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EĀ 360

EĀ 360

교차 검사교차 검사 80현대역 준비 중

(六)

(6)

주 한문 좌표에는 번호 「(六)」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 경 제목(mn2/0.3 Sabbāsavasuttaṃ)이 놓일 글자가 이 자리에 없어 absent로 적는다. 다카쿠스 교감주 「~M. 2. Sabbāsava. [No. 26(10), No. 31]」는 편자가 붙인 비정이며 한역 본문이 아니다. 한역에서 경 이름에 해당하는 말은 0740a26.1의 「此經名為淨諸漏法」에 있다. 이 경에는 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0.3

AG:ea360/0.1 · 교차 검사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한문 「聞如是」에는 「나는」에 해당하는 말이 서지 않는다. 팔리 「Evaṃ me sutaṃ」의 me에 맞는 글자가 없는 것은 주어를 두지 않는 한역 개경 정형구의 꼴이다(사전 如是 ① 앞 「聞」 451/1578). 본문은 한문대로 주어를 보태지 않았다. 「如是」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이와 같이」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4.1

AG:ea360/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1) 舍衛(사위)는 정착어로 정착형을 썼다. 코살라의 도시 이름이다(팔리 Sāvatthī). 이름의 뜻은 음의가 풀이를 싣되 모두 가공이라 못 박는다 — 慧琳 0367c24: 「梵語訛也… 十二遊經義譯云無物不有國 …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此譯云聞者城 … 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 뜻을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2)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도 정착형을 썼다. 祇樹는 祇(음역)+樹(뜻)의 합벽이다 — 慧琳 0368a03: 祇는 「誓多 此譯為勝」, 太子가 자기 나무(樹)를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해 「祇樹」라 줄였다고 한다.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이다 — 慧琳 0368a05: 「亦義譯也 … 阿那陀 此云無親屬 巨富多財 誓救孤獨」, 곧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이다. 園은 동산. 한자대역 표는 이 다섯 자 이상을 「보류」로 분류했고 §⑤ 예시는 기수급고독원을 정착어로 든다. 정착어로 처리하되 유형 판별이 표와 갈리므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을 남긴다. (3) 음역계통: 舍衛에 대해 전거 표는 팔리형 `Sāvatthī`와 당대 범어형 `śravasthi`를 둘 다 싣는다(⚠다른 부 DA의 대역).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의 전거 팔리 후보는 `Jetavana, Anāthapiṇḍika`. (4)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팔리 bhagavā)에 이 좌표에서 「佛」을 쓰고 0740a26.1에서는 「世尊」을 쓴다. 확정역대로 佛=부처님, 世尊=세존. (5) 「一時」는 「어느 때」(팔리 ekaṃ samayaṃ).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4.2

AG:ea360/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我當說極妙之法,初、中、竟善,義理深邃,具足得修梵行,此經名為淨諸漏法,汝等善思念之。」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지극히 오묘한 법을 말하겠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으며, 뜻과 이치가 깊고 그윽하여, 갖추어 청정한 삶을 닦을 수 있다. 이 경의 이름은 모든 번뇌를 깨끗이 하는 법이다. 너희들은 이를 잘 새겨 생각하라.」

주 (1) 구조·배열: 팔리는 부름(14.3 āmantesi)—비구들의 응답(14.5 Bhadante)—말씀(14.7–14.8)—다시 응답(14.9)의 순서이나, 한역은 부름과 말씀을 한 좌표에 합치고 응답을 뒤(0740a28.1)에 한 번만 둔다. 팔리 14.4(비구들을 부르는 직접 발화 「bhikkhavo」)에 맞는 글자는 한문에 없다. (2) 문장 유무: 「極妙之法,初、中、竟善,義理深邃,具足得修梵行」은 팔리 14.7·14.8에 서지 않는다. 증언에서 끌어와 넣지도 빼지도 않았다. (3) 개별 어휘: 「淨諸漏法」(모든 번뇌를 깨끗이 하는 법)과 팔리 sabbāsavasaṃvarapariyāya(모든 번뇌의 단속에 대한 설명)는 이름의 말이 다르다(淨 ↔ saṃvara).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汝等善思念之」는 팔리 14.8의 suṇātha(들으라)에 맞는 글자 없이 manasi karotha(마음에 두라)에 가깝다. (4) 漏는 `_확정술어_아함판` 정형구 행으로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프로젝트 정형구 행의 「번뇌」를 문맥으로 골라 썼다. 梵行도 같은 지위(정형구 행)이며 「청정한 삶」을 썼다 — 음의 梵行 慧琳 0698c19: 「梵言梵摩 此云清淨」. 둘 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5) 深邃: 음의 慧琳 0393a04 「說文 … 深遠也」. (6) 이문: 「我」 → 宋元明 「我今」; 「中、竟善,義理」 → 宋元明 「善中善竟善理義」, 聖 「善中善義理」.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7) 當·得·諸는 어미로 흡수했다(「말하겠다」「닦을 수 있다」「비구들」). (8) 한자 흔들림: 이 좌표는 「世尊」, 0.3은 「佛」 —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9) 음역계통: 比丘는 전거 표에서 팔리형 `bhikkhu`, 근대 범어형 `Bhikṣu`(⚠근대는 범어 쪽으로 쏠림); 확정역 「비구」를 쓰고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4.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14.4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4.7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4.8

AG:ea360/0740a26.1 · 교차 검사

比丘對曰:「如是。

비구들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한문 「比丘」는 단·복에 중립이다. 宋元明은 「諸比丘」로 복수를 보여 「비구들」로 옮겼다. 「如是」는 응답어 「그렇습니다」이며 청자가 세존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⑦). 팔리 14.9 「Evaṃ, bhante」의 evaṃ에 맞는다(「世尊」은 다음 좌표). 팔리 14.5의 첫 응답 「Bhadante」에 맞는 글자는 한문에 없다 — 한역은 응답을 한 번만 둔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單·複 읽기가 판본에 달린다. 이문: 「比」 → 宋元明 「諸比」.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4.9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14.5

AG:ea360/0740a28.1 · 교차 검사

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세존이시여!」 이때 비구들은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주 「世尊!」은 호격으로 「세존이시여」, 확정역 세존. 「受教」는 「가르침을 받았다」 — 팔리 paccassosuṃ(응낙하다·귀 기울이다)과 어휘가 같지 않다. 「教」는 사역·가르침의 두 갈래가 있으나(앵커) 앞 「從佛」(부처님께)과 함께 「가르침을 받다」로 읽었다. 한자 흔들림: 같은 좌표 안에서 호격은 「世尊」, 주체는 「佛」 — 한역이 같은 개념(팔리 bhagavā)에 다른 한자를 쓴다. 「是時」는 「이때」(0740a26.1의 「爾時」와 다른 글자이나 같은 구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4.9

AG:ea360/0740a29.1 · 교차 검사

世尊告曰:「彼云何名為淨諸漏法?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 어떤 것을 모든 번뇌를 깨끗이 하는 법이라 이름하는가?

주 팔리는 이 자리(14.10 etadavoca)에서 「알고 보는 이에게 번뇌의 다함을 말한다」(15.1–15.2)와 「이치에 맞는 주의·어긋난 주의」(15.3–15.5)를 두지만, 한역은 「淨諸漏法」이라는 법의 이름을 묻는 한 물음으로 곧바로 간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묻는다(divergent). 15.1의 알고-보는 문장은 이 구간 안에서 짝이 잡히지 않아 unaligned(이 구간 밖 좌표에서 나올 수 있다). 「彼云何」는 「그 어떤」(katame와 같은 구실), 「名為」는 「~라 이름하다」. 이문: 「名」 → 宋元明 없음(교감주 〔名〕-【三】). 한자 흔들림: 이 좌표는 「世尊」(0740a29.1은 「佛」). 漏는 앞 좌표와 같은 사유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4.1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2:15.2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5.1

AG:ea360/0740a29.2 · 교차 검사

或有有漏,緣見得斷;或有有漏,親近得斷;或有有漏,遠離得斷;或有有漏,娛樂得斷;或有有漏,威儀得斷;或有有漏,思惟得斷。

어떤 번뇌는 봄으로 인해 끊을 수 있고, 어떤 번뇌는 가까이함으로 끊을 수 있고, 어떤 번뇌는 멀리 떠남으로 끊을 수 있고, 어떤 번뇌는 즐김으로 끊을 수 있고, 어떤 번뇌는 몸가짐으로 끊을 수 있고, 어떤 번뇌는 생각함으로 끊을 수 있다.

주 (1) 항목 수: 한문 여섯 항(見·親近·遠離·娛樂·威儀·思惟)과 팔리 일곱 항(dassanā · saṃvarā · paṭisevanā · adhivāsanā · parivajjanā · vinodanā · bhāvanā)이 같지 않다. 항목끼리의 짝은 이 좌표에서 판정하지 않는다(한자대역 표가 思惟에 Bhāvana를 대응시키나 기계 1차 분류다). (2) 이문: 宋元明은 「或」 자리에 「或有有漏恭敬得斷或」을 두어 「恭敬得斷」 항이 하나 더 있다(교감주 (或有有漏恭敬得斷)+或【三】).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여섯 항이며, 판본에 따라 일곱 항이 되는 것은 팔리의 일곱 항과 견줄 때 알아둘 일이다. (3) 「或有有漏」: 앞의 「或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어떤 것이 있다」이고(존재를 근거로 「어떤 ~는」으로 옮김), 뒤의 「有漏」는 번뇌 일반으로 읽었다. 같은 글자 「有漏」가 0740b09.1부터는 欲漏·有漏·無明漏 삼루의 둘째(존재의 번뇌)로 쓰여 다의어 갈래가 있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4) 「見」은 「봄」으로 옮겼다(정형구 행 見=dassana 「뵙는 것」, 정형구 행은 확정역이 아니다). 「견해」로 읽을 갈래도 있어 `[불확실:다의어_판별]`. (5) 「緣」은 조건·말미암음 「~으로 인해」, 「得斷」의 「得」은 「끊을 수 있다」(가능). (6) 漏는 정형구 행이라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7) 威儀는 「몸가짐」으로 옮겼다(사전 威儀 ① 38회·禮節과 함께 쓰임). 娛樂: 음의 慧琳 0360c18 「娛亦樂也」 → 「즐김」. 遠離는 「멀리 떠남」.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6.1

AG:ea360/0740b01.1 · 교차 검사

「彼云何有漏由見得斷?

「그 어떤 번뇌를 봄으로 말미암아 끊을 수 있는가?[불확실]

불확실 앞 좌표(0740b01.1)와 같은 사유로 見(봄/견해), 漏(번뇌), 有漏(번뇌 일반)에 ``이 걸린다. 「彼云何」는 「그 어떤」(팔리 katame), 「由」는 「말미암아」.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7.1

AG:ea360/0740b04.1 · 교차 검사

於是,凡夫之人不覩聖人,不順從如來之法,不能擁護賢聖之法,不親近善知識,不與善知識從事。

여기에서 범부인 사람은 성인을 보지 않고, 여래의 법을 따르지 않고, 어질고 성스러운 이들의 법을 감싸 지킬 수 없고, 좋은 벗을 가까이하지 않고, 좋은 벗과 더불어 일하지 않는다.

주 (1) 팔리는 성자(ariya)와 선인(sappurisa) 각각에 대해 「보지 못함 · 법에 능숙하지 못함 · 법에 길들지 못함」 세 구씩 여섯 구이고, 한문은 다섯 구(不覩聖人 · 不順從如來之法 · 不能擁護賢聖之法 · 不親近善知識 · 不與善知識從事)다. 구 단위 짝은 어긋나 이 좌표에서 잠정 보류한다. 「聖人」과 「賢聖」, 「如來之法」이 모두 성자 쪽, 「善知識」이 선인 쪽에 서는 것으로 보이나 판정하지 않는다. (2) 팔리의 assutavā(배우지 못한)는 한문에 서지 않는다. (3) 「凡夫之人」은 「범부인 사람」(사전 凡夫 ① 뒤 「之人」 23/33). (4) 「擁護」는 「감싸 지키다」 — 음의 慧琳 0499c15 「蒼頡篇 持也」.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 (5) 「善知識」은 의역으로 「좋은 벗」으로 옮겼다(사전 善知識 ⑥ 丁福保 「知人乃朋友之義」, 가벼운 근거). 한자대역 표가 善知識에 붙인 팔리 후보 `Kallavālamutta-gāma`는 마을 이름이라 뜻이 맞지 않아 동형이의 오적중으로 보고 쓰지 않았다. (6) 「與善知識從事」: 「從事」가 「일에 종사하다」인지 「함께 따르다」인지 갈린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사전 善知識 ① 뒤 「從事」 13/74. 교정: 「從事」 인용을 실제로 실린 표제 칸으로 바로잡았다. 본문 번역은 바꾸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2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3

AG:ea360/0740b05.1 · 교차 검사

其聞法所應思惟法者亦不分別,不應思惟者而思惟之。

그가 들은 법 가운데 생각해야 할 법을 분별하지도 않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생각한다.

주 「其聞法所應思惟法者」는 두 가지로 끊을 수 있다. (가) 「그가 들은 법 가운데 생각해야 할 법」(채택), (나) 「그는 법을 듣고서, 생각해야 할 법을」. 저본만으로 못 가르므로 `[불확실:구두·분절]`. 「亦」는 「분별하지도」의 「도」로 흡수했다(앞 좌표들의 부정과 나란한 「또한」이라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음). 「所應」은 「생각해야 할」의 관형절, 「而」는 접속으로 흡수. 팔리 17.4는 「생각해야 할 법도,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도 알지 못한다」의 한 쌍이고 한문은 앞 구에서만 「分別하지 않음」을 말하며 뒤 구는 「생각한다」로 이어진다(17.5의 te dhamme manasi karoti에 맞음).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4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5

AG:ea360/0740b07.1 · 교차 검사

未生欲漏而生,已生欲漏便增多;未生有漏而生,已生有漏便增多;未生無明漏而生,已生無明漏便增多。

아직 생기지 않은 욕망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욕망의 번뇌는 곧 늘어 많아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의 번뇌는 곧 늘어 많아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곧 늘어 많아진다.

주 (1) 팔리 17.7–17.9의 앞머리 「Yassa, bhikkhave, dhamme manasikaroto(어떤 법을 마음에 두면)」에 맞는 글자가 이 좌표에 없다(앞 좌표들이 그 구실을 한다). (2) 欲漏·有漏·無明漏는 삼루로 읽었다(사전 無明漏 ⑥ 「三漏之一」). 有漏를 「존재의 번뇌」로 옮겼으나 0740b01.1의 「有漏」(번뇌 일반)와 같은 글자라 `[불확실:다의어_판별]`. 無明은 한자 전부가 뜻이므로 의역어이나 한국 불교 정착형 「무명」을 썼다. 한자대역 표가 欲漏·無明을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는데 이 낱말들에는 음역자가 없다 — 표의 기계 분류와 어긋나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전거 표: 無明 팔리 `Avijjā`, 당대 범어 `ābidyā`(⚠다른 부 SA), 欲漏 팔리 `Āsava`(⚠다른 부 MA) — 무명은 음역이 아니므로 음역계통으로 신고하지 않는다. (3) 「而生」의 「而」는 흡수, 「便增多」의 「便」은 「곧」으로 두었다(결과를 잇는 뜻이 실림). 「增多」는 「늘어 많아진다」(팔리 pavaḍḍhati와 어휘가 같은 자리). (4) 漏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정형구 행).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7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8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9

AG:ea360/0740b09.1 · 교차 검사

此法不應思惟而思惟之。

이 법은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생각한다.

주 「應」은 「-해서는 안 되는」(不應)의 어미로 지고, 「而」는 대조의 「-는데」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7.10

AG:ea360/0740b11.1 · 교차 검사

「彼云何法應思惟,然不思惟此法?

「그 어떤 법을 생각해야 하는데도 이 법을 생각하지 않는가?

주 「然」은 「-는데도」로 흡수했다. 둘째 「此法」은 앞 「法」을 받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7.11

AG:ea360/0740b12.1 · 교차 검사

所言思惟法者,未生欲漏使不生,已生欲漏而滅之;未生有漏令不生,已生有漏而滅之;未生無明漏令不生,已生無明漏而滅之。

이른바 생각할 법이란, 아직 생기지 않은 욕망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욕망의 번뇌는 멸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존재의 번뇌는 멸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멸하는 것이다.

주 팔리 17.12–17.14의 「anuppanno … na uppajjati, uppanno … pahīyati」는 스스로 일어나지 않고 끊어지는 자동 꼴인데, 한문은 「使/令不生 · 而滅之」의 사역·타동 꼴이다.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서 바뀐 자리로 보아 번역기법을 적는다(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팔리 앞머리 「Yassa, bhikkhave, dhamme manasikaroto」는 이 좌표에 없다. 「所言」은 「이른바」, 「者」는 「~란」. 「滅」은 「멸하다」(팔리 pahīyati는 「버려지다」로 어휘가 같지 않다). 「令」「使」는 「-게 하다」. 漏·有漏·無明은 0740b09.1과 같은 사유 —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12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13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14

AG:ea360/0740b13.1 · 교차 검사

是謂此法應可思惟而不思惟,所不應思惟者便思惟之。

이를 일러, 이 법은 생각해야 할 만한 것인데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곧 생각한다고 한다.

주 앞 구 「此法應可思惟而不思惟」는 팔리 17.15(ime dhammā manasikaraṇīyā ye dhamme na manasi karoti)에 맞는다. 뒤 구 「所不應思惟者便思惟之」는 팔리 17.10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모양인데 팔리는 이 자리에서 되풀이하지 않는다(한문에만 있는 덧붙임, 자리바뀜으로 적음). 「應可」는 당위(應)와 가능(可)이 겹쳐 「생각해야 할 만한」으로 옮겼다. 「便」은 「곧」.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15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MN 2:17.10

AG:ea360/0740b16.1 · 교차 검사

應思惟者復不思惟之,未生欲漏而生,已生欲漏而增多;未生有漏而生,已生有漏而增多;未生無明漏而生,已生無明漏而增多。

생각해야 할 것을 또 생각하지 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욕망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욕망의 번뇌는 늘어 많아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의 번뇌는 늘어 많아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가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늘어 많아진다.

주 팔리 17.16은 「āsavā」를 하나로 말하고, 한문은 같은 내용을 삼루(欲·有·無明)로 나눠 편다. 팔리의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을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으므로」에 맞는 글자는 이 좌표 앞머리에 한 구로 있다. 「復」는 앞 구의 「不分別/思惟」와 이어지는 「또」로 옮겼다(「다시」는 앞서 같은 행위가 있었다는 뜻이 되어 피했다). 이 좌표의 「而增多」는 0740b09.1의 「便增多」와 달리 「便」이 없다. 이문: 「應」 → 宋元明 「所應」. 有漏·無明·漏는 0740b09.1과 같은 사유 —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7.16

AG:ea360/0740b17.1 · 교차 검사

彼人作如是思惟:『云何有過去久遠?

그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한다. 『어떻게 과거의 오랜 시간이 있는가?

주 (1) 팔리 18.1 「So evaṃ ayoniso manasi karoti」의 ayoniso(이치에 맞지 않게)는 한문에 없다. (2) 물음 묶음: 한문은 과거 다섯 물음(0740b20.1 · 0740b21.1 · 0740b21.2 · 0740b22.1 · 0740b23.1)과 미래 다섯 물음(0740b23.2 · 0740b23.3 · 0740b24.1 · 0740b24.2 · 0740b25.1)이고, 팔리도 과거 다섯(18.2–18.6)과 미래 다섯(18.7–18.11)이라 묶음 수는 맞는다. 그러나 물음의 내용과 순서가 같지 않아(팔리: 내가 있었는가 / 없었는가 / 무엇이었는가 / 어떠했는가 / 무엇이 되어 무엇이었는가) 문항 단위 짝은 대부분 잡히지 않았다. 이 좌표의 「云何」 물음은 18.4(kiṃ)·18.5(kathaṃ) 어느 쪽과 짝인지 못 정해 18.4 후보로 unaligned를 적는다. (3) 「云何」는 「어떻게」(앵커: 어떻게/무엇이)로 옮겼고 「무엇이」일 갈래가 있다. 「過去久遠」은 「과거의 오랜 시간」 — 「久遠」을 시간으로 읽었다. 「有」는 「있다」(존재). (4) 한문 「如是思惟」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作」은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8.1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8.4

AG:ea360/0740b20.1 · 교차 검사

我今當有過去久遠?』

내가 지금 과거의 오랜 시간을 가질 것인가?』

주 「我今當有過去久遠」은 팔리 18.2 「ahosiṃ nu kho ahaṃ atītamaddhānaṃ(나는 과거에 있었는가)」과 「나」의 존재를 묻는 꼴이 같으나 시제 꼴이 같지 않다(한문은 「今」·「當」). 「有」가 「있다」인지 「가지다」인지 갈리고(주어 「我」가 서 있으나 「我今當有」가 「내가 있게 되는가」일 수도 있다), 본문은 「가질 것인가」를 택했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當」은 「-ㄹ 것인가」로 어미가 진다. 「今」은 「지금」.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8.2

AG:ea360/0740b21.1 · 교차 검사

或復思惟:『無過去久遠?

혹은 또 이렇게 생각한다. 『과거의 오랜 시간은 없는가?

주 팔리 18.3 「Na nu kho ahosiṃ atītamaddhānaṃ(나는 과거에 없었는가)」에 맞는 부정 물음이다. 한문은 「나」를 주어로 두지 않고 「과거 오랜 시간」이 없다고 묻는다. 「或復」는 「혹은 또」, 「復」는 「또」.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8.3

AG:ea360/0740b21.2 · 교차 검사

云何當有過去久遠?

어떻게 과거의 오랜 시간이 있을 것인가?

주 「云何當有過去久遠」은 팔리 18.5 「Kathaṃ nu kho ahosiṃ(어떠했는가)」 쪽 후보이나 0740b20.1의 「云何有過去久遠」과의 구별이 서지 않아 팔리 짝을 잡지 못했다 — `[불확실:구조·배열]`. 「當」은 「-ㄹ 것인가」.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8.5

AG:ea360/0740b22.1 · 교차 검사

為誰有過去久遠?

누구를 위해 과거의 오랜 시간이 있는가?

주 「為誰」는 「누구를 위해」(채택)와 「누구로서/누가」의 두 갈래가 있어 `[불확실:다의어_판별]`. 팔리 18.6 「Kiṃ hutvā kiṃ ahosiṃ nu kho ahaṃ(무엇이 되어 무엇이었는가)」에 맞는 글자가 한문에 보이지 않아 후보로만 적고 unaligned. 「為」는 피동(為…所)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8.6

AG:ea360/0740b23.1 · 교차 검사

云何復有當來久遠?

어떻게 또 다가올 오랜 시간이 있는가?

주 (1) 한자 흔들림: 여기는 「當來久遠」, 다음 좌표부터는 「將來久遠」 — 한역이 같은 개념(팔리 anāgata)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없으므로 통일하지 않고 「다가올」(當來)과 「앞으로 올」(將來)로 갈랐다. (2) 이문: 「遠」 뒤에 宋元明聖이 열아홉 자 「過去久遠為誰有過去久遠云何復有當來久遠」을 더 가진다(교감주 遠+(…)十九字【三】【聖】). 앞 물음 묶음이 되풀이된 모양이다.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두고 판정하지 않는다. (3) 미래 첫 물음의 팔리 짝은 18.9(kiṃ)·18.10(kathaṃ) 후보이나 서지 않아 unaligned. 「復」는 「또」.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8.9

AG:ea360/0740b23.2 · 교차 검사

我今當有將來久遠?』

내가 지금 앞으로 올 오랜 시간을 가질 것인가?』

주 팔리 18.7 「Bhavissāmi nu kho ahaṃ anāgatamaddhānaṃ(나는 미래에 있게 될 것인가)」에 맞는 꼴이다. 「有」의 갈래는 0740b21.1과 같은 사유 — `[불확실:다의어_판별]`. 「將來」는 앞 좌표의 「當來」와 다른 글자(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8.7

AG:ea360/0740b23.3 · 교차 검사

或復言:『無將來久遠。

혹은 또 말한다. 『앞으로 올 오랜 시간은 없다.

주 이 좌표의 끝은 「。」로 평서다(0740b21.2의 「?」와 다르다). 팔리 18.8 「Na nu kho bhavissāmi anāgatamaddhānaṃ(나는 미래에 없을 것인가)」은 물음이어서 문장 꼴이 갈린다. 「將來」(한자 흔들림, 0740b23.2의 「當來」와 비교). 「或復言」은 「혹은 또 말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8.8

AG:ea360/0740b24.1 · 교차 검사

云何當有將來久遠?

어떻게 앞으로 올 오랜 시간이 있을 것인가?

주 팔리 18.10 「Kathaṃ nu kho bhavissāmi anāgatamaddhānaṃ(어떻게 있을 것인가)」 후보이나 0740b23.2와 구별이 서지 않아 짝을 잡지 못했다. 「當」은 「-ㄹ 것인가」.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8.10

AG:ea360/0740b24.2 · 교차 검사

為誰有將來久遠?

누구를 위해 앞으로 올 오랜 시간이 있는가?

주 「為誰」의 두 갈래는 0740b23.1과 같은 사유 —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팔리 18.11 「Kiṃ hutvā kiṃ bhavissāmi」 후보로만 적는다. 팔리 18.12 이하의 현재 물음(etarahi … kathaṃkathī, 18.12–18.18)은 이 구간 안에 짝이 없으며, 다음 구간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해 absent가 아니라 unaligned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MN 2:18.11

AG:ea360/0740b25.1 · 교차 검사

云何有此眾生久遠?

어떻게 이 중생이 오래되고 아득한 때부터 있는가?

주 앞 구간(질문의 앞머리)을 받지 못해 팔리 어느 질문에 걸리는지 확정하지 못했다. 팔리 18.16~18.17의 「나는 어떻게 있는가 / 이 중생은 어디서 왔는가」 계열과 부분 겹친다. `有`는 존재 서술로 세웠다(「이 중생이 …있는가」). 의문사구 `云何`는 배선 앵커대로 의문 어미·「어떻게」로 지고, 이 경 사전에 표제가 없어 사전 인용은 달지 않았다. 이문: 【宋】【元】【明】은 `此有`.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8.16

AG:ea360/0740b25.2 · 교차 검사

此眾生久遠為從何來?

이 중생은 오래되고 아득한 때에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주 팔리 18.17 `ayaṃ nu kho satto kuto āgato`(이 중생은 어디서 왔는가)와 뼈대가 같다. 한역은 `久遠`(오래고 아득함)이 더 실렸다(팔리 해당어 없음). `為`는 「-인 것인가」 계사·종결 기능으로 흡수했다(為…所 피동 아님).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8.17

AG:ea360/0740b26.1 · 교차 검사

從此命終當生何處?』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어느 곳에 태어나게 될까?』

주 팔리 18.18 `so kuhiṃ gāmī bhavissati`(그는 어디로 가는 자가 될 것인가)에 대응한다. 한역은 「목숨을 마침(命終)」과 「태어남(生)」의 두 동작으로 풀었다 —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자리. `當`은 미래 어미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18.18

AG:ea360/0740b26.2 · 교차 검사

彼人起此不祥之念,便興六見,展轉生耶想——有我見,審有此見;無有我見,審興此見;有我見、無我見,於中起審見;又復自觀身,復興此見:於己而不見己;復興此見:於無我而不見無我,於中起此見。

그 사람은 이 상서롭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 곧 여섯 견해를 일으키고, 차례로 삿된 생각을 낳는다. '나가 있다'는 견해가 있어 진실로 이 견해가 있고, '나가 없다'는 견해가 있어 진실로 이 견해를 일으키며, '나가 있다'는 견해와 '나가 없다'는 견해, 그 가운데서 진실한 견해를 일으킨다. 또 몸을 살피고서 다시 이 견해를 일으킨다. 자기에게서 자기를 보지 못한다. 다시 이 견해를 일으킨다. 나 없음에서 나 없음을 보지 못한다. 그 가운데서 이 견해를 일으킨다.

주 한역은 「여섯 견해」를 일으킨다고 하나 열거는 ①나가 있다 ②나가 없다 ③있음·없음 둘 ④자기를 자기로 보지 못함 ⑤나 없음을 나 없음으로 보지 못함으로 읽혀, 팔리 19.2~19.6의 다섯(나가 있다 / 없다 / 나로써 나를 / 나로써 나 아님을 / 나 아님으로써 나를 인식한다)과 짜임이 갈린다. 열거 경계가 한문만으로 확정되지 않아 구두를 [불확실:구두·분절]로 신고한다. `審`은 「진실로」(팔리 saccato thetato 자리에 해당할 수 있음)로 세웠으나 「살피다」일 가능성이 남아 [불확실:다의어_판별]. `耶想`: 저본은 `耶`, 【宋】【元】【明】은 `邪見`(이문 0740018) — 저본(大)대로 옮기고 「삿된」으로 읽었다(耶=邪, 교감주). 사전 `我見` 표제는 후대 「身見」 뜻이라 쓰지 않았다. `自觀身`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단순 재귀로 흡수했다. `又復`·`復`는 「또/다시」로 반복의 뜻이 실려 살렸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2:19.1-19.6

AG:ea360/0740b27.1 · 교차 검사

爾時,彼人復生此邪見:我者即是今世,亦是後世,常存於世而不朽敗,亦不變易,復不移動。

그때 그 사람은 다시 이 삿된 견해를 낸다. 나라는 것은 곧 이 세상이며 또한 후세이고, 세상에 항상 있어 썩어 무너지지 않으며, 또한 변하여 바뀌지 않고, 다시 움직이지 않는다.

주 팔리 19.8의 영속하는 자아(`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에 대응하나, 한역의 「이 세상이며 후세(今世·後世)」는 팔리에 해당 어휘가 없다. 반대로 팔리의 `vado vedeyyo`(말하고 느끼는 자) 등은 한역에 없다. `我者即是`의 `者`는 주제 표지로 흡수, `即`은 동일 지정(「곧」), `爾時`는 「그때」. 이문: 【聖】은 `存`→`在`.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9.8

AG:ea360/0740c03.1 · 교차 검사

是謂名為邪見之聚。

이것을 일러 삿된 견해의 모임이라 이름한다.

주 팔리 19.9는 견해의 덤불·광야·몸부림 등 여섯 은유(`diṭṭhigataṃ diṭṭhigahanaṃ …`)를 늘어놓는데, 한역은 `邪見之聚` 하나로 접었다. `聚`는 「모임·무더기」. `為`는 「~라 하다」 용법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9.9

AG:ea360/0740c05.1 · 교차 검사

邪見、災患、憂、悲、苦、惱,皆由此生而不可療治,亦復不能捨,遂增苦本,由是不為沙門之行、涅槃之道。

삿된 견해, 재난과 환난, 시름, 슬픔, 괴로움, 번민이 모두 이로부터 생겨 고칠 수 없고, 또한 버릴 수도 없어서 마침내 괴로움의 뿌리를 늘리니, 이로 말미암아 사문의 행, 열반의 길을 행하지 못한다.

주 팔리 19.10은 견해의 속박에 묶인 범부가 태어남·늙음·죽음·근심·슬픔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구문이다. 한역은 같은 목록을 「이 견해에서 생겨난 것」으로 세우고 `苦本`을 늘리며 `沙門之行·涅槃之道`를 행하지 못한다고 맺어 논리 방향이 갈린다. `沙門`은 정착어, 팔리 samaṇa. `涅槃`은 정착어로 두었으며 音義合璧 분류(表의 혼합)임을 밝힌다. `能×1`은 「-ㄹ 수 있다」, `不可療治`는 「고칠 수 없다」. 사전 擁護·苦本 등은 이 좌표에 없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MN 2:19.10

AG:ea360/0740c06.1 · 교차 검사

「又復,比丘!賢聖弟子修其法,不失次敘,善能擁護,與善知識共從事,彼能分別;不可思惟法亦能知;所可思惟法亦能知之;彼所不應思惟法亦不思惟之;所應思惟法而思惟之。

「또, 비구여! 현성의 제자는 그 법을 닦아 차례를 잃지 않고, 잘 보호하며, 좋은 벗과 함께 일을 하여, 그는 분별할 수 있다. 생각해서는 안 되는 법도 알 수 있고, 생각할 만한 법도 알 수 있으며, 그가 생각해서는 안 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한다.

주 팔리 20.1~20.4(성스러운 이를 보고 법에 능숙하며 잘 길들여진 제자가, 마음에 두어야 할 법과 두어서는 안 될 법을 안다)와 뼈대가 같다. 한역에는 `善能擁護`·`與善知識共從事`가 더 있고, 팔리의 「성스러운 이·참사람을 봄」 항은 직접 보이지 않는다. `賢聖`은 확정역이 없어 「현성」으로 두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사전 賢聖 ① 증일아함 弟子 앞 23회). `善知識`은 의역 유형이라 「좋은 벗」으로 옮긴다(사전 善知識 ①, 이 경 0740b05.1·0740c08.1). `不可思惟法`은 「생각할 수 없는」보다 팔리 `amanasikaraṇīye`에 맞춰 「생각해서는 안 되는」으로 읽었다. 이문: 【宋】【元】【明】 `修行`, 【元】【聖】 `緒`(敘), 【宋】【元】【明】 `知之` — 모두 저본(大)대로. `能×4`는 「-ㄹ 수 있다」, `應`은 어미, `亦`은 병렬이라 뜻이 실려 「도」로 살렸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0.1-20.4

AG:ea360/0740c08.1 · 교차 검사

「彼云何不應思惟法而不思惟之?

「그는 어떤 생각해서는 안 될 법을 생각하지 않는가?

주 팔리 20.5 `katame ca dhammā na manasikaraṇīyā ye dhamme na manasi karoti`와 같은 물음이다. `云何`는 의문 어미로 흡수, `而`는 흡수.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0.5

AG:ea360/0740c12.1 · 교차 검사

於是,諸法未生欲漏而生,已生欲漏而增多;未生有漏而生,已生有漏而增多;未生無明漏而生,已生無明漏而增多。

여기서 여러 법 가운데 아직 생기지 않은 욕망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욕망의 번뇌는 늘어 많아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있음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있음의 번뇌는 늘어 많아진다. 아직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늘어 많아진다.

주 팔리 `kāmāsavo`·`bhavāsavo`·`avijjāsavo`의 세 번뇌 짜임과 같다. `漏`는 [정형구 행]에 걸려 있으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저본 문맥으로 「번뇌」라 옮겼다. `欲漏`·`無明`은 표의 혼합(音義合璧) 유형이며 여기서는 뜻으로 옮겼다. `有漏`는 `有`(있음)+`漏`로 읽어 「있음의 번뇌」로 두었다 — 팔리 `bhavāsava`에 해당할 수 있으나 한문만으로는 「번뇌 있음(有漏)」 읽기가 남는다. `於是,諸法`의 `諸`는 복수 표지라 「여러」, `於是`는 「여기서」. `而`×6은 흡수.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0.6-20.8

AG:ea360/0740c13.1 · 교차 검사

是謂此法不應思惟之。

이것을 일러 이 법은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한다.

주 팔리 `ime dhammā na manasikaraṇīyā`에 대응. 이문: 【宋】【元】【明】은 `思惟者而不思`(0740023), 저본(大)대로.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0.9

AG:ea360/0740c16.1 · 교차 검사

「彼何等法應思惟者而思惟之?

「그는 어떤 법이 생각해야 할 것이어서 그것을 생각하는가?

주 팔리 20.10 `katame ca dhammā manasikaraṇīyā ye dhamme manasi karoti`와 같은 물음. `彼何等法`은 「어떤 법」, `者`·`而`는 흡수. 사전 등(等) ①은 이 자리에서 「어떤」의 `何等`으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0.10

AG:ea360/0740c16.2 · 교차 검사

於是,諸法未生欲漏而不生,已生欲漏而滅之;未生有漏而不生,已生有漏而滅之;未生無明漏而不生,已生無明漏而滅之。

여기서 여러 법 가운데 아직 생기지 않은 욕망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욕망의 번뇌는 그것을 멸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있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있음의 번뇌는 그것을 멸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무명의 번뇌는 그것을 멸한다.

주 팔리 `na uppajjati`/`pahīyati`(버려진다)에 대해 한역은 `滅之`(멸한다). 번뇌 낱말 처리는 0740c13.1과 같다. 이문: 【宋】【元】【明】은 `是`가 없다(0740024) — 저본(大)대로 `於是`.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0.11-20.13

AG:ea360/0740c17.1 · 교차 검사

是謂此法應可思惟之。

이것을 일러 이 법은 생각해야 할 만한 것이라 한다.

주 팔리 `ime dhammā manasikaraṇīyā`에 대응. 이문: 【宋】【元】【明】은 `可思惟而`(0740025), 저본(大)대로 `應可`.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0.14

AG:ea360/0740c20.1 · 교차 검사

「彼不應思惟者亦不思惟之,可思惟者便思惟之,彼作如是思惟,便滅三法。

「그는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은 또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할 만한 것은 곧 생각하며, 그가 이와 같이 생각하면 곧 세 법을 멸한다.

주 팔리 21.1은 네 가지 진리를 근원에 맞게 마음에 두는 것이고 21.2는 그때 세 속박이 버려진다는 것이다. 한역은 네 진리의 항이 보이지 않고 「이와 같이 생각하면 세 법을 멸한다」로 접었다. `亦`은 앞 구와의 병렬이라 「또한」을 살렸다. `便`은 「곧」(귀결). 이문: 【聖】은 `不可`.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1.1-21.2

AG:ea360/0740c21.1 · 교차 검사

云何為三?

무엇이 셋인가?

주 팔리 21.2는 물음 없이 `tīṇi saṃyojanāni pahīyanti`로 곧바로 셋을 든다. 이 물음 문장은 한역에만 있다. `云何為三`의 `為`는 「~인가」 계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1.2

AG:ea360/0740c22.1 · 교차 검사

身耶、戒盜、疑。

몸의 삿됨, 계를 훔침, 의심.

주 팔리 21.3은 `sakkāyadiṭṭhi, vicikicchā, sīlabbataparāmāso`(몸 견해, 의심, 계금취)의 순서이고 한역은 `身耶, 戒盜, 疑`로 둘째·셋째가 바뀌었다(자리바뀜). 확정역이 없는 낱말이라 저본 글자대로 옮겼다. `耶`는 여기서 의문 종결사가 아니라 `邪`(삿됨)로 쓰인 것으로 읽었다(이문: 【宋】【元】【明】 `邪`, 교감주 `耶=邪`). `盜`는 「훔침」이라 직역했으며 `戒盜`가 계금취를 뜻하는 한역어라는 판단은 비고로만 둔다. 사전 疑 ① 항 참조.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MN 2:21.3

AG:ea360/0740c23.1 · 교차 검사

設不知、見,則增有漏之行;設見、聞、念、知者,則不增有漏之行;已知、已見,有漏便不生。

만약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있음의 번뇌의 행이 늘어나고, 만약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아는 이라면 있음의 번뇌의 행이 늘어나지 않으며, 이미 알고 이미 보면 있음의 번뇌는 곧 생기지 않는다.

주 팔리 15.1 `jānato … passato āsavānaṃ khayaṃ vadāmi, no ajānato no apassato`(알고 보는 이에게 번뇌의 다함을 말하고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말하지 않는다)와 같은 취지이나, 놓인 자리가 다르고(팔리는 경의 첫머리, 한역은 세 속박을 멸한 뒤) `見·聞·念·知` 네 항은 팔리에 없다. `設不知、見`의 `不`이 `見`까지 걸리는지 구두가 갈린다: 저본(大)은 `不知、見`(알지도 보지도 못하면로 읽음), 【宋】【元】【明】은 `不見`을 명시한다. `有漏之行`은 「번뇌 있는 행」으로 읽을 수도 있어 [불확실:구두·분절]. `設`은 가정 어미 「-면」, `則`은 귀결이라 흡수, `者`는 「~이라면」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MN 2:15.1

AG:ea360/0740c23.2 · 교차 검사

是謂此漏見所斷也。

이것을 일러 이 번뇌가 봄으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팔리 `ime vuccanti āsavā dassanā pahātabbā`와 같다. `見所斷`은 「봄으로 끊어지는」(`所`는 피동 관형절로 풀었다). `也`는 평서 어미로 흡수.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1.4

AG:ea360/0740c25.1 · 교차 검사

「彼云何漏恭敬所斷?

「그것은 어떤 것이 공경으로 끊어지는 번뇌인가?

주 한역의 일곱 항 중 이 항은 내용(26.2의 추위·굶주림·나쁜 말·고통을 견딤)이 팔리 24 `adhivāsanā pahātabbā`(인내로 끊어질 번뇌)에 걸리지만, 이름은 `恭敬`(공경)으로 달라 개별 어휘가 갈린다. 팔리는 둘째가 `saṃvara`(단속), 셋째가 `paṭisevana`(수용), 넷째가 `adhivāsanā`인데 한역은 견(見) 다음에 공경, 그다음 친근(0741a01.1)이 와 항의 순서와 구성이 다르다. `恭敬`은 확정역이 없고 뜻이 서는 대로 「공경」으로 옮겨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사전 恭敬 ① 이 경 0740c26.1 참조. `云何`는 의문 어미, `所斷`은 관형절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MN 2:24.1

AG:ea360/0740c26.1 · 교차 검사

於是,比丘!堪忍飢寒,勤苦風雨、蚊虻、惡言、罵辱,身生痛腦,極為煩疼,命垂欲斷,便能忍之。

여기서 비구여!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고, 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 나쁜 말, 꾸짖음과 모욕에 고되게 애쓰며, 몸에 아픔과 번민이 생겨 몹시 번거롭고 아프게 되어 목숨이 끊어지려 해도 곧 그것을 견딜 수 있다.

주 팔리 24.2~24.3(추위·더위·굶주림·목마름, 등에·모기·바람·햇볕·기는 것, 나쁜 말, 몸의 극심한 느낌을 견딘다)에 대응하되 항이 줄고 달라졌다 — 한역의 `風雨`는 팔리 `vātātapa`(바람·햇볕), 한역에 더위·목마름은 없다. `痛腦`의 `腦`는 저본 글자이고 【宋】【元】【明】【聖】은 `惱`(번민)이다(교감주 `腦=惱`); 뜻이 서는 `惱`로 읽되 저본 글자를 신고한다. `勤苦`는 「애쓰고 괴로워함」(사전 勤苦 ①), `堪忍`은 「견디다」(사전 堪忍 ①), `便能忍之`의 `能`은 「-ㄹ 수 있다」, `為`는 「~이 되다」. `蚊虻`은 음의 표제어 蚊虻이 있으나 글자 풀이(慧琳 0385b20)에 뜻이 없어 인용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4.2-24.3

AG:ea360/0740c26.2 · 교차 검사

若不爾者,便起苦惱。

만약 그렇지 않으면 곧 괴로움과 번민이 일어난다.

주 팔리 24.4 `yañhissa … anadhivāsayato uppajjeyyuṃ āsavā vighātapariḷāhā`(견디지 않으면 괴로움과 열뇌를 낳는 번뇌들이 일어난다)에 대응하나, 한역은 일어나는 것이 「번뇌」가 아니라 `苦惱` 자체이다. `若`은 연결어미 「-면」으로, `者`는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4.4

AG:ea360/0740c28.1 · 교차 검사

設復能堪忍者,如是不生,是謂此漏恭敬所斷。

가령 또 견딜 수 있다면 이와 같이 생기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이 번뇌가 공경으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팔리 24.4 후반(견디면 그 번뇌들이 생기지 않는다)과 24.5 결어 `ime vuccanti … adhivāsanā pahātabbā`에 대응. `如是不生`의 주어가 생략되어 앞 구의 `苦惱`인지 `漏`인지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불확실:격·태·구문]. 앞 문장(0740c28.1)의 흐름에 따라 「괴로움과 번민」으로 읽을 수 있으나 본문에는 주어를 보태지 않았다. `設復`의 `復`은 반복이 아니라 가정의 보조로 보아 「가령 또」로 옮겼고, `能`은 「-ㄹ 수 있다」, `所斷`은 관형절. 恭敬 처리는 0740c26.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4.4-24.5

AG:ea360/0740c29.1 · 교차 검사

「彼云何漏親近所斷?

「그것은 어떤 것이 친근함으로 끊어지는 번뇌인가?

주 팔리 23.1 `katame āsavā paṭisevanā pahātabbā`(수용으로 끊어질 번뇌)에 대응하는 항이나, 팔리는 이 항이 단속(22) 다음의 셋째이고 한역은 공경(팔리 24에 해당) 뒤에 온다(자리바뀜). `親近`은 확정역이 없어 「친근함」(가까이함)으로 옮긴다. `云何`·`所斷`은 앞 항과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MN 2:23.1

AG:ea360/0741a01.1 · 교차 검사

於是,比丘!持心受衣,不興榮飾,但欲支其形體,欲除寒熱,欲令風雨不加其身,又覆形體不令外露。

여기서 비구여! 마음을 지녀 옷을 받되 영화로운 꾸밈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그 몸을 지탱하고자 하며, 추위와 더위를 없애고자 하고, 바람과 비가 그 몸에 가해지지 않게 하고자 하며, 또 몸을 덮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한다.

주 팔리 23.2~23.3(근원에 맞게 숙고하며 옷을 쓴다 — 추위·더위, 등에·모기·바람·햇볕·기는 것을 막고 부끄러운 곳을 가리기 위해서)에 대응. 한역에는 `持心`(마음을 지님; 팔리 `paṭisaṅkhā yoniso`에 해당하는 자리로 보이나 글자가 다르다), `不興榮飾`(꾸밈을 일으키지 않음), `支其形體`(몸을 지탱함)이 더 있고, 팔리의 등에·모기·햇볕·기는 것은 `風雨`로 줄었다. `受衣`의 `受`는 「받다」, 사전 `心受`는 `持心受衣`를 잘못 끊은 표제로 보여 인용하지 않는다. `但`은 「오직 ~만을」의 한정이 실려 「다만」을 살렸다. `令`×2는 사역 「-게 하다」. 이문: 【宋】【元】【明】은 `欲`→`使`(0741001) — 저본(大)대로.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2-23.3

AG:ea360/0741a01.2 · 교차 검사

又持心隨時乞食,不起染著之心,但欲趣支形體,使故痛得差,新者不生;守護眾行,無所觸犯,長夜安隱而修梵行,久存於世。

또 마음을 지녀 때에 따라 걸식하고,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다만 몸을 지탱하는 데로 나아가고자 하여, 옛 아픔은 낫게 하고 새것은 생기지 않게 한다. 여러 행을 지켜 보호하고, 건드려 범함이 없으며, 긴 밤을 편안하고 안온하게 청정한 행을 닦아 오래도록 세상에 머문다.

주 팔리 23.4~23.5(탁발음식을 쓰되 놀이·취함·꾸밈·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몸의 유지와 존속, 해침을 그침, 청정한 삶의 도움을 위해서이며, 옛 느낌은 없애고 새 느낌은 일으키지 않으며, 지탱함과 허물없음과 편안한 머묾이 있을 것이다)에 대응한다. 한역은 놀이·취함 등의 항이 `不起染著之心` 하나로 접혀 있고, `守護眾行, 無所觸犯`·`久存於世`는 팔리에 해당 문장이 없다. `隨時`는 「때에 따라」, `梵行`은 의역 유형이라 「청정한 행」으로 옮긴다(`梵`=청정, 음의 梵行 慧琳 0698c19 인용). `安隱`은 「편안하고 안온하게」로 옮기고(사전 安隱 ①) 음의·전거 `安隱`/`svastha`는 근거로만 둔다. 이문: 【宋】【元】【明】【聖】 `又復`, 【元】【明】 `痛`→`疾`, 【宋】【元】【明】 `差`→`瘥` — 모두 저본(大)대로. `使`는 사역, `得`은 「-게 되다」(획득이 아니라 결과), `所`·`者`·`而`는 흡수. 교정: `乞食` 뒤 연결을 양보·대조가 실리지 않은 단순 병렬로 보아 「걸식하고」로 고쳤다(회피어 「~하되」 제거, 원문에 양보 표지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4-23.5

AG:ea360/0741a04.1 · 교차 검사

復持心意親近床座,亦不著榮華服飾,但欲除飢寒、風雨、蚊虻之類,趣支其形,得行道法。

다시 마음과 뜻을 지니고 침상과 자리를 가까이하며, 또한 화려한 옷과 꾸밈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굶주림과 추위, 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 따위를 없애어 그 몸을 지탱하는 데 나아가고자 하여, 도를 행하는 법을 얻는다.

주 한역은 옷(Pali 23.2-3)과 처소(Pali 23.6-7)에 걸리는 내용을 한 좌표에 함께 싣는다(구조·배열). 「風雨」는 Pali 23.7의 vātātapa(바람·햇볕) 자리, 「飢寒」은 sīta·uṇha(추위·더위) 자리에 서서 한 쌍씩 어휘가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亦不著榮華服飾」에 대응하는 문장은 Pali 23.3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得行道法」의 「得」은 획득(얻는다)과 가능(행할 수 있다) 두 갈래가 서서 획득으로 옮겼다(앞뒤 구간 문맥은 이 구간 밖). 저본 이문: 座=坐【聖】, 본문은 大正 「座」대로. 比丘처럼 수 표지가 없는 낱말은 수를 표시하지 않았다. 교정: `親近床座` 뒤 연결을 양보가 실리지 않은 병렬로 보아 「가까이하며」로 고쳤다(회피어 「~하되」 제거).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3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7

AG:ea360/0741a07.1 · 교차 검사

又復持心親近醫藥,不生染著之心;於彼醫藥,但欲使疾病除愈故,身體得安隱。

또 다시 마음을 지니고 의약을 가까이하고,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그 의약에서 오직 질병이 낫게 하려는 까닭에, 몸이 편안함을 얻는다.

주 「不生染著之心」에 대응하는 문장은 Pali 23.8-9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身體得安隱」은 Pali 23.9의 abyābajjhaparamatāya(괴로움 없음이 으뜸이 되도록)와 자리가 같으나 어휘가 갈린다. 「安隱」은 사전 ①에서 증일아함 46회·32경(발화 첫머리 0) 용례다. 「得」은 획득/가능 두 갈래이나 「편안함을 얻는다」로 옮겼다. 교정: `親近醫藥` 뒤 연결을 양보가 실리지 않은 병렬로 보아 「가까이하고」로 고쳤다(회피어 「~하되」 제거).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8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9

AG:ea360/0741a09.1 · 교차 검사

設不親近者,則生有漏之患。

가까이하지 않으면 번뇌의 우환이 생긴다.

주 「有漏」는 이 경에서 「漏」(Pali의 번뇌 자리)와 같은 자리에 서므로 「번뇌」로 옮겼다(漏는 `[정형구 행]` 낱말이라 확정역이 아니다 — 문맥 판단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이후 좌표의 「번뇌」는 같은 판단을 따른다). 「患」은 Pali 23.10의 vighātapariḷāhā(괴롭힘과 열뇌)와 자리가 같으나 어휘가 갈린다. 「設…者」는 조건절로 흡수했다. Pali 23.10은 가까이하지 않는 경우와 가까이하는 경우를 한 문장에 담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10

AG:ea360/0741a11.1 · 교차 검사

若親近,則無有漏之患,是謂此漏親近所斷。

가까이하면 번뇌의 우환이 없으니, 이를 일러 이 번뇌는 가까이함으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親近」은 Pali paṭisevanā의 자리(23.1·23.11)에 선다. Pali 23.10이 한 문장에 담은 두 경우가 한역에서는 두 좌표(0741a11.1·0741a12.1)로 나뉜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3.10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3.11

AG:ea360/0741a12.1 · 교차 검사

「彼云何有漏遠離所斷?

「그 멀리함으로 끊어지는 번뇌란 어떤 것인가?

주 「遠離」는 Pali parivajjanā 자리. 「彼」에 대응하는 낱말은 Pali 25.1에 없으나 한 요소의 차이로 보아 갈림으로 세우지 않는다. 「所斷」은 관형절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5.1

AG:ea360/0741a13.1 · 교차 검사

於是,比丘!除去亂想,猶如惡象、駱駝、牛、馬、虎、狼、狗、蛇蚖、深坑、危岸、柘棘、峻崖、濕泥,皆當遠離之。

여기에서 비구여!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고, 사나운 코끼리, 낙타, 소, 말, 호랑이, 이리, 개, 뱀과 도마뱀, 깊은 구덩이, 위태로운 언덕, 산뽕나무 가시덤불, 험한 벼랑, 젖은 진흙 같은 것을 모두 멀리하라.

주 Pali 25.2는 코끼리·말·소·개·뱀·그루터기·가시밭·구덩이·낭떠러지·진창·하수 순서로 열거하고, 한역은 코끼리·낙타·소·말·호랑이·이리·개·뱀과 도마뱀·구덩이·언덕·가시덤불·벼랑·진흙 순서로 열거한다 — 배열과 항목이 모두 갈린다(낙타·호랑이·이리는 Pali에 없고, Pali의 그루터기는 한역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除去亂想」에 대응하는 문장은 Pali 25.2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除去亂想,猶如…」는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되 …같은 것을 멀리하라」로 읽었으나 「猶如」가 앞 구를 비유로 받는지 뒤 열거를 받는지 구두가 갈린다. 「蛇蚖」은 음의 慧琳 0531c02(玄中記 인용: 蚖은 독이 있는 네발 도마뱀 모양)를 참고만 했다. 「柘棘」 저본 이문: 柘=荊【聖】, 棘=蕀【聖】. 「濕泥」 저본 이문: 濕=深【宋】【元】【明】, 涅【聖】 — 본문은 大正 「濕」대로. 「駱駝」는 전거표에 범어 후보 uṣṭra(당대)가 실려 있으나 뜻 확인용 참고일 뿐이다. 「當」은 어미 「-라」가 진다. 「於是」는 「여기에서」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5.2

AG:ea360/0741a13.2 · 교차 검사

莫與惡知識從事,亦復不與惡人相近,能熟思惟不去心首,設不將護者,則生有漏;設擁護者,則不生有漏,是謂有漏遠離所斷。

나쁜 벗과 함께 일하지 말고, 또한 나쁜 사람과 가까이하지도 말며, 깊이 생각하여 마음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수 있으니, 돌보아 보호하지 않으면 번뇌가 생기고, 감싸 보호하면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 이를 일러 번뇌는 멀리함으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惡知識」은 Pali 25.3의 pāpake mitte(나쁜 벗들) 자리다. 「知識」은 사전(惡知識 ⑥)에서 「남에게 알려진 사람」의 뜻으로 풀리나 후대 주석이라 「벗」으로 옮겼다. Pali 25.3의 자리(anāsana)·행동 영역(agocara)·현명한 동료 수행자에 대응하는 문장은 한역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熟思惟不去心首」는 「心首」(마음의 머리/으뜸)와 「能」의 걸림이 갈려 구두가 서지 않는다 — 「깊이 생각하여 마음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수 있으니」로 옮기되 판단을 남긴다. 「將護」와 「擁護」는 같은 자리에서 두 낱말로 선다(Pali는 parivajjayato 하나). 「思惟」는 뜻으로 옮기라는 3분할 표에 따라 「생각함」 계열로 옮겼다. 「亦復」은 「또한」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5.3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5.4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5.5

AG:ea360/0741a16.1 · 교차 검사

「彼云何有漏娛樂所斷?

「그 즐김으로 끊어지는 번뇌란 어떤 것인가?

주 「娛樂」(즐김)은 Pali 26.1의 vinodanā 자리다. 낱말의 뜻이 서로 같은지는 이 투입물로 판정되지 않는다. 사전 ① 娛樂은 증일아함 45회·22경으로 나오고 음의 慧琳은 「娛亦樂」으로 풀 뿐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6.1

AG:ea360/0741a19.1 · 교차 검사

於是,比丘!生欲想而不捨離,設起瞋恚想,亦不捨離,設復起疾想,亦不捨離,設不捨離者,則生有漏;能捨離者,便能不起有漏。

여기에서 비구여! 욕망의 생각이 일어나도 버려 떠나지 않고, 설령 성냄의 생각이 일어나도 또한 버려 떠나지 않으며, 설령 다시 미워하는 생각이 일어나도 또한 버려 떠나지 않으니, 버려 떠나지 않으면 번뇌가 생기고, 버려 떠날 수 있으면 곧 번뇌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주 세 가지 「想」은 Pali 26.2의 세 vitakka(감각적 욕망·악의·해침의 생각) 자리와 순서가 같다. 「疾想」의 「疾」은 미워함·질투·해로움 등으로 갈려 「미워하는 생각」으로 옮겼다(Pali의 세 번째 자리와 같은 자리라는 사실은 증언에서 안 것이므로 본문에 들이지 않았다). Pali 26.2의 나머지 문장(생겨난 악하고 해로운 법들)과 Pali의 단속 동사 열(nādhivāseti pajahati …)에 한역은 「捨離」 하나로 대응한다. 저본 이문: 「能捨離者」의 能 앞에 設이 있는 판본(設能【宋】【元】【明】)이 있다 — 본문은 大正대로. 「欲想」은 사전 ① 증일아함 36회·14경.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6.2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6.3

AG:ea360/0741a19.2 · 교차 검사

是謂此漏娛樂所斷。

이를 일러 이 번뇌는 즐김으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Pali 26.4의 맺음 문장 자리.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6.4

AG:ea360/0741a22.1 · 교차 검사

「云何有漏威儀所斷?

「어떤 것이 위의로 끊어지는 번뇌인가?

주 「威儀」는 Pali 22.1의 saṃvarā(단속) 자리에 선다 — 어휘가 갈린다. 「威儀」는 한국 불교계에서 쓰이는 「위의」를 그대로 썼다. Pali 쪽 순서는 견·단속·사용·감내·피함·제거·닦음이고 한역(이 구간)은 가까이함·멀리함·즐김·위의·생각함 순이라 항목의 배열이 갈린다(앞 구간 항목은 이 구간 밖).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2.1

AG:ea360/0741a23.1 · 교차 검사

於此,比丘!若眼見色不起色想,亦不起染污之心,具足眼根,亦無缺漏而護眼根。

여기서 비구여! 눈으로 색을 보아도 색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물들어 더러워진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눈의 감관을 갖추어 또한 빠지거나 새는 것 없이 눈의 감관을 지킨다면,

주 「眼根」을 지키는 내용은 Pali 22.2-3의 cakkhundriyasaṃvara 자리다. 「不起色想」「不起染污之心」「無缺漏」에 대응하는 낱말은 Pali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缺漏」의 漏는 번뇌가 아니라 「새다」의 뜻으로 읽었다(음의 慧琳 0617b18: 漏는 泄·穿). 「若…」 조건절의 귀결이 이 좌표에 없다 — 0741a27.1에서 새 「若」 조건이 시작하므로 이 좌표는 열린 채로 둔다. 저본 이문: 此=是【宋】【元】【明】.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2.2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2.3

AG:ea360/0741a23.2 · 교차 검사

若耳聞聲、鼻嗅香、舌知味、身知細滑、意知法,都不起染污之心,亦不起想著而護意根。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부드러운 감촉을 알고, 뜻으로 법을 알아도, 모두 물들어 더러워진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또한 생각에 집착함을 일으키지 않아 뜻의 감관을 지킨다면,

주 Pali 22.4는 귀·코·혀·몸·뜻의 감관 단속을 이름만 들고 사이를 …pe…로 접어 두었다. 한역은 감관마다 「듣고·맡고·알고」의 동사를 붙여 열거하는 점이 다르다(Pali에는 이 동사 구가 없다). 「染污之心」「想著」에 대응하는 낱말은 Pali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細滑」은 음의 慧琳 0685a13(細=小·微)을 참고해 「부드러운 감촉」으로 옮겼다(촉의 대상을 가리키는 쓰임으로 읽음). 「護意根」의 「意根」은 사전에서 「意」가 이 경 0741a07.1·0741b01.1에도 나온다. 앞 좌표와 같은 열린 조건절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2.4

AG:ea360/0741a25.1 · 교차 검사

若不攝其威儀,則生有漏;若攝其威儀者,則無有漏之患。

그 위의를 거두지 않으면 번뇌가 생기고, 그 위의를 거두면 번뇌의 우환이 없다.

주 「攝其威儀」(그 위의를 거둠)는 Pali 22.6의 saṃvaraṃ saṃvutassa(단속을 단속하는 이에게) 자리에 선다 — 어휘가 갈린다. 「無有漏之患」의 「有」는 존재로 읽어 「번뇌의 우환이 없다」로 옮겼다. 앞 두 좌표(0741a23.2·0741a25.1)의 조건절과 이 좌표의 귀결 관계는 한문만으로는 서지 않아 이 구간 안에서는 별개 문장으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2.6

AG:ea360/0741a27.1 · 교차 검사

是謂此漏威儀所斷。

이를 일러 이 번뇌는 위의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Pali 22.7 맺음 문장 자리.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2.7

AG:ea360/0741a29.1 · 교차 검사

「彼何等有漏思惟所斷?

「그 어떤 것이 생각함으로 끊어지는 번뇌인가?

주 「思惟」는 Pali 27.1의 bhāvanā(닦음) 자리에 선다 — 어휘가 갈린다. 3분할 표가 「思惟」를 의역으로 분류해 뜻으로 「생각함」을 썼다. 전거표는 思惟↔Bhāvana를 실으나 다른 부(MA)의 대역이라는 주의가 붙어 있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7.1

AG:ea360/0741a29.2 · 교차 검사

於是,比丘!修念覺意,依無欲、依無污、依滅盡而求出要,修法覺意、精進覺意、喜覺意、猗覺意、定覺意、護覺意,依無欲、依無污、依滅盡而求出要。

여기에서 비구여! 마음에 새김의 깨달음의 뜻을 닦되, 욕심 없음에 의지하고 더러움 없음에 의지하고 사라져 다함에 의지하여 벗어남의 요체를 구하며, 법의 깨달음의 뜻, 정진의 깨달음의 뜻, 기쁨의 깨달음의 뜻, 기댐의 깨달음의 뜻, 안정의 깨달음의 뜻, 지킴의 깨달음의 뜻을 닦되, 욕심 없음에 의지하고 더러움 없음에 의지하고 사라져 다함에 의지하여 벗어남의 요체를 구한다.

주 일곱 항(念·法·精進·喜·猗·定·護)은 Pali 27.2-3의 일곱 항(sati·dhammavicaya·vīriya·pīti·passaddhi·samādhi·upekkhā)과 순서가 같다. 「覺意」는 3분할 표에서 의역이라 「깨달음의 뜻」으로 옮겼다. 「猗」는 「기대다」와 「아름답다」 두 갈래가 있어 「기댐」으로 옮겼고, 「護」는 「지킴」으로, 「定」은 「안정」으로 옮겼다 — 확정 술어가 없는 자리라 술어·낱말 선택을 남긴다. 의지 구는 한역이 「無欲·無污·滅盡」 셋 뒤에 「出要」를 구하는 꼴이고, Pali는 viveka·virāga·nirodha·vossagga 넷이라 개수와 항목이 갈린다(Pali의 첫 항 viveka에 대응하는 낱말은 한역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Pali는 첫 항에서만 이 구를 쓰고 나머지를 …pe…로 접어 마지막 항 뒤에 다시 적지만, 한역은 구를 두 번 다 펴 쓴다. 「出要」는 사전 ⑥(丁福保, 후대)에서 「출리의 요도」로 풀리나 후대 주석이라 가볍게만 보았다. 「依」는 처소·근거를 가리켜 「-에 의지하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7.2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7.3

AG:ea360/0741b01.1 · 교차 검사

若不修此者,則生有漏之患;設能修者,則不生有漏之患。

이것을 닦지 않으면 번뇌의 우환이 생기고, 닦을 수 있으면 번뇌의 우환이 생기지 않는다.

주 Pali 27.4는 abhāvayato/bhāvayato 대조로 같은 구조다. 「設能修者」의 「能」은 가능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7.4

AG:ea360/0741b04.1 · 교차 검사

是謂此漏思惟所斷。

이를 일러 이 번뇌는 생각함으로 끊어지는 것이라 한다.

주 Pali 27.5 맺음 문장 자리.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7.5

AG:ea360/0741b06.1 · 교차 검사

「若復,比丘!於比丘中諸所有漏,見斷者便見斷之,恭敬斷者便恭敬斷之,親近斷者親近斷之,遠離斷者遠離斷之,威儀斷者威儀斷之,思惟斷者思惟斷之。

「또 만일 비구여! 비구 가운데 있는 모든 번뇌 중에서, 봄으로 끊을 것은 곧 봄으로 끊고, 공경으로 끊을 것은 곧 공경으로 끊고, 가까이함으로 끊을 것은 가까이함으로 끊고, 멀리함으로 끊을 것은 멀리함으로 끊고, 위의로 끊을 것은 위의로 끊고, 생각함으로 끊을 것은 생각함으로 끊는다면,

주 한역(大正)은 여섯 항(見·恭敬·親近·遠離·威儀·思惟)을 들고, Pali 28.1은 일곱 항(dassanā·saṃvarā·paṭisevanā·adhivāsanā·parivajjanā·vinodanā·bhāvanā)을 든다. 배열이 갈리고, 한역에는 「娛樂」 항이 대정 본문에 없다. 다만 宋·元·明 본은 「娛樂斷者娛樂斷之」를 이 자리에 둔다(威 앞에 더함) — 본문은 大正대로 옮기고 이문은 판정하지 않는다. 「恭敬」은 Pali adhivāsanā(참아냄) 자리와 어휘가 갈린다; 이 구간 밖 좌표라 항 대응 전체는 확인하지 않았다. 또한 「便」을 뺀 판본(宋·元·明)이 있다. 「若復」은 가정 어미로 옮겼고 귀결은 0741b10.1의 「是謂」 쪽이다. 「諸所有漏」는 「있는 모든 번뇌」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MN 2:28.1

AG:ea360/0741b06.2 · 교차 검사

是謂,比丘!具足一切威儀,能斷結、去愛,度於四流,漸漸越苦。

이를 일러 비구여! 모든 위의를 갖추고, 매듭을 끊고 애착을 버릴 수 있으며, 네 흐름을 건너, 차츰차츰 괴로움을 넘어선다.

주 「具足一切威儀」는 Pali 28.3의 sabbāsavasaṃvarasaṃvuto(모든 번뇌의 단속으로 단속된) 자리다 — 어휘가 갈린다. 「斷結·去愛」는 Pali의 순서(taṇhā 먼저, saṃyojana 나중)와 반대이며 宋·元·明 본은 「愛結」이라 배열이 또 갈린다. 「度於四流」에 대응하는 문장은 Pali 28.3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Pali의 sammā mānābhisamayā(바르게 아만을 꿰뚫어)에 대응하는 낱말도 확인되지 않는다. 「漸漸越苦」는 Pali antamakāsi dukkhassa(괴로움의 끝을 지었다)와 어휘가 갈리고, 宋·元·明 본은 「於苦際」로 읽어 Pali에 더 가깝다. 본문은 大正대로. 「結」은 「매듭」(번뇌의 속박)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같음 MN 2:28.2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8.3

AG:ea360/0741b10.1 · 교차 검사

是謂,比丘!除有漏之法。

이를 일러 비구여! 번뇌를 없애는 법이다.

주 Pali 전문(mn2)을 읽었으나 이 문장에 대응하는 문장은 없다(28.3 뒤 자리). 가까운 서두 선언은 14.7이지만 같은 자리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28.3

AG:ea360/0741b11.1 · 교차 검사

諸佛世尊常所施行慈念一切有形之類,今已施行。

여러 부처님 세존께서 늘 행하신, 모든 형체 있는 무리를 자애로 생각하는 일을 지금 이미 행하였다.

주 Pali 전문을 읽었으나 대응 문장이 없다(28.3 뒤 자리). 「今已施行」의 주어가 말하는 이(붓다)인지 청중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주어를 비워 두었다. 「諸佛世尊」은 한 구에 佛과 世尊이 함께 서며,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이 경의 다른 자리 世尊, 0741b15.2의 佛). 확정역은 世尊=세존, 佛=부처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저본 이문: 慈=愍【宋】【元】【明】.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28.3

AG:ea360/0741b12.1 · 교차 검사

汝等常樂閑居樹下,勤加精進,勿有懈怠。

너희는 늘 나무 아래에서 한적하게 머물기를 즐기고,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게으름을 두지 말라.

주 Pali 전문을 읽었으나 대응 문장이 없다(28.3 뒤 자리). 「閑居」는 「한적하게 머묾」으로, 「勿有懈怠」는 「게으름을 두지 말라」로 옮겼다. 「精進」은 사전 ① 증일아함 72회·45경.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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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不勤加者,後悔無益。

지금 부지런히 더하지 않으면, 뒤에 후회해도 이익이 없다.

주 Pali 전문을 읽었으나 대응 문장이 없다(28.3 뒤 자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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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是我之訓教。」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주 Pali 전문을 읽었으나 대응 문장이 없다(28.3 뒤 자리). 「訓教」는 「訓」과 「教」가 겹친 복합이라 「가르침」으로 옮기면 「訓」 하나가 흡수된다. 저본 이문: 訓教=教訓【宋】【元】【明】. 한역이 같은 개념에 「教令」·「教命」 같은 다른 한자를 쓰는지는 이 구간 밖이라 확인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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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Pali 28.4(Idamavoca bhagavā)에 대응하는 문장은 한역에 없다. 28.5(Attamanā te bhikkhū … abhinandunti)는 「歡喜」 자리가 같고, 한역은 「奉行」을 더한다. Pali의 주어는 bhagavā(세존)이고 한역은 「佛」이라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이 경의 다른 자리는 世尊). 저본 이문: 比=諸比【宋】【元】【明】 — 大正대로 수를 표시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MN 2:28.4

니까야 대응 일부 MN 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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