구두·분절]. `無相、願`은 「모습 없음, 원」으로 풀었다 — `無相`을 `無常`과 혼동하지 않도록 한자대로 풀었다. `七處`는 `慈`(0745b10.1)와 여기 `悲·喜·護·空·無相·願`을 합쳐 일곱으로 셀 수 있으나 저본이 열거하지 않아 셈은 추정이다. `亦復如是`는 「또한 이와 같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5

AG:ea367/0745b12.1 · 교차 검사

諸根具足,飲食自量,恒自覺悟。

여러 감관이 갖추어지고, 음식을 헤아리며, 늘 깨어 깨닫는다.

주 팔리 57.4~57.7에는 감관을 갖춤·음식 헤아림·깨어 있음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57.6의 `…`로 접힌 부분은 같은 정형을 되풀이하는 자리라 이 자리와 걸리지 않는다고 보았다). `諸根`은 「여러 감관」으로 풀었다. `自量`·`自覺悟`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覺悟`는 「깨어 있음」과 「깨달음」 두 갈래다 — 음의 `覺悟` 一切經音義(慧琳) 0474b12 〔大般涅槃經音義〕 「睡覺也覺亦悟也」 인용 [불확실:다의어_판별]. `飲食自量`의 `自`는 `他`와 대조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7

AG:ea367/0745b13.1 · 교차 검사

如是,比丘!觀七處。

이와 같이, 비구여! 일곱 곳을 살핀다.

주 첫 부분을 맺는 말이 같다(`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taṭṭhānakusalo hoti`). 다만 팔리는 이 앞에 오온 각각의 풀이(57.8~57.90)가 길게 서고 한역에는 그것이 없어 맺음의 자리가 앞으로 당겨 있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57:57.91

AG:ea367/0745b14.1 · 교차 검사

「云何,比丘!察四處之法?

“어떻게, 비구여! 네 곳의 법을 헤아리는가?

주 물음의 자리는 같으나 한역은 `四處之法`, 팔리는 `tividhūpaparikkhī`(세 겹의 살핌)를 묻는다. 앞 좌표 0745b08.1의 `四法`과 여기의 `四處之法`, 뒤의 `四法之善`은 한자가 갈린다(한자 흔들림)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것으로 보이나 같은 것인지는 판정하지 않고 각 한자대로 「네 가지 법」·「네 곳의 법」으로 옮겼다. 이 좌표에서 따옴표가 다시 열린다(저본이 단락마다 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92

AG:ea367/0745b14.2 · 교차 검사

於是,比丘!內自觀身,除去愁憂,身意止,外復觀身身意止;內外觀身身意止。

여기서, 비구여! 안으로 몸을 살피고, 시름과 걱정을 덜어 없애며, 몸의 뜻 머묾; 밖으로 다시 몸을 살피고 몸의 뜻 머묾; 안팎으로 몸을 살피고 몸의 뜻 머묾.

주 팔리 57.93은 `dhātuso`·`āyatanaso`·`paṭiccasamuppādaso`의 세 살핌을 든다. 한역은 안·밖·안팎으로 몸을 살피는 틀이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意止`는 3분할 의역이라 「뜻 머묾」으로 풀었다(전거 표의 팔리 후보와의 대응은 인용만 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身意止`는 `身`에서의 `意止`로 읽었다. `內自觀`의 `自`는 `他`와 대조되지 않아 흡수. `除去愁憂`은 「시름과 걱정을 덜어 없애며」(음의 `除去` 一切經音義(慧琳) 0466a09는 자음 풀이 — 인용만). 이문: 身(마지막 `身意止` 앞) 없음【聖】.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93

AG:ea367/0745b15.1 · 교차 검사

內自觀痛痛意止;外自觀痛痛意止;內外觀痛痛意止。

안으로 느낌을 살피고 느낌의 뜻 머묾; 밖으로 느낌을 살피고 느낌의 뜻 머묾; 안팎으로 느낌을 살피고 느낌의 뜻 머묾.

주 팔리 57.93에는 느낌을 살피는 틀이 없다(셋 모두 다른 살핌). `痛`은 낱말 뜻이 「아픔」이나 몸·痛·마음·법을 늘어놓는 저본 안의 짜임에서 감수 작용(느낌)을 가리키는 자리로 읽어 「느낌」으로 옮겼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覺`(`[정형구 행]`의 `느낌`)과는 다른 한자라 구별한다. `自`는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93

AG:ea367/0745b16.1 · 교차 검사

內觀心心意止;外觀心心意止;內外觀心心意止,除去愁憂,無復苦患。

안으로 마음을 살피고 마음의 뜻 머묾; 밖으로 마음을 살피고 마음의 뜻 머묾; 안팎으로 마음을 살피고 마음의 뜻 머묾, 시름과 걱정을 덜어 없애고, 다시는 괴로움과 근심이 없다.

주 팔리 57.93에는 마음을 살피는 틀이 없다. `除去愁憂,無復苦患`은 이 마음 단락의 끝에 붙어 있다 — 앞 단락(몸)의 `除去愁憂`과 같은 말이 되풀이되며, 어느 단락에 걸리는지는 저본의 끊음을 따랐다 [불확실:구두·분절]. `無復`은 「다시는 … 없다」(음의 `無復` 一切經音義(慧琳) 0482a21 인용).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93

AG:ea367/0745b18.1 · 교차 검사

內觀法法意止;外觀法法意止,內外觀法法意止。

안으로 법을 살피고 법의 뜻 머묾; 밖으로 법을 살피고 법의 뜻 머묾, 안팎으로 법을 살피고 법의 뜻 머묾.

주 팔리 57.93에는 법을 살피는 틀이 없다. 몸·느낌·마음·법으로 이어지는 네 가지가 앞서 말한 `四法`을 채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93

AG:ea367/0745b19.1 · 교차 검사

如是,比丘!觀四法之善。

이와 같이, 비구여! 네 가지 법의 좋음을 살핀다.

주 맺음의 자리가 같으나(`Evaṃ kho, bhikkhave, bhikkhu tividhūpaparikkhī hoti`) 한역은 네 가지 법, 팔리는 세 겹의 살핌을 든다. `法` 앞의 `四`와 팔리의 세 겹이 갈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94

AG:ea367/0745b21.1 · 교차 검사

「若復,比丘!如是七處善及察四法,於此現法中為上人。

“또 비구여! 이와 같이 일곱 곳의 좋음과 네 가지 법을 헤아리면, 이 현재의 법 가운데에서 위의 사람이 된다.

주 팔리 57.95는 첫 단락 문장을 되풀이하며 맺는다 — 한역의 `七處善及察四法`은 `sattaṭṭhānakusalo`·`tividhūpaparikkhī`와 자리가 같고 수가 갈리며, `kevalī vusitavā`는 한역에 없다. `若復`의 `若`은 어미 「-면」에, `復`은 「또」에 실었다. `為上人`은 「위의 사람이 된다」 — 0745b08.1의 `名為上人`과 달리 `名`이 없다(宋·元·明본은 `名為`)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이문: 如=能如【宋】【元】【明】, 為=名為【宋】【元】【明】. 이 좌표에서 따옴표가 다시 열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57:57.95

AG:ea367/0745b21.2 · 교차 검사

是故,比丘!當求方便,辦七處之善及觀四法。

그러므로 비구여! 방편을 구하라, 일곱 곳의 좋음을 갖추고 네 가지 법을 살피라.

주 팔리에는 이 권면이 없다(57.95 뒤로 번호 표지 57.96만 이어진다). `當求`의 `當`은 어미에 흡수. `方便`은 정착어 「방편」. `辦`은 「갖추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95

AG:ea367/0745b23.1 · 교차 검사

如是,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여! 이렇게 배우라.”

주 팔리에는 이 권면이 없다.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에 흡수. 이 좌표에서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95

AG:ea367/0745b24.1 · 교차 검사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팔리 이 경에는 이런 맺음 정형구가 없다. `佛`은 확정역 「부처님」 — 같은 경 0745b08.1은 `世尊`이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말씀하신 것」. `歡喜奉行`은 정형구(음의 `歡喜` 一切經音義(慧琳) 0753a01 「歡喜悅也」 인용).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57:57.95

AG:ea367/0745b24.2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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