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1)
주 제목 표지(권·품 번호). 저본의 `一`은 순서 번호이므로 숫자 「1」로 옮겨 한자를 본문에 남기지 않는다. 이 경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아 증언 대응은 아직 잡지 않았다(미대응).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聞如是`(사전 如是 ① 증일아함 451경 모두 `聞` 뒤). `如是`는 지시어이므로 비유·가정의 `如`가 아니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부처님은 확정 술어 [구속]. `舍衛國`은 정착어(3분할 표) 「사위」 — 코살라의 도시 이름이며 한역은 음역이다. 전거(음역전거_대장)는 팔리 Sāvatthī / 범어 śravasthi(당대)로 두 계통이 갈림을 보이고, 음의(慧琳 0367c24)는 義譯으로 「聞者城/聞物國」 등을 전한다. 판정하지 않고 인용만 한다.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 표에서 보류(5자 이상)다. 이름으로 판별했다: `祇樹`=祇(소리)+樹(뜻)의 혼합으로 기타 태자의 숲, `給孤獨`=의역으로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음의 慧琳 0368a05 「阿那陀… 誓救孤獨」, 전거 Anāthapiṇḍika). 본문은 §⑤ 예시의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의역 규칙을 엄밀히 쓰면 「기수 +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동산」이 되므로 이 선택은 정도평 판단에 남긴다. 표기는 이 경 안에서 통일했다.
爾時,世尊告諸比丘:「有三人,世人所應供養。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있다.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들이다.
주 `世尊`=세존, `比丘`=비구는 확정 술어 [구속]. 한역이 같은 화자를 앞 좌표에서 `佛`, 여기서 `世尊`으로 달리 적는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각각 다르므로(부처님/세존) 그대로 두고 신고만 한다. `[구속]` `應供`=아라한(저본 출현 10)은 이 경에서 모두 `所應供養`의 일부다. 여기서 `應`은 당위, `供養`은 동사이므로 칭호 「아라한」이 서지 않는다. 저본이 이겨서 「공양해야 할」로 옮겼다(이후 같은 자리는 앞자리와 동일). `有三人`은 존재 서술이라 「세 사람이 있다」로 두되 `~이 있어`로 잇지 않았다. `所應供養`은 「~하는 바」 대신 관형절로 풀었다. `諸`는 「모든」, 복수는 「들」로 한 번만 옮겼다.
云何為三?
무엇이 셋인가?
주 `云何為三`의 `為`는 피동이 아니라 계사(…이다)다. 의문형 어미가 `云何`를 진다.
如來、至真、等正覺,世人所應供養;如來弟子漏盡阿羅漢,世人所應供養;轉輪聖王,世人所應供養。
여래, 아라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은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다; 여래의 제자인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다; 전륜성왕은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다.
주 `如來`=여래, `至真`=아라한,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은 확정 술어 [구속]. `至真`(뜻으로 옮긴 칭호)과 `阿羅漢`(음역)이 모두 확정 문자열 「아라한」으로 닿는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자리다. `阿羅漢`은 음역이므로 한자 독음(3분할 표). 전거는 팔리 Arahatta/Arahaṁ, 근대 범어 Arhat(Arhan)으로 보여 준다(판정 없음). 음의 慧琳 0441b10은 阿羅漢의 풀이 응공·살적·불생·원악을 전한다. `漏盡`: `漏`는 정형구 행(āsava, 번뇌)으로만 있고 낱말 확정역이 없어 문맥으로 「번뇌」로 옮기고 신고한다. 앞 좌표에서 `所應供養`은 앞자리와 동일한 사안(오적중)이다. `轉輪聖王`은 정착어(전륜성왕) — 바퀴를 굴리는 성스러운 왕, 곧 법륜·보배 바퀴로 세상을 다스리는 이상적 군주를 뜻한다(사전: 장아함 81회). 세 요소를 `;`로 나눈 한문의 병렬을 그대로 두었다.
「有何因緣,如來世人所應供養乎?
“어떤 인연이 있기에 여래는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인가?
주 `有何因緣`의 `有`는 이유를 묻는 존재 서술이라 「있기에」로 살렸다(`~이 있어` 회피). `因緣`은 정착어 「인연」(사전 因緣 ① 이 경 6회, 앞 `以此` 57). `乎`는 의문 어미가 진다.
夫如來者,不伏者伏,不降者降,不度者度,未得解脫者令得解脫,未般涅槃者使成涅槃,無救護者與作救護,盲者與作眼目,病者與作救護。
여래는 길들여지지 않은 이를 길들이고, 항복하지 않은 이를 항복시키고,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너게 하고,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한 이가 해탈을 얻게 하고, 아직 반열반하지 못한 이가 열반을 이루게 하고, 구호가 없는 이에게 구호가 되어 주고, 눈먼 이에게 눈이 되어 주고, 병든 이에게 구호가 되어 준다.
주 `如來`는 [구속]. 발어사 `夫`와 주제 `者`는 조사로 흡수했다. `不伏者伏/不降者降`은 같은 글자가 부정어와 짝을 이룬 구조이므로 `伏`=길들이다(복종시킴), `降`=항복하다로 나눠 세웠다. `度`는 「건너다·건너게 하다」(사전 度: 생사를 건넘; 이 경 14a와 같은 낱말). `令得`/`使成`은 사역 「-게 하다」. `解脫`은 정착어 「해탈」. `般涅槃`은 3분할 표(기계 1차)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般`(소리)+`涅槃`(소리)이므로 음역으로 보아 「반열반」으로 적었고(저본 판별), `涅槃`은 「열반」으로 적어 둘을 구분했다 — 확정역이 없어 신고한다. 전거: 般涅槃 ← 팔리 Parinibbuta/Parinibbānam. `救護`=구호는 이 경 안에서 두 번 같은 낱말로 통일했다. `與作`은 「~이 되어 주다」. 음의 慧琳 0314b22는 `盲`을 「눈동자 없음」으로 풀이한다.
最尊第一,魔若魔天、天及人民,於中最尊福田,可敬可貴,與人作導,令知正路,未知道者與說導教,以此因緣,如來世人所應供養。
가장 존귀하고 제일이어서, 마나 마천, 천신 및 사람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복전이고, 공경할 만하고 귀할 만하며, 사람들에게 인도자가 되어 주고, 바른 길을 알게 하며, 길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 인도하는 가르침을 말해 주니, 이 인연으로 여래는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다.
주 `魔若魔天`의 `若`는 가정이 아니라 선택(「나」)으로 읽었다 — 앵커의 가정 표시와 달라 근거를 남긴다. `於中`의 `於`는 조사로 흡수. `福田`은 정착어 「복전」 — 복을 심어 거두는 밭이라는 뜻(사전 福田 ⑥). `可敬可貴`는 「-할 만하다」. 이문: 이 좌표 `導`에 `道`를 읽는 판본이 있다(聖本; 두 번째 자리는 宋元明聖). 교감주 순서상 앞의 `導`(與人作導)는 聖本만, 뒤의 `導`(導教)는 宋元明聖이 `道`로 읽는 것으로 보이나 확정하지 않았다 — 본문은 大正 저본 `導`를 따랐다. `未知道者`의 `道`는 길(앞뒤 `正路`와 짝). `最尊第一`을 뒤 절과 `,`로 이은 구두는 한문 점을 따랐고, 끊는 자리가 달라질 여지가 있다. `以此因緣`은 조사 「-로」.
「復有何因緣,如來弟子漏盡阿羅漢世人所應供養乎?
“또 어떤 인연이 있기에 여래의 제자인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인가?
주 `復`는 앞 물음에 이어 묻는 「또」(반복의 뜻이 실린 자리). 나머지는 0607a05.1과 같은 구문이다.
比丘當知,漏盡阿羅漢以度生死源,更不復受有,以得無上法,淫、怒、癡盡,永不得全,是世福田。
비구여, 알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은 생사의 근원을 건너서 다시는 존재를 받지 않고, 위없는 법을 얻어서 음욕, 분노, 어리석음이 다하고, 영원히 온전함을 얻지 못하니, 이는 세상의 복전이다.
주 `比丘當知`의 `當`은 어미(-라)가 진다. 호격 `比丘`는 한문에 복수 표지가 없어 「비구여」로 적었다. `以`는 이문에서 宋元明이 `已`로 읽는다(교감: 以→已). 본문은 저본 `以`를 연결(「-서」)로 흡수했다. 이문대로 `已`면 「이미」가 붙는다. `更不復受有`는 `更`과 `復`가 겹친 한 부정 관용(「다시는」)이므로 한 번만 옮겼고, `受有`는 「존재를 받다」(有=bhava의 쓰임; 사전 受 ①). `無上法`은 사전(⑥)이 열반으로 푼다(智度論) — 본문은 「위없는 법」, 풀이는 인용만 한다. `淫、怒、癡盡`은 병렬 뒤 `盡`이 공통으로 걸린다. `淫`은 宋元明 `媱`. `永不得全`은 뜻이 서지 않는다 — 주어와 `全`의 대상이 저본에 없어 글자대로 「영원히 온전함을 얻지 못하니」로 두고 불확실로 남긴다(정도평 판단). `生死源`의 `源`은 宋元明 `原`. `是世福田`은 「이는 세상의 복전이다」(`世福`은 사전 4회, 여기서는 `世`+`福田`).
以此因緣本末,使漏盡阿羅漢世人所應供養。
이 인연의 처음과 끝으로,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가 되게 한다.
주 `本末`은 3분할 표에서 의역으로 분류된 것을 따라 뜻으로 옮겼다(本=뿌리, 末=끝; 「처음과 끝」). 전거가 본말↔Itivuttaka를 올려 두었으나 이것은 경 이름과의 동형이의로 보여 본문에 쓰지 않았다. `使`는 사역.
「復以何因緣,轉輪聖王世人所應供養?
“또 어떤 인연으로 전륜성왕은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인가?
주 `以何因緣`은 수단·이유의 「-로」. 나머지는 앞 물음과 같다.
比丘當知,轉輪聖王以法治化,終不殺生,復教化人使不殺生;自不盜竊,亦復教他人使不偷盜;自不淫泆,復教他人不行淫泆;自不妄語,亦復教人使不妄語;自不兩舌,鬪亂彼此,亦復教他人使不兩舌;自不嫉妬、恚、癡,亦復教他人不習此法;自行正見,復教他人使不邪見。
비구여, 알라. 전륜성왕은 법으로 다스리고 교화하여 끝내 살생하지 않고, 또 사람들을 교화하여 살생하지 않게 한다; 스스로 도둑질하지 않고, 또한 남을 가르쳐 훔치지 않게 한다; 스스로 음란하고 방탕하지 않고, 또 남을 가르쳐 음란과 방탕을 행하지 않게 한다;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고, 또한 사람을 가르쳐 거짓말하지 않게 한다; 스스로 두 혀로 말하지 않고, 저쪽과 이쪽을 싸우게 하여 어지럽히지 않으며, 또한 남을 가르쳐 두 혀로 말하지 않게 한다; 스스로 질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또한 남을 가르쳐 이 법을 익히지 않게 한다; 스스로 바른 견해를 행하고, 또 남을 가르쳐 삿된 견해를 갖지 않게 한다.
주 이 좌표는 한문이 열거하는 선악 항목(살생·도둑질·음일·거짓말·두 혀·질투/성냄/어리석음·바른/삿된 견해)을 항목별로 접지 않고 그대로 늘어 쓴 것이다. `自…亦復教他人`의 `自`↔`他`(人)는 대조가 실재하므로 「스스로/남」으로 세웠다. `復`와 `亦復`의 「또/또한」은 앞 항에 더해지는 뜻이 실려 있다. `教化人使不殺生`은 「교화하여 -하지 않게 한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앞에서 `盜竊`, 뒤에서 `偷盜` — 宋元明은 뒤 항을 `盜竊`로, 聖本은 앞 항 `盜`를 `偷`로 읽는다. 본문은 저본대로 달리 옮겼다(「도둑질」/「훔치다」). `人`/`他人` — 宋元明은 `人` 앞에 `他`를 더해 `他人`으로 읽는다(교감: 人→他人). 이 좌표에 `化`→`他`(宋元明), `他`→`化`(宋) 이문도 있다. `淫泆`은 음란과 방종의 병렬 낱말로 풀었고 `泆`은 元本이 `沃`로 읽는다. `淫`은 宋元明 `媱`, `嫉妬`는 宋元明 `妬嫉`. `兩舌`은 확정역이 없어 「두 혀로 말하다」로 직역하고 신고한다. 사전 不兩舌(⑥)은 「양쪽에 시비를 말해 다투게 함」이라 푼다. `鬪亂彼此`에 `不`이 걸리는지는 한문만으로는 정해지지 않아 걸리는 것으로 읽었다(구문 불확실). `嫉妬、恚、癡`는 병렬 세 항에 `不`이 걸린다고 읽었다. `不習此法`의 `此法`이 가리키는 것(바로 앞 질투·성냄·어리석음인가, 위 전체인가)은 저본만으로 가려지지 않아 「이 법」으로 둔다. `正見/邪見`은 3분할 표(邪見: 의역)를 따라 뜻으로 옮겼고 `正見`도 같은 쪽으로 맞췄다. `殺生`은 정착어 「살생」, `妄語`는 「거짓말」(직역; 사전 妄語: 거짓된 말).
以此因緣,以此本末,使轉輪聖王世人所應供養。」
이 인연으로, 이 처음과 끝으로, 전륜성왕이 세상 사람이 공양해야 할 이가 되게 한다.”
주 0607a16.1과 같은 구문(`以…,使…`). 인용(「…」)은 이 좌표에서 닫힌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주 맺음 정형구 `歡喜奉行`(사전 奉行: 증일아함 450경). `佛`=부처님은 [구속]이며, 첫머리 인용에서는 `世尊`을 쓴다(한역이 같은 화자를 달리 적는다). `所說`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