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넷)
주 제목 좌표로 저본은 번호 `(四)`뿐이다. 편자 교감주가 `~S. 22. 97. Nakhāsikha`를 달아 이 경의 팔리 대응으로 sn22.97(다카쿠스 번호, 대조표 밖)을 짚는 반면, 본 후보는 sn22.96 Gomayapiṇḍa(莊春江 번호)여서 두 계열이 갈린다(합의 등급 conflict).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판정하지 않고 제목 단계는 둘 다 미대응으로 둔다. 본문 대조에서 확인되는 사실만 적으면, 손톱 위 흙(b20.1)과 끝의 문답(0618a03.1~)은 sn22.97과, 영화(榮華) 목록(0617b26.1~0617c21.1)과 끝 대목은 sn22.96과 맞는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6:0.3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0.3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聞如是`는 개경 정형구(이 아함 전권 453회, 이 경 1회). 팔리 본문은 `Sāvatthinidānaṃ.`(사위 서두 참조)로 접혀 있어 그 안쪽 서두 정형구를 읽지 못했으므로 미대응(unaligned)으로 둔다 — 없음 확인이 아니다. `如`는 비유·가정 앵커이나 「이와 같이」로 서며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저본에 `我`가 없어 「나는」을 넣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6:96.1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팔리 `Sāvatthinidānaṃ.`은 서두 참조 한 낱말이다. 거기 드러난 Sāvatthī는 `舍衛`와 맞지만 `祇樹給孤獨園`에 해당하는 안쪽 구절은 접혀 읽지 못했으므로 일부(partial)로만 매긴다. `佛`은 [구속] 「부처님」. `舍衛國`은 3분할 정착어 「사위국」(舍衛→사위). 이름의 뜻은 — 음의(慧琳 0367c24)가 舍衛를 범어 室羅伐悉底의 와전으로 보고 義譯 「無物不有國」·「聞者城/聞物國」을 들며 善見律은 「舍衛는 사람 이름」이라 전한다고 적는다.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전거: 舍衛 ← Sāvatthī(팔리) / śravasthi(범어 당대 후보)로 둘 다 서고 갈린다(⚠다른 부(DA)의 대역; 계통 판정은 정도평 몫). `祇樹給孤獨園`: 3분할표는 「보류」(5자 이상)이나 이름의 연쇄로 판별해 정착어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구성은 祇樹(祇陀 태자의 나무; 祇는 음·樹는 뜻의 音義合璧 — 음의 慧琳 0368a03)+給孤獨(의역;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음의 0368a05 「阿那邠邸」)+園(동산). §⑤는 給孤獨을 의역으로 풀라 하나 같은 표가 기수급고독원을 정착형으로 들어 두 규정이 부딪히므로 정착형을 따르고 판단을 정도평에게 남긴다. 전거: 祇樹給孤獨園 ← Jetavana, Anāthapiṇḍika(팔리형만; ⚠다른 부(DA)의 대역). 한자 흔들림: 이 경은 같은 인물을 `佛`(0.3·b23.1·a25.2)과 `世尊`(그 밖의 좌표)으로 번갈아 부른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이 있어 각각 「부처님」·「세존」으로 고정).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1
爾時,有一比丘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그때 한 비구가 세존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한역은 「한 비구가 세존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이고, 팔리는 `Ekamantaṃ nisinno kho so bhikkhu`(한쪽에 앉은 그 비구)로 앉음만 있다. 도착과 예배는 팔리 본문에 없다. `so`(그)는 앞 맥락의 비구를 받는 지시어인데 그 비구가 어디서 소개됐는지는 이 본문만으로 알 수 없어 판정하지 않는다. `有一比丘`의 `有`는 존재 앵커이나 「한 비구가」로 주어화했다. `至世尊所`의 `所`는 관형절 「계신 곳」. `頭面禮足`은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一面`은 「한쪽」(사전 一面 이 경 같은 정형구). `比丘`는 [구속] 「비구」이며 전거 bhikkhu(팔리) / Bhikṣu(범어 근대)로 갈린다 — 음역계통으로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世尊`은 [구속] 「세존」.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
爾時,彼比丘白世尊曰:「頗有此色,恒在不變易耶?
그때 그 비구가 세존께 아뢰어 말하였다: 「혹시 항상 있어 변하고 바뀌지 않는 이런 색이 있습니까?
주 팔리 `atthi nu kho, bhante, kiñci rūpaṃ yaṃ rūpaṃ niccaṃ dhuvaṃ sassataṃ avipariṇāmadhammaṃ 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ati?`는 형용어를 여럿(nicca·dhuva·sassata·avipariṇāmadhamma·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ati) 나열하나, 한역은 `恒在不變易`과 다음 좌표 `久在於世,亦不移動`으로 줄였다. 낱말별 대응은 짚지 않았다(partial). 발화 동사도 팔리는 96.2의 `etadavoca`에 서고 한역은 `白世尊曰`을 이 좌표에 둔다. `頗有`는 음의(慧琳 0368a10 · 0420a15 · 0451b04)가 頗를 「語辭」·「可」로 풀어 의문 부사로 읽고 「혹시」로 옮겼다(사전 頗有 이 경 b09.1·b10.2). `有`는 존재 자체를 묻는 자리라 「있습니까」로 유지했다. `耶`는 의문 어미가 진다. `不變易`은 「변하고 바뀌지 않는」(음의 變易 慧琳 0325c11 — 變=更, 易=改易; 사전 變易 ① 45회). 오온 역어(色·痛·想·行·識)는 아함판 확정 술어에 없다 — 색·행·식은 정착형 「색·행·식」, 痛은 「느낌」, 想은 「생각」으로 적고 술어 선택을 불확실로 남긴다. 비구의 발화는 세존께 존댓말.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3
久在於世,亦不移動?
오래 세상에 있으면서 움직이지도 않습니까?
주 앞 좌표의 팔리 형용어 연쇄의 나머지(`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ati` 등)와 겹쳐 보이나 낱말 대응은 짚지 않았다. `久在於世`의 `於`는 조사가 진다 — 「오래 세상에 있다」. `亦不移動`은 `亦`를 「-도」로 흡수해 「움직이지도 않습니까」로 옮겼다(사전 動 이 경 b10.1). 이문 — 在: 宋·元·明·聖본은 `存`(교감주 在=存【三】*【聖】), 본문은 大正 `在`. 한역은 같은 개념에 `在`(b10.1)와 `存`(b11.1 `久存於世`)을 번갈아 쓴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3
頗有痛、想、行、識,恒在不變易耶?
혹시 느낌, 생각, 행, 식이 항상 있어 변하고 바뀌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주 팔리는 vedanā·saññā·saṅkhārā·viññāṇa를 별개 질문 넷(96.4·96.5·96.6)으로 묻고 saññā 질문은 `…pe…`로 접혀 있다. 한역은 `痛、想、行、識`을 한 문장에 묶었다. 想에 해당하는 팔리 쪽은 접힌 안쪽이라 낱말 대응을 읽지 못했다. `痛`은 오온의 나열 순서(色·痛·想·行·識) 자리로 읽어 「느낌」으로 옮겼으나 痛의 본뜻(아픔)과 다른 자리라 술어 선택을 불확실로 남긴다(사전에 痛 표제는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6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6
久存於世,亦不移動耶?」
오래 세상에 남아 있으면서 움직이지도 않습니까?」
주 앞 좌표(`痛、想、行、識`)의 질문 나머지 절반이다. `存`은 「남아 있다」로 옮겨 앞의 `在`(「있다」)와 구별했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두 한자를 쓴다. `耶`는 의문 어미, `於`는 조사가 진다. 질문 닫는 」.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6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6
世尊告曰:「比丘!無有此色,恒在不變易、久存於世者,亦復無痛、想、行、識,恒在不變易、久存於世者。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항상 있어 변하고 바뀌지 않으며 오래 세상에 남아 있는 이런 색은 없고, 항상 있어 변하고 바뀌지 않으며 오래 세상에 남아 있는 느낌, 생각, 행, 식도 없다.
주 팔리 `Natthi kho, bhikkhu, kiñci rūpaṃ…`(96.7 · 97.7)와 vedanā 이하 압축 답(96.8 · 97.8)에 맞는다. 한역은 팔리의 형용어 연쇄를 `恒在不變易、久存於世` 둘로 줄였다. `無有此色…者`는 「없다」, 者는 「~한 것」으로 명사화했다. `亦復無痛、想、行、識`의 `亦復`는 「-도」로 흡수했다. 팔리 답에는 발화 동사가 따로 없고 한역은 `告曰`을 쓴다(「말씀하셨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 世尊/佛 교체와 在/存 교체는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7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8
若復,比丘!當有此色,恒在不變易、久存於世者,則梵行之人,不可分別。
또, 비구여, 항상 있어 변하고 바뀌지 않으며 오래 세상에 남아 있는 이런 색이 있다면 청정한 행을 하는 사람은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주 구조·배열 — 팔리에서 이 조건문(`Ettakaṃ cepi, bhikkhu, rūpaṃ abhavissa… nayidaṃ brahmacariyavāso paññāyetha sammā dukkhakkhayāya`)은 손톱 위 흙을 보이는 대목(97.9)보다 뒤에 서는데, 한역은 흙 비유보다 앞(b14~b17)에 먼저 두고 b23~b25에서 다시 말한다(자리바뀜). sn22.96의 같은 자리(96.11)는 주어가 `attabhāvapaṭilābho`(자기 존재의 얻음)여서 한역의 `色`과 엇갈린다(divergent). 팔리 `ettaka`(이만큼)도 이 좌표에는 없고 b23.1의 `爾許`에서 나타난다. `不可分別`: 팔리는 `brahmacariyavāso paññāyetha`(범행의 삶이 드러날 것이다)로 주어가 삶인 반면 한역은 `梵行之人`(사람)이 주어여서, 「사람이 분별하지 못한다」인지 「사람이 가려지지 않는다」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 본문은 중립인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로 두었다. `若復…當有…則`: 若은 「-면」, 則은 「-면 ~한다」에 흡수, 當은 어미가 진다. `梵行`은 3분할 의역이므로 뜻으로 「청정한 행」(음의 梵行 慧琳 0698c19 — 梵言梵摩 此云清淨; 사전 梵行 ① 251회). 梵行은 [정형구 행]에 든 낱말이라 확정 술어가 아니므로 불확실로 남긴다. 전거: 梵行 ← Brahmacariya(팔리형만; ⚠다른 부(MA/SA)의 대역). `分別`은 「분별」(사전 分別 ① 164회; 이 경 b14.1·b16.1·b17.1·b23.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6:96.11
若痛、想、行、識,久存於世、不變易者,梵行之人,不可分別。
느낌, 생각, 행, 식이 오래 세상에 남아 있고 변하고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청정한 행을 하는 사람은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주 앞 좌표와 같은 조건문이 vedanā(97.14)·saññā(97.16, `…pe…`로 접힘)·saṅkhārā(97.17)·viññāṇa(97.20)마다 되풀이되는 팔리 sn22.97의 구조와 맞는다. 다만 팔리에서는 흙 비유 뒤, 한역에서는 앞에 선다(자리바뀜). saññā 쪽은 접힌 안쪽이라 낱말 대응을 읽지 못했다. sn22.96에는 vedanā 이하를 따로 말하는 단락이 없다 — 96.12 뒤에 바로 `Bhūtapubbāhaṃ`(96.13)으로 넘어가므로 없음(absent)을 확인했다. 이문 — 若: 元·明본은 `苦`(교감주 若=苦【元】【明】), 於世는 宋·元·明본에 없다(〔於世〕-【三】).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若…者`는 「-라면」, `久存於世、不變易者`는 「오래 세상에 남아 있고 변하고 바뀌지 않는 것」.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14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17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2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12
是故,比丘!以色不可分別,不久存於世故、是故梵行之人乃能分別盡於苦本,亦無痛、想、行、識,不久存於世,是故梵行乃可分別盡於苦本。」
그러므로, 비구여, 색은 분별할 수 없고 오래 세상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청정한 행을 하는 사람은 비로소 괴로움의 근본을 다함을 분별할 수 있다. 또한 느낌, 생각, 행, 식도 오래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그러므로 청정한 행은 비로소 괴로움의 근본을 다함을 분별할 수 있다.」
주 팔리 `Yasmā ca kho, bhikkhu, ettakampi rūpaṃ natthi… tasmā brahmacariyavāso paññāyati sammā dukkhakkhayāya`(97.12·97.15·97.18·97.21)의 결론 절과 맞으나 한역에서는 흙 비유보다 앞에 선다(자리바뀜). sn22.96의 96.12는 `attabhāvapaṭilābho`가 주어여서 엇갈린다(divergent). 뜻 판별 — `以色不可分別`은 앞 단락(색이 오래 있으면 분별할 수 없다)과 이어 보면 「색이 오래 남아 있다면」의 뜻이 되어야 맞지만 저본 글자 그대로는 「색은 분별할 수 없다」이므로, 본문은 글자대로 옮기고 불확실로 남긴다. `乃能分別`·`乃可分別`의 乃는 「비로소」, 能·可는 「-ㄹ 수 있다」로 흡수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은 같은 개념에 `苦本`(b17.1·b25.1)과 `苦際`(b23.1)를 쓴다(팔리 dukkhakkhaya 한 낱말; 사전 苦本 ① 6회 · 苦際 ① 45회). 이문 — 故: 宋·元·明본에 없고, 存: 聖본은 `在`(교감주 存=在【聖】).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문단 닫는 」.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1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15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18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97:97.2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6:96.12
爾時,世尊取少許土,著爪上,語彼比丘曰:「云何,比丘!見此爪上土不?」
그때 세존께서 흙을 조금 집어 손톱 위에 얹고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비구여, 이 손톱 위의 흙이 보이는가?」
주 팔리 sn22.97 `Atha kho bhagavā parittaṃ nakhasikhāyaṃ paṃsuṃ āropetvā taṃ bhikkhuṃ etadavoca`(세존께서 손톱 끝에 약간의 흙을 얹고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와 맞는다. sn22.96의 같은 자리(96.9)는 `gomayapiṇḍaṃ pāṇinā gahetvā`(손으로 소똥 덩이를 집어)여서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든다(divergent). 한역의 질문 `云何,比丘!見此爪上土不`(이 손톱 위의 흙이 보이는가)는 팔리 97.9~97.10에 없다(문장 유무). `取少許土,著爪上`: 少許는 「조금」, 著은 「얹다」(사전 取·著 ① 이 경 b20.1). `云何`는 의문사 — 어미가 진다. `見…不`은 「보이는가」. `爪`는 「손톱」(이문: 聖본은 글자 결락 □). `世尊`은 [구속] 「세존」.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9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6:96.9
比丘對曰:「唯然,見已,世尊!」
비구가 대답하였다: 「예,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주 질문과 이 대답은 한역에만 있다. 팔리 sn22.97은 97.9(흙을 얹음) 바로 뒤 97.10에서 세존이 곧 말을 잇고, sn22.96도 96.9 뒤 96.10으로 이어져 이 사이에 대답이 서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唯然`은 음의(慧琳 0316a03 · 0320c25 · 0368a07)가 「應辭(대답하는 말)」로 풀어 「예」로 옮겼다(사전 唯然 ① 발화 첫머리 49/53). `見已`의 `已`는 「-었습니다」로 흡수한다. 이문 — 已: 宋·元·明본에 없다(〔已〕-【三】).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1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10
佛告比丘:「設當有爾許色恒在於世者,則梵行之人不可分別得盡苦際。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이만한 색이 세상에 항상 있다면, 청정한 행을 하는 사람은 괴로움의 끝을 다함을 분별하여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주 팔리 `Ettakaṃ cepi, bhikkhu, rūpaṃ abhavissa niccaṃ dhuvaṃ sassataṃ avipariṇāmadhammaṃ, nayidaṃ brahmacariyavāso paññāyetha sammā dukkhakkhayāya`와 맞는다. `爾許色`은 `ettakaṃ rūpaṃ`(이만한 색)에 해당한다. 한역은 팔리의 `ettakampi`에 있는 「~라도」의 뜻이 없다(그래서 「이만한 색이 항상 있다면」으로 옮김). sn22.96의 96.11은 주어가 `attabhāvapaṭilābho`여서 엇갈린다. `不可分別得盡苦際`는 不可의 범위가 둘이다 — (가) 「분별하여 괴로움의 끝을 다함을 얻을 수 없다」, (나) 「분별할 수 없고, 괴로움의 끝을 다함을 얻는다」. 앞뒤 문맥(조건문)이 (가)를 요구해 (가)로 옮기되 구두를 불확실로 남긴다. `設當有`: 設은 가정(「-면」), 當은 어미로 흡수. `苦際`는 「괴로움의 끝」(사전 苦際 ① 45회). 한자 흔들림: 같은 개념에 `苦本`(b17.1·b25.1)과 `苦際`를 번갈아 쓰고, 이 좌표는 `佛`로 세존을 부른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6:96.11
以是,比丘!以無爾許色在,便得行梵行,得盡苦本。
이 때문에, 비구여, 이만한 색이 있지 않으므로 곧 청정한 행을 행할 수 있고, 괴로움의 근본을 다함을 얻는다.
주 팔리 `Yasmā ca kho, bhikkhu, ettakampi rūpaṃ natthi… tasmā brahmacariyavāso paññāyati sammā dukkhakkhayāya`와 맞는다. 팔리는 「범행의 삶이 드러난다(paññāyati)」이고 한역은 「청정한 행을 행할 수 있고(便得行梵行)…얻는다」여서 동사가 다르다. 96.12는 주어가 `attabhāvapaṭilābho`여서 엇갈린다. `以是`는 「이 때문에」, `以無爾許色在`의 以는 「-므로」로 흡수, `便得`의 得은 「-ㄹ 수 있다」. `苦本`은 「괴로움의 근본」(사전 苦本 ① 6회). 한자 흔들림은 b2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1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96:96.12
所以然者,比丘當知,我昔曾為大王!領四天下,以法治化,統領人民,七寶具足。
그러한 까닭은, 비구여, 알라. 내가 예전에 일찍이 대왕이었다! 사천하를 거느리고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며 사람들을 통솔해 거느리니, 일곱 보배가 갖추어져 있었다.
주 팔리 sn22.96 `Bhūtapubbāhaṃ, bhikkhu, rājā ahosiṃ khattiyo muddhāvasitto`(나는 예전에 관정을 받은 찰제리 왕이었다)와 「예전에 왕이었다」는 점에서 맞는다. 한역의 `領四天下,以法治化,統領人民,七寶具足`(사천하를 거느림·법으로 다스림·칠보)은 96.13에 없다. sn22.97에는 이 대목 전체가 없다 — 97.12(결론) 뒤 97.13이 vedanā 절로 곧바로 이어져 이 자리에 아무것도 서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所以然者`는 이유 앵커 `所以`=「까닭」으로 「그러한 까닭은」. `當知`의 `當`은 어미로 흡수(「알라」). `為`는 계사 「이었다」(피동 아님). `大王`은 「대왕」(사전 大王 ① 299회). `領四天下`는 「사천하를 거느리고」(사전 四天下). `以法治化`의 以는 「-로」, `七寶具足`은 「일곱 보배가 갖추어져 있었다」. 붓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이므로 평서이며, 원문 `!`는 저본 그대로다. 팔리의 `khattiyo muddhāvasitto`에 해당하는 말이 한역에 따로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12
所謂七寶者,輪寶、象寶、馬寶、珠寶、玉女寶、居士寶、典兵寶。
이른바 일곱 보배란 바퀴 보배, 코끼리 보배, 말 보배, 구슬 보배, 옥 같은 여인 보배, 거사 보배, 병사를 맡은 보배이다.
주 칠보를 한 목록으로 세우는 구절이 팔리 sn22.96에는 없다. 팔리 본문에서 `ratana`(보배)라는 낱말이 붙은 것은 `maṇiratana`(96.21)와 `pariṇāyakaratana`(96.23) 둘이며, 구슬(珠)과 병사를 맡은 이(典兵)는 이 둘과 맞을 가능성이 있다 — 확정은 아니고 짚어 두는 데 그친다. 코끼리(96.18)·말(96.19)·여인(96.22)은 보배 이름이 아닌 일반 목록 항목으로 서 있고, 바퀴 보배와 거사 보배는 짚을 자리가 없다. `居士寶`의 `居士`는 [구속] 확정역 「거사」를 그대로 쓴다(거사 보배). 다만 이 자리는 3분할표가 말하는 四姓의 vessa 번안이 아니라 칠보의 한 항목이어서 [구속]이 이 좌표의 저본과 맞지 않을 수 있으나(확정역_오적중), 번안 신고는 달지 않고 확정 문자열을 지켜 정도평 확인에 남긴다. `所謂七寶者`는 「이른바 일곱 보배란」(음의 七寶 慧琳 0464a21 — 一金二銀三瑠璃四頗梨五車渠六赤真珠七瑪瑙; 이 경의 일곱은 이 칠보와 다른 轉輪王의 칠보 목록이다). `輪寶·象寶`는 사전 각 이 경 b28.1. `玉女寶`는 「옥 같은 여인 보배」, `典兵寶`는 「병사를 맡은 보배」로 뜻을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3
「比丘當知,我於爾時,作此轉輪聖王,領四天下,有八萬四千神象,象名菩呼。
「비구여, 알라. 내가 그때 이 전륜성왕이 되어 사천하를 거느렸는데, 팔만사천의 신령한 코끼리가 있었고 코끼리의 이름은 보호였다.
주 팔리 `caturāsītināgasahassāni ahesuṃ… uposathanāgarājappamukhāni`(팔만사천 코끼리가 있었고 우포사타 코끼리왕이 으뜸이었다)의 수와 항목이 맞는다. 코끼리 이름이 한역 `菩呼`와 팔리 `Uposatha`로 서로 다르다(개별 어휘). 팔리 96.13은 「왕이었다」일 뿐 `轉輪聖王`(전륜성왕)이라는 낱말이 없다. `菩呼`는 뜻이 서지 않는 두 글자라 소리로 보아 한자 독음 「보호」로 적는다 — 우리말 「보호」(지킴)와 혼동되지 않게 비고에 밝히며, 음역인지 판별이 서지 않아 불확실로 남긴다(전거에 없다). `轉輪聖王`은 정착어 「전륜성왕」(사전 轉輪聖王). `神象`의 神은 「신령한」(사전 神 ① 이 경 b29.1). `作此轉輪聖王`의 `此`는 「이」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3
復有八萬四千羽寶之車,或用師子皮覆,或用狼狗皮覆者,盡懸幢高蓋。
또 팔만사천의 깃털 보배 수레가 있었는데, 어떤 것은 사자 가죽으로 덮고 어떤 것은 늑대개 가죽으로 덮었으며, 모두 깃발과 높은 덮개를 달았다.
주 팔리 `caturāsītirathasahassāni ahesuṃ sovaṇṇālaṅkārāni sovaṇṇaddhajāni…`(팔만사천 수레, 금 장식, 금 깃발)의 수레·수·깃발이 맞는다. 가죽 덮개는 96.20에 없고, 96.17의 침상 쪽에 `kadalimigapavarapaccattharaṇāni`(가죽 깔개)가 있으나 같은 사물인지 짚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 `師子`는 세 갈래로 나눈 음역 가운데 소리를 옮긴 것이므로 한자 독음 「사자」; 전거 師子 ← Sīha(팔리) / sīgha(범어 당대 후보)로 갈린다(⚠다른 부(DA)의 대역). `狼狗`는 「늑대개」(이문: 宋·元·明본은 `豹`). `幢高蓋`: 幢은 「깃발」, 蓋는 「덮개」 — [정형구 행]에서 蓋는 팔리 nīvaraṇa(장애)에 걸리지만 여기는 장식 사물이므로 정형구 뜻을 쓰지 않았다. `盡懸`은 「모두 달았다」. 한자 흔들림은 c17.1(`寶羽之車`)과 이어진다. `羽寶之車`는 「깃털 보배 수레」 — 음의(慧琳 0787b07)가 羽葆를 「五色羽를 모은 것」으로 풀며 이문(元·明)도 `羽葆`이다. 사전 羽寶 ① 16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0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6:96.17
復有八萬四千高廣之臺,猶如天帝所居之處。
또 팔만사천의 높고 넓은 누대가 있었는데, 마치 하늘의 임금이 사는 곳과 같았다.
주 팔리 `caturāsītipāsādasahassāni ahesuṃ dhammapāsādappamukhāni`(팔만사천 궁전, 법 궁전이 으뜸)의 수와 건물이 맞는다고 본다(臺≈pāsāda는 확정이 아니다). `猶如天帝所居之處`(천제가 사는 곳 같다)는 팔리에 없다(문장 유무). `猶如`는 「마치 ~와 같다」, `所居之處`의 `所`는 관형절 「사는 곳」. `天帝`는 「하늘의 임금」(사전 天帝 ① 31회). `高廣之臺`는 「높고 넓은 누대」.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5
復有八萬四千講堂,如法講堂之比。
또 팔만사천의 강당이 있었는데, 법강당에 견줄 만하였다.
주 팔리 `caturāsītikūṭāgārasahassāni ahesuṃ mahābyūhakūṭāgārappamukhāni`(팔만사천 누각, 대진 누각이 으뜸)와 수가 맞으나 講堂≈kūṭāgāra는 확정이 아니다. `如法講堂之比`는 끊기가 둘이다 — (가) `如法講堂`을 「법강당과 같은」으로 읽는 것, (나) `如法` 「법에 맞는」+`講堂`. 사전 如法 ① 12회에 이 경이 든다. 본문은 (가)로 옮겼고 팔리 96.15의 `dhammapāsāda`(법 궁전)와의 관계는 짚지 않았다. `之比`는 「견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6
復有八萬四千玉女之眾,像如天女。
또 팔만사천의 옥 같은 여인의 무리가 있었는데, 모습이 하늘 여인과 같았다.
주 팔리 `caturāsītiitthisahassāni ahesuṃ subhaddādevippamukhāni`(팔만사천 여인, 수바다 왕비가 으뜸)와 수·사람이 맞는다. `像如天女`(모습이 하늘 여인 같다)는 팔리에 없다. `玉女之眾`은 「옥 같은 여인의 무리」, `天女`는 「하늘 여인」(전거 天女 ← devakanya, 범어 당대 후보만; 사전 天女 ① 34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2
復有八萬四千高廣之座,皆用金銀七寶廁間。
또 팔만사천의 높고 넓은 자리가 있었는데, 모두 금, 은, 일곱 보배를 사이사이에 끼워 썼다.
주 팔리 `caturāsītipallaṅkasahassāni ahesuṃ dantamayāni sāramayāni sovaṇṇamayāni…`(팔만사천 침상, 상아·심재·금으로 만든)와 수·사물이 맞는다. 재료 목록은 한역이 「금·은·칠보를 끼워 넣음」, 팔리가 「상아·심재·금」이어서 갈린다. `廁間`은 「사이사이에 끼워 넣다」. `皆用`은 「모두 ~로 썼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17
復有八萬四千衣被服飾,皆是文繡柔軟。
또 팔만사천의 옷, 이불, 의복, 장식이 있었는데, 모두 무늬를 수놓아 부드러웠다.
주 팔리 `caturāsītivatthakoṭisahassāni ahesuṃ khomasukhumāni koseyyasukhumāni…`(팔만사천 코티의 옷감, 아마·비단·모직·면의 고운 것)와 수·사물이 맞는다. `柔軟`은 [참고] 확정역 「곱게 자람」(sukhumāla)이 걸리지만 여기는 옷감의 부드러움이어서 뜻이 서지 않아 쓰지 않고 「부드러웠다」로 옮겼다. 팔리형 sukhuma(고움)는 오히려 옷감 쪽에 맞는다. 3분할표의 柔軟 의역(Sukhumāla)과도 갈리므로 확정역_오적중으로 신고한다. `衣被服飾`은 「옷, 이불, 의복, 장식」(음의 被服 慧琳 0360a08 — 被=被帶, 服=施用; 사전 被服 ① 2회). 이문 — 衣被服飾: 宋·元·明본은 `衣服被飾`, 柔軟: 宋본 `綩軟`·元·明본 `綩緛`.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文繡`는 「무늬를 수놓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5
復有八萬四千飲食之具,味若干種。
또 팔만사천의 음식 도구가 있었는데, 맛은 여러 가지였다.
주 팔리 `caturāsītithālipākasahassāni ahesuṃ`(팔만사천 솥의 익힌 밥)과 수가 맞는다. 한역은 `飲食之具`(음식의 도구)로 밥솥이 아니라 음식 차림 전반을 가리키는 듯 읽혀 갈린다. `味若干種`의 `若干`은 「여러」이며 조건 `若`이 아니다. 팔리 96.27(아침저녁으로 밥을 올림)에 맞는 구절은 한역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26
「比丘當知,我爾時乘一大象,色極白好,口有六牙,金銀交具,身能飛行,亦能隱形,或大、或小,象名菩呼。
「비구여, 알라. 내가 그때 큰 코끼리 한 마리를 탔는데, 빛깔은 매우 희고 좋았으며, 입에는 여섯 엄니가 있었고, 금과 은을 번갈아 갖추었으며, 몸은 날아다닐 수 있고 모습을 숨길 수도 있고,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었다. 코끼리의 이름은 보호였다.
주 팔리 `ekoyeva so nāgo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abhiruhāmi – uposatho nāgarājā`(그 팔만사천 중 내가 타는 것은 하나뿐, 우포사타 코끼리왕)와 「한 마리를 탄다」는 점이 맞는다. 색·엄니·비행·은신·크기 변화는 팔리 본문에 없고(문장 유무), 이름은 `菩呼`와 `Uposatha`로 갈린다. `色極白好`의 `色`은 오온의 색이 아닌 「빛깔」. `口有六牙`는 「입에는 여섯 엄니가 있었다」(牙는 코끼리의 엄니로 읽음). `金銀交具`는 「금과 은을 번갈아 갖추었다」. `身能飛行`·`亦能隱形`의 能은 「-ㄹ 수 있다」, 亦는 「-도」로 흡수했다(사전 飛行 ① 10회). `或大、或小`는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었다」. 이문 — 交: 宋·元·明본 `校`, 聖본 `挍`.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6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7
我爾時,乘一神馬,毛尾朱色,行不身動,金銀交飾,身能飛行,亦能隱形,或大、或小,馬名毛王。
내가 그때 신령한 말 한 마리를 탔는데, 털과 꼬리는 붉은빛이었고, 가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으며, 금과 은을 번갈아 장식하였고, 몸은 날아다닐 수 있고 모습을 숨길 수도 있고,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었다. 말의 이름은 털의 왕이었다.
주 팔리 `ekoyeva so asso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abhiruhāmi – valāhako assarājā`(그 팔만사천 말 중 내가 타는 것은 하나뿐, 발라하카 말의 왕)와 「한 마리를 탄다」는 점이 맞는다. 색·움직임·비행 등 묘사는 팔리에 없고 이름은 `毛王`과 `Valāhaka`로 갈린다. `毛王`은 뜻이 서는 두 글자라 3분할 의역에 따라 「털의 왕」으로 옮겼으나 이름인지 일반 칭호인지 판별이 서지 않아 불확실로 남긴다. `毛尾朱色`은 「털과 꼬리는 붉은빛」. `行不身動`은 「가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으며」로 읽었다(사전 動 이 경 c12.1). 이문 — 朱: 宋·元·明·聖본은 `珠`, 交: 元·明본 `校`·聖본 `挍`.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9
我於爾時,八萬四千高廣之臺,住一臺中,臺名須尼摩,純金所作。
내가 그때 팔만사천의 높고 넓은 누대 가운데 한 누대에 머물렀는데, 누대의 이름은 수니마였고 순금으로 지은 것이었다.
주 팔리 `ekoyeva so pāsādo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ajjhāvasāmi – dhammo pāsādo`(그 팔만사천 궁전 중 내가 머무는 것은 하나뿐, 법 궁전)와 「한 곳에 머문다」는 점이 맞는다. 이름이 `須尼摩`와 `dhammo`(법)로 갈리고, `純金所作`(순금으로 지음)은 팔리에 없다. `須尼摩`는 세 글자 모두 뜻이 서지 않고 소리로 읽히는 연쇄라 음역으로 판별해 한자 독음 「수니마」로 적었다 — 근거는 이 한계뿐이며 전거에 없으므로 불확실로 남긴다. `於`는 조사가 진다. `所作`의 所는 관형절 「지은 것」(사전 所作 이 경 c14.1). 이문 — 時: 聖본은 `時有`.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0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1
爾時,我在一講堂中止宿,講堂名法說,純金所造。
그때 나는 한 강당 안에서 묵었는데, 강당의 이름은 법을 설함이었고 순금으로 지은 것이었다.
주 팔리 `ekaññeva taṃ kūṭāgāraṃ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ajjhāvasāmi – mahābyūhaṃ kūṭāgāraṃ`(그 팔만사천 누각 중 내가 머무는 것은 하나뿐, 대진 누각)와 「한 곳에 머문다」는 점이 맞는다. 이름은 `法說`과 `mahābyūha`로 갈린다. 한역 `法說`의 `法`은 팔리 궁전 이름 `dhammo`(96.31)와 글자만 겹쳐 보이나 한역은 講堂, 팔리는 pāsāda 쪽에 두므로 자리가 다르다 — 짚지 않는다. `法說`은 뜻이 서는 두 글자라 3분할 의역에 따라 「법을 설함」으로 옮기되 이름인지 판별이 서지 않아 불확실로 남긴다. `止宿`은 「묵다」(사전 止 ① 이 경 c15.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3
我於爾時,乘一寶羽之車,車名最勝,純金所造。
내가 그때 보배 깃털 수레 한 대를 탔는데, 수레의 이름은 가장 뛰어남이었고 순금으로 지은 것이었다.
주 팔리 `ekoyeva so ratho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abhiruhāmi – vejayanto ratho`(그 팔만사천 수레 중 내가 타는 것은 하나뿐, 승리의 수레)와 「한 대를 탄다」는 점이 맞는다. 이름은 `最勝`과 `vejayanta`로 달라 보이나 뜻(뛰어남·승리)이 가깝다 — 판정하지 않는다. `寶羽之車`는 앞의 `羽寶之車`(c02.1)와 글자 순서가 뒤집힌다 — 한역이 같은 사물에 다른 어순을 쓴다(한자 흔들림). 이문 — 寶羽: 宋본 `羽寶`, 元·明본 `羽葆`. `最勝`은 「가장 뛰어남」(음의 最勝 慧琳 0499b17 — 最=甚·總計). 이름인지 판별이 서지 않아 불확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0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1
我於爾時,將一玉女,左右使令亦如姊妹。
내가 그때 옥 같은 여인 한 사람을 데리고 있었는데, 좌우에서 시중드는 것이 자매와도 같았다.
주 팔리 `ekāyeva sā itthī hoti yā maṃ tena samayena paccupaṭṭhāti – khattiyānī vā velāmikā vā`(그 팔만사천 여인 중 나를 모시는 이는 한 사람, 찰제리 여인이거나 벨라미카)와 「한 사람이 모신다」는 점이 맞는다. 신분(찰제리·벨라미카)은 한역에 없고 한역의 `亦如姊妹`(자매 같다)는 팔리에 없다. `將一玉女`의 將은 「데리고 있다」. `使令`은 「시중들게 하다」의 복합(令·使 사역 앵커)이며 `左右使令`은 「좌우에서 시중드는 것」으로 풀었다. `亦如`는 「~와도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3
我於爾時,於八萬四千高廣之座,在一座上,金銀、瓔珞不可稱計。
내가 그때 팔만사천의 높고 넓은 자리 가운데 한 자리 위에 있었는데, 금과 은, 영락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주 팔리 `ekoyeva so pallaṅko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paribhuñjāmi – dantamayo vā sāramayo vā sovaṇṇamayo vā rūpiyamayo vā`(그 팔만사천 침상 중 내가 쓰는 것은 하나뿐, 상아·심재·금·은 중 하나)와 「한 자리를 쓴다」는 점이 맞는다. `金銀、瓔珞不可稱計`(금은과 영락이 헤아릴 수 없다)는 팔리에 없다. `瓔珞`은 정착어 「영락」(구슬을 꿴 목걸이 장식; 음의 慧琳 0814b17 — 頸飾). 전거 瓔珞 ← haraṃ(범어 당대 후보만). `不可稱計`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사전 計 ① 250회). `於`는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35
我於爾時,著一妙服,像如天衣。
내가 그때 빼어난 옷 한 벌을 입었는데, 모양이 하늘의 옷과 같았다.
주 팔리 `ekaññeva taṃ vatthayugaṃ hoti yamahaṃ tena samayena paridahāmi – khomasukhumaṃ vā…`(그 옷감 중 내가 입는 것은 한 벌, 아마·비단·모직·면의 고운 것 중 하나)와 「한 벌을 입는다」는 점이 맞는다. `像如天衣`(하늘의 옷 같다)는 팔리에 없다. `妙服`은 「빼어난 옷」(사전 妙 ① 153회; 天衣 ① 4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5
所食之食,味如甘露。
먹는 음식은 맛이 감로와 같았다.
주 팔리 `ekoyeva so thālipāko hoti yato nāḷikodanaparamaṃ bhuñjāmi tadupiyañca sūpeyyaṃ`(그 중 하나의 솥밥에서 한 날리까지의 밥과 거기 맞는 국을 먹는다)와 「음식을 먹는다」는 점이 맞는다. `味如甘露`(맛이 감로 같다)는 팔리에 없다. `所食之食`의 所는 관형절 「먹는 음식」. `甘露`는 정착어 「감로」(사전 甘露 ① 69회). 한역은 양(한 날리)을 적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6
「當於爾時,我作轉輪聖王,時八萬四千神象朝朝來至,門外多有傷害,不可稱計。
「그때 내가 전륜성왕이 되었을 때, 팔만사천의 신령한 코끼리가 아침마다 와서 이르렀는데, 문 밖에서 해를 입는 일이 많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주 코끼리가 아침마다 몰려와 문 밖에서 해를 입는다는 이야기는 팔리 sn22.96에 없다 — 96.46(밥 한 날리)에서 96.47(그 모든 행은 지나갔다)로 곧바로 넘어가므로 그 사이에 이 대목이 서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sn22.97도 97.21(viññāṇa 결론) 뒤 97.22(`Taṃ kiṃ maññasi`)로 곧바로 이어진다. 한역 이 단락(c21.2~0617c29.2)은 팔리 두 경 모두에 없다. `門外多有傷害`는 해를 입는 주체(문 밖의 사람인지 코끼리 자신인지)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문 밖에서 해를 입는 일이 많아」로 중립에 두었다. `當於爾時`의 `當`은 어미로 흡수. `朝朝`는 「아침마다」, `不可稱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바깥 따옴표 「는 저본 그대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我於爾時,便作是念:『此八萬四千神象朝朝來至,門外多有傷害,不可稱計。
내가 그때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팔만사천의 신령한 코끼리가 아침마다 와서 이르는데, 문 밖에서 해를 입는 일이 많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便作是念`은 「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사전 念 ① 이 경 c23.1~). 안쪽 따옴표 『는 저본 그대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我今意中欲使分為二分,四萬二千朝朝來賀。』
나는 지금 마음속으로 나누어 두 몫이 되게 하고자 하니, 사만이천은 아침마다 와서 하례할 것이다.』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欲使分為二分`의 `使`는 사역 앵커대로 「-게 하다」, `為`는 「되다」(사전 分 ① 이 경 c25.1). `意中`은 「마음속」, `來賀`는 「와서 하례하다」. 안쪽 따옴표 』는 저본 그대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爾時,比丘!我作是念:『昔作何福?
그때, 비구여,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예전에 어떤 복을 지었던가?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我作是念`은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문 — 聖본은 `比丘我爾時`(교감주 爾時比丘我=比丘我爾時【聖】) — 어순만 다르고 뜻은 같아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復作何德?
또 어떤 덕을 지었던가?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復`는 「또」. 이문 — 聖본은 `復作何` 세 글자가 없다(〔復作何〕-【聖】).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今得此威力,乃至於是。』
지금 이 위력을 얻어, 이에까지 이르렀다.』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乃至`는 앵커가 생략 표지로 표시한 자리이나 `乃至於是`는 열거 사이를 접은 것이 아니라 「이에까지 이르다」라는 관용으로 읽히고 접힌 내용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본문은 글자대로 옮겨 펴지 않았고, 생략 표지 여부는 정도평 판단에 남긴다(사전 乃至 ① 106회). `得此威力`의 得은 「얻다」(획득).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復作是念:『由三事因緣故,使我獲此福祐。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세 가지 일의 인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복과 도움을 얻게 하였다.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由三事因緣故,使我獲此福祐`: 使는 사역 「-게 하다」, `福祐`는 「복과 도움」(음의 祐=助, 慧琳 0336b21 · 0497a18; 사전 福祐 ① 20회). `復作是念`의 復는 「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云何為三?
무엇이 셋인가?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云何為三`: 云何는 의문사로 어미 의문형이 지고, `為`는 계사 「~인가」(피동 아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所謂惠施、慈仁、自守。』
이른바 은혜로이 베풂, 자애롭고 어짊, 자신을 지킴이다.』
주 앞 좌표와 같은 까닭으로 팔리 두 경에 없다. `惠施`는 「은혜로이 베풂」(음의 惠=賜, 慧琳 0431c19 · 0440b11), `慈仁`은 「자애롭고 어짊」(사전 慈 ① 64회). `自守`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이므로 부사 「스스로」를 세우지 않고 「자신을」로 풀었다(사전 守 ① 62회). `所謂`는 「이른바」. 안쪽 따옴표 』는 저본 그대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1
比丘當觀,爾時諸行永滅無餘,爾時遊於欲意無有厭足。
비구여, 살펴보라. 그때 모든 행은 영원히 사라져 남음이 없었고, 그때 욕망하는 마음에 노닐며 만족함이 없었다.
주 팔리 `Iti kho, bhikkhu, sabbe te saṅkhār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비구여, 그 모든 행은 지나갔고 사라졌고 변했다)의 `諸行永滅無餘`와 「모든 행이 사라졌다」는 점이 맞는다. `遊於欲意無有厭足`(욕망하는 마음에 노닐며 만족함이 없었다)은 팔리에 없다. 팔리 sn22.97에는 이 자리가 없다. `當觀`의 當은 어미로 흡수(「살펴보라」, 사전 觀 ① 517회). `諸行`은 「모든 행」(사전 諸行 ① 28회; 行은 오온의 행으로 읽음). `永滅無餘`는 「영원히 사라져 남음이 없다」(사전 滅 · 無餘). 欲意는 「욕망하는 마음」으로 풀었는데 欲意를 한 낱말로 볼지 欲과 意로 끊을지는 한문만으로 정하기 어렵다. `厭足`은 「만족」(음의 厭足 慧琳 0391c22 — 厭=伊閻反·或作猒; 사전 厭足 ① 18회).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47
所謂厭足,於賢聖戒律乃為厭足。
이른바 만족이란 현인과 성인의 계율에서야 비로소 만족이 된다.
주 팔리 sn22.96 끝에 `alameva sabbasaṅkhāresu nibbindituṃ`(모든 행에 대해 싫어함이 충분하다)이 있어 `alaṃ`(충분하다)과 `厭足`이 표면에서 겹쳐 보이나 같은 말인지 짚지 못해 미대응으로 둔다. 「현인과 성인의 계율」은 팔리 어디에도 짚을 자리가 없다. `賢聖`은 「현인과 성인」(사전 賢聖 ① 175회), `戒律`은 「계율」. `乃為`의 乃는 「비로소」, 爲는 「~이 되다」. `於`는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6:96.51
云何,比丘!此色有常耶?
어떠한가, 비구여. 이 색은 항상함이 있는가?
주 팔리 sn22.97 `Taṃ kiṃ maññasi, bhikkhu, rūp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비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색은 항상한가 항상하지 않은가)와 맞는다. 팔리는 한 질문에 두 갈래를 묻고 한역은 `有常耶`(이 좌표)와 `無常耶`(a03.2)로 쪼갰다. sn22.96에는 이 문답이 없다 — 끝(96.47~96.51)이 곧바로 `Evaṃ aniccā kho, bhikkhu, saṅkhārā`로 이어지는 선언이어서 문답 자체가 서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위 96.47에 짚어 둠). `云何`는 의문사로 어미가 진다. `有常`은 「항상함이 있다」, `耶`는 의문 어미. 無常을 「무상」이라는 정착어 대신 「항상함이 없다」로 풀어 有常과 짝을 맞췄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2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47
無常耶?」
항상함이 없는가?」
주 앞 좌표와 같은 팔리 질문의 둘째 갈래(`aniccaṃ vā`)이다. `無常`은 「항상함이 없다」, `耶`는 의문 어미. 질문 닫는 」.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2
比丘對曰:「無常也。
비구가 대답하였다: 「항상함이 없습니다.
주 팔리 `Aniccaṃ, bhante`(항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의 대답 앞부분과 같다. `也`는 판단종결 평서 어미로 따로 옮기지 않았다. 비구의 발화는 존댓말. sn22.96에는 이 문답이 없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97:97.23
世尊!」
세존이시여!」
주 호격. 팔리 `bhante`와 같다. `世尊`은 [구속] 「세존」. 한역은 호격을 별도 좌표로 떼어 두고 팔리는 같은 문장 안에 둔다.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97:97.23
「若復無常,為變易法,汝可得生此心,此是我許,我是彼所乎?」
「만약 또 항상함이 없어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너는 이 마음을 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것의 것이라고?」
주 팔리 sn22.97 97.25는 `tasmātiha…pe… evaṃ passaṃ…pe…`처럼 `…pe…`로 접혀 있어, 이 좌표의 「항상하지 않으면 변하는 법인데 `이것은 나의 것…`이라 할 수 있는가」에 해당하는 안쪽을 읽지 못했다. 그러므로 없음(absent)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이다. `若復…為變易法`: 若은 「-면」, 復는 「또」, 為는 계사. `汝可得生此心`의 可得은 「-ㄹ 수 있다」, 汝는 붓다가 비구에게 하는 말이므로 평서의 「너」. `此是我許,我是彼所`: `我許`는 「나의 것」, `彼所`는 「그것의 것」으로 옮겼다. 전거 我許 ← mamera(범어 당대 후보만; 팔리형 없음) — 판정하지 않는다. 사전 我所 ① 100회. `乎`는 의문 어미.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對曰:「不也。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 팔리 97.25는 `…pe…`로 접힌 안쪽이므로 이 대답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지 못했다(미대응). `不也`는 「그렇지 않습니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痛、想、行、識是常也?
「느낌, 생각, 행, 식은 항상한가?
주 팔리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niccaṃ vā aniccaṃ vā`(느낌… 인식… 행… 식은 항상한가 항상하지 않은가)와 맞는다. 팔리는 한 문장에 두 갈래를 묻고 한역은 둘로 쪼갰다. `是常也`의 `是`는 계사, `也`는 판단종결로 이 좌표에서는 의문 「~한가」로 옮겼다. 이문 — 也: 宋·元·明본은 `耶`(교감주 也=耶【三】).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오온 역어는 b09.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4
是無常耶?」
이것들은 항상함이 없는가?」
주 팔리 97.24의 둘째 갈래(`aniccaṃ vā`)이다. `是無常耶`의 `是`는 「이것들은」으로 풀었다. 이문 — 是: 宋·元·明본에 없다(〔是〕-【三】).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질문 닫는 」.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4
比丘對曰:「無常也。
비구가 대답하였다: 「항상함이 없습니다.
주 팔리 97.25 앞머리 `Aniccaṃ bhante`(항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와 같다. `也`는 판단종결로 따로 옮기지 않았다. 비구의 발화는 존댓말.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97:97.25
「設使無常,為變易法,汝可得生此心,此是我許,我是彼所。」
「가령 항상함이 없어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너는 이 마음을 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나의 것이고 나는 그것의 것이라고?」
주 팔리 97.25의 `tasmātiha…pe…`로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이다. 이 좌표는 저본 끝이 의문 종결 `乎`나 `耶` 없이 `。`로 닫혀 있어(앞의 a04.2에는 `乎`가 있다) 평서로 읽을 여지가 있으나, 바로 다음 좌표의 대답 `不也`가 질문을 전제하므로 의문으로 옮기고 구문을 불확실로 남긴다. `設使`는 가정, 使는 「-게 하다」가 아니라 가정 조사의 일부이다. 이문 — 彼: 大正 원문은 `此`, 聖본과 CBETA 교감은 `彼`(교감주 此=彼【聖】); 이 저본은 `彼`이므로 「그것의 것」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是故,比丘!諸所有色,過去、當來、今現在者。
「그러므로, 비구여, 있는 모든 색,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의 것.
주 팔리 97.25의 `tasmātiha…pe…`가 이 구절의 안쪽을 접은 것으로 보이나 접힌 글자를 읽지 못했으므로 없음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是故`는 「그러므로」. `諸所有色`의 `諸`는 「모든」, `所有`는 「있는」(사전 所有; 所는 관형절). `過去、當來、今現在者`: 者는 「~의 것」으로 명사화하고 마침표로 닫았다(사전 過去·當來·現在 각 이 경 a09.2·a12.1).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若好、若醜,若遠、若近,此色亦非我所,我亦非彼所,此是智者之所學也。
좋거나 추하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이 색은 내 것이 아니며 나도 그것의 것이 아니니, 이것은 지혜로운 이가 배우는 것이다.
주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 `若好、若醜,若遠、若近`은 열거(「~거나」). `此色亦非我所,我亦非彼所`: 앞의 亦는 새 정보가 없어 흡수하고 뒤의 亦를 「나도」로 세웠다. `我所`는 「내 것」(사전 我所 ① 100회), `彼所`는 「그것의 것」. `智者之所學`은 `所`를 관형절로 풀어 「지혜로운 이가 배우는 것」(사전 智者 ① 82회). 이문 — 學: 宋·元·明본은 `覺`(교감주 學=覺【三】).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諸所有痛,過去、當來、今現在,若遠、若近,此痛亦非我所,我亦非彼所。
있는 모든 느낌,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의 것이며, 멀거나 가깝거나, 이 느낌은 내 것이 아니며 나도 그것의 것이 아니다.
주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 한역은 이 대목에서 색의 반복을 `痛`(느낌)만으로 줄이고 想·行·識은 적지 않았다. 나머지 구조는 앞 좌표와 같다. `若遠、若近`은 열거.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如是智者之所覺知。
이와 같이 지혜로운 이가 깨달아 아는 것이다.
주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 `如是智者之所覺知`: 如是는 「이와 같이」, 所는 관형절로 풀어 「깨달아 아는 것」. 앞 좌표의 이문(學/覺)과 달리 이 좌표에는 이문이 없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比丘當作是觀,若聲聞之人,厭患於眼,厭患於色,厭患眼識,若緣眼生苦樂,亦復厭患。
비구여, 이렇게 살펴보라. 성문의 사람이라면 눈을 싫어하고 색을 싫어하며 눈의 식을 싫어하고, 눈을 인연으로 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면 그것도 또한 싫어한다.
주 팔리 97.25의 `evaṃ passaṃ…pe…`로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이다. `當作是觀`의 當은 어미 「-라」로 흡수, 觀은 「살펴보다」. `若聲聞之人`: 若은 「-면」, 聲聞은 정착어 「성문」. `厭患`은 「싫어하다」(사전 厭·患). `眼識`은 「눈의 식」(사전 眼識 ① 4회). 이 경의 眼·色·眼識은 육근·육경·육식의 순서이며 色은 여기서 오온의 색이 아닌 눈의 대상(형색)으로도 읽을 수 있어 b09.1의 「색」과 같은 글자로 옮겼다. `緣眼生苦樂`의 緣은 「~을 인연으로 하여」. `亦復`는 「또한」으로 한 번만 세웠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亦厭患於耳,厭於聲,厭於耳識,若依耳識生苦樂者,亦復厭患。
귀도 또한 싫어하고, 소리를 싫어하며, 귀의 식을 싫어하고, 귀의 식에 의지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면 그것도 또한 싫어한다.
주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 한역이 같은 개념에 `厭患`(a14.1)과 `厭`(이 좌표의 `厭於聲`·`厭於耳識`)을 번갈아 쓴다(한자 흔들림; 사전 厭 ① 59회). `依耳識生苦樂者`: 依는 「~에 의지하여」, 者는 「~면」으로 흡수했다. 이문 — 患: 宋·元·明본에 없고(〔患〕-【三】), `厭於聲`: 聖본에 없다.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鼻、舌、身、意、法亦復厭患,若依意生苦樂者,亦復厭患。
코, 혀, 몸, 마음, 법도 또한 싫어하고, 마음에 의지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면 그것도 또한 싫어한다.
주 접힌 안쪽이라 미대응. 3분할표가 `意生`을 의역(Manomaya)으로 올렸으나 이 좌표의 `若依意生苦樂者`는 「依意」+「生苦樂」으로 끊는 편이 앞 좌표(`依耳識生苦樂`)와 평행해 복합어 「마음에서 생긴」으로 읽지 않았다(전거 意生 ← Manomaya kāya, ⚠다른 부(MA)의 대역; 사전 意生 ① 3회). 끊는 자리가 둘이어서 불확실로 남긴다. `意`는 「마음」, `法`은 「법」(사전 法 이 경 a17.1). 이문 — 身: 聖본에 없다(〔身〕-【聖】).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97:97.25
已厭患,便解脫;已解脫,便得解脫之智: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如實知之。」
싫어하고 나면 해탈하고, 해탈하고 나면 해탈의 지혜를 얻는다: 나고 죽음이 이미 다했고, 청정한 행이 이미 섰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다시는 존재를 받지 않음을 사실대로 안다.」
주 팔리 97.25 끝의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더 이상 이러한 상태가 없음을 안다)가 `更不復受有,如實知之`와 맞고, 앞의 `厭患→解脫→解脫之智` 및 `生死已盡…所作已辦`은 `…pe…` 안쪽이라 읽지 못했다(일부 partial). sn22.96의 `alaṃ nibbindituṃ, alaṃ virajjituṃ, alaṃ vimuccituṃ`(싫어하기에, 사라지기에, 벗어나기에 충분하다)은 `厭患·解脫`과 표면에서 겹치나 한역은 「얻는 지혜」까지 이어서 일부로만 매긴다. `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는 [정형구 행]에 든 낱말들(生·梵行)이라 확정 술어가 아니고 문맥으로 옮겼다: `生死`는 「나고 죽음」(사전 生死 ① 143회), `梵行`은 「청정한 행」, `所作已辦`은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쳤다」(사전 所作 · 已辦 ① 70회), `更不復受有`는 「다시는 존재를 받지 않는다」, `如實知`는 「사실대로 안다」(사전 如實知 ① 84회). `解脫`은 정착어 「해탈」(전거: 범어 후보만 mukti / Makṣa). `得解脫之智`의 得은 「얻다」(획득). 닫는 」.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6:96.51
爾時,彼比丘得世尊如是之教,在閑靜之處,思惟自修,所以族姓子,剃除鬚髮,著三法衣,離家修無上梵行:生死已盡,梵行已立,所作已辦,更不復受有,如實知之。
그때 그 비구는 세존의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고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며 닦았다. 가문의 아들이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내고 세 법의를 입고 집을 떠나 위없는 청정한 행을 닦는 까닭: 나고 죽음이 이미 다했고, 청정한 행이 이미 섰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다시는 존재를 받지 않음을 사실대로 안다.
주 한역의 이 결말부(비구가 한적한 곳에서 닦음)는 팔리 두 경에 없다. 다만 끝의 정형구(`生死已盡…如實知之`)는 앞 좌표와 같이 sn22.97의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에 일부 맞는다. sn22.96은 96.51 뒤 곧바로 `Catutthaṃ`(제4경)으로 끝나 이 대목이 서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96.52에 짚어 둠). `思惟自修`는 3분할표의 思惟(Bhāvana)에 따라 의역으로 「생각하며 닦았다」(自는 대조가 없는 단순 재귀라 흡수; 사전 思惟 ① 349회). `所以族姓子,剃除鬚髮,著三法衣,離家修無上梵行:…`은 所以를 「까닭」으로 읽고 뒤 정형구가 그 까닭의 내용이라는 구문으로 옮겼으나 끊기가 둘이어서 불확실이다. `族姓子`는 「가문의 아들」(사전 族姓子 ① 60회; 음의 族 慧琳 0401b02 등은 자형 풀이뿐). `剃除鬚髮`은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아내고」(음의 鬚髮 慧琳 0335c13 등), `著三法衣`는 「세 법의를 입고」(사전 三法), `離家`는 「집을 떠나」, `無上`은 「위없는」(전거 無上 ← anuttara, 범어 당대 후보만). `得世尊如是之教`의 得은 「받다」, 教는 「가르침」. `在閑靜之處`는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이문 — 之: 宋·元·明본에 없고(〔之〕-【三】), 剃: 聖본은 `剔`(교감주 剃=剔【聖】). 본문은 大正을 따랐다. 梵行·生死의 근거는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97:97.25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52
是彼比丘便成阿羅漢。
그 비구는 곧 아라한이 되었다.
주 팔리 두 경은 끝에 `Pañcamaṃ.`(제5경)·`Catutthaṃ.`(제4경)이라는 경 번호 표지만 있고 아라한이 되었다는 선언이 없음을 확인했다. `是彼比丘`의 `是`는 지시이나 「그 비구는」으로 흡수했다. `阿羅漢`은 3분할 음역이므로 한자 독음 「아라한」(정착형과 같음). 전거: 阿羅漢 ← Arahatta / Arahaṁ(팔리) · Arhat(Arhan)(범어 근대)로 갈린다(⚠다른 부(DA)의 대역; 판정하지 않음). 음의(慧琳 0441b10 · 0463c22)는 「應供·殺賊·不生·遠惡」 등을 든다. `便成`의 便은 「곧」.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52
爾時,彼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그 비구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두 경에는 이 결말 정형구가 없고 경 번호 표지뿐이다.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말씀하신 것」, `歡喜奉行`은 결말 정형구(이 아함 450경)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사전 歡喜 · 奉行 ① 450경 이상; 음의 歡喜 慧琳 0753a01). `佛`은 [구속] 「부처님」 — 이 경은 `佛`(0.3·b23.1·이 좌표)과 `世尊`을 번갈아 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7:97.26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96:9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