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〇)
(10)
주 권 번호 표지 『(一〇)』를 숫자로 옮김(투입물 머리의 『大正 10』과 같은 수여서 권 번호로 읽음). 교감주 『[No. 134]』는 저본 부속 정보라 본문에 넣지 않는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증일아함 전권 453회, 이 경 1회). 如 [비유]는 『이와 같이』로 옮긴다. 이 아함은 『我』 없이 『聞如是』로 연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구속]=부처님. 國=나라. 舍衛→사위(정착어). 이름의 뜻: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 「義譯云無物不有國…此譯云聞者城…法鏡經譯云聞物國」을 인용. 전거표: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정착어 예시와 같은 정착형). 3분할표는 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다며 보류했으나, 한 이름으로 판별했다: 祇樹=祇(음)+樹(뜻), 給孤獨=의역(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園=동산. 뜻: 慧琳 0368a03 「祇樹…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0368a05 「給孤獨…梵云阿那陀此云無親屬…誓救孤獨」을 인용. 전거표 팔리형 Jetavana·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는 비고에만.
爾時,僧迦摩長者子往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그때 승가마, 장자의 아들이 세존 계신 곳에 나아가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僧迦摩: 3분할표에 없는 이름. 글자 뜻으로 읽히지 않는 음사(僧+迦+摩)라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승가마』로 통일한다(이문 迦/伽[宋元明]은 독음이 같다). 『僧迦摩長者子』는 이름+신분 『승가마, 장자의 아들』로 읽었다 — 『승가마 장자의 아들』(아버지가 승가마)로도 읽힐 수 있으나 이후 좌표가 같은 사람을 승가마로 받아 전자를 따랐다. 長者[구속]=장자 · 世尊[구속]=세존. 世尊所의 所는 관형절 『세존 계신 곳』, 頭面禮足은 §②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一面=한쪽, 往至=『나아가 이르러』.
是時,長者子白佛言:「唯願世尊聽在道次。」
이때 장자의 아들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부디 세존께서 도의 차례에 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白佛言(佛=부처님[구속]) / 唯願世尊(世尊=세존[구속]). 唯願은 청원 정형구라 『부디…원합니다』로 옮겼다(唯 [한정]은 『부디』에 흡수, 사전 唯 ① 발화 첫머리 91/314). 聽=허락. 道次: 사전 道次 ① 7회·6경(앞: 聽在 4 · 得在 2 · 聽我 1)은 쓰임만 보일 뿐 뜻을 정해 주지 않는다. 같은 표제의 사전 道次 ③ 용례(ea248/0651c28.1 「得在道次」, ea289/0684a21.1 「得在道次」)도 같은 청원의 틀이다. 『도의 차례』로 직역하고, 도를 닦는 이들의 대열에 듦을 청하는 말로 보이나 확정하지 않는다. 화자(장자의 아들)→청자(세존): 높임.
是時,長者子即得為道,在閑靜之處,剋己修行,成其法果。
이때 장자의 아들은 곧 도를 닦을 수 있게 되어,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자기를 다잡아 닦아 행하여 그 법의 과를 이루었다.
주 即得為道: 即=『곧』(시간), 得=획득·가능 『-ㄹ 수 있게 되어』, 為道=도를 닦음(뒤의 作道와 같은 뜻으로 읽음). 閑靜之處=한적하고 고요한 곳. 剋己=『자기를 다잡아』(自 아님 — 己는 재귀 목적어). 修行=『닦아 행하여』. 法果: 사전 法果 ① 1회·1경(이 경에만, 용례 없음) — 『법의 과』로 직역한다.
所以族姓子剃除鬚髮,出家學道: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胎,如實知之。
가문의 아들이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 없애고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까닭은 이러하다: 태어남과 죽음이 이미 다하고, 청정한 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태를 받지 않음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다.
주 所以+(者 생략)로 읽어 『…하는 까닭은』, 저본의 쌍점 뒤를 그 내용(아라한의 자기 확인)으로 풀었다 — 다른 끊음(『그래서 가문의 아들이…』)도 가능해 구두 불확실. 族姓子=『가문의 아들』(사전 族姓子 ① 60회·35경; 한국 정착어가 아니므로 뜻으로 옮김). 剃除鬚髮=『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 없애고』, 出家學道=『집을 나와 도를 배우고』(出家 의역, §⑤). 정형구 행에 든 生(『태어남』)·梵行(『청정한 행』)은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受胎의 受는 『받다』(느낌 아님). 如實知之=『사실대로 안다』.
是時,僧迦摩便成阿羅漢。
이때 승가마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주 便成=『곧 …이 되었다』. 阿羅漢→아라한(음역, 한자 독음). 뜻: 慧琳 0441b10 「應供·煞賊·不生·遠惡」 등 풀이를 인용. 전거표: 팔리 Arahatta/Arahaṁ, 근대 편자 Arhat(Arhan)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이문 迦/伽[宋元明].
是時,在閑靜之處,便生此念:「如來出現甚為難遇,多薩阿竭時時乃出,亦如優曇鉢花時時乃出。
이때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곧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여래가 나타나는 일은 만나기가 매우 어렵다. 다살아갈은 때때로 비로소 나오니, 또한 우담발 꽃이 때때로 비로소 나오는 것과 같다.
주 如來[구속]=여래와 多薩阿竭(음역 → 한자 독음 『다살아갈』)이 같은 개념을 가리키는데 한역이 다른 한자를 쓴다. 전거표: 多薩阿竭 ← 팔리 후보 Tathāgata(범어 후보 없음 — 두 계통으로 갈리는 자리 아님). 優曇鉢→『우담발』(음역; 慧琳 0601a22 「梵語也」, 希麟 0949a17 優曇 「優曇鉢羅 此云妙瑞花」 인용). 甚為難遇의 為는 흡수. 時時乃出=『때때로 비로소 나온다』(乃=비로소). 亦如=『또한 …와 같다』(앞 문장의 비유에 더해지는 뜻이 실림). 이문 無.
此亦如是,如來出現於世時時乃有,一切行滅亦復難遇,出要亦難,愛盡、無欲、涅槃,此乃為要。」
이것도 이와 같아서, 여래가 세상에 나타남은 때때로 비로소 있고, 모든 지어짐의 사라짐도 또한 다시 만나기 어려우며, 벗어남의 요체도 어렵다. 애착이 다함, 욕심 없음, 열반, 이것이 바로 요체이다.”
주 此亦如是: 『亦如是』는 생략표지 표(이 경 2회)에 잡히지만 여기서는 앞의 우담발 비유를 받는 서술(『이것도 이와 같다』)이지 안쪽을 접은 표지가 아니다 — 펴지 않고 직역하며 [생략표지]는 달지 않는다. 一切行滅의 行(사전 行 ①, 확정역 없음)은 『지어짐』으로 옮긴다. 出要=『벗어남의 요체』(3분할 의역; 사전 出要 ① 68회·34경; 이문 要/妙[宋元明]). 愛盡의 愛=『애착』(확정역 없음). 涅槃→『열반』: 3분할표는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순수 음역어의 정착형을 쓴다. 전거표 팔리 Nibbāna / 당대 범어 nirvāṇa — 음역계통. 뜻: 慧琳 0463b14 「此翻為圓寂也」 인용.
爾時,僧迦摩婦母聞女聟作道人,不復著欲,捨於家累,又捐我女,如棄聚唾。
그때 승가마의 아내의 어머니가, 딸의 남편이 도 닦는 사람이 되어 다시는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집안의 얽매임을 버렸으며 또 내 딸을 고인 침을 버리듯 내버렸다는 것을 들었다.
주 婦母: 婦=아내(승가마의 아내), 母=그 어머니 → 『아내의 어머니』. 聟는 사위·남편 양쪽으로 읽히는데 문맥(승가마)상 『딸의 남편』으로 옮긴다. 作道人: 道人 사전 ① 8회·6경 → 『도 닦는 사람』. 不復著欲의 復=『다시는』(不復). 家累=『집안의 얽매임』, 聚唾=『고인 침』. 이문: 人 없음[宋元明].
爾時,此母往至女所,而語女曰:「汝聟實作道乎?」
그때 이 어머니가 딸이 있는 곳에 가서 딸에게 말하였다. “네 남편이 정말로 도를 닦느냐?”
주 汝聟=『네 남편』(0701c26.1과 같은 처리). 화자(어머니)→청자(딸): 평서.
其女報曰:「女亦不詳為作道不耶?」
그 딸이 대답하였다. “저도 그가 도를 닦는지 아닌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주 為…不耶를 『~인지 아닌지』 구문으로 읽어 평서로 옮기고 耶는 흡수했다. 『도를 닦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의문으로 읽을 수도 있어 구두 불확실. 이문: 저본(CBETA)은 詳, 大正본은 許(교감주) — 저본 詳을 따랐다. 女亦의 女=딸 자신(『저』), 亦=『도』. 화자(딸)→청자(어머니): 높임.
其老母曰:「汝今可自莊嚴著好衣裳,抱此男、女,往至僧迦摩所。」
그 늙은 어머니가 말하였다. “너는 지금 몸을 꾸미고 좋은 옷을 입고, 이 아들과 딸을 안고, 승가마 있는 곳으로 가거라.”
주 自莊嚴: 自는 단순 재귀(自↔他 대조 없음)라 흡수. 可=권유 『-거라』. 男、女=『아들과 딸』(두 아이). 이문 曰/告曰[宋元明].
爾時,母及女共相將至僧迦摩所。
그때 어머니와 딸이 함께 서로 이끌고 승가마 있는 곳에 이르렀다.
주 共相將: 相=상호 『서로』, 將=이끌다. 이문 迦/伽[宋元明].
爾時,尊者僧迦摩在一樹下結加趺坐。
그때 존자 승가마는 한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주 結加趺坐→『가부좌를 틀고 앉아』(정착형). 慧琳 0472b13 「結加趺坐者加字只合單作…」 인용; 이문 加/跏[宋元明]. 尊者=존자(정착).
是時,婦、母二人在前,默然而立。
이때 아내와 어머니 두 사람이 앞에 있으면서 말없이 서 있었다.
주 默然=『말없이』(慧琳 0428c16 인용). 而는 흡수.
是時,老母及女觀僧迦摩從頭至足,而語僧迦摩曰:「汝今何故不與我女共語乎?
이때 늙은 어머니와 딸이 승가마를 머리에서 발까지 살펴보고 승가마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무슨 까닭으로 내 딸과 함께 말하지 않느냐?
주 따옴표는 0702a07.1에서 닫힌다. 화자(장모)→청자(출가한 사위): 한문이 汝를 쓰므로 평서(§⑦). 觀=『살펴보고』.
今此兒女由汝而生,汝今所為實為非理,人所不許,汝今所思惟者,非是人行。」
지금 이 아들딸은 너로 말미암아 태어났다. 네가 지금 하는 일은 참으로 이치에 맞지 않고,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으며,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 아니다.”
주 兒女=『아들딸』. 實為非理의 為는 흡수. 人所不許=『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으며』. 思惟(3분할 의역)=『생각하는 것』. 非是人行의 行=『행실』(앞 좌표의 行[지어짐]과 다른 쓰임).
是時,尊者僧迦摩即時便說此偈:
이때 존자 승가마가 곧바로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即時便=『곧바로』. 偈=게송(정착).
「此外更無善,此外更無妙,
“이것 밖에는 다시 좋은 것이 없고, 이것 밖에는 다시 훌륭한 것이 없으며,
주 게송 행 유지. 善=『좋은 것』, 妙=『훌륭한 것』.
此外更無是,善念無過是。」
이것 밖에는 다시 옳은 것이 없고, 좋은 생각은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주 是=『옳은 것』으로 읽었으나 지시어 『이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善念: 3분할표는 혼합(음의 합벽, 전거표 팔리 후보 Suppiya ⚠다른 부(DA)의 대역)으로 분류했지만 이 자리는 이름이 아니라 『좋은 생각』으로 읽힌다 — 저본이 이긴다(사전 善念 ① 19회·12경).
是時,婦母語僧迦摩曰:「我女今有何罪?
이때 아내의 어머니가 승가마에게 말하였다. “내 딸에게 지금 무슨 죄가 있느냐?
주 有=존재를 묻는 자리라 『있느냐』를 쓴다. 화자(장모)→청자: 평서.
有何非法?
무슨 법답지 않은 것이 있느냐?
주 非法=『법답지 않은 것』.
今何故捨之出家學道?」
지금 무슨 까닭으로 그녀를 버리고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느냐?”
주 之=딸. 出家學道는 0701c19.1과 같은 처리.
是時,僧迦摩便說此偈:
이때 승가마가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이문 迦/伽[宋元明].
「臭處不淨行,瞋恚好妄語,
“냄새나는 곳, 깨끗하지 못한 행, 성냄, 거짓말을 좋아함,
주 臭處/不淨行/瞋恚/好妄語 네 항으로 끊었다(다른 끊음 가능). 臭處: 慧琳 0486c17 「惡氣息居止…穢惡之所也」 인용(사전 臭處 ① 10회·8경). 不淨行=『깨끗하지 못한 행』(사전 ① 8회·7경). 瞋恚(의역)=『성냄』.
嫉妬心不正,如來之所說。」
질투하는 마음이 바르지 않다고,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주 如來之所說: 如來[구속]=여래(『같이』 아님), 所=관형절 『말씀하신 것』. 嫉妬: 慧琳 0410c14(자형 풀이) 참조.
是時,老母語僧迦摩曰:「非獨我女而有此事,一切女人皆同此耳。
이때 늙은 어머니가 승가마에게 말하였다. “내 딸에게만 이런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인이 다 이와 같을 뿐이다.
주 非獨…而有: 獨=『만』, 而 흡수. 耳=『뿐』. 이문 老/彼老[宋元明].
舍衛城中人民之類,見我女者,悉皆意亂,欲與交通,如渴欲飲,覩無厭足,皆起想著。
사위성 안 사람들의 무리 가운데 내 딸을 보는 이는 모두 마음이 어지러워져 서로 통하고자 하니, 목마른 이가 마시고자 하듯 보아도 물리거나 만족함이 없이, 모두 생각과 집착을 일으킨다.
주 舍衛→사위(정착어). 이름의 뜻: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 「義譯云無物不有國…此譯云聞者城…法鏡經譯云聞物國」을 인용. 전거표: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欲與交通의 交通은 『서로 통함』으로 직역(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뜻을 품은 말로 읽히나 풀지 않는다). 無厭足: 慧琳 0436a09 참조. 想著=『생각과 집착』.
汝今云何捨之學道,方更謗毀?
너는 지금 어찌하여 그녀를 버리고 도를 배우며, 바야흐로 다시 비방하고 헐뜯는가?
주 云何=『어찌하여』. 方更=『바야흐로 다시』. 이문 更/便[宋].
設汝今日不用我女者,汝所生男、女,還自錄之。」
설령 네가 오늘 내 딸을 쓰지 않는다면, 네가 낳은 아들과 딸은 도리어 거두어 두라.”
주 設=가정 『~면』. 不用我女=『내 딸을 쓰지 않는다면』. 還自錄之: 錄의 뜻(거두다/기록하다)이 저본 문맥만으로 서지 않아 『거두어 두라』로 옮기고 신고한다. 自는 단순 재귀로 흡수(이문 自/目[宋]).
爾時,僧迦摩復說此偈:
그때 승가마가 다시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復=『다시』(앞의 게송에 이은 두 번째 게송이라 뜻이 실림).
「我亦無男女,田業及財寶,
“나는 아들도 딸도 없고, 밭과 생업과 재물과 보배도 없으며,
주 我亦無男女: 亦는 『-도』(보조사)에 흡수. 田業=『밭과 생업』, 財寶=『재물과 보배』.
亦復無奴婢,眷屬及營從。
또한 하인과 하녀도 없고, 딸린 식구와 따르는 무리도 없다.
주 亦復=『또한』. 奴婢=『하인과 하녀』. 眷屬=『딸린 식구』(慧琳 0559b13은 자음 풀이), 營從=『따르는 무리』(慧琳 0489c04 「營衛也亦部伍也」 참조).
獨步無有侶,樂於閑靜處,
홀로 걸으니 짝이 없고, 한적하고 고요한 곳을 즐기며,
주 無有侶는 『짝이 없고』로 풀었다(『있어』 훈독 회피).
行作沙門法,求於正佛道。
행하여 사문의 법을 짓고, 바른 부처님의 도를 구한다.
주 沙門→사문(정착). 뜻: 慧琳 0420a16 「梵語訛也…唐云勤懇也」, 0477b19 「此云勤勞」 인용. 전거표: 팔리 Samaṇa / 근대 편자 Śramaṇ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이문 正佛/佛正[宋元明] — 저본 正佛을 따랐다. 佛道=『부처님의 도』.
有男有女者,愚者所習行,
아들이 있고 딸이 있는 이는 어리석은 이가 익혀 행하는 것이다,
주 有男有女者=『아들이 있고 딸이 있는 이』. 愚者所習行=『어리석은 이가 익혀 행하는 것』(所 관형절).
我常無我身,豈有男女哉。」
나는 늘 내 몸조차 없는데, 어찌 아들과 딸이 있겠는가.”
주 無我身의 我는 소유격 『내』로 읽었다(교리어 無我와 같은 글자). 豈有…哉=반어 『어찌 …있겠는가』. 이문 常/向[元明].
是時,婦、母、男、女聞說此偈已,各作是念:「如我今日觀察此意,必不還家。」
이때 아내와 어머니와 아들과 딸이 이 게송을 말하는 것을 듣고 나서, 각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오늘 이 뜻을 살펴본 것과 같다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주 婦、母、男、女를 열거 그대로 옮겼다(이문 婦/老[宋元明] — 저본 婦를 따름). 如我今日觀察此意: 如=『~와 같다면』. 觀察(3분할 의역)=『살펴보다』.
復更觀察從頭至足,長歎息已,前自長跪,而作是語:「設身、口、意所造非法者,盡共忍之。」
다시 또 머리에서 발까지 살펴보고, 길게 탄식하고 나서, 앞으로 나아가 길게 꿇어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설령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법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모두 함께 참아 주십시오.”
주 復更=『다시 또』. 前自의 自는 흡수. 長跪: 慧琳 0612b16 「跪危也 兩膝隱地體危」 인용 — 『길게 꿇어앉아』로 직역. 非法=『법에 맞지 않는 것』(0702a13.2와 같은 계열). 화자→승가마: 이제 무릎 꿇고 청하므로 높임. 忍=『참다』.
即遶三匝而退所在。
곧 세 바퀴를 돌고 나서 있던 곳으로 물러갔다.
주 遶三匝=『세 바퀴를 돌고』(사전 三匝 ① 47회·29경). 退所在=『있던 곳으로 물러갔다』(所 관형절).
是時,尊者阿難到時,著衣持鉢,入舍衛城乞食,遙見老母及女而問之曰:「向者頗見僧迦摩乎?」
이때 존자 아난이 때가 되어 옷을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음식을 빌다가, 멀리서 늙은 어머니와 딸을 보고 그들에게 물었다. “아까 혹시 승가마를 보았는가?”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舍衛→사위(정착어). 이름의 뜻: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 「義譯云無物不有國…此譯云聞者城…法鏡經譯云聞物國」을 인용. 전거표: 팔리 Sāvatthī / 당대 범어 śravasthi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到時=『때가 되어』, 乞食=『음식을 빌다』, 向者=『아까』, 頗=『혹시』(사전 頗見 ① 31회·18경; 慧琳 0596a08 「頗少也」 참조). 이문 迦/伽[宋元明]. 화자(아난)→청자(재가 여인): 평서.
其老母報曰:「雖見亦不為見。」
그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보았어도 본 것이 아닙니다.”
주 雖見亦不為見: 雖…亦=양보 『-어도』에 흡수, 為=『-이 되다』. 화자(재가 여인)→청자(비구 아난): 높임.
阿難報曰:「頗共言語乎?」
아난이 대답하였다. “혹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이문 曰/言[宋元明].
老母報曰:「雖共言語,不入我意。」
늙은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비록 함께 이야기하였으나 제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주 不入我意=『제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높임(청자 아난).
是時,尊者阿難便說此偈:
이때 존자 아난이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欲使火生水,復使水生火,
“불이 물을 낳게 하려 하고, 다시 물이 불을 낳게 하려 하며,
주 欲使 X Y=『X가 Y하게 하려 한다』(使 사역). 復=『다시』(앞 구와 짝).
空法欲使有,無欲欲使欲。」
빈 법이 있게 하려 하고, 욕심 없음이 욕심을 내게 하려 한다.”
주 無欲欲使欲: 無欲(주어)·欲使(~하게 하려 한다)·欲(욕심을 내다)로 읽었으나 주어·목적어 배선이 하나로 서지 않는다. 空法=『빈 법』(사전 空法 ① 5회·4경). 아난이 여인들의 시도가 불가능함을 이르는 게송으로 읽히나 판정은 비고 밖으로 두지 않는다.
是時,尊者阿難乞食已,還詣祇樹給孤獨園。
이때 존자 아난은 음식 빌기를 마치고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갔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은 0.3과 같은 처리(기수급고독원). 還詣=『돌아가 이르렀다』.
往至僧迦摩所,在一面坐。
승가마 있는 곳으로 가서 한쪽에 앉았다.
주 이문 迦/伽[宋元明].
語僧迦摩曰:「已知如真法乎?」
승가마에게 말하였다. “이미 참 그대로의 법을 알았는가?”
주 如真法: 如真은 사전 如 ③ 용례(ea110/0577a21.1 「更不復受有,如真知之」)가 이 경 0701c19.1의 「如實知之」와 같은 자리여서 『사실 그대로』의 뜻으로 읽고 『참 그대로』로 옮긴다. 확정하지 않는다. 화자(아난)→청자(승가마): 평서.
僧迦摩報曰:「我已覺知如真法也。」
승가마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미 참 그대로의 법을 깨달아 알았다.”
주 覺知: 覺은 정형구 행에서 vedanā(느낌)와 겹치는 한자이나 여기서는 『깨달아 알다』이다.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也는 평서 어미에 흡수.
阿難報曰:「云何覺知如真法乎?」
아난이 대답하였다. “어떻게 참 그대로의 법을 깨달아 알았는가?”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覺知는 앞 좌표와 같은 처리. 云何=『어떻게』.
僧迦摩報曰:「色者無常,此無常義即是苦;苦者即無我;無我者即是空也。
승가마가 대답하였다. “물질은 덧없다. 이 덧없는 뜻이 곧 괴로움이다. 괴로운 것은 곧 내가 없음이고, 내가 없는 것은 곧 비어 있음이다.
주 色→『물질』(오온의 첫째, 확정역 없음). 無常=『덧없다』, 苦=『괴로움』, 無我=『내가 없음』, 空=『비어 있음』. 即(=곧, 동일)·義(=뜻). 이문 即/即是[宋元明].
痛、想、行、識皆悉無常,此無常義即是苦;苦即無我;無我者即是空也。
느낌과 생각과 지어짐과 앎도 모두 덧없다. 이 덧없는 뜻이 곧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곧 내가 없음이고, 내가 없는 것은 곧 비어 있음이다.
주 痛、想、行、識: 痛은 글자 뜻이 『아픔』이나 오온의 둘째 자리라 『느낌』으로 읽는다(痛이 느낌을 가리키는 쓰임은 이 역자의 용어로 보이나 사전에 표제가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想=『생각』, 行=『지어짐』, 識=『앎』. 皆悉=『모두』. 이문 苦/苦者[宋元明].
此五盛陰是無常義;無常義者即是苦義;我非彼有,彼非我有。」
이 다섯 왕성한 무더기는 덧없다는 뜻이다. 덧없다는 뜻은 곧 괴로움의 뜻이다. 나는 저것의 소유가 아니고, 저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주 五盛陰(3분할 의역)=『다섯 왕성한 무더기』(盛=왕성, 陰=무더기). 전거표: 팔리 후보 Pañca upādānakkhandā(⚠다른 부(MA)의 대역) — 참고만. 我非彼有: 彼=五盛陰, 有=『소유』. 이문: 苦義의 義 없음[宋元明].
是時,僧迦摩便說此偈:
이때 승가마가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이문 迦/伽[宋元明].
「苦苦還相生,度苦亦如是,
“괴로움이 괴로움을 도리어 서로 낳고, 괴로움을 건넘도 또한 이와 같다,
주 苦苦: 사전 苦苦 ① 1회·1경(이 경에만)이라 용례가 없어 『괴로움이 괴로움을』로 직역한다. 還相生=『도리어 서로 낳고』. 度苦=『괴로움을 건넘』. 亦如是: 앞 구와 비유로 맞서는 서술이지 접은 표지가 아니다(0701c24.1과 같은 판단).
賢聖八品道,乃至滅盡處。
현성의 여덟 갈래 길, 내지 다 사라진 곳.
주 乃至: 생략 표지(이 경 1회)로 보아 펴지 않고 『내지』로 접힌 대로 둔다. 賢聖八品道=『현성의 여덟 갈래 길』(品=갈래, 사전 品 ① 92회). 滅盡=『다 사라짐』. 이문 至/成[宋元明]: 『乃成滅盡處』면 『곧 다 사라진 곳이 된다』로 읽혀 생략표지가 아닐 수 있다 — 저본 至를 따랐다.
更不還此生,流轉天人間,
다시는 이 삶으로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사람 사이를 흘러 돈다,
주 更不=『다시는 …않는다』. 此生의 生은 『삶』으로 옮기고 신고한다(정형구 행 生과 같은 한자). 流轉=『흘러 돈다』(사전 流轉 ① 21회·14경; 慧琳 0625b15 「循環往來不絕」 참조). 이문 還此/過七[宋元明] — 저본 還此를 따랐다.
當盡苦原本,永息無移動。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리라, 길이 쉬어 옮겨 움직임이 없으리라.
주 當盡: 當은 어미 『-리라』에 흡수(§③). 苦原本=『괴로움의 근본』. 永息無移動=『길이 쉬어 옮겨 움직임이 없다』.
我今見空跡,如佛之所說,
나는 이제 빈 자취를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이 게송의 如佛之所說(佛=부처님[구속])과 앞 승가마의 게송 0702a17.1 如來之所說(如來=여래[구속])은 한 화자가 같은 분을 다르게 부른 것이다. 見空跡의 見(정형구 행의 見과 같은 한자)은 『보다』이고, 空跡=『빈 자취』.
今得阿羅漢,更不受胞胎。」
이제 아라한을 얻어, 다시는 태를 받지 않는다.”
주 阿羅漢→아라한(음역, 한자 독음). 뜻: 慧琳 0441b10 「應供·煞賊·不生·遠惡」 등 풀이를 인용. 전거표: 팔리 Arahatta/Arahaṁ, 근대 편자 Arhat(Arhan)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受胞胎의 受는 『받다』(느낌 아님)여서 정형구 행 受와 다름을 신고한다. 胞胎=『태』(慧琳 0322a25 인용). 得=획득 『얻어』.
是時,尊者阿難歎曰:「善哉!如真之法善能決了。」
이때 존자 아난이 감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참 그대로의 법을 잘 가려 밝힐 수 있었구나.”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歎=『감탄하여』. 善哉=『훌륭하구나』(감탄 어미에 흡수). 能決了의 能=가능 『-ㄹ 수 있었구나』(§③), 決了=『가려 밝히다』(사전 能決 ① 1회·1경; 慧琳 0612c18은 決 자음풀이라 뜻을 정하지 못한다).
是時,阿難便說此偈:
이때 아난이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善守梵行跡,亦能善修道,
“청정한 행의 자취를 잘 지키고, 또한 도를 잘 닦을 수 있어,
주 梵行(3분할 의역)=『청정한 행』: 정형구 행에 든 한자라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옮기고 신고한다(0701c19.1과 같은 처리). 亦能=『또한 …ㄹ 수 있다』(지킴에 더해지는 닦음이라 亦 뜻이 실림).
斷諸一切結,真佛之弟子。」
모든 온갖 결박을 끊었으니, 참 부처님의 제자이다.”
주 諸一切: 諸(여러)와 一切(모든) 두 요소를 『모든 온갖』으로 옮긴다. 結=『결박』(사전 結 ① 157회). 真佛=『참 부처님』(사전 真佛 ① 1회·1경).
爾時,阿難說此偈已,即從坐起而去。
그때 아난은 이 게송을 말하고 나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이문 坐/座[宋元明].
往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立。
세존 계신 곳에 가서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섰다.
주 0701c16.1과 같은 처리. 世尊[구속]=세존.
爾時,阿難以此因緣,具白世尊。
그때 아난은 이 인연을 세존께 빠짐없이 아뢰었다.
주 阿難→아난(정착어, 3분할표). 이름의 뜻은 ‘경희(慶喜)’ — 慧琳 一切經音義 0482c03〔音妙法蓮花經〕 「阿難陀此云慶喜」를 인용(확정역 아님). 전거표: 팔리 Ānanda / 근대 편자 Ānaṁda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以此因緣: 以는 목적어 표지로 흡수. 具=『빠짐없이』.
爾時,世尊告諸比丘:「欲平等論阿羅漢,當言僧迦摩比丘是也。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라한을 평등하게 논하고자 한다면 승가마 비구가 그라고 말해야 한다.
주 阿羅漢→아라한(음역, 한자 독음). 뜻: 慧琳 0441b10 「應供·煞賊·不生·遠惡」 등 풀이를 인용. 전거표: 팔리 Arahatta/Arahaṁ, 근대 편자 Arhat(Arhan) — 음역계통(판정하지 않음). 世尊[구속]=세존, 比丘[구속]=비구. 諸比丘의 諸는 복수 표지라 『비구들』로 흡수.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當言: 당위는 『말해야 한다』 어미로 옮김. 是也는 판단종결이라 『그』를 받는 어미에 흡수. 이문 迦/伽[宋元明].
能降伏魔官屬者,亦是僧迦摩比丘。
마의 관속을 항복시킬 수 있는 이도 또한 승가마 비구이다.
주 魔官屬: 慧琳 0468a12 「降伏魔官…官王也主也魔是他化天主故云王」 인용(사전 降伏魔官 ① 4회·4경). 魔→『마』(정착). 能=가능 『-ㄹ 수 있는』. 亦=『도 또한』(앞의 『아라한』 규정에 더해지는 뜻이 실림).
所以然者,僧迦摩比丘七變往降魔,今方成道。
그러한 까닭은, 승가마 비구가 일곱 번 변하여 가서 마를 항복시켰고 이제 막 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주 所以然者=『그러한 까닭은』. 七變: 이문 變/返[宋元明] — 『일곱 번 변하여』(저본) 대 『일곱 번 돌아가』로 뜻이 갈린다. 저본 變을 따랐다. 降魔: 사전 ① 2회·2경. 方=『이제 막』. 成道=『도를 이루다』.
自今已後,聽七變作道。
지금부터 이후로는 일곱 번 변하여 도 닦기를 허락한다.
주 自今已後: 自는 전치사 『-부터』. 聽=『허락한다』. 七變作道=『일곱 번 변하여 도 닦기』(0702c09.1의 이문 문제가 그대로 걸린다 — 이문 變/返[宋元明]).
過此限者,則為非法。」
이 한도를 넘으면 곧 법에 맞지 않는다.”
주 過此限者: 者는 가정 어미 『-면』에 흡수. 則為=『곧 …이다』. 非法=『법에 맞지 않음』.
爾時,世尊告諸比丘:「我聲聞中第一比丘能降伏魔,今方成道者,所謂僧迦摩比丘是。」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성문 가운데 첫째 비구로서 마를 항복시킬 수 있고 이제 막 도를 이룬 이는, 이른바 승가마 비구이다.”
주 聲聞→성문(정착). 能降伏魔, 今方成道者: 이문에서 『今方成道者』는 [宋元明]에 없다 — 저본을 따랐다. 所謂=『이른바』. 世尊[구속]·比丘[구속].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앞 좌표들이 世尊으로 부르던 분을 여기서는 佛(부처님[구속])로 부른다. 歡喜奉行은 종결 정형구(사전 歡喜 ① 672회·451경, 奉行 ① 505회·450경). 聞佛所說=『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所 관형절).
聽法品第三十六
법을 듣는 품 제36
주 품 제목 좌표(聽法品第三十六). 경 끝 뒤에 놓여 이 경이 속한 품의 표제인지 다음 품의 표제인지 저본만으로는 알 수 없다. 聽=『듣다』, 法=『법』, 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