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EĀ 340

EĀ 340

교차 검사교차 검사 23현대역 준비 중

(八)

(8)

주 한역 제목 자리는 번호 「八」뿐이고 팔리는 경 이름(여섯 짐승의 비유)을 단다. 교감주 「~S. 35. 206. Chapāna.」는 다카쿠스의 PTS 번호이고, 莊春江은 sn35.247 → 우리 sn35.200으로 잇는다. 두 계열의 번호가 갈리므로(대응 후보 합의 등급 conflict) 어느 쪽도 판정하지 않고 사실만 신고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0.3

AG:ea340/0.1 · 교차 검사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제공된 sn35.200 원문에는 「이와 같이 들었다」에 해당하는 개경 정형구가 없다(경 이름과 번호 247 뒤 곧바로 비유로 들어간다). 聞如是는 이 아함 전권 453회 나오는 개경 정형구다. 如是는 앵커대로 「이와 같이」로 풀고 따로 부사를 얹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00:247.1

AG:ea340/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1) 舍衛는 정착어이므로 정착형 「사위」로 적는다.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 음의)는 이 이름을 「聞者城」·「聞物國」으로 풀고 善見律을 끌어 사람 이름(舍衛)에서 나온 나라 이름이라 한다 — 곧 「사위」는 도성·나라 이름이며 뜻풀이는 문헌마다 갈린다. 전거표: 팔리형 Sāvatthī / 범어형(당대) śravasthi, 두 계통이 둘 다 서고 서로 다르다(⚠다른 부 DA의 대역) — 음역계통으로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제공된 팔리 원문 sn35.200에는 장소 서술이 없어 대응을 못 잡았다(unaligned: 앞 경의 개경 상속 여부는 제공 범위 밖). (2)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로 걸린 덩어리다. 이름으로 판별하고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는다. 慧琳 0368a03: 祇는 祇陀(Jeta 태자)의 음역, 樹는 뜻 — 태자가 자기 나무를 부처님과 승가에 바쳤기에 「祇樹」라 줄여 부른다. 慧琳 0368a05: 給孤獨은 義譯(Anāthapiṇḍika)으로 「친족 없는 이·외로운 이를 구제하겠다고 서원한 큰 부자」의 호칭이다. 園은 동산. 한 이름 안에 음(祇)과 뜻(樹·給孤獨)이 섞였다(전거표: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 ⚠다른 부 DA의 대역). (3) 佛은 [구속] 「부처님」. 이 경은 0.3·0724a05.1에서 佛, 0723c07.1에서 世尊을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으로 각각 고정, 한자는 저본에 그대로 남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35.200:247.1

AG:ea340/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汝等專念而自修己。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오롯이 생각하고 자기를 닦으라.

주 世尊은 [구속] 「세존」, 比丘는 [구속] 「비구」. 이 경에서 같은 분을 0.3·0724a05.1은 佛, 여기서는 世尊으로 부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팔리는 247.1에서 곧바로 비유로 시작하고 이 권면(오롯이 생각하여 자기를 닦으라)은 없다. 專念은 확정역이 없어 「오롯이 생각함」으로 옮겼고 이 경 안에서 통일한다(사전 專念 ① 증일 6회·4경, 이 경 0723c07.1·0723c08.1·0723c13.1; 팔리 대응 칸 없음). 諸는 「-들」이 지고 汝等의 等도 「너희」가 진다. 自修己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이고 己가 따로 있으므로 「자기」 하나로 흡수한다. 而는 「-고」로 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00:247.1

AG:ea340/0723c07.1 · 교차 검사

云何當專念?

어떻게 오롯이 생각해야 하는가?

주 云何의 의문은 어미 「-는가」가 진다. 當은 「-해야 한다」 꼴 어미로 흡수한다. 팔리 sn35.200에는 이 물음(오롯이 생각하는 법)이 없다 — 팔리의 두 물음(247.7, 247.24)은 비제어·제어를 묻는다.

AG:ea340/0723c08.1 · 교차 검사

於是,比丘!可行知行,舉動、進止、屈申、俯仰、著衣法則、睡眠、覺寤、或語、或默,皆悉知時。

여기서 비구여! 행할 수 있는 것은 행함을 알고, 들어 올림과 움직임, 나아감과 멈춤, 굽힘과 폄, 굽어봄과 우러러봄, 옷 입는 법도, 잠, 깸, 혹은 말하고 혹은 침묵하는 것, 모두 때를 안다.

주 팔리 sn35.200에는 이 자세·동작 열거가 없다(팔리 쪽 247.1-247.40을 훑어 확인). 可行知行은 「행할 수 있는 것은 행함을 알고」로 읽었으나 行이 「걷다」인지 「행하다」인지, 可가 「가능」인지 「마땅」인지 저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뒤따르는 열거(舉動·進止·屈申·俯仰…)는 모두 몸의 동작이므로 行도 몸의 행동일 가능성이 크지만 단정하지 않는다. 皆悉知時는 열거를 받아 「모두 때를 안다」로 옮겼다. 睡眠은 3분할 표가 「의역(뜻으로 옮긴다)」로 분류하며 여기서는 동작 열거 안에 서므로 몸의 「잠」으로 옮긴다(사전 睡眠 ⑥ 丁福保의 惛沈 풀이는 후대 아비달마의 눈이라 버린다; 慧琳 0323b10 「睡熟也」·「眠臥也」). 覺寤는 「깸」(慧琳 0373a02 「睡覺也」·「眠寤也」, 사전 覺寤 ① 이 경 포함 증일 4경). 이문: 申은 宋·元·明에 伸(굽힘과 폄 — 「폄」), 俯는 聖에 低(숙임). 본문은 大正의 申·俯대로. 사전의 표제 「衣法」은 저본 `著衣法則`을 기계가 잘못 끊은 것으로 보여 쓰지 않았다(⑥ 선종 衣法 풀이는 이 문맥과 어긋난다). 著衣法則은 「옷 입는 법도」. 於是는 처소 조사 「-서」가 진다. 比丘는 단수 호격이라 「비구여」.

AG:ea340/0723c08.2 · 교차 검사

若復比丘心意專正,彼比丘欲漏未生便不生,已生便滅之;未生有漏使不生,已生令滅之;未生無明漏使不生,已生令滅之。

비구가 마음과 뜻이 오롯하고 바르면, 그 비구는 욕망의 번뇌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면 곧 생기지 않고, 이미 생겼으면 곧 그것을 없앤다.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그것을 없애게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무명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것은 그것을 없애게 한다.

주 팔리 sn35.200에는 번뇌(漏)의 생멸을 서술하는 대목이 없다. 팔리 247.9·247.25의 「생긴 나쁜 불선법들이 남김없이 사라진다」는 맥락만 비슷할 뿐 漏를 말하지 않는다. (1) 漏: [정형구 행] 59번(欲漏)이 「감각적 욕망의 번뇌」로 옮겨져 있으나 이는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저본 문맥(欲漏·有漏·無明漏 세 짝)에서 「번뇌」로 읽고 欲·有·無明을 앞에 붙여 「욕망의 번뇌·존재의 번뇌·무명의 번뇌」로 옮겼다. 漏의 자의(새어 나옴)는 본문에 싣지 않는다. 3분할 표는 欲漏·無明을 「음의합벽(음역자+의역자 혼합)」으로 분류하나 이 이름들에는 음역 글자가 없으므로(전부 뜻으로 옮긴 말) 저본이 이긴다. (2) 有漏의 有는 欲·無明과 짝을 이루는 「존재」(bhava)로 읽었다. 사전의 표제 「生有」는 `未生有漏`를 기계가 끊은 것이라 사전 ⑥ 四有 풀이는 쓰지 않았다. (3) 令滅之: 令이 사역이고 之가 滅의 목적어인데 사역 대상(누가 없애는가)이 저본에 없다. 「그것을 없애게 한다」로 옮기고 구문을 신고한다. 便滅之의 滅은 타동으로 「없앤다」. (4) 若復의 復는 「만약 더(복)」의 고조 어세로 보아 「-면」에 흡수했다. 心意는 「마음과 뜻」, 專正은 「오롯하고 바르다」. 使·令은 둘 다 「-게 하다」(앵커).

AG:ea340/0723c10.1 · 교차 검사

若專念分別六入,終不墮惡道。

오롯이 생각하여 육입을 분별하면 끝내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주 팔리 sn35.200에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서술이 없다. 六入(사전 ① 증일 45회·11경, 사전 ⑥은 참고)은 정착어 「육입」, 惡道는 정착어 「악도」. 若는 「-면」, 終不의 終은 「끝내」로 뜻이 실려 세웠다. 分別은 「분별하다」.

AG:ea340/0723c13.1 · 교차 검사

「云何六入為惡道?

「어떻게 육입이 악도가 되는가?

주 팔리 247.7은 「어떻게 비제어(asaṃvara)가 있는가」를 묻는다. 같은 물음의 자리에서 한역은 「육입이 악도가 된다」고 묻는다 — 물음의 틀은 같고 묻는 대상이 다르다. 為는 「-이 되다」(為…所 피동이 아니다). 云何는 어미 의문형.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35.200:247.7

AG:ea340/0723c14.1 · 교차 검사

眼觀此色,若好、若醜,見好則喜,見惡不喜;若耳聞聲,若好、若醜,聞好則喜,聞不好則不喜;鼻、口、身、意,亦復如是。

눈이 이 색을 보되 좋든 추하든, 좋은 것을 보면 기뻐하고 나쁜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는다. 귀가 소리를 들으면 좋든 추하든, 좋은 것을 들으면 기뻐하고 좋지 않은 것을 들으면 기뻐하지 않는다. 코·입·몸·뜻도 이와 같다.

주 한역의 好/醜, 喜/不喜는 팔리 piyarūpa/appiyarūpa 및 adhimuccati(기운다)/byāpajjati(성낸다)와 같은 자리지만 낱말이 같지 않다(喜는 기쁨, 팔리 byāpajjati는 성냄 —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의 「몸에 대한 새김이 서지 않음 · 마음이 좁음 · 해탈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함」은 한역에 없다. 口는 여섯 감관 열거에서 혀 자리에 서 있는데(눈·귀·코·입·몸·뜻) 저본 글자대로 「입」으로 옮기고 이 자리가 팔리 jivhā(혀)에 해당함을 비고로만 밝힌다. 鼻、口、身、意에 대해서는 「亦復如是」로 평가절을 접었다(이 접기는 정형구·생략 표지 표에 실린 乃至·亦如是·廣說·如上이 아니다 — 같은 기능이므로 펴지 않고 접힌 대로 둔다). 若好、若醜는 「-든」으로, 則은 「-면」에 흡수, 亦復如是의 亦은 비교 대상(여섯 짐승·앞의 눈과 귀)을 잇는 「도」가 진다. 色은 정착어 「색」.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8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10

AG:ea340/0723c14.2 · 교차 검사

猶如有六種之虫,性行各異,所行不同。

마치 여섯 종류의 벌레가 있는 것과 같다. 성품과 행이 각각 다르고 행하는 것이 같지 않다.

주 한역은 비유의 첫머리에서 여섯 짐승의 성품이 서로 다름을 먼저 말하고 사람은 다음 좌표(0723c18.1)에서 나온다. 팔리 247.11은 사람이 여섯 짐승을 잡아 묶는 것에서 시작하며 「다른 영역, 다른 활동 범위」(nānāvisaye nānāgocare)를 짐승에 붙인다. 이문: 有는 宋·元·明에 없다(〔有〕-) — 본문은 大正대로 「있는」. 虫은 이 경 안에서 개·여우·원숭이·물고기·뱀·새까지 가리키므로(0723c18.1) 글자대로 「벌레」로 옮기고 통일한다. 所行은 관형절 「행하는 것」으로 풀었다. 猶如는 「마치 …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11

AG:ea340/0723c17.1 · 교차 검사

若有人取繩纏縛之,取狗、野狐、獼猴、鱣魚、蚖蛇、飛鳥,皆悉縛之,共繫一處而放之。

어떤 사람이 줄을 가져다 그것들을 감아 묶고, 개·들여우·원숭이·철갑상어·살무사·나는 새를 잡아 모두 묶어서, 함께 한곳에 매어 놓아 보내면,

주 팔리는 뱀·악어류·새·개·자칼·원숭이 순(247.12-247.17)으로 하나씩 잡아 단단한 줄로 묶고 247.18에서 가운데 매듭을 지어 놓아 보낸다. 한역의 순서는 개·들여우·원숭이·물고기·뱀·새이고 이어지는 0723c20.2의 순서(개·들여우·물고기·원숭이·뱀·새)와도 다르다(한역 안에서 배열이 흔들린다). 鱣魚: 慧琳 0526c10·0634c20·0654b12는 「大黃魚也, 口在頷下, 大者長二三丈」로 푼다 — 철갑상어류로 읽었다. 팔리 susumāra(악어류)와 낱말이 같지 않다(판정하지 않는다). 蚖蛇: 慧琳 0575c12·0935b17은 抱朴子를 끌어 「蛇類甚多, 唯蚖蛇中人最急」이라 한다 — 독이 센 뱀으로 읽어 「살무사」. 이 뱀을 0723c20.2는 毒蛇라 부른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문: 蚖蛇는 宋·元·明에 蛇蚖, 纏은 聖에 없고 悉은 聖에 來. 野狐는 「들여우」(慧琳 0817a08 「妖獸也」). 獼猴는 「원숭이」(慧琳 0430c24 「沐猴也」). 飛鳥는 「나는 새」. 纏縛之의 之가 가리키는 것(줄에 감을 대상)은 뒤에 열거되는 짐승들로 읽었다 — 어순상 줄이 먼저 나오므로 신고만 한다. 若有人은 「-면」과 주어화 「사람이」로 풀었고(有는 새 인물의 등장을 서술), 而는 「-서」로 흡수, 放은 「놓아 보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35.200:247.11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18

AG:ea340/0723c18.1 · 교차 검사

爾時,六種之虫各有性行。

그때 여섯 종류의 벌레는 각각 성품과 행이 있다.

주 팔리 247.19는 짐승들이 「각자 자기 활동 영역」으로 끌어당긴다고 하여 행동을 말하지만, 한역은 먼저 「각각 성품과 행이 있다」고 선언하고 구체적 행선지를 다음 좌표로 미룬다. 有는 소유·존재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를 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19

AG:ea340/0723c20.1 · 교차 검사

爾時,狗意中欲赴趣村中;野狐意中欲趣赴塜間;鱣魚意中欲趣水中;獼猴意中欲向山林之間;毒蛇意中欲入穴中;飛鳥意中欲飛在空。

그때 개는 마음속에서 마을 안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들여우는 마음속에서 무덤 사이로 나아가고자 하며, 철갑상어는 마음속에서 물속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원숭이는 마음속에서 산림 사이로 향하고자 하며, 독사는 마음속에서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고, 나는 새는 마음속에서 날아서 허공에 있고자 한다.

주 여섯 행선지는 팔리 247.20과 같은 여섯(마을·무덤·물·숲·구멍·허공)이나 짝짓는 순서가 다르고, 팔리의 구멍(vammika)은 개미집이며 한역의 穴은 구멍이다. 팔리는 247.32에서 같은 열거를 둘째 비유에서 되풀이하지만 한역에는 되풀이가 없다. 毒蛇는 앞(0723c18.1)의 蚖蛇와 같은 짐승으로 읽히는데 한자가 다르다 —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문: 赴는 宋·元·明에 起, 趣赴는 起趣. 본문은 大正의 赴趣대로 「나아가고자」·「향하고자」로 옮겼고 起趣가 옳다면 「일어나 향하고자」가 된다. 塜은 塚(무덤)의 이체자. 意中은 「마음속에서」, 欲은 「-고자 한다」. 飛在空은 「날아서 허공에 있고자」.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35.200:247.20

AG:ea340/0723c20.2 · 교차 검사

爾時,六種之虫各各有性行而不共同。

그때 여섯 종류의 벌레는 각각 성품과 행이 있으나 서로 같지 않다.

주 팔리 247.19의 nānāvisayā nānāgocarā(다른 영역, 다른 활동 범위)에 가장 가까우나 한역은 「성품과 행이 같지 않다」고 일반화해 말한다. 앞 좌표(0723c20.1)와 거의 같은 문장이고 不共同이 덧붙은 것이 다르다. 各各은 「각각」, 而는 「-으나」로 흡수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19

AG:ea340/0723c24.1 · 교차 검사

「設復有人取此六種之虫,繫著一處,而不得東、西、南、北。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여섯 종류의 벌레를 잡아 한곳에 매어 두면, 동쪽·서쪽·남쪽·북쪽으로 가지 못한다.

주 팔리 247.26-247.30의 둘째 비유(튼튼한 말뚝·기둥에 매어 둠)에 해당한다. 한역은 말뚝·기둥을 말하지 않고 「한곳에」만 쓴다. 不得東西南北은 得의 보어(가다)가 저본에 없다 — 「가지 못한다」로 보충해 읽었으니 구문을 신고한다. 設復有人의 設은 「가령」이 실린 양보·가정이라 「-면」으로 옮기고 復은 흡수했다. 而는 흡수. 繫著은 「매어 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30

AG:ea340/0723c25.1 · 교차 검사

是時,六種之虫雖復動轉,亦不離故處。

이때 여섯 종류의 벌레가 비록 움직이고 돌더라도 옛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주 팔리 247.33은 짐승들이 지치면 바로 그 말뚝·기둥에 서고 앉고 눕는다고 말한다. 한역은 「움직여도 옛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로 말하여 지침(kilantā)의 계기를 말하지 않는다. 雖復은 「비록 …더라도」(復은 흡수), 뒤의 亦不離의 亦은 앞 양보절을 받는 접속 기능이라 따로 세우지 않았다. 故處는 「옛 자리」, 動轉은 「움직이고 돌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33

AG:ea340/0723c26.1 · 교차 검사

此內六情亦復如是,各各有所主,其事不同,所觀別異,若好、若醜。

이 안의 여섯 정도 이와 같아서, 각각 주관하는 것이 있고 그 일이 같지 않으며 보는 것이 따로 다르니, 좋든 추하든 그러하다.

주 비유를 감관에 적용하는 자리다(팔리 247.22 · 둘째 적용 247.34). 팔리는 몸에 대한 새김이 닦이지 않으면 눈이 마음에 드는 색으로 끌려가고 마음에 안 드는 색은 역겹다고 말하나, 한역은 「각 감관이 맡은 것이 달라 본다」는 일반 진술이다. 六情은 확정역이 없고 사전 六情 ①(증일 16회·9경: 「閉塞六情」·「六情完具」)은 감관 쪽 쓰임을 보여 준다 — 「여섯 정」으로 두고 풀지 않는다(⑥ 丁福保의 「情識이 있어 六根을 六情이라 한다」는 후대 해설이라 참고만). 이 경에서 六入(0723c13.1)과 六情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는 저본만으로 확정되지 않는다. 이문: 主는 宋·元에 生. 本文은 大正의 主 「주관하다」. 所主·所觀은 관형절로 풀었다(「하는 바」 회피). 此內는 「이 안의」, 亦復如是의 亦은 「도」가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22

AG:ea340/0723c27.1 · 교차 검사

「爾時,比丘繫此六情而著一處。

「그때 비구는 이 여섯 정을 매어 한곳에 붙여 둔다.

주 팔리 247.36은 말뚝·기둥이 곧 몸에 대한 새김의 다른 이름임을 풀어 준다. 한역은 비유의 매임을 곧바로 비구의 행위(감관을 한곳에 매어 둠)에 옮겨 놓는다. 「한곳」(一處)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새김·專念인지) 저본은 이 좌표에서 말하지 않는다. 爾時는 「그때」, 繫는 「매다」, 著은 「붙여 두다」, 而는 「-어」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36

AG:ea340/0723c29.1 · 교차 검사

是故,諸比丘!當念專精,意不錯亂,是時弊魔波旬終不得其便,諸善功德皆悉成就。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생각을 오롯하고 정밀하게 하라. 뜻이 뒤섞여 어지럽지 않으면 이때 악한 마 파순은 끝내 그 틈을 얻지 못하고, 모든 선한 공덕이 다 이루어진다.

주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하라」는 팔리 247.37(Tasmātiha vo, bhikkhave …)과 같은 권면의 틀이나, 팔리가 권하는 내용은 다음 좌표 247.38(몸에 대한 새김 닦기)이고 한역은 「생각을 오롯하고 정밀하게」이다. 마왕이 틈을 얻지 못함과 선한 공덕의 성취는 팔리에 없다. 弊魔波旬: 3분할 표는 魔波旬을 「의역(뜻으로 옮긴다)」으로 분류하지만, 慧琳 0465b15는 魔를 魔羅(Māra)의 음역으로, 波旬을 波裨旬의 음역으로 풀고(「波旬云罪惡」) 0369a10도 같다 — 소리로 옮긴 말이다. 그래서 저본에 따라 魔·波旬은 한자 독음 「마 파순」으로 적고, 뜻으로 옮긴 글자 弊만 「악한」으로 옮긴다(音義合璧). 한국 불교계에서 「마왕 파순」으로 정착. 전거표: 팔리 후보 Māra pāpiman. 專精은 「정밀」(사전 專精 ① 증일 30회·26경: 「專精一意」·「專精一心」), 當念專精은 「생각을 오롯하고 정밀하게 하라」. 이문: 諸는 宋·元·明에 眾. 得其便은 「그 틈을 얻다」, 是故는 「그러므로」. 錯亂은 「뒤섞여 어지럽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35.200:247.37

AG:ea340/0723c29.2 · 교차 검사

如是,諸比丘!當念具足眼根,便得二果,於現法中得阿那含果,若得阿羅漢果。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생각하여 안근을 갖추라. 곧 두 과를 얻어 현재의 법 가운데서 아나함과를 얻거나, 혹은 아라한과를 얻는다.

주 팔리 sn35.200에는 과위(果)를 말하는 대목이 없다(247.36-247.39 확인). 阿那含果와 阿羅漢果는 음역(3분할)이므로 한자 독음 「아나함과」·「아라한과」. 慧琳 0441c03(阿那含 「此云不還」), 0441b10(阿羅漢 「應供·殺賊·不生·遠惡」 네 풀이)를 인용한다. 전거표의 팔리형은 Anāgāmiphala/Anāgāmin, Arahattaphala로 본문에 쓰지 않는다. 二果는 이 좌표에서 바로 뒤의 두 과(아나함과·아라한과)를 가리키므로, 사전 二果 ⑥(丁福保: 四果의 둘째 一來果)는 이 문맥과 어긋나 버렸다. 當念具足眼根는 「생각하여 안근을 갖추라」로 읽었으나 念과 具足의 관계(생각하여 갖추라 / 갖추도록 생각하라)는 저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眼根은 정착어 「안근」. 於現法中은 「현재의 법 가운데서」, 若得阿羅漢果의 若은 「혹은」(선택).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00:247.38

AG:ea340/0724a02.1 · 교차 검사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팔리 247.39 Evañhi kho, bhikkhave, sikkhitabbaṃ과 같다. 한역은 팔리 247.38에 해당하는 배울 내용(몸에 대한 새김을 닦겠다)을 말하지 않고 닫는다. 當은 「-라」 꼴 어미로 흡수, 作是學은 「이렇게 배우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35.200:247.39

AG:ea340/0724a04.1 · 교차 검사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팔리 247.40은 장 끝 표지(Dasamaṃ — 열째)일 뿐 청중의 환희 결어가 아니다. 佛은 [구속] 「부처님」(0.3과 같은 한자), 세존(0723c07.1)과 한 경 안에서 갈린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所說은 관형절 「말씀하신 것」, 歡喜(慧琳 0753a01 「悅也」)는 「기뻐하다」, 奉行은 「받들어 행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35.200:247.40

AG:ea340/0724a05.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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