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둘)
주 제목 좌표 「(二)」는 순번 표지로 보고 그대로 옮겼다. 저본이 그 이상을 말해 주지 않는다. 이 조각은 직역단독 국면이라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주어지지 않아 두 증언 모두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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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聞如是`는 증일아함 개경 정형구다(정형구표: 이 아함 전권 453, 이 경 1). 한문에 「我」가 없으므로 「나는」을 넣지 않았다. `如`는 배선 앵커대로 「이와 같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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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을 따랐다. 이 경에서 같은 존재를 `佛`(0.3, 0717c17.1)과 `世尊`(0717b29.1)으로 달리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서로 달라 한국어도 「부처님」/「세존」으로 갈린다. / `舍衛`는 정착어(사위)로 정착형을 쓴다. 이름의 뜻: 慧琳 음의(0367c24)가 `舍衛`를 범어 음의 훼전으로 보며 「聞者城」·「聞物國」 등으로 풀고, 善見律을 따라 「舍衛는 사람 이름」이라는 설도 싣는다 — 인용일 뿐 확정이 아니다. / `祇樹給孤獨園`은 대역표가 「5자 이상 — 정형구 조각일 수 있다」며 보류한 것인데,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옮기는 정착어 이름이라 판별했다(전거에 Jetavana, Anāthapiṇḍika). 이름의 뜻: `祇樹`는 祇(음역, 祇陀)+樹(뜻)의 音義合璧으로 「기타 태자의 숲」(慧琳 0368a03),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慧琳 0368a05: 「無親屬…誓救孤獨」), `園`은 동산. 정착형이 `給孤獨`의 뜻을 가리므로 여기에 적어 둔다. 한 경 안에서 「기수급고독원」으로 통일한다. `在`는 부처님 존칭에 맞춰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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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世尊告諸比丘:「汝等當思惟無常想,廣布無常想,已思惟、廣布無常想,盡斷欲界愛,色界、無色界愛,亦斷無明、憍慢。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상이라는 생각을 헤아리고 무상이라는 생각을 널리 펴라. 무상이라는 생각을 이미 헤아리고 널리 펴고 나서, 욕계의 애착과 색계·무색계의 애착을 모두 끊고 또한 무명과 교만을 끊는다.
주 세존은 [구속] 확정역 「세존」. `佛`/`世尊` 흔들림은 0.3 비고 참조. / 인용 부호는 저본 좌표 끝에서 닫히지 않고 0717c16.1에서 닫히므로 여는 부호만 둔다. / `當`은 당위 어미(-라)로 흡수, `諸比丘`는 호격 복수로 「비구들에게」.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어미 「펴라」「끊는다」. / `無常想`은 3분할표가 의역으로 분류하여 「무상이라는 생각」으로 옮겼다(전거 `無常想` ↔ Aniccasaññā는 다른 부(SA)의 대역이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사전 無常想 ① 증일아함 33회·6경). `思惟`는 의역 지시에 따라 「헤아리고」(음독 「사유」 회피). 「이미 … 펴고 나서」의 `已`는 완료로 옮겼고, 뒤의 `盡斷`을 조건(-면)으로 세우지 않고 순차(-고 나서)로 두었다. / `愛`는 사전상 증일아함 115회이나 확정역이 없어 「애착」으로 골랐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欲界`·`色界`·`無色界`는 정착 술어 그대로. `色界、無色界愛`의 `愛`가 `色界`에도 걸리는지 저본이 가르지 않는다 — 0717c04.1의 `欲愛、色愛、無色愛`를 근거로 걸리는 것으로 읽었다 [불확실:구두·분절]. / `亦斷無明、憍慢`의 `亦`는 앞의 愛(三界의 애착)와 다른 대상(무명·교만)을 덧붙이는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 `無明`: 3분할표가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無明`은 음역자가 없는 뜻 옮김(無+明)으로 읽혀 정착 술어 「무명」으로 옮긴다. 표 분류와 읽기가 어긋남을 신고 [불확실:확정역_부재](전거 無明 ↔ Avijjā/ābidyā는 다른 부(SA)의 대역 경고). `憍慢`은 「교만」. / 저본 이문: 宋·元·明은 `惟` 뒤에 `無常想`이 더 있어(교감주 「惟+(無常想)【三】」) 「已思惟無常想、廣布無常想」으로 읽힌다. 본문은 大正을 따랐고, 大正에서는 `思惟`의 목적어를 뒤의 `無常想` 하나가 함께 진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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猶如以火燒焚草木,永盡無餘,亦無遺跡,此亦如是。
마치 불로 풀과 나무를 태우듯이,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고 또한 남은 자취도 없으니, 이것도 이와 같다.
주 `猶如…此亦如是`는 비유와 그 적용의 짝이다. `以火`의 `以`는 조사 「-로」로 흡수. `亦無遺跡`의 `亦`는 앞의 `無餘`에 이어 덧붙는 뜻을 살려 「또한」. / 정형구표가 `亦如是`(이 경 1)를 생략 표지로 걸지만, 이 자리의 `此亦如是`는 비유를 이 경의 가르침에 적용하는 완결문이지 앞 내용을 접은 것이 아니라고 읽었다. 그래서 `[생략표지]`를 달지 않는다. / `遺跡`은 사전상 증일아함에서 이 경에만 나오는 낱말(1회)이라 용례 비교가 없다. / 이문: 宋·元·明은 `燒焚`을 `焚燒`로 적는다(어순 차이, 뜻 같음). 본문은 大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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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修無常想,盡斷欲愛、色愛、無色愛,無明、憍慢永無有餘。
무상이라는 생각을 닦으면 욕망에 대한 애착, 색에 대한 애착, 무색에 대한 애착을 모두 끊고, 무명과 교만도 영원히 남은 것이 없다.
주 `若`은 연결어미 「-면」이 진다. `無有餘`의 `有`는 「남은 것이 없다」로 흡수. `欲愛`는 3분할표의 의역 지시에 따라 뜻으로 「욕망에 대한 애착」, `色愛`·`無色愛`도 같은 꼴로 옮겼다. / 한자 흔들림: 앞 좌표(0717b29.1)의 `欲界愛`·`色界、無色界愛`와 이 좌표의 `欲愛`·`色愛`·`無色愛`는 같은 항목을 가리키는 듯하나 한역이 다른 한자꼴을 쓴다. 한자대로 옮겨 한국어도 달라졌다(「욕계의 애착」/「욕망에 대한 애착」). `愛` 번역어 선택 문제는 0717b29.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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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以然者,比丘!當修無常想時,而無欲心;彼以無欲心,便能分別法,思惟其義,無有愁、憂、苦、惱。
그러한 까닭은, 비구여! 무상이라는 생각을 닦을 때 욕심이 없고, 그는 욕심 없는 마음으로 법을 분별할 수 있고 그 뜻을 헤아리며, 근심·시름·괴로움·번민이 없다.
주 `所以然者`는 「그러한 까닭은」(`者`는 주제화). `當…時`의 `當`은 당위가 아니라 「~할 때」의 시간 구문으로 읽어 「닦을 때」. `而無欲心`의 `而`는 흡수. `彼以無欲心`의 `以`는 「-로」. `便能分別法`: `便`은 「-로」(수단 조사)가 이미 귀결을 지고 있어 흡수했고, `能`은 「-ㄹ 수 있다」. `彼`는 무상이라는 생각을 닦는 비구. / `分別`·`其義`는 사전상 `分別其義`(27회)로 굳은 짝이다. / `愁、憂、苦、惱`는 네 낱말을 나란히 두고 「근심·시름·괴로움·번민」으로 옮겼다. `惱`는 `煩惱`(번뇌)와 구별하려 「번민」을 썼으나 확정역은 없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이 문장 끝 `無有愁…`의 `有`는 「이 있어」를 피해 「이 없다」로 흡수. / 이문: `以`를 宋·元·明은 `已`로 적는다. 본문은 大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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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以思惟法義,則無愚惑、錯誤修行。
그는 법의 뜻을 헤아리면 어리석은 미혹이나 잘못 닦는 일이 없다.
주 `彼以思惟法義,則無…`는 `以`+`則`이 「-면 ~한다」로 흡수된다. `愚惑`은 사전상 증일아함 37회로, 「어리석은 미혹」으로 옮겼다(0717c10.1·0717c13.1에서 같은 꼴 유지). `錯誤修行`은 「잘못 닦는 일」. / 저본 이문: 宋·元·明은 `錯誤修行`을 `設修行人`으로, 聖은 `心設修行`으로 적는다(교감주 「錯誤修行=設修行人【三】,心設修行【聖】」). 뜻이 갈릴 만한 차이(예: 「가령 수행하는 사람이 …」)이나 본문은 大正을 따랐고, 이문 쪽 읽기로 옮기지 않았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以`→`已`(宋·元·明)은 단순 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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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見有鬪諍者,彼便作是念:『此諸賢士不修無常想,不廣布無常想,故致此鬪訟耳。
만약 다투는 이를 보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어진 이들은 무상이라는 생각을 닦지 않았고 무상이라는 생각을 널리 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싸움과 송사에 이른 것일 뿐이다.
주 `若`은 「-면」, `見有鬪諍者`의 `有`는 「다투는 이를 보면」으로 흡수(존재를 따로 서술하는 자리가 아님), `者`는 「이」. `彼便作是念`의 `便`은 「이렇게 생각한다」가 지는 것으로 보아 흡수. `故`는 「그러므로」, `耳`는 단정 「-일 뿐이다」. / `賢士`는 확정역이 없어 「어진 이들」로 옮겼다. 사전 賢士 ① 증일아함 11회 중 `此諸賢士` 6회, 비구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보이나 이 좌표에서 단정하지 않는다. `此諸`의 `諸`는 복수 표지라 「이 어진 이들」. / 한자 흔들림: 같은 사안을 `鬪諍`(다투는 이)과 `鬪訟`(싸움과 송사)으로 달리 적는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한자대로 「다투는」/「싸움과 송사」로 옮겼다. 慧琳 음의(0429a19)는 `鬪諍`의 음·자형만 풀고 뜻의 근거는 주지 않는다. / 인용 부호 『…』는 저본 좌표 끝에서 닫히지 않고 0717c10.1에서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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彼以鬪諍,不觀其義;以不觀其義,則有迷惑之心;彼以執此愚惑,而命終入三惡道,餓鬼、畜生、地獄中。』
그는 다툼으로 인해 그 뜻을 살피지 않고, 그 뜻을 살피지 않으므로 미혹한 마음이 있게 되며, 그는 이 어리석은 미혹을 붙잡음으로 목숨이 다해 삼악도로, 아귀·축생·지옥 가운데로 들어간다.』
주 `彼以鬪諍`·`以不觀其義`·`彼以執此愚惑`의 `以`는 이유·수단으로 「-로 인해」「-므로」「-ㅁ으로」에 풀었다. `則有迷惑之心`의 `則`은 「-면」 귀결에 흡수했으나 여기서는 앞이 이유절이라 「-므로 …있게 되며」로 이었다. 이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게 되며」를 세웠다. / `彼`는 이 좌표에서 앞 좌표의 다투는 이를 가리킨다고 읽었다(0717c05.1의 `彼`와 다른 사람). / `觀其義`: `觀`은 「살피다」. 0717c13.1의 `觀法`·`觀其義`도 같은 말로 유지. `見`(0717c08.1)과 구별된다. / 한자 흔들림: `愚惑`(0717c07.1·0717c13.1)과 `迷惑`(이 좌표)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듯하나 한역이 다른 한자를 쓴다. 한자대로 「어리석은 미혹」/「미혹」으로 옮겼다. 사전상 `迷惑`은 증일아함 5회뿐이다. / `命終`은 「목숨이 다해」. `三惡道`는 정착 술어 「삼악도」로 두고, 뒤따르는 `餓鬼、畜生、地獄中`은 같은 항목의 나열로 보아 쉼표로 이어 「아귀·축생·지옥 가운데로」. `三惡道`와 그 뒤 나열이 동격인지는 저본에 접속사가 없어 구두로만 정해진다 [불확실:구두·분절]. / 이문: `以`→`已`(宋·元·明) 세 곳, 단순 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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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故,諸比丘!當修無常想,廣布無常想,便無瞋恚、愚惑之想,亦能觀法,亦觀其義。
그러므로 비구들아, 무상이라는 생각을 닦고 무상이라는 생각을 널리 펴라. 곧 성냄과 어리석은 미혹의 생각이 없고, 또한 법을 살필 수 있고 또한 그 뜻을 살핀다.
주 `是故`는 「그러므로」. `當修…,廣布…`는 당위(-라) 어미 「닦고…펴라」. 앞 문장과 달리 `便`은 명령형 뒤라 「-면」으로 흡수할 어미가 없어 「곧」으로 세웠다. `瞋恚`는 3분할표 의역 지시에 따라 「성냄」(慧琳 음의 0803c16은 음·자형만 푼다). `愚惑之想`은 「어리석은 미혹의 생각」. `亦能觀法,亦觀其義`의 두 `亦`은 병렬되는 두 동작을 나란히 세워 「또한」을 둘 다 남겼다. `能`은 「-ㄹ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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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命終之後,生三善處,生天上、人中、涅槃之道。
만약 목숨이 다한 뒤면 세 좋은 곳에 태어나고, 천상과 인간 가운데와 열반의 길에 태어난다.
주 `若…之後`는 「-면」으로 흡수. `三善處`는 확정역이 없어 뜻으로 「세 좋은 곳」으로 옮겼고, 뒤의 `生天上、人中、涅槃之道`가 그 세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生…`을 두 번 적은 한문의 반복은 그대로 두었다. / `涅槃`: 3분할표는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涅槃`은 음역(nirvāṇa; 慧琳 0463b14는 「圓寂」이라는 뜻 풀이도 싣는다)이라 한자 독음 「열반」으로 옮겼다. 표 분류와 읽기가 어긋난다 [불확실:확정역_부재](전거 涅槃 ↔ Nibbāna/nirvāṇa). `涅槃之道`는 「열반의 길」. / 저본 이문: 宋·元·明은 `之`와 `善`이 없어(교감주 「〔之〕-【三】」·「〔善〕-【三】」) 「生三處,生天上人中涅槃道」로 읽힌다.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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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아, 이렇게 배워라.」
주 `當作是學`의 `當`은 당위 어미(-라)로 흡수했다. 인용 부호는 여기서 닫힌다(0717b29.1에서 열림). `如是`는 「이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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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 같은 존재를 앞(0717b29.1)에서는 `世尊`으로 적었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0.3 비고 참조). `所說`의 `所`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사전상 증일아함 450경에 걸친 맺음 정형구다(歡喜 앞 `所說` 450, 뒤 `奉行`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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