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삼)
주 제목 칸으로, 한문에는 번호 「(三)」만 있다.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은 이 조각에 투입되지 않아 대응은 아직 잡지 않았다(미대응).
聞如是:
이렇게 들었다:
주 聞如是는 개경 정형구다(정형구표: 이 아함 전권 453, 이 경 1). 如是=이렇게(사전 如是 ① 이 경 0.2). 증언 미투입이라 대응은 미대응으로 둔다.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주 佛=부처님([구속]). 舍衛=사위는 정착어(대역표). 이름의 뜻은 慧琳 0367c24〔金剛般若波羅蜜經〕이 「梵語訛也…義譯云無物不有國…此譯云聞者城…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로 여러 풀이를 늘어놓는다. 어느 쪽이 맞는지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표: 팔리 Sāvatthī / 범어(당대) śravasthi — 두 계통이 갈리며(⚠다른 부(DA)의 대역) 판정하지 않는다. 祇樹給孤獨園은 대역표가 5자 이상이라 보류로 둔 이름이다. 祇樹(제따 태자의 숲, 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給孤獨(아나타삔디까를 뜻으로 옮긴 호칭, 慧琳 0368a05 「亦義譯也…誓救孤獨時人以為其號」)+園으로 가른다. §⑤는 給孤獨을 의역(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으로 규정하는 한편 정착어 예로 기수급고독원을 들어 서로 부딪히므로,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을 쓰고 이 충돌을 정도평에게 남긴다. 전거표: 팔리 Jetavana, Anāthapiṇḍika(⚠다른 부(DA)의 대역). 한 경 안에서 佛(이 좌표·0579a27.1·0579b20.1)과 世尊(0579a25.1·0579a27.1·0579a27.2)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은 각각 부처님·세존이라 한국어도 갈린다).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當說烏喻,亦當說猪喻,善思念之,吾當演說。」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까마귀의 비유를 말하겠고, 돼지의 비유도 말하겠다. 그것을 잘 생각하고 새기라. 내가 펼쳐 말하겠다.」
주 世尊=세존, 比丘=비구([구속]). 當은 어미 -겠다/-라가 지므로(앵커) 부사를 달지 않았다. 亦는 조사 「도」로 흡수했다. 諸比丘의 諸는 「비구들」의 복수로 흡수했다. 烏=까마귀, 喻=비유. 演說=펼쳐 말하다(사전 演說 ① 이 경 0579a25.1·0579a28.1·0579b05.2). 思念은 두 글자를 모두 살려 「생각하고 새기라」로 옮겼다. 比丘는 전거표에서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大正 편자 비정)로 갈린다 — 판정하지 않는다. 世尊(이 좌표)과 佛(0.3 등)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對曰:「如是。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주 對曰의 주어(비구들)는 한문에 없다. 如是는 응낙하는 대답이다(사전 如是 ① 발화 첫머리 216/1578, 이 경 0579a26.1). 앵커의 如[비유·가정]는 여기서 如是 한 덩어리로 쓰여 비유가 아니다. 비구들의 발화이고 청자가 세존이므로 존댓말로 통일했다(§⑦).
世尊!」是時,諸比丘從佛受教。
세존이시여!」 그때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주 世尊은 호격이라 「세존이시여」로 옮겼다. 從佛受教=부처님께 가르침을 받다(사전 教 ① 「앞: 佛受 42」). 受는 확정술어표의 [정형구 행] 受(vedanā)가 아니라 동사 「받다」다. 教는 앵커의 [사역·가르침] 가운데 「가르침」으로 판정했다. 같은 좌표에서 世尊과 佛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한자 흔들림).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
世尊告曰:「彼云何名為人喻如烏?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무엇을 일러 사람을 비유하면 까마귀와 같다고 이름하는가?
주 彼云何名為人喻如烏의 끊어 읽기를 「彼 / 云何 名為 / 人喻如烏」로 잡았다(云何는 의문형 어미가 진다). 彼를 「그것은」으로 옮긴 것과 人喻如烏를 한 덩어리 호칭으로 읽은 것은 다른 구문(예: 「그 사람은 어찌 까마귀와 같다 하는가」)과 갈릴 수 있어 불확실로 남긴다. 이문: 宋·元·明에는 名이 없다(교감주 0579019). 大正 본문을 따랐다. 世尊(이 좌표)과 佛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
猶如有人在寂靜處,恒習婬欲,作諸惡行,後便羞恥,便自悔過,向人演說,陳所作事。
마치 어떤 사람이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늘 음욕을 익히고, 여러 악한 행위를 짓고, 뒤에 곧 부끄러워하며, 곧 허물을 뉘우쳐 사람들에게 펼쳐 말하고, 지은 일을 진술하는 것과 같다.
주 猶如가 이끄는 절이 한문에서 술어 없이 끝나므로 「-것과 같다」로 猶如를 옮겼다. 有人의 有는 「어떤 사람이」로 흡수했다. 寂靜處=고요한 곳(사전 寂靜 ① 뒤: 之處 11). 婬欲=음욕, 惡行=악한 행위(사전 惡行 ①). 自悔過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悔過=허물을 뉘우치다(사전 悔過 ① 向人 4). 演說=펼쳐 말하다, 陳=진술하다, 所作事=지은 일(전거표: 범어(당대) kariṇya). 이문: 婬 / 婬泆(宋·元·明) / 淫(聖) — 의미 차이가 없어 大正 본문을 따랐다.
所以然者,或為諸梵行人,所見譏彈:『此人習欲,作諸惡行。』
그러한 까닭은, 혹 여러 청정행을 닦는 이들에게 비난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욕망을 익히고 여러 악한 행위를 짓는다.』
주 所以然者=그러한 까닭은. 或은 가능성을 나타내므로 「-ㄹ 수 있다」로 옮겼다. 為…所見譏彈은 피동이다. 梵行人은 확정역이 없다(확정술어표의 梵行은 [정형구 행]으로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慧琳 0698c19〔四分律〕 「梵言梵摩此云清淨…正言寂靜」에 따라 「청정행을 닦는 이」로 옮기되 술어 선택은 불확실로 남긴다. 사전 梵行 ① 이 경 0579b01.1·0579b07.1. 전거표: 팔리 Brahmacariya(⚠다른 부(MA/SA)의 대역). 習欲는 習婬欲의 줄임으로 보아 「욕망을 익히고」로 옮겼다. 이문: 彈 / 憚(宋) / 別(聖).
彼作諸惡行已,向人悔過,自知羞恥,猶如彼烏恒患苦飢,便食不淨,尋即拭𠿘,恐有餘鳥見言:『此烏食不淨。』
그는 여러 악한 행위를 짓고 나서 사람들에게 허물을 뉘우치고 부끄러움을 알아, 마치 저 까마귀가 늘 굶주림의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곧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고, 곧바로 부리를 닦으며 다른 새가 보고 『이 까마귀가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는다』고 말할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
주 自知羞恥의 自는 흡수했다(사전 自知 ① 이 경 0579b02.1). 猶如彼烏…는 앞 사람의 행동에 견주는 비유절이다. 恒患苦飢=늘 굶주림의 괴로움에 시달리다. 尋即은 두 글자 모두 「곧」이라 「곧바로」로 한 번에 옮겼다(사전 尋 ①, 即 ①). 不淨=깨끗하지 못한 것(사전 不淨 ① 이 경 0579b02.1). 𠿘은 大正이 쓴 자형이고 宋·元·明은 觜이므로 「부리」로 옮기되 자형 이문으로 신고한다(교감주 0579022). 餘鳥의 鳥는 宋·元·明·聖에서 烏이다(교감주 0579023) — 大正 본문을 따라 「다른 새」로 옮겼고, 이문대로면 「다른 까마귀」다. 有餘鳥의 有는 흡수했다.
此亦如是。
이것도 이와 같다.
주 亦如是는 정형구표의 생략 표지에 잡힌 형태다(이 경 2회). 이 문장은 앞의 까마귀 비유를 받아 바로 다음 단락의 풀이를 여는 연결문이라 접힌 안쪽이 따로 보이지 않는다. 펴지 않고 한문 그대로 옮겼다. 亦는 조사 「도」로 흡수했다.
若有一人在閑靜處,習於婬欲,作不善行,後便羞恥而自悔過,向人演說陳所作事。
만약 한 사람이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음욕을 익히고 좋지 않은 행위를 짓고, 뒤에 곧 부끄러워하여 허물을 뉘우치고, 사람들에게 펼쳐 말하며 지은 일을 진술한다면.
주 若은 연결어미 「-면」이 진다(앵커). 有一人의 有는 「한 사람이」로 흡수했다(사전 有一人 ① 이 경 0579b05.2). 閑靜은 0579a28.1의 寂靜과 글자가 달라 「한적하고 고요한」으로 따로 옮겼다. 不善行=좋지 않은 행위(사전 不善 ①). 而는 흡수했다. 이 若절의 주절은 다음 좌표 0579b07.1의 是謂名為人猶如烏다. 이문: 婬 / 淫(聖).
所以然者,或為諸梵行人所見記識,此人習欲,作諸惡行,是謂名為人猶如烏。
그러한 까닭은, 혹 여러 청정행을 닦는 이들에게 기억되어 알아보여질 수 있으니, 이 사람이 욕망을 익히고 여러 악한 행위를 짓는다는 것이다. 이를 일러 사람이 까마귀와 같다고 이름한다.
주 為…所見記識은 피동이다. 記識=기억하여 알아보다(사전 記 ①, 識 ①). 한문에는 따옴표가 없어 0579b01.1과 달리 인용부호를 달지 않았다. 梵行人은 0579b01.1과 같이 「청정행을 닦는 이」로 옮기고 술어 선택을 불확실로 남긴다(慧琳 0698c19). 是謂名為人猶如烏=이를 일러 사람이 까마귀와 같다고 이름한다.
「彼云何名為人如猪。
「그것은 무엇을 일러 사람이 돼지와 같다고 이름하는가?
주 구문은 0579a27.2와 같은 틀이나 여기에는 喻가 없다. 이문: 名為人 = 為人喻(宋·元·明)(교감주 0579024) — 大正 본문을 따랐다. 云何는 의문형 어미가 진다.
若有一人在閑靜處,長習婬欲,作諸惡行,亦不羞恥,復非悔過,向人自譽,貢高自用:『我能得五欲自娛,此諸人等不能得五欲。』
만약 한 사람이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오래도록 음욕을 익히고 여러 악한 행위를 짓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허물을 뉘우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칭찬하고 교만하여 제멋대로 하면: 『나는 다섯 욕망을 얻어 즐길 수 있지만, 이 여러 사람들은 다섯 욕망을 얻을 수 없다.』
주 在閑靜處는 0579b05.2와 같다. 亦不羞恥의 亦는 조사 「도」로 흡수했고, 復非悔過의 非는 不과 구별해 「뉘우치는 것도 아니며」로 옮겼다. 自譽의 自는 대상 재귀라 「자신을」로 옮겼다. 貢高自用=교만하여 제멋대로 하다(慧琳 0442b15 「自恃尊高…自高陵物…謂之貢高」, 사전 貢高 ① 이 경 0579b10.1). 能得은 「-ㄹ 수 있다」가 진다(앵커). 自娛는 「즐기다」로 흡수했다(慧琳 0488c14 「樂也」, 사전 自娛 ①). 五欲=다섯 욕망(사전 五欲 ① 이 경). 此諸人等의 諸·等은 「여러 사람들」로 합쳐 옮겼다. 이문: 非 / 不(宋·元·明)(교감주 0579025), 婬 / 淫(聖).
彼作惡已,不羞恥,此人喻如猪,恒食不淨,臥於不淨,便自跳踉向於餘猪。
그는 악을 짓고 나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 사람은 비유하면 돼지와 같다. 늘 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고 깨끗하지 못한 데에 누우며, 곧 날뛰면서 다른 돼지를 향한다.
주 恒食不淨 이하의 주어가 사람인지 돼지인지 한문이 정하지 않는다. 주어를 세우지 않고 한문대로 두었다. 便自跳踉의 自는 흡수했고 跳踉=날뛰다. 向於餘猪의 於는 흡수했다(餘猪=다른 돼지). 이문: 不 / 不知(宋·元·明)(교감주 0579026) — 이문대로면 「부끄러운 줄 알지 못하니」가 된다. 大正 본문을 따랐다.
此亦如是。
이것도 이와 같다.
주 0579b05.1과 같다. 정형구표의 亦如是 2회 중 두 번째이며, 앞의 돼지 비유를 받아 다음 단락의 풀이를 여는 연결문이다. 접힌 안쪽이 따로 보이지 않아 펴지 않았다.
若有一人習於婬欲,作諸惡行,亦不羞恥,復非悔過,向人自譽,貢高自用:『我能得五欲自娛,此諸人不能得五欲自娛。』
만약 한 사람이 음욕을 익히고 여러 악한 행위를 짓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허물을 뉘우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칭찬하고 교만하여 제멋대로 하면: 『나는 다섯 욕망을 얻어 즐길 수 있지만, 이 여러 사람들은 다섯 욕망을 얻어 즐길 수 없다.』
주 0579b10.1과 같은 틀이며 在閑靜處와 長이 없고, 끝 구절이 不能得五欲自娛로 自娛까지 이어져 「얻어 즐길 수 없다」로 옮겼다. 이문: 婬 / 淫(聖).
是名為人如猪。
이것을 사람이 돼지와 같다고 이름한다.
주 是名為人如猪. 이문: 名為人 = 謂為人(宋·元·明)(교감주 0579027) — 大正 본문을 따랐다.
是故,諸比丘!當捨遠離。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버리고 멀리 떠나라.
주 是故=그러므로. 當은 어미 -라가 진다(앵커). 捨遠離=버리고 멀리 떠나라(사전 遠離 ① 이 경 0579b18.2).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
如是,諸比丘!當作是學。」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이렇게 배우라.」
주 當作是學=이렇게 배우라(當은 어미 -라가 진다). 앞 구절의 如是는 비유가 아니라 「이와 같이」다.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佛所說의 所는 관형절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다(사전 歡喜 ① 「뒤: 奉行 450」). 이문: 聖본에는 諸가 없다(교감주 0579028) — 이문대로면 「비구」 단수다. 大正 본문을 따랐다. 이 좌표는 佛로 같은 분을 부르고 다른 좌표는 世尊으로 부른다(한자 흔들림). 比丘 전거: 팔리 bhikkhu / 근대 Bhikṣu — 판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