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EĀ 273

EĀ 273

교차 검사교차 검사 44현대역 준비 중

(九)

(9)

주 제목은 경 번호 「九」뿐이다. 교감주(orig·equivalent) 「~S. 1. 2.」(다카쿠스)가 이 경을 sn1.2에 이었으나, 공급된 sn1.2 전문(11좌표)에는 이 경의 내용(네 가지 흐름·난단원)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다른 팔리 후보가 특정되지 않았으므로 미대응이다(없음확인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2:0.3

AG:ea273/0.1 · 교차 검사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한문은 개경 정형구 「聞如是」를 펴서 적었다(주어 「我」 없음, 사전 如是 ① 1578회·451경). 팔리 2.1 「Sāvatthinidānaṃ」은 nidāna 정형구를 이름만 달아 접어 둔 것이어서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확인이 설 수 없고 미대응으로 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1.2:2.1

AG:ea273/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舍衛」는 정착어(3분할)라 정착형 「사위」를 쓴다. 이름의 뜻은 음의(慧琳 0367c24)에 室羅伐悉底를 「聞者城」·「聞物國」으로 푼다고 하고, 善見律은 사람 이름이라 한다. 음역계통: 전거 舍衛 — 팔리 Sāvatthī / 범어(당대) śravasthi,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이 「보류」로 둔 5자 이름이다. 祇(소리)+樹(뜻)=Jetavana(음의 慧琳 0368a03), 給孤獨은 뜻으로 옮긴 이름(음의 慧琳 0368a05 阿那陀 「無親屬… 救孤獨」, 팔리 Anāthapiṇḍika), 園은 동산이다. §⑤ 정착어 예에 따라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고 뜻을 여기 밝힌다. 「一時」=어느 때. 「佛」은 [구속] 부처님.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와 c21.1에서 佛로, b04.1·c08.1에서 世尊으로 적는다(확정역으로 고정). 팔리 2.1은 사위만 적은 접힘이고 기수(Jetavana)는 2.2 서사 안에서 나오며, 급고독에 해당하는 말은 sn1.2에 없어 일부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2.1

AG:ea273/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過去久遠,三十三天釋提桓因及將諸玉女,詣難檀槃那園遊。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오래고 먼 때에, 삼십삼천의 석제환인이 아울러 옥녀들을 거느리고 난단반나원에 가서 노닐었다.

주 世尊·比丘는 [구속] 세존·비구. 한자 흔들림: 佛(0.3)과 世尊(여기)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三十三天」은 음역(3분할)이라 한자 독음 삼십삼천(전거: 팔리 Tāvatiṃsā, 다른 부 대역). 「釋提桓因」은 3분할이 유형을 갈라 둔 이름이다. 음의(慧琳 0482c21)가 「釋迦提婆因達羅」를 소리 옮김으로 풀어(「能天帝」) 전체를 소리로 보고 한자 독음 석제환인(한국 정착형과 같다)으로 적는다. 음역계통: 전거 팔리 Sakka devānam inda / 범어(근대 편자 비정) Śākradevānāmiṁdra — 두 계통을 인용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難檀槃那園」은 표에 없다. 難檀槃那는 소리, 園은 뜻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난단반나원으로 적었다(사전 檀槃那 ① 6회·3경; ⑥ 丁福保의 Dānavana=施林은 難이 붙은 형과 맞지 않아 가볍게 본다). 이름의 풀이는 이 입력에 없다. 「及」은 宋·元·明본에 없다(이문 0672015) — 저본대로 「아울러」로 옮기되 及이 이어 주는 두 항(釋提桓因 / 將諸玉女)의 문법 관계는 한문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詣=在【宋元明】, 遊=遊戲【宋元明聖】 이문. 「玉女」는 입력에 풀이가 없어 한자어 그대로 옮긴다. 팔리 sn1.2에는 이 서사가 없어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04.1 · 교차 검사

「是時,有一天人便說此偈:

「이때 한 천인이 곧 이 게송을 말하였다:

주 「有一天人」은 [정형구 행] 有一天(aññatara)에 걸리나 한자 낱말 확정역은 없다. 3분할은 有一天을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한자가 소리가 아니라 뜻(有·一·天)이므로 저본이 이겨 음역으로 처리하지 않고 「한 천인」으로 옮긴다. 「어떤」으로 옮길지(불특정)는 문맥만으로 서지 않아 신고한다(사전 有一天 ① 6회·5경). sn1.2 2.2의 「aññatarā devatā」는 부처님께 다가오는 다른 장면이라 같은 자리로 잡지 않았다. 便=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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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06.1 · 교차 검사

「『不見難檀園,則不知有樂,

「『난단원을 보지 못하면 즐거움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주 「難檀園」은 b04.1 難檀槃那園의 줄임으로 보아 같은 표기(난단)로 통일한다. 則는 「-면」에 흡수. 「知有樂」의 有는 즐거움의 존재 자체를 가리키므로 「있음」으로 옮긴다. 게송이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07.1 · 교차 검사

諸天之所居,無有過是者。』

여러 하늘이 사는 곳, 이를 넘는 것은 없다.』

주 「諸天之所居」의 所는 관형절(사는 곳)로 풀었고, 天이 하늘(처소)인지 천신인지는 한문만으로 갈리지 않아 「하늘」로 두었다. 「無有過是者」=이를 넘는 것은 없다(無有는 존재 부정). 게송이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08.1 · 교차 검사

「是時,有天語彼天言:『汝今無智不能分別正理,憂苦之物,反言是樂;無牢之物,而言是牢;無常之物,反言是常;不堅要之物,復言堅要。

「이때 한 천이 그 천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지금 지혜가 없고 바른 이치를 분별할 수 없다. 근심과 괴로움의 것을 도리어 즐거움이라 말하고, 견고함이 없는 것을 견고하다고 말하며, 무상한 것을 도리어 항상하다고 말하고, 견고하고 요긴하지 않은 것을 다시 견고하고 요긴하다고 말한다.

주 「有天」은 b06.1 「有一天人」과 달리 一이 없다 — 먼저 게송을 읊은 천인(彼天)에게 말하는 다른 천이다. 能 → 「-ㄹ 수 있다」, 而·復는 문법/「다시」, 之物의 物은 「것」으로 통일. 이문: 時更【宋元明】(0672018), 反=及【聖】(0672019), 要 없음【宋元明】(0672020) — 저본(大正)대로 옮김. 화자(천)가 청자(천)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로 통일한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09.1 · 교차 검사

所以然者,汝竟不聞如來說偈乎?

그러한 까닭은, 그대가 끝내 여래께서 설하신 게송을 듣지 못했는가?

주 「所以然者」는 설명을 여는 정형이고 문말 乎는 의문이다(한문 구조를 그대로 두었다). 如來는 [구속] 여래. 竟(끝내)은 宋·元·明본에 없다(이문 0672021). 위 b09.1에서 이어지는 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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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2.1 · 교차 검사

「『一切行無常,生者必有死,

「『모든 행은 무상하고, 태어난 이는 반드시 죽음이 있고,

주 게송이다. 「一切行」의 行은 「제행무상」으로 굳은 말이라 「행」으로 둔다. 「生者」의 者=태어난 이, 「必有死」의 有는 죽음의 존재 자체를 서술한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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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4.1 · 교차 검사

不生必不死,此滅最為樂。』

태어나지 않으면 반드시 죽지 않고, 이 멸이 가장 즐거움이다.』

주 게송이다. 「此滅」의 滅이 생멸의 멸(소멸) 일반인지 닫힌 하나의 경계(열반)를 가리키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이 멸」로 두고 신고한다. 最為樂의 為는 「이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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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5.1 · 교차 검사

「『彼有此義,又有此偈,云何方言此處最為樂耶?

「『그것에 이 뜻이 있고 또 이 게송이 있는데, 어째서 이곳이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가?

주 「彼有此義」의 彼를 「그것(여래의 가르침)」으로 읽었다. 彼=然【宋元明聖】(0672022)이면 「그러나 이 뜻이 있고…」가 되어 뜻이 갈리므로 신고한다. 「方」은 앞 절과의 대조를 나타내는 허사로 보아 「-는데」에 흡수했다. 云何·耶는 의문 어미. 此處=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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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6.1 · 교차 검사

汝今當知,如來亦說有四流法。

그대는 이제 알라. 여래께서도 네 가지 흐름의 법이 있다고 설하셨다.

주 當知는 명령 「알라」로 옮긴다(當은 어미가 진다). 亦은 앞 게송에 더해 사류법도 설하셨다는 뜻이 실려 「여래께서도」로 둔다. 「四流」=네 가지 흐름(流=흐름; 사전 四流 ① 11회·5경).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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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7.1 · 교차 검사

若一切眾生沒在此流者,終不得道。

모든 중생이 이 흐름에 빠져 있으면, 끝내 도를 얻지 못한다.

주 「若…者」는 「-면」에 흡수(「만약」을 따로 세우지 않음). 沒在=빠져 있다(沒=잠기다; 사전 沒 ① 72회). 終=끝내, 得道=도를 얻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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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7.2 · 교차 검사

云何為四?

무엇이 넷인가?

주 「云何為四」는 문답 정형.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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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8.1 · 교차 검사

所謂欲流、有流、見流、無明流。

이른바 욕망의 흐름, 존재의 흐름, 견해의 흐름, 무명의 흐름이다.

주 欲流·有流·見流·無明流를 뜻으로 옮겼다(전거: 팔리 후보 Kāmogha·Bhavogha·Diṭṭhogha·Avijjogha, ⚠다른 부(SA) 대역 — 인용만 한다). 有=존재(欲有·色有·無色有의 有, b24.2), 見=견해는 [정형구 행] 見(dassana)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골랐다. 無明은 3분할이 「혼합(音義合璧)」으로 분류했으나 한자가 無+明의 뜻 옮김이어서 저본을 따라 의역으로 보고, 한국 정착 술어 「무명」을 그대로 쓴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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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9.1 · 교차 검사

「『云何名為欲流?

「『무엇을 욕망의 흐름이라 이름하는가?

주 「云何名為X」=무엇을 X라 이름하는가. 이문: 云=彼云【宋元明】(0672023), 何=欲【元】(0672024).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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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19.2 · 교차 검사

所謂五欲是也。

이른바 다섯 욕망이 그것이다.

주 五欲은 뒤 b20.3이 눈·귀·코·혀·몸의 다섯 경험으로 풀어 주므로 「다섯 욕망」으로 옮긴다. 是也의 也는 평서 어미가 진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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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20.1 · 교차 검사

云何為五?

무엇이 다섯인가?

주 문답 정형.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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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20.2 · 교차 검사

所謂若眼見色起眼色想;若耳聞聲起識想;若鼻嗅香起識想;若舌知味起識想;若身知細滑起識想,是謂名為欲流。

이른바 눈으로 색을 보면 눈의 색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식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코로 향을 맡으면 식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혀로 맛을 알면 식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몸으로 미세하고 매끄러운 것을 알면 식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니, 이것을 일러 욕망의 흐름이라 이름한다.

주 若×5는 모두 「-면」에 흡수했다. 한문은 눈에서만 「眼色想」, 나머지는 「識想」으로 적는다 — 한자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이나 같은 개념으로 읽을 근거가 없어 통일하지 않았다. 明본은 色=識(이문 0672025). 細滑은 촉각의 대상으로 보이나 입력에 풀이가 없어(음의 慧琳 0685a13은 자형·음만 풂) 글자 뜻대로 「미세하고 매끄러운 것」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鼻嗅의 音義는 慧琳 0339c16(齅=嗅). 識은 「식」. 是謂名為는 「이것을 일러 …라 이름한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0.3 · 교차 검사

「『云何名為有流?

「『무엇을 존재의 흐름이라 이름하는가?

주 有流=존재의 흐름(b19.1 참조).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3.1 · 교차 검사

所謂有者,三有是也。

이른바 존재란, 세 가지 존재가 그것이다.

주 「有者」=존재란. 「三有」를 3분할은 음역으로 분류(Tayo)했으나 有가 소리가 아니라 뜻(존재)이므로 저본이 이겨 뜻으로 옮긴다(전거: 팔리 Tayo bhavā, ⚠다른 부(SA)).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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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a273/0672b23.2 · 교차 검사

云何為三?

무엇이 셋인가?

주 문답 정형.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4.1 · 교차 검사

所謂欲有、色有、無色有,是謂名為有流也。

이른바 욕망의 존재, 색의 존재, 색 없는 존재, 이것을 일러 존재의 흐름이라 이름한다.

주 欲有·色有·無色有를 뜻으로 옮겼다(전거: 팔리 후보 Kāmabhava·Rūpabhava, ⚠다른 부(SA) 대역 — 인용만). 色은 한문만으로는 「색」(형상)이라는 글자 뜻까지만 선다. 也는 평서 어미.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4.2 · 교차 검사

「『云何名為見流?

「『무엇을 견해의 흐름이라 이름하는가?

주 見流=견해의 흐름(b19.1 참조).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5.1 · 교차 검사

所謂見流者:世有常、無常;世有邊見、無邊見;彼身彼命、非身非命;有如來死、無如來死、若有如來死無如來死、亦非有如來死亦非無如來死;是謂名為見流。

이른바 견해의 흐름이란: 세간은 항상하다, 무상하다; 세간은 끝이 있다는 견해, 끝이 없다는 견해; 그 몸이 그 목숨이다, 몸이 아니고 목숨이 아니다; 여래의 죽음이 있다, 여래의 죽음이 없다, 혹은 여래의 죽음이 있고 여래의 죽음이 없다, 여래의 죽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일러 견해의 흐름이라 이름한다.

주 (1) 「世有常、無常」은 「世有常 / 世無常」으로 읽었고 「世有邊見、無邊見」은 같은 꼴(사전 有邊·無邊, 용례 ea111·ea209의 「有邊見、無邊見」)로 보아 「끝이 있다는 견해 / 끝이 없다는 견해」로 옮겼다 —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일 수 있어 신고. (2) 「非身非命」은 「몸도 목숨도 아니다」인지 「몸과 목숨이 다르다」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글자 그대로 둔다. (3) 「有如來死」는 글자대로 「여래의 죽음이 있다」로 옮겼다 — 이 자리에서 여래의 사후 존재 여부를 가리키는지는 한문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4) 「若有如來死無如來死」의 若은 앞뒤가 나열된 네 항이어서 가정(-면)이 아니라 선택(혹은)으로 읽었다(앵커의 기본값 가정과 다르게 읽었음). 亦非有…亦非無…의 亦은 「-도」로 흡수. 이문: 無常世=世無常【宋元明】/世【聖】(0672026), 無=若無【宋元明】(0672027).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6.1 · 교차 검사

「『彼云何無明流?

「『그 무명의 흐름은 무엇인가?

주 「彼云何無明流」는 의문사가 앞으로 나온 꼴이라 「그 무명의 흐름은 무엇인가」로 옮겼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b29.1 · 교차 검사

所謂無明者,無知、無信、無見,心意貪欲恒有希望,及其五蓋:貪欲蓋、瞋恚蓋、睡眠蓋、調戲蓋、疑蓋。

이른바 무명이란, 앎이 없고 믿음이 없고 봄이 없으며, 마음과 뜻의 탐욕으로 늘 바람을 품고, 아울러 그 다섯 덮개: 탐욕의 덮개, 성냄의 덮개, 잠의 덮개, 희롱의 덮개, 의심의 덮개이다.

주 五蓋·貪欲蓋·瞋恚蓋·睡眠蓋는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해 뜻으로 옮겼다(蓋=덮개; 전거: 팔리 후보 Pañcanīvaraṇa·Kāmacchandanīvaraṇa·Byāpāda·Thīnamiddha, ⚠다른 부(SA) 대역 — 인용만). 調戲蓋: 음의 慧琳 0599b05는 이 경전에서 調=嘲, 戲=相調戲로 풀고 掉(흔들림)로 읽는 것은 「非此義」라 한다 — 이에 따라 글자 뜻대로 「희롱」으로 옮기고, 낱말 선택을 신고한다. 睡眠은 잠(慧琳 0323b10 「坐寐」·「眠臥」). 「心意貪欲恒有希望」은 「마음과 뜻이 탐욕스럽고 늘 바람이 있다」로도 끊을 수 있어 신고한다(希望은 慧琳 0376b23 「意承望」, 「바람」으로 옮김). 「及其五蓋」의 及은 b04.1과 같이 「아울러」. 見(봄), 信(믿음)은 [정형구 행]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골랐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c01.1 · 교차 검사

若復不知苦、不知習、不知盡、不知道,是謂名為無明流。

또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익힘을 알지 못하고, 다함을 알지 못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이것을 일러 무명의 흐름이라 이름한다.

주 苦·習·盡·道는 사제의 네 항으로 읽히나, 習(元·明본은 集, 이문 0672028)과 盡이 어떤 항을 가리키는지 입력의 근거로는 확정되지 않아 글자 뜻(익힘·다함)대로 옮기고 신고한다. 「若復」의 復는 「또」로 옮겼다(반복이 아니라 덧붙임). 為는 「~라 이름하다」 안에서 흡수.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c03.1 · 교차 검사

天子當知,如來說此四流。

천자여, 알라. 여래께서는 이 네 가지 흐름을 설하신다.

주 「天子」는 호칭(천인을 부르는 말)이므로 「천자여」. 當知=알라. 如來는 [구속] 여래.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c04.1 · 교차 검사

若有人沒在此者,亦不能得道。』

사람이 이것에 빠져 있으면, 또한 도를 얻을 수 없다.』

주 「若有人」의 有는 「사람이」로 주어화하고 若은 「-면」에 흡수. 亦은 b17.2의 「모든 중생」에 이어 「사람」의 경우도 같다는 뜻이 실려 「또한」으로 둔다. 能得=얻을 수 있다(能은 어미가 진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c05.1 · 교차 검사

「是時,彼天聞此語已,猶如力士屈申臂頃,從三十三天沒,來至我所,頭面禮足,在一面立。

「이때 그 천이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치 힘센 사람이 팔을 굽히고 펴는 사이와 같이, 삼십삼천에서 사라져 내가 있는 곳에 와서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섰다.

주 「來至我所」·「頭面禮足」·「在一面立」은 팔리 2.2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2.3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aṭṭhāsi」와 정형구 단위로 맞는다. 한문에는 팔리에 없는 「力士屈申臂頃, 從三十三天沒」가 더 있어 일부이고, 이 좌표의 앞 사건(천이 말을 듣고 오는 이야기)은 sn1.2와 다르다. 연속 동사(來至…禮…立)로 압축된 인도어 구문 차이는 번역기법으로 본다. 力士(힘센 사람), 屈申臂頃(팔을 굽히고 펴는 사이)는 사전 力士 ① 15회·13경의 정형 용례와 같다. 申=伸【宋元明】, 士=人【宋聖】(이문 0672029·030). 所는 관형절(내가 있는 곳)로 풀었다. 三十三天은 b04.1과 같이 한자 독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2.2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2.3

AG:ea273/0672c06.1 · 교차 검사

爾時,彼天而白我言:『善哉!世尊!快說此語!如來乃說四流。

그때 그 천이 나에게 사뢰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말씀을 시원하게 설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바로 네 가지 흐름을 설하셨습니다.

주 「白我言」은 팔리 2.4 「bhagavantaṃ etadavoca」(말하는 정형구)와 맞으나 이어지는 말(찬탄)은 팔리 2.5(질문)와 다르다. 이 좌표는 말을 여는 정형구만 일부로 대응시킨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世尊(호격)과 如來로 달리 부른다 — 둘 다 확정역(세존·여래)으로 고정. 天이 부처님께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로 통일. 乃는 강조로 읽어 「바로」로 옮겼으나 의미가 실렸는지는 한문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語=義【宋元明】(이문 0672031). 而·哉는 문법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1.2:2.4

AG:ea273/0672c08.1 · 교차 검사

若凡夫之人不聞此四流者,則不獲四樂。

범부인 사람이 이 네 가지 흐름을 듣지 못하면 네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주 「凡夫之人」=범부인 사람(之는 동격). 「若…者」는 「-면」, 則는 흡수. 獲=얻다. 존댓말 통일(천→부처님).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PN:sn1.2

AG:ea273/0672c09.1 · 교차 검사

云何為四?

무엇이 넷입니까?

주 문답 정형(존댓말).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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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謂休息樂、正覺樂、沙門樂、涅槃樂。

이른바 쉼의 즐거움, 바른 깨달음의 즐거움, 사문의 즐거움, 열반의 즐거움입니다.

주 沙門: 3분할 음역 → 한자 독음 「사문」(한국 정착형). 涅槃: 3분할은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한 이름 전체가 소리 옮김으로 보여(음의 慧琳 0463b14는 圓寂으로 풀지만 이는 뜻풀이) 한자 독음 「열반」으로 쓴다 — 저본에 맞는지 신고한다. 음역계통: 전거 沙門 — 팔리 Samaṇa / 범어(근대 편자) Śramaṇa, 涅槃 — 팔리 Nibbāna / 범어(당대) nirvāṇa. 판정하지 않는다. 休息樂: CBETA가 大正의 「伏」을 「休」로 교감한 자리(이문 0672c1101) — 교감본 「休」를 따른다. 正覺=바른 깨달음(음의 慧琳 0434b10은 자형만 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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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凡夫之人不知此四流者,不獲此四樂。』

범부인 사람이 이 네 가지 흐름을 알지 못하면 이 네 가지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주 c09.1과 같은 꼴. 不聞(c09.1)과 不知(여기)가 다르게 적혀 있다 — 한역이 다른 글자를 쓴 것으로 통일하지 않았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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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是語已,我復告曰:『如是,天子!如汝所言,若不覺此四流,則不覺此四樂。』

이 말을 하고 나서, 내가 다시 일러 말하였다: 『그렇다, 천자여! 그대가 말한 대로, 이 네 가지 흐름을 깨닫지 못하면 이 네 가지 즐거움을 깨닫지 못한다.』

주 如是=그렇다(긍정 응답). 如汝所言의 如·所는 「그대가 말한 대로」로 푼다. 若…則은 「-면」. 不覺(깨닫지 못하다)의 覺은 [정형구 행] 覺(vedanā/sambodhi)에 걸리나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골랐다(음의 慧琳 0381b13은 睡窹로 풂 — 이 자리 뜻과 거리가 있어 쓰지 않음). 부처님의 발화라 평서. [미대응] sn1.2의 2.6(Jānāmi…)과는 대답의 꼴만 비슷하고 내용이 달라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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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時與彼天人漸漸共論,所謂論者:施論、戒論、生天之論,欲不淨想,漏為大患,出要為樂。

「나는 그때 그 천인과 점점 함께 논하였다. 이른바 논이란 보시의 논, 계의 논, 하늘에 태어남의 논, 욕망은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번뇌는 큰 근심이라는 것, 벗어나는 요체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주 漏는 [정형구 행] 漏(āsava)에 걸리나 이 자리는 「漏為大患」로 쓰여 낱말 확정역이 없다 — 글자 뜻은 「새어나옴」이나 사전 漏 ① 74회 용례의 흐름에 따라 「번뇌」로 옮기고 신고한다(⑥ 丁福保: 煩惱의 이명). 出要: 3분할 의역 → 뜻으로 「벗어나는 요체」(⑥ 丁福保 「出離生死之要道」). 欲不淨想·漏為大患·出要為樂 세 항을 앞의 세 논(施·戒·生天)에 이어 나열된 항으로 읽었으나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일 수 있다. 漸漸=점점(音義 慧琳 0361a12). 為는 「이다/~라는 것이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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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天人以發歡喜之心;是時,我便廣演說四流之法,及說四樂。

그때 천인이 환희의 마음을 일으켰고; 이때 나는 곧 네 가지 흐름의 법을 널리 펴서 설하였고, 아울러 네 가지 즐거움을 설하였다.

주 「以發歡喜之心」의 以는 宋·元·明본에 已로 적혀(이문, app_id 없음) 「이미 일으켰다」로도 읽힌다 — 저본(以)대로 「일으켰고」로 두고 신고한다. 廣演說=널리 펴서 설하다. 及은 「아울러」. 歡喜=환희(音義 慧琳 0753a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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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彼天專心一意,思惟此法已,諸塵垢盡,得法眼淨。

그때 그 천은 마음을 오롯이 하고 뜻을 하나로 하여, 이 법을 생각하고 나서 모든 티끌과 때가 다하여 법의 눈이 깨끗함을 얻었다.

주 專心一意=마음을 오롯이 하고 뜻을 하나로 함. 思惟는 3분할 의역 → 뜻으로 「생각하고」. 諸塵垢盡·得法眼淨은 아함 정형구다(사전 法眼淨 ① 63회·31경). 專=壽【聖】(이문 0672032). 諸는 「모든」.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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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今亦說此四法、四樂,便得四諦之法。

나 역시 이제 이 네 가지 법과 네 가지 즐거움을 설하니, 곧 사제의 법을 얻는다.

주 「便得四諦之法」은 얻는 주체가 생략되어 있다(듣는 이로 읽힘). 한문만으로 주체를 단정하지 않아 주어를 보태지 않았다. 四法은 b17.1의 「四流法」을 받는 것으로 읽었으나 확정하지 않았다. 四諦는 한국 정착형 「사제」. 亦은 「나 역시」.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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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가 진다. 比丘는 [구속] 비구. 諸는 복수(-들).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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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은 [구속] 부처님. 한자 흔들림: 같은 분을 이 좌표에서는 佛로 적는다(b04.1·c08.1은 世尊). 所說의 所는 관형절(말씀하신 것). 奉行=받들어 행하다. 결구 정형. [미대응] sn1.2에 걸리는 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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