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EĀ 123

EĀ 123

교차 검사교차 검사 33현대역 준비 중

(四)

(사)

주 한문 제목 칸은 번호 「(四)」뿐인데 팔리 an3.82/0.3은 번호와 함께 경 이름(Gadrabhasuttaṃ, 나귀 경)을 단다. 팔리 쪽이 더 말하므로 부분 대응이다. 팔리 증언은 莊春江 an3.83을 문단번호로 대조해 우리 PN an3.82에 옮긴 단일 계열(single_source) 후보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0.3

AG:ea123/0.1 · 교차 검사

聞如是:

이렇게 들었다:

주 聞如是는 개경 정형구다(정형구표: 이 아함 전권 453, 이 경 1). 如是=이렇게(사전 如是 ①). 팔리 an3.82 본문은 83.0(문단번호)에서 곧바로 83.1로 들어가 개경이 없다 — 그 자리를 짚어 없음으로 적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0

AG:ea123/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팔리 an3.82에는 개경 장소 문장이 없다. 佛=부처님([구속]). 舍衛=사위는 정착어(대역표). 이름의 뜻은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이 「梵語訛也…義譯云無物不有國…此譯云聞者城…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로 여러 풀이를 늘어놓는다 —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표: 팔리 Sāvatthī / 범어(당대) śravasthi — 두 계통이 갈린다(⚠다른 부(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은 대역표가 5자 이상이라 보류로 둔 이름이다. 祇樹(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給孤獨(아나타삔디까를 뜻으로 옮긴 호칭, 慧琳 0368a05 「亦義譯也…誓救孤獨時人以為其號」)+園으로 가른다. §⑤는 給孤獨을 의역(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으로 규정하는 한편 정착어 예로 기수급고독원을 들어 서로 부딪히므로,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을 쓰고 이 충돌을 정도평에게 남긴다. 전거표: 팔리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한 경 안에서 佛(이 좌표·0580a15.1)과 世尊(0579b22.1 등)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은 각각 부처님·세존이라 한국어도 갈린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0

AG:ea123/0.3 · 교차 검사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當說人有似驢者,有似牛者,諦聽!諦聽!善思念之。」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사람 가운데 나귀와 비슷한 이가 있고 소와 비슷한 이가 있음을 말하겠다. 자세히 들으라! 자세히 들으라! 그것을 잘 생각하고 새기라.」

주 팔리 83.1은 곧바로 비유(나귀가 소 떼를 뒤따른다)로 들어가며, 한문의 예고(나귀와 소를 닮은 두 부류)와 「諦聽 · 善思念」 권유는 팔리에 없다. 「告諸比丘」↔bhikkhave 호칭만 겹쳐 부분 대응으로 적는다. 世尊=세존, 比丘=비구([구속]). 當은 어미 -겠다가 지므로 부사를 달지 않았다. 有人似…者의 有는 사람 가운데 그런 이가 존재함을 말하는 자리라 「있고」로 살렸고(존재 서술), 者는 「이」로 옮겼다. 似=비슷한(뒤의 像=닮은과 글자가 달라 따로 옮겼다). 諦聽=자세히 들으라(慧琳 〔守護國界主陀羅尼經〕 續音義 0949c19 「諦審也…以耳審得其聲」, 사전 諦聽 ① 20/62). 思念=생각하고 새기라.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大正 편자 비정) —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1

AG:ea123/0579b22.1 · 교차 검사

諸比丘對曰:「如是。

비구들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팔리 an3.82에는 비구들의 응낙 대답이 없다. 如是는 응낙하는 대답이다(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앵커의 如[비유·가정]는 여기서 如是 한 덩어리라 비유가 아니다. 비구들의 발화이고 청자가 세존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⑦).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

AG:ea123/0579b23.1 · 교차 검사

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세존이시여!」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주 팔리 an3.82에 대응하는 응낙·수교 구절이 없다. 世尊은 호격이라 「세존이시여」로 옮겼다. 從佛受教=부처님께 가르침을 받다. 受는 확정술어표의 [정형구 행] 受(vedanā)가 아니라 동사 「받다」다. 教는 앵커의 [사역·가르침] 가운데 「가르침」으로 판정했다. 같은 좌표에서 世尊과 佛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한자 흔들림). 比丘 전거는 0579b22.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

AG:ea123/0579b24.1 · 교차 검사

世尊告曰:「彼云何名人像驢者?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을 일러 나귀를 닮은 사람이라 이름하는가?

주 팔리는 이 질문 없이 83.6에서 곧바로 「어떤 비구가」로 비유를 사람에 적용한다. 그 자리를 짚어 없음으로 적는다. 名人像驢者=「나귀를 닮은 사람」이라 이름하다, 云何는 의문형 어미가 진다. 彼는 「그것은」으로 옮겼다. 像=닮은(0579b22.1의 似=비슷한과 글자가 달라 따로 옮겼다). 世尊(이 좌표)과 佛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6

AG:ea123/0579b25.1 · 교차 검사

若有一人,剃除鬚髮,著三法衣,以信牢固,出家學道。

만약 한 사람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벌의 법의를 입고 믿음으로 굳게 하여 집을 나와 도를 배운다면,

주 팔리 83.6은 「여기 어떤 비구가」(idhekacco bhikkhu)라고만 하고 삭발·법의·믿음·출가 서술이 없다 — 한문이 더 말한다. 若은 연결어미 「-면」이 진다(앵커). 有一人의 有는 「한 사람이」로 흡수했다(사전 有一人 ①). 鬚髮=수염과 머리(慧琳 0335c13), 三法衣=세 벌의 법의(사전 三法 ① 뒤: 衣出 12). 出家는 대역표가 의역으로 가르므로 「집을 나와」로 옮겼다(전거표: 당대 범어 pavaidya만 서고 팔리형은 없다). 以信牢固의 牢固가 信을 꾸미는지 出家學道를 꾸미는지 끊어 읽기가 갈릴 수 있어(사전 牢固 ① 앞: 以信 7 · 뒤: 出家 7) 「믿음으로 굳게 하여」로 두 갈래를 다 열어 둔다. 牢固의 뜻풀이는 사전 牢固 ⑤ 음의 칸에서 따로 인용한다(慧琳 0382a01, 『大寶積經』 음의 「牢堅也」 — 자형·뜻 주석이며 끊어 읽기를 정해 주지 않는다). 이 若절의 주절은 다음 좌표 0579b27.1이다. 이문: 以 / 以作(聖), 牢 / 堅(宋·元·明).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6

AG:ea123/0579b25.2 · 교차 검사

爾時,彼人諸根不定,若眼見色,隨起色想,流馳萬端,爾時眼根則非清淨,生諸亂想,不能制持,眾惡普至,亦復不能護於眼根。

그때 그 사람은 여러 감관이 안정되지 않아, 눈으로 색을 보면 그에 따라 색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 만 갈래로 흘러 달리고, 그때 눈의 감관은 맑고 깨끗하지 않아 여러 어지러운 생각이 생기며, 제어하고 붙잡을 수 없고, 뭇 악이 두루 이르며, 또 눈의 감관을 지킬 수도 없다.

주 같은 자리(나귀 같은 비구의 결함)에서 팔리 83.8은 높은 계·마음·지혜의 공부를 받아 지니려는 의욕이 남들 같지 않다고 하고, 한문은 감관을 단속하지 못함을 말한다 — 엇갈림이다. 諸根·眼根=여러 감관·눈의 감관, 色想=색에 대한 생각, 亂想=어지러운 생각은 확정역이 없다(사전 諸根 ① 68, 眼根 ① 27, 亂想 ① 98). 若은 「-면」, 能은 「-ㄹ 수 있다」가 지고(앵커), 則은 귀결로 흡수했다. 亦復不能의 亦·復은 「또 …도」로 합쳤다.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清淨은 대역표가 의역으로 가르므로 「맑고 깨끗하다」로 옮겼다 — 전거표의 清淨(Sobhavatī)은 다른 부(DA)의 지명이라 여기서는 해당하지 않는다(형용어). 流馳萬端=만 갈래로 흘러 달리다. 眾惡=뭇 악(다음 좌표들의 諸惡=여러 악과 글자가 달라 따로 옮겼다). 護=지키다(사전 護 ① 뒤: 眼根 9).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8

AG:ea123/0579b27.1 · 교차 검사

耳聞聲,鼻嗅香,舌知味,身知細滑,意知法,隨起識病,流馳萬端,爾時意根則非清淨,生諸亂想,不能制持,眾惡普至,亦復不能護於意根。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곱고 매끄러운 감촉을 알고, 뜻으로 법을 알아, 그에 따라 식의 병이 일어나 만 갈래로 흘러 달리고, 그때 뜻의 감관은 맑고 깨끗하지 않아 여러 어지러운 생각이 생기며, 제어하고 붙잡을 수 없고, 뭇 악이 두루 이르며, 또 뜻의 감관을 지킬 수도 없다.

주 0579b27.1과 같은 틀이며 팔리 83.8과 엇갈린다. 앞 좌표의 若 조건절이 이어지므로 따로 「-면」을 달지 않고 나열로 두었다. 意根·識病=뜻의 감관·식의 병(확정역 없음, 사전 識 ①, 知法 ① 21). 細滑=곱고 매끄러운 감촉(慧琳 0685a13 「細小也」, 사전 細滑 ① 54). 鼻嗅香(慧琳 0339c16 「鼻取氣也」). 한역이 혀를 여기서는 舌(舌知味)로 적고 다른 좌표에서는 口(口味)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이문: 舌 / 口(聖) 0579c15.1). 意知法의 法은 감각 대상으로서의 법이라 「법」으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8

AG:ea123/0579c01.1 · 교차 검사

無有威儀禮節之宜,行步進止,屈伸低仰,執持衣鉢,都違禁戒,便為梵行人所見譏彈:『咄,此愚人像如沙門?』

위의와 예절에 알맞음이 없어, 걷고 나아가고 멈추는 일, 굽히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는 일, 옷과 발우를 지니는 일에서 모두 금하는 계를 어기니, 곧 청정행을 닦는 이들에게 비난을 당한다: 『쯧, 이 어리석은 사람이 사문을 닮았는가?』

주 팔리 83.8의 계 공부(adhisīla)에 대한 의욕 부족과 한문의 위의·계율 위반이 닿는 자리이나 말하는 것이 다르다. 질책 장면(咄…)은 팔리에 없다. 宜는 당위 어미 자리라 「알맞음」으로 풀었다. 梵行人은 확정역이 없어(확정술어표 梵行은 [정형구 행]) 慧琳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에 따라 「청정행을 닦는 이」로 옮기고 술어 선택을 불확실로 남긴다. 사전 梵行 ① 이 경 0579c04.1·0579c18.1·0580a01.1. 전거표: 팔리 Brahmacariya(⚠다른 부(MA/SA)의 대역). 沙門=사문은 대역표의 음역 처리이고 팔리 Samaṇa / 근대 Śramaṇa(大正 편자 비정)로 갈린다(慧琳 0420a16·0477b19) — 판정하지 않는다. 為…所見譏彈은 피동이다. 咄은 꾸짖는 소리라 「쯧」으로 옮겼다. 像如沙門의 像如는 한 덩어리로 「닮았는가」로 옮겼다. 威儀·行步進止·屈伸低仰·執持(사전 威儀 ① 38, 執持 ① 4). 이문: 彈 / 憚(宋) / 別(聖).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8

AG:ea123/0579c04.1 · 교차 검사

便取彈舉:『設是沙門者,宜不應爾。』

곧 붙들고 들추어 꾸짖는다: 『가령 사문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주 청정행을 닦는 이들이 꾸짖는 장면은 팔리 an3.82에 없다. 83.8과 83.10 사이가 이 장면이 놓일 자리라 83.8로 짚는다. 便取彈舉의 取는 「붙들다」로 옮겼다(사전 取 ①, 舉 ①). 0579c21.1은 같은 구절을 便見彈舉(見 피동)로 적는다 — 능동·피동이 다르다. 設…者=가령 …라면, 宜不應爾는 당위 어미가 지므로 「이래서는 안 된다」다. 沙門 전거는 0579c04.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8

AG:ea123/0579c07.1 · 교차 검사

彼作是說:『我亦是比丘!我亦是比丘!』猶如驢入牛群之中而自稱曰:『我亦是牛!我亦是牛!』然觀其兩耳復不似牛,角亦不似,尾亦不似,音聲各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도 비구다! 나도 비구다!』 마치 나귀가 소 무리 가운데 들어가 일컫기를 『나도 소다! 나도 소다!』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두 귀를 보면 소를 닮지 않았고, 뿔도 닮지 않았고, 꼬리도 닮지 않았으며, 소리도 각기 다르다.

주 「나도 비구다」 두 번 반복은 팔리 83.10(ahampi bhikkhu, ahampi bhikkhū)과 같고 위치도 결함 서술 뒤로 같다(팔리는 83.7에서도 한 번 먼저 말한다). 나귀 비유는 팔리가 앞(83.1–83.5)에 세우고 한문은 비구의 주장 뒤에 세운다 — 자리바뀜이다. 「나도 소다」 두 번 반복은 팔리 83.2(ahampi dammo, ahampi dammo)와 같다. 팔리 83.1은 나귀가 소 떼를 「뒤따른다」(piṭṭhito anubandho)이고 한문은 「소 무리 가운데 들어간다」(入牛群之中)이다 — 팔리를 우선 검토하되 본문은 한문대로 둔다. 소와 닮지 않은 점은 팔리 83.3이 빛깔·소리·발자국(vaṇṇo, saro, padaṃ)이고 한문은 귀·뿔·꼬리·소리(音聲)이다 — 소리만 겹친다. 팔리 dammo(길들일 만한 어린 수소)는 한문에서 그저 牛다. 比丘=비구([구속]),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自稱曰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亦는 모두 조사 「도」로 흡수했다. 復不似牛의 復은 「또」의 뜻을 열거 「…도」에 흡수했다. 音聲=소리, 各異=각기 다르다. 이문: 牛群 / 群牛(宋·元·明).

니까야 대응 같음 AN 3.82:83.10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AN 3.82:83.2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1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3

AG:ea123/0579c07.2 · 교차 검사

爾時,群牛或以角觝,或以脚蹋,或以口嚙者。

그때 소 떼는 혹은 뿔로 받고, 혹은 발로 밟고, 혹은 입으로 깨무는 것들이다.

주 소 떼가 나귀를 공격하는 장면은 팔리 an3.82에 없다(팔리 83.3 뒤에서 곧 83.4로 간다). 끝의 者를 「것들」로 옮겼으나 이것이 소 떼 가운데 일부를 가리키는 명사화인지 문장 종결인지 한문이 정하지 않는다. 以角觝의 以는 수단 조사로 흡수했다(慧琳 0672c19 「以猶用也」, 사전 以角 ① 이 경에만). 觝=받다, 蹋=밟다, 嚙=깨물다. 이문: 角觝 / 角觝者, 脚蹋 / 脚蹋者(宋·元·明).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3

AG:ea123/0579c11.1 · 교차 검사

今此比丘亦復如是,諸根不定,若眼見色,隨起色想,流馳萬端,爾時眼根則非清淨,生諸亂想,不能制持,眾惡普至,亦復不能護於眼根。

지금 이 비구도 또한 이와 같아서, 여러 감관이 안정되지 않아, 눈으로 색을 보면 그에 따라 색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 만 갈래로 흘러 달리고, 그때 눈의 감관은 맑고 깨끗하지 않아 여러 어지러운 생각이 생기며, 제어하고 붙잡을 수 없고, 뭇 악이 두루 이르며, 또 눈의 감관을 지킬 수도 없다.

주 「지금 이 비구도 이와 같다」는 팔리 83.6의 「이와 같이 어떤 비구는」(evamevaṃ kho…idhekacco bhikkhu)과 부분 대응이다. 이어지는 결함 서술은 0579b27.1과 같고 팔리 83.8과 엇갈린다. 亦復如是(「亦如是」 생략 표지와 글자가 다르다)는 「또한 이와 같다」로 옮겼고 접힌 안쪽이 따로 보이지 않아 펴지 않았다. 比丘 전거는 0579b22.1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8

AG:ea123/0579c12.1 · 교차 검사

耳聞聲,鼻嗅香,舌知味,身了細滑,意知法,隨起識病,流馳萬端,爾時意根則非清淨,生諸亂想,不能制持,眾惡普至,亦復不能護念意根。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향기를 맡고, 혀로 맛을 알고, 몸으로 곱고 매끄러운 감촉을 분명히 알고, 뜻으로 법을 알아, 그에 따라 식의 병이 일어나 만 갈래로 흘러 달리고, 그때 뜻의 감관은 맑고 깨끗하지 않아 여러 어지러운 생각이 생기며, 제어하고 붙잡을 수 없고, 뭇 악이 두루 이르며, 또 뜻의 감관을 지키고 새길 수도 없다.

주 0579c01.1과 같은 틀이다. 한역이 같은 감각을 0579c01.1에서는 身知細滑, 여기서는 身了細滑(了=분명히 알다)로 적고 같은 구절의 끝을 護於意根(0579c01.1)이 아니라 護念意根으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護念은 「지키고 새기다」로 옮겼으나 이문이 갈린다(念 / 於, 宋·元·明 교감주 0579036). 사전 護念 ① 17회에서는 대개 뒤에 清淨이 붙는 쓰임이라 이 자리의 뜻을 단정하지 않았다. 이문: 舌 / 口(聖).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8

AG:ea123/0579c15.1 · 교차 검사

無有威儀禮節之宜,行步進止,屈伸低仰,執持禁戒,便為梵行人所見譏彈:『咄,此愚人像如沙門?』

위의와 예절에 알맞음이 없어, 걷고 나아가고 멈추는 일, 굽히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는 일, 금하는 계를 지니는 일에서도 곧 청정행을 닦는 이들에게 비난을 당한다: 『쯧, 이 어리석은 사람이 사문을 닮았는가?』

주 0579c04.1과 같은 틀이다. 다만 0579c04.1의 「執持衣鉢,都違禁戒」가 여기서는 「執持禁戒」 하나로 줄어 있다 — 한역이 두 자리에서 다르게 적는다. 본문은 한문대로 「금하는 계를 지니는 일」이라 옮겼다. 梵行人·沙門의 처리는 0579c04.1과 같다. 이문: 彈 / 憚(宋).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8

AG:ea123/0579c18.1 · 교차 검사

便見彈舉:『設是沙門者,宜不應爾。』

곧 들추어 꾸짖음을 당한다: 『가령 사문이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주 팔리 an3.82에 대응하는 질책 구절이 없다. 便見彈舉의 見은 피동이다(0579c07.1은 便取彈舉로 능동). 이문: 彈 / 憚(宋).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8

AG:ea123/0579c21.1 · 교차 검사

爾時彼作是說:『我是沙門。』

그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문이다.』

주 팔리 83.10은 「나도 비구다」(ahampi bhikkhu)를 두 번 말하는데 한문은 「나는 사문이다」를 한 번만 말한다. 비구/사문, 「도」(亦)의 유무와 반복 횟수가 다르다. 沙門 전거: 팔리 Samaṇa / 근대 Śramaṇa — 판정하지 않는다. 이문: 爾時가 宋·元·明에는 없다(교감주 0579037).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10

AG:ea123/0579c21.2 · 교차 검사

猶如驢入於牛群,是謂人像驢者也。

마치 나귀가 소 무리에 들어간 것과 같으니, 이를 일러 사람이 나귀를 닮은 이라 한다.

주 나귀가 소 떼에 끼어 있다는 매듭은 팔리 83.4(소 떼를 뒤따른다)와 83.9(비구 대중을 뒤따른다)가 닿으나, 「이를 일러 나귀를 닮은 사람이라 한다」는 맺음말은 팔리에 없다. 猶如驢入於牛群 — 팔리의 「뒤따른다」와 한문의 「들어간다」가 다르다. 是謂=이를 일러, 也는 평서 어미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4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9

AG:ea123/0579c22.1 · 교차 검사

「彼人云何像牛者耶?

「그 사람은 어떻게 소를 닮은 이인가?

주 소를 닮은 사람을 묻는 이 단락 전체(0579c23.1~0580a11.1)는 팔리 an3.82에 대응이 없다. 팔리는 83.10에서 나귀 같은 비구의 주장을 맺고 곧 83.11로 넘어가므로 그 사이를 자리로 짚는다. 云何는 의문형 어미, 耶는 의문 종결로 어미에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79c23.1 · 교차 검사

若有一人,剃除鬚髮,著三法衣,以信牢固,出家學道。

만약 한 사람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벌의 법의를 입고 믿음으로 굳게 하여 집을 나와 도를 배운다면,

주 0579b25.2와 같다(끊어 읽기의 불확실도 같다). 소를 닮은 사람 단락이라 팔리에 대응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79c23.2 · 교차 검사

爾時,彼人諸根寂定,飲食知節,竟日經行,未曾捨離意遊三十七道品之法。

그때 그 사람은 여러 감관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먹고 마심에 절도를 알고, 하루 내내 거닐며, 마음이 서른일곱 도품의 법에 노니는 것을 일찍이 버리고 떠난 적이 없다.

주 팔리 an3.82에 대응이 없다. 寂定=고요하고 안정되다(0579b27.1의 不定=안정되지 않다와 짝이다, 사전 寂定 ① 3회). 飲食知節=먹고 마심에 절도를 알다, 竟日=하루 내내, 經行=거닐다(사전 經行 ① 48). 未曾捨離의 捨·離는 「버리고 떠난」으로 합쳐 옮겼다. 三十七道品=서른일곱 도품(사전 三十七道品 ① 6회). 전거표의 三十(triśa) 적중 2회는 三十七 안의 숫자라 해당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79c25.1 · 교차 검사

若眼見色,不起色想,亦無流馳之念,爾時眼根則應清淨,生諸善想,亦能制持,無復諸惡,常擁護於眼根。

눈으로 색을 보면 색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흘러 달리는 생각도 없으며, 그때 눈의 감관은 맑고 깨끗해질 것이니 여러 좋은 생각이 생기고, 붙잡아 제어할 수도 있고, 다시는 여러 악이 없으며, 늘 눈의 감관을 감싸 지킨다.

주 팔리 an3.82에 대응이 없다. 若은 「-면」이 지고, 則應清淨의 應은 당위 어미 자리라 「-ㄹ 것이니」로 옮겼다. 0580a09.1은 같은 자리를 則得清淨으로 적는다(이문: 得 / 應, 宋·元·明 교감주 0580003). 能은 「-ㄹ 수 있다」가 지고, 亦는 「도」로 흡수했다. 無復諸惡=다시는 여러 악이 없다(慧琳 0482a21 「謂非有也」). 擁護=감싸 지키다(慧琳 0499c15 「擁抱也…持也」, 사전 擁護 ① 17). 앞의 護(지키다)와 글자가 달라 따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79c26.1 · 교차 검사

耳聲、鼻香、口味、身細滑、意法不起識病,爾時意根則得清淨。

귀의 소리, 코의 향기, 입의 맛, 몸의 곱고 매끄러운 감촉, 뜻의 법에서 식의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때 뜻의 감관은 맑고 깨끗함을 얻는다.

주 팔리 an3.82에 대응이 없다. 한역이 혀를 0579c01.1에서는 舌(舌知味)로, 여기서는 口(口味)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한국어도 혀/입으로 갈라 두었다. 이문: 口 / 舌(宋·元·明 교감주 0579038). 耳聲·鼻香은 「귀의 소리, 코의 향기」로 옮겼다. 則得清淨의 得은 「얻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79c29.1 · 교차 검사

彼人便到諸梵行人所,諸梵行人遙以見來,各自揚聲:『善來,同學!』隨時供養,不使有短,猶如良牛入牛眾中,而自稱說:『我今是牛!』然其毛尾、耳角、音聲都悉是牛,諸牛見已,各來舐體。

그 사람이 곧 여러 청정행을 닦는 이들의 처소에 이르니, 여러 청정행을 닦는 이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각기 소리를 높여 『잘 왔다, 함께 배우는 이여!』 하며, 때에 따라 공양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니, 마치 좋은 소가 소 무리 가운데 들어가 일컫기를 『나는 이제 소다!』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털과 꼬리, 귀와 뿔, 소리가 모두 다 소이니, 여러 소들이 보고 나서 각기 와서 몸을 핥는다.

주 좋은 소가 무리에서 소로 인정받는 이 비유는 팔리에 없고, 짝을 이룬 부정형(나귀가 소와 닮지 않음, 팔리 83.3)의 거울상으로만 닿는다 — 같은 틀(빛깔·소리·발자국 / 털·꼬리·귀·뿔·소리)이 반대 방향으로 쓰이므로 엇갈림으로 적는다. 환대와 공양 장면은 팔리에 없다. 梵行人은 0579c04.1과 같이 「청정행을 닦는 이」로 옮기고 술어 선택을 불확실로 남긴다. 善來는 대역표가 의역으로 가르므로 「잘 왔다」로 옮겼다(전거표: 팔리 Sāgata만 서고 범어형은 없다). 같은 무리끼리의 말이라 평서로 통일했다(§⑦). 同學=함께 배우는 이(사전 同學 ① 2회). 不使有短의 使는 「-게 하다」가 진다. 所는 처소로 쓰여 「처소」로 옮겼다. 各自의 自는 흡수했다. 自稱說의 自는 흡수했다. 이문: 以見來 / 見來已, 短 / 乏(宋·元·明).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80a01.1 · 교차 검사

此亦如是,剃除鬚髮,著三法衣,以信牢固,出家學道。

이것도 이와 같으니, 수염과 머리를 깎고 세 벌의 법의를 입고 믿음으로 굳게 하여 집을 나와 도를 배운다.

주 此亦如是는 정형구표의 생략 표지 「亦如是」에 잡힌 형태다(이 경 1회). 이 문장은 앞의 비유를 받아 바로 아래에 출가 서술을 되풀이하며 접힌 안쪽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펴지 않고 한문 그대로 옮겼다. 출가 서술과 끊어 읽기는 0579b25.2와 같다. 이문: 牢 / 堅(宋·元·明).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80a06.1 · 교차 검사

爾時,彼人諸根寂定,飲食知節,竟日經行,未曾捨離意遊三十七道品之法。

그때 그 사람은 여러 감관이 고요하고 안정되어, 먹고 마심에 절도를 알고, 하루 내내 거닐며, 마음이 서른일곱 도품의 법에 노니는 것을 일찍이 버리고 떠난 적이 없다.

주 0579c25.1과 같다. 팔리 an3.82에 대응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80a07.1 · 교차 검사

若眼見色,不起色想,亦無流馳之念,爾時眼根則得清淨,生諸善想,亦能制持,無復諸惡,常擁護於眼根。

눈으로 색을 보면 색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흘러 달리는 생각도 없으며, 그때 눈의 감관은 맑고 깨끗함을 얻어 여러 좋은 생각이 생기고, 붙잡아 제어할 수도 있고, 다시는 여러 악이 없으며, 늘 눈의 감관을 감싸 지킨다.

주 0579c26.1과 같은 틀이며 則得清淨(得)으로 적는다. 이문: 得 / 應(宋·元·明 교감주 0580003) — 0579c26.1은 應으로 적는다. 대응 없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80a09.1 · 교차 검사

耳聲、鼻香、口味、身細滑、意法不起識病,爾時意根則得具足,是謂此人像牛者也。

귀의 소리, 코의 향기, 입의 맛, 몸의 곱고 매끄러운 감촉, 뜻의 법에서 식의 병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때 뜻의 감관은 갖추어짐을 얻으니, 이를 일러 이 사람이 소를 닮은 이라 한다.

주 팔리 an3.82에 대응이 없다. 한역이 혀를 여기서도 口(口味)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0579c01.1은 舌). 이문: 口 / 舌(宋·元·明). 앞의 0579c29.1은 則得清淨이고 여기는 則得具足이다 — 서술어가 다르다. 具足=갖추어지다(사전 具足 ① 134). 是謂…也=이를 일러 …라 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0

AG:ea123/0580a11.1 · 교차 검사

如是,諸比丘!當學如牛,莫像如驢也。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소와 같이 배우고, 나귀를 닮지 말라.

주 팔리 83.11(tasmātiha, bhikkhave, evaṃ sikkhitabbaṃ)의 권유 틀과 겹치나, 권하는 내용이 다르다. 팔리 83.12는 계·마음·지혜의 높은 공부에서 의욕이 강해지기를 다짐하는 구절이고 한문은 소를 본받고 나귀를 본받지 말라고 한다. 學如牛는 「소와 같이 배우라」와 「소와 같기를 배우라」로 갈릴 수 있어 글자 그대로 두었다. 莫像如驢의 像如는 한 덩어리로 「닮다」로 옮겼다(莫=금지). 當은 어미가 진다.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AN 3.82:83.1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AN 3.82:83.12

AG:ea123/0580a13.1 · 교차 검사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팔리 83.13(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과 틀이 같다. 다만 바로 앞의 내용이 서로 달라(0580a13.1 서술 참조) 「이렇게」가 가리키는 것은 한문은 소·나귀, 팔리는 세 공부에서의 의욕이다.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가 진다. 比丘 전거는 0580a13.1과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AN 3.82:83.13

AG:ea123/0580a14.1 · 교차 검사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팔리 83.14는 경 끝의 차례 표지(Dutiyaṃ, 둘째)뿐이고 비구들이 기뻐했다는 맺음 정형구는 없다.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다(사전 歡喜 ① 뒤: 奉行). 歡喜의 뜻풀이는 사전 歡喜 ⑤ 음의 칸에서 따로 인용한다(慧琳 0753a01, 『阿毘達磨大毘婆沙論』 음의 「歡喜悅也」 — 『禮記』 鄭注를 옮긴 주석). 이 좌표는 佛로 같은 분을 부르고 0579b22.1 등은 世尊으로 부른다(한자 흔들림).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AN 3.82:83.14

AG:ea123/0580a15.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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