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둘)
주 제목 칸에는 경 이름 없이 순번 「(二)」만 있어 그대로 옮겼다. 교감주(cf.)는 「S. 6. 2. 4. Aruṇavatī」를 가리키는데, 제공된 팔리 원문 파일은 SN6.2(Gāravasutta)로 내용이 이 경(목련과 사리불의 띠 일화)과 맞지 않는다. 편자의 cf.를 sn6.2로 읽어 온 것이 아닌가 싶으나 이는 추정이다. 이 투입물로는 대응 경이 서지 않아 팔리를 미대응으로 두었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은 없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자리다. 팔리 `Evaṃ me sutaṃ`은 `evaṃ`(이와 같이) → `me`(나에게) → `sutaṃ`(들은 것) 순이고, 한역 `聞如是`는 `聞`이 앞서며 `我`가 없다(정형구 표: 이 아함 전권 453회, 이 경 1회). 본문에 「나는」을 넣지 않았다(증보 금지). 한쪽이 덜한 꼴이라 일부로 달았다. 산스크리트 투입물 없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6.2:173.1
一時,佛在阿耨達泉與大比丘眾五百人俱。
한때 부처님께서 아뇩달 샘에서 큰 비구 대중 오백 명과 함께 계셨다.
주 `一時`=`ekaṃ samayaṃ`, `佛`=`bhagavā` 자리는 같은 꼴이다. 그러나 처소가 한역은 아뇩달 샘과 오백 비구 대중이고, 제공 팔리(SN6.2 173.2)는 Uruvelā의 Nerañjarā 강가 염소치기 니그로다 나무 아래이며 비구 대중이 없다. 제공 팔리가 이 경의 대응 경이 아니라고 보아(0.1 참조) 이 처소 차이를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으려 `(이의)`를 달았다. `阿耨達`은 3분할 표에 없는 이름이라 직접 판별했다: 음역으로 보아 한자 독음 「아뇩달」, 泉은 뜻으로 「샘」. 근거는 음의 `阿耨達`(慧琳 0313b14, 「阿那婆達多 … 無熱惱池」)과 전거표 근대 비정 `Anavatapta`로, 확정역이 아니라 인용이다. `大比丘眾`은 사전 大比丘 ①(83회·73경)을 보고 「큰 비구 대중」으로 옮겼다. `佛`=부처님([구속]), `比丘`=비구([구속]).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6.2:173.2
斯是羅漢,三達、六通神足自在,心無所畏,唯除一比丘,阿難是也。
이들은 아라한이니, 세 가지 통달, 여섯 신통, 신통이 자유자재하고 마음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직 한 비구를 제외하니, 아난이 그이다.
주 `斯`는 지시사로 앞 좌표(0.3)의 오백 비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羅漢`은 `阿羅漢`의 약칭이다(사전 羅漢 ⑥). 확정 술어집에는 `至真→아라한`만 있고 `羅漢`은 없으나 정착형 「아라한」을 썼다(이 구간에 `至真`은 없다). `三達`은 3분할 표가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한자가 뜻을 옮긴 것(達=통달)으로 보아 뜻으로 옮겼다(표는 기계 1차 분류, 저본이 이긴다). 사전 三達 ⑥(丁福保)이 三明과 같다고 하나 후대의 눈이라 쓰지 않았다. `六通`=여섯 신통. `神足`=신통(②): 상·하위어 겸용어(pāṭihāriya/iddhi)인데 여기서는 `神足自在`로 능력 쪽(iddhi)으로 읽었다. 구두는 `六通` / `神足自在`로 끊었다(대안 `六通神足` / `自在`). `自在`의 `自`는 복합어 안이라 재귀 「스스로」가 아니다. `所畏`는 관형절로 풀었다. `唯除`의 「오직」은 한정이 실려 유지했다. `阿難`=아난(정착어): `阿難陀`(Ānanda)의 약칭이고 뜻은 「기쁨」(慧琳 0482c03 「阿難陀此云慶喜」). `也`는 평서 어미 「이다」가 진다.
爾時,世尊坐金蓮華,七寶為莖,及五百比丘各各坐寶蓮華。
그때 세존께서 금 연꽃에 앉으시니 일곱 보배가 줄기가 되었고, 그리고 오백 비구가 각각 보배 연꽃에 앉았다.
주 `世尊`=세존([구속]). `為莖`의 `為`는 「~이 되다」이고 `為…所` 피동이 아니다. `金蓮華`의 `金`은 재료(금)로 읽었다. 「금빛」으로 풀면 증보가 된다. `七寶` 일곱 보배는 慧琳 0464a21이 풀이한 일곱 가지(金·銀·瑠璃·頗梨·車渠·赤眞珠·瑪瑙)를 인용만 한다. `及`은 「그리고」로 두었다.
爾時,阿耨達龍王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住。
그때 아뇩달 용왕이 세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머물렀다.
주 `頭面禮足`은 ②의 판별대로 풀었다. `所`는 「계신 곳」으로 관형절 풀이했다. `在一面住`의 `住`는 「머물다」다. `阿耨達`의 표기는 0.3 처리와 같다. `龍王`은 「용왕」으로 뜻으로 옮겼다.
爾時,龍王遍觀聖眾已,白世尊曰:「我今觀此眾中,空缺不具,無尊者舍利弗,惟願世尊遣一比丘喚舍利弗使來。」
그때 용왕이 성스러운 대중을 두루 살펴보고 나서 세존께 아뢰어 말하였다. “제가 지금 이 대중 가운데를 살펴보니 비어 있고 갖추어지지 않아 존자 사리불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한 비구를 보내어 사리불을 불러 오게 해 주십시오.”
주 이문 0709001: 대정본 `惟`, 【宋】【元】【明】【聖】은 `唯`. 대정본대로 옮겼고 뜻은 같아 「바라옵건대」로 흡수했다(`惟願` 기원 정형). `舍利弗`=사리불(정착어): `Śāriputra`의 음역이고 `舍利`는 새 이름(鶖鷺), `弗`은 「아들」이어서 「(그) 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慧琳 0450b23). `空缺不具`는 사전 空缺 ①(6회·5경), 음의 慧琳 0348a08(缺=이지러짐)을 참고해 「비어 있고 갖추어지지 않아」로 풀었다. `尊者`=존자. `使來`는 사역 「오게 하다」. 존칭: 용왕이 세존께 말하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⑦). `白…曰`는 「아뢰어 말하였다」로 둘 다 옮겼다.
爾時,舍利弗在祇洹精舍,補納故衣。
그때 사리불은 기원정사에 있으면서 낡은 옷을 깁고 있었다.
주 `祇洹精舍`=기원정사(정착어): `祇洹`은 Jeta(`祇陀`·`逝多`, 「이긴 이」)의 숲을 옮긴 음역이고 `精舍`는 수행처다. 慧琳 0749b05가 `祇洹`을 `逝多 … 勝林`으로 풀이한 것을 인용한다. `補納故衣`는 「낡은 옷을 깁다」로 풀었고 진행상은 문맥의 해석이다. `舍利弗`의 풀이는 0709a05.1과 같다.
爾時,世尊告目連曰:「汝至舍利弗所,語舍利弗云:『阿耨達龍王欲得相見。』」
그때 세존께서 목련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사리불이 있는 곳에 가서 사리불에게 이르라. ‘아뇩달 용왕이 서로 보고자 한다.’”
주 `目連`은 3분할 표에 없는 이름이다. `摩訶目犍連`의 약칭이고(사전 目連 ⑥ 丁福保) 한국 정착형 「목련」을 쓰는 정착어로 판별했다. 한 경 안에서 「목련」으로 통일한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⑦)이고 안의 『』 발화도 같은 층위로 평서다. `欲得相見`의 `得`은 가능·획득 보조로 「-고자」에 흡수했다. `相`은 「서로」로 두었고 대상 표지일 가능성은 비고에만 둔다.
目連報曰:「如是。
목련이 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如是`는 응답 「그렇습니다」다. 목련이 세존께 말하므로 존댓말이다(⑦). 이어 0709a10.2의 호격으로 이어진다.
世尊!」
세존이시여!”
주 호격 「세존이시여」. 앞 좌표의 발화가 이어진다.
是時,尊者大目連如人屈伸臂頃,往至祇洹精舍舍利弗所,語舍利弗言:「如來有教云:『阿耨達龍王欲得相見。』」
이때 존자 대목련이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와 같이 기원정사의 사리불이 있는 곳에 가서 이르러,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가르쳐 이르시기를, ‘아뇩달 용왕이 서로 보고자 한다.’”
주 이문 0709002: 대정본 `舍利弗所`, 【宋】【元】【明】【聖】은 `至舍利弗所`. 대정본대로 옮겼다. `大目連`의 `大`는 「대」(큰)로 두었다. `如人屈伸臂頃`의 `如`는 비유이며 「~와 같이」다. `有教`는 사전 有教 ①(12회·9경)과 같은 「분부·가르침을 내림」의 정형이라 존재 서술이 아니라 「가르쳐 이르시기를」로 흡수했다(용례는 사전 有教 ③ 「國王有教令」; 「가르침이 있어」는 훈독투). `如來`=여래([구속]). 목련과 사리불은 같은 항렬이라 평서로 통일했다(⑦, 이후 둘의 대화도 같다).
舍利弗報曰:「汝竝在前,吾後當往。」
사리불이 답하여 말하였다. “그대는 함께 앞에 있으라. 나는 뒤에 가겠다.”
주 `竝在前`의 `竝`을 「함께」로 옮겼으나 「모두」「나란히」일 가능성이 남는다(저본 문맥만으로 서지 않음). 앞 좌표가 목련에게 용왕과 함께 가라는 뜻인지 확정할 수 없다. `後當往`의 `當`은 어미 「-겠다」가 지므로 「마땅히」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目連報曰:「一切聖眾及阿耨達龍王遲想尊顏,欲得相見,唯願時赴,勿輕時節。」
목련이 답하여 말하였다. “모든 성스러운 대중과 아뇩달 용왕이 존귀한 얼굴을 오래 기다리며 그리워하여 서로 보고자 하니, 바라건대 때에 맞추어 나아가고 때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주 이문 0709003 `想`(대정)/`相`(聖), 0709004 `赴`/`起`(聖), 0709005 `輕`/`經`(宋元明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遲想`은 `遲`(더딤→오래 기다림)와 `想`(그리워함)으로 풀었다. `尊顏`은 「존귀한 얼굴」, `一切`는 「모든」(慧琳 0434b15의 「普也」를 참고만). `唯願`은 기원 정형이라 「바라건대」에 흡수했다. `勿`=「~지 말라」, `時節`=「때」.
舍利弗報曰:「汝先至彼,吾後當往。」
사리불이 답하여 말하였다. “그대가 먼저 그곳에 이르라. 나는 뒤에 가겠다.”
주 `先`/`後`가 대조를 이루는 순서어다. `當`은 어미 「-겠다」에 흡수했다.
是時,目連復重語曰:「云何,舍利弗!神足之中能勝吾乎?
이때 목련이 다시 거듭 말하였다. “어떠한가, 사리불이여! 신통 가운데 나를 이길 수 있는가?
주 이문 0709006: `乎`(대정)/`于`(聖). 대정본대로 의문 어미로 옮겼다. `復重`은 「다시 거듭」. `云何`는 어미 의문형 「어떠한가」. `能`은 「-ㄹ 수 있다」에 흡수했다. `勝吾`의 주어(그대)는 한문에 없어 넣지 않았다.
然今先遣使在前耶?
그런데 지금 먼저 보내어 앞에 있게 하는 것인가?
주 `遣使在前`을 `使`를 사역(앵커)으로 읽어 「보내어 앞에 있게 하다」로 옮겼다. `遣使`를 「사신을 보내다」로 읽을 수도 있어 구문이 하나로 서지 않는다. 보내는 대상(나)은 한문에 없어 넣지 않았다. `耶`는 의문 어미 「-ㄴ가」다.
若舍利弗不時起者,吾當捉臂將詣彼泉。」
만약 사리불이 제때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팔을 붙잡아 이끌고 저 샘에 가겠다.”
주 `若…者`는 연결어미 「-면」에 흡수했다. `不時`=「제때에 ~않다」. `將詣`는 「이끌고 가다」. `當`은 어미 「-겠다」다. 인용은 0709a17.1에서 이어져 여기서 닫힌다.
是時,舍利弗便作是念曰:「目連方便試弄吾耳。」
이때 사리불이 곧 이런 생각을 하며 말하였다. “목련이 방편으로 나를 시험하고 놀릴 뿐이다.”
주 이문 0709007: `曰`(대정)/`今日`(宋元明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方便`은 사전 方便 ①(262회) 용례의 교리어 「방편」과 달리 여기서는 부사적 「짐짓·꾀를 써서」의 뜻일 수 있어 「방편으로」로 두고 다의어로 신고한다. `試弄`은 「시험하고 놀리다」, `耳`는 한정 어미 「-ㄹ 뿐이다」.
爾時,尊者舍利弗躬解竭支帶,語目連曰:「設汝神足第一者,今舉此帶使離於地,然後捉吾臂將詣阿耨達泉。」
그때 존자 사리불이 몸소 갈지 띠를 풀고 목련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신통이 제일이라면, 지금 이 띠를 들어 땅에서 떨어지게 하고, 그런 뒤에 나의 팔을 붙잡아 이끌고 아뇩달 샘에 가라.”
주 이문 0709008 `帶`/`帶在地`(元明), 0709009 `使`/`便`(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竭支帶`: `竭支`는 음의 慧琳 0595b02(觀佛三昧海經音義)가 「僧伽鵄(覆腋衣)」의 와음이라 푼 낱말이다. 사전 竭支(이 경에만 나옴). 옷인지 띠인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한자 독음 「갈지」에 「띠」를 붙여 옮겼다(인용만, 확정 아님). `設…者`는 가정 「-라면」에 흡수했다. `神足第一`=신통 제일. `使離於地`의 `使`는 사역 「떨어지게 하다」, `於`는 조사가 진다.
是時,目連作是念:「今舍利弗復輕弄我,將欲相試乎?
이때 목련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지금 사리불이 다시 나를 가볍게 여겨 놀리니, 장차 서로 시험해 보려는 것인가?
주 이문 0709010 `作`(대정)/`復作`(宋元明). 대정본대로 옮겼다. `作是念`의 `念`은 「생각」으로 옮긴다(0709a26.1의 `想`과 한자가 다르다). `復輕弄`의 `復`는 「다시」. `將欲`은 「장차 ~하려」, `相試`의 `相`은 「서로」로 두었다.
今解帶在地云:『能舉者然後捉吾臂將詣泉所。』」
지금 띠를 풀어 땅에 두고 말하기를, ‘들 수 있는 이라면 그런 뒤에 나의 팔을 붙잡아 샘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가라’ 하였다.”
주 `在地`는 「땅에 두다」. `能舉者`의 `者`는 「~한 이」, `能`은 「-ㄹ 수 있다」다. `然後`는 「그런 뒤에」, `泉所`의 `所`는 「있는 곳」으로 풀었다. 안의 『』 발화는 사리불이 목련에게 한 말을 목련이 옮긴 것이라 평서로 두었다.
是時,目連復作是想:「此必有因,事不苦爾。」
이때 목련이 다시 이런 상념을 일으켰다. “이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일이 이처럼 괴롭지 않다.”
주 `作是念`(0709a23.1)과 `作是想`은 같은 꼴에 `念`/`想`을 달리 쓴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므로 통일하지 않고 「생각」/「상념」으로 갈랐다. 이문 0709011: 대정본 `不苦`, 【宋】은 `不可若`, 【元】【明】은 `不可苦`. `事不苦爾`의 `苦`는 「괴롭다」로 옮겼으나 부사(「심히·한갓」)일 가능성이 있어 뜻이 서지 않는다. `有因`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까닭이 있다」로 두었다.
即時,申手而取帶舉,然不能使帶移動如毫釐許。
곧바로 손을 뻗어 띠를 잡아 들었으나, 띠를 털끝만큼도 옮겨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주 이문 0709012 `申`/`伸`(宋元明), 0709013 `毫`/`豪`(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即時`=「곧바로」. `而`는 흡수했다. `使帶移動`의 `使`는 사역, `如毫釐許`의 `如`는 비유 「~만큼」이다. `能`은 「-ㄹ 수 있다」에 흡수.
是時,目連盡其力勢移此帶,不能使動。
이때 목련이 그 힘과 기세를 다하여 이 띠를 옮기려 했으나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주 `盡其力勢移此帶`는 시도가 실패한 문맥이라 「옮기려 했으나」로 풀었다. `使動`의 `使`는 사역이다.
是時,舍利弗取此帶繫著閻浮樹枝。
이때 사리불이 이 띠를 가져다 염부나무 가지에 매어 걸었다.
주 `閻浮樹`=염부나무: `閻浮`는 Jambu의 음역이다(사전 閻浮 ⑥). `繫著`=「매어 걸다」(사전 繫著 ①, 이 경 5회).
是時,尊者目連盡其神力,欲舉此帶,終不能移,當舉此帶時,此閻浮地大振動。
이때 존자 목련이 그 신통의 힘을 다하여 이 띠를 들고자 하였으나 끝내 옮길 수 없었는데, 이 띠를 들려던 때에 이 염부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주 이문 0709014 `振`/`震`(宋元明). 대정본대로 옮겼다. `當舉此帶時`의 `當…時`는 「~할 때」로 읽어 당위 「마땅히」를 세우지 않았다. `閻浮地`=염부 땅(사전 閻浮 ①: 뒤에 `里地`·`地內`가 잦다). `能`은 「-ㄹ 수 있다」, `者`는 「~한 것」이다.
爾時,舍利弗便作是念:「目連比丘尚能使此閻浮地動,何況此帶?
그때 사리불이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목련 비구는 이 염부 땅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니, 하물며 이 띠이겠는가?
주 이문 `使`/`便`(聖), 0709015 `地`/`提`(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尚能`의 `尚`은 「~도」, `何況`은 「하물며」(慧琳 0440b18은 況 자형 풀이라 인용만). `使…動`은 사역.
我今當持此帶繫著二天下。
내가 이제 이 띠를 가지고 두 천하에 매어 걸겠다.
주 `二天下`=「두 천하」(사전 四天下 ⑥: 四大洲). `當`은 어미 「-겠다」에 흡수했다.
爾時,目連亦復舉之;繫著三天下、四天下,亦能舉之,如舉輕衣。」
그때 목련이 또한 그것을 들었다. 세 천하, 네 천하에 매어 걸어도 또한 들 수 있었으니, 가벼운 옷을 드는 것과 같았다.”
주 닫는 따옴표 `」`가 저본에서 이 서술문 뒤에 있어 사리불의 생각이 어디까지인지 저본 구두만으로는 서지 않는다. 저본 표점대로 이 좌표 끝에서 닫았다. `亦復`은 복합 부사 「또한」으로 읽었고 `復`을 「다시」로 따로 세우지 않았다. `能舉`은 「들 수 있다」, `如舉輕衣`의 `如`는 비유다.
是時,舍利弗復作是念:「目連比丘堪任舉四天下,而不足言,我今持此帶,繫著須彌山腹。」
이때 사리불이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목련 비구는 네 천하를 들어 올림을 감당하나 말할 것이 못 되니, 내가 이제 이 띠를 가지고 수미산 중턱에 매어 걸겠다.”
주 `須彌`는 3분할 표가 음역/의역으로 갈린다고 한 이름이다. 한자가 소리(전거 須彌山 ⟨팔리 Sineru 계통⟩의 음역)로 쓰인 것으로 판별해 정착형 「수미산」을 썼다. 한역의 다른 뜻옮김(妙高 등)은 이 저본에 없다. `堪任`=「감당하다」, `而`는 흡수, `不足言`=「말할 것이 못 되다」. `山腹`은 「중턱」으로 옮겼다(직역하면 「산의 배」).
是時,目連復能動此須彌山及四天王宮,三十三天宮皆悉動搖。
이때 목련이 다시 이 수미산과 사천왕궁을 움직일 수 있어, 삼십삼천궁이 모두 흔들렸다.
주 `四天王`=사천왕, `三十三天`=삼십삼천(3분할 표: 음역 분류, 한자 독음). 사전 三十三天 ⑥(丁福保)은 忉利天(Trayastriṃśa)이라 하나 후대의 눈이라 인용만 한다. `皆悉`=「모두」, `動搖`=「흔들리다」. `復`은 「다시」, `能`은 「-ㄹ 수 있다」다.
是時,舍利弗復以此帶繫千世界。
이때 사리불이 다시 이 띠를 천 세계에 매어 걸었다.
주 `以此帶繫千世界`의 `以`는 목적 「~를」로 흡수했다. `千世界`=「천 세계」(사전 三千世界 ⑥: 三千大千世界의 약칭).
是時,目連亦能使動。
이때 목련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주 이문 0709016: `動`(대정)이 【聖】에는 없다. 대정본대로 옮겼다. `使動`의 `使`는 사역, `亦`은 「~도」, `能`은 「-ㄹ 수 있다」다.
時,舍利弗復以此帶繫二千世界、三千世界,亦復能動。
이때 사리불이 다시 이 띠를 이천 세계, 삼천 세계에 매어 걸었으나, 또한 움직일 수 있었다.
주 `亦復能動`의 주어는 한문에 없다. 앞 좌표(0709b11.1)의 목련으로 읽었으나 문장만으로는 확정되지 않는다. `亦復`은 복합 부사 「또한」으로 읽었다. `二千世界`·`三千世界`는 숫자 그대로 옮겼다.
是時,天地大動,唯有如來坐阿耨達泉而不移動,猶如力士弄於樹葉而無疑難。
이때 하늘과 땅이 크게 움직였으나 오직 여래만이 아뇩달 샘에 앉아 움직이지 않으셨으니, 마치 장사가 나뭇잎을 가지고 놀면서 의심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과 같았다.
주 이문 0709017: `來坐`(대정)/`眾生`(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唯有如來`의 `有`는 `唯有…` 한정 구문에 흡수했다. `力士`=장사(사전 力士 ⑥에 말라족 이름의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보통명사). `猶如`의 `如`는 비유, `而`는 「-면서」, `無疑難`=「의심이나 어려움이 없다」. `於`는 조사가 진다.
是時,阿耨達龍王白世尊言:「今此天地何故振動?」
이때 아뇩달 용왕이 세존께 아뢰어 말하였다. “지금 이 하늘과 땅이 무슨 까닭으로 진동합니까?”
주 이문 `振`/`震`(宋元明)은 대정본대로 두었다. `何故`=「무슨 까닭으로」. 용왕이 세존께 말하므로 존댓말이다(⑦).
爾時,世尊具與龍王說此本緣,龍王白佛:「此二人神力何者最勝?」
그때 세존께서 용왕에게 이 본래의 인연을 갖추어 말씀해 주셨다. 용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두 사람의 신통력 가운데 어느 쪽이 가장 뛰어납니까?”
주 한역이 같은 사람(붓다)을 한 좌표 안에서 `世尊`과 `佛`로 달리 쓴다. 확정역이 한자별로 따로(세존/부처님) 있어 각각 그대로 옮겼다. 이문 0709018: `本緣`(대정)/`緣本`(宋元明). `本緣`은 「본래의 인연」(사전 本緣 ①: 이 경 포함 6회). `具與…說`=「갖추어 ~에게 말해 주다」. `神力`은 `神足`(신통)과 구별해 「신통력」으로 옮겼다. `何者`는 「어느 쪽」.
世尊告曰:「舍利弗比丘神力最大。」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불 비구의 신통력이 가장 크다.”
주 `告曰`=「말씀하셨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⑦). `最大`=「가장 크다」.
龍王白佛言:「世尊前記言:『目連比丘神足第一,無過是者。』」
용왕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세존께서 앞서 밝혀 말씀하시기를, ‘목련 비구는 신통 제일이니 이보다 나은 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 한 좌표 안에서 `佛`(白佛言)과 `世尊`(世尊前記)이 붓다를 가리키는 한자가 다르다. 확정역대로 각각 옮겼다. 사전 記 ①(58회 · 23경)은 쓰임을 가르지 않고, 사전 記 ③의 용례가 「世尊記此二人曰」(말씀하여 밝힘)과 「所見記識」(기억해 알아봄)로 쓰임이 갈려 여기서는 「밝혀 말씀하다」로 두고, 수기(授記)일 가능성은 열어 둔다. `無過是者`=「이보다 나은 이가 없다」. 존댓말은 용왕→세존이다. 안의 『』 발화는 세존의 말이라 용왕이 옮겨도 「하셨습니다」로 존대에 맞췄다.
世尊告曰:「龍王當知,有四神足。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용왕은 알라. 네 가지 신통이 있다.
주 `四神足`을 「네 가지 신통」으로 옮겼다(②: 신족이 아니라 신통). 상·하위어 겸용어(pāṭihāriya/iddhi)라 신고한다. 사전 四神足 ⑥(丁福保)의 네 항(集定·心定·精進·我定)은 이 경의 네 항(0709b20.2)과 이름이 달라 대조하지 않았고, 후대의 눈이라 인용만 한다. `當知`의 `當`은 명령 「알라」에 흡수했다. `有`는 존재 서술이다.
云何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云何`는 어미 의문형으로, `為四`의 `為`는 「~이 되다」다.
自在三昧神力、精進三昧神力、心三昧神力、試三昧神力。
자유자재 삼매의 신통력, 정진 삼매의 신통력, 마음 삼매의 신통력, 시험 삼매의 신통력이다.
주 이문 0709019: `試`(대정)/`誡`(宋聖)/`戒`(元明). 대정본대로 옮겼다. 네 항 이름의 역어(`自在`=자유자재, `精進`=정진, `心`=마음, `試`=시험)는 확정역이 없어 낱말대로 두었다. `三昧`는 정착형 「삼매」(`三摩地`의 음역, 慧琳 0358c10). 3분할 표는 이를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음역이다. `自在`의 `自`는 복합어 안이라 재귀가 아니다.
是謂,龍王!有此四神足之力。
이를 이른다, 용왕이여! 이 네 가지 신통의 힘이 있다.
주 `是謂`는 「이를 이른다」. 호격 `龍王`은 「용왕이여」. `有`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로 두었다.
若有比丘、比丘尼有此四神力者,親近修行而不放捨者,此則神力第一。」
비구나 비구니로서 이 네 가지 신통의 힘이 있고, 가까이하여 닦아 행하며 놓아 버리지 않는 이라면, 이는 신통의 힘이 제일이다.”
주 `若有…者`는 연결어미 「-라면」에 흡수했다. `者`는 「~한 이」로 두 번 모두 명사화다. `則`은 귀결이라 「-라면 ~이다」에 흡수했다. `親近修行`=「가까이하여 닦아 행하다」(사전 修行은 음의 慧琳 0483b16 「行造修」), `放捨`=「놓아 버리다」. `比丘尼`=비구니(전거표 근대 비정 `Bhikṣuṇī`). 붓다의 발화는 평서다.
阿耨達龍王白佛:「目連比丘不得此四神足乎?」
아뇩달 용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목련 비구는 이 네 가지 신통을 얻지 못했습니까?”
주 `得`은 「얻다」(획득)로 읽었다. `乎`는 의문 어미. 용왕→붓다이므로 존댓말이다.
世尊告曰:「目連比丘亦得此四神足之力,親近修行,初不放捨。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목련 비구도 이 네 가지 신통의 힘을 얻었고, 가까이하여 닦아 행하며 전혀 놓아 버리지 않았다.
주 `亦得`의 `亦`은 「~도」(전거표에 `亦得`이 올라 있으나 음역판정 칸은 판정 근거로 쓰지 않았다). `初不`은 「전혀 ~않다」로 읽었다. `得`은 「얻다」.
然目連比丘欲住壽至劫,亦復能辦。
그러나 목련 비구는 수명을 겁에 이르도록 머물고자 하면 그 또한 해낼 수 있다.
주 `欲住壽至劫`의 `欲`은 가정 문맥의 「-고자 하면」으로 읽었다. `住壽`=「수명을 머물게 하다」. `劫`=겁. `亦復能辦`: `亦復`은 복합 「그 또한」, `能辦`은 「해낼 수 있다」(사전 能辦 ①: 6회 · 5경; 辦=갖춤은 사전 能辦 ⑤ 慧琳 0317c07 「辦具也」). `然`은 「그러나」.
然舍利弗所入三昧,目連比丘不知名字。」
그러나 사리불이 들어가는 삼매의 이름을 목련 비구는 알지 못한다.”
주 `所入三昧`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名字`=「이름」. 이 구간 끝에서 붓다의 발화가 닫힌다.
是時,尊者舍利弗復作是念:「三千大千剎土,目連皆能移轉,蠕虫死者不可稱計,然我躬自聞:『如來座者不可移動。』
이때 존자 사리불이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삼천대천 국토를 목련은 모두 옮겨 돌릴 수 있어 꿈틀거리는 벌레 가운데 죽는 것을 헤아릴 수 없으나, 나는 몸소 들었다. ‘여래의 자리는 옮겨 움직일 수 없다.’
주 이문 0709020: `轉`(대정)/`動`(宋元明聖). 대정본대로 옮겼다. `三千大千`=삼천대천(음의 慧琳 0463c10), `剎土`는 `差多羅`(kṣetra)의 음역에 `土`가 붙은 것이라(사전 剎土 ⑥) 뜻으로 「국토」로 옮겼다. `蠕虫`=「꿈틀거리는 벌레」. `躬自`의 `自`는 `躬`과 합쳐 「몸소」에 흡수했다. `如來座者`의 `者`는 주제 「~는」이다. `然`은 「그러나」. 이 좌표에서 인용이 이어진다(닫는 따옴표는 0709c02.1).
我今可以此帶繫著如來座所。」
내가 이제 이 띠를 여래의 자리가 있는 곳에 매어 걸 만하다.”
주 `可以`는 「~할 만하다」로 옮겼다. `以`는 목적 「~를」로 흡수했다. `座所`의 `所`는 「있는 곳」으로 풀었다. 앞 좌표(0709b28.1)에서 시작한 사리불의 생각이 여기서 닫힌다.
是時,目連復以神足而舉此帶,然不能動。
이때 목련이 다시 신통으로 이 띠를 들었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주 `以神足而舉`의 `以`는 수단 「~로」, `而`는 흡수했다. `神足`=신통(능력 쪽). `不能動`은 「움직일 수 없다」.
時,目連生此念:「非我於神足退乎?
이때 목련이 이런 생각을 일으켰다. “내가 신통에서 물러난 것이 아닌가?
주 `生此念`은 「이런 생각을 일으켰다」(같은 `念`을 `作是念`에서는 「생각을 하였다」로 옮겼다). `非…乎`는 「~이 아닌가」. `於`는 조사가 진다.
今舉此帶而不能動。
지금 이 띠를 들었는데 움직일 수 없다.
주 `而`는 흡수했다(「들었는데」). `能`은 「-ㄹ 수 있다」다.
我今往詣世尊所,而問此義。」
내가 이제 세존 계신 곳에 가서 이 뜻을 묻겠다.”
주 `往詣…所`는 「~ 계신 곳에 가서」. `而問`의 `而`는 흡수했다. `義`=「뜻」. `詣世尊所`는 음의 慧琳 0574a11(詣=이르다)을 참고만 한다.
爾時,目連捨此帶已,即以神足至世尊所,遙見舍利弗在如來前坐,見已,目連復作是念:「世尊弟子神足第一,無出我者,然我不如舍利弗乎?」
그때 목련이 이 띠를 놓고 나서 곧 신통으로 세존 계신 곳에 이르러, 사리불이 여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멀리서 보았다. 보고 나서 목련이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존의 제자 가운데 신통 제일로서 나를 넘어서는 이가 없는데, 그러나 내가 사리불만 못한 것인가?”
주 한 좌표 안에서 붓다를 `世尊`(세존 계신 곳, 세존의 제자)과 `如來`(여래 앞)로 달리 쓴다. 확정역대로 각각 옮겼고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는 사실을 신고한다. `捨此帶已`의 `已`는 완료 「~하고 나서」, `即以神足`의 `即`은 「곧」이다. `無出我者`의 `者`는 「~한 이」, `不如`는 「~만 못하다」, `乎`는 의문 어미다.
爾時,目連白佛言:「我將不於神足退乎?
그때 목련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제가 장차 신통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닙니까?
주 `將不`은 반문을 이끄는 관용으로 「장차 ~하지 않는가」와 「혹시 ~이 아닌가」 사이에서 하나로 서지 않아, 「장차」를 그대로 두었다. 존댓말(목련→붓다).
所以然者,我先發祇洹精舍,然後舍利弗發,今舍利弗比丘先在如來前坐。」
그렇게 된 까닭은, 제가 먼저 기원정사를 떠났고 그런 뒤에 사리불이 떠났는데 지금 사리불 비구가 먼저 여래 앞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 `所以然者`는 「그렇게 된 까닭은 ~때문이다」(`所以`=「까닭」, `者`는 이유절 끝). `發`은 「떠나다」. `然後`는 「그런 뒤에」. `如來`=여래([구속]), `祇洹精舍`=기원정사.
佛言:「汝不於神足有退,但舍利弗所入神足三昧之法,汝所不解。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신통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다. 다만 사리불이 들어가는 신통 삼매의 법을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주 `不於神足有退`의 `有退`는 「물러남이 있다」이므로 「물러난 것은 아니다」로 풀었다. `但`은 한정 뜻이 실려 「다만」을 유지했다. `神足三昧`의 `神足`은 능력 쪽(iddhi)으로 읽었으나 상·하위어 겸용이라 신고한다. `汝所不解`는 관형절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으로 풀었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다.
所以然者,舍利弗比丘智慧無有量,心得自在,不如舍利弗從心也;舍利弗心神足得自在。
그렇게 된 까닭은, 사리불 비구는 지혜가 헤아릴 수 없고 마음이 자유자재함을 얻어, 사리불이 마음을 따르는 것만 못하다. 사리불은 마음의 신통에서 자유자재함을 얻었다.
주 이문 0709021: `不`(대정)/`一`(聖). 대정본 `不如`는 「~만 못하다」이고 聖본 `一如`는 반대 방향의 뜻이 되어 읽기가 갈린다. `不如舍利弗從心也`는 비교의 주어(그대 또는 목련)가 한문에 없어 넣지 않았다. `心神足`은 `心` / `神足`으로 끊어 「마음의 신통」으로 옮겼고(`心三昧神力` 0709b20.2와 맞춤), `心神` / `足`(「족히」)으로 끊는 읽기가 남는다(사전 心神 ①: 2회). `無有量`=「헤아릴 수 없다」, `從心`=「마음을 따르다」. `得自在`는 「자유자재함을 얻다」. `也`는 평서 어미가 진다.
若舍利弗比丘心所念法,即得自在。」
사리불 비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이라면, 곧 자유자재함을 얻는다.”
주 `若…即`은 「-라면 곧」으로 옮겼다(「거든」은 쓰지 않았다). `心所念法`은 관형절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이다(사전 心所 ⑥은 아비달마 술어 心所有法이라 쓰지 않았다). `即得`의 `即`은 「곧」. 이 좌표에서 붓다의 발화가 닫힌다.
大目連即時默然。
대목련이 곧바로 말없이 있었다.
주 이문 0709022: `大`(대정)/`是時大`(宋元明). 대정본대로 옮겼다. `即時`=「곧바로」, `默然`=「말없이 있다」(음의 慧琳 0428c16: 嘿=말하지 않음).
是時,阿耨達龍王歡喜踊躍,不能自勝:「今舍利弗比丘極有神力,不可思議,所入三昧,目連比丘而不知名字。」
이때 아뇩달 용왕이 기뻐 뛰며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말하였다. “이제 사리불 비구는 신통의 힘이 지극하여 불가사의합니다. 들어간 삼매의 이름을 목련 비구는 알지 못합니다.”
주 `歡喜踊躍`은 「기뻐 뛰다」(음의 慧琳 0352c15: 踊躍=뛰어오름). `不能自勝`의 `自`는 단순 재귀라 「자기 자신을」로 흡수했고 「스스로」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極有神力`의 `有`는 소유 서술이라 「신통의 힘이 지극하여」로 풀었다. `不可思議`는 정착 술어 「불가사의」다. `所入`은 관형절, `而`는 흡수했다. 이 발화의 청자가 세존인지 대중인지 한문에 없어, 앞 발화와 맞춰 존댓말로 통일하고 청자 미표시는 신고한다.
爾時,世尊與阿耨達龍王說微妙之法,勸令歡喜,即於彼說戒。
그때 세존께서 아뇩달 용왕에게 미묘한 법을 설하시어 기쁘게 하도록 권하시고, 곧 그에게 계를 설하셨다.
주 `勸令歡喜`의 `令`은 사역 「~하게 하다」. `即於彼`의 `於彼`는 「그에게」(대안: 「그곳에서」)로 읽었고, `說戒`는 「계를 설하다」(사전 說戒 ①: 22회·7경; 음의는 사전 說戒 ⑤ 慧琳 0698c07)로 옮겼으나 포살(보름 계 암송, 사전 說戒 ⑥)의 뜻일 수 있어 하나로 서지 않는다. `微妙`=「미묘한」. `與…說`의 `與`는 「~에게」로 읽었다(0709b16.1과 같다).
清旦,將諸比丘僧,還詣舍衛國祇樹給孤獨園。
이른 아침에 여러 비구 승가를 거느리고,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와 이르렀다.
주 제공된 팔리 증언은 SN6.2(Gāravasutta) 하나뿐이고 이 구간(부분 2)의 내용과 만나는 자리가 없어, 이 구간 전 좌표의 팔리 대응을 `PN:없음 [absent]`(제공 증언 범위 안에서의 없음확인)로 적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舍衛(사위)=Sāvatthī, 한역 음역에서 온 정착형이며 도시 이름이다.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정착형. 祇樹는 祇陀(Jeta) 태자의 숲, 給孤獨은 외로운 이를 돌본다는 뜻의 의역으로 아나타삔디까 장자를 가리키며, 곧 '기타 태자의 숲에 있는,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가 바친 동산'이다(음의 祇樹 ← 慧琳 0368a03). 대역표는 이를 '보류'로 두었으나 정착어 예시에 들므로 정착형을 따랐다. 清旦=이른 아침. 諸는 승가의 복수를 「여러」로 두었다.
爾時,諸比丘自相謂言:「世尊口自記:『我聲聞中神足第一者,目連比丘是也。』
그때 여러 비구가 서로 말하였다. “세존께서 입으로 밝히셨다. ‘나의 성문 가운데 신통 제일인 이는 목련 비구이다.’
주 自相謂言의 自相은 사전 自相 ①(뒤: 謂言 35/55)에 걸리는 「서로」이고 自↔他 대조가 없어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口自記의 自도 단순 재귀라 흡수하고 「입으로 밝히셨다」로 옮겼다. 記는 사전상 수기·선언 쪽의 용례이나 이 좌표에서는 「밝히다」로 두고 뜻을 더 좁히지 않았다. 聲聞=성문, 神足=신통(상위어/하위어 겸용어이나 여기서는 「신통 제일」의 뜻으로 읽었다). 目連은 이 경에서 目連 / 大目連 / 大目乾連으로 한자가 흔들린다(목련 / 대목련 / 대목건련으로 한자 독음을 따라 구별해 적음). 한역이 같은 인물에 다른 한자를 쓴다. 是也는 평서 어미가 진다. 정착형 목련은 대목건련(大目乾連)을 줄인 이름이다.
然今日不如舍利弗。」
그러나 오늘은 사리불만 못하다.”
주 舍利弗(사리불)=정착형, 팔리 Sāriputta. 鶖鷺(사리)의 아들이라는 뜻(慧琳 0450b23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 奢唎補怛羅 ← 어머니의 눈이 사리새 같아서 얻은 이름). 不如는 「~만 못하다」. 然은 앞 발화와 대조되는 접속으로 「그러나」를 두었다. 이 좌표는 앞 좌표(0709c22.1)에서 열린 따옴표 발화가 닫히는 자리다.
爾時,諸比丘起輕慢想於目連所。
그때 여러 비구가 목련에게 업신여기는 생각을 일으켰다.
주 起輕慢想於目連所는 於…所가 「에게/에 대하여」를 지므로 「~하는 바」로 옮기지 않고 「목련에게」로 풀었다. 輕慢(업신여김)은 사전 輕慢 ①(8회 · 5경).
是時,世尊便作是念:「此諸比丘生輕慢之想向目連,受罪難計。」
이때 세존께서 곧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 비구들이 목련을 향해 업신여기는 생각을 내었으니, 받을 죄를 헤아리기 어렵다.”
주 爾時는 「그때」, 是時는 「이때」로 구별해 적어 한문 흔들림을 본문에 남겼다. 便作是念은 「곧 이런 생각을 하셨다」. 受罪難計는 「받을 죄가 헤아리기 어렵다」로 두었다(計: 사전 ①, 헤아리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告目連曰:「現汝神力使此眾見,無令大眾起懈怠想。」
목련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그대의 신령한 힘을 나타내어 이 대중이 보게 하고, 대중이 게으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게 하라.”
주 주어(세존)가 한문에 없다. 앞 좌표의 주체를 따라 「말씀하셨다」로 높였다. 神力(0709c27.1) / 神足(0710a09.1) / 道力(0710a27.1)이 같은 사안의 신통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한자가 흔들린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神足은 「신통」으로 확정했으므로 神力은 「신령한 힘」, 道力은 「도의 힘」으로 구별해 한자 차이가 한국어에 남게 했다. 使…見은 「~이 보게 하라」, 無令…起는 「~이 일으키지 않게 하라」(令·使 둘 다 사역).
目連對曰:「如是。
목련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如是는 대답 첫머리로 「그렇습니다」. 사전 如是 ①(발화 첫머리 216/1578). 唯然(예)과 구별해 두었다. 청자가 세존이므로 존댓말.
世尊!」
세존이시여!”
주 앞 좌표에서 이어지는 호격.
是時,目連禮世尊足,即於如來前沒不現,往詣東方七恒河沙佛土,有佛名奇光如來、至真、等正覺,出現彼土。
이때 목련이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곧 여래 앞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동쪽으로 일곱 항하의 모래만큼의 부처님 국토로 가서 이르렀다. 그곳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이름이 기이한 빛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며, 그 국토에 출현해 계셨다.
주 往詣東方七恒河沙佛土의 「七恒河沙」는 「일곱 항하의 모래」로 직역했다. 뒤의 0710a07.1(去此七恒河沙)과 함께 거리를 나타내는 압축 표현이며 「만큼」은 한국어 조사로 지는 요소다. 恒河는 음역(恒伽)과 의역(河)이 합쳐진 音義合璧이며 전거 ⟨恒河⟩ 팔리 Gaṅgā(음의 恒河沙 ← 慧琳 0464a07 〔大般涅槃經音義〕, 無熱惱池 남면에서 흘러나옴). 이문: 恒=江【聖】(교감 0710001)이나 본문은 大正 恒을 따랐다. 奇光如來는 한자가 뜻을 옮긴 이름(의역 쪽)으로 보아 「기이한 빛」으로 옮겼으나 음역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사전 奇光如來 ①(이 경에만 나옴). 至真=아라한,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확정). 如來=여래, 世尊=세존(확정). 有佛名…은 새 부처를 처음 세우는 존재 서술이라 「계셨으니」로 두었다. 出現彼土를 앞 구에 붙이는 끊기(佛 / 名…)는 둘 다 가능하다. 即於…沒不現의 即은 「곧」, 動詞 沒은 사라짐(사전 沒 ① 뒤: 不現 10/72).
是時,目連以凡常之服往詣彼土,在鉢盂緣上行,又彼土人民,形體極大。
이때 목련이 평범한 옷으로 그 국토에 가서 이르러 발우 가장자리 위에서 걸어 다녔고, 또 그 국토의 사람들은 형체가 매우 컸다.
주 以凡常之服의 以는 조사 「~로」로 흡수. 凡常之服은 「평범한 옷」(服=옷으로 읽음). 鉢盂는 사전 鉢盂 ①(이 경 2회), 緣은 「가장자리」. 又는 「또」.
是時,諸比丘見目連已,自相謂言:「汝等觀此虫,正似沙門。」
이때 여러 비구가 목련을 보고 나서 서로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벌레를 보라. 꼭 사문을 닮았다.”
주 이문: 觀【CB】(저본 채택)이고 視【大】(교감주). 저본 글자 觀을 따랐다. 虫=벌레. 正似沙門의 正은 「꼭」, 沙門=사문(정착형, 팔리 Samaṇa; 음의 沙門 ← 慧琳 0420a16). 여기서 말하는 이들은 문맥상 기이한 빛 여래의 국토의 비구들이라 추정되나 한문이 이를 밝히지 않아 본문에는 「여러 비구」로만 옮겼다. 自相謂言은 단순 재귀가 아니라 「서로」(사전 自相).
是時,諸比丘復持示彼佛:「唯然,世尊!今有一虫,正似沙門。」
이때 여러 비구가 다시 그것을 가지고 저 부처님께 보이며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지금 한 마리 벌레가 있는데 꼭 사문을 닮았습니다.”
주 唯然은 대답·호칭 첫머리의 응답사 「예」(사전 唯然 ① 발화 첫머리 49/53, 0710a05.1). 이문: 諸 없음【聖】, 持下【聖】(교감 0710002, 0710003).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彼佛은 앞 좌표들의 맥락상 기이한 빛 여래이나 한문은 「저 부처님」이라고만 한다. 復는 「다시」.
爾時,奇光如來告諸比丘曰:「西方去此七恒河沙,彼土世界,佛名釋迦文如來、至真、等正覺,出現於世,是彼弟子,神足第一。」
그때 기이한 빛 여래가 여러 비구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서쪽으로 이곳에서 일곱 항하의 모래만큼 떨어진 그 국토의 세계에, 부처님의 이름이 석가문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신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다. 이는 그분의 제자로, 신통 제일이다.”
주 釋迦文(석가문)은 음역이다(음의 釋迦文 ← 慧琳 0485b20, 전거 釋迦文 ⟨근대 Śakyamuni⟩). 한자는 釋迦文 / 釋迦文佛 / 世尊이 같은 분을 가리키는 자리에서 흔들린다(0710b01.1 참조). 去此七恒河沙는 0709c28.3의 거리 표현과 같다. 이문: 恒=江【聖】; 彼土=土彼【宋】【元】【明】; 佛 뒤에 「名忍有佛」【宋】【元】【明】 / 「有佛」【聖】(교감 0710004, 0710005).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是彼弟子의 彼는 「그분」(석가문 부처님). 世界는 사전 世界 ①.
爾時,彼佛告目連曰:「此諸比丘起輕慢意,現汝神足,使大眾見之。」
그때 저 부처님이 목련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이 비구들이 업신여기는 마음을 일으켰으니, 그대의 신통을 나타내어 대중이 그것을 보게 하라.”
주 0709c27.1에서는 「神力」, 여기서는 「神足」으로 같은 사안의 신통이 한자가 다르게 쓰였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輕慢意(마음)는 0709c24.2의 輕慢想(생각)과도 한 글자가 다르다. 彼佛은 문맥상 기이한 빛 여래.
目連對曰:「如是。
목련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0709c28.1과 같은 응답 형식. 발화가 다음 좌표에서 닫힌다.
世尊!」是時,目連聞佛教已,以鉢盂絡盛彼五百比丘至梵天上。
세존이시여!” 이때 목련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 발우의 그물로 저 오백 비구를 담아 범천 위에 이르렀다.
주 以鉢盂絡盛에서 鉢盂絡을 「발우의 그물」(絡=얽어 두는 것)로 읽었으나 「발우와 그물로」로 끊는 독법도 가능해 [불확실:격·태·구문]. 이문: 絡=終【聖】(교감 0710006)이나 본문은 大正 絡을 따랐다. 聞佛教已의 教는 앞 좌표들의 맥락상 지시이나 한문은 「가르침」이며 그대로 두었다. 梵天=범천(확정). 彼五百比丘의 彼는 앞서 나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저」.
是時,目連以左脚登須彌山,以右脚著梵天上。
이때 목련이 왼발로 수미산에 오르고, 오른발을 범천 위에 대었다.
주 須彌山(수미산)은 정착형이다. 須彌는 음역(팔리 Sineru 계통)이며 전거에서 須彌山 ⟨팔리 Sinerupabbatarāja⟩. 脚은 「발」, 登은 「오르다」, 著는 「대다/디디다」. 以…以…는 수단 조사로 흡수.
爾時,便說此偈:
그때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주어가 한문에 없다. 앞 좌표(0710a13.1)의 목련으로 읽었으나 한문은 밝히지 않는다. 偈=게송.
「常當念勤加,修行於佛法,
“늘 부지런함을 더하기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법에서 닦아 행하라.
주 常當念勤加는 「念 / 勤加」를 두 동사(생각하라 / 부지런히 더하라)로 끊는 독법과 「勤加를 念하라」로 묶는 독법이 있다. 후자를 택했다. 當은 어미 「-라」가 지므로 「마땅히」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修行於佛法의 於는 「에서」로 흡수. 佛法=부처님의 법(사전 佛法 ①). 게송 좌표라 한 구 쌍을 한 행으로 유지한다.
降伏魔眾怨,如鈎調於象。
마의 무리, 원수를 항복시키기를 갈고리가 코끼리를 길들이듯 하라.
주 魔眾怨은 「마의 무리와 원수」 / 「마의 무리라는 원수」 / 「마군과 원수」로 끊기가 갈린다. 「마의 무리, 원수」로 두 명사를 나열하는 독법을 택했다. 如鈎調於象은 「갈고리가 코끼리를 길들이듯」. 降伏은 사전 降伏 ①(이 경 1회). 如는 가정/비유 어미 「-듯」이 지고, 於는 목적을 이끌어 흡수.
若能於此法,能行不放逸,
만일 이 법에서 불방일을 행할 수 있으면,
주 若은 연결어미 「-면」, 能이 두 번 나오나(若能…能行) 앞의 能은 가정 구문의 강조로 보아 「-ㄹ 수 있다」 한 번으로 흡수했다. 不放逸=불방일(확정 [참고], 이 경의 뜻이 서는 자리). 能行 사전 能行 ①(이 경 1회).
當盡苦原際,無復有眾惱。」
괴로움의 근원의 끝을 다하리니, 다시는 온갖 고뇌가 없으리라.”
주 苦原際의 原際(근원의 한계·끝)는 「근원의 끝」으로 두었다. 盡의 목적어가 苦原際 전체인지 「原際」인지 갈린다. 當은 어미 「-리라」로 흡수. 無復有眾惱의 復는 「다시」,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없다」의 부정에 흡수. 惱는 앞의 苦와 구별해 「고뇌」.
是時,目連以此音響,遍滿祇洹精舍,諸比丘聞已,往白世尊:「目連為住何處而說此偈。」
이때 목련이 이 소리로 기원정사에 가득 퍼지니, 여러 비구가 듣고 나서 세존께 가서 아뢰었다. “목련은 어느 곳에 머물러 이 게송을 말하는 것입니까?”
주 祇洹精舍(기원정사)는 정착형이다. 祇洹은 음역(Jetavana 계통, 음의 祇洹 ← 慧琳 0398a16)이며 기타 태자의 숲에 세운 정사. 祇樹給孤獨園과 같은 장소로 보이나(사전 祇洹精舍 ① 이 경 4회) 한역이 두 이름을 쓴다. 為住何處而說此偈의 為는 의문 어기의 자리로 보아 「위하여」로 풀지 않았다(為…所 피동 아님). 而는 접속으로 흡수. 以此音響의 以는 조사 「~로」.
世尊告曰:「此目連比丘去此佛土七恒河沙,正在東方,以繩絡盛彼五百比丘,左脚登須彌山,右脚著梵天上,而說此偈。」
세존께서 일러 말씀하셨다. “이 목련 비구는 이 부처님 국토에서 일곱 항하의 모래만큼 떨어진 바로 동쪽에 있으면서, 줄 그물로 저 오백 비구를 담아 왼발로 수미산에 오르고 오른발을 범천 위에 대고서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이문: 恒=江【聖】; 絡=終【聖】; 左 앞에 以【宋】【元】【明】【聖】(교감 0710007).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앞(0710a11.2)에서는 「鉢盂絡」, 여기서는 「繩絡」으로 같은 도구를 한자가 다르게 가리킨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正在東方의 正은 「바로」. 而說此偈의 而는 접속으로 흡수.
爾時,諸比丘歎未曾有:「甚奇!甚特!目連比丘有大神足,我等起於懈慢於目連所,唯願世尊使目連比丘將此五百比丘來至此間。」
그때 여러 비구가 일찍이 없던 일에 감탄하였다. “참으로 기이합니다! 참으로 특별합니다! 목련 비구는 큰 신통이 있는데 저희는 목련에게 게으르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일으켰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는 목련 비구가 이 오백 비구를 데리고 이곳에 오게 해 주십시오.”
주 未曾有(일찍이 없던 일)는 의역(Abbhutadhamma 계통). 이문: 慢=怠【宋】【元】【明】(교감 0710008). 懈慢은 大正을 따랐다(0709c27.1의 懈怠와 한 글자가 다르다). 唯願은 상투적인 청원 표지라 「바라옵건대」로 옮기고 「오직」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사전 唯 ① 뒤: 願世 131/314). 使…將…來至는 「~가 데리고 오게 하다」. 有는 「큰 신통이 있다」의 소유 서술이라 남겼다. 청자가 세존이므로 발화 전체를 존댓말로 통일했다. 起於懈慢於目連所의 두 於는 조사로 흡수.
是時,世尊遙現道力,使目連知意。
이때 세존께서 멀리서 도의 힘을 나타내어, 목련이 뜻을 알게 하셨다.
주 道力은 앞의 神力 / 神足과 같은 사안의 힘일 가능성이 있다(0709c27.1 참조). 使目連知意의 意는 누구의 뜻인지(비구들의 청원인지, 세존의 뜻인지) 한문이 밝히지 않아 「뜻」으로만 옮기고 대상을 보태지 않았다.
是時,目連將五百比丘來至舍衛城祇樹給孤獨園。
이때 목련이 오백 비구를 거느리고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 와서 이르렀다.
주 이문: 城 없음【宋】【元】【明】(교감 0710009). 본문은 大正 「舍衛城」을 따랐다. 앞(0709c21.1)의 「舍衛國」과 한자가 다르다(나라/성). 한역이 같은 곳에 다른 한자를 쓴다. 來至는 「와서 이르렀다」.
爾時,世尊與數千萬眾而為說法。
그때 세존께서 수천만 대중과 더불어 법을 설해 주셨다.
주 與數千萬眾而為說法에서 與를 「더불어」로 읽고 為를 「위하여(법을 설해 주다)」로 읽었으나, 與를 「주다」로 읽거나 為를 다른 기능으로 읽는 길이 있다. 而는 흡수. 數千萬眾의 數는 「수」로 읽었다.
時,大目連將五百比丘至世尊所。
때에 대목련이 오백 비구를 데리고 세존 계신 곳에 이르렀다.
주 大目連(대목련)은 이 경에서 目連 / 大目連 / 大目乾連으로 흔들린다(0709c22.1 참조). 世尊所의 所는 처소 「계신 곳」이다(~하는 바 아님). 時는 「때에」.
然釋迦文佛弟子仰觀彼比丘!是時,東方世界比丘禮世尊足,在一面坐。
그러나 석가문 부처님의 제자들이 저 비구들을 우러러보았다! 이때 동방 세계의 비구들이 세존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釋迦文佛 / 世尊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0710a07.1의 釋迦文 참조). 仰觀彼比丘!는 앞 문장과 연결이 급해서 「그러나」를 두었으며 무엇을 우러러보는지(몸집이 큰 것인지 등)는 한문이 밝히지 않는다. 한 좌표에 두 문장이 들어 있다. 東方世界比丘를 「동방 세계의 비구들」로 옮겼다. 在一面坐는 「한쪽에 앉았다」(一面 ① 사전: 앞 禮足在 203/251 · 뒤 坐 169).
爾時,世尊告彼比丘:「汝等比丘為從何來?
그때 세존께서 저 비구들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그대들 비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주 이문: 丘 뒤에 曰【宋】【元】【明】【聖】(교감 0710010).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為從何來의 為는 의문 어기로 풀고 「위하여」로 옮기지 않았다.
是誰弟子?
이는 누구의 제자인가?
주 是誰弟子는 「이는 누구의 제자인가」. 판단동사 是의 지시.
道路為經幾時?」
길에서 얼마의 시간을 지냈는가?”
주 道路為經幾時의 為는 의문 어기. 幾時는 「얼마의 시간」.
彼五百比丘白釋迦文佛:「我等世界今在東方,佛名奇光如來,是彼弟子。
저 오백 비구가 석가문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 세계는 지금 동쪽에 있고, 부처님의 이름은 기이한 빛 여래이시니, 저희는 그분의 제자입니다.
주 이문: 名 없음【聖】(교감 0710011).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是彼弟子를 「저희는 그분의 제자」로 읽었다(복수 주어는 문맥에서). 我等을 「저희」로 높였다.
然我等今日亦復不知為從何來?
그러나 저희는 오늘도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주 亦復은 「도」로 흡수하고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또한 다시」를 둘 다 세우면 겹친다). 為從何來?의 의문부호는 간접 의문으로 풀어 「-는지」로 옮겼다. 今日은 「오늘」(전거 今日 ⟨당대 tvanya⟩는 인용만).
為經幾日?」
며칠을 지나왔는지도.”
주 為經幾日?은 앞 좌표의 不知에 병렬로 걸린다고 읽었다. 한문에 不知가 되풀이되지 않으므로 본문에는 불완전 문장 그대로 「며칠을 지나왔는지도」로 남겼다. 한문이 의문문으로 끊은 것으로 읽는 길(「며칠을 지났습니까?」)도 있다.
世尊告曰:「汝等知佛世界乎?」
세존께서 일러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부처님의 세계를 아는가?”
주 佛世界는 「부처님의 세계」. 乎는 의문 어미가 진다.
諸比丘對曰:「不也,世尊!」
여러 비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주 不也는 「아닙니다」(也 종결 흡수).
「汝等今日欲詣彼土乎?」
“그대들은 오늘 저 국토로 가고자 하는가?”
주 欲詣彼土乎는 「가고자 하는가」.
諸比丘對曰:「唯然,世尊!欲還詣彼土。」
여러 비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예, 세존이시여! 돌아가 저 국토로 가고자 합니다.”
주 唯然은 「예」(사전 唯然 ① 발화 첫머리 49/53, 0710b09.2). 欲還詣는 「돌아가 이르고자」.
爾時世尊告彼比丘:「今當與汝說六界法,善思念之。」
그때 세존께서 저 비구들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이제 그대들에게 육계의 법을 말하겠으니, 그것을 잘 생각하고 새기라.”
주 六界(육계)는 정착 술어 그대로 두었다. 界의 역어는 확정이 없으므로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當은 어미 「-겠다」가 진다. 與汝說은 「그대들에게 말하다」. 善思念之는 「잘 생각하고 새기라」(之는 육계의 법을 받는다).
諸比丘對曰:「如是。
여러 비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0709c28.1과 같은 응답.
世尊!」爾時,諸比丘從佛受教。
세존이시여!” 그때 여러 비구가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주 從佛受教는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다」. 教는 가르침(문맥 판정: 설법을 청하는 자리).
世尊告曰:「彼云何名為六界之法?
세존께서 일러 말씀하셨다. “저 무엇을 육계의 법이라 이름하는가?
주 彼云何名為六界之法의 云何는 의문형 어미가 지고 為는 「~이라」. 名為는 「이름하여 ~라 한다」.
比丘當知,六界之人稟父母精氣而生。
비구들이여, 알라. 육계의 사람은 부모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다.
주 比丘當知의 當은 어미 「-라」로 흡수(「마땅히」 없음). 稟父母精氣而生에서 精氣는 한자 독음 「정기」로 두었다(「정수의 기운」). 而는 흡수. 六界之人의 之는 소유·수식.
云何為六?
무엇이 여섯인가?
주 云何為六은 「무엇이 여섯인가」.
所謂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
이른바 지계, 수계, 화계, 풍계, 공계, 식계이다.
주 地界·水界·火界·風界·空界·識界는 정착 술어 지계·수계·화계·풍계·공계·식계로 두었다. 所謂는 「이른바」.
是謂,比丘!有此六界,人身稟此精氣而生六入。
이를 일러, 비구들이여, 이 육계가 있고 사람의 몸은 이 정기를 받아 육입을 낳는다.
주 是謂는 「이를 일러」. 有此六界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므로 「있고」로 남겼다. 六入은 정착 술어 육입으로 두었다(入의 역어 확정 없음).
云何為六?
무엇이 여섯인가?
주 0710b14.1과 같은 물음.
所謂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意入。
이른바 안입, 이입, 비입, 설입, 신입, 의입이다.
주 眼入·耳入·鼻入·舌入·身入·意入은 정착 술어로 두었다.
是謂,比丘!有此六入,由父母而得有,以依六入便有六識身。
이를 일러, 비구들이여, 이 육입이 있으니, 부모로 말미암아 있게 되고, 육입에 의지하여 곧 여섯 식의 몸이 있다.
주 由父母而得有의 得은 「있게 되다」(획득·가능), 以依六入便有六識身의 以는 수단 조사로 「~에 의지하여」로 흡수, 便은 「곧」. 六識身은 「여섯 식의 몸」으로 뜻을 옮겼다(대역표 의역). 識身의 身은 「몸」으로 읽었으나 「무리」의 뜻 가능성이 있다.
云何為六?
무엇이 여섯인가?
주 0710b14.1과 같은 물음.
若依眼識則有眼識身,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만일 안식에 의지하면 안식의 몸이 있고,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다.
주 若은 연결어미 「-면」. 則은 「~면 ~한다」에 흡수. 이문: 識身 없음【聖】, 身 없음【宋】【元】【明】(교감 0710012).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은 정착 술어 안식 이하로 두었다.
是謂,比丘!此名六識身。
이를 일러, 비구들이여, 이를 여섯 식의 몸이라 이름한다.
주 此名六識身은 「이를 여섯 식의 몸이라 이름한다」.
若有比丘解此六界、六入、六識者,能度六天而更受形,設於彼壽終來生此間,聰明高才,於現身上,盡於結使,得至涅槃。」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육계, 육입, 육식을 아는 이라면, 여섯 하늘을 건너 다시 형체를 받을 수 있고, 설령 저곳에서 수명을 마치고 이곳에 와 태어나더라도 총명하고 재주가 높아, 현재의 몸에서 결사를 다하여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주 若有比丘…者는 「어떤 비구가 …를 아는 이라면」(有는 가정 속 소유 서술, 者는 명사화). 能度六天의 能은 「-ㄹ 수 있다」, 六天은 「여섯 하늘」(욕계 육천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으나 한문은 밝히지 않는다). 更은 「다시」. 設은 「설령」. 結使는 한자 독음 「결사」(번뇌의 결박). 得至涅槃의 得은 가능 「-ㄹ 수 있다」. 涅槃(열반)은 정착형이며 한역자가 音義를 섞어 쓴 이름이다(慧琳 0463b14, 圓寂). 聰明은 「총명」, 高才는 「재주가 높다」. 於는 조사로 흡수.
爾時,世尊告目連曰:「汝今還將此比丘詣彼佛土。」
그때 세존께서 목련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제 도로 이 비구들을 데리고 저 부처님 국토로 가라.”
주 이문: 爾=入【聖】(교감 0710014).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還將은 「도로 데리고」.
目連報曰:「如是。
목련이 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報曰은 대답. 이전 對曰과 한자가 다르다(한자 흔들림 아님: 같은 응답 정형에서의 동의어).
世尊!」是時,目連復以絡盛五百比丘,遶佛三匝,便退而去。
세존이시여!” 이때 목련이 다시 그물로 오백 비구를 담아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곧 물러나 떠났다.
주 復以絡盛의 復는 「다시」. 이문: 絡=終【聖】. 遶佛三匝은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예법의 우요). 便退而去의 而는 흡수.
如屈伸臂頃,以至彼佛土。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처럼 하여, 이미 저 부처님 국토에 이르렀다.
주 이문: 以=已【宋】【元】【明】(교감 0710015). 大正의 以를 「이미(已)」의 뜻으로 읽었다. 如屈伸臂頃은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처럼」으로 풀었다. 如는 비유 어미.
是時,目連捨此比丘已,禮彼佛足已,還來詣此忍界。
이때 목련이 이 비구들을 내려놓고 나서 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나서, 돌아와 이 참음의 세계에 이르렀다.
주 忍界는 「참음의 세계」로 직역했다. 사바(堪忍) 세계를 가리키는 말로 전해지나 이 좌표의 한문만으로는 확정하지 않았다. 捨…已는 「내려놓고 나서」, 禮彼佛足已는 「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나서」.
是時,彼土比丘聞此六界已,諸塵垢盡,得法眼淨。
이때 저 국토의 비구들이 이 육계를 듣고 나서 온갖 티끌과 때가 다하여 법안의 맑음을 얻었다.
주 諸塵垢盡의 諸는 「온갖」. 得法眼淨의 法眼淨은 「법의 눈이 맑아짐」을 정형 그대로 옮겼다(법안정). 得은 획득.
爾時,世尊告諸比丘:「我弟子中第一聲聞神足難及,所謂大目乾連比丘是也。」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나의 제자 가운데 제일 성문으로서 신통에 미치기 어려운 이는, 이른바 대목건련 비구이다.”
주 大目乾連(대목건련)은 목련 / 대목련과 한자가 다른 같은 인물이다(0709c22.1 참조). 이문: 乾=揵【宋】【元】【聖】, 犍【明】(교감 0710016). 본문은 大正 乾을 따랐다. 神足難及은 「신통에 미치기 어려운」. 所謂는 「이른바」, 是也는 평서 어미.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여러 비구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정형 결구 歡喜奉行(사전 歡喜 ① 뒤: 奉行 450). 聞佛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어 「설하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