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
(11)
주 이 조각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아 두 증언 항 모두 미대응(unaligned)으로 두었다. 이후 좌표도 같다. 제목 「(一一)」의 一一을 품 안 경 번호 11로 읽었다 — 같은 꼴 「(一一)」이 ea140/0.1에도 서는 것이 근거다(사전 一一 ③ 용례). 다른 읽음은 「하나하나」(사전 一一 ⑥ 후대 풀이 「逐一」)이며, 저본만으로는 가르지 못했다.
聞如是:
이렇게 들었다.
주 聞如是의 如는 지시어 如是의 일부라 「이렇게」로 흡수했다. 이 아함 전권에서 개경 정형구로 453회 나온다(_정형구_생략표지).
一時,佛在羅閱城加蘭陀竹園所,與大比丘眾五百人俱。
한때 부처님께서 라열성의 가란타 대나무 동산에서 큰 비구 대중 오백 명과 함께하셨다.
주 加蘭陀竹園所의 所는 처소 명사화이므로 「~에서」로 흡수했다. 加=迦【明】(이문)이며 독음은 같다. 迦蘭陀는 소리를 옮긴 것(음역), 竹園은 뜻을 옮긴 것이라 한 이름 안에서 音義가 섞였다(音義合璧) — 「가란타」+「대나무 동산」.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601c04 〔出生菩提心經〕에 「迦蘭䭾迦…鳥名」. 전거: 팔리 후보 Kalandaka / 범어 근대 Kāraṁḍava·Karaṁḍa — 두 계통이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 羅閱은 3분할 표에 의역으로 올라 있으나 저본의 한자는 소리를 옮긴 것으로 판단해(慧琳 0356c04 〔放光般若經〕 「羅閱祇…王舍城」) 한자 독음 「라열」로 적었고, 정착형 「왕사성」으로 바꾸지 않았다. 이 판단은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남긴다. 大比丘眾의 比丘는 [구속] 「비구」, 佛은 [구속] 「부처님」. 與…俱는 「~와 함께」.
爾時,阿闍世王告群臣曰:「汝等速駕羽寶之車,吾欲往見世尊!」
그때 아사세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어서 깃털 보배의 수레에 멍에를 메워라. 나는 가서 세존을 뵙고자 한다!”
주 阿闍世는 정착형 「아사세」. 뜻은 「아직 나지 않은 원한」(未生怨) — 一切經音義(慧琳) 0464c03·0475c23 〔大般涅槃經音義〕. 전거: 팔리 Ajātasattu / 범어 근대 Ajātaśatru, 두 계통이 갈리며 판정하지 않는다. 羽寶之車: 寶=葆【元】【明】(이문). 葆는 「五色羽를 모은 것」(玄應·慧琳 0787b07 〔出曜經〕, 사전 羽寶 ⑤)이므로 羽寶는 깃털로 꾸민 덮개일 수 있으나, 저본 글자대로 「깃털 보배」로 옮겼다. 駕는 「멍에를 메우다」로 읽었다. 吾欲往見에서 欲은 의지 어미 「-고자」가 진다.
是時,群臣受王教勅,即駕羽寶之車,前白王言:「嚴駕已辦,王宜知時。」
이때 신하들이 왕의 분부를 받아 곧 깃털 보배의 수레에 멍에를 메우고, 앞으로 나아가 왕께 아뢰었다. “수레 채비가 이미 갖추어졌으니, 왕께서는 때를 아셔야 합니다.”
주 教勅은 「분부」(사전 教勅 ① 受王 8). 宜知時의 宜는 당위라 어미 「-야 합니다」가 지고, 知時는 「때를 알다」(지금이 그때임을 안다는 뜻으로 읽힌다). 嚴駕已辦은 「수레 채비가 갖추어짐」. 이문: 寶=葆【元】【明】, 已=以【聖】 —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時,王乘寶羽之車,往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그때 왕은 보배 깃털의 수레를 타고 세존 계신 곳에 가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앞 좌표들은 「羽寶之車」, 이 좌표는 「寶羽之車」로 같은 수레를 글자 순서를 바꿔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 배열을 쓴다. 이문: 寶羽【大】/羽寶【宋】/羽葆【元】【明】, 坐=住【宋】【元】【明】. 在一面坐는 「한쪽에 앉았다」. 所는 「계신 곳」으로 풀었다.
爾時,阿闍世王白世尊言:「唯願世尊受我請,在羅閱城九十日夏坐。」
그때 아사세왕이 세존께 아뢰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청을 받아들이시어 라열성에서 구십 일 동안 여름 안거를 하여 주십시오.”
주 唯願은 청원 정형으로 唯의 한정 뜻이 따로 실리지 않아 「바라옵건대」 하나로 옮겼다(사전 唯 ① 발화 첫머리 91/314). 夏坐는 「여름 안거」로 옮겼다 — 술어집에 확정역이 없고, 丁福保 ⑥(후대)이 「夏安居」로 푼다(사전 夏坐 ⑥). 阿闍世: 0725b15.1 서술 참조(未生怨 · 전거 Ajātasattu / Ajātaśatru). 羅閱城은 0.3 서술 참조.
爾時,世尊默然受王請。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왕의 청을 받으셨다.
주 默然은 「잠자코」(사전 默然 ① 앞 世尊 39).
是時,王見世尊默然受請,即從座起,頭面禮足,便退而去。
이때 왕은 세존께서 잠자코 청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이어 물러나 떠났다.
주 便退而去의 便은 「이어」, 而는 접속이라 흡수했다. 이문: 座=坐【聖】.
是時,阿闍世王隨時供養衣被、飲食、床臥具、病瘦醫藥。
이때 아사세왕은 때에 맞추어 옷과 이불, 음식, 침상과 침구, 병과 수척함에 쓰는 의약을 공양하였다.
주 阿闍世: 0725b15.1 서술 참조(未生怨 · 전거 Ajātasattu / Ajātaśatru). 隨時는 「때에 맞추어」. 床臥具를 「침상과 침구」 한 항목으로 끊었다 — 床과 臥具를 갈라 둘로 볼 수도 있어 끊는 자리가 하나로 서지 않는다(사전 臥具 ③은 「床褥、臥具」로 갈라 쓴 용례를 보인다). 病瘦醫藥은 사전 醫藥 ③의 정형(「病瘦醫藥」)이며, 病瘦를 「병과 수척함」으로 풀었다.
爾時,毘舍離城鬼神興盛,人民死亡不可稱計。
그때 비사리성에는 귀신이 일어나 성하였고, 백성의 죽음을 이루 헤아려 말할 수 없었다.
주 毘舍離는 정착형 「비사리」. 뜻은 「넓고 큼」「넓고 장엄함」 — 一切經音義(慧琳) 0447b17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此翻為廣博…廣嚴」, 0478a23 〔大般涅槃經音義〕 「廣嚴城」. 전거: 팔리 Vesālī만 서고 범어 후보는 없다. 不可稱計는 「이루 헤아려 말할 수 없다」.
一日之中死者百數,鬼神羅剎充滿其中,面目黃色,或經三、四日而死者。
하루 사이에 죽는 이가 백을 헤아렸고, 귀신과 나찰이 그 안에 가득하였으며, 얼굴이 누런빛이고, 혹은 삼·사 일을 지나 죽는 이도 있었다.
주 面目黃色의 주어가 앞 문장의 죽는 이인지 귀신·나찰인지 저본이 말해 주지 않는다 — 앞 절(鬼神羅剎充滿其中) 뒤에 이어져 있어 둘 다 읽힌다. 羅剎은 한자 독음 「나찰」(전거: 범어 당대 rākṣa / 근대 Rākṣasa). 「惡鬼也」라는 풀이는 一切經音義(慧琳) 0464b13 〔大般涅槃經音義〕. 或…者는 「혹은 …이도 있다」로 풀었다. 一日之中의 之는 흡수.
是時,毘舍離人民恐懼,皆集一處,而共論議:「此大城中極為熾盛,土人豐熟,富樂無限,如彼天宮釋所住處。
이때 비사리 백성이 두려워하여 모두 한곳에 모여 함께 의논하였다. “이 큰 성 안은 지극히 번성하였고, 그 땅 사람들은 풍족하고 넉넉하며, 부유하고 즐거움이 끝이 없어, 마치 저 천궁, 석이 머무는 곳 같았다.
주 釋은 釋提桓因의 약칭으로 보이나 이 좌표에는 한 글자뿐이라 「석」으로만 적었다(전거 釋提桓因: 팔리 후보 Sakka-devānam-inda / 범어 근대 Śākradevānāmiṁdra). 土人豐熟: 土=士【明】(이문). 土人을 「그 땅 사람들」로 읽었으나 土(땅)와 人을 갈라 읽을 여지가 있다. 論議=議論【明】/論義【聖】(이문). 如彼天宮釋所住處의 如는 「~같이」(비유)가 실린 자리라 「마치 … 같았다」로 살렸다. 熾盛은 「번성」(사전 熾盛 ① 앞 人民 27). 한역이 같은 사안에 論議를 쓰고 이문이 論義를 두는 흔들림이 있다.
然今日為此鬼神所害,盡當死亡,丘荒猶如山野。
그러나 오늘 이 귀신에게 해를 입어 모두 죽어 없어지겠고, 언덕과 황무지가 마치 산과 들 같아질 것이다.
주 為…所害는 피동이라 「~에게 해를 입어」. 盡當死亡의 當은 미래 어미 「-겠」이 진다. 丘荒의 丘를 「언덕」, 荒을 「황무지」로 읽었으나 「폐허가 된 언덕」일 수도 있다. 丘=坵【聖】(이문). 猶如는 「마치 … 같다」.
誰能有此神德,却此災患?」
누가 이 신묘한 덕을 지녀 이 재앙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주 能은 가능 어미 「-ㄹ 수 있겠는가」가 진다. 有此神德의 有는 「지니다」(소유)로 풀어 「~이 있어」를 피했다. 災患은 「재앙」.
是時,人民各自相謂曰:「我等聞:『有沙門瞿曇,所至到處,眾邪惡鬼不得嬈近。』
이때 백성이 제각기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들었다. ‘사문 고따마가 이르는 곳마다 뭇 삿되고 악한 귀신이 괴롭히며 가까이 오지 못한다.’
주 瞿曇은 [구속] 「고따마」, 沙門은 한자 독음 「사문」(전거: 팔리 Samaṇa / 범어 근대 Śramaṇa, 瞿曇: 팔리 Gotama / 범어 근대 Gautama — 두 계통이 갈린다). 各自相謂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하고 各自·相만 「제각기 서로」로 옮겼다. 有沙門瞿曇의 有는 소개하는 말투라 「~이 있어」 대신 주어로 흡수했다. 不得은 가능 부정 「-지 못한다」. 嬈近은 「괴롭히며 가까이 오다」(嬈는 「擾戲弄」 — 一切經音義(慧琳) 0487c15 〔音妙法蓮花經〕). 이문: 各=各各【宋】【元】【明】【聖】.
若當如來來至此者,此諸鬼神各自馳散。
만약 여래께서 이곳에 오시면 이 여러 귀신이 제각기 달아나 흩어질 것이다.
주 若當…者는 가정이라 연결어미 「-면」이 진다(當은 흡수). 各自馳散의 自는 대조 없는 재귀라 흡수하고 各만 「제각기」로 옮겼다.
但今日世尊在此羅閱城住,為阿闍世所供養,將恐不來此間遊化。」
다만 오늘 세존께서 이 라열성에 머무시며 아사세에게 공양을 받으시니, 이곳에 와 다니며 교화하지 않으실까 걱정된다.”
주 但은 앞 희망과 뒤집는 대조가 실려 「다만」으로 세웠다. 將恐은 「~일까 걱정된다」. 遊化는 「다니며 교화하다」(사전 遊化 ① 뒤 來至 2). 為阿闍世所供養은 피동 「~에게 공양을 받다」. 阿闍世·羅閱은 0725b15.1·0.3 서술 참조. 이문: 住=中【宋】【元】【明】【聖】(「이 라열성 가운데」).
或復有作是說:「如來有大慈悲,愍念眾生,遍觀一切,未度者使令得度,不捨一切眾生,如母愛子。
혹은 또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었다.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지니시어 중생을 가엾이 여겨 생각하시고, 모든 것을 두루 살피시어, 아직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너갈 수 있게 하시며,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으심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다.
주 或復有作是說의 復은 반복이 아니라 병렬의 「또」. 有作是說은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었다」(사전 有作 ① 앞 或 6). 有大慈悲의 有는 소유라 「지니시어」. 使令得度는 使·令 두 사역 글자가 겹쳐 「건너갈 수 있게 하다」 하나로 옮겼다(得은 가능). 度는 「건너다」. 如母愛子의 如는 「~같이」(비유)가 실려 「~과 같다」로 살렸다. 愍念은 「가엾이 여겨 생각하다」(사전 愍念 ⑤ 玄應·慧琳 0362a11 「憐」).
設當有人請者,如來便來,阿闍世王終不留住。
가령 어떤 사람이 청하면 여래께서는 곧 오실 것이고, 아사세왕은 끝내 붙들어 머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주 留住의 목적어가 저본에 없다. 「여래를 붙들어 머물게 하다」로 읽었으나 「아사세왕이 끝내 머물지 않는다」로 읽을 여지도 있다. 設當…者는 가정이라 「-면」이 지고 當은 흡수했다. 阿闍世: 0725b15.1 서술 참조.
誰能堪往至阿闍世王界,而白世尊云:『我等城中今遭此困厄,唯願世尊慈愍屈顧!』」
누가 아사세왕의 영역에 가 이르러, 세존께 ‘우리 성안이 지금 이 곤경과 재액을 만났으니,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자비로 가엾이 여기시어 굽혀 돌아보아 주소서’ 하고 아뢸 수 있겠는가?”
주 能堪往至는 「갈 수 있다」로 옮겼다(能은 가능 어미, 堪은 감당함). 이문이 둘 있다 — 往=任【宋】【元】【明】이면 「맡아 갈 수 있다」로, 困이 宋·元·明에 없어 「재액」만 남는다. 저본(大正)대로 옮기고 이문은 신고만 한다. 而白은 접속이라 흡수. 屈顧는 「굽혀 돌아보다」. 阿闍世: 0725b15.1 서술 참조.
爾時,有大長者,名曰最大,集在彼眾。
그때 큰 장자가 있었으니, 이름을 최대라 하였고, 그 대중 가운데 모여 있었다.
주 有大長者의 有는 인물을 처음 세우는 존재 서술이라 「있었으니」로 살렸다. 長者는 [구속] 「장자」. 最大는 한자가 뜻을 옮긴 이름(「가장 큼」)으로 보여 의역형이나, 「최대」가 이미 그 뜻의 한국어라 글자 그대로 적었다. 전거에서 最大는 범어 후보 mahā가 붙을 뿐 팔리 후보가 없다. 集在彼眾의 眾은 「대중」으로 옮겼다(뜻은 저본 문맥에서 세웠고, 사전 眾 ① 칸의 이 경 출현 좌표에 0725c12.1이 실려 있다).
是時,諸人語長者曰:「我等聞:『沙門瞿曇所至到處,諸邪惡鬼無能害者。』
이때 여러 사람이 장자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르는 곳마다 뭇 삿되고 악한 귀신이 해칠 수 있는 이가 없다.’
주 語長者曰의 청자가 장자라 화자의 문말을 존댓말(「들었습니다」)로 맞추었고, 인용된 풍문 『…』 안은 평서로 두었다. 無能害者는 「해칠 수 있는 이가 없다」(能은 가능 어미). 이문: 能害者=有能害【宋】【元】【明】. 沙門·瞿曇의 계통은 0725c03.1 서술 참조.
若當如來至此間者,便能除此災患。
만약 여래께서 이곳에 이르시면 곧 이 재앙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주 若當…者는 가정이라 「-면」이 진다. 便能은 「곧 … 수 있다」(能은 가능 어미). 除는 「없애다」.
汝可往世尊所,具白此意,使此城廓永得存在。」
그대는 세존 계신 곳에 가서 이 뜻을 빠짐없이 아뢰어, 이 성곽이 길이 남아 있을 수 있게 하십시오.”
주 汝可往의 可는 권유라 「-십시오」가 진다. 具白은 「빠짐없이 아뢰다」. 使…永得存在는 「-ㄹ 수 있게 하다」(得은 가능).
是時,長者默然從眾人語,即從座起,往至家中。
이때 장자는 잠자코 여러 사람의 말을 따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 이르렀다.
주 이문: 座=坐【聖】.
到已,辦道路行具,將諸人使往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이르고 나서 길 떠날 채비를 갖추고, 여러 사자를 거느리고 세존 계신 곳에 가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將諸人使의 人使를 「사자」(심부름꾼)로 읽었다. 이문 使人【宋】【元】【明】이면 같은 뜻의 어순 바뀜이다. 「諸人을 데리고 使(보내어) 往至」로 끊는 읽음도 가능하다. 辦道路行具는 「길 떠날 채비를 갖추다」(辦은 갖춤). 到已의 已는 완료 「-고 나서」.
爾時,長者白世尊言:「毘舍離城中人民遇此災患,人民之類死亡者多,計彼城中一日之內,連車載尸,動有百數。
그때 장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비사리성 안의 백성이 이 재앙을 만나, 백성 같은 무리 가운데 죽은 이가 많습니다. 저 성 안에서 하루 사이를 헤아리면, 수레를 이어 시체를 싣는 것이 걸핏하면 백을 헤아립니다.
주 毘舍離: 0725b24.1 서술 참조. 人民之類를 「백성 같은 무리」로 옮겨 之類를 살렸다. 動有百數의 動은 「걸핏하면」(자주), 有는 흡수. 이문이 셋 있다 — 災患=鬼災【宋】【元】【明】, 多=眾【宋】【元】【明】, 尸=屍【宋】【元】【明】. 뜻을 바꾸는 것은 鬼災(「귀신의 재앙」)뿐이며 저본대로 옮기고 신고만 한다.
唯願世尊垂愍接度,使餘人拔擇安處,令得無為。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가엾이 여기심을 드리우시어 맞아 건네 주시고, 남은 백성을 가려 뽑아 편안한 곳에 두어 무위를 얻게 하여 주소서.
주 無為는 3분할 표에 의역으로 올라 있으나 확정 술어집에는 낱말 확정역이 없다(정형구 행 無為→asaṅkhata). 한국 불교계 정착형 「무위」로 적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 垂愍接度는 「가엾이 여기심을 드리워 맞아 건네다」. 餘人=彼遺餘【宋】【元】【明】이면 「저 남은 이」로 읽힌다. 令得無為의 得은 가능 어미 「-게」에 흡수했다. 唯願의 唯는 0725b20.1처럼 흡수.
又聞:『世尊所至到處,天、龍、鬼神不敢嬈近。』
또 들었습니다. ‘세존께서 이르시는 곳마다 천신과 용과 귀신이 감히 괴롭히며 가까이 오지 못한다.’
주 天을 「천신」(天龍八部의 天)으로 읽었으나 「하늘」일 수도 있다. 不敢은 「감히 … 못한다」로 뜻이 실려 살렸다. 嬈=繞【聖】(이문). 嬈近의 嬈 풀이는 0725c03.1 서술 참조.
願垂屈顧,至彼城中,度彼人民,安處無為。」
바라옵건대 굽혀 돌아보심을 드리우시어, 저 성 안에 이르러 저 백성을 건네 주시고 무위에 편안히 있게 하여 주소서.”
주 無為는 0725c22.1 서술 참조. 安處無為는 「무위에 편안히 있게 하다」. 願만 있고 唯가 없다.
世尊告曰:「我今已受羅閱城阿闍世王請。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이미 라열성 아사세왕의 청을 받았다.
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이문: 已=以【聖】. 阿闍世·羅閱은 0725b15.1·0.3 서술 참조.
諸佛世尊言無有二,若當阿闍世王見聽者,如來當往。」
모든 부처님과 세존은 말에 둘이 없다. 만약 아사세왕이 허락해 주면 여래는 가겠다.”
주 한 발화 안에서 佛(부처님)·世尊(세존)·如來(여래)가 같은 주체를 가리키며 한역이 한자를 달리 쓴다. 각각 확정역을 따랐다. 見聽에서 見은 대상 표지로 보아 흡수했다(「허락해 주다」). 若當…者는 가정 「-면」, 當往은 「가겠다」.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最大長者白佛言:「此事甚難,阿闍世王終不放如來使至彼國。
최대 장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아사세왕은 끝내 여래를 놓아 저 나라에 이르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앞 좌표(0725c20.1)는 「白世尊言」, 여기는 「白佛言」이다 — 같은 청자를 달리 부르는 한자 흔들림. 放如來使至彼國의 使는 사역 「-게 하다」로 읽어 「놓아 … 이르게 하다」로 옮겼으나, 「여래의 사자(如來使)」로 끊는 읽음도 서는지 사전 如來使(이 경에만 1회)로는 가르지 못한다. 彼國은 문맥상 비사리국이다.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所以然者,阿闍世王於我國土,無有毫釐之善,長夜求方便,欲害彼民。
그렇게 되는 까닭은 아사세왕이 우리 국토에 대하여 털끝만 한 선도 없고, 긴 밤 동안 방편을 구하여 저 백성을 해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주 所以然者는 「그렇게 되는 까닭은 … 때문입니다」. 長夜는 「긴 밤 동안」(오랜 세월을 뜻하는 관용). 사전 長夜 ① 칸의 이 역자 쓰임에서 뒤에 오는 글자로 獲安 6 · 受苦 5가 집계되나, 이 좌표의 저본에서는 長夜 뒤에 求方便이 이어지므로 그 용례를 근거로 삼지 않고 저본 문맥으로 옮겼다. 方便은 정착어 「방편」. 이문: 土=王【宋】【元】【明】이면 「우리 왕에 대하여」로 읽힌다 — 저본대로 國土를 택했다. 毫=豪【聖】.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設當阿闍世王見我者,即取我殺,況復得陳此事!若當聞彼國人民為鬼神所害者,歡喜無量。」
설령 아사세왕이 나를 보면 곧 나를 붙잡아 죽일 것인데, 하물며 이 일을 아뢸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저 나라 백성이 귀신에게 해를 입었다고 들으면 한량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주 況復得陳의 況復은 「하물며」 하나로 옮기고 復은 흡수했다(得은 가능). 設當…者·若當…者는 가정 「-면」이 지고 當은 흡수했다. 為鬼神所害者는 피동 「귀신에게 해를 입었다고」.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世尊告曰:「勿懷恐懼,汝今往至王所,而白此事言:『如來記前王身,終無虛妄,所言無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두려움을 품지 말라. 그대는 지금 왕 계신 곳에 가서 이 일을 아뢰어 말하라. ‘여래는 앞선 왕의 몸에 대해 기별하였고, 끝내 허망함이 없으며, 말하는 것에 둘이 없다.
주 한 발화 안에서 世尊(서술문)과 如來(붓다 자신)가 나란히 쓰인다. 記前王身의 前은 莂【宋】【元】【明】(이문)이다. 莂이면 記莂은 「수기」이고 「왕의 몸」은 곧 이 왕 자신이 되어, 이어지는 내용(왕 자신의 미래 태어남)과 맞는다. 저본(大正)의 前을 그대로 옮겨 「앞선 왕」으로 두었고, 이문 신고로 남긴다. 記는 「기별하다」로 옮겼다(사전 記 ③ 용례 「世尊記此二人曰」). 붓다의 발화이므로 『…』 안도 평서. 所言無二의 所는 「말하는 것」으로 풀었다.
父王無咎而取害之,當生阿鼻地獄中,經歷一劫。
아버지 왕은 허물이 없는데 붙잡아 해쳤으니, 아비지옥 가운데 태어나 한 겁을 지내야 했다.
주 阿鼻는 음역 「아비」(범어 근대 Avīci). 뜻은 「無間」 — 一切經音義(慧琳) 0442a16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阿鼻此云無間也」. 當生은 뒤 좌표(0726a08.1) 「然今日以離此罪」와 이어져 지나간 가능성(「했어야 했다」)으로 읽었다. 無咎而取害之의 而는 역접 뜻이 실려 「-는데」. 經歷은 「지내다」.
然今日以離此罪,改其過罪,於如來法中,信根成就,緣此德本,得滅此罪,永無有餘,於今身命終,當生拍毬地獄中;於彼命終當生四天王上,於彼命終生豔天上;於豔天上命終生兜術天、化自在天、他化自在天;復還以次來至四天王中。
그러나 이제 이미 이 죄를 떠났고 그 허물과 죄를 고쳐, 여래의 법 가운데서 믿음의 뿌리가 이루어졌으니, 이 덕의 근본을 말미암아 이 죄를 없애게 되어 영원히 남음이 없다. 이번 몸의 목숨이 다하면 공 치는 지옥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거기서 목숨이 다하면 사천왕 위에 태어나고, 거기서 목숨이 다하면 염천 위에 태어난다; 염천 위에서 목숨이 다하면 도술천, 화자재천, 타화자재천에 태어난다; 다시 돌아와 차례로 사천왕 가운데 이른다.
주 이름 판별이 여럿이라 한곳에 모은다. (1) 拍毬地獄 — 拍(치다)+毬(공)의 뜻으로 읽어 「공 치는 지옥」으로 옮겼으나, 소리를 옮긴 이름일 가능성을 닫지 못한다(음의: 玄應·慧琳 0607b11은 拍을 「擊」으로만 풀고 이름 풀이는 없다. 사전 拍毬 ③: 이 경에만 나온다). 毬=毱【宋】【元】【明】【聖】(이문). (2) 豔天 — 표에 없다. 야마천의 소리 옮김일 수 있으나 저본 글자만으로 못 정해 한자 독음 「염천」으로 적는다. (3) 兜術天 — 兜術은 소리를 옮긴 것이라 한자 독음 「도술천」으로 적고, 한국 정착형 「도솔천」과 글자가 달라 바꾸지 않았다(慧琳 0410a04·0397c18). (4) 四天王·化自在天·他化自在天 — 3분할 표는 의역(보류)으로 올렸으나 한국 불교계 정착형과 한자 독음이 일치해 정착형 「사천왕」「화자재천」「타화자재천」으로 적었다. 이 선택은 정도평 님 확인 사항이다. 以離此罪의 以는 已의 뜻으로 읽었다(已離). 信根은 「믿음의 뿌리」(의역, 3분할 표). 德本은 「덕의 근본」. 得滅此罪의 得은 가능 어미 「-게 되어」. 永無有餘의 有餘는 「남음」으로 풀었다 — 3분할 표의 upādisesa(유여) 술어 자리가 아니라 죄의 잔여를 가리키는 일상 어휘로 읽혔다. 命終은 「목숨이 다하다」. 以次는 「차례로」. 이 좌표의 이문은 毬 하나이다.
大王當知,二十劫中不墮惡趣,恒在人中生。
대왕은 알라. 이십 겁 동안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늘 사람 가운데 태어난다.
주 大王當知의 當知는 명령형 「알라」로 옮기고 當의 「마땅히」는 어미에 흡수했다. 惡趣는 「나쁜 갈래」. 이문: 人=天人【宋】【元】【明】이면 「하늘·사람 가운데」로 읽힌다.
最後受身,以信堅固,剃除鬚髮,著三法衣,出家學道,名曰除惡辟支佛。』
마지막 몸을 받아, 믿음으로 굳건히 하여 수염과 머리털을 깎아 없애고 세 가지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이름을 ‘악을 없앰’이라 하는 벽지불이 된다.’
주 辟支佛은 3분할 표에 의역으로 올라 있으나 辟支는 소리, 佛은 뜻인 音義合璧이다(慧琳 0484b07 〔音妙法蓮花經〕 「辟支迦此云獨, 佛陀云覺」). 정착형 「벽지불」로 적었다. 그 안의 佛은 [구속] 「부처님」이 서지 않는 자리다(확정역 오적중). 除惡은 이름이라 뜻으로 「악을 없앰」. 出家는 의역 「집을 떠나」, 三法衣는 「세 가지 법의」, 鬚髮은 「수염과 머리털」(사전 鬚髮 ③ 정형 「剃除鬚髮, 著三法衣」). 以信堅固는 「믿음으로 굳건히 하여」. 名曰은 「이름을 … 이라 하는」.
彼王聞此語,便當歡喜踊躍,不能自勝,亦當告汝作是語:『隨汝所求要願,吾不違之。』」
저 왕이 이 말을 들으면 곧 기뻐 뛰며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 또한 그대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가 구하는 요긴한 소원을 따르겠다. 나는 어기지 않겠다.’”
주 便當歡喜踊躍의 便當은 「곧 … 할 것이다」(當은 어미에 흡수). 不能自勝의 能은 가능 어미 「-지 못하고」, 自勝은 「자기를 이기다」(재귀가 목적어라 살렸다). 亦當告汝의 亦은 「또한」(앞 動作과 병렬이 실렸다). 隨汝所求要願은 「그대가 구하는 요긴한 소원을 따르겠다」.
是時,長者白世尊言:「我今當持世尊威神至彼王所。」
이때 장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이제 세존의 위엄과 신령한 힘을 지니고 저 왕 계신 곳에 가겠습니다.”
주 我今當持의 當은 의지 어미 「-겠」에 흡수했다. 威神은 「위엄과 신령한 힘」(사전 威神 ③).
即從座起,頭面禮足,往彼王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저 왕 계신 곳으로 갔다.
주 이문: 座=坐【聖】.
爾時,阿闍世王與諸群臣在高殿上,有所講論。
그때 아사세왕은 여러 신하와 함께 높은 전각 위에서 어떤 일을 강론하고 있었다.
주 有所講論의 有所는 「어떤 일을 …하다」로 풀어 「~하는 바가 있어」를 피했다.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是時,大長者往至王前,王遙見來,語群臣曰:「若當此人今至此所,汝等欲取何為?」
이때 큰 장자가 왕 앞에 가 이르렀다. 왕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만약 이 사람이 지금 이곳에 이르면, 너희는 무엇을 취하여 하려는가?”
주 欲取何為의 구문이 하나로 서지 않는다. 取(붙잡다)의 목적어가 이 사람이고 何為가 「무엇을 하다」라는 읽음을 택했다. 뒤 좌표들(「當取五兀之」「當梟其首」)이 처리 방법을 답하는 것이 근거이다. 若當…는 가정 「-면」. 이 좌표에서 王의 발화는 신하에게 하는 평서이다.
或有作是說:「我等當取五兀之。」
혹은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었다. “우리는 다섯 올로 그를 처리하겠습니다.”
주 [불확실:뜻_판별불가] 五兀之의 兀의 뜻을 저본 문맥만으로 정하지 못했다. 본문에는 한자를 남기지 않고 兀의 한자 독음 「올」만 적었다(뜻을 지어 넣지 않기 위함). 이문 兀=杌【元】【明】이 있으나 어느 쪽도 형벌 이름 등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取…之의 之는 앞 좌표의 「이 사람」을 받는 것으로 보고 「그를」로 옮겼다. 처리하겠다는 뜻은 앞 좌표 질문(欲取何為)에서 읽은 것이다. 신하가 왕에게 하는 발화이므로 존댓말.
或言:「當梟其首。」
혹은 말하였다. “그의 머리를 효수하겠습니다.”
주 梟其首는 한국어에 같은 뜻의 낱말 「효수」가 있어 그대로 썼다. 當은 어미 「-겠」에 흡수했다.
阿闍世王言:「汝等催取殺之,不須見吾。」
아사세왕이 말하였다. “너희는 서둘러 그를 잡아 죽여라. 나를 볼 것 없다.”
주 催取殺之는 「서둘러 잡아 죽이다」. 不須見吾는 「나를 볼 필요가 없다」.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是時,長者聞此語已,極懷恐懼,尋時高聲而作是語:「我是佛之所使。」
이때 장자는 이 말을 듣고 지극히 두려움을 품어, 곧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부처님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주 尋時는 「곧」. 佛之所使의 所使는 「부림을 받은 이」 — 「보내신 사람」으로 옮겼다(사전 所使 ③ 용례 「為人所使」). 而作是語의 而는 흡수. 왕의 신하들에게 목숨이 걸린 자리의 발화이므로 존댓말로 맞추었다.
王聞佛音已,即下坐,右膝著地,向如來所,問彼長者曰:「如來何所教勅?」
왕이 부처님의 소리를 듣고 곧 자리에서 내려와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여래 계신 쪽을 향하여 저 장자에게 물었다. “여래께서는 어떤 분부를 하셨습니까?”
주 한 문장 안에서 佛(佛音)과 如來가 같은 주체를 달리 부른다. 이문: 坐=座【宋】【元】【明】. 何所教勅의 所는 흡수, 教勅은 「분부」(0725b17.1 참조). 右膝著地는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사전 右膝著地 ① 뒤 長跪 4).
長者報曰:「世尊記前聖王而無虛妄,所吐言教,終無有二。
장자가 답하였다. “세존께서는 앞선 성왕에 대해 기별하셨는데 허망함이 없고, 토로하신 말씀의 가르침에는 끝내 둘이 없습니다.
주 記前聖王의 前은 莂【宋】【元】【明】(이문) — 0726a04.1 서술 참조. 聖王이 왕 자신(아사세)을 높인 말일 수 있다. 所吐言教는 「토로하신 말씀의 가르침」(吐는 입 밖에 냄). 無有二의 有는 흡수.
如來言:『王取父王害之,緣此罪本當入阿鼻地獄中,經歷一劫;然復尋時改過於如來所,今當生拍毬地獄中;於彼命終當生四天王中;展轉生他化自在天中;還復次來生四王天中,二十劫中不墮三惡趣,流轉天、人之中。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은 아버지 왕을 붙잡아 해쳤으니 이 죄의 근본을 말미암아 아비지옥 가운데 들어가 한 겁을 지내야 했다. 그러나 곧 여래 계신 곳에서 허물을 고쳤으니 이제 공 치는 지옥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거기서 목숨이 다하면 사천왕 가운데 태어나고, 차례로 옮겨 타화자재천 가운데 태어난다; 다시 돌아와 차례로 사왕천 가운데 태어나, 이십 겁 동안 세 가지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과 사람 가운데를 흘러 구른다.
주 같은 하늘을 이 좌표 안에서 四天王과 四王天으로 달리 쓴다(이문 王天=天王【宋】【元】【明】/天【聖】). 拍毬·四天王·他化自在天의 처리는 0726a08.1 서술 참조. 앞 말 「如來言」은 장자가 전하는 서술이라 존댓말, 『…』 안은 붓다의 발화라 평서. 然復尋時의 復은 접속 「또」로 읽었으나 따로 옮기지 않았다. 展轉은 「차례로 옮기다」(음의 玄應·慧琳 0605b12 「相因展轉遷變」). 流轉은 「흘러 구르다」. 이문: 復=後【聖】, 生이 【聖】에 없음.
最後受身,以信堅固,出家學道,名曰除惡辟支佛,出現於世。』」
마지막 몸을 받아 믿음으로 굳건히 하여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이름을 ‘악을 없앰’이라 하는 벽지불로 세상에 나타난다.’”
주 辟支佛의 처리와 그 안의 佛이 [구속] 「부처님」과 안 맞는 점은 0726a15.1 서술 참조. 出現於世의 於는 처소 조사에 흡수했다.
王聞此語已,歡喜踊躍,不能自勝,即告大長者曰:「汝今欲求何願,吾當與之。」
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 뛰며 자기를 이기지 못하여, 곧 큰 장자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어떤 소원을 구하려는가? 나는 그것을 주겠다.”
주 歡喜踊躍은 「기뻐 뛰다」(음의 慧琳 0352c15 「跳躍」). 不能自勝은 0726a16.1 서술 참조. 吾當與之의 當은 의지 어미에 흡수.
長者白王:「所求願者,王勿見違。」
장자가 왕에게 아뢰었다. “구하는 소원을 왕께서는 어기지 말아 주십시오.”
주 勿見違의 見은 대상 표지(「나를」)로 보아 흡수했다. 所求願者는 「구하는 소원은」.
阿闍世王告曰:「汝今但說欲求何願,吾不違之。」
아사세왕이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다만 어떤 소원을 구하는지 말하라. 나는 어기지 않겠다.”
주 但說의 但은 「다만 말하라」로 한정 뜻이 실려 살렸다. 阿闍世는 0725b15.1 서술 참조.
長者白王:「毘舍離城人民遇災,為鬼神所害,不可稱計。
장자가 왕에게 아뢰었다. 「비사리성의 사람들이 재앙을 만나 귀신에게 해를 입으니, 일컬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주 이 구간 투입물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없어 두 증언 모두 미대응으로 둔다(이하 모든 좌표 같음). 毘舍離=비사리(정착어): 성 이름이다(전거: 팔리형 Vesālī). 長者=장자[구속]. 為鬼神所害는 為…所 피동이라 「귀신에게 해를 입으니」로 옮겼다. 白은 청자가 왕이라 「아뢰다」. 이문 白=曰【元】은 뜻이 같아 본문은 大正대로 두었다.
如今羅剎鬼神極為暴虐。
지금 나찰과 귀신이 몹시 포악하고 잔혹합니다.
주 羅剎=나찰(음역, 한자 독음). 전거 인용: 당대 rākṣa · 근대 Rākṣasa(음역전거 대장, 판정하지 않음). 如今의 如는 「지금」에 흡수했다. 極為는 부사 極과 서술 為를 「몹시 …합니다」로 한 번만 옮겼다. 暴虐=포악하고 잔혹함.
唯願大王聽放世尊至彼世界,令彼鬼神各各馳散!所以然者,我等曾聞:『若如來所至到處,天、龍、鬼神不得其便。』
바라오니 대왕께서는 세존께서 저 세계에 가시도록 허락하여 놓아 주시어, 저 귀신들이 제각기 달려 흩어지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저희가 일찍이 들었기 때문입니다:『여래께서 이르러 닿으시는 곳이면, 천신과 용과 귀신이 그 틈을 얻지 못한다.』
주 唯願은 청원 정형으로 「바라오니」에 흡수했다(사전 唯 ① 뒤: 願世 131). 若…所至到處는 연결어미 「-면」. 所以然者는 「그렇게 하는 까닭은」. 不得其便=「그 틈을 얻지 못한다」. 天은 「천신」, 龍은 「용」으로 옮겼다. 이문: 世界의 世가 國【宋元明】로 갈린다. 世界와 國界는 범위가 달라 뜻이 갈리므로 본문은 大正 世界대로 두고 신고한다.
唯願大王聽許世尊至彼國界。」
바라오니 대왕께서는 세존께서 저 나라의 경계에 이르시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주 聽許=허락함. 國界=나라의 경계. 앞 좌표 彼世界와 이 좌표의 彼國界는 같은 요청을 가리키는 듯하나 한자가 다르다(앞 좌표 이문 참조). 唯願은 앞 좌표와 같이 흡수했다.
王聞此語已,便長歎息,告長者曰:「此願極大,非常人之所及;汝若當隨吾求城廓、村落、國財、妻子,吾不悋之。
왕은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길게 탄식하며 장자에게 말하였다. 「이 청은 몹시 크니, 보통 사람이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만약 내게서 성곽·마을·나라의 재물·처자를 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아까워하지 않겠다.
주 왕이 장자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汝若當隨吾求의 若當은 「-면」에 흡수. 隨吾求의 隨가 「내게서」(출처)인지 「나를 따라」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내게서 구한다면」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非常人之所及의 之所는 「하는 바」를 피해 「미칠 수 있는 것」으로 풀었다. 이문: 之 있고 없음(宋元明 없음), 廓=墎【聖】은 뜻에 영향이 없다.
我不慮汝,當屈願世尊;然我先以許所求之願,今隨汝意。」
나는 너를 염려하지 않으니, 세존께 청을 굽히겠다. 그러나 나는 앞서 이미 구한 청을 허락하였으니, 이제 네 뜻을 따른다.」
주 不慮汝의 慮(염려함/헤아림)와 當屈願世尊의 屈願(청을 굽힘)은 문맥이 얇아 뜻을 확정하지 못했다. 이문 願=顧【宋元明聖】이면 「굽혀 돌보아 주십시오」 쪽으로 뜻이 달라진다. 본문은 大正 願대로. 以許의 以는 이문 已【宋元明】과 같은 「이미」로 읽었다(저본 以를 그대로 둔 채 뜻만 이미로 옮긴 판단이라 신고). 當은 어미 「-겠다」에 흡수. 所求之願=구한 청.
是時,長者極懷歡喜,即從座起,辭退而去,往至世尊所言:「阿闍世王以許放世尊詣彼國界。」
이때 장자는 몹시 기쁨을 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하직하고 물러나 가서, 세존 계신 곳에 이르러 아뢰었다. 「아사세왕이 이미, 세존께서 저 나라의 경계에 이르시도록 놓아 주기를 허락하였습니다.」
주 阿闍世=아사세(정착어): 아직 나지 않은 원수라는 뜻의 이름이다. 한역의 의역형은 未生怨. 전거 인용: 팔리 Ajātasattu · 근대 Ajātaśatru(음역전거 대장) — 두 계통이 확인된 자리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以許의 以는 이문 已【宋元明】과 같은 「이미」로 읽었다. 이문 退而=王退, 言=白世尊言은 大正 본문대로 두었다. 장자가 세존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 所=계신 곳. 而는 연결어미에 흡수.
世尊告曰:「汝並在前,如來自當知時。」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함께 앞에 있으라. 여래가 때를 알 것이다.」
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汝並在前의 並(함께/나란히)이 가리키는 범위(장자 홀로인지 일행인지)가 한문에 없어 「함께」로만 옮기고 신고한다. 如來自當知時의 自當은 대조(自↔他)가 없어 어미 「-ㄹ 것이다」에 흡수했다. 如來=여래[구속], 世尊=세존[구속].
是時,長者頭面禮足,繞佛三匝,便退而去。
이때 장자는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곧 물러나 갔다.
주 앞 좌표들은 世尊, 이 좌표는 佛로 같은 분을 가리킨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대로 佛=부처님[구속], 世尊=세존[구속]으로 고정했다. 頭面禮足=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繞佛三匝=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而는 흡수.
是時,世尊清旦將諸比丘眾,前後圍繞出迦蘭陀竹園所,往詣毘舍離城。
이때 세존께서는 맑은 새벽에 여러 비구 대중을 거느리시고, 앞뒤로 에워싸여 가란타 대나무 동산 있는 곳을 나오시어 비사리성으로 가셨다.
주 迦蘭陀=가란타(음역, 한자 독음). 전거 인용: 팔리 Kalandaka · 근대 Kāraṁḍava/Karaṁḍa(음역전거 대장) — 두 계통이 확인된 자리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竹園=대나무 동산(사전 竹園 ① 증일아함 45회 · 36경, 앞 蘭陀 36; 竹林精舍는 후대 칸 ⑥의 풀이라 취하지 않음). 이문 蘭=羅【聖】. 清旦=맑은 새벽. 所=장소(「있는 곳」). 諸=「여러」. 毘舍離=비사리(정착어, 성 이름).
爾時,阿闍世王在高樓上,及將持蓋一人。
그때 아사세왕은 높은 누각 위에서, 일산을 든 한 사람을 거느리고 있었다.
주 蓋는 여기서 가리개 일산이다. 확정술어 파일의 정형구 행 蓋(nīvaraṇa 장애)와는 쓰임이 다르며 그 행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及將持蓋一人의 及이 앞 구절과 잇는 방식(「있으면서 거느림」)이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연결을 가장 얇게 옮겼다. 이문: 阿闍世王=王阿闍世【宋元明】은 어순 이문. 阿闍世=아사세(정착어, 뜻과 전거 인용은 0726b21.1 참조).
爾時,王遙見世尊向彼國界,便自歎息告左右曰:「我等為此長者所欺,我今復用活為?
그때 왕은 멀리서 세존께서 저 나라의 경계를 향하시는 것을 보고, 곧 탄식하며 좌우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이 장자에게 속임을 당했다. 내가 이제 다시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주 便自歎息의 自는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為此長者所欺는 為…所 피동. 復用活為는 「다시 …로 무엇하겠는가」의 반문 구문으로 「살아서 무엇하겠는가」로 옮겼다(復는 앞서 이미 한 번 속았음을 받아 「다시」로 유지). 왕이 좌우(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我等과 我를 구분해 「우리」「내가」로 옮겼다.
乃使如來出此國界。」
마침내 여래로 하여금 이 나라의 경계를 나가게 하였구나.」
주 乃使는 결과가 뜻밖임을 받는 「마침내/끝내」로 옮겼다. 使=사역 「-게 하다」.
是時,阿闍世王持五百蓋,往送世尊,恐有塵坋身。
이때 아사세왕은 일산 오백 개를 가지고 가서 세존을 전송하였으니, 먼지가 몸에 묻을까 염려해서였다.
주 塵坋의 坋은 음의 「慧琳 0575b17 說文云坌塵也」를 인용한다(먼지가 묻음). 恐有塵坋身의 몸이 누구의 몸인지 한문에 소유자가 없다. 0726c04.1의 평행 구절(如來身)로 보아 세존의 몸으로 읽히나, 본문은 「몸」으로만 두고 신고한다. 이문 塵=塵土【宋元明】. 阿闍世=아사세(뜻과 전거 인용은 0726b21.1 참조).
羅閱城中復有五百寶蓋從如來後。
라열성 안에서도 또 오백 개의 보배 일산이 여래의 뒤를 따랐다.
주 羅閱城=라열성. 3분할표는 羅閱을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자 羅閱은 뜻이 아니라 소리를 옮긴 글자로 보여 음역(한자 독음)으로 판별했다(표의 유형은 기계 1차 분류). 전거: 팔리형 Rājagaha. 復有五百寶蓋從如來後의 復有는 「또 …이 있어」 훈독투를 피해 「또 …이 따랐다」로 주어화했다. 復=「또」.
是時,釋提桓因知世尊心中所念,復以五百寶蓋在虛空中,恐有塵土坋如來身;及諸河神復持五百寶蓋在虛空中。
이때 석제환인은 세존의 마음속에 생각하시는 것을 알고, 또 오백 개의 보배 일산으로 허공 가운데에 있으면서, 먼지와 흙이 여래의 몸을 더럽힐까 염려하였다. 그리고 여러 강의 신들도 또 오백 개의 보배 일산을 들고 허공 가운데에 있었다.
주 釋提桓因=석제환인. 3분할표는 「갈림」(의역/혼합)으로 표시했으나 釋提·桓因 네 글자 모두 소리글자로 보여 음역(한자 독음)으로 판별했다. 전거 인용: 팔리 Sakka devānam inda 등 · 근대 Śākradevānāmiṁdra(음역전거 대장) — 두 계통이 확인된 자리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河神=강의 신. 所念=생각하신 것(관형절). 復以五百寶蓋在虛空中의 在虛空中이 일산을 꾸미는지 주어를 꾸미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뒤 구절(持…在虛空中)과 같은 모양으로 옮겼다. 이문 桓=洹【聖】.
是時,毘舍離城人民之類聞世尊今當入城,復持五百寶蓋,前迎世尊。
이때 비사리성의 사람들의 무리는 세존께서 이제 성에 들어오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오백 개의 보배 일산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세존을 맞이하였다.
주 人民之類=사람들의 무리. 今當入城의 當은 어미 「-ㄹ 것이다」에 흡수했다. 復=「또」. 毘舍離=비사리(정착어, 성 이름).
爾時,有二千五百寶蓋懸在空中。
그때 이천오백 개의 보배 일산이 공중에 걸려 있었다.
주 有二千五百寶蓋懸在空中은 존재를 알리는 도입 구문이나 「있어」를 따로 세우지 않고 「일산이 …걸려 있었다」로 주어화했다. 앞의 오백씩 세 무리(0726c01.2 · 0726c03.1 · 0726c04.1)의 합 2,500에 맞는다는 점은 한문 계산일 뿐 본문에 넣지 않았다.
爾時,世尊見此蓋已,即時便笑。
그때 세존께서 이 일산들을 보고 나서 곧바로 웃으셨다.
주 即時便笑의 即時와 便이 겹치나 둘 다 즉시의 뜻이라 「곧바로」 하나로 옮겼다. 見此蓋已=「이 일산들을 보고 나서」.
此是諸佛世尊常法,設如來笑時,口中便有五色光出,青、黃、白、黑、赤。
이것은 여러 부처님과 세존들의 늘 그러한 법이니, 가령 여래가 웃을 때에는 입 가운데서 곧 다섯 빛깔의 빛이 나오니, 푸른빛 · 누런빛 · 흰빛 · 검은빛 · 붉은빛이다.
주 한 문장 안에서 諸佛世尊(부처님 · 세존)과 如來가 같은 개념을 가리킨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므로 확정역대로 고정하고 신고한다. 常法은 3분할표가 기계로 팔리 Sassata-vāda에 엮었으나 이 자리의 뜻은 「늘 그러한 법도」로 서서 낱말 확정역이 없어 위 번역을 택했다. 設如來笑時의 設은 가정 「가령」, 時는 「-ㄹ 때에는」. 便有五色光出의 便有는 「곧 …이 나온다」로 주어화.
侍者阿難見此光明,作此思惟:「此是何緣?
시자 아난이 이 광명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무슨 인연인가?
주 阿難=아난(정착어): 이름의 뜻은 기쁨이다(팔리형 Ānanda, 전거). 侍者=시자(시중드는 이). 思惟=생각함(3분할표 의역). 作此思惟=「이렇게 생각하였다」. 光明=밝은 빛.
設世尊笑,必有因緣,事不唐爾。」
세존께서 웃으신다면 반드시 인연이 있으니, 일은 까닭 없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주 唐爾의 唐은 「헛되이」(이문 虛【宋元明】과 같은 방향). 事不唐爾=일이 까닭 없이 그러한 것이 아니다. 必有因緣의 有는 존재 서술 그대로 「있다」(뜻이 실린 有). 이문 爾=□【聖】.
是時,阿難長跪叉手,白世尊言:「如來終不妄笑,笑必當有緣。」
이때 아난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아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께서는 결코 함부로 웃지 않으시니, 웃으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주 長跪는 음의 「慧琳 0612b16 跪跽也 … 兩膝隱地」를 인용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옮겼다(長=곧추 폄 · 길게의 어감은 일부 잃음). 叉手=두 손을 맞잡음. 終不妄笑=결코 함부로 웃지 않으신다. 笑必當有緣의 當은 어미 「-ㄹ 것입니다」에 흡수. 緣은 앞 좌표의 因緣과 같은 개념을 줄여 쓴 형태로 읽어 「까닭」으로 옮겼다. 아난이 세존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
世尊告曰:「汝今見此二千五百寶蓋供養如來乎?」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이 이천오백 개의 보배 일산이 여래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느냐?」
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乎=의문 종결 「-느냐」. 供養如來=여래에게 공양함. 如來=여래[구속].
阿難白佛:「唯然,見之。」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그것을 봅니다.」
주 앞 좌표는 世尊, 이 좌표는 佛로 같은 분을 가리킨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대로 佛=부처님[구속]으로 고정했다. 唯然=응답어 「예」(사전 唯 ① 발화 첫머리 91/314 근거; 唯然 표제는 이 사전에 없어 唯로만 인용). 見之=「그것을 봅니다」.
世尊告曰:「若如來不出家學道者,當二千五百世作轉輪聖王,治化人民;以如來出家學道,更不受此寶蓋。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여래가 집을 나와 도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천오백 세 동안 전륜성왕이 되어 사람들을 다스려 교화하였을 것이다. 여래가 집을 나와 도를 배웠으므로, 더는 이 보배 일산을 받지 않는다.
주 出家學道=집을 나와 도를 배움(출가는 3분할표 의역, 사전 出家 ① 뒤: 學道 140). 若…者는 「만약 …않았다면」, 當…作은 「…이 되었을 것이다」로 어미에 흡수했다. 二千五百世의 世가 생(生)을 세는 단위인지 대(代)인지 한문에서 서지 않아 「세」로만 옮겼다. 轉輪聖王=전륜성왕(정착). 以如來出家學道=「여래가 집을 나와 도를 배웠으므로」. 更不受=「더는 받지 않는다」.
「阿難當知,過去久遠,有王名善化治,在蜜絺羅國,以法治化,接納有方,統此閻浮里地,靡不從令者。
「아난아, 알라. 지나간 아주 먼 옛날에 왕이 있었는데 이름은 잘 교화하여 다스림이었고, 밀치라국에 있으면서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였다. 맞아들임에 방도가 있었고, 이 염부리 땅을 통솔하여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주 善化治는 세 글자 모두 뜻글자라 이름을 의역으로 판별했다(표에 없는 이름). 蜜絺羅=밀치라(음역, 한자 독음; 표에 없는 이름). 閻浮里=염부리(음역, 한자 독음; 이문 浮提【宋元明】). 阿難當知의 當知는 「알라」로, 호격 「아난아」를 앞에 세웠다. 接納有方의 接은 이문 綏【元明聖】, 接納=맞아들임. 靡不從令者=「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以法=법으로. 有王의 有는 도입 구문이라 「왕이 있었는데」, 有方은 「방도가 있었고」.
爾時,彼王有八萬四千夫人婇女,皆是剎利種姓,第一夫人名曰日光,亦無兒息繼嗣者。
그때 그 왕에게는 팔만 사천 명의 부인과 채녀가 있었는데 모두 찰리 종성이었다. 첫째 부인은 이름을 햇빛이라 하였는데, 또한 아들이나 뒤를 이을 이가 없었다.
주 剎利=찰리[구속]. 種姓=종성. 婇女=채녀(궁중에서 모시는 여인; 이문 綵 · 綵女). 日光은 뜻글자라 의역(햇빛)으로 판별했다(표에 없는 이름). 亦無兒息繼嗣者의 亦은 왕에 이어 첫째 부인에게도 자식이 없다는 뜻이 실려 「또한」으로 유지했다. 兒息繼嗣者=아들이나 뒤를 이을 이. 이문 夫=宮【宋元明】 · 繼=用繼【宋元明】, 係【聖】.
「是時,彼王便作是念:『我今統此閻浮里地,然今無有兒息。』
「이때 그 왕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이 염부리 땅을 통솔하고 있으나, 지금 아들이 없다.』
주 然=「그러나」. 無有兒息=「아들이 없다」. 作是念=「이렇게 생각하였다」. 閻浮里=염부리(0726c19.1 참조).
便向諸山神、樹神、天地神明求有兒息。
곧 여러 산의 신, 나무의 신, 하늘과 땅의 신령들에게 아들이 있기를 빌었다.
주 山神 · 樹神 · 天地神明=산의 신 · 나무의 신 · 하늘과 땅의 신령. 神明은 신령(사전·음의에 표제 없음). 求有兒息=「아들이 있기를 빌었다」. 諸=「여러」.
又未經數日之中,夫人懷妊。
또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부인이 아이를 배었다.
주 未經數日之中=「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懷妊=아이를 뱀(이문 妊=任【聖】). 又=「또」.
是時,日光夫人白王言:『大王當知,我今覺知有娠,宜自將護。』
이때 일광 부인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께서는 아십시오. 저는 이제 아이를 밴 것을 알아차렸으니, 보호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주 日光夫人=햇빛 부인(0726c21.1 참조). 大王當知의 當知는 「아십시오」. 宜自將護의 宜는 당위 어미, 自는 대조가 없어 흡수했고, 보호받을 이가 부인 자신인지 왕이 살필 일인지 한문에 주어가 없어 주어 없이 「보호하고 돌보아야 합니다」로 옮겼다. 覺知有娠=「아이를 밴 것을 알아차렸다」(이문 娠=身【宋元明聖】). 부인이 왕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
復經八、九月,生一男兒,顏貌端政,面如桃華色。
다시 여덟아홉 달이 지나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얼굴은 복숭아꽃 빛과 같았다.
주 復經八九月=「다시 여덟아홉 달이 지나」(復는 懷妊 뒤를 잇는 「다시」). 九月은 달 이름이 아니라 수 개월이다(전거 표의 九月 maragaśira는 월 이름이라 이 자리와 맞지 않아 취하지 않음). 端政=단정함(이문 正【宋元明】). 如=「-과 같았다」.
夫人見已,極懷歡喜,往視大王,王見歡喜踊躍,不能自勝,及八萬四千夫人,見生太子,亦各歡喜。
부인은 보고 나서 몹시 기쁨을 품고, 가서 대왕을 보았다. 왕은 보고 기뻐 뛰며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였고, 팔만 사천 부인에 이르기까지 태자가 태어난 것을 보고 또한 각각 기뻐하였다.
주 往視大王의 視는 이문 示【宋元明聖】(가서 보여 드림)과 뜻이 갈린다. 본문은 大正 視대로 「가서 대왕을 보았다」. 不能自勝의 自勝은 「스스로를 이김」이라는 한 낱말(사전 踊躍 ③ 용례 ea120 · ea144의 不能自勝)이라 自를 살렸고 能은 「-지 못하였다」에 흡수. 踊躍=기뻐 뜀(음의 玄應·慧琳 0352c15 「跳躍也」). 及八萬四千夫人=「팔만 사천 부인에 이르기까지」. 亦各歡喜=「또한 각각 기뻐하였다」. CBETA 교감주(add): 大【CB】 · 天【大】는 이 구간 대왕의 大 글자에 대한 편자 정정이며, 본문은 현행 저본 글자 大를 따랐다.
「是時,國王召諸群臣國師、道士,使瞻相之,又與立字使世稱傳。
「이때 국왕은 여러 뭇 신하와 국사, 도 닦는 이를 불러, 그를 살펴 상을 보게 하고, 또 이름을 세워 주어 세상에서 일컬어 전하게 하였다.
주 群臣 · 國師 · 道士의 나열을 「뭇 신하, 국사, 도 닦는 이」로 끊었다. 國師와 群臣을 묶어 읽을 가능성(「뭇 신하인 국사」)도 있어 신고한다. 國師=나라의 스승(국사). 道士=도 닦는 이(이 시기 한역에서는 도인을 가리키는 말로 읽었다). 使瞻相之=「그를 살펴 상을 보게 하고」, 又與立字=「또 이름을 세워 주고」, 使世稱傳=「세상에서 일컬어 전하게 하였다」. 使는 사역 「-게 하다」.
爾時,相師前白王言:『今生太子極為端政,與世有異,其有見者,莫不愛念,今當立名愛念。』
그때 상을 보는 스승이 앞으로 나아가 왕에게 아뢰었다. 『이제 태어난 태자는 몹시 단정하여 세상과 다름이 있으니, 그를 보는 이는 사랑하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이제 이름을 「사랑하고 생각함」이라 세우겠습니다.』
주 愛念은 이름이며 두 글자 모두 뜻글자라 의역(사랑하고 생각함)으로 판별했다. 3분할표는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소리글자가 없다. 이 이름을 풀어 쓴 莫不愛念(사랑하고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다)이 같은 문장에 있어 같은 한국어로 맞췄다. 其有見者의 其有는 「그를 보는 이는」로 풀었다. 今當立名의 當은 어미 「-겠다」. 與世有異=「세상과 다름이 있다」. 이문: 大正 名愛念。』自 · 宋元明 字名曰愛念 · 聖 字名愛目 — 이름 구절의 글자가 판본마다 다르고 聖본은 愛目(눈에 사랑받음)으로 읽혀 뜻이 달라진다. 본문은 大正대로. 相師가 왕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
自已立字竟,各還所在。
이미 이름 세우기를 마치고, 각각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주 自已立字竟의 自는 앞 좌표 이문(大正 名愛念。』自 / 宋元明 字名曰愛念)과 얽혀 있어 「…로부터」로 읽을지 군더더기인지 한문만으로 정할 수 없다. 이문 已=以【聖】. 「이미」로 옮기고 自는 비워 두었다. 各還所在=「각각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所在는 관형절로 풀었다).
是時,國王愛念太子,未曾離目,即與太子起三時講堂;復以婇女充滿其中,與王太子共相娛樂。
이때 국왕은 태자를 아끼고 생각하여 눈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곧 태자에게 세 때의 강당을 지어 주었으며, 또 채녀들로 그 안을 가득 채워 왕의 태자와 함께 서로 즐겼다.
주 愛念太子는 여기서는 동사 「태자를 아끼고 생각하여」(未曾離目이 이어짐)로 읽었다. 앞 좌표의 이름 愛念과 글자가 같아 이름을 가리키는 읽기도 가능하나 문맥은 동사 쪽이다. 三時講堂의 三時는 「세 때」로만 옮겼다(세 계절/하루 세 때). 起=지어 줌. 復以婇女充滿其中=「또 채녀들로 그 안을 가득 채워」. 與王太子共相娛樂의 주어(채녀들인지 왕인지)가 한문에 없어 주어 없이 두었다. 即=「곧」.
「爾時,太子便作是念:『此中婇女,頗有常存不離世間,亦不變易。
「그때 태자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가운데 채녀들 중에 항상 존재하여 세간을 떠나지 않고, 또한 변하여 바뀌지도 않는 이가 혹시 있는가?
주 頗有는 「혹시 …이 있는가」로 읽은 반문이다(뒤 좌표 0727a10.1이 「모두 무상하다」로 답한다). 常存不離世間=「항상 존재하여 세간을 떠나지 않고」, 亦不變易=「또한 변하여 바뀌지도 않는」. 世間은 3분할표 의역이며 「세간」으로 둔다.
然觀彼眾中,盡皆無常,無有常存於世者,悉是幻偽,無有真實,使人民之類染著愛樂,皆不知遠離之。
그러나 저 무리 가운데를 살펴보니 모두 다 무상하여, 세상에 항상 있는 이가 없고, 모두 허깨비이며 거짓이어서 진실이 없는데도, 사람들의 무리로 하여금 물들어 집착하고 사랑하며 즐기게 하니, 모두 그것을 멀리 떠날 줄 알지 못한다.
주 盡皆無常=「모두 다 무상하여」. 無有常存於世者=「세상에 항상 있는 이가 없고」. 悉是幻偽=「모두 허깨비이며 거짓이어서」. 使人民之類染著愛樂의 使는 사역이며, 愛樂(3분할표: 혼합)은 두 글자 모두 뜻글자라 「사랑하며 즐기고」로 옮겼다. 皆不知遠離之의 주어가 人民之類인지 채녀를 가리키는 彼眾인지 불분명하다. 앞 구절 흐름에 맞춰 「사람들의 무리」로 읽었다. 眾=무리(사전 眾 ① 앞: 比丘 103이므로 이 자리는 비구 대중이 아닌 일반 「무리」). 之=그것.
我今復用此為?
내가 이제 다시 이것을 써서 무엇하겠는가?
주 復用…為는 0726b28.1과 같은 반문 구문이다. 復=「다시」. 此=앞에서 말한 채녀들과 그 향락.
可捨而學道。』
버리고 도를 배울 만하다.』
주 可捨而學道의 可=「-ㄹ 만하다」, 而는 연결어미 「-고」에 흡수했다. 學道=도를 배움.
是時,愛念太子即以其日,剃除鬚髮,著三法衣,出家學道;尋即其夜,斷諸結縛,思惟有習之法,皆是磨滅,成辟支佛。
이때 「사랑하고 생각함」 태자는 곧 그날로 수염과 머리를 깎아 없애고 세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와 도를 배웠다. 이내 곧 그 밤에 여러 결박을 끊고, 익혀 쌓임이 있는 법은 모두 닳아 없어진다고 생각하여 벽지불을 이루었다.
주 辟支佛=벽지불.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辟支는 소리글자(음의 慧琳 0484b07 「辟支迦 此云獨佛陀云覺」)이고 佛은 뜻글자인 음의합벽이다. 정착형과도 같아 한자 독음(벽지불)으로 옮겼다. 愛念太子=「사랑하고 생각함」 태자(0727a03.1 참조). 剃除鬚髮=수염과 머리를 깎아 없앰, 著三法衣=세 법의를 입고(사전 三法 ① 앞: 髮著 25). 斷諸結縛=여러 결박을 끊고. 有習之法의 習은 이문 集【元明聖】과 갈린다. 習은 익힘, 集은 쌓여 일어남이어서 뜻이 달라질 수 있다. 본문은 習을 「익혀 쌓임」으로 옮겼다. 확정술어 파일의 集(samudaya)은 정형구 행으로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 참고만 했다. 磨滅=닳아 없어짐. 尋即=이내 곧(사전 尋 ① 뒤: 時消 5). 思惟=생각함. 이문 念=目【聖】.
成佛已,便說此偈:
부처님을 이루고 나서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앞 좌표는 成辟支佛, 이 좌표는 成佛로 같은 일을 가리킨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佛=부처님[구속]이 辟支佛의 줄임으로 쓰였다). 이문: 成佛은 宋元明에 없다. 본문은 大正대로. 偈=게송. 便=「곧」.
「『欲者無常法,變易無實定,
「『욕망이란 무상한 법이니, 변하고 바뀌어 참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주 게송 행을 유지했다(두 행). 欲者無常法의 者는 「-이란」으로 주제화. 欲=욕망(사전 欲 ① 앞: 我今 34 · 뒤: 不淨 21; 이 게송에서는 애욕의 대상·욕망 일반). 變易=변하고 바뀜. 無實定=참되게 정해진 것이 없음.
知此為大患,獨遊不與俱。』
이것이 큰 근심임을 알아, 홀로 노닐며 함께하지 않는다.』
주 知此為大患의 為는 계사 「-임」으로 옮겼다(피동이 아니다). 不與俱의 與俱 목적어(欲)가 한문에 없어 「함께하지 않는다」로 두었다. 獨遊=홀로 노닒.
「是時,辟支佛說此偈已,即飛在虛空,遶彼蜜絺羅城三匝。
「이때 벽지불은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곧 날아 허공에 있으면서, 저 밀치라성을 세 바퀴 돌았다.
주 辟支佛=벽지불(0727a13.2 참조). 即飛在虛空=「곧 날아 허공에 있으면서」. 遶=돎. 三匝=세 바퀴. 蜜絺羅=밀치라(0726c19.1 참조).
「是時,國王在高殿上,及諸宮人共相娛樂,見辟支佛遶城三匝,極懷歡喜,不能自勝:『我今太子,騰在虛空,如彼飛鳥。』
「이때 국왕은 높은 궁전 위에서 여러 궁인과 함께 서로 즐기다가, 벽지불이 성을 세 바퀴 도는 것을 보고 몹시 기쁨을 품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였다:『나의 지금 태자가 허공으로 솟아올라, 저 날아가는 새와 같구나.』
주 宮人=궁인(궁중 사람). 不能自勝=스스로를 이기지 못함(0726c29.1 참조). 我今太子는 「나의 지금 태자」. 왕이 날아오르는 이를 태자로 알고 하는 말이다(다음 좌표 又不知成辟支佛 참조). 如=「-과 같구나」. 騰在虛空=허공으로 솟아올라 있음.
又不知成辟支佛,而告之曰:『兒!今來下至此殿上,與吾共相娛樂。』
또 벽지불을 이룬 줄 알지 못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아이야! 지금 와서 이 궁전 위에 내려 이르러, 나와 함께 서로 즐기자.』
주 又不知成辟支佛=「또 벽지불을 이룬 줄 알지 못하고」. 告之曰의 之는 그(태자). 兒=아이야(왕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今來下至此殿上=「지금 와서 이 궁전 위에 내려 이르러」.
是時,阿難!彼辟支佛尋下殿上,欲度父母故。
이때 아난아! 저 벽지불은 곧 궁전 위로 내려왔으니, 부모를 제도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주 붓다의 발화 안에서 아난을 부르는 호격이라 평서. 尋下殿上=「곧 궁전 위로 내려왔다」(사전 尋 ① 뒤: 時消 5). 度=제도함. 欲度父母故=「부모를 제도하고자 하였기 때문」.
時王語曰:『太子!今日何為著此婇女衣,又剃鬚髮,與人有異?』
그때 왕이 말하였다. 『태자야! 오늘은 어찌하여 이 채녀의 옷을 입고, 또 수염과 머리를 깎아, 사람들과 다르냐?』
주 婇女衣=채녀의 옷(이문 綵【宋元明】 · 綵女【聖】). 何為=어찌하여. 又剃鬚髮=또 수염과 머리를 깎아. 與人有異=「사람들과 다르다」(有는 「다르다」에 흡수). 왕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辟支佛報曰:『子今所著甚為奇雅,非常人之所習。』
벽지불이 대답하였다. 『아들이 지금 입은 것은 몹시 기이하고 우아하니, 보통 사람이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子는 자기를 낮추어 「아들」이라 한 것으로 읽었다(앞 좌표에서 왕이 兒 · 太子로 부름). 그러나 상대 왕을 높여 부른 「그대」일 가능성도 있어 신고한다. 그 경우 所著는 왕이 입은 옷이 된다. 所著=입은 것. 奇雅=기이하고 우아함. 非常人之所習=「보통 사람이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문 之 있고 없음(宋元明 없음). 아버지인 왕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
時王報曰:『何緣更不至宮中?』
그때 왕이 대답하였다. 『무슨 까닭으로 더는 궁 안에 오지 않느냐?』
주 何緣=무슨 까닭으로. 更不至宮中=「더는 궁 안에 오지 않는다」. 報=대답함. 왕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辟支佛言:『自今已後,不復習欲,亦不樂此五欲之中。』
벽지불이 말하였다. 『지금부터 이후로는 다시 욕망을 익히지 않고, 또한 이 다섯 욕망 가운데를 즐기지 않겠습니다.』
주 自今已後의 自는 「…로부터」이며 재귀가 아니다. 不復習欲=「다시 욕망을 익히지 않고」(復는 이전에 익혔음을 받아 유지). 亦不樂此五欲之中=「또한 이 다섯 욕망 가운데를 즐기지 않겠습니다」(樂=즐김). 五欲=다섯 욕망. 아버지인 왕에게 하는 말이라 존댓말.
時王語言:『設不樂此五欲中者,在吾後園中住。』
그때 왕이 말하였다. 『가령 이 다섯 욕망 가운데를 즐기지 않는다면, 내 뒤쪽 동산 가운데 머물러라.』
주 設…者=「가령 …라면」. 後園=뒤쪽 동산. 在吾後園中住=「내 뒤쪽 동산 가운데 머물러라」. 왕이 자식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爾時,國王即自至園中,造立屋舍。
「그때 국왕은 곧 동산 안에 이르러, 집을 지어 세웠다.
주 即自至園中의 自는 신하와의 대조가 한문에 없어 흡수했다(왕이 친히 갔다는 뜻이 실렸을 수 있다). 造立屋舍=집을 지어 세움.
是時,辟支佛欲度父母故,便住彼園舘中受王供養,經歷數時,便於無餘涅槃界而般涅槃。
이때 벽지불은 부모를 제도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곧 저 동산의 관사 안에 머물며 왕의 공양을 받았고, 몇 때를 지나 곧 남음 없는 열반의 영역에서 반열반하였다.
주 舘=관사(館의 이체). 受王供養=왕의 공양을 받음. 經歷數時=몇 때를 지남(數時=얼마간). 無餘涅槃界는 3분할표 보류(5자 이상)이며 이름이 아니라 교리 정형구 조각으로 판별했다. 無餘=남음 없는, 涅槃=열반(정착, 3분할표 혼합), 界=영역. 界를 영역으로 옮긴 것은 낱말 확정역이 없는 선택이라 신고한다. 般涅槃=반열반(3분할표 의역; 般은 소리글자인 음의합벽으로 정착형을 따랐다). 便於…而는 「곧 …에서 …하였다」로 흡수.
王取舍利而耶維之,於彼處立大神祠。
왕은 사리를 거두어 야유하고, 그곳에 큰 신령 사당을 세웠다.
주 舍利=사리(음역, 정착). 耶維=야유(음역, 한자 독음). 음의 인용: 慧琳 0597a10 「或言闍毘或言闍維皆訛也正言闍鼻多義是焚燒也」 — 闍維의 訛로서 뜻은 태워 불사름이다. 소리로 옮긴 한역을 따라 독음으로 두었다. 이문 耶維=維耶【宋】. 大神祠=큰 신령 사당. 이문 祠=寺【宋元明聖】이면 「큰 신령 절」로 뜻이 달라진다. 이문 於=即於【宋元明】, 處 없음【聖】. 而耶維之의 耶는 의문 종결이 아니라 음역자의 일부다(배선 앵커 耶 의문종결은 이 자리에서 오적중). 彼處=그곳.
是王復以餘日往至園中觀看,見彼神寺,彫落壞敗。
이 왕은 다시 다른 날에 동산 가운데로 가서 둘러보다가, 저 신령 사당이 시들어 떨어지고 무너져 헐어 있는 것을 보았다.
주 이 조각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았다. 아래 모든 좌표의 대응 줄은 같은 까닭으로 미결(미대응)이다. 이문: 大正 「是」, 宋元明聖 「是時」 — 저본(大正)대로 옮김. 神寺는 「신령 사당」으로 옮겼다(寺=절이 아니라 신령을 모신 곳으로 읽음, 다음 좌표의 「내 아들의 神寺」와 함께 읽어야 서므로 앞 구간 문맥 필요). 見은 정형구 행(dassana)과 무관한 평범한 「보다」. 以餘日의 以·復은 흡수/「다시」.
見已便作是念:『此是我兒神寺,今以彫壞。』
보고 나서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것은 내 아들의 신령 사당인데, 이제 시들어 무너졌다.』
주 이문: 大正 「以」, 宋元明 「已」. 「今以彫壞」는 어느 쪽이든 「이제 시들어 무너졌다」로 뜻이 서므로 「이미」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見은 평범한 「보다」(정형구 행 見과 무관).
是時,國王即以己蓋,覆彼神寺上,皆由愛心未盡。
이때 국왕은 곧 자기 일산으로 저 신령 사당 위를 덮었으니,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다하지 않음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주 蓋는 정형구 행에서 장애(nīvaraṇa)로 쓰이나 이 자리는 사당 위를 덮는 덮개이므로 「일산」으로 옮겼다(문맥 판정, 앞 좌표 神寺 위를 덮음). 己=「자기」(단순 재귀, 他와 대조 없음). 即=「곧」(즉시).
「是故,阿難!莫作異觀,爾時善化王者,即我身是。
「그러므로 아난아, 달리 보지 말라. 그때 잘 교화하는 왕이란 곧 나의 몸이다.[불확실]
불확실 阿難=아난(정착어). 이름의 뜻은 「경사스러움·기쁨」(사전 아닌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82c03 「阿難陀此云慶喜」). 善化王은 3분할 표에 없는 이름이고, 한자가 뜻을 옮긴 것(善+化)으로 판별해 의역 「잘 교화하는 왕」으로 옮겼다 — 음독 「선화왕」은 ②가 금지한 조작이다. 판별 근거는 소리 글자가 아니라 뜻 글자라는 점뿐이므로 . 「即我身是」에서 붓다가 자신을 「我」로 가리킨다(같은 개념의 다른 지칭: 我/如來/世尊/佛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문: 異 자리에 大正 원문은 「是」였고 CBETA가 「異」로 교정한 형을 저본이 싣는다(교감주 add 「異【CB】,是【大】」); 宋元明은 「是」(『是故』의 是) 자리를 삭제. 저본 「異」대로 옮김. 莫=「-지 말라」.
時,以兒故,以一蓋覆寺上,緣此德本,流轉天、人之間,數百千變為轉輪聖王,或為帝釋、梵天。
그때 아들 때문에 일산 하나로 사당 위를 덮었고, 이 덕의 뿌리를 말미암아 하늘과 사람 사이를 흘러 구르며 수백 수천 번 바뀌어 전륜성왕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제석·범천이 되기도 하였다.
주 蓋=일산(앞과 같은 사안, 덮개). 德本=「덕의 뿌리」(善根류의 뜻이나 증언 유입을 피해 한문 글자 그대로). 流轉=「흘러 구르며」. 變=「번(바뀜의 횟수)」으로 읽음 — 이문 「反」(宋元明, 다음 좌표)과 같은 계열의 자리. 轉輪聖王=전륜성왕(정착형, 바퀴를 굴리는 성스러운 왕). 帝釋=제석(정착어;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17a09 「帝是唐言釋是梵語略也」 — 帝는 뜻, 釋은 음). 梵天=범천(확정역). 為=「되다」, 或=「혹은」.
我爾時不知是辟支佛,設我知是辟支佛者,其德不可稱量。
나는 그때 이분이 홀로 깨달은 이임을 알지 못하였다. 가령 내가 이분이 홀로 깨달은 이임을 알았다면, 그 덕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불확실]
불확실 辟支佛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고(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84b07 「辟支迦此云獨佛陀云覺」) 이에 따라 「홀로 깨달은 이」로 옮겼다. 다만 한국 불교계에 「벽지불」이 정착되어 있고 글자 자체는 소리 옮김(辟支)과 뜻 옮김(佛)이 섞인 꼴이어서 유형은 . 이 경에서 통일(12회). 設…者=「가령 …면」, 稱量=「헤아리다」.
若如來不成無上正真道者,更二千五百變作轉輪聖王,治化天下;以成道故,今有此二千五百蓋,自然應現。
만약 여래가 위없고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지 못했다면, 다시 이천오백 번을 바뀌어 전륜성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고 교화했을 것이다. 도를 이루었기 때문에 지금 이 이천오백 개의 일산이 저절로 응하여 나타난다.
주 붓다가 자신을 「如來」로 가리킨다(같은 인물을 世尊·我·佛로도 부르는,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자리). 若…者=「-면」. 無上正真道는 확정 술어에 없어 글자 그대로 「위없고 바르고 참된 도」. 蓋=일산. 自然=「저절로」(복합어, 自↔他 대조 아님). 應現은 「응하여 나타나다」 복합어로 읽어 당위(應)로 세우지 않았다. 今有此…蓋의 有는 주어를 세우는 자리라 「일산이 …나타난다」로 흡수. 以成道故=「이루었기 때문에」. 이문: 變 ↔ 反(宋元明) — 저본 變.
是謂,阿難!緣此因緣,如來笑耳。
이를 말한다, 아난아. 이 인연으로 여래가 웃었을 뿐이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慶喜: 一切經音義(慧琳) 0482c03). 是謂는 「이를 말한다」로 직역 — 웃음의 까닭을 가리키는 앞 구간 문맥은 이 조각 밖이다. 如來가 붓다 자신. 耳=「-ㄹ 뿐」.
承事諸佛,功德乃爾不可稱計。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면 공덕이 이처럼 헤아릴 수 없다.
주 承事=「받들어 섬기다」. 諸=「여러」. 乃爾=「이처럼」. 稱計=「헤아림」. 「-면」은 한문의 조건 표지가 없으나 承事…功德의 구조(앞절이 조건)를 한국어 어미로 지은 것이다.
是故,阿難!當求方便,供養諸佛世尊!如是。
그러므로 아난아, 방편을 구하여 여러 부처님 세존께 공양하라. 이와 같다.
주 方便은 정착형 「방편」을 그대로 두었다. 이 자리의 求方便은 힘써 노력함의 뜻일 수 있고 뒤 0727c14.2의 「방편으로 따져 묻는다」(수단)와 뜻이 다르므로 다의어. 當=「-라」(어미). 諸佛世尊의 佛·世尊 병기. 如是는 맺음말 「이와 같다」.
阿難!當作是學。」
아난아, 이렇게 배우라.」
주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라」)가 지므로 따로 세우지 않았다. 아난=정착어(慶喜, 一切經音義(慧琳) 0482c03).
是時,世尊將諸比丘眾,往詣毘舍離城,住城門中,便說此偈:
이때 세존이 여러 비구 대중을 거느리고 비사리성에 이르러, 성문 가운데 머물며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毘舍離=비사리(정착어). 뜻은 「넓고 크다」「넓고 장엄하다」(音義: 一切經音義(慧琳) 0447b17 「此翻為廣博」·0478a23 「亦名毘耶離此云廣嚴城也」). 偈=게송. 將=「거느리다」. 往詣=「가서 이르러」.
「今以成如來,世間最第一,
「이제 여래를 이루었으니, 세간에서 가장 으뜸이다,
주 今以成如來의 以는 앞 0727b07.1처럼 以/已 두 독법이 가능하나 수단·이유(「-로써」)로는 서지 않아 흡수하고 「이루었으니」로 옮겼다. 世間=「세간」(정착형). 如來가 붓다 자신. 게송 행 유지.
持此至誠語,毘舍離無他。
이 지극한 정성의 말을 지니니, 비사리에 다른 일이 없다.
주 至誠語: 誠은 「정성」과 「진실」 두 갈래가 있으나 저본 글자 그대로 「지극한 정성의 말」. 無他는 「다른 일(변고)이 없다」로 읽음 — 他를 自와 짝으로 세우지 않았다(自 없음). 毘舍離=비사리(정착어, 廣博·廣嚴: 一切經音義(慧琳) 0447b17·0478a23). 持=「지니다」.
復以至誠法,得至涅槃界,
다시 지극한 정성의 법으로 열반의 경계에 이르게 되니,[불확실]
불확실 復=「다시」(앞 행과 짝 되는 열거라 뜻이 실림). 得至=「이르게 되다」. 涅槃=열반(정착형;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63b14 「此翻為圓寂」). 界는 「경계」로 옮김 — 「계」로 음독할지 뜻으로 풀지 후보가 둘이라 . 法=「법」.
持此至誠語,毘舍離無他。
이 지극한 정성의 말을 지니니, 비사리에 다른 일이 없다.
주 0727b23.1과 한문이 같은 후렴. 같은 한국어로 고정. 비사리=정착어(廣博·廣嚴, 一切經音義(慧琳) 0447b17·0478a23).
復以至誠僧,賢聖眾第一,
다시 지극한 정성의 승가로, 현성의 대중이 으뜸이니,
주 僧은 僧伽의 줄임 음역으로 보아 「승가」. 賢聖眾=「현성의 대중」(賢聖은 정착형). 復=「다시」. 앞 행들의 佛·法·僧 차례에서 승가 자리.
持此至誠語,毘舍離無他。
이 지극한 정성의 말을 지니니, 비사리에 다른 일이 없다.
주 0727b23.1과 한문이 같은 후렴. 같은 한국어로 고정.
二足獲安隱,四足亦復然,
두 발 가진 것은 안온을 얻고, 네 발 가진 것도 그러하며,
주 二足·四足은 두 발·네 발 가진 것(생물)으로 읽음. 亦復然의 亦은 조사 「도」가, 復은 숙어 亦復의 일부라 흡수. 安隱=안온(정착형). 獲=「얻다」.
行道亦吉祥,來者亦復然。
길을 가는 것도 상서롭고, 오는 이도 그러하다.[불확실]
불확실 行道는 「길을 가다」로 옮김(앞 행의 二足·四足 열거, 뒤의 來者와 짝). 「도를 행하다」(수행)로 읽는 독법도 가능하므로 . 吉祥=「상서롭다」(3분할 표는 의역). 來者=「오는 이」. 亦·亦復는 조사 「도」「그러하다」로 흡수.
晝夜獲安隱,無有觸嬈者,
낮과 밤으로 안온을 얻어, 건드려 괴롭히는 이가 없으니,
주 觸嬈=「건드려 괴롭히다」(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09b10 「嬈相戲弄也」). 觸은 정형구 행(phassa)과 무관한 동사적 「건드리다」. 無有…者=「…이가 없다」(존재 부정이라 「없다」로 세움).
持此至誠語,使毘舍無他。」
이 지극한 정성의 말을 지니어, 비사로 하여금 다른 일이 없게 하겠다.」
주 「毘舍」는 毘舍離의 줄임으로 읽었다(앞 후렴과 같은 구, 글자 수 맞춤). 그러나 毘舍에는 상인이라는 뜻도 있다(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66a07 「賣買求利販易之人」 — 동형이의). 후렴 구조상 도시로 읽는다. 使=「-게 하다」, 他=「다른 일」(自와 짝 아님).
如來說此語已,是時羅剎、鬼神各自馳走,不安其所,更不復入毘舍離城;諸有疾病之人各得除愈。
여래가 이 말을 하고 나자, 이때 나찰과 귀신이 제각기 달아나 그 있는 곳에 편안하지 못하여, 다시는 비사리성에 들어오지 않았다. 질병이 있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병이 나았다.
주 서술자가 붓다를 「如來」로 부른다(같은 개념에 世尊·佛도 쓰는 한역의 흔들림). 羅剎=나찰(음역, 한자 독음;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64b13 「此云惡鬼」). 各自=「제각기」(복합어, 自 대조 없음). 更不復入=「다시는 들어오지 않았다」(更·復 겹침을 하나로). 諸有疾病之人=「질병이 있는 모든 사람」. 各得除愈=「저마다 병이 나았다」(得은 결과 표지로 흡수). 비사리성=정착어(廣博·廣嚴).
爾時,世尊遊在獼猴池側,國土人民承事供養衣被、飯食、床臥具、病瘦醫藥,隨其貴賤,各來飯佛及比丘僧,亦受八關齋,不失時節。
그때 세존이 원숭이 연못 곁에서 노닐고 있었는데, 나라 안의 백성이 옷과 이불, 밥과 먹을 것, 침상과 침구, 병들고 야윈 데 쓰는 의약을 받들어 섬기며 공양하고, 그 귀함과 천함에 따라 저마다 와서 부처님과 비구 승가에게 밥을 올리고, 또한 팔관재를 받아 때를 잃지 않았다.[불확실]
불확실 獼猴池는 3분할 표에 없는 이름. 獼猴=원숭이(뜻 글자,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30c24 「漢書謂之沐猴也」)로 판별해 의역 「원숭이 연못」으로 옮겼다(池=연못). 이름 판별은 . 이문: 獼猴 ↔ 彌獲(聖). 飯: 「밥을 올리다」(동사). 이문 「飲」(宋元明聖) — 저본 飯. 같은 문장에서 世尊과 佛을 함께 쓴다(한자 흔들림). 國土人民=「나라 안의 백성」(人民=백성으로 이 조각에서 통일). 衣被=「옷과 이불」, 床臥具=「침상과 침구」, 病瘦醫藥=「병들고 야윈 데 쓰는 의약」(瘦=야윔). 八關齋=팔관재(정착형). 受=「받다」(느낌 vedanā가 아님). 亦=「또한」(앞 공양에 더하여 받음이라 뜻이 실림). 比丘僧=비구 승가.
是時,毘舍離城內,有六師在彼遊化。
이때 비사리성 안에서 여섯 스승이 그곳을 돌아다니며 교화하고 있었다.
주 有…在彼는 존재를 도입하는 구문이라 「여섯 스승이 …있었다」로 주어를 세워 흡수(「…이 있어」 훈독투 회피). 六師=여섯 스승. 遊化=「돌아다니며 교화하다」. 비사리성=정착어(廣博·廣嚴, 一切經音義(慧琳) 0447b17·0478a23).
所謂六師者:不蘭迦葉、阿夷耑、瞿耶樓、波休迦栴、先比盧持、尼揵子等。
이른바 여섯 스승이란 불란가섭, 아이단, 구야루, 파휴가전, 선비로지, 니건자 등이다.
주 여섯 이름 모두 소리 글자로 판별해 한자 독음으로 적었다(불란가섭·아이단·구야루·파휴가전·선비로지·니건자). 不蘭迦葉은 3분할 표가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글자 전부가 소리 옮김으로 읽혀 독음으로 통일. 阿夷耑: 耑의 독음은 「단」(이문 湍, 宋元明聖); 음의(一切經音義(慧琳) 0657c21 「夷耑…都桓反又作湍人名也」). 尼揵子는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尼揵은 소리 옮김(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58b15 「音乾梵語外道名也」)이고 子만 뜻 글자라 혼합으로 판별 — 독음 「니건자」로 적음. 이문: 栴 ↔ 旃(聖). 所謂…者=「이른바 …란」, 等=「등」. 팔리형·범어형은 전거표(不蘭迦葉 Pūraṇa-Kassapa, 尼揵子 Nigaṇṭha-Nāta-putta)에 있으나 판정하지 않는다.
是時,六師集在一處,而作是說:「此沙門瞿曇住此毘舍離城,為人民所供養,然我等不為人民所供養。
이때 여섯 스승이 한곳에 모여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사문 고따마가 이 비사리성에 머물며 사람들에게 공양을 받는데,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에게 공양을 받지 못한다.
주 沙門=사문, 瞿曇=고따마(확정역). 為…所供養은 피동(「…에게 공양을 받다」). 不為…所는 「받지 못한다」로 옮겼다 — 「못」에 가능의 뜻을 얹은 감이 있으나 피동 부정의 자연스러운 한국어. 然=「그러나」. 而作是說은 而 흡수. 集在一處의 集=「모이다」(정형구 행 集 samudaya와 무관). 我等=「우리」. 비사리성=정착어.
我等可往與彼論議,何者得勝?
우리가 가서 그와 논의할 만하다. 어느 쪽이 이기겠는가?
주 可=「-ㄹ 만하다」. 論議=논의(이문 論義, 聖). 何者=「어느 쪽」. 得勝=「이기다」(得 흡수).
何者不如?」
어느 쪽이 못하겠는가?」
주 不如=「못하다(미치지 못하다)」(如는 비유가 아니라 「같다/미치다」). 何者=「어느 쪽」. 앞 좌표와 한 발화의 이어짐.
不蘭迦葉曰:「諸有沙門、婆羅門不受他語,方便致詰,此非沙門、婆羅門之法;然此瞿曇沙門不受他語,方便致難,我等那得與彼論議?」
불란가섭이 말하였다. 「모든 사문과 바라문이 다른 이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방편으로 따져 묻는 것은, 이는 사문과 바라문의 법이 아니다. 그러나 이 고따마 사문은 다른 이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방편으로 힐난하니, 우리가 어찌 그와 논의할 수 있겠는가?」
주 婆羅門=바라문(확정역). 諸有=「모든」. 他語의 他: 自와 짝이 아니므로 「남」이 아니라 「다른 이의 말」. 受=「받아들이다」(느낌이 아님). 方便은 「수단·꾀」의 뜻으로 읽으나 정착형 「방편」을 그대로 둠(앞 0727b18.2의 求方便과 뜻이 갈릴 수 있어 다의어). 致詰/致難=「따져 묻는 것을 가하다/힐난하다」. 那得=「어찌 …할 수 있겠는가」. 이문: 便 ↔ 更(宋元明) — 저본 便. 論議(이문 論義, 聖).
阿夷耑言:「無施、無受,亦無與者,亦無今世、後世眾生之類,亦無善惡之報。」
아이단이 말하였다. 「베풂도 없고 받음도 없으며, 주는 이도 없고, 이 세상과 뒷 세상의 중생 무리도 없으며, 선악의 과보도 없다.」
주 亦無가 세 번 이어지나 모두 열거의 「도」로 흡수. 無受의 受=「받음」(vedanā 아님). 與者=「주는 이」. 今世·後世=「이 세상·뒷 세상」. 眾生之類=「중생 무리」. 報=「과보」. 이문: 耑 ↔ 湍(宋元明聖).
瞿耶樓說曰:「在恒水側殺害人民不可稱計,積肉成山;在恒水左,作諸功德,緣此都無善惡之報。」
구야루가 말하였다. 「항수 곁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해쳐 헤아릴 수 없고 고기를 쌓아 산을 이루며, 항수 왼쪽에서 여러 공덕을 지으니, 이로 말미암아 모두 선악의 과보가 없다.」[불확실]
불확실 恒水는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恒은 소리(전거표: 恒水 ↔ Gaṅgānadī)이고 水는 뜻이라 혼합으로 판별 — 「항수」로 적는다(항=음, 수=물). 판별은 . 在…側/在…左=「곁에서/왼쪽에서」(방위의 해석은 저본 글자 그대로). 都無=「모두 없다」. 諸功德=「여러 공덕」. 이 발화는 앞 구절의 「설령」 같은 양보 표지가 한문에 없으므로 넣지 않았다.
彼休迦栴言:「正使在恒水左,布施、持戒,隨時供給不令有乏,亦復無此福報。」
저 휴가전이 말하였다. 「설사 항수 왼쪽에서 보시하고 계를 지니고, 때에 맞게 공급하여 모자람이 있지 않게 하더라도, 이런 복의 과보도 없다.」
주 「彼休迦栴」은 0727c09.1의 「波休迦栴」(파휴가전)과 같은 사람으로 보이나 저본은 彼(이문 波, 宋元明). 저본 글자대로 「저 휴가전」으로 옮겼고(彼=지시어), 같은 인물일 가능성은 비고로만 둔다. 이문: 栴 ↔ 旃(宋元明聖). 正使=「설사」. 令=「-게 하다」(「모자람이 있지 않게 하다」). 亦復無=「…도 없다」. 福報=「복의 과보」. 恒水=항수(앞과 같은 처리).
先比盧持言:「無有言語,亦無言語之報,唯默然快樂。」
선비로지가 말하였다. 「말이 없고 말의 과보도 없으니, 오직 잠잠히 있는 것이 즐겁다.」
주 無有言語의 有는 「없다」에 붙은 부정 숙어라 「말이 없다」. 默然=「잠잠히 있다」(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428c16 「不言也」). 唯=「오직」. 快樂=「즐겁다」.
尼揵子曰:「有言語,亦有言語之報。
니건자가 말하였다. 「말이 있고 말의 과보도 있다.
주 有言語·有言語之報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有(앞 좌표 無有言語의 반대 주장)라 「있다」로 세움. 亦=「도」.
沙門瞿曇亦是人,我亦是人;瞿曇有所知,我等亦有所知;沙門瞿曇有神足,我亦有神足。
사문 고따마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고따마에게도 아는 것이 있고 우리에게도 아는 것이 있다. 사문 고따마에게 신통이 있고 나에게도 신통이 있다.[불확실]
불확실 神足=신통(②의 판별 따름). 이 자리는 서로 신통을 겨루는 문맥이라 하위어(iddhi)인지 상위어(기적)인지 한문만으로 안 가려져 . 亦·有: 「도」·「있다」(소유의 有가 뜻이 실림). 有所知의 所는 「아는 것」으로 풀었다. 我·我等의 교체(이문: 宋元明 「我等」)는 저본 我대로. 沙門·瞿曇=사문·고따마(확정역).
若彼沙門現一神足,我等當現二神足;彼現二神足,我現四神足;彼現四,我現八;彼現八,我現十六;彼現十六,我現三十二,恒使增多,終不為彼屈,足得與角力。
만약 저 사문이 하나의 신통을 나타내면 우리는 두 신통을 나타내겠다. 그가 두 신통을 나타내면 나는 네 신통을 나타내고, 그가 넷을 나타내면 나는 여덟, 그가 여덟이면 나는 열여섯, 그가 열여섯이면 나는 서른둘을 나타내어, 늘 많아지게 하여 끝내 그에게 꺾이지 않고, 충분히 그와 힘을 겨룰 수 있다.[불확실]
불확실 神足=신통(앞 좌표와 같은 ). 若=「-면」, 當現=「나타내겠다」(當은 어미). 恒使增多=「늘 많아지게 하여」. 為彼屈=「그에게 꺾이다」(為…피동). 足得與角力=「충분히 그와 힘을 겨룰 수 있다」(足=충분히, 得=가능, 角力=힘을 겨룸). 이문: 我 ↔ 我等, 等 있고 없음(宋元明聖), 角 ↔ 捔(宋元明) — 저본 我·角. CBETA 按: 「我等」은 대정 교감주의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이 조각 저본 교감주 참조).
設彼不受我等論者,即是彼之咎,人民聞已,不復供養,我等便得供養。」
가령 그가 우리의 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곧 그의 허물이니, 백성이 듣고 나면 다시는 공양하지 않고 우리가 곧 공양을 받게 될 것이다.」
주 設…者=「가령 …면」. 受=「받아들이다」. 即是=「곧 …이다」. 咎=「허물」. 不復=「다시는 …않다」. 便得供養=「곧 공양을 받게 되다」(得 흡수).
是時,有比丘尼聞此語云:「六師集在一處,生此論本:『沙門瞿曇不受人論,我等足得勝。』」
이때 한 비구니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여섯 스승이 한곳에 모여 이 논의의 뿌리를 일으켰다. 『사문 고따마가 사람의 논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주 이문: 「聞此語云」의 云 — 大正 원문은 「如」였고(교감주 add) CBETA가 「云」로 교정, 聖本은 「云何」. 저본 云대로 옮김. 有比丘尼=「한 비구니」(존재 도입 有 흡수). 論本=「논의의 뿌리」. 生=「일으키다」(정형구 행 生 jāti와 무관). 集=「모이다」. 不受人論의 人=「사람」(他人 대조 아님). 足得勝=「충분히 이길 수 있다」. 비구니=비구니(음역 정착형).
是時,輸盧尼比丘尼飛在虛空,向彼六師,而說此偈:
이때 수로니 비구니가 허공에 날아 있으면서 저 여섯 스승을 향하여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輸盧尼는 3분할 표에 없는 이름. 소리 글자로 판별해 독음 「수로니」(판별 근거: 뒤의 「輸盧比丘尼」에서 尼가 되풀이되는 점과 이름자 구성). 이 경에서 「수로」로 줄어 나오는 자리가 있다(0728a19.1 등). 이문: 尼 없음(宋元明) — 저본 尼. 飛在虛空=「허공에 날아 있다」. 虛空=허공. 向=「향하여」, 而 흡수.
「我師無等倫,最尊無過者,
「나의 스승은 견줄 짝이 없고, 가장 존귀하여 넘어서는 이가 없으니,
주 無等倫=「견줄 짝이 없다」. 無過者=「넘어서는 이가 없다」. 게송 행 유지. 화자는 비구니, 청자는 외도 여섯 스승이라 평서.
是彼尊弟子,名曰輸盧尼。
이는 저 존귀한 분의 제자로서, 이름을 일러 수로니라 한다.[불확실]
불확실 「是彼尊弟子」의 是를 화자 자신을 가리키는 「이(사람)」로 읽었다. 앞 행의 「我師」와 이어 읽는 독법과 끊는 자리가 하나로 안 정해져 . 名曰=「이름을 일러 …라 한다」. 輸盧尼=수로니.
汝設有境界,便與我論議,
너희에게 가령 경계가 있다면 곧 나와 논의하라,[불확실]
불확실 汝=「너희」(청자가 여섯 스승). 設有境界: 境界는 「영역·능력」일 수 있어 정착형 「경계」를 그대로 두고 . 設=「가령 …면」. 便與我論議=「곧 나와 논의하라」(명령으로 읽음). 이문: 論議 ↔ 論義(聖).
我當事事報,如師子掩鹿。
나는 일마다 대답하겠으니, 사자가 사슴을 덮치듯 하리라.
주 當=「-겠다」(어미). 事事=「일마다」. 報=「대답하다」(뒤 0728a15.1의 「六師不能報之」와 같은 뜻으로 통일). 師子=사자(음역 표의 한자 독음, 한국어 형이 같다). 掩=「덮치다」. 이문: 如 ↔ 汝(明) — 저본 如.
且捨我尊師,本無如來者,
우선 나의 존귀한 스승은 제쳐 두고, 본래 여래가 없다면,[불확실]
불확실 「本無如來者」의 者를 가정/주제 표지로 읽어 「본래 여래가 없다면」으로 옮겼다. 「여래가 없는 이」로 명사화하는 독법, 「且捨我尊師本」으로 끊는 독법도 있어 . 且捨=「우선 제쳐 두다」. 如來=여래(확정역).
我今比丘尼,足能降外道。」
나는 지금 비구니로서 충분히 외도를 항복시킬 수 있다.」
주 足能=「충분히 …ㄹ 수 있다」(能은 어미). 降=「항복시키다」. 外道=외도(정착형).
是比丘尼說此語已,六師尚不能仰視顏色,況與論議。
이 비구니가 이 말을 하고 나자, 여섯 스승은 오히려 그의 얼굴빛을 우러러보지도 못하였으니 하물며 함께 논의함이랴.
주 尚=「오히려」, 況=「하물며」. 不能=「못하다」(능 흡수). 仰視顏色=「얼굴빛을 우러러보다」(顏色=얼굴빛). 論議.
是時,毘舍離城人民之類,遙見比丘尼在虛空中,共六師而論議,然六師不能報之;各各稱慶,歡喜無量:「六師今日屈折於彼。」
이때 비사리성의 백성 무리가 멀리서 비구니가 허공 가운데에서 여섯 스승과 함께 논의하는 것을 보았으나, 여섯 스승은 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저마다 기리고 경하하며 기쁨이 한량없었다. 「여섯 스승이 오늘 그에게 꺾였다.」
주 人民之類=「백성 무리」. 遙見=「멀리서 보다」(見은 평범한 동사). 在虛空中. 共…而論議는 而 흡수. 然=「그러나」. 不能報之=「그에게 대답하지 못하였다」(報=대답, 앞 0728a11.1과 통일). 各各=「저마다」. 稱慶=「기리고 경하하다」. 歡喜無量=「기쁨이 한량없다」. 屈折於彼=「그에게 꺾이다」(於는 조사로 흡수, 屈 0727c27.1과 같은 「꺾이다」). 비사리성=정착어. 이문: 論議 ↔ 論義(聖).
是時,六師極懷愁憂,出毘舍離城而去,更不入城。
이때 여섯 스승은 몹시 근심을 품고 비사리성을 나가 떠났으며, 다시는 성에 들어가지 않았다.
주 極=「몹시」. 愁憂=「근심」. 出…而去는 而 흡수. 更不入=「다시는 들어가지 않다」. 비사리성=정착어.
是時,眾多比丘聞輸盧比丘尼與六師共論而得勝,聞已,至世尊所,頭面禮足,以此因緣,具白世尊。
이때 많은 비구가 수로 비구니가 여섯 스승과 함께 논하여 이겼다는 것을 듣고, 듣고 나서 세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이 인연으로 세존께 갖추어 아뢰었다.
주 輸盧比丘尼=「수로 비구니」(앞의 輸盧尼와 같은 인물로 보이나 저본 글자대로 尼 없이 「수로」). 眾多=「많은」. 與…共論而得勝은 而 흡수, 得勝=「이기다」. 至世尊所의 所=「계신 곳」(장소). 頭面禮足=「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다」. 具白=「갖추어 아뢰다」.
世尊告諸比丘:「輸盧比丘尼有大神足,有大威神,智慧多聞。
세존이 여러 비구에게 일렀다. 「수로 비구니는 큰 신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으며, 지혜롭고 많이 들었다.[불확실]
불확실 神足=신통(앞과 같은 ). 大威神=「큰 위신」(위엄과 신통의 힘). 多聞=「많이 들었다」. 智慧=「지혜롭다」. 有大…: 능력의 소유를 서술하는 有라 「있다」로 세움.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我長夜恒生此念:『更無有能與六師共論,唯有如來及此比丘尼。』」
나는 긴 밤 동안 늘 이런 생각을 내었다. 『달리 여섯 스승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이는 없고, 오직 여래와 이 비구니가 있을 뿐이다.』」
주 붓다가 한 발화 안에서 자신을 「我」와 「如來」로 함께 부른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長夜=「긴 밤 동안」. 恒=「늘」. 生此念의 生=「내다」(정형구 행 生 jāti와 무관). 更無有能…=「달리 …할 수 있는 이는 없다」(更=달리). 唯有=「오직 …이 있을 뿐」. 與…共論=「함께 논의하다」.
爾時,世尊告諸比丘:「汝等頗見餘比丘尼能降伏外道如此比丘尼乎?」
그때 세존이 여러 비구에게 일렀다. 「너희는 혹시 다른 비구니로서 이 비구니처럼 외도를 항복시킬 수 있는 이를 보았느냐?」
주 頗=「혹시」(의문). 汝等=「너희」. 餘=「다른」. 能降伏=「항복시킬 수 있다」. 如此=「이와 같이/처럼」. 乎=「-느냐」(의문 어미). 見=평범한 「보다」. 이문: 乎 ↔ 比乎(宋元明).
諸比丘對曰:「不也。
여러 비구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주 不也=「아닙니다」(也=평서 종결, 따로 옮기지 않음). 청자가 붓다라 존댓말로 통일(다음 좌표 「세존이시여」까지 한 발화).
世尊!」
세존이시여!」
주 호격. 앞 좌표의 발화 끝.
世尊告曰:「諸比丘!我聲聞中第一比丘尼能降伏外道,所謂輸盧比丘尼是。」
세존이 일렀다. 「비구들아, 나의 성문 가운데 외도를 항복시킬 수 있는 제일의 비구니는, 이른바 수로 비구니가 그이다.」
주 聲聞=성문(정착형). 能降伏=「항복시킬 수 있다」. 所謂…是=「이른바 …이 그이다」. 이문: 曰 없음(宋元明).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여러 비구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이 경에서 붓다를 가리키는 말이 世尊·佛·如來로 갈린다(여기는 佛,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所說=「말씀하신 것」.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