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N 22.53 – 22.62

다가감 품

Upayavaggo

SN 22.53

다가감 경

Upayasuttaṃ

교차 검사

1. Upayasuttaṃ

1. 다가감 경

PN:sn22.53/0.3 · 교차 검사

53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PN:sn22.53/53.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달라붙는 자는 풀려나지 못한다. 달라붙지 않는 자는 풀려난다. 의식이 머문다면 물질에 달라붙어 머문다. 물질을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발판으로 삼는다. 거기서 즐김이 물처럼 적셔 주는 가운데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게 된다. 느낌에 달라붙어 머물 때도, 인식에 달라붙어 머물 때도 그러하다. 형성들에 달라붙어 머물 때도 마찬가지다. 형성들을 대상으로 삼고 형성들을 발판으로 삼는다. 거기서 즐김이 적셔 주는 가운데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게 된다.

‘‘Upayo, bhikkhave, avimutto, anupayo vimutto.

“비구들이여, 다가가는 자는 해탈하지 못하고, 다가가지 않는 자는 해탈한다.

PN:sn22.53/53.2 · 교차 검사

Rūp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rūpārammaṇaṃ rūp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들이여, 물질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물질을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PN:sn22.53/53.3 · 교차 검사

Vedanupayaṃ vā…pe… saññupayaṃ vā…pe… saṅkhār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saṅkhārārammaṇaṃ saṅkhār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들이여, 느낌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느낌을 대상으로 삼고 느낌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인식을 대상으로 삼고 인식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성작용들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형성작용들을 대상으로 삼고 형성작용들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3:53.3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3/53.4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형성들을 떠나서 의식이 오고 감을 보여 주겠다. 의식이 죽고 태어나는 것도 보여 주겠다. 의식이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는 것도 보여 주겠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Yo, bhikkhave, evaṃ vadeyya –

“비구들이여,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

PN:sn22.53/53.5 · 교차 검사

‘ahamaññatra rūpā aññatra vedanāya aññatra saññāya aññatra saṅkhārehi viññāṇassa āgatiṃ vā gatiṃ vā cutiṃ vā upapattiṃ vā vuddhiṃ vā virūḷhiṃ vā vepullaṃ vā paññāpessām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나는 물질을 떠나서, 느낌을 떠나서, 인식을 떠나서, 형성작용들을 떠나서 의식의 옴이나 감이나 죽음이나 태어남이나 자람이나 늘어남이나 커짐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한다면, 그런 도리는 없다.

PN:sn22.53/53.6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버렸다고 하자. 탐욕을 버리면 대상이 끊어진다. 그러면 의식이 딛고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느낌의 요소든 인식의 요소든 형성의 요소든 마찬가지다. 비구가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버렸을 때도 그러하다. 탐욕을 버리면 대상이 끊어져 의식이 딛고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Rūpadhātuyā ce, bhikkhave,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비구들이여, 물질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PN:sn22.53/53.7 · 교차 검사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PN:sn22.53/53.8 · 교차 검사

Vedanādhātuyā ce, bhikkhave… saññādhātuyā ce bhikkhave… saṅkhāradhātuyā ce bhikkhave… viññāṇadhātuyā ce, bhikkhave,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비구들이여, 느낌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비구들이여, 인식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비구들이여, 형성작용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비구들이여, 의식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3:53.7 ~ PN:sn22.53/53.8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3/53.9 · 교차 검사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PN:sn22.53/53.10 · 교차 검사

딛고 설 자리를 얻지 못한 그 의식은 자라지 않는다. 더 지어내지 않아 풀려난다. 풀려났으므로 흔들림 없이 머문다. 흔들림 없이 머무르니 만족하고, 만족하니 애태우지 않는다. 애태우지 않으므로 스스로 온전히 꺼진다. 그는 이렇게 안다. '태어남은 다했다. 맑은 삶은 다 살았다. 할 일은 다 마쳤다. 다시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불확실]

Tadappatiṭṭhitaṃ viññāṇaṃ avirūḷhaṃ anabhisaṅkhaccavimuttaṃ.

발판을 두지 않은 그 의식은 자라지 않고, 지어냄 없이 해탈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3/53.11 · 교차 검사

Vimuttattā ṭhitaṃ.

해탈했기에 머문다.

PN:sn22.53/53.12 · 교차 검사

Ṭhitattā santusitaṃ.

머물기에 만족한다.

PN:sn22.53/53.13 · 교차 검사

Santusitattā na paritassati.

만족하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PN:sn22.53/53.14 · 교차 검사

Aparitassaṃ 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흔들리지 않아 스스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

PN:sn22.53/53.15 · 교차 검사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다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꿰뚫어 안다.”

PN:sn22.53/53.16 · 교차 검사

Paṭhamaṃ.

첫 번째.

PN:sn22.53/53.17 · 교차 검사

SN 22.54

씨앗 경

Bījasuttaṃ

교차 검사

2. Bījasuttaṃ

2. 씨앗 경

PN:sn22.54/0.3 · 교차 검사

54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PN:sn22.54/54.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씨앗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그 다섯은 무엇인가? 뿌리로 심는 씨앗, 줄기로 심는 씨앗, 순으로 심는 씨앗이 있다. 그리고 마디로 심는 씨앗이 있고, 다섯째로 씨 그 자체를 심는 씨앗이 있다.

‘‘Pañcimāni, bhikkhave, bījajātāni.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씨앗의 종류가 있다.

PN:sn22.54/54.2 · 교차 검사

Katamāni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PN:sn22.54/54.3 · 교차 검사

Mūlabījaṃ, khandhabījaṃ, aggabījaṃ, phalubījaṃ, bījabījaññeva pañcamaṃ.

뿌리 씨앗, 줄기 씨앗, 순 씨앗, 마디 씨앗, 그리고 다섯 번째로 씨앗 씨앗이다.

PN:sn22.54/54.4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씨앗이 깨지지도 썩지도 않았다고 하자. 바람과 볕에 상하지 않고 알이 여물어 잘 갈무리되어 있다. 그런데 땅도 없고 물도 없다. 그래도 이 다섯 가지 씨앗이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Imāni cassu, bhikkhave, pañca bījajātāni akhaṇḍāni apūtikāni avātātapahatāni sārādāni sukhasayitāni, pathavī ca nāssa, āpo ca nāssa;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씨앗의 종류가 깨지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볕에 상하지 않고 알차고 잘 보관되어 있는데, 땅도 없고 물도 없다면;

PN:sn22.54/54.5 · 교차 검사

api numāni, bhikkhave, pañca bījajātāni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u’’nti?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씨앗의 종류가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르겠는가?”

PN:sn22.54/54.6 · 교차 검사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4/54.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씨앗이 깨지지 않고 잘 갈무리되어 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땅도 있고 물도 있다. 이 다섯 가지 씨앗이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게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불확실]

‘‘Imāni cassu, bhikkhave, pañca bījajātāni akhaṇḍāni…pe… sukhasayitāni, pathavī ca assa, āpo ca assa;

“비구들이여, 그리고 이 다섯 가지 씨앗의 종류가 깨지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볕에 상하지 않고 알차고 잘 보관되어 있고, 땅도 있고 물도 있다면;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4:54.5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4/54.8 · 교차 검사

api numāni, bhikkhave, pañca bījajātāni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u’’nti?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씨앗의 종류가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르겠는가?”

PN:sn22.54/54.9 · 교차 검사

‘‘Evaṃ, bhante’’.

“예, 세존이시여.”[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4/54.10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땅의 요소가 그와 같다. 의식이 머무는 네 자리를 그렇게 보아야 한다. 물의 요소도 그와 같으니, 즐김과 탐욕을 그렇게 보아야 한다. 다섯 가지 씨앗이 그와 같으니, 자양분을 지닌 의식을 그렇게 보아야 한다.

‘‘Seyyathāpi, bhikkhave, pathavīdhātu, evaṃ catasso viññāṇaṭṭhitiyo daṭṭhabbā.

“비구들이여, 마치 땅의 요소와 같이, 그와 같이 네 가지 의식이 머무는 자리를 보아야 한다.

PN:sn22.54/54.11 · 교차 검사

Seyyathāpi, bhikkhave, āpodhātu, evaṃ nandirāgo daṭṭhabbo.

비구들이여, 마치 물의 요소와 같이, 그와 같이 즐김과 탐욕을 보아야 한다.

PN:sn22.54/54.12 · 교차 검사

Seyyathāpi, bhikkhave, pañca bījajātāni, evaṃ viññāṇaṃ sāhāraṃ daṭṭhabbaṃ’’.

비구들이여, 마치 다섯 가지 씨앗의 종류와 같이, 그와 같이 자양분을 지닌 의식을 보아야 한다.”

PN:sn22.54/54.1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의식이 머문다면 물질에 달라붙어 머문다. 물질을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발판으로 삼는다. 거기서 즐김이 물처럼 적셔 주는 가운데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게 된다. 의식은 느낌에 달라붙어 머물기도 하고, 인식에 달라붙어 머물기도 한다. 형성들에 달라붙어 머물 때도 마찬가지다. 형성들을 대상으로 삼고 형성들을 발판으로 삼는다. 거기서 즐김이 적셔 주는 가운데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게 된다.

‘‘Rūpupayaṃ,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rūpārammaṇaṃ rūp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들이여, 물질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물질을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PN:sn22.54/54.14 · 교차 검사

Vedan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pe… saññ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pe… saṅkhārupayaṃ vā,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saṅkhārārammaṇaṃ saṅkhār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들이여, 느낌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느낌을 대상으로 삼고 느낌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인식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인식을 대상으로 삼고 인식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비구들이여, 형성작용들에 다가간 의식이 머무르며 머문다면, 형성작용들을 대상으로 삼고 형성작용들을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뿌려져 자람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4:54.14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4/54.15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형성들을 떠나서 의식이 오고 감을 보여 주겠다. 의식이 죽고 태어나는 것도 보여 주겠다. 의식이 자라고 뻗어나고 가득 차는 것도 보여 주겠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Yo, bhikkhave, evaṃ vadeyya –

“비구들이여,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

PN:sn22.54/54.16 · 교차 검사

‘ahamaññatra rūpā aññatra vedanāya aññatra saññāya aññatra saṅkhārehi viññāṇassa āgatiṃ vā gatiṃ vā cutiṃ vā upapattiṃ vā vuddhiṃ vā virūḷhiṃ vā vepullaṃ vā paññāpessām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나는 물질을 떠나서, 느낌을 떠나서, 인식을 떠나서, 형성작용들을 떠나서 의식의 옴이나 감이나 죽음이나 태어남이나 자람이나 늘어남이나 커짐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한다면, 그런 도리는 없다.

PN:sn22.54/54.1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버렸다고 하자. 탐욕을 버리면 대상이 끊어진다. 그러면 의식이 딛고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느낌의 요소든 인식의 요소든 형성의 요소든 마찬가지다. 비구가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버렸을 때도 그러하다. 탐욕을 버리면 대상이 끊어져 의식이 딛고 설 자리를 얻지 못한다.

‘‘Rūpadhātuyā ceva, bhikkhave,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비구들이여, 물질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PN:sn22.54/54.18 · 교차 검사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PN:sn22.54/54.19 · 교차 검사

Vedanādhātuyā ce… saññādhātuyā ce… saṅkhāradhātuyā ce… viññāṇadhātuyā ce, bhikkhave,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느낌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인식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형성작용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비구들이여, 의식의 요소에 대해 비구에게 탐욕이 버려지면,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4:54.18 ~ PN:sn22.54/54.19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4/54.20 · 교차 검사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져 의식의 발판이 없다.

PN:sn22.54/54.21 · 교차 검사

딛고 설 자리를 얻지 못한 그 의식은 자라지 않는다. 더 지어내지 않아 풀려난다. 풀려났으므로 흔들림 없이 머문다. 흔들림 없이 머무르니 만족하고, 만족하니 애태우지 않는다. 애태우지 않으므로 스스로 온전히 꺼진다. 그는 이렇게 안다. '태어남은 다했다. 맑은 삶은 다 살았다. 할 일은 다 마쳤다. 다시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불확실]

Tadappatiṭṭhitaṃ viññāṇaṃ avirūḷhaṃ anabhisaṅkhaccavimuttaṃ.

발판을 두지 않은 그 의식은 자라지 않고, 지어냄 없이 해탈한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4/54.22 · 교차 검사

Vimuttattā ṭhitaṃ.

해탈했기에 머문다.

PN:sn22.54/54.23 · 교차 검사

Ṭhitattā santusitaṃ.

머물기에 만족한다.

PN:sn22.54/54.24 · 교차 검사

Santusitattā na paritassati.

만족하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PN:sn22.54/54.25 · 교차 검사

Aparitassaṃ 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흔들리지 않아 스스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

PN:sn22.54/54.26 · 교차 검사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다 마쳤고,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꿰뚫어 안다.”

PN:sn22.54/54.27 · 교차 검사

Dutiyaṃ.

두 번째.

PN:sn22.54/54.28 · 교차 검사

SN 22.55

감흥어 경

Udānasuttaṃ

교차 검사

3. Udānasuttaṃ

3. 감흥어 경

PN:sn22.55/0.3 · 교차 검사

55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이런 감흥의 말씀을 읊으셨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비롯한 인연이다.

PN:sn22.55/55.1 · 교차 검사

Tatra kho bhagavā udānaṃ udānesi –

거기서 세존께서 감흥어를 읊으셨다 —

PN:sn22.55/55.2 · 교차 검사

"'나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기울이는 비구는 아래 세상에 묶어 두는 족쇄를 끊을 것이다."[불확실]

‘‘‘no cassaṃ, no ca me siyā, nābhavissa, na me bhavissatī’ti –

“‘나는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

PN:sn22.55/55.3 · 교차 검사

evaṃ adhimuccamāno bhikkhu chindeyy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이렇게 확신하는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끊을 것이다.”

PN:sn22.55/55.4 · 교차 검사

이 말씀을 듣고 어떤 비구가 세존께 여쭈었다.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bhagavantaṃ etadavoca –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PN:sn22.55/55.5 · 교차 검사

"세존이시여, 여기 한 비구가 이렇게 마음을 기울인다고 하겠습니다. '나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비구가 아래 세상에 묶어 두는 족쇄를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불확실]

‘‘yathā kathaṃ pana, bhante, ‘no cassaṃ, no ca me siyā, nābhavissa, na me bhavissatī’ti –

“그런데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나는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

PN:sn22.55/55.6 · 교차 검사

evaṃ adhimuccamāno bhikkhu chindeyy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이렇게 확신하는 비구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끊을 수 있습니까?”

PN:sn22.55/55.7 · 교차 검사

"비구여, 여기 가르침을 듣지 못한 보통 사람이 있다. 그는 성인을 뵌 적이 없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어둡다.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이끌린 적도 없다. 그래서 물질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고, 자기 자신이 물질을 지녔다고 여긴다. 또 자기 안에 물질이 있다고 여기며, 물질 안에 자기가 있다고 여긴다.

‘‘Idha, bhikkhu, assutavā puthujjano ariyānaṃ adassāvī…pe… sappurisadhamme avinīto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 attānaṃ;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며,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지 못하고, 참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참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며, 참사람의 법에서 훈련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가 물질을 지녔다고 여기거나,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5:55.18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5/55.8 · 교차 검사

attani vā rūpaṃ, rūpasmiṃ vā attānaṃ.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여기거나,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PN:sn22.55/55.9 · 교차 검사

느낌을… 인식을… 형성작용들을… 의식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 자기 자신이 의식을 지녔다고도 여긴다. 또 자기 안에 의식이 있다고 여기며, 의식 안에 자기가 있다고 여긴다.

Vedanaṃ… saññaṃ… saṅkhāre…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viññāṇavantaṃ vā attānaṃ;

느낌을, 인식을, 형성작용들을, 의식을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가 의식을 지녔다고 여기거나,

PN:sn22.55/55.10 · 교차 검사

attani v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smiṃ vā attānaṃ.

자아 안에 의식이 있다고 여기거나,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여긴다.

PN:sn22.55/55.11 · 교차 검사

물질은 무상하다. 그는 무상한 물질을 '물질은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의식도 마찬가지다. 무상한 것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So aniccaṃ rūpaṃ ‘aniccaṃ rūp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iccaṃ vedanaṃ ‘aniccā vedan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iccaṃ saññaṃ ‘anicc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icce saṅkhāre ‘aniccā saṅkhār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iccaṃ viññāṇaṃ ‘anicc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그는 무상한 물질을 ‘무상한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상한 느낌을 ‘무상한 느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상한 인식을 ‘무상한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상한 형성작용들을 ‘무상한 형성작용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상한 의식을 ‘무상한 의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PN:sn22.55/55.12 · 교차 검사

괴로운 물질을 '물질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괴로운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그러하다. 괴로운 의식을 '의식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Dukkhaṃ rūpaṃ ‘dukkhaṃ rūp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dukkhaṃ vedanaṃ… dukkhaṃ saññaṃ… dukkhe saṅkhāre… dukkhaṃ viññāṇaṃ ‘dukkh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괴로운 물질을 ‘괴로운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괴로운 느낌을, 괴로운 인식을, 괴로운 형성작용들을, 괴로운 의식을 ‘괴로운 의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PN:sn22.55/55.13 · 교차 검사

자아가 없는 물질을 '물질에는 자아가 없다'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그러하다. 자아가 없는 의식을 '의식에는 자아가 없다'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Anattaṃ rūpaṃ ‘anattā rūp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attaṃ vedanaṃ ‘anattā vedan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attaṃ saññaṃ ‘anattā saññ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atte saṅkhāre ‘anattā saṅkhārā’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anattaṃ viññāṇaṃ ‘anattā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무아인 물질을 ‘무아인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아인 느낌을 ‘무아인 느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아인 인식을 ‘무아인 인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아인 형성작용들을 ‘무아인 형성작용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무아인 의식을 ‘무아인 의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PN:sn22.55/55.14 · 교차 검사

지어진 물질을 '물질은 지어진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지어진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그러하다. 지어진 의식을 '의식은 지어진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Saṅkhataṃ rūpaṃ ‘saṅkhataṃ rūp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saṅkhataṃ vedanaṃ… saṅkhataṃ saññaṃ… saṅkhate saṅkhāre… saṅkhataṃ viññāṇaṃ ‘saṅkhat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형성된 물질을 ‘형성된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형성된 느낌을, 형성된 인식을, 형성된 형성작용들을, 형성된 의식을 ‘형성된 의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PN:sn22.55/55.15 · 교차 검사

'물질은 흩어져 사라질 것이다.' 이것을 그는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의식도 마찬가지다.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Rūp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물질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PN:sn22.55/55.16 · 교차 검사

Vedanā vibhavissati… saññā vibhavissati… saṅkhārā vibhavissanti… viññāṇ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nappajānāti.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인식은 사라질 것이다’, ‘형성작용들은 사라질 것이다’, ‘의식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PN:sn22.55/55.17 · 교차 검사

비구여, 그러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다르다. 그는 성인을 뵙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밝으며 그 가르침에 잘 이끌렸다. 참된 사람을 뵙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도 밝으며 그 가르침에 잘 이끌렸다. 그래서 물질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의식도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Sutavā ca kho, bhikkhu, ariyasāvako ariyānaṃ dassāvī ariyadhammassa kovido ariyadhamme suvinīto sappurisānaṃ dassāvī sappurisadhammassa kovido sappurisadhamme suvinīto na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pe… na vedanaṃ… na saññaṃ… na saṅkhāre… na viññāṇaṃ attato samanupassati.

“비구여, 그러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보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며, 성스러운 법에서 잘 훈련되고, 참사람들을 보고, 참사람의 법에 능숙하며, 참사람의 법에서 잘 훈련되어, 물질을 자아로 여기지 않고, 자아가 물질을 지녔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도,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느낌을, 인식을, 형성작용들을, 의식을 자아로 여기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5:55.8 ~ PN:sn22.55/55.9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5/55.18 · 교차 검사

그는 무상한 물질을 '물질은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안다. 무상한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그러하다. 무상한 의식을 '의식은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안다.

‘‘So aniccaṃ rūpaṃ ‘aniccaṃ rūp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무상한 물질을 ‘무상한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PN:sn22.55/55.19 · 교차 검사

Aniccaṃ vedanaṃ… aniccaṃ saññaṃ… anicce saṅkhāre… aniccaṃ viññāṇaṃ ‘anicc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무상한 느낌을, 무상한 인식을, 무상한 형성작용들을, 무상한 의식을 ‘무상한 의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PN:sn22.55/55.20 · 교차 검사

괴로운 물질도 괴로운 의식도 있는 그대로 안다. 자아가 없는 물질도 자아가 없는 의식도 그러하다. 지어진 물질을 지어진 것으로 알고, 지어진 의식을 '의식은 지어진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Dukkhaṃ rūpaṃ…pe… dukkhaṃ viññāṇaṃ… anattaṃ rūpaṃ…pe… anattaṃ viññāṇaṃ… saṅkhataṃ rūpaṃ…pe… saṅkhataṃ viññāṇaṃ ‘saṅkhat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괴로운 물질을 ‘괴로운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괴로운 느낌을, 괴로운 인식을, 괴로운 형성작용들을, 괴로운 의식을 알며, 무아인 물질을 ‘무아인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무아인 느낌을, 무아인 인식을, 무아인 형성작용들을, 무아인 의식을 알며, 형성된 물질을 ‘형성된 물질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형성된 느낌을, 형성된 인식을, 형성된 형성작용들을, 형성된 의식을 ‘형성된 의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5:55.13 ~ PN:sn22.55/55.15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5/55.21 · 교차 검사

'물질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의식도 마찬가지다.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Rūp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물질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PN:sn22.55/55.22 · 교차 검사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느낌은, 인식은, 형성작용들은, 의식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안다.

PN:sn22.55/55.23 · 교차 검사

그에게는 물질이 사라진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들도 의식도 사라진다. 비구여, '나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기울이는 비구는 아래 세상에 묶어 두는 족쇄를 끊을 것이다."[불확실]

‘‘So rūpassa vibhavā, vedanāya vibhavā, saññā vibhavā, saṅkhārānaṃ vibhavā, viññāṇassa vibhavā, evaṃ kho, bhikkhu, ‘no cassaṃ, no ca me siyā, nābhavissa, na me bhavissatī’ti –

“그는 물질이 사라짐으로, 느낌이 사라짐으로, 인식이 사라짐으로, 형성작용들이 사라짐으로, 의식이 사라짐으로 — 비구여, 이렇게 ‘나는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불확실]

불확실 —

PN:sn22.55/55.24 · 교차 검사

evaṃ adhimuccamāno bhikkhu chindeyy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이렇게 확신하는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끊을 것이다.”

PN:sn22.55/55.25 · 교차 검사

"세존이시여, 그렇게 마음을 기울이는 비구는 아래 세상에 묶어 두는 족쇄를 끊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곧바로 번뇌가 다합니까?"

‘‘Evaṃ adhimuccamāno, bhante, bhikkhu chindeyy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세존이시여, 이렇게 확신하는 비구는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끊을 것입니다.”

PN:sn22.55/55.26 · 교차 검사

‘‘Kathaṃ pana, bhante, jānato kathaṃ passato anantarā āsavānaṃ khayo hotī’’ti?

“그런데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볼 때 곧바로 번뇌들이 다합니까?”

PN:sn22.55/55.27 · 교차 검사

"비구여, 여기 가르침을 듣지 못한 보통 사람은 두려워할 것 없는 자리에서 두려움에 빠진다. 그에게는 이것이 두려움이다. '나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불확실]

‘‘Idha, bhikkhu, assutavā puthujjano atasitāye ṭhāne tāsaṃ āpajjati.

“비구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되는 도리에서 두려움에 빠진다.

PN:sn22.55/55.28 · 교차 검사

Tāso heso bhikkhu assutavato puthujjanassa –

비구여,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이것이 두려움이니 —

PN:sn22.55/55.29 · 교차 검사

‘no cassaṃ, no ca me siyā, nābhavissa, na me bhavissatī’’’ti.

‘나는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5/55.30 · 교차 검사

비구여, 그러나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두려워할 것 없는 자리에서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것이 두려움이 아니다. '나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었을 것이다. 나도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불확실]

‘‘Sutavā ca kho, bhikkhu, ariyasāvako atasitāye ṭhāne na tāsaṃ āpajjati.

“비구여, 그러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되는 도리에서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

PN:sn22.55/55.31 · 교차 검사

Na heso, bhikkhu, tāso sutavato ariyasāvakassa –

비구여,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것은 두려움이 아니니 —

PN:sn22.55/55.32 · 교차 검사

‘no cassaṃ, no ca me siyā, nābhavissa, na me bhavissatī’ti.

‘나는 있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도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5/55.33 · 교차 검사

비구여, 의식은 물질에 다가가 머물면서 그대로 서 있을 수 있다. 물질을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발판으로 삼는다. 거기에 즐김이 끼얹어지면 자라나고 늘어나고 무성해진다. 느낌에 다가가서도, 인식에 다가가서도, 형성작용들에 다가가서도 그러하다. 형성작용들을 대상으로 삼고 발판으로 삼아 즐김이 끼얹어지면, 의식은 자라나고 늘어나고 무성해진다.

Rūpupayaṃ vā, bhikkhu,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rūpārammaṇaṃ rūp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여, 물질에 다가간 의식이 머물면서 머물 것이니, 물질을 대상으로 삼고 물질을 발판으로 삼아 기쁨이 뿌려져 자라남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PN:sn22.55/55.34 · 교차 검사

Vedanupayaṃ vā, bhikkhu… saññupayaṃ vā, bhikkhu… saṅkhārupayaṃ vā, bhikkhu,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saṅkhārārammaṇaṃ saṅkhār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비구여, 느낌에 다가간, 비구여, 인식에 다가간, 비구여, 형성작용들에 다가간 의식이 머물면서 머물 것이니, 형성작용들을 대상으로 삼고 형성작용들을 발판으로 삼아 기쁨이 뿌려져 자라남과 늘어남과 커짐에 이를 것이다.

PN:sn22.55/55.35 · 교차 검사

비구여,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형성작용들을 떠나서 의식을 밝혀 보이겠다. 의식이 오고 가고 죽고 태어나는 것을 밝히고, 자라나고 늘어나고 무성해지는 것을 밝혀 보이겠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Yo bhikkhu evaṃ vadeyya –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한다면 —

PN:sn22.55/55.36 · 교차 검사

‘ahamaññatra rūpā, aññatra vedanāya, aññatra saññāya, aññatra saṅkhārehi viññāṇassa āgatiṃ vā gatiṃ vā cutiṃ vā upapattiṃ vā vuddhiṃ vā virūḷhiṃ vā vepullaṃ vā paññāpessām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나는 물질을 떠나, 느낌을 떠나, 인식을 떠나, 형성작용들을 떠나 의식의 옴이나 감이나 죽음이나 태어남이나 자라남이나 늘어남이나 커짐을 드러내 보이겠다’라고 한다면, 그런 도리는 없다.

PN:sn22.55/55.37 · 교차 검사

비구여, 어떤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버렸다고 하자. 탐욕을 버렸으므로 대상이 끊어진다. 그래서 의식이 설 발판이 없어진다.

‘‘Rūpadhātuyā ce, bhikkhu,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비구여, 만일 비구에게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이 버려지면,

PN:sn22.55/55.38 · 교차 검사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의 발판이 있지 않다.

PN:sn22.55/55.39 · 교차 검사

비구여, 어떤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인식의 요소에 대한… 형성작용들의 요소에 대한…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버렸다고 하자. 이때도 탐욕을 버렸으므로 대상이 끊어진다. 그래서 의식이 설 발판이 없어진다.

Vedanādhātuyā ce, bhikkhu, bhikkhuno… saññādhātuyā ce, bhikkhu, bhikkhuno… saṅkhāradhātuyā ce, bhikkhu, bhikkhuno… viññāṇadhātuyā ce, bhikkhu,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비구여, 만일 비구에게 느낌의 요소에 대한, 비구여, 인식의 요소에 대한, 비구여, 형성작용의 요소에 대한, 비구여,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이 버려지면,

PN:sn22.55/55.40 · 교차 검사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탐욕을 버림으로써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의 발판이 있지 않다.

PN:sn22.55/55.41 · 교차 검사

발판을 잃은 그 의식은 자라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으며 풀려난다. 풀려났으므로 흔들리지 않고 선다. 흔들리지 않고 서므로 만족하고, 만족하므로 떨지 않는다. 떨지 않으므로 스스로 완전히 꺼진다.

Tadappatiṭṭhitaṃ viññāṇaṃ avirūḷhaṃ anabhisaṅkhārañca vimuttaṃ.

발판이 없는 그 의식은 자라지 않고, 지어냄이 없어 해탈한다.

PN:sn22.55/55.42 · 교차 검사

Vimuttattā ṭhitaṃ.

해탈했으므로 머문다.

PN:sn22.55/55.43 · 교차 검사

Ṭhitattā santusitaṃ.

머물므로 만족한다.

PN:sn22.55/55.44 · 교차 검사

Santusitattā na paritassati.

만족하므로 흔들리지 않는다.

PN:sn22.55/55.45 · 교차 검사

Aparitassaṃ paccattaññeva parinibbāyati.

흔들리지 않아 스스로 완전한 열반에 든다.

PN:sn22.55/55.46 · 교차 검사

그는 '태어남은 다했다… 이제 다시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고 안다.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면 곧바로 번뇌가 다한다."[불확실]

‘Khīṇā jāti…pe…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으며, 할 일은 마쳤으니, 다시는 이러한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안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5/55.47 · 교차 검사

Evaṃ kho, bhikkhu, jānato evaṃ passato anantarā āsavānaṃ khayo hotī’’ti.

비구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곧바로 번뇌들이 다한다.”

PN:sn22.55/55.48 · 교차 검사

Tatiyaṃ.

세 번째.

PN:sn22.55/55.49 · 교차 검사

SN 22.56

취착의 굴림 경

Upādānaparipavattasuttaṃ

교차 검사

4. Upādānaparipavattasuttaṃ

4. 취착의 굴림 경

PN:sn22.56/0.3 · 교차 검사

56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PN:sn22.56/56.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집착의 무더기는 다섯이다. 어떤 다섯인가. 물질과 느낌과 인식, 그리고 형성과 의식이다. 이 다섯이 저마다 집착의 무더기를 이룬다.

‘‘Pañcime, bhikkhave, upādānakkhandhā.

“비구들이여, 이 다섯 가지 취착 무더기가 있다.

PN:sn22.56/56.2 · 교차 검사

Katame pañca?

무엇이 다섯인가?

PN:sn22.56/56.3 · 교차 검사

Rūpupādānakkhandho, vedanupādānakkhandho, saññupādānakkhandho, saṅkhārupādānakkhandho, viññāṇupādānakkhandho.

물질 취착 무더기, 느낌 취착 무더기, 인식 취착 무더기, 형성 취착 무더기, 의식 취착 무더기.

PN:sn22.56/56.4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나는 이 다섯 집착의 무더기를 네 국면으로 살펴야 했다. 있는 그대로 온전히 알아내기 전까지 나는 아무 선언도 하지 않았다. 신과 마라와 범천이 있는 이 세상에서도 그랬다. 사문과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아우른 무리 가운데서도 그랬다.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네 국면으로 있는 그대로 온전히 알아내자 달라졌다. 그제야 나는 그 무리 가운데서 선언했다.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깨달았다고 말이다.

Yāvakīvañcāhaṃ, bhikkhave, ime pañcupādānakkhandhe catuparivaṭṭaṃ yathābhūtaṃ nābbhaññāsiṃ, neva tāv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 samārake sabrahmake sassamaṇabrāhmaṇiyā pajāya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비구들이여, 내가 이 다섯 취착 무더기를 네 겹 굴림으로 있는 그대로 완전히 알지 못했던 동안에는, 비구들이여, 그동안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PN:sn22.56/56.5 · 교차 검사

Yato ca khvāhaṃ, bhikkhave, ime pañcupādānakkhandhe catuparivaṭṭaṃ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thāhaṃ, bhikkhave, sadevake loke…pe… sadevamanussāya anuttaraṃ sammāsambodhiṃ abhisambuddhoti paccaññāsiṃ’’.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 다섯 취착 무더기를 네 겹 굴림으로 있는 그대로 완전히 알았을 때,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과 바라문, 신과 인간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온전히 깨달았다고 선언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6:56.5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6/56.6 · 교차 검사

네 국면이란 무엇인가. 나는 물질을 온전히 알아냈다. 물질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알아냈고, 물질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알아냈다. 느낌과 인식과 형성도 그와 같다. 의식 또한 온전히 알아냈다. 의식이 일어남과 사라짐, 그리고 의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을 알아냈다.

‘‘Kathañca catuparivaṭṭaṃ?

“그러면 어떻게 네 겹 굴림인가?

PN:sn22.56/56.7 · 교차 검사

Rūpaṃ abbhaññāsiṃ, rūp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rūpanirodhaṃ abbhaññāsi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나는 물질을 완전히 알았고, 물질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았고, 물질의 소멸을 완전히 알았고,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았다.

PN:sn22.56/56.8 · 교차 검사

vedanaṃ… saññaṃ… saṅkhāre… viññāṇaṃ abbhaññāsi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viññāṇanirodhaṃ abbhaññāsi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느낌을 완전히 알았고, 느낌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았고, 느낌의 소멸을 완전히 알았고,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았다. 인식을 완전히 알았고, 인식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았고, 인식의 소멸을 완전히 알았고,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았다. 형성작용을 완전히 알았고, 형성작용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았고, 형성작용의 소멸을 완전히 알았고, 형성작용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았다. 의식을 완전히 알았고, 의식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았고, 의식의 소멸을 완전히 알았고,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았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6:56.8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6/56.9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물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큰 요소다. 그리고 그 네 가지 큰 요소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물질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rūpaṃ?

“비구들이여, 물질이란 무엇인가?

PN:sn22.56/56.10 · 교차 검사

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 rūpaṃ.

네 가지 큰 요소와, 네 가지 큰 요소를 취하여 이루어진 물질이다.

PN:sn22.56/56.11 · 교차 검사

Idaṃ vuccati, bhikkhave, rūp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물질이라 한다.

PN:sn22.56/56.12 · 교차 검사

자양분이 일어나면 물질이 일어난다. 자양분이 사라지면 물질도 사라진다.

Āhārasamudayā rūpasamudayo;

자양분이 일어나므로 물질이 일어나고,

PN:sn22.56/56.13 · 교차 검사

āhāranirodhā rūpanirodho.

자양분이 소멸하므로 물질이 소멸한다.

PN:sn22.56/56.14 · 교차 검사

물질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 있다. 여덟 갈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집중까지가 그것이다.[불확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rūp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6/56.15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6/56.16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물질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물질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이렇게 잘 알고, 물질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물질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읜다. 물질을 사라지게 하는 길을 밟아 나간다면 그들은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이다.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rūp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물질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나아가 닦는 이들, 그들은 잘 닦아 나아간 이들이다.

PN:sn22.56/56.17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닦아 나아간 이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 디딜 곳을 얻는다.

PN:sn22.56/56.18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물질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물질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물질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의어 사라지게 한다. 그리하여 집착 없이 벗어났다면 그들은 잘 벗어난 이들이다. 잘 벗어난 이들은 온전히 이룬 이들이다. 온전히 이룬 이들에게는 굴러가며 드러날 것이 남지 않는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aṃ abhiññāya…pe… eva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rūp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물질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함으로 취착 없이 해탈한 이들, 그들은 잘 해탈한 이들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6:56.17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6/56.19 · 교차 검사

Ye suvimuttā te kevalino.

잘 해탈한 이들, 그들은 온전한 이들이다.

PN:sn22.56/56.20 · 교차 검사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온전한 이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굴레가 없다.

PN:sn22.56/56.2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느낌이란 무엇인가. 느낌의 갈래는 여섯이다. 눈과 귀와 코의 닿음에서 생긴 느낌이 있다. 혀와 몸과 마음의 닿음에서 생긴 느낌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느낌이라 한다.

‘‘Katamā ca, bhikkhave, vedanā?

“비구들이여, 느낌이란 무엇인가?

PN:sn22.56/56.22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vedanā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가 느낌의 무리이다 —

PN:sn22.56/56.23 · 교차 검사

cakkhusamphassajā vedanā, sotasamphassajā vedanā, ghānasamphassajā vedanā, jivhāsamphassajā vedanā, kāyasamphassajā vedanā, manosamphassajā vedanā.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PN:sn22.56/56.24 · 교차 검사

Ayaṃ vuccati, bhikkhave, vedanā.

비구들이여, 이것을 느낌이라 한다.

PN:sn22.56/56.25 · 교차 검사

닿음이 일어나면 느낌이 일어난다. 닿음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진다.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나고,

PN:sn22.56/56.26 · 교차 검사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

PN:sn22.56/56.27 · 교차 검사

느낌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 있다. 여덟 갈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집중까지가 그것이다.[불확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edan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6/56.28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6/56.29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느낌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느낌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이렇게 잘 알고, 느낌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느낌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읜다. 느낌을 사라지게 하는 길을 밟아 나간다면 그들은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이다.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vedanāy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느낌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나아가 닦는 이들, 그들은 잘 닦아 나아간 이들이다.

PN:sn22.56/56.30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닦아 나아간 이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 디딜 곳을 얻는다.

PN:sn22.56/56.3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느낌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느낌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런 이들에게는 굴러가며 드러날 것이 남지 않는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aṃ abhiññāya…pe… evaṃ vedanā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pe…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느낌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함으로 취착 없이 해탈한 이들, 그들은 잘 해탈한 이들이다. 잘 해탈한 이들, 그들은 온전한 이들이다. 온전한 이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굴레가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6:56.19 ~ PN:sn22.56/56.30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6/56.32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인식이란 무엇인가. 인식의 갈래는 여섯이다. 형상과 소리와 냄새에 대한 인식이 있다. 맛과 감촉과 마음의 대상에 대한 인식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인식이라 한다.

‘‘Katamā ca, bhikkhave, saññā?

“비구들이여, 인식이란 무엇인가?

PN:sn22.56/56.33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saññā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가 인식의 무리이다 —

PN:sn22.56/56.34 · 교차 검사

rūpasaññā, saddasaññā, gandhasaññā, rasasaññā, phoṭṭhabbasaññā, dhammasaññā.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 맛에 대한 인식, 감촉에 대한 인식, 법에 대한 인식.

PN:sn22.56/56.35 · 교차 검사

Ayaṃ vuccati, bhikkhave, saññā.

비구들이여, 이것을 인식이라 한다.

PN:sn22.56/56.36 · 교차 검사

닿음이 일어나면 인식이 일어난다. 닿음이 사라지면 인식도 사라진다.

Phassasamudayā saññāsamudayo;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나고,

PN:sn22.56/56.37 · 교차 검사

phassanirodhā saññānirodho.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

PN:sn22.56/56.38 · 교차 검사

인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 있다. 여덟 갈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집중까지가 그것이다. 이 길을 끝까지 밟아 나간 이들에게는 굴러가며 드러날 것이 남지 않는다.[불확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ññ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6/56.39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pe…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인식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나아가 닦는 이들, 그들은 잘 닦아 나아간 이들이다. 잘 닦아 나아간 이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 디딜 곳을 얻는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인식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함으로 취착 없이 해탈한 이들, 그들은 잘 해탈한 이들이다. 잘 해탈한 이들, 그들은 온전한 이들이다. 온전한 이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굴레가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6/56.40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형성이란 무엇인가. 의도의 갈래는 여섯이다. 형상과 소리와 냄새를 향한 의도가 있다. 맛과 감촉과 마음의 대상을 향한 의도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들을 형성이라 한다.

‘‘Katame ca, bhikkhave, saṅkhārā?

“비구들이여, 형성작용이란 무엇인가?

PN:sn22.56/56.41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cetanā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가 의도의 무리이다 —

PN:sn22.56/56.42 · 교차 검사

rūpasañcetanā, saddasañcetanā, gandhasañcetanā, rasasañcetanā, phoṭṭhabbasañcetanā, dhammasañcetanā.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 맛에 대한 의도, 감촉에 대한 의도, 법에 대한 의도.

PN:sn22.56/56.43 · 교차 검사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ārā.

비구들이여, 이것들을 형성작용이라 한다.

PN:sn22.56/56.44 · 교차 검사

닿음이 일어나면 형성이 일어난다. 닿음이 사라지면 형성도 사라진다.

Phassa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접촉이 일어나므로 형성작용이 일어나고,

PN:sn22.56/56.45 · 교차 검사

phassanirodhā saṅkhāranirodho.

접촉이 소멸하므로 형성작용이 소멸한다.

PN:sn22.56/56.46 · 교차 검사

형성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 있다. 여덟 갈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집중까지가 그것이다.[불확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형성작용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6/56.47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6/56.48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형성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형성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이렇게 잘 알고, 형성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형성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읜다. 형성을 사라지게 하는 길을 밟아 나간다면 그들은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이다.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saṅkhāre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saṅkhārānaṃ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형성작용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나아가 닦는 이들, 그들은 잘 닦아 나아간 이들이다.

PN:sn22.56/56.49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닦아 나아간 이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 디딜 곳을 얻는다.

PN:sn22.56/56.50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형성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형성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이렇게 잘 알고, 형성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형성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의어 사라지게 한다. 그리하여 집착 없이 벗어났다면 그들은 잘 벗어난 이들이다. 잘 벗어난 이들은 온전히 이룬 이들이다. 온전히 이룬 이들에게는 굴러가며 드러날 것이 남지 않는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saṅkhāre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saṅkhārānaṃ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형성작용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함으로 취착 없이 해탈한 이들, 그들은 잘 해탈한 이들이다.

PN:sn22.56/56.51 · 교차 검사

Ye suvimuttā, te kevalino.

잘 해탈한 이들, 그들은 온전한 이들이다.

PN:sn22.56/56.52 · 교차 검사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온전한 이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굴레가 없다.

PN:sn22.56/56.5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의 갈래는 여섯이다. 눈의 의식과 귀의 의식과 코의 의식이 있다. 혀의 의식과 몸의 의식과 마음의 의식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의식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viññāṇaṃ?

“비구들이여, 의식이란 무엇인가?

PN:sn22.56/56.54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viññāṇa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가 의식의 무리이다 —

PN:sn22.56/56.55 · 교차 검사

cakkhuviññāṇaṃ, sotaviññāṇaṃ, ghānaviññāṇaṃ, jivhāviññāṇaṃ, kāya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ṃ.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

PN:sn22.56/56.56 · 교차 검사

Idaṃ vuccati, bhikkhave, viññāṇ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의식이라 한다.

PN:sn22.56/56.57 · 교차 검사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면 의식이 일어난다. 정신과 물질이 사라지면 의식도 사라진다.

Nāmarūpasamudayā viññāṇasamudayo;

정신·물질이 일어나므로 의식이 일어나고,

PN:sn22.56/56.58 · 교차 검사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정신·물질이 소멸하므로 의식이 소멸한다.

PN:sn22.56/56.59 · 교차 검사

의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이 있다. 여덟 갈래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집중까지가 그것이다.[불확실]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길이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6/56.60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6/56.6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의식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의식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이렇게 잘 알고, 의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의식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읜다. 의식을 사라지게 하는 길을 밟아 나간다면 그들은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이다. 잘 밟아 나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iññāṇ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viññāṇ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의식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나아가 닦는 이들, 그들은 잘 닦아 나아간 이들이다.

PN:sn22.56/56.62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닦아 나아간 이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 디딜 곳을 얻는다.

PN:sn22.56/56.6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의식을 이렇게 잘 안다고 하자. 의식이 일어남과 사라짐도 이렇게 잘 알고, 의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잘 안다. 그래서 의식에 싫증을 내고 탐욕을 여의어 사라지게 한다. 그리하여 집착 없이 벗어났다면 그들은 잘 벗어난 이들이다. 잘 벗어난 이들은 온전히 이룬 이들이다. 온전히 이룬 이들에게는 굴러가며 드러날 것이 남지 않는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iññāṇ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viññāṇ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일어남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완전히 알아, 의식을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함으로 취착 없이 해탈한 이들, 그들은 잘 해탈한 이들이다.

PN:sn22.56/56.64 · 교차 검사

Ye suvimuttā, te kevalino.

잘 해탈한 이들, 그들은 온전한 이들이다.

PN:sn22.56/56.65 · 교차 검사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ā’’ti.

온전한 이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굴레가 없다.”

PN:sn22.56/56.66 · 교차 검사

Catutthaṃ.

네 번째.

PN:sn22.56/56.67 · 교차 검사

SN 22.57

일곱 가지 경우 경

Sattaṭṭhānasutta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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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attaṭṭhānasuttaṃ

5. 일곱 가지 경우 경

PN:sn22.57/0.3 · 교차 검사

57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설하셨다.

PN:sn22.57/57.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일곱 자리에 밝고 세 가지로 살필 줄 아는 비구가 있다. 이 법과 율에서 그런 비구를 온전히 이룬 이라 한다. 닦을 것을 다 닦은 이, 으뜸가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일곱 자리에 밝은가?

‘‘Sattaṭṭhānakusalo, bhikkhave, bhikkhu tividhūpaparikkhī imasmiṃ dhammavinaye kevalī vusitavā uttamapurisoti vuccati.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하고 세 가지 방식으로 자세히 살피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완성된 자, 삶을 다 이룬 자, 최상의 사람이라 불린다.

PN:sn22.57/57.2 · 교차 검사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taṭṭhānakusalo ho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한가?

PN:sn22.57/57.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을 꿰뚫어 안다. 물질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안다. 물질의 달콤함이 무엇인지 알고, 물질의 위험이 무엇인지 안다. 물질에서 벗어남도 안다. 느낌과 인식과 형성도 그렇게 꿰뚫어 안다. 의식 또한 꿰뚫어 안다. 의식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안다. 의식의 달콤함과 위험을 알고, 의식에서 벗어남을 안다.

Idha, bhikkhave, bhikkhu rūpaṃ pajānāti, rūpasamudayaṃ pajānāti, rūpanirodhaṃ pajānāti,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pajānā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물질을 꿰뚫어 안다, 물질의 일어남을 꿰뚫어 안다, 물질의 소멸을 꿰뚫어 안다,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꿰뚫어 안다;

PN:sn22.57/57.4 · 교차 검사

rūpassa assādaṃ pajānāti, rūpassa ādīnavaṃ pajānāti, rūpassa nissaraṇaṃ pajānāti;

물질의 달콤함을 꿰뚫어 안다, 물질의 위험함을 꿰뚫어 안다, 물질에서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PN:sn22.57/57.5 · 교차 검사

vedanaṃ pajānāti … saññaṃ… saṅkhāre… viññāṇaṃ pajānāti, viññāṇasamudayaṃ pajānāti, viññāṇanirodhaṃ pajānāti,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pajānāti;

느낌을 꿰뚫어 안다, 느낌의 일어남을 꿰뚫어 안다, 느낌의 소멸을 꿰뚫어 안다,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꿰뚫어 안다, 느낌의 달콤함을 꿰뚫어 안다, 느낌의 위험함을 꿰뚫어 안다, 느낌에서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인식을 꿰뚫어 안다, 인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안다, 인식의 소멸을 꿰뚫어 안다,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꿰뚫어 안다, 인식의 달콤함을 꿰뚫어 안다, 인식의 위험함을 꿰뚫어 안다, 인식에서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의 일어남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의 소멸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의 달콤함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의 위험함을 꿰뚫어 안다, 형성작용들에서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의식을 꿰뚫어 안다, 의식의 일어남을 꿰뚫어 안다, 의식의 소멸을 꿰뚫어 안다,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꿰뚫어 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7:57.4 ~ PN:sn22.57/57.5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7/57.6 · 교차 검사

viññāṇassa assādaṃ pajānāti, viññāṇassa ādīnavaṃ pajānāti, viññāṇassa nissaraṇaṃ pajānāti.

의식의 달콤함을 꿰뚫어 안다, 의식의 위험함을 꿰뚫어 안다, 의식에서 벗어남을 꿰뚫어 안다.

PN:sn22.57/57.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물질이란 무엇인가? 네 가지 큰 요소가 물질이다. 그 네 요소에서 비롯된 것도 물질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물질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rūp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물질이란 무엇인가?

PN:sn22.57/57.8 · 교차 검사

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ñ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 rūpaṃ.

네 가지 근본 요소와, 네 가지 근본 요소를 취하여 이루어진 물질이다.

PN:sn22.57/57.9 · 교차 검사

Idaṃ vuccati, bhikkhave, rūp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물질이라 한다.

PN:sn22.57/57.10 · 교차 검사

자양분이 일어나므로 물질이 일어난다. 자양분이 사라지므로 물질이 사라진다. 물질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은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에 이르는 여덟 가지가 그것이다.[불확실]

Āhārasamudayā rūpasamudayo;

자양분이 일어나므로 물질이 일어난다;

PN:sn22.57/57.11 · 교차 검사

āhāranirodhā rūpanirodho.

자양분이 소멸하므로 물질이 소멸한다.

PN:sn22.57/57.12 · 교차 검사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rūp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도가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7/57.13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7/57.14 · 교차 검사

물질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이 물질의 달콤함이다. 물질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만다. 이것이 물질의 위험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과 탐착을 다스리고 버리는 것, 이것이 물질에서 벗어남이다.

‘‘Yaṃ rūpa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

“물질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는데 —

PN:sn22.57/57.15 · 교차 검사

ayaṃ rūpassa assādo.

이것이 물질의 달콤함이다.

PN:sn22.57/57.16 · 교차 검사

Yaṃ rūpaṃ a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

물질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데 —

PN:sn22.57/57.17 · 교차 검사

ayaṃ rūpassa ādīnavo.

이것이 물질의 위험함이다.

PN:sn22.57/57.18 · 교차 검사

Yo rūpasmiṃ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물질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몰아냄, 열망과 탐욕을 버림 —

PN:sn22.57/57.19 · 교차 검사

idaṃ rūpassa nissaraṇaṃ.

이것이 물질에서 벗어남이다.

PN:sn22.57/57.20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물질을 이렇게 온전히 안다고 하자. 물질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을 안다. 물질의 달콤함과 위험을 알고, 물질에서 벗어남까지 안다. 그렇게 알아 물질을 싫어하고 탐을 여의고 사라지게 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잘 나아가는 이들이다. 잘 나아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PN:sn22.57/57.21 · 교차 검사

evaṃ rūpassa assād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sa ādīnav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sa nissaraṇaṃ abhiññāya rūp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이와 같이 물질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탐욕이 사라지기 위해,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면, 그들은 잘 도닦는 자들이다.

PN:sn22.57/57.22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도닦는 자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PN:sn22.57/57.2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물질을 그렇게 온전히 안다고 하자. 물질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을 안다. 물질의 달콤함과 위험을 알고, 물질에서 벗어남까지 안다. 그렇게 알아 물질을 싫어하고 탐을 여읜다. 물질을 사라지게 하여 붙잡지 않고 풀려난다. 그들은 잘 풀려난 이들이다. 잘 풀려난 이들은 온전히 이룬 이들이다. 온전히 이룬 이들에게는 헤아려 내보일 굴레가 없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rūp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그런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물질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PN:sn22.57/57.24 · 교차 검사

evaṃ rūpassa assād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sa ādīnavaṃ abhiññāya, evaṃ rūpassa nissaraṇaṃ abhiññāya rūp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이와 같이 물질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물질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여 취착 없이 해탈했다면, 그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PN:sn22.57/57.25 · 교차 검사

Ye suvimuttā, te kevalino.

잘 해탈한 자들, 그들은 완성된 자들이다.

PN:sn22.57/57.26 · 교차 검사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완성된 자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윤회가 없다.

PN:sn22.57/57.2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느낌이란 무엇인가? 느낌에는 여섯 갈래가 있다. 눈의 닿음에서 생긴 느낌부터 마음의 닿음에서 생긴 느낌까지 여섯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느낌이라 한다.

‘‘Katamā ca, bhikkhave, vedanā?

“비구들이여, 그러면 느낌이란 무엇인가?

PN:sn22.57/57.28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vedanā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느낌의 무리가 있다 —

PN:sn22.57/57.29 · 교차 검사

cakkhusamphassajā vedanā…pe… manosamphassajā vedanā.

눈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코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혀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몸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 마음의 접촉에서 생긴 느낌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7:57.72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7/57.30 · 교차 검사

Ayaṃ vuccati, bhikkhave, vedanā.

비구들이여, 이것을 느낌이라 한다.

PN:sn22.57/57.31 · 교차 검사

닿음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 닿음이 사라지므로 느낌이 사라진다. 느낌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은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에 이르는 여덟 가지가 그것이다.[불확실]

Phassasamudayā vedanāsamudayo;

접촉이 일어나므로 느낌이 일어난다;

PN:sn22.57/57.32 · 교차 검사

phassanirodhā vedanānirodho.

접촉이 소멸하므로 느낌이 소멸한다.

PN:sn22.57/57.33 · 교차 검사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edan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도가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7/57.34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7/57.35 · 교차 검사

느낌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이 느낌의 달콤함이다. 느낌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만다. 이것이 느낌의 위험이다. 느낌에 대한 욕망과 탐착을 다스리고 버리는 것, 이것이 느낌에서 벗어남이다.

‘‘Yaṃ vedana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

“느낌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는데 —

PN:sn22.57/57.36 · 교차 검사

ayaṃ vedanāya assādo.

이것이 느낌의 달콤함이다.

PN:sn22.57/57.37 · 교차 검사

Yā vedanā aniccā dukkhā vipariṇāmadhammā –

느낌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데 —

PN:sn22.57/57.38 · 교차 검사

ayaṃ vedanāya ādīnavo.

이것이 느낌의 위험함이다.

PN:sn22.57/57.39 · 교차 검사

Yo vedanāya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느낌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몰아냄, 열망과 탐욕을 버림 —

PN:sn22.57/57.40 · 교차 검사

idaṃ vedanāya nissaraṇaṃ.

이것이 느낌에서 벗어남이다.

PN:sn22.57/57.4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느낌을 이렇게 온전히 안다고 하자. 느낌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을 안다. 느낌의 달콤함과 위험을 알고, 느낌에서 벗어남까지 안다. 그렇게 알아 느낌을 싫어하고 탐을 여의고 사라지게 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잘 나아가는 이들이다. 잘 나아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PN:sn22.57/57.42 · 교차 검사

evaṃ vedanāya assād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ya ādīnavaṃ abhiññāya, evaṃ vedanāya nissaraṇaṃ abhiññāya vedanāy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이와 같이 느낌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탐욕이 사라지기 위해,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면, 그들은 잘 도닦는 자들이다.

PN:sn22.57/57.43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도닦는 자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PN:sn22.57/57.44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느낌을 그렇게 온전히 알고 앞서와 같이 나아가 풀려난다. 그런 이들에게는 헤아려 내보일 굴레가 없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edanaṃ abhiññāya…pe…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그런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느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느낌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여 취착 없이 해탈했다면, 그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잘 해탈한 자들, 그들은 완성된 자들이다. 완성된 자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윤회가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7:57.24 ~ PN:sn22.57/57.27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7/57.45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인식이란 무엇인가? 인식에도 여섯 갈래가 있다.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이 있다. 맛과 감촉에 대한 인식, 마음의 대상에 대한 인식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인식이라 한다.[불확실]

‘‘Katamā ca, bhikkhave, saññā?

“비구들이여, 그러면 인식이란 무엇인가?

PN:sn22.57/57.46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saññā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인식의 무리가 있다 —

PN:sn22.57/57.47 · 교차 검사

rūpasaññā, saddasaññā, gandhasaññā, rasasaññā, phoṭṭhabbasaññā, dhammasaññā.

형색에 대한 인식, 소리에 대한 인식, 냄새에 대한 인식, 맛에 대한 인식, 감촉에 대한 인식, 법에 대한 인식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7/57.48 · 교차 검사

Ayaṃ vuccati, bhikkhave, saññā.

비구들이여, 이것을 인식이라 한다.

PN:sn22.57/57.49 · 교차 검사

닿음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 닿음이 사라지므로 인식이 사라진다. 인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은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에 이르는 여덟 가지가 그것이다. 나머지도 앞서와 같다. 그런 이들에게는 헤아려 내보일 굴레가 없다.[불확실]

Phassasamudayā saññāsamudayo;

접촉이 일어나므로 인식이 일어난다;

PN:sn22.57/57.50 · 교차 검사

phassanirodhā saññānirodho.

접촉이 소멸하므로 인식이 소멸한다.

PN:sn22.57/57.51 · 교차 검사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ññā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도가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7/57.52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pe…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인식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는데 — 이것이 인식의 달콤함이다. 인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데 — 이것이 인식의 위험함이다. 인식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몰아냄, 열망과 탐욕을 버림 — 이것이 인식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탐욕이 사라지기 위해,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면, 그들은 잘 도닦는 자들이다. 잘 도닦는 자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인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인식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여 취착 없이 해탈했다면, 그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잘 해탈한 자들, 그들은 완성된 자들이다. 완성된 자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윤회가 없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7:57.15 ~ PN:sn22.57/57.27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7/57.5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형성이란 무엇인가? 의도에는 여섯 갈래가 있다.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가 있다. 맛과 감촉에 대한 의도, 마음의 대상에 대한 의도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형성이라 한다.

‘‘Katame ca, bhikkhave, saṅkhārā?

“비구들이여, 그러면 형성작용들이란 무엇인가?

PN:sn22.57/57.54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cetanā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의도의 무리가 있다 —

PN:sn22.57/57.55 · 교차 검사

rūpasañcetanā, saddasañcetanā, gandhasañcetanā, rasasañcetanā, phoṭṭhabbasañcetanā, dhammasañcetanā.

형색에 대한 의도, 소리에 대한 의도, 냄새에 대한 의도, 맛에 대한 의도, 감촉에 대한 의도, 법에 대한 의도이다.

PN:sn22.57/57.56 · 교차 검사

Ime vuccanti bhikkhave, saṅkhārā.

비구들이여, 이것들을 형성작용들이라 한다.

PN:sn22.57/57.57 · 교차 검사

닿음이 일어나므로 형성이 일어난다. 닿음이 사라지므로 형성이 사라진다. 형성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은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에 이르는 여덟 가지가 그것이다.[불확실]

Phassasamudayā saṅkhārasamudayo;

접촉이 일어나므로 형성작용들이 일어난다;

PN:sn22.57/57.58 · 교차 검사

phassanirodhā saṅkhāranirodho.

접촉이 소멸하므로 형성작용들이 소멸한다.

PN:sn22.57/57.59 · 교차 검사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aṅkhār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도가 형성작용들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7/57.60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7/57.61 · 교차 검사

형성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이 형성의 달콤함이다. 형성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만다. 이것이 형성의 위험이다. 형성에 대한 욕망과 탐착을 다스리고 버리는 것, 이것이 형성에서 벗어남이다.

‘‘Yaṃ saṅkhāre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

“형성작용들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는데 —

PN:sn22.57/57.62 · 교차 검사

ayaṃ saṅkhārānaṃ assādo.

이것이 형성작용들의 달콤함이다.

PN:sn22.57/57.63 · 교차 검사

Ye saṅkhārā aniccā dukkhā vipariṇāmadhammā –

형성작용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데 —

PN:sn22.57/57.64 · 교차 검사

ayaṃ saṅkhārānaṃ ādīnavo.

이것이 형성작용들의 위험함이다.

PN:sn22.57/57.65 · 교차 검사

Yo saṅkhāresu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형성작용들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몰아냄, 열망과 탐욕을 버림 —

PN:sn22.57/57.66 · 교차 검사

idaṃ saṅkhārānaṃ nissaraṇaṃ.

이것이 형성작용들에서 벗어남이다.

PN:sn22.57/57.6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형성을 이렇게 온전히 안다고 하자. 형성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까지 안다. 그렇게 알아 형성을 싫어하고 탐을 여의고 사라지게 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잘 나아가는 이들이다. 잘 나아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나머지도 앞서와 같다. 그런 이들에게는 헤아려 내보일 굴레가 없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saṅkhāre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saṅkhār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pe… saṅkhārānaṃ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형성작용들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탐욕이 사라지기 위해,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면, 그들은 잘 도닦는 자들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7:57.22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7/57.68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pe…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잘 도닦는 자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그런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형성작용들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형성작용들을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여 취착 없이 해탈했다면, 그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잘 해탈한 자들, 그들은 완성된 자들이다. 완성된 자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윤회가 없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7:57.24 ~ PN:sn22.57/57.27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7/57.69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의식이란 무엇인가? 의식에도 여섯 갈래가 있다.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이 있다. 혀와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도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의식이라 한다.

‘‘Katamañca, bhikkhave, viññāṇ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의식이란 무엇인가?

PN:sn22.57/57.70 · 교차 검사

Chayime, bhikkhave, viññāṇakāyā –

비구들이여, 이 여섯 가지 의식의 무리가 있다 —

PN:sn22.57/57.71 · 교차 검사

cakkhuviññāṇaṃ, sotaviññāṇaṃ, ghānaviññāṇaṃ, jivhāviññāṇaṃ, kāyaviññāṇaṃ, manoviññāṇaṃ.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혀의 의식, 몸의 의식, 마음의 의식이다.

PN:sn22.57/57.72 · 교차 검사

Idaṃ vuccati, bhikkhave, viññāṇaṃ.

비구들이여, 이것을 의식이라 한다.

PN:sn22.57/57.73 · 교차 검사

이름과 물질이 일어나므로 의식이 일어난다. 이름과 물질이 사라지므로 의식이 사라진다. 의식이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은 여덟 갈래 성스러운 길이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삼매에 이르는 여덟 가지가 그것이다.[불확실]

Nāmarūpasamudayā viññāṇasamudayo;

정신·물질이 일어나므로 의식이 일어난다;

PN:sn22.57/57.74 · 교차 검사

nāmarūpanirodhā viññāṇanirodho.

정신·물질이 소멸하므로 의식이 소멸한다.

PN:sn22.57/57.75 · 교차 검사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viññā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바로 이 성스러운 여덟 갈래 도가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이니, 곧 —

PN:sn22.57/57.76 · 교차 검사

sammādiṭṭhi…pe… sammāsamādhi.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7/57.77 · 교차 검사

의식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난다. 이것이 의식의 달콤함이다. 의식은 덧없고 괴로우며 변하고 만다. 이것이 의식의 위험이다. 의식에 대한 욕망과 탐착을 다스리고 버리는 것, 이것이 의식에서 벗어남이다.

‘‘Yaṃ viññāṇaṃ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

“의식을 조건으로 즐거움과 기쁨이 일어나는데 —

PN:sn22.57/57.78 · 교차 검사

ayaṃ viññāṇassa assādo.

이것이 의식의 달콤함이다.

PN:sn22.57/57.79 · 교차 검사

Yaṃ viññāṇaṃ a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

의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데 —

PN:sn22.57/57.80 · 교차 검사

ayaṃ viññāṇassa ādīnavo.

이것이 의식의 위험함이다.

PN:sn22.57/57.81 · 교차 검사

Yo viññāṇasmiṃ chandarāgavinayo chandarāgappahānaṃ –

의식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몰아냄, 열망과 탐욕을 버림 —

PN:sn22.57/57.82 · 교차 검사

idaṃ viññāṇassa nissaraṇaṃ.

이것이 의식에서 벗어남이다.

PN:sn22.57/57.8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의식을 이렇게 온전히 안다고 하자. 의식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을 안다. 의식의 달콤함과 위험을 알고, 의식에서 벗어남까지 안다. 그렇게 알아 의식을 싫어하고 탐을 여의고 사라지게 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잘 나아가는 이들이다. 잘 나아가는 이들은 이 법과 율에서 딛고 설 자리를 얻는다.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iññāṇ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PN:sn22.57/57.84 · 교차 검사

evaṃ viññāṇassa assād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sa ādīnav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sa nissaraṇaṃ abhiññāya viññāṇass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ā, te suppaṭipannā.

이와 같이 의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 탐욕이 사라지기 위해,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면, 그들은 잘 도닦는 자들이다.

PN:sn22.57/57.85 · 교차 검사

Ye suppaṭipannā, te imasmiṃ dhammavinaye gādhanti.

잘 도닦는 자들, 그들은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는다.

PN:sn22.57/57.86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의식을 그렇게 온전히 안다고 하자. 의식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알고, 사라지는 데로 이끄는 길을 안다. 의식의 달콤함과 위험을 알고, 의식에서 벗어남까지 안다. 그렇게 알아 의식을 싫어하고 탐을 여읜다. 의식을 사라지게 하여 붙잡지 않고 풀려난다. 그들은 잘 풀려난 이들이다. 잘 풀려난 이들은 온전히 이룬 이들이다. 온전히 이룬 이들에게는 헤아려 내보일 굴레가 없다.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evaṃ viññāṇ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amuday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hiññāya;

“그런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와 같이 의식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일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소멸로 이끄는 도닦음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PN:sn22.57/57.87 · 교차 검사

evaṃ viññāṇassa assād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sa ādīnavaṃ abhiññāya, evaṃ viññāṇassa nissaraṇaṃ abhiññāya viññāṇ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ā, te suvimuttā.

이와 같이 의식의 달콤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의 위험함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이와 같이 의식에서 벗어남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소멸하여 취착 없이 해탈했다면, 그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PN:sn22.57/57.88 · 교차 검사

Ye suvimuttā, te kevalino.

잘 해탈한 자들, 그들은 완성된 자들이다.

PN:sn22.57/57.89 · 교차 검사

Ye kevalino vaṭṭaṃ tesaṃ natthi paññāpanāya.

완성된 자들, 그들에게는 드러내 보일 윤회가 없다.

PN:sn22.57/57.90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일곱 자리에 밝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세 가지로 살피는가?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taṭṭhānakusalo ho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하다.

PN:sn22.57/57.91 · 교차 검사

‘‘Kathañca, bhikkhave, bhikkhu tividhūpaparikkhī ho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자세히 살피는 자가 되는가?

PN:sn22.57/57.92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요소의 측면에서 살핀다. 감각 영역의 측면에서 살피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남의 측면에서도 살핀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세 가지로 살핀다. 일곱 자리에 밝고 세 가지로 살필 줄 아는 비구가 있다. 이 법과 율에서 그런 비구를 온전히 이룬 이라 한다. 닦을 것을 다 닦은 이, '으뜸가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Idha, bhikkhave, bhikkhu dhātuso upaparikkhati, āyatanaso upaparikkhati, paṭiccasamuppādaso upaparikkhati.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요소의 관점에서 자세히 살피고, 감각장소의 관점에서 자세히 살피고, 조건 따라 함께 일어남의 관점에서 자세히 살핀다.

PN:sn22.57/57.93 · 교차 검사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tividhūpaparikkhī hoti.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세 가지 방식으로 자세히 살피는 자가 된다.

PN:sn22.57/57.94 · 교차 검사

Sattaṭṭhānakusalo, bhikkhave, bhikkhu tividhūpaparikkhī, imasmiṃ dhammavinaye kevalī vusitavā ‘uttamapuriso’ti vuccatī’’ti.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하고 세 가지 방식으로 자세히 살피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완성된 자, 삶을 다 이룬 자, ‘최상의 사람’이라 불린다.”

PN:sn22.57/57.95 · 교차 검사

Pañcamaṃ.

다섯 번째.

PN:sn22.57/57.96 · 교차 검사

SN 22.58

바르게 깨달으신 분 경

Sammāsambuddhasuttaṃ

교차 검사

6. Sammāsambuddhasuttaṃ

6. 바르게 깨달으신 분 경

PN:sn22.58/0.3 · 교차 검사

58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의 인연이다.

PN:sn22.58/58.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은 물질에 싫증을 냈다. 물질을 향한 탐욕이 걷히고 물질이 사라졌다. 그래서 집착 없이 해탈했다. 그런 까닭에 정등각이라 부른다. 비구들이여, 지혜로 해탈한 비구도 다르지 않다. 물질에 싫증을 내고 물질을 향한 탐욕이 걷혔다. 물질이 사라져 집착 없이 해탈했다. 그래서 지혜로 해탈한 자라 부른다.

‘‘Tathāgato,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rūp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sammāsambuddhoti vuccati.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은 물질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취착하지 않음으로 해탈하여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라 불린다.

PN:sn22.58/58.2 · 교차 검사

Bhikkhupi, bhikkhave, paññāvimutto rūp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paññāvimu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지혜로 해탈한 비구 또한 물질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취착하지 않음으로 해탈하여 ‘지혜로 해탈한 이’라 불린다.

PN:sn22.58/58.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은 느낌에 싫증을 냈다. 느낌을 향한 탐욕이 걷히고 느낌이 사라졌다. 그래서 집착 없이 해탈했고, 그런 까닭에 정등각이라 부른다. 지혜로 해탈한 비구도 다르지 않다. 느낌에 싫증을 내고 느낌을 향한 탐욕이 걷혔다. 느낌이 사라져 집착 없이 해탈했으니, 지혜로 해탈한 자라 부른다.

‘‘Tathāgato,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vedanāy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sammāsambuddhoti vuccati.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은 느낌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취착하지 않음으로 해탈하여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라 불린다.

PN:sn22.58/58.4 · 교차 검사

Bhikkhupi, bhikkhave, paññāvimutto vedanāya nibbidā…pe… paññāvimu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지혜로 해탈한 비구 또한 느낌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취착하지 않음으로 해탈하여 ‘지혜로 해탈한 이’라 불린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8:58.3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8/58.5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인식에도 싫증을 냈다. 형성작용에도 싫증을 내고 의식에도 싫증을 냈다. 그것을 향한 탐욕이 걷히고 그것이 사라졌다. 그래서 집착 없이 해탈했고, 그런 까닭에 정등각이라 부른다. 지혜로 해탈한 비구도 다르지 않다. 의식에 싫증을 내고 의식을 향한 탐욕이 걷혔다. 의식이 사라져 집착 없이 해탈했으니, 지혜로 해탈한 자라 부른다.

‘‘Tathāgato,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saññāya… saṅkhārānaṃ… viññāṇ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sammāsambuddhoti vuccati.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은 인식에 대한, 형성작용들에 대한, 의식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취착하지 않음으로 해탈하여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라 불린다.

PN:sn22.58/58.6 · 교차 검사

Bhikkhupi, bhikkhave, paññāvimutto viññāṇassa nibbidā virāgā nirodhā anupādā vimutto paññāvimuttoti vuccati.

비구들이여, 지혜로 해탈한 비구 또한 의식에 대한 싫어하여 떠남으로, 탐욕이 사라짐으로, 소멸로, 취착하지 않음으로 해탈하여 ‘지혜로 해탈한 이’라 불린다.

PN:sn22.58/58.7 · 교차 검사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과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무엇이 다르냐? 어느 쪽이 더 뛰어나며, 어떤 점에서 갈리느냐?"[불확실]

‘‘Tatra kho, bhikkhave, ko viseso, ko adhippayāso, kiṃ nānākaraṇaṃ,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paññāvimuttena bhikkhunā’’ti?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여기서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과 지혜로 해탈한 비구 사이에 무엇이 특별함이고, 무엇이 차이이며, 무엇이 다른 점인가?”[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8/58.8 · 교차 검사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가르침은 세존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이끄시고, 세존께서 의지처가 되십니다. 부디 이 말씀의 뜻을 세존께서 직접 밝혀 주십시오. 저희가 듣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Bhagavaṃmūlakā no, bhante, dhammā bhagavaṃnettikā bhagavaṃpaṭisaraṇā.

“세존이시여, 저희에게 법들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이끄는 이로 삼으며, 세존을 의지처로 삼습니다.

PN:sn22.58/58.9 · 교차 검사

Sādhu vata, bhante, bhagavantaññeva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

세존이시여, 부디 이 말씀의 뜻이 바로 세존께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PN:sn22.58/58.10 · 교차 검사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세존께 듣고서 비구들은 잘 지니겠습니다.”

PN:sn22.58/58.11 · 교차 검사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잘 듣고 마음에 새겨라. 내가 말하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Tena hi, bhikkhave, suṇātha, sādhukaṃ manasi karotha;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잘 들어라, 마음을 잘 기울여라.

PN:sn22.58/58.12 · 교차 검사

bhāsissāmī’’ti.

이제 말하리라.”

PN:sn22.58/58.13 · 교차 검사

‘‘Evaṃ, bhante’’ti kho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예,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PN:sn22.58/58.14 · 교차 검사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sn22.58/58.15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정등각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길을 생겨나게 한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길을 나타나게 하고, 아직 일러지지 않은 길을 일러 준다. 길을 알고 길을 꿰뚫으며 길에 밝다. 비구들이여, 지금 제자들은 그 길을 따라 살아간다. 그리고 뒤이어 그 길을 갖춘다. 여래·아라한·정등각과 지혜로 해탈한 비구는 여기서 갈린다. 이것이 더 뛰어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불확실]

‘‘Tathāgato, bhikkhave, arahaṃ sammāsambuddho anuppannassa maggassa uppādetā, asañjātassa maggassa sañjanetā, anakkhātassa maggassa akkhātā maggaññū, maggavidū, maggakovido;

“비구들이여,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은 일어나지 않은 길을 일으키는 이요, 생겨나지 않은 길을 생겨나게 하는 이요, 설해지지 않은 길을 설하는 이니, 길을 아는 이요, 길에 밝은 이요, 길에 능숙한 이다.

PN:sn22.58/58.16 · 교차 검사

maggānugā ca, bhikkhave, etarahi sāvakā viharanti pacchāsamannāgatā.

그리고 비구들이여, 지금 제자들은 길을 따라가며 머무니, 뒤이어 그것을 갖추게 된 이들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8/58.17 · 교차 검사

Ayaṃ kho, bhikkhave, viseso, ayaṃ adhippayāso, idaṃ nānākaraṇaṃ tathāgatassa arahato sammāsambuddhassa paññāvimuttena bhikkhunā’’ti.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과 지혜로 해탈한 비구의 특별함이고, 이것이 차이이며, 이것이 다른 점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58/58.18 · 교차 검사

Chaṭṭhaṃ.

여섯 번째.

PN:sn22.58/58.19 · 교차 검사

SN 22.59

무아의 특징 경

Anattalakkhaṇasuttaṃ

교차 검사

7. Anattalakkhaṇasuttaṃ

7. 무아의 특징 경

PN:sn22.59/0.3 · 교차 검사

59

한때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 동산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 다섯 비구를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예, 세존이시여." 비구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Ekaṃ samayaṃ bhagavā bārāṇasiyaṃ viharati isipatane migadāye.

한때 세존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녹야원에 머무셨다.

PN:sn22.59/59.1 · 교차 검사

Tatra kho bhagavā pañcavaggiye bhikkhū āmantesi –

그때 세존께서 다섯 비구들을 부르셨다 —

PN:sn22.59/59.2 · 교차 검사

‘‘bhikkhavo’’ti.

“비구들이여.”

PN:sn22.59/59.3 · 교차 검사

‘‘Bhadante’’ti te bhikkhū bhagavato paccassosuṃ.

“세존이시여” 하고 그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PN:sn22.59/59.4 · 교차 검사

Bhagavā etadavoca –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PN:sn22.59/59.5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물질이 자아라면 물질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 또 물질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그래서 물질은 병든다. 물질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없다.

‘‘Rūpaṃ, bhikkhave, anattā.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PN:sn22.59/59.6 · 교차 검사

Rūpañ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rūpe –

비구들이여, 만일 이 물질이 자아라면, 이 물질은 병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고, 물질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N:sn22.59/59.7 · 교차 검사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8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bhikkhave, rūpaṃ anattā, tasmā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rūpe –

비구들이여, 그러나 물질은 자아가 아니기에, 그러므로 물질은 병으로 이끌고, 물질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없다 —

PN:sn22.59/59.9 · 교차 검사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10 · 교차 검사

느낌도 자아가 아니다. 느낌이 자아라면 느낌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 또 느낌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그래서 느낌은 병든다. 느낌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없다.

‘‘Vedanā anattā.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PN:sn22.59/59.11 · 교차 검사

Vedanā 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vedanā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vedanāya –

비구들이여, 만일 이 느낌이 자아라면, 이 느낌은 병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고, 느낌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N:sn22.59/59.12 · 교차 검사

‘evaṃ me vedanā hotu, evaṃ me vedanā mā ahosī’ti.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13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bhikkhave, vedanā anattā, tasmā vedanā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vedanāya –

비구들이여, 그러나 느낌은 자아가 아니기에, 그러므로 느낌은 병으로 이끌고, 느낌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없다 —

PN:sn22.59/59.14 · 교차 검사

‘evaṃ me vedanā hotu, evaṃ me vedanā mā ahosī’’’ti.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15 · 교차 검사

인식도 자아가 아니다. 인식이 자아라면 인식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 또 인식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식은 자아가 아니어서 인식은 병든다. 인식을 두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형성작용도 자아가 아니다. 형성작용이 자아라면 형성작용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 또 형성작용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은 자아가 아니어서 형성작용은 병든다. 형성작용을 두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Saññā anattā…pe… saṅkhārā anattā.

“인식은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만일 이 인식이 자아라면, 이 인식은 병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고, 인식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나의 인식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인식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나 인식은 자아가 아니기에, 그러므로 인식은 병으로 이끌고, 인식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없다 — ‘나의 인식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인식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형성작용들은 자아가 아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9:59.12 ~ PN:sn22.59/59.15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9/59.16 · 교차 검사

Saṅkhārā 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ṃsu, nayidaṃ saṅkhārā ābādhāya saṃvatteyyuṃ, labbhetha ca saṅkhāresu –

비구들이여, 만일 이 형성작용들이 자아라면, 이 형성작용들은 병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N:sn22.59/59.17 · 교차 검사

‘evaṃ me saṅkhārā hontu, evaṃ me saṅkhārā mā ahesu’nti.

‘나의 형성작용들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형성작용들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18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bhikkhave, saṅkhārā anattā, tasmā saṅkhārā ābādhāya saṃvattanti, na ca labbhati saṅkhāresu –

비구들이여, 그러나 형성작용들은 자아가 아니기에, 그러므로 형성작용들은 병으로 이끌고, 형성작용들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없다 —

PN:sn22.59/59.19 · 교차 검사

‘evaṃ me saṅkhārā hontu, evaṃ me saṅkhārā mā ahesu’’’nti.

‘나의 형성작용들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형성작용들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20 · 교차 검사

의식도 자아가 아니다. 의식이 자아라면 의식은 병들지 않을 것이다. 또 의식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자아가 아니다. 그래서 의식은 병든다. 의식을 두고 '이렇게 되어라, 이렇게 되지 마라' 할 수도 없다.

‘‘Viññāṇaṃ anattā.

“의식은 자아가 아니다.

PN:sn22.59/59.21 · 교차 검사

Viññāṇañca hidaṃ, bhikkhave, attā abhavissa, nayidaṃ viññāṇ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viññāṇe –

비구들이여, 만일 이 의식이 자아라면, 이 의식은 병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고, 의식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N:sn22.59/59.22 · 교차 검사

‘evaṃ me viññāṇaṃ hotu, evaṃ me viññāṇaṃ mā ahosī’ti.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23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bhikkhave, viññāṇaṃ anattā, tasmā viññāṇaṃ ābādhāya saṃvattati, na ca labbhati viññāṇe –

비구들이여, 그러나 의식은 자아가 아니기에, 그러므로 의식은 병으로 이끌고, 의식에 대해 이렇게 얻을 수 없다 —

PN:sn22.59/59.24 · 교차 검사

‘evaṃ me viññāṇaṃ hotu, evaṃ me viññāṇaṃ mā ahosī’’’ti.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기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않기를’이라고.”

PN:sn22.59/59.25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은 한결같으냐, 한결같지 않으냐?" "한결같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한결같지 않은 것은 괴로움이냐, 즐거움이냐?"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한결같지 않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있다.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자아다'라고 여겨도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Taṃ kiṃ maññatha, bhikkhave,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PN:sn22.59/59.26 · 교차 검사

‘‘Aniccaṃ, bhante’’.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9/59.27 · 교차 검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PN:sn22.59/59.28 · 교차 검사

‘‘Dukkhaṃ, bhante’’.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9/59.29 · 교차 검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렇게 여기는 것이 옳은가 —

PN:sn22.59/59.30 · 교차 검사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PN:sn22.59/59.31 · 교차 검사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9/59.32 · 교차 검사

"느낌은 어떠냐? 인식은, 형성작용은, 의식은 한결같으냐, 한결같지 않으냐?" "한결같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한결같지 않은 것은 괴로움이냐, 즐거움이냐?"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한결같지 않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이 있다.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자아다'라고 여겨도 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ti?

“느낌은, 인식은, 형성작용들은, 의식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PN:sn22.59/59.33 · 교차 검사

‘‘Aniccaṃ, bhante’’.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9/59.34 · 교차 검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ā taṃ sukhaṃ vā’’ti?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PN:sn22.59/59.35 · 교차 검사

‘‘Dukkhaṃ, bhante’’.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9/59.36 · 교차 검사

‘‘Yaṃ panāniccaṃ dukkhaṃ vipariṇāmadhammaṃ,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

“그런데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이렇게 여기는 것이 옳은가 —

PN:sn22.59/59.37 · 교차 검사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나의 자아다’라고?”

PN:sn22.59/59.38 · 교차 검사

‘‘No hetaṃ, bhante’’.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PN:sn22.59/59.39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어떤 물질이든 이렇게 보아야 한다. 지나간 것이든 앞으로 올 것이든 지금 있는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못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물질을 두고 이렇게 보아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내 자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그렇게 보아야 한다.

‘‘Tasmātiha, bhikkhave,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rūpaṃ –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어떤 물질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뛰어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물질을 —

PN:sn22.59/59.40 · 교차 검사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PN:sn22.59/59.41 · 교차 검사

어떤 느낌이든 이렇게 보아야 한다. 지나간 것이든 앞으로 올 것이든 지금 있는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못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느낌을 두고 이렇게 보아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내 자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그렇게 보아야 한다.

Yā kāci vedan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ā vā bahiddhā vā…pe… yā dūre santike vā, sabbā vedanā –

어떤 느낌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뛰어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느낌을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9:59.40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9/59.42 · 교차 검사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PN:sn22.59/59.43 · 교차 검사

어떤 인식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형성작용이든 이렇게 보아야 한다. 지나간 것이든 앞으로 올 것이든 지금 있는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못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한가지다. 그 모든 형성작용을 두고 이렇게 보아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내 자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그렇게 보아야 한다.

‘‘Yā kāci saññā…pe… ye keci saṅkhārā 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pe… ye dūre santike vā, sabbe saṅkhārā –

“어떤 인식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뛰어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인식을 —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어떤 형성작용들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뛰어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형성작용들을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59:59.40 ~ PN:sn22.59/59.41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59/59.44 · 교차 검사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PN:sn22.59/59.45 · 교차 검사

어떤 의식이든 이렇게 보아야 한다. 지나간 것이든 앞으로 올 것이든 지금 있는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미세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못한 것이든 뛰어난 것이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마찬가지다. 그 모든 의식을 두고 이렇게 보아라.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내 자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그렇게 보아야 한다.

‘‘Yaṃ kiñci viññāṇ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 dūre santike vā, sabbaṃ viññāṇaṃ –

“어떤 의식이든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뛰어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그 모든 의식을 —

PN:sn22.59/59.46 · 교차 검사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ā’ti evametaṃ yathābhūtaṃ sammappaññāya daṭṭhabbaṃ.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PN:sn22.59/59.4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면 가르침을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싫증을 낸다. 느낌에도, 인식에도, 형성작용에도, 의식에도 싫증을 낸다. 싫증을 내면 탐욕이 걷히고, 탐욕이 걷히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앎이 생긴다. 그때 이렇게 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은 다 살았다. 할 일은 마쳤다. 다시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nibbindati, saññāyapi nibbindati, saṅkhāresupi nibbindat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아,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인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PN:sn22.59/59.48 · 교차 검사

Nibbindaṃ virajjati;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진다;

PN:sn22.59/59.49 · 교차 검사

virāgā vimuccati.

그 사라짐으로 해탈한다.

PN:sn22.59/59.50 · 교차 검사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난다.

PN:sn22.59/59.51 · 교차 검사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다 살았으며, 할 일은 마쳤고,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오는 일은 없다’라고 안다.”

PN:sn22.59/59.52 · 교차 검사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섯 비구는 기뻐하며 세존의 말씀을 반겼다. 그리고 이 설법이 이어지는 동안 다섯 비구의 마음은 집착을 놓고 번뇌에서 벗어났다.

Idamavoca bhagavā.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PN:sn22.59/59.53 · 교차 검사

Attamanā pañcavaggiyā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ṃ abhinanduṃ.

다섯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하여,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었다.

PN:sn22.59/59.54 · 교차 검사

Imasmiñca pana veyyākaraṇasmiṃ bhaññamāne pañcavaggiyānaṃ bhikkhūnaṃ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ṃsūti.

그리고 이 설명이 설해지는 동안, 다섯 비구들의 마음은 취착하지 않고 번뇌들에서 해탈했다.

PN:sn22.59/59.55 · 교차 검사

Sattamaṃ.

일곱 번째.

PN:sn22.59/59.56 · 교차 검사

SN 22.60

마할리 경

Mahālisuttaṃ

교차 검사

8. Mahālisuttaṃ

8. 마할리 경

PN:sn22.60/0.3 · 교차 검사

6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의 큰 숲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셨다. 그때 릿차위 사람 마할리가 세존을 찾아왔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Evaṃ me sutaṃ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

PN:sn22.60/60.1 · 교차 검사

ekaṃ samayaṃ bhagavā vesāliyaṃ viharati mahāvane kūṭāgārasālāyaṃ.

한때 세존께서 웨살리의 큰 숲,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셨다.

PN:sn22.60/60.2 · 교차 검사

Atha kho mahāli licchav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pe… ekamantaṃ nisinno kho mahāli licchavi bhagavantaṃ etadavoca –

그때 릿차위 사람 마할리가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한쪽에 앉은 릿차위 사람 마할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63:63.4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60/60.3 · 교차 검사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생이 더러워지는 데에는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중생은 원인도 조건도 없이 더러워진다. 깨끗해지는 데에도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중생은 원인도 조건도 없이 깨끗해진다.' 세존께서는 이에 대해 무어라 말씀하시겠습니까?"[불확실]

‘‘Pūraṇo, bhante, kassapo evamāha –

“세존이시여, 뿌라나 깟사빠는 이렇게 말합니다 –

PN:sn22.60/60.4 · 교차 검사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중생들의 오염에는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PN:sn22.60/60.5 · 교차 검사

ahetū 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i.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PN:sn22.60/60.6 · 교차 검사

Natthi hetu natthi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중생들의 청정에는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PN:sn22.60/60.7 · 교차 검사

ahetū 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PN:sn22.60/60.8 · 교차 검사

Idha, bhagavā kimāhā’’ti?

이에 대해 세존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십니까?”[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60/60.9 · 교차 검사

"마할리여, 중생이 더러워지는 데에는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다. 중생은 원인이 있어서, 조건이 있어서 더러워진다. 깨끗해지는 데에도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다. 중생은 원인이 있어서, 조건이 있어서 깨끗해진다."

‘‘Atthi, mahāl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마할리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다;

PN:sn22.60/60.10 · 교차 검사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i.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오염된다.

PN:sn22.60/60.11 · 교차 검사

Atthi, mahāli, hetu, atthi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마할리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다;

PN:sn22.60/60.12 · 교차 검사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PN:sn22.60/60.13 · 교차 검사

"그러면 세존이시여, 중생이 더러워지는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어떤 원인과 조건으로 중생이 더러워집니까?"

‘‘Katamo pana, bhante, hetu katamo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그러면 세존이시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입니까;

PN:sn22.60/60.14 · 교차 검사

kath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ī’’ti?

어떻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이 오염됩니까?”

PN:sn22.60/60.15 · 교차 검사

"마할리여, 물질이 오로지 괴로움뿐이라고 해 보자.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겨 있을 뿐, 즐거움이라고는 스며든 데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중생은 물질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에는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어, 괴로움만으로 잠겨 있지는 않다. 그래서 중생은 물질에 물든다. 물들기에 얽어매이고, 얽어매이기에 더러워진다. 마할리여, 이것이 중생이 더러워지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중생은 이런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더러워진다.

‘‘Rūpañ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aṃ abhavissa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nayidaṃ sattā rūpasmiṃ sārajjeyyuṃ.

“마할리여, 만일 이 물질이 오로지 괴로움뿐이어서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물질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PN:sn22.60/60.16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mahāli, rūpaṃ sukhaṃ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tasmā sattā rūpasmiṃ sārajjanti;

그러나 마할리여, 물질은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물질에 물든다;

PN:sn22.60/60.17 · 교차 검사

sārāgā saṃyujjanti;

물들기에 얽매인다;

PN:sn22.60/60.18 · 교차 검사

saṃyogā saṃkilissanti.

얽매이기에 오염된다.

PN:sn22.60/60.19 · 교차 검사

Ayaṃ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마할리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PN:sn22.60/60.20 · 교차 검사

ev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i.

이렇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오염된다.

PN:sn22.60/60.21 · 교차 검사

마할리여, 느낌이 오로지 괴로움뿐이라고 해 보자.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겨 있을 뿐, 즐거움이라고는 스며든 데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중생은 느낌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느낌에는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어, 괴로움만으로 잠겨 있지는 않다. 그래서 중생은 느낌에 물든다. 물들기에 얽어매이고, 얽어매이기에 더러워진다. 마할리여, 이것도 중생이 더러워지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중생은 이런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도 더러워진다.

‘‘Vedanā 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ā abhavissa dukkhānupatitā dukkhāvakkantā anavakkantā sukhena, nayidaṃ sattā vedanāya sārajjeyyuṃ.

“마할리여, 만일 이 느낌이 오로지 괴로움뿐이어서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느낌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PN:sn22.60/60.22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mahāli, vedanā sukhā sukhānupatitā sukhāvakkantā anavakkantā dukkhena, tasmā sattā vedanāya sārajjanti;

그러나 마할리여, 느낌은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느낌에 물든다;

PN:sn22.60/60.23 · 교차 검사

sārāgā saṃyujjanti;

물들기에 얽매인다;

PN:sn22.60/60.24 · 교차 검사

saṃyogā saṃkilissanti.

얽매이기에 오염된다.

PN:sn22.60/60.25 · 교차 검사

Ayampi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마할리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이것도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PN:sn22.60/60.26 · 교차 검사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i.

이렇게도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오염된다.

PN:sn22.60/60.27 · 교차 검사

인식도 마찬가지다. 마할리여, 형성작용이 오로지 괴로움뿐이라고 해 보자.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겨 있을 뿐, 즐거움이라고는 스며든 데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중생은 형성작용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형성작용에는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어, 괴로움만으로 잠겨 있지는 않다. 그래서 중생은 형성작용에 물든다. 물들기에 얽어매이고, 얽어매이기에 더러워진다. 마할리여, 이것도 중생이 더러워지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중생은 이런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도 더러워진다.

‘‘Saññā ca hidaṃ, mahāli…pe… saṅkhārā 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ā abhavissaṃsu dukkhānupatitā dukkhāvakkantā anavakkantā sukhena, nayidaṃ sattā saṅkhāresu sārajjeyyuṃ.

“마할리여, 만일 이 인식이 오로지 괴로움뿐이어서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인식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할리여, 인식은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인식에 물든다; 물들기에 얽매인다; 얽매이기에 오염된다. 마할리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이것도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이렇게도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오염된다. 마할리여, 만일 이 형성작용들이 오로지 괴로움뿐이어서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형성작용들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60:60.22 ~ PN:sn22.60/60.27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60/60.28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mahāli, saṅkhārā sukhā sukhānupatitā sukhāvakkantā anavakkantā dukkhena, tasmā sattā saṅkhāresu sārajjanti;

그러나 마할리여, 형성작용들은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형성작용들에 물든다;

PN:sn22.60/60.29 · 교차 검사

sārāgā saṃyujjanti;

물들기에 얽매인다;

PN:sn22.60/60.30 · 교차 검사

saṃyogā saṃkilissanti.

얽매이기에 오염된다.

PN:sn22.60/60.31 · 교차 검사

Ayampi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마할리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이것도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PN:sn22.60/60.32 · 교차 검사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i.

이렇게도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오염된다.

PN:sn22.60/60.33 · 교차 검사

마할리여, 의식이 오로지 괴로움뿐이라고 해 보자.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겨 있을 뿐, 즐거움이라고는 스며든 데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중생은 의식에 물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에는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어, 괴로움만으로 잠겨 있지는 않다. 그래서 중생은 의식에 물든다. 물들기에 얽어매이고, 얽어매이기에 더러워진다. 마할리여, 이것도 중생이 더러워지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중생은 이런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도 더러워진다."

‘‘Viññāṇañca hidaṃ, mahāli, ekantadukkhaṃ abhavissa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nayidaṃ sattā viññāṇasmiṃ sārajjeyyuṃ.

“마할리여, 만일 이 의식이 오로지 괴로움뿐이어서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의식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PN:sn22.60/60.34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mahāli, viññāṇaṃ sukhaṃ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tasmā sattā viññāṇasmiṃ sārajjanti;

그러나 마할리여, 의식은 즐거움이고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의식에 물든다;

PN:sn22.60/60.35 · 교차 검사

sārāgā saṃyujjanti;

물들기에 얽매인다;

PN:sn22.60/60.36 · 교차 검사

saṃyogā saṃkilissanti.

얽매이기에 오염된다.

PN:sn22.60/60.37 · 교차 검사

Ayampi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saṃkilesāya.

마할리여, 중생들의 오염에는 이것도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PN:sn22.60/60.38 · 교차 검사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saṃkilissantī’’ti.

이렇게도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오염된다.”

PN:sn22.60/60.39 · 교차 검사

"그러면 세존이시여, 중생이 깨끗해지는 원인은 무엇이고 조건은 무엇입니까? 어떤 원인과 조건으로 중생이 깨끗해집니까?"

‘‘Katamo pana, bhante, hetu katamo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그러면 세존이시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조건입니까;

PN:sn22.60/60.40 · 교차 검사

kath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어떻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이 청정해집니까?”

PN:sn22.60/60.41 · 교차 검사

"마할리여, 물질이 오로지 즐거움뿐이라고 해 보자.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겨 있을 뿐, 괴로움이라고는 스며든 데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중생은 물질에 싫증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질에는 괴로움이 있다.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이 스며들어 있어, 즐거움만으로 잠겨 있지는 않다. 그래서 중생은 물질에 싫증을 낸다. 싫증을 내기에 탐욕에서 벗어나고, 벗어나기에 깨끗해진다. 마할리여, 이것이 중생이 깨끗해지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중생은 이런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깨끗해진다.

‘‘Rūpañca hidaṃ, mahāli, ekantasukhaṃ abhavissa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nayidaṃ sattā rūpasmiṃ nibbindeyyuṃ.

“마할리여, 만일 이 물질이 오로지 즐거움뿐이어서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물질을 싫어하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PN:sn22.60/60.42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mahāli, rūpaṃ dukkhaṃ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tasmā sattā rūpasmiṃ nibbindanti;

그러나 마할리여, 물질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물질을 싫어하여 떠난다;

PN:sn22.60/60.43 · 교차 검사

nibbindaṃ virajjanti;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PN:sn22.60/60.44 · 교차 검사

virāgā visujjhanti.

그 사라짐으로 청정해진다.

PN:sn22.60/60.45 · 교차 검사

Ayaṃ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마할리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PN:sn22.60/60.46 · 교차 검사

Evaṃ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i’’.

이렇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PN:sn22.60/60.47 · 교차 검사

느낌이 오로지 즐거움뿐이라면 어떻겠는가. 인식도, 형성작용도 마찬가지다. 마할리여, 의식이 오로지 즐거움뿐이라고 해 보자.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겨 있을 뿐, 괴로움이라고는 스며든 데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중생은 의식에 싫증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에는 괴로움이 있다.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이 스며들어 있어, 즐거움만으로 잠겨 있지는 않다. 그래서 중생은 의식에 싫증을 낸다. 싫증을 내기에 탐욕에서 벗어나고, 벗어나기에 깨끗해진다. 마할리여, 이것이 중생이 깨끗해지는 원인이고 조건이다. 중생은 이런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도 깨끗해진다."

‘‘Vedanā ca hidaṃ, mahāli, ekantasukhā abhavissa…pe… saññā ca hidaṃ, mahāli…pe… saṅkhārā ca hidaṃ, mahāli, ekantasukhā abhavissaṃsu…pe… viññāṇañca hidaṃ, mahāli, ekantasukhaṃ abhavissa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nayidaṃ sattā viññāṇasmiṃ nibbindeyyuṃ.

“마할리여, 만일 이 느낌이 오로지 즐거움뿐이어서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느낌을 싫어하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할리여, 느낌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느낌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그 사라짐으로 청정해진다. 마할리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이렇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마할리여, 만일 이 인식이 오로지 즐거움뿐이어서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인식을 싫어하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할리여, 인식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인식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그 사라짐으로 청정해진다. 마할리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이렇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마할리여, 만일 이 형성작용들이 오로지 즐거움뿐이어서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형성작용들을 싫어하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할리여, 형성작용들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형성작용들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그 사라짐으로 청정해진다. 마할리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이렇게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마할리여, 만일 이 의식이 오로지 즐거움뿐이어서 즐거움이 따라붙고 즐거움에 잠기고 괴로움에 잠기지 않았더라면, 중생들은 의식을 싫어하여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SN 22.60:60.42 ~ PN:sn22.60/60.47에서 되살렸습니다.

PN:sn22.60/60.48 · 교차 검사

Yasmā ca kho, mahāli, viññāṇaṃ dukkhaṃ dukkhānupatitaṃ duk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sukhena, tasmā sattā viññāṇasmiṃ nibbindanti;

그러나 마할리여, 의식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이 따라붙고 괴로움에 잠기고 즐거움에 잠기지 않았기에, 중생들은 의식을 싫어하여 떠난다;

PN:sn22.60/60.49 · 교차 검사

nibbindaṃ virajjanti;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PN:sn22.60/60.50 · 교차 검사

virāgā visujjhanti.

그 사라짐으로 청정해진다.

PN:sn22.60/60.51 · 교차 검사

Ayaṃ kho, mahāli, hetu, ayaṃ paccayo, sattānaṃ visuddhiyā.

마할리여, 중생들의 청정에는 이것이 원인이고 이것이 조건이다.

PN:sn22.60/60.52 · 교차 검사

Evampi sahetū sappaccayā sattā visujjhantī’’ti.

이렇게도 원인과 함께 조건과 함께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PN:sn22.60/60.53 · 교차 검사

Aṭṭhamaṃ.

여덟 번째.

PN:sn22.60/60.54 · 교차 검사

SN 22.61

불타오름 경

Ādittasuttaṃ

교차 검사

9. Ādittasuttaṃ

9. 불타오름 경

PN:sn22.61/0.3 · 교차 검사

61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PN:sn22.61/61.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물질은 불타고 있다. 느낌도 인식도 형성작용도 의식도 불타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싫증을 낸다. 느낌에도, 인식에도, 형성작용에도, 의식에도 싫증을 낸다. 싫증을 내기에 탐욕에서 벗어나고, 벗어나기에 풀려난다. 풀려나면 풀려났다는 앎이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맑은 삶은 다 살았다.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이제 이런 자리로 돌아올 일은 없다.' 이렇게 안다."

‘‘Rūpaṃ, bhikkhave, ādittaṃ, vedanā ādittā, saññā ādittā, saṅkhārā ādittā, viññāṇaṃ ādittaṃ.

“비구들이여, 물질은 불타고 있다. 느낌도 불타고 있다. 인식도 불타고 있다. 형성작용들도 불타고 있다. 의식도 불타고 있다.

PN:sn22.61/61.2 · 교차 검사

Evaṃ passaṃ,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rūpasmimpi nibbindati, vedanāyapi… saññāyapi… saṅkhāresupi… viññāṇasmimpi nibbindati.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아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느낌에 대해서도, 인식에 대해서도, 형성작용들에 대해서도, 의식에 대해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PN:sn22.61/61.3 · 교차 검사

Nibbindaṃ virajjati;

싫어하여 떠나 탐욕이 사라지고;

PN:sn22.61/61.4 · 교차 검사

virāgā vimuccati.

그 사라짐으로 해탈한다.

PN:sn22.61/61.5 · 교차 검사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해탈할 때 ‘해탈했다’는 앎이 일어난다.

PN:sn22.61/61.6 · 교차 검사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한 삶을 다 살았다. 할 일을 다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로 오지 않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PN:sn22.61/61.7 · 교차 검사

Navamaṃ.

아홉 번째.

PN:sn22.61/61.8 · 교차 검사

SN 22.62

언어의 길 경

Niruttipathasuttaṃ

교차 검사

10. Niruttipathasuttaṃ

10. 언어의 길 경

PN:sn22.62/0.3 · 교차 검사

62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Sāvatthinidānaṃ.

사왓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PN:sn22.62/62.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말의 길과 이름의 길과 개념의 길이 셋 있다. 이 셋은 뒤섞인 적이 없다. 예전에도 뒤섞이지 않았고, 지금도 앞으로도 뒤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문과 바라문도 이 셋만은 물리치지 않는다. 그 셋은 무엇인가?

‘‘Tayome, bhikkhave, niruttipathā adhivacanapathā paññattipathā asaṅkiṇṇā asaṅkiṇṇapubbā, na saṅkīyanti, na saṅkīyissanti, appaṭikuṭṭhā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는 언어의 길이고 표현의 길이고 개념의 길이니, 섞이지 않았고 예전에도 섞인 적이 없으며, 섞이지 않고, 앞으로도 섞이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배척당하지 않는다.

PN:sn22.62/62.2 · 교차 검사

Katame tayo?

어떤 셋인가?

PN:sn22.62/62.3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이미 지나가고 사라지고 달라져 버린 물질이 있다. 그것은 '있었다'고 헤아려지고 '있었다'고 불리며 '있었다'고 일컬어진다. 그것을 두고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 '있을 것이다'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이미 지나가고 사라지고 달라져 버린 느낌도 그러하다. 인식도 그러하고, 형성작용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지나가고 사라지고 달라져 버린 의식 또한 '있었다'고 헤아려지고 '있었다'고 불리며 '있었다'고 일컬어진다. 그것들을 두고는 '있다'거나 '있을 것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Yaṃ, bhikkhave, rūpaṃ atītaṃ niruddhaṃ vipariṇataṃ ‘ahosī’ti tassa saṅkhā, ‘ahosī’ti tassa samaññā, ‘ahosī’ti tassa paññatti;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이든 지나갔고 소멸했고 변해 버렸다면,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4 · 교차 검사

na tassa saṅkhā ‘atthī’ti, na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그것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5 · 교차 검사

‘‘Yā vedan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ahosī’ti tassā saṅkhā, ‘ahosī’ti tassā samaññā, ‘ahosī’ti tassā paññatti;

“어떤 느낌이든 지나갔고 소멸했고 변해 버렸다면,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6 · 교차 검사

na tassā saṅkhā ‘atthī’ti, na tassā saṅkhā ‘bhavissatī’’’ti.

그것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7 · 교차 검사

‘‘Yā saññā… ye saṅkhār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ahesu’nti tesaṃ saṅkhā, ‘ahesu’nti tesaṃ samaññā, ‘ahesu’nti tesaṃ paññatti;

“어떤 인식이든, 어떤 형성작용들이든 지나갔고 소멸했고 변해 버렸다면, ‘있었다’가 그것들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었다’가 그것들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었다’가 그것들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8 · 교차 검사

na tesaṃ saṅkhā ‘atthī’ti, na tesaṃ saṅkhā ‘bhavissantī’’’ti.

그것들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들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9 · 교차 검사

‘‘Yaṃ viññāṇaṃ atītaṃ niruddhaṃ vipariṇataṃ, ‘ahosī’ti tassa saṅkhā, ‘ahosī’ti tassa samaññā, ‘ahosī’ti tassa paññatti;

“어떤 의식이든 지나갔고 소멸했고 변해 버렸다면,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었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10 · 교차 검사

na tassa saṅkhā ‘atthī’ti, na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그것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11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은 물질이 있다. 그것은 '있을 것이다'라고 헤아려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불리며 '있을 것이다'라고 일컬어진다. 그것을 두고 '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 '있었다'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은 느낌도 그러하다. 인식도 그러하고, 형성작용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생겨나지 않았고 드러나지 않은 의식 또한 '있을 것이다'라고 헤아려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불리며 '있을 것이다'라고 일컬어진다. 그것들을 두고는 '있다'거나 '있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

‘‘Yaṃ, bhikkhave, rūpaṃ ajātaṃ apātubhūtaṃ, ‘bhavissatī’ti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tassa samaññā, ‘bhavissatī’ti tassa paññatti;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이든 아직 생기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12 · 교차 검사

na tassa saṅkhā ‘atthī’ti, na tassa saṅkhā ‘ahosī’’’ti.

그것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13 · 교차 검사

‘‘Yā vedanā ajātā apātubhūtā, ‘bhavissatī’ti tassā saṅkhā, ‘bhavissatī’ti tassā samaññā, ‘bhavissatī’ti tassā paññatti;

“어떤 느낌이든 아직 생기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14 · 교차 검사

na tassā saṅkhā ‘atthī’ti, na tassā saṅkhā ‘ahosī’’’ti.

그것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15 · 교차 검사

‘‘Yā saññā… ye saṅkhārā ajātā apātubhūtā, ‘bhavissantī’ti tesaṃ saṅkhā, ‘bhavissantī’ti tesaṃ samaññā, ‘bhavissantī’ti tesaṃ paññatti;

“어떤 인식이든, 어떤 형성작용들이든 아직 생기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있을 것이다’가 그것들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들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들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16 · 교차 검사

na tesaṃ saṅkhā ‘atthī’ti, na tesaṃ saṅkhā ‘ahesu’’’nti.

그것들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들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17 · 교차 검사

‘‘Yaṃ viññāṇaṃ ajātaṃ apātubhūtaṃ, ‘bhavissatī’ti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tassa samaññā, ‘bhavissatī’ti tassa paññatti;

“어떤 의식이든 아직 생기지 않았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을 것이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18 · 교차 검사

na tassa saṅkhā ‘atthī’ti, na tassa saṅkhā ‘ahosī’’’ti.

그것에 대해 ‘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19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이미 생겨나 드러난 물질이 있다. 그것은 '있다'고 헤아려지고 '있다'고 불리며 '있다'고 일컬어진다. 그것을 두고 '있었다'고 헤아리지 않는다. '있을 것이다'라고도 헤아리지 않는다. 이미 생겨나 드러난 느낌도 그러하다. 인식도 그러하고, 형성작용들도 마찬가지다. 이미 생겨나 드러난 의식 또한 '있다'고 헤아려지고 '있다'고 불리며 '있다'고 일컬어진다. 그것들을 두고는 '있었다'거나 '있을 것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

‘‘Yaṃ, bhikkhave, rūpaṃ jātaṃ pātubhūtaṃ, ‘atthī’ti tassa saṅkhā, ‘atthī’ti tassa samaññā, ‘atthī’ti tassa paññatti;

“비구들이여, 어떤 물질이든 생겼고 나타났다면, ‘있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20 · 교차 검사

na tassa saṅkhā ‘ahosī’ti, na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그것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21 · 교차 검사

‘‘Yā vedanā jātā pātubhūtā, ‘atthī’ti tassā saṅkhā, ‘atthī’ti tassā samaññā, ‘atthī’ti tassā paññatti;

“어떤 느낌이든 생겼고 나타났다면, ‘있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22 · 교차 검사

na tassā saṅkhā ‘ahosī’ti, na tassā saṅkhā ‘bhavissatī’’’ti.

그것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23 · 교차 검사

‘‘Yā saññā… ye saṅkhārā jātā pātubhūtā, ‘atthī’ti tesaṃ saṅkhā, ‘atthī’ti tesaṃ samaññā, ‘atthī’ti tesaṃ paññatti;

“어떤 인식이든, 어떤 형성작용들이든 생겼고 나타났다면, ‘있다’가 그것들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다’가 그것들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다’가 그것들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24 · 교차 검사

na tesaṃ saṅkhā ‘ahesu’nti, na tesaṃ saṅkhā, ‘bhavissantī’’’ti.

그것들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들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25 · 교차 검사

‘‘Yaṃ viññāṇaṃ jātaṃ pātubhūtaṃ, ‘atthī’ti tassa saṅkhā, ‘atthī’ti tassa samaññā, ‘atthī’ti tassa paññatti;

“어떤 의식이든 생겼고 나타났다면, ‘있다’가 그것에 대한 헤아림이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일컬음이고, ‘있다’가 그것에 대한 이름이다;

PN:sn22.62/62.26 · 교차 검사

na tassa saṅkhā ‘ahosī’ti, na tassa saṅkhā ‘bhavissatī’’’ti.

그것에 대해 ‘있었다’는 헤아림은 없고, 그것에 대해 ‘있을 것이다’는 헤아림도 없다.”

PN:sn22.62/62.27 · 교차 검사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 세 가지 말의 길이고 이름의 길이고 개념의 길이다. 이 셋은 뒤섞인 적이 없고, 지금도 앞으로도 뒤섞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문과 바라문도 이 셋만은 물리치지 않는다. 웃깔라의 왓사와 반냐는 원인이란 없다고 했다. 행위란 없고 아무것도 없다고도 했다. 그런 그들조차 이 세 가지 길만은 헐뜯거나 물리쳐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무엇 때문인가? 헐뜯음과 몰아세움과 성냄과 따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Ime kho, bhikkhave, tayo niruttipathā adhivacanapathā paññattipathā asaṅkiṇṇā asaṅkiṇṇapubbā, na saṅkīyanti, na saṅkīyissanti, appaṭikuṭṭhā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언어의 길이고 표현의 길이고 개념의 길이니, 섞이지 않았고 예전에도 섞인 적이 없으며, 섞이지 않고, 앞으로도 섞이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배척당하지 않는다.

PN:sn22.62/62.28 · 교차 검사

Yepi te, bhikkhave, ahesuṃ ukkalā vassabhaññā ahetukavādā akiriyavādā natthikavādā, tepime tayo niruttipathe adhivacanapathe paññattipathe na garahitabbaṃ nappaṭikkositabbaṃ amaññiṃsu.

비구들이여, 웃깔라의 왓사와 방냐, 곧 원인 없음을 주장하는 자들, 행위 없음을 주장하는 자들,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조차 이 세 가지 언어의 길과 표현의 길과 개념의 길은 비난해서는 안 되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PN:sn22.62/62.29 · 교차 검사

Taṃ kissa hetu?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PN:sn22.62/62.30 · 교차 검사

Nindāghaṭṭanabyārosaupārambhabhayā’’ti.

비난과 충돌과 성냄과 힐난이 두렵기 때문이다.”

PN:sn22.62/62.31 · 교차 검사

Upayavaggo chaṭṭho.

다가감 품, 여섯 번째.

PN:sn22.62/62.32 · 교차 검사

Tassuddānaṃ –

그 목록은 이러하다 –

PN:sn22.62/62.33 · 교차 검사

Upayo bījaṃ udānaṃ, upādānaparivattaṃ;

다가감, 씨앗, 감흥어, 취착의 굴림;

PN:sn22.62/62.34 · 교차 검사

Sattaṭṭhānañca sambuddho, pañcamahāli ādittā.

일곱 자리와 바르게 깨달으신 분, 다섯과 마할리, 불타오름.[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PN:sn22.62/62.35 · 교차 검사

Vaggo niruttipathena cāti.

그리고 언어의 길로 한 품이 된다.

PN:sn22.62/62.36 · 교차 검사

7.

7.

PN:sn22.62/62.37 · 교차 검사

아라한 품Arahantavag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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