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
(8)
주 제목 좌표. 저본 「(八)」은 번호 표지뿐이다(大正 8). 팔리 52.0 `52`도 번호 표지라 같은 자리이나 번호 체계가 다르다 — partial. 팔리 제목 `Khattiyasuttaṃ`(0.3)은 한역에 제목이 없어 absent. 저본의 교감주 `~A. VI. 52. Khattiya.`는 大正藏 편자의 병기이지 증언 본문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실행 설정상 산스크리트 없음) — 산스크리트 항은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으로 적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0.3
聞如是:
이렇게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이 아함 전권 453). 투입된 팔리 an6.52 본문은 `Atha kho…`(52.1)로 바로 시작하며 이 자리에 놓일 문장이 없다 — absent는 투입된 an6.52 범위에서 확인한 것이다. 저본에 주어 `我`가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부처님 [구속]. 舍衛國=정착어 「사위국」 — `舍衛`는 음역이며 도시 이름이다(전거: 팔리 `Sāvatthī` / 범어 당대 `śravasthi`, 계통은 판정하지 않음. 음의 慧琳 0367c24: 室羅伐悉底의 옛 음역이고 뜻으로는 「聞者城」). 祇樹給孤獨園=정착어 「기수급고독원」 — 祇樹는 祇(陀)太子의 숲(음의 慧琳 0368a03), 給孤獨은 외로운 이를 구제한 장자 이름의 의역(음의 慧琳 0368a05: 梵 阿那邠邸). 한 이름 안에 祇(音)+樹(義), 給孤獨(義)이 섞인 音義合璧이라 풀어 쓰지 않고 정착형을 택했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3분할표가 보류로 표시한 5자 이상 덩어리 — 이름임은 섰으나 정착형 선택은 정도평 몫). 팔리 an6.52 본문에는 이 장면 문장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1
爾時,生漏梵志往至世尊所,共相問訊,在一面坐。
그때 태어남의 샘이라는 범에 뜻을 둔 이가 세존이 계신 곳에 가 이르러, 서로 안부를 묻고 한쪽에 앉았다.
주 世尊=세존 [구속]. 往至世尊所의 所는 처소 「곳」. 共相問訊=「서로 안부를 묻고」(음의 慧琳 0428c12: 訊=問). 팔리 52.3의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정중한 담화)는 한역에 따로 서 있지 않고 `共相問訊`이 52.2·52.3을 눌러 담은 듯 읽힌다 — partial. 在一面坐=`ekamantaṃ nisīdi`. 人名 生漏(팔리 `Jāṇussoṇi`)과 梵志(팔리 `brāhmaṇa`)는 3분할표가 둘 다 의역으로 분류했다. 生漏를 「태어남의 샘」, 梵志를 「범에 뜻을 둔 이」로 옮겼다(梵=범/청정, 志=뜻; 사전 梵志 ⑥ 「志求梵天之法者」). 본문에는 한자 병기를 두지 않는다. 한국 불교계의 정착 음독형이 따로 있으나 표의 지시(의역은 뜻으로)를 따랐고 정착형 채택은 정도평 몫이다. 生漏는 사전에 표제가 없고 전거(`Jāṇussoṇi`)도 뜻의 연결을 주지 않는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니까야 대응 같음 AN 6.52:52.1
니까야 대응 같음 AN 6.52:52.2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3
爾時,生漏梵志白世尊言:「瞿曇!剎利今日意欲何求?
그때 태어남의 샘이라는 범에 뜻을 둔 이가 세존께 아뢰어 말하였다. “고따마여! 찰리는 오늘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려 합니까?
주 瞿曇=고따마, 剎利=찰리 [구속]. 白…言은 「아뢰어 말하였다」(윗사람에게 아룀) — 존댓말. 意欲何求는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려 합니까」(팔리 `kiṃadhippāyā`에 놓이는 것으로 읽힌다). 팔리는 한 집단마다 다섯 항(`kiṃadhippāyā, kiṃupavicārā, kiṃadhiṭṭhānā, kiṃabhinivesā, kiṃpariyosānā`)을 한 문장으로 묻는데, 한역은 이 좌표부터 항을 낱낱이 좌표로 나눠 네 항(意欲何求·行業·教·究竟)을 묻는다. 인용은 0714b22.1에서 닫힌다. 今日은 「오늘」.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4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5
有何行業?
어떤 행하는 일이 있습니까?
주 行業=「행하는 일」(사전 行業 ①: 증일아함 6회·2경, 이 경에서만 질문 정형으로 쓰임. 丁福保 「身口意之所作」은 후대의 눈이라 쓰지 않았다). 有는 존재 서술이나 「어떤 …이 있습니까」 의문형으로 흡수. 한역 네 항이 팔리 다섯 항 가운데 어느 것에 놓이는지는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 낱말 뜻으로 `kiṃupavicārā`일 가능성을 열어 둘 뿐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5
為著何教?
무슨 가르침에 집착합니까?
주 為著何教의 著는 「집착하다」(사전 著 ⑥ 「心情纏綿於事物而不離」은 후대의 풀이이나 글자 뜻과 어긋나지 않음), 教는 「가르침」(앵커 教[사역·가르침] 중 가르침). 팔리 `kiṃabhinivesā`(집착·몰두)와 낱말 뜻이 통하는 듯 보이나 한역 教가 `adhiṭṭhāna`를 옮긴 것일 수도 있어 한문만으로 정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5
為究竟何事?
무슨 일을 끝내려는 것입니까?
주 究竟은 이 경 뒤쪽 답(0714b22.2 `所要究竟終不中休`)에서 동사 「끝내다」로 쓰여 같은 글자를 「끝내다」로 통일했다(사전 究竟 ① 60회·15경; 丁福保 Uttara는 후대). 팔리 `kiṃpariyosānā`(끝)와 낱말 뜻이 가깝다. 為는 「~하려는 것」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5
婆羅門意欲何求?
바라문은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려 합니까?
주 婆羅門=바라문 [구속](음의 慧琳 0325c03: 淨行). 같은 부류(팔리 `brāhmaṇā`)를 한역은 이 좌표에서만 `婆羅門`으로 쓰고 다른 곳에서는 `梵志`로 쓴다(0714b24.1, 0714b25.1)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한국어도 각각 다른 말(바라문 / 범에 뜻을 둔 이)로 고정했다. 이 좌표에는 今日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7
究竟何事?
무슨 일을 끝냅니까?
주 앞의 같은 질문들과 달리 `為`가 없다(`究竟何事`). 이문: 宋元明본은 `為究竟何事` — 앞 질문과 일치하는 꼴이다. 大正 본문대로 `為`가 없는 꼴을 옮겼고 그 차이를 「끝내려는 것입니까」 / 「끝냅니까」로 남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7
國王今日意欲何求?
나라의 왕은 오늘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려 합니까?
주 한역의 셋째 집단은 國王인데, 팔리 셋째 집단은 `gahapatikā`(재가 장자·집주인)이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대상이라 divergent. 한역에는 gahapatika에 해당하는 집단이 따로 서지 않고, 팔리에는 國王 집단이 따로 서지 않는다(팔리 `khattiya`가 왕족). 國王은 「나라의 왕」.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52:52.9
盜賊今日意欲何求?
도적은 오늘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려 합니까?
주 盜賊=도적. 한역의 넷째 집단이다. 팔리에서는 `corā`가 다섯째(52.13)이고 넷째는 `itthī`(52.11)다 — 도적과 여인의 순서가 한역과 팔리에서 서로 바뀐다. 질문 틀은 같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6.52:52.13
女人今日意欲何求?
여인은 오늘 마음으로 무엇을 구하려 합니까?
주 女人=여인. 한역 다섯째 집단. 팔리에서는 `itthī`가 넷째(52.11)다 — 0714b19.4 참조.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6.52:52.11
為究竟何事?」
무슨 일을 끝내려는 것입니까?”
주 0714b17.1과 같은 판단. 인용 닫힘 `」`로 한꺼번에 던진 질문 묶음이 끝난다 — 팔리는 질문과 답이 집단마다 번갈아 나오는데, 한역은 질문 다섯 집단을 먼저 몰아 던지고 이어 답을 하나씩 받는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6.52:52.11
爾時,世尊告梵志曰:「剎利種者,常好鬪訟,多諸技術,好喜作務,所要究竟終不中休。」
그때 세존께서 범에 뜻을 둔 이에게 말씀하셨다. “찰리 종족은 늘 싸움과 송사를 좋아하고, 갖가지 기술이 많으며, 일 짓기를 즐겨 좋아하여, 끝내려 바라는 것은 끝내 중도에 쉬지 않는다.”
주 찰리 종족(剎利種). 붓다의 발화는 평서. 常好鬪訟=늘 싸움과 송사를 좋아하고, 多諸技術=갖가지 기술이 많으며(諸=여러), 好喜作務=일 짓기를 즐겨 좋아하여(사전 作務 ①: 이 경에서만 1회, 음의 慧琳 0448c22 「務=事業」), 所要究竟終不中休=끝내려 바라는 것은 끝내 중도에 쉬지 않는다. 같은 자리의 팔리 답(52.6 `bhogādhippāyā paññūpavicārā balādhiṭṭhānā pathavībhinivesā issariyapariyosānā`: 재물·지혜·힘·땅·주권)과 내용이 다르다 — divergent. 반면 한역의 `技術`·`作務`·`終不中休`는 팔리 gahapatika의 답(52.10 `sippādhiṭṭhānā kammantābhinivesā niṭṭhitakammantapariyosānā`: 기술·일·일의 완성)과 낱말 뜻이 겹친다 — partial. 즉 한역 剎利 항의 답이 팔리 gahapatika 항의 답과 겹치는 것으로 읽힌다(0714b27.1 참조). 어느 쪽이 원형인지 판정하지 않는다. 이문: 技(大) ↔ 伎(宋) ↔ 妓(聖), 所(大) ↔ 所作(宋元明).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52:52.6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10
梵志問曰:「梵志意何所求?」
범에 뜻을 둔 이가 물었다. “범에 뜻을 둔 이는 마음으로 무엇을 구합니까?”
주 한역은 앞에서 던진 다섯 집단의 질문을 답 직전에 집단마다 다시 짧게 묻는다(`意何所求`). 梵志가 묻는 이이자 부류 이름으로 한 문장에 겹쳐 나온다 — 앞은 사람, 뒤는 부류. 같은 부류를 앞(0714b17.2)에서는 婆羅門으로 썼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所求의 所는 「구합니까」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7
世尊告曰:「梵志意好呪術,要作居家,樂閑靜之處,意在梵天。」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범에 뜻을 둔 이는 마음이 주문과 술법을 좋아하고, 집에 사는 이가 되려 하며,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즐기고, 마음이 범천에 있다.”
주 梵天=범천 [구속](3분할표는 의역으로 표시했으나 확정역이 이긴다. 음의 慧琳 0482c23: 寂靜·清淨). 呪術=「주문과 술법」, 要作居家=「집에 사는 이가 되려 하고」(居家의 뜻 — 재가인지 집에 머묾인지 — 이 저본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樂閑靜之處=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즐기고. 팔리 답(52.8)의 `mantādhiṭṭhānā`(주문)와 `brahmalokapariyosānā`(범천 세계)에 겹친다 — partial. 이문: 呪(大) ↔ 祝(宋元明聖).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8
又問曰:「國王意何所求?」
또 물었다. “나라의 왕은 마음으로 무엇을 구합니까?”
주 又問曰의 주어는 앞 좌표의 梵志(질문자). 셋째 집단 國王 — 팔리 셋째는 gahapatika(0714b18.3 참조).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52:52.9
世尊告曰:「梵志當知,王意所欲得國政,意在兵仗,貪著財寶。」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범에 뜻을 둔 이여, 알아라. 왕의 마음이 얻고자 하는 것은 나라의 정사이고, 마음이 병장기에 있으며, 재물과 보배를 탐하여 집착한다.”
주 當知는 어미 「-라」로 흡수. 所欲得은 「얻고자 하는 것」. 國政=나라의 정사(이문 宋元明 `故`), 兵仗=병장기(음의 慧琳 0456b05 「刀戟之總名」; 이문 聖 `杖`), 貪著=탐하여 집착한다. 같은 자리(셋째)의 팔리 답은 gahapatika의 것(52.10)이라 divergent. 반면 한역 왕의 답(재물·병장기·나라 정사)은 팔리 khattiya의 답(52.6 `bhogādhippāyā … balādhiṭṭhānā pathavībhinivesā issariyapariyosānā`: 재물·힘·땅·주권)과 낱말 뜻이 겹친다 — partial. 0714b22.2와 짝으로 읽으면 한역과 팔리에서 khattiya와 gahapatika의 답이 서로 엇갈려 놓인 모양이다.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6.52:52.10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6
「盜賊意何所求?」
“도적은 마음으로 무엇을 구합니까?”
주 질문자가 이어서 묻는다(저본에 화자 표지 없음). 순서는 0714b19.4와 같은 판단.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6.52:52.13
世尊告曰:「賊意盜竊,心在姦邪,欲使人類不知所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도적의 마음은 훔치고 도둑질함에 있고, 마음은 간사하고 사악함에 있으며, 사람들이 지은 일을 알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
주 盜竊=훔치고 도둑질함, 姦邪=간사하고 사악함. 欲使人類不知所作의 使는 사역 「-게 하다」. 所作=「지은 일」(사전 所作 ①: 97회) — 도둑이 한 일인지 사람들이 한 일인지 저본이 가르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팔리 답(52.14 `ādānādhippāyā gahanūpavicārā satthādhiṭṭhānā andhakārābhinivesā adassanapariyosānā`)의 `ādāna`(취함)·`adassana`(보이지 않음)와 겹친다 — partial. 순서 바뀜은 0714b19.4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14
世尊告曰:「女人意在男子,貪著財寶,心繫男女,心欲自由。」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여인의 마음은 남자에게 있고, 재물과 보배를 탐하여 집착하며, 마음이 남자와 여자에 매여 있고, 마음은 자유롭고자 한다.”
주 意在男子=마음이 남자에게 있고(팔리 `purisādhippāyā`와 겹침), 心繫男女=마음이 남자와 여자에 매여 있고(男女는 사전 男女 ③ 용례 ea145/0590a21.1·ea161/0596a20.1의 「男女大小」처럼 남자와 여자로 읽었다. 팔리 `puttādhiṭṭhānā`(아들)와 겹치는지는 한문만으로 정하지 않음) [불확실:다의어_판별], 心欲自由=마음은 자유롭고자 한다(自由 한 낱말이라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팔리 `issariyapariyosānā`와 겹칠 수 있음). 貪著財寶는 팔리 `alaṅkārūpavicārā`(장신구)와 낱말 뜻이 일부 겹친다. 전체로 partial. 순서 바뀜은 0714b19.4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12
爾時,梵志白世尊言:「甚奇!甚特!盡知爾許之變,如實不虛。
그때 태어남의 샘이라는 범에 뜻을 둔 이가 세존께 아뢰어 말하였다. “매우 기이합니다! 매우 특별합니다! 이만큼의 변화를 다 아시니, 실제 그대로이며 헛되지 않습니다.
주 甚奇·甚特은 팔리 `acchariyaṃ … abbhutaṃ`(52.17)에 겹친다 — equivalent. 盡知爾許之變(이만큼의 변화를 다 아시니)은 팔리 52.18의 `…jānāti adhippāyañca upavicārañca …`(뜻·행·기반·몰두·끝을 아신다)와 겹치나 항목 나열이 한역에는 없다 — partial. 52.19는 `…pe…`로 집단들을 접은 자리라 안쪽을 읽지 못해 unaligned. 如實不虛(실제 그대로이며 헛되지 않습니다)는 팔리에 대응 문장이 없다(사전 如實 ①). 如는 `如實`의 일부라 비유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순서: 팔리는 이 감탄이 사문(비구) 질문·답(52.15~16) 뒤에 오는데 한역은 앞에 놓고 비구 항을 뒤로 돌린다 — 0714c04.1 참조.
니까야 대응 같음 AN 6.52:52.17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18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6.52:52.19
今日比丘意何所求?」
오늘 비구는 마음으로 무엇을 구합니까?”
주 한역은 비구, 팔리는 `samaṇā`(사문)를 묻는다 — 개별 어휘 갈림(比丘=비구 [구속]). 한역은 감탄(0714c03.1) 뒤에 이 질문을 놓았고 팔리는 감탄 앞(52.15)에 놓는다 — reordered. 인용 닫힘. 한역의 비구 항에는 질문 항이 하나뿐이다(앞 집단들의 네 항 반복이 없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6.52:52.15
世尊告曰:「戒德具足,心遊道法,意在四諦,欲至涅槃。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계와 덕을 갖추고, 마음이 도의 법에 노닐며, 마음이 네 가지 진리에 있고, 열반에 이르고자 한다.
주 戒德具足=계와 덕을 갖추고(사전 戒德·具足 항목), 心遊道法=마음이 도의 법에 노닐며(遊=노닐다), 意在四諦=마음이 네 가지 진리에 있고(四諦를 뜻으로 옮김), 欲至涅槃=열반에 이르고자 한다. 涅槃은 3분할표가 音義合璧로 표시한 말이라 정착형 「열반」을 택했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전거: 涅槃 팔리 `Nibbāna` ↔ 범어 당대 `nirvāṇa` —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慧琳 0463b14: 圓寂으로 옮긴다고 전한다. 팔리 답(52.16 `khantisoraccādhippāyā paññūpavicārā sīlādhiṭṭhānā ākiñcaññābhinivesā nibbānapariyosānā`)의 `sīlādhiṭṭhānā`(계에 터를 둠)와 `nibbānapariyosānā`(열반을 끝으로 함)에 겹친다 — partial. 팔리의 인욕·온화, 지혜, 무소유와 한역의 도법·사제는 서로 대응이 서지 않는다. 순서 바뀜은 0714c04.1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AN 6.52:52.16
此是比丘之所求也。」
이것이 비구가 구하는 것이다.”
주 也는 평서 어미로 흡수. 所求의 所는 「구하는 것」. 이 맺음 문장은 투입된 팔리 52.16~52.20에 대응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16
是時,生漏梵志白世尊言:「如是。
그때 태어남의 샘이라는 범에 뜻을 둔 이가 세존께 아뢰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如是는 응답 「그렇습니다」(사전 如是, 이 경 0714c06.2). 이 이하 한역의 마무리 찬탄(0714c06.2~0714c09.1)은 팔리 쪽 마무리 찬탄 52.20(`Abhikkantaṃ, bho gotama…pe…`)에 놓일 자리이나, 52.20이 `…pe…`로 접힌 자리라 안쪽을 읽지 못해 unaligned로 적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6.52:52.20
世尊!比丘所行意不可移轉,其義實爾,瞿曇!涅槃者極為快樂。
세존이시여! 비구가 행하는 마음은 옮겨 바꿀 수 없으니, 그 뜻이 실로 그러합니다, 고따마여! 열반은 지극히 즐겁습니다.
주 한 발화 안에서 부르는 말이 `世尊` → `瞿曇`으로 바뀐다 — 한역이 같은 개념(붓다 호칭)에 다른 한자를 쓴다(세존 [구속] / 고따마 [구속]). 팔리는 `bho gotama` 한 가지다. 比丘所行意의 所行은 「행하는」, 不可移轉은 「옮겨 바꿀 수 없다」, 其義實爾는 「그 뜻이 실로 그러합니다」(義=뜻, 사전 義 ①). 涅槃者極為快樂의 者는 주제 「-은」, 快樂은 「즐겁다」(음의 慧琳 0802a07은 음만 풂), 為는 판단 서술이라 흡수. 涅槃 처리는 0714c05.1과 같다. 전거: `Nibbāna` ↔ `nirvāṇa` — 판정하지 않는다. 팔리 52.20은 접혀 있어 unaligned.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6.52:52.20
如來所說乃為過多,猶如盲者得視,聾者得聽,在闇者見明,今日如來所說亦復如是,而無有異。
여래께서 설하신 것은 넘치도록 많으니, 마치 눈먼 이가 볼 수 있게 되고, 귀먹은 이가 들을 수 있게 되며, 어둠 속에 있는 이가 밝음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여래께서 설하신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다름이 없습니다.
주 如來=여래 [구속]. 앞 좌표들의 `世尊`·`瞿曇`과 함께 같은 붓다를 가리키는 호칭이 한 발화에서 세 가지 한자로 흔들린다. 乃為過多의 過多는 「넘치도록 많다」로 옮겼으나 칭찬(뛰어남)인지 단순한 많음인지 저본이 가르지 않는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猶如는 비유. 得視·得聽은 [가능·획득] 중 가능 — 「볼 수 있게 되고」「들을 수 있게 되며」. 在闇者見明=어둠 속에 있는 이가 밝음을 보는 것. 盲者·聾者(음의 慧琳 0314b22·0314b23). 今日…亦復如是,而無有異: 亦復는 「또한」, 而는 흡수, 無有異는 「다름이 없습니다」. 이 좌표의 눈먼 이·귀먹은 이·어둠 속 비유는 팔리 52.20이 `…pe…`로 접은 정형 비유(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듯…)에 겹칠 수 있으나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unaligned로 둔다. 한역은 그 정형 비유를 다른 꼴로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번역기법).
니까야 대응 미정렬 AN 6.52:52.20
我今國事猥多,欲還所止。」
저는 이제 나라의 일이 매우 많아,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주 我를 윗사람 앞이라 「저」로 옮겼다. 猥多=매우 많다(음의 慧琳 0653b10 增一阿含經 「猥=眾」). 所止의 所는 「머무는 곳」. 欲還=돌아가고자 한다. 팔리는 52.20의 귀의 선언 뒤에 바로 `Dasamaṃ`(52.21)으로 끝나며 이 자리에 놓일 문장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21
世尊告曰:「宜知是時。」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때임을 알라.”
주 宜知是時의 宜는 어미 「-라」가 진다. 是時=이때. 팔리 52.21 앞에 놓일 문장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21
是時,生漏梵志即從坐起,繞佛三匝,便退而去。
그때 태어남의 샘이라는 범에 뜻을 둔 이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세 번 돌고, 이어 물러나 떠났다.
주 이 좌표에서 붓다를 `佛`(부처님 [구속])로 적는다 — 앞 좌표들은 `世尊`.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即=곧, 便=이어(둘 다 즉시·연속), 繞佛三匝=부처님을 세 번 돌고(사전 三匝), 退而去의 而는 흡수. 이문: 坐(大) ↔ 座(宋元明). 팔리에는 이 장면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21
爾時,生漏梵志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태어남의 샘이라는 범에 뜻을 둔 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부처님. 앞 좌표(0714c12.1)와 같은 흔들림. 所說의 所는 「설하신 것」. 歡喜(음의 慧琳 0753a01)=기뻐하며, 奉行=받들어 행하다. 팔리는 이 맺음 대신 52.20의 귀의 선언(`upāsakaṃ maṃ … saraṇaṃ gata`)으로 마치며, 한역에는 귀의 선언이 서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6.52:5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