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다섯)
주 한역 제목 좌표는 번호 「(五)」뿐이고 경 이름이 없다 — 팔리 제목 자리(Kokālikasutta)는 한역에 없음확인. 다카쿠스 교감주는 「S. 6. 1. 10. Kokālika」(제6상윳따 제1품 제10경 꼴의 PTS식 번호)다. 이 번호를 우리 PN에 그대로 대면 보조 증언 sn6.1은 범천의 청(Brahmāyācana) 경이 되어 구파리 이야기와 내용이 맞지 않는다 — 그래서 sn6.1은 이 경의 대응으로 매기지 않았다(지목된 구파리 경 본문은 투입물에 없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은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0.3
聞如是:
이렇게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생략표지 아님). 앵커의 如는 「如是」의 지시어 안에 들어 있어 비유·가정이 아니다. 공급된 팔리 an10.89는 번호(89.0) 다음 곧 89.1 「Atha kho kokāliko…」로 시작하고 `…pe…` 접힘도 없어, 공급 원문 기준으로 개경 정형구 자리는 없음확인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1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공급 원문 기준 팔리에 이 장소 구절은 없다(Jetavana는 89.42·89.50에서 범천의 방문 장면에 우연히 나올 뿐 장소 소개가 아니다). 舍衛國=사위국, 舍衛는 정착어: 음의(慧琳 0367c24)는 室羅伐悉底(Śrāvastī)를 「聞者城·聞物國」으로 풀고 팔리형은 Sāvatthī, 전거 당대 실담형은 śravasthi다(음역계통 — 판정하지 않음).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가 「보류」한 5자 덩어리 —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뜻: 祇樹=祇陀(Jeta) 태자의 나무(음의 慧琳 0368a03: 太子가 나무를 남겨 승가에 공양), 給孤獨=의역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慧琳 0368a05: 阿那邠邸·Anāthapiṇḍika를 뜻으로 옮긴 것), 園=동산. 이 정착형이 의역어 給孤獨을 음독으로 굳힌 것일 수 있어 유형 판별을 남긴다(대안: 「기수의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 佛=부처님([구속])이나 이 경은 같은 인물을 世尊(17)·如來·佛로 달리 적는다 —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1
爾時,瞿波離比丘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그때 구파리 비구가 세존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瞿波離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구파리」(팔리형 Kokālika는 비고에만; 3분할표 음역, 전거 `Kokālika`). 頭面禮足은 abhivādetvā에 대응하는 정형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所는 장소 「계신 곳」(관형절로 풀 필요 없는 명사). 팔리 89.1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 至世尊所, 89.2 ↔ 頭面禮足·在一面坐. 앵커 所는 「~하는 바」를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89:89.1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89:89.2
爾時,彼比丘白世尊曰:「此舍利弗、目揵連比丘所行甚惡,造諸惡行。」
그때 그 비구가 세존께 아뢰었다. 「이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는 행하는 것이 몹시 나쁘고, 여러 나쁜 행위를 짓습니다.」
주 한 비구(구파리)의 고발. 팔리 89.4는 「pāpicchā … pāpikānaṃ icchānaṃ vasaṃ gatā」 — 나쁜 바람(욕심)에 지배된다는 고발이고, 한역은 「所行甚惡, 造諸惡行」 — 행하는 것과 짓는 행위가 나쁘다는 고발이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엇갈림). 팔리 89.3의 「앉은 뒤 말했다」는 한역이 앞 좌표(在一面坐)에서 이미 서술했다. 舍利弗은 정착어 「사리불」: 음의(慧琳 0450b23·0478b23)는 奢唎補怛羅를 「鶖鷺(해오라기류) 새의 아들」로 풀어, 어머니의 눈이 그 새를 닮아 얻은 이름이라 한다. 目揵連은 3분할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음의(慧琳 0381c16 「梵語訛略也」, 0601a19 「揵連 … 梵語也」)가 소리 옮김으로 보며 이 경도 姓拘利陀(소리)와 한 쌍으로 쓰므로 소리 옮김으로 판별했다 — 정착형 「목건련」(慧琳 0381c16은 「採菽氏」, 곧 콩 따는 이의 성으로 푼다). 저본과 어긋나 표 분류를 따르지 않았다. 앵커 所行은 관형절 「행하는 것」, 諸는 「여러」.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4
世尊告曰:「勿作是語。
세존께서 이르셨다. 「이런 말을 하지 말라.
주 팔리 「Mā hevaṃ, kokālika, mā hevaṃ」는 호격 구파리와 되풀이를 갖고, 한역은 호격 없이 한 번이다. 勿=금지 「-지 말라」(붓다의 발화, 평서 명령).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5
汝發歡喜心於如來所,舍利弗、目揵連比丘所行純善,無有諸惡。」
그대는 여래에게 기쁜 마음을 일으키라.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가 행하는 것은 온전히 좋고, 나쁜 것들이 없다.」
주 팔리 89.6은 「사리불·목건련에게 마음을 맑게 하라(pasādehi … cittaṃ)」로 대상이 사리불·목건련인데, 한역 「發歡喜心於如來所」는 대상이 여래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대상(엇갈림). 89.7 「Pesalā」(좋은 이들이다)는 「純善」과 겹치고 「無有諸惡」은 팔리에 따로 없다(일부). 發歡喜心은 명령인지 서술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문말 표지 없음) 앞 문장 「勿作是語」와 이어지는 명령으로 읽었다. 앵커 如는 「如來」의 일부(비유 아님), 於는 조사 「에게」로 흡수, 有는 부재 서술 「無有」라 「없다」로, 諸는 「-들」. 이문: 純=淳(宋元明), 뜻 같음. 歡喜心의 歡喜는 사전 歡喜 ①의 정형구 「歡喜奉行」과 달리 여기서는 「기쁜 마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6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7
是時,瞿波離比丘再三白世尊曰:「如來所說誠無虛妄;然舍利弗、目揵連比丘所行甚惡,無有善本。」
이때 구파리 비구가 두 번 세 번 세존께 아뢰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헛되거나 거짓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가 행하는 것은 몹시 나쁘고, 좋은 근본이 없습니다.」
주 팔리는 두 번째·세 번째 고발을 따로 세워 되풀이하는데(89.8-12, 89.13-17) 한역은 「再三」 한 낱말로 접었다(「두 번 세 번」, 축자). 팔리 89.9·89.14 「kiñcāpi me, bhante, bhagavā saddhāyiko paccayiko」(세존이 믿을 만하시지만)는 「如來所說誠無虛妄」과 겹치고 「然」이 「atha kho」의 방향을 받는다. 「無有善本」은 팔리의 「pāpicchāva」(나쁜 바람뿐)와 엇갈리지만 같은 자리라 일부로 두었다. 誠=뜻이 실린 부사 「참으로」. 虛妄은 사전 虛妄 ①(15회 · 11경, 앞 終無 3 · 無有 3)에서 부정 앞에 놓이는 쓰임이 보이므로 「헛되거나 거짓됨」으로 풀었다. 善本은 사전 善本 ①(17경 17회, 이 경 0603b07.1) 근거로 「좋은 근본」. 같은 인물을 이 좌표에서는 세존 앞에서 「如來」로 3인칭 지칭한다 — 世尊/如來 한자 흔들림. 앵커 如·所는 如來·所說(관형절)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8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9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13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14
世尊告曰:「汝是愚人,不信如來之所說乎?
세존께서 이르셨다.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여래가 말한 것을 믿지 않는가?
주 팔리 89.10은 같은 거절 「Mā hevaṃ…」를 되풀이할 뿐 「어리석은 사람」이라 꾸짖는 말이 없다 — 한역은 꾸짖음과 불신을 따진다(같은 자리 엇갈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자기 지칭 「如來」를 「여래」로 그대로. 앵커 如는 如來, 所說는 관형절 「말한 것」.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10
方言:『舍利弗、目揵連比丘所行甚惡。』
방금 말하였다. 『사리불과 목건련 비구가 행하는 것은 몹시 나쁘다.』
주 방(方)의 뜻이 「방금」인지 「바야흐로·이제」인지 갈린다 — 구파리가 앞서 한 말을 되받는 인용이므로 「방금 말하였다」로 읽었다(사전에 方 표제 없음). 되받아 인용하는 이 구절은 팔리에 없다(팔리 89.10-12는 거절·권유 되풀이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11
汝今造此惡行,後受報不久。」
그대는 이제 이 나쁜 행위를 지었다. 뒤에 과보를 받는 것이 오래지 않다.」
주 「과보를 받는 것이 오래지 않다」는 예고는 팔리에 없고, 팔리는 구파리가 떠난 직후 종기가 나는 서술(89.19)로 들어간다. 사전 惡行 ①(이 경 0603b04.1 등)의 「나쁜 행위」를 따라 「惡行→나쁜 행위」로 통일했다. 受報의 受는 동사 「받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12
爾時,彼比丘即於坐上,身生惡瘡,大如芥子,轉如大豆,漸如阿摩勒果,稍如胡桃,遂如合掌,膿血流逸,身壞命終,生蓮華地獄中。
그때 그 비구는 곧 앉은 자리 위에서 몸에 나쁜 종기가 생겼는데, 크기가 겨자씨만 하고, 더욱 콩만 하고, 차츰 아마륵 열매만 하고, 조금씩 호두만 하고, 마침내 손바닥을 합친 것만 하여, 고름과 피가 흘러나오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연꽃 지옥 안에 태어났다.
주 팔리는 구파리가 일어나 떠난 뒤(89.18) 얼마 안 되어 종기가 돋는다(89.19)고 하는데 한역은 「即於坐上」 앉은 자리에서 곧 생긴다 — 떠남(89.18)이 한역에 없다. 종기의 자람은 팔리가 겨자→녹두→완두→대추씨→대추→아마륵→(…)→벨라→빌바로 아홉 단계를 잇고(89.20) 마지막에 터져 고름과 피가 흐르며, 한역은 겨자씨→콩→아마륵 열매→호두→손바닥을 합친 것의 다섯 단계 뒤 「膿血流逸」로 접는다(「hutvā…ahesuṃ」 되풀이 구문을 轉·漸·稍·遂 부사로 옮긴 번역기법). 단계 이름의 일부가 겹치지 않는다(개별 어휘). 팔리 89.21의 바나나 잎 위의 비유(독 먹은 물고기 같음)는 한역에 없다(문장 유무). 팔리 89.40-41은 그 병으로 죽고 사리불·목건련에게 원한을 품은 탓에 Paduma 지옥에 난다고 이유를 달고, 한역은 이유 없이 「身壞命終, 生蓮華地獄中」이다. 阿摩勒: 음역이라 한자 독음 「아마륵」(果는 의역 「열매」), 팔리 `Amalaka/Āmalaka`(89.20)와 전거 근대 범어형 `Āmra`가 갈린다 — 음역계통, 전거만 인용하고 판정하지 않는다(음의 慧琳 0468b18은 「無垢」로 풀고 0496c23은 菴摩羅果를 호두 비슷한 열매라 한다). 芥子=겨자씨(사전 芥子 ①), 大豆=콩, 胡桃=호두, 合掌은 「손바닥을 합친 것」. 蓮華地獄=의역 「연꽃 지옥」(3분할표; 팔리 Padumaṃ nirayaṃ). 이문 芥=疥·膿=濃·流逸=流溢(宋元明聖)은 뜻 같음 — 流逸은 「흘러나오고」. 앵커: 如×5는 「-만 하다」 비교(뜻이 실림), 即은 「곧」, 於는 「에서」. 大正藏 편자 대역주(阿摩勒≈Āmalaka, 蓮華地獄≈Padumaniraya)가 저본에 붙어 있다. 轉·漸·稍·遂는 단계 부사 「더욱·차츰·조금씩·마침내」(사전 轉 ①: 단계를 잇는 쓰임).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19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20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40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41
是時,尊者大目揵連聞瞿波離命終,便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坐。
이때 존자 대목건련은 구파리가 목숨이 다함을 듣고 이내 세존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주 팔리에서 세존을 찾는 이는 한 밤중 제타숲을 비추고 온 범천 사함빠띠(89.42-43)이고, 한역은 목건련이다 — 방문자가 엇갈린다. 팔리의 범천은 절하고 「서 있다(aṭṭhāsi)」, 한역의 목건련은 「앉는다(坐)」(89.43은 일부). 大目揵連은 정착어 「대목건련」: 음의(慧琳 0450c01)는 「採菽氏(콩 따는 이의 성)·큰 신통으로 이름을 삼는다」고 푼다. 같은 인물을 이 경은 目揵連(b04…)·大目揵連·目連(b19…)으로 달리 적는다 —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인물에 다른 한자를 쓴다(저본 한자는 데이터에 그대로). 이문 揵 탈락(宋元明), 至=往(聖)은 뜻 같음. 尊者는 「존자」(정착), 앵커 者는 「존자」의 일부, 所는 「계신 곳」.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42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43
斯須退坐,白世尊曰:「瞿波離比丘為生何處?」
잠시 뒤 물러나 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구파리 비구는 어디에 태어났습니까?」
주 팔리 89.44 이후 범천이 구파리의 죽음과 환생을 먼저 알리고(89.45-46), 한역에서는 목건련이 환생처를 묻는다 — 같은 자리 다른 화행(엇갈림). 為生何處의 為는 為…所 피동이 아니라 「生의 계사성 보조」(어디에 났는가)로 읽었다. 이문 斯須=須臾(聖)는 뜻 같음, 「잠시 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44
世尊告曰:「彼命終者生蓮華地獄中。」
세존께서 이르셨다. 「그 목숨이 다한 이는 연꽃 지옥 안에 태어났다.」
주 팔리 89.46은 범천이 「구파리가 Paduma 지옥에 났다, 사리불·목건련에게 원한을 품었기에」라 아뢰는 말이고, 한역은 세존이 답하는 형태에 이유가 없다. 앵커 者는 「이」. 命終은 사전 命의 쓰임(身壞命終 정형)과 같은 뜻.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46
是時,目連白世尊曰:「我今欲往至彼地獄,教化彼人。」
이때 목련이 세존께 아뢰었다. 「저는 이제 그 지옥에 가서 이르러 그 사람을 교화하고자 합니다.」
주 목건련이 지옥에 가겠다는 청원은 팔리에 없다(팔리의 목건련은 이 이야기에서 말하지 않는다). 教化는 사전 教化 ①에서 「가르쳐 이끈다」의 쓰임이라 「교화」(정착어)로 두었다. 欲=「-고자 한다」 어미로 흡수, 今=「이제」(시점이 실림). 目連은 위 좌표 大目揵連과 한자가 다르다 — 한자 흔들림, 「목련」.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6
世尊告曰:「目連!不須往彼。」
세존께서 이르셨다. 「목련이여! 그곳에 갈 필요가 없다.」
주 팔리에 없는 세존의 만류. 不須=「-할 필요가 없다」. 붓다의 발화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6
目連復重白世尊曰:「欲往至彼地獄中,教化彼人。」
목련이 다시 거듭 세존께 아뢰었다. 「그 지옥 안에 가서 이르러 그 사람을 교화하고자 합니다.」
주 팔리에 없는 되풀이 청원. 復重은 「다시 거듭」(앵커 復=반복).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6
爾時,世尊亦默然不對。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주 팔리에 없다. 앵커 亦은 앞서 세존의 침묵이 한 번도 서술되지 않았으므로 「또한」으로 세울 근거가 없어 흡수했다. 默然不對=「잠자코 대답하지 않다」(음의 慧琳 0428c16은 默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6
是時,尊者大目揵連如力士屈申臂頃,從舍衛沒不現,便至蓮華大地獄中。
이때 존자 대목건련은 힘센 사람이 팔을 굽히고 펴는 사이와 같이 사위에서 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이내 연꽃 큰 지옥 안에 이르렀다.
주 팔리 an10.89에는 목건련이 지옥에 가는 장면이 없다. 「힘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의 신통 이동 비유는 보조 sn6.1의 범천 출현 정형구(172.20-21)에 같은 꼴이 있으나, sn6.1은 이 경의 대응 경이 아니므로 정형구 수준의 참고로만 적고 꼴은 매기지 않았다. 力士=「힘센 사람」, 如…頃=「…와 같이(짧은 동안)」(앵커 如는 비교로 뜻이 실림), 沒不現=「사라져 나타나지 않고」, 便=「이내」. 舍衛는 정착어 「사위」. 大目揵連 표기는 b15.1과 같고 蓮華大地獄은 蓮華地獄에 大가 붙은 형태 — 「연꽃 큰 지옥」.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6
當爾時,瞿波離比丘身體火然,又有百頭牛,以犁其舌。
그때를 당하여 구파리 비구는 몸이 불타고 있었고, 또 소 백 마리가 쟁기로 그 혀를 갈고 있었다.
주 지옥의 형벌 묘사(불타는 몸, 쟁기로 혀를 가는 소)는 팔리에 없다. 앵커 當은 당위가 아니라 시점 「그때를 당하여」, 以는 수단 「쟁기로」, 有는 「소 백 마리가」로 주어화했다. 頭는 소를 세는 단위 「마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6
爾時,尊者大目揵連在虛空中結跏趺坐,彈指告彼比丘。
그때 존자 대목건련은 허공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가락을 튕기며 그 비구에게 일렀다.
주 팔리는 Turū라는 독각 범천이 허공에 서서(vehāse ṭhatvā) 구파리에게 말을 건다(89.22-25) — 말 건네는 이가 목건련과 엇갈린다. 한역은 「告」 뒤에 따옴표 말이 오지 않는다(宋元明 「丘曰」, 聖 「丘曰時」 이문이 말이 이어졌음을 보인다). 팔리 89.24-25의 권유(pasādehi …)에 해당하는 말이 한역에 없다. 結跏趺坐=「가부좌를 틀고 앉아」(음의 慧琳 0353b16은 跏趺를 앉는 자세로 푼다), 彈指=「손가락을 튕기다」. 虛空中=「허공 가운데」.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22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23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24
彼比丘即仰問曰:「汝是何人?」
그 비구가 곧 우러러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주 팔리 「Kosi tvaṃ, āvuso」(그대는 누구인가, 벗이여)와 같다. 이문(宋元明): 「彼比丘即仰問」이 「時瞿波離報」로 되어 있다(말하는 이는 같다). 구파리는 상대가 누군지 모르므로 호칭 「汝」 그대로 평서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89:89.26
目揵連報曰:「瞿波離!我是釋迦文佛弟子,字目揵連,姓拘利陀。」
목건련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구파리여! 나는 석가문 부처님의 제자이다. 이름은 목건련, 성은 구리타이다.」
주 팔리 89.27은 상대가 「Turū 독각 범천」이라 답하고, 한역은 「석가문 부처님 제자 목건련」이라 한다 — 정체가 엇갈린다. 釋迦文은 釋迦牟尼의 줄임(음의 慧琳 0485b20), 전거 근대형 `Śakyamuni`(팔리형 없음) — 음역이라 「석가문」, 佛은 [구속] 「부처님」이라 「석가문 부처님」. 字는 호칭(자)을 「이름」으로, 姓은 「성」으로 옮겼다. 拘利陀: 소리 옮김으로 「구리타」(3분할표의 拘利는 `Koliyā`/`Koṭi`로 갈리는 표지인데, 이 자리는 姓 뒤라 인명의 소리 옮김으로 판별했다). 수사 Koṭi(백만)로는 읽지 않았다 — 사전 拘利 ⑤의 음의 풀이와 ⑥의 후대 풀이에 그 수사 뜻이 실려 있으나, 이 자리는 姓이다. 이문 利=律(聖), 曰 탈락(宋元明). 目揵連 표기는 앞 좌표와 같은 한자 흔들림 가운데 하나다. 이 경에서 석가문 부처님이라 칭하는 대목은 세존·여래·부처님과 한자가 다른 지칭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27
是時,比丘見目連已,吐此惡言:「我今墮此惡趣,猶不免汝前乎?」
이때 비구는 목련을 보고 나서 이 나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이제 이 나쁜 갈래에 떨어졌는데, 그래도 그대 앞을 면하지 못하는가?」
주 팔리 89.28-29의 구파리 말 「그대는 세존께 불환자라고 수기받았는데 왜 여기 왔는가, 그대의 잘못이 얼마나 큰가를 보라」와 같은 자리에서 다른 말이다(엇갈림). 前이 「앞(장소)」인지 「앞서·먼저(시간)」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앞」으로 옮기고 불확실을 남긴다. 「見目連已」의 已는 「-고 나서」, 吐此惡言의 惡言은 「나쁜 말」(사전 惡言 ①). 惡趣=「나쁜 갈래」. 猶=양보가 실린 「그래도」. 호칭 汝를 따라 평서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28
說此語訖,即其時以有千頭牛以犁其舌。
이 말을 마치자 곧 그때에 이에 소 천 마리가 쟁기로 그 혀를 갈았다.
주 소가 혀를 가는 벌(백 마리에서 천 마리로 늘어남)은 팔리에 없다. 大正 본문 「即其時以有千頭牛以犁其舌」의 첫 以는 宋元明이 「已」로 읽고(이문, 「이미」가 되며 뜻이 달라진다), 其는 宋元明에 없다. 저본 그대로 以를 연사 「이에」, 有는 「소 천 마리가」의 주어화로 흡수했다. 앵커 即은 「곧」, 以(수단)는 「쟁기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30
目連見已,倍增愁悒,生變悔心,即於彼沒,還至舍衛國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住。
목련은 보고 나서 시름과 울적함이 갑절로 늘고, 변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내어 곧 그곳에서 사라지고, 돌아와 사위국에 이르고 세존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머물렀다.
주 목건련의 시름과 귀환은 팔리에 없다. 「生變悔心」은 「生變/悔心」(변이 생기다·뉘우치는 마음)과 「生/變悔心」(변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내다)로 끊을 수 있어 뒤의 것으로 옮겼다(사전 生變 ①: 이 경에만 나오는 낱말). 悔는 사전 悔 ①에서 「後悔無及」류의 뉘우침. 倍增=「갑절로 늘다」, 愁悒은 이문 愁邑(宋元)이 있다. 在一面住의 住는 坐·立과 다른 한자를 쓴다(사전 一面 ①: 坐 169·立 37·住 19) — 「머물렀다」. 即於彼沒의 彼=「그곳」. 目連 표기의 한자 흔들림은 앞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7
爾時,目連以此因緣具白世尊。
그때 목련은 이 인연을 빠짐없이 세존께 아뢰었다.
주 팔리에서 일을 세존께 보고하는 이는 범천이고 보고의 내용은 구파리의 죽음과 환생이다(89.45-46). 한역은 목건련이 지옥에서 본 것을 보고한다. 因緣은 정착어 「인연」(여기서는 겪은 사연). 具白=「빠짐없이 아뢰다」, 以는 흡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45
世尊告曰:「我前語汝,不須至彼見此惡人。」
세존께서 이르셨다. 「내가 앞서 그대에게 말하였다. 저곳에 이르러 이 나쁜 사람을 볼 필요가 없다고.」
주 팔리에 없는 세존의 확인 말. 「我前語汝」의 前=「앞서」(시간). 惡人=「나쁜 사람」(사전 惡人 ①). 붓다의 발화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49
爾時,世尊便說此偈:
그때 세존께서 곧 이 게송을 설하셨다.
주 팔리는 같은 게송을 Turū 범천(89.30-39)과 세존(89.77-86)이 각각 한 번씩 읊어 두 번 싣고, 한역은 세존의 게송 하나뿐이다. 便은 접속의 뜻이라 「곧」으로, 偈는 「게송」(정착)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89:89.77
「夫士之生,斧在口中,所以斬身,
「사람이 태어나면 도끼가 입 안에 있으니, 몸을 베는 까닭은
주 팔리 「Purisassa hi jātassa, kuṭhārī jāyate mukhe」(사람이 태어나면 입에 도끼가 생긴다)와 같다(= 89.31). 「Yāya chindati attānaṃ」(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벤다)는 「所以斬身」에 해당하고, 팔리 attā(자기 자신)가 한역에서는 身(몸)이다. 夫는 발어사라 흡수, 士=「사람」, 앵커 所以=「까닭」. 「士之生」은 「사람이 태어나면」으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10.89:89.78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79
由其惡言;彼息我息,此二俱善。
그 나쁜 말에서 말미암는다. 저쪽이 그치고 내가 그치면, 이 둘이 함께 좋다.
주 「由其惡言」은 팔리 89.79 「bālo dubbhāsitaṃ bhaṇaṃ」(어리석은 이가 나쁜 말을 한다)와 겹친다. 「彼息我息, 此二俱善」은 팔리 89.80-81(비난받을 이를 칭찬하는 이, 입으로 재앙을 모은다)과 같은 자리에서 다른 내용이다(엇갈림). 息은 「그치다」로 읽었으나 「숨」으로 읽는 길이 있다(사전 息 ①: 이 경 0603c09.1 두 번; 休息·已息永寂 용례는 「그치다」 쪽). 俱=「함께」.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79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80
已造惡行,斯墮惡趣,此為最惡,
이미 나쁜 행위를 지어, 이에 나쁜 갈래에 떨어지니, 이것이 가장 나쁘다.
주 「나쁜 갈래에 떨어진다」는 팔리 마지막 행(89.86 「Yamariyagarahī nirayaṃ upeti」)에 해당하는데 한역에서는 세 번째 줄에 선다 — 자리바뀜. 팔리는 성인을 비방한 탓에 지옥에 간다고 하고, 한역은 「나쁜 행위를 지은」 탓이다. 앵커 為는 為…所 피동이 아니라 「이것이 가장 나쁘다」의 계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10.89:89.86
有盡無盡,向如來惡,此者最重。
다함이 있음과 다함이 없음, 여래를 향한 악, 이것이 가장 무겁다.
주 「向如來惡, 此者最重」은 팔리 「ayameva mahattaro kali; yo sugatesu manaṃ padūsaye」(이것이 더 큰 재앙, 선서들에게 마음을 더럽히는 이)와 겹치되 순서가 서로 뒤바뀌어 있다(자리바뀜). 「有盡無盡」은 팔리 89.82의 「appamattako … mahattaro」(작음과 큼)에 맞는 듯하나 한문 문맥만으로 서지 않아 「다함이 있음과 다함이 없음」으로 축자하고 불확실을 남긴다(사전 無盡 ①: 이 경 0603c11.1). 앵커 有는 「있음」의 존재 서술(양쪽을 대비하는 명사구), 者는 「것」, 如는 如來의 일부.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10.89:89.83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10.89:89.84
一萬三千,六一灰獄,謗聖墮彼,
일만 삼천, 육일, 재의 지옥에, 성인을 비방하여 거기에 떨어진다.
주 팔리 89.85는 「sataṃ sahassānaṃ nirabbudānaṃ, chattiṃsati pañca ca abbudāni」(십만 니랍부다 하고 삼십육·오 압부다)이고 한역은 「一萬三千, 六一」이라 수가 맞지 않는다(엇갈림). 「六一」을 육과 일의 두 수로 읽을지 육십일로 읽을지 정하지 못해 축자로 「육일」이라 적고, 이문 千=十(聖)이 있어 수가 흔들린다. 謗聖墮彼는 팔리 89.86의 「ariyagarahī nirayaṃ upeti」(성인을 비난하는 이는 지옥에 간다)와 겹친다(일부). 灰獄=「재의 지옥」(뜻이 서므로 음의·사전에 기대지 않음). 聖=「성인」(사전 聖 ① 68회의 뒤 王位 6 · 王適 4처럼 왕 앞에 붙는 쓰임과 달리 이 자리는 성인).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85
니까야 대응 일부 AN 10.89:89.86
身口所造。」
몸과 입으로 지은 것이다.」
주 팔리 「vācaṃ manañca paṇidhāya pāpakaṃ」(말과 마음을 악에 두어)와 같은 자리에서 한역은 身과 口(몸·입)를 든다 — 입(口)은 vācā와 겹치고 身과 manas(마음)가 엇갈린다. 앵커 所造는 관형절 「지은 것」.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86
爾時,世尊告諸比丘:「當學三法,成就其行。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이르셨다. 「세 가지 법을 배우라. 그 행을 이루라.
주 팔리는 이 자리에서 세존이 비구들을 불러 범천의 방문을 되풀이해 이야기한다(89.49-56)는 점에서 같은 화행이나 말씀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엇갈림). 앵커 當은 「-라」 어미로 흡수. 諸比丘의 諸는 「-들」. 成就는 「이루다」(사전 成就 ① 앞: 比丘 38 · 智慧 27 · 三昧 26 / 뒤: 解脫 33 · 智慧 22 · 三昧 16 — 성취의 대상이 덕목·수행인 쓰임). 三法은 다음 좌표 15.2의 세 가지 행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10.89:89.49
身行善、口行善、意行善。
몸의 행이 좋은 것, 입의 행이 좋은 것, 뜻의 행이 좋은 것이다.
주 「身行善」은 「몸의 행이 선하다(身行이라는 명사)」와 「몸으로 선을 행한다(行善의 동사)」 두 갈래가 있다 — 사전 身行 ① 뒤: 善口 5 · 口行 3(身行이 口行과 짝을 이루는 명사 쓰임)과 사전 行善 ① 앞: 口意 6 · 善口 5 · 善意 5(身·口·意가 나란히 오는 병렬)에 따라 앞의 것으로 옮겼다. 意는 「뜻」.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56
如是,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여! 이렇게 배우라.」
주 맺음 훈계가 팔리에 없다. 앵커 如는 「如是」의 지시어(비유 아님), 當은 「-라」 어미로 흡수. 比丘는 諸 없이 단수 형태의 호격이라 「비구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56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공급 원문의 끝은 89.86 게송과 경 맺음 「navamaṃ」(89.87)뿐이고 이 맺음 정형구는 팔리에 없다. 같은 인물을 이 경이 세존·여래·부처님(佛)으로 달리 적는다 —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歡喜奉行은 사전 奉行 ①(505회·450경, 이 경 0603c16.1) 정형구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다」. 所說는 관형절 「설하신 것」, 앵커 諸=「-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10.89:8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