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
(팔)
주 저본에는 「(八)」뿐이다. 무엇의 번호인지 저본이 말하지 않으므로 풀지 않고 옮겼다. 이 조각은 〔직역단독〕이라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투입되지 않았다. 이 경 모든 좌표의 대응은 「없음을 확인했다」(없음확인)가 아니라 「아직 안 잡았다」(미대응)로 둔다.
聞如是:
이와 같이 들었다:
주 聞 앞에 주어(我)가 없다. 한문대로 주어 없이 옮겼다(증보 금지). 如是는 뒤에 이어지는 말 전체를 가리키는 「이와 같이」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은 확정역 「부처님」[구속]. 이 경은 佛과 世尊을 섞어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통일하지 않음). 舍衛는 정착어라 정착형 「사위」로 적었다. 뜻은 음의(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에 여러 한역 풀이가 실려 있다 — 「聞者城」·「聞物國」·「無物不有國」, 그리고 善見律을 끌어 舍衛가 본래 사람 이름이라는 설. 전거_ea127은 팔리형 Sāvatthī와 당대 범어형 śravasthi를 둘 다 세운다 — 갈리는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다른 부 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은 3분할표가 「보류」(5자 이상)로 둔 덩어리다. 이름임을 판별했고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으로 적었다. 구성은 祇樹(祇陀 태자의 나무 — 음의 慧琳 0368a03: 祇陀·祇洹·祇園은 한 이름이고 태자가 자기 나무를 승단에 바쳐 「祇樹」라 함) + 給孤獨(의역; 慧琳 0368a05: 범어 阿那陀·阿那邠邸에 해당, 외로운 이를 돌보는 부호의 호 — 곧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 園(동산). 정착형을 따랐을 뿐 의역으로 풀지 않았으므로 유형 신고를 남긴다. 一時=한때, 在=계시다(주체 높임).
爾時,世尊告諸比丘:「有此二力。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두 힘이 있다.
주 世尊·比丘는 확정역 「세존」·「비구」[구속]. 比丘는 정착어다 — 음의(慧琳 0482a20)는 범어 苾蒭에 다섯 뜻(怖魔·乞士·淨命·淨戒·破惡)을 단다. 전거_ea127은 팔리형 bhikkhu와 근대 비정 Bhikṣu를 세운다(갈리는 두 계통, 판정 않음). 世尊은 앞 좌표의 佛과 다른 한자다(한자 흔들림). 有此二力은 존재 자체를 말하는 자리라 「이 두 힘이 있다」로 有를 살렸다. 二力은 사전에 표제가 있는 덩어리다(사전 二力 ① 증일아함 6회·2경, 앞 有此 1). 따옴표는 다음 좌표 이후까지 열린다.
云何為二力?
무엇이 두 힘인가?
주 云何는 의문사구로 어미 의문형이 진다. 為는 「~이다」. 판본 이문: 이 좌표의 為는 大正 원문에서는 得이다(교감주 「為【CB】【麗-CB】【聖】,得【大】」). 저본에 선 글자(為)를 따라 옮겼다.
所謂忍力、思惟力,設吾無此二力者,終不成無上正真等正覺。
이른바 참는 힘, 생각하는 힘이다. 내가 이 두 힘이 없다면 끝내 위없고 바르고 참된,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주 忍力은 「참는 힘」(사전 忍力 ① 증일아함 3회·1경, 뒤 思惟 3). 思惟力의 思惟는 3분할표가 의역으로 분류했다 — 뜻으로 「생각하는」(사전 思惟 ① 증일아함 349회·123경). 전거_ea127이 올린 팔리 후보(Bhāvana)는 MA의 대역이라 이 자리의 뜻과 맞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저본이 이기므로 글자 뜻을 따랐다. 設…者는 가정 틀이라 「-다면」으로 흡수했고 設을 따로 부사로 세우지 않았다. 吾는 「내」. 저본은 시제를 표시하지 않으므로 「-ㄹ 것이다」로 두었다. 終不成은 「끝내 ~되지 못할 것이다」. 終은 부정을 강조하는 뜻이 실려 「끝내」로 살렸다. 無上正真等正覺에서 等正覺은 확정역 「바르게 깨달으신 분」[구속]이다. 成은 「되다」로 옮겨 이 확정 문자열이 문장에 서도록 했다. 無上은 범어 당대 후보 anuttara가 전거에 있다(사전 無上 ① 뒤 正真 26). 正真은 「바르고 참된」.
又無此二力者,終不於優留毘處六年苦行,亦復不能降伏魔怨,成無上正真之道,坐於道場。
또 이 두 힘이 없다면 끝내 우류비 처소에서 육 년을 고행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원수인 마를 항복시켜 위없고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고 도량에 앉을 수 없을 것이다.
주 優留毘는 표에 없는 이름이다. 한자 뜻으로 읽히지 않고(優·留·毘) 뒤에 處가 붙는 지명 꼴이라 음역으로 판별하고 한자 독음 「우류비」로 적었다. 전거표에도 없어 근거는 이 판별뿐이다. 六年苦行은 3분할표가 「혼합」으로 분류했으나 苦(괴로움)와 行(수행) 모두 뜻으로 옮긴 말이라 음역자가 섞이지 않았다. 표와 어긋나므로 저본을 따라 「고행」으로 옮겼다(사전 六年苦行 ① 증일아함 1회·1경, 이 경에만). 魔怨은 「원수인 마」로 옮겼다. 「마의 원수」로 읽는 길도 있다(사전 魔怨 ① 증일아함 4회·4경, 앞 降伏 3). 음의(慧琳 0496b20)는 魔를 第六天主로 풀고 波旬(惡者)을 그 이름으로 든다. 降伏은 「항복시키다」. 不能降伏魔怨,成…,坐…는 不能이 降伏·成·坐 셋에 걸리는 것으로 읽어 연쇄로 옮겼다. 亦復는 앞 항목에 하나를 더하는 뜻이 실려 「또한」으로만 살렸고 復는 따로 옮기지 않았다. 道場은 정착어 「도량」이다. 전거는 당대 범어형 voddhimaṇḍala를 세운다(사전 道場 ① 증일아함 2회·1경, 앞 坐於 2).
以我有忍力、思惟力故,便能降伏魔眾,成無上正真之道,坐於道場。
내게 참는 힘, 생각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곧 마의 무리를 항복시켜 위없고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고 도량에 앉을 수 있었다.
주 以…故는 「-기 때문에」,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힘이 있기」로 살렸다. 便能은 「곧 ~할 수 있었다」. 앞 좌표의 1인칭 吾와 여기의 我는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다(둘 다 「나」). 魔眾은 「마의 무리」. 판본 이문: 聖본은 以를 已로, 宋·元·明본은 忍力 앞에 此를 더한다. 본문은 大正 저본대로 두었다.
是故,諸比丘!當求方便,修此二力,忍力、思惟力,便成須陀洹道、斯陀含道、阿那含道、阿羅漢道,於無餘涅槃界而般涅槃。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방편을 구하라. 이 두 힘, 참는 힘과 생각하는 힘을 닦으면 곧 수다원의 도, 사다함의 도, 아나함의 도, 아라한의 도를 이루고, 남음 없는 열반계에서 반열반에 든다.
주 當求方便은 증일아함의 상투구다(사전 方便 ① 증일아함 262회·161경, 앞 當求 94). 方便은 정착어 「방편」을 두었고 이 자리의 뜻이 「방법」인지 「힘씀」인지 저본만으로 못 정한다. 當求方便,修此二力…便成은 「구하라 / 닦으라 / 곧 이룬다」의 연쇄다. 「닦으면 곧 이룬다」로 조건을 세운 것은 우리의 구두 선택이다. 須陀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은 음역이다. 한국 불교계 정착형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을 썼다(須陀洹의 한자 독음 「수타환」과 다른 정착형을 택했음을 신고한다. 정형구 행에 須陀洹이 있으나 낱말 확정이 아니다). 음의(慧琳 0441b25~0441c03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가 뜻을 푼다 — 須陀洹=入流, 斯陀含=一來, 阿那含=不還. 阿羅漢(慧琳 0441b10)은 應供·殺賊·不生·遠惡 등 여러 뜻을 단다. 전거_ea127은 이 넷의 팔리형(Sotāpanna·Sakadāgāmin·Anāgāmin·Arahatta/Arahaṁ)과 근대 비정(Srota-āpanna·Anāgāmin·Arhat)을 세운다(전거표 요약: 팔리·범어가 둘 다 서는 것 5종이 모두 갈림, 판정 않음). 無餘涅槃界는 3분할표가 「보류」로 둔 덩어리다. 이름이 아니라 교리 술어로 판별하여 無餘=「남음 없는」, 涅槃=「열반」, 界=「계」로 옮겼다(慧琳 0463b14: 涅槃은 圓寂으로 번역). 후보는 「무여열반계」와 「남음 없는 열반계」이고 확정역이 없다. 般涅槃은 3분할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두 글자 모두 소리를 옮긴 음역이어서 정착형 「반열반」으로 적었다. 於…而는 「-에서」와 연결 어미로 흡수했다.
如是。
이와 같다.
주 저본이 마침표로 따로 끊은 한 낱말 문장이다. 앞 설법을 가리키는 맺음말로 읽었다. 다음 좌표 「諸比丘!當作是學」에 이어 읽을 여지도 있으나 저본의 분절대로 끊었다.
諸比丘!當作是學。」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當作是學의 當은 어미 「-라」로 흡수했다. 作是는 「이렇게」. 세존의 말씀이 여기서 닫힌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은 확정역 「부처님」[구속]. 설법 장면의 世尊과 다른 한자를 쓴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所說은 「말씀하신 것」(관형절로 풀어 「바」를 쓰지 않음). 歡喜奉行은 증일아함 종결 정형구다(사전 奉行 ① 증일아함 505회·450경, 앞 歡喜 450). 이 경에는 乃至·亦如是·廣說·如上의 생략 표지가 없다(정형구_생략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