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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Ā 14

DĀ 14

교차 검사교차 검사 230현대역 준비 중

(一四)佛說長阿含第二分釋提桓因問經第十

(14) 부처님이 설한 장아함 제2분 석제환인이 물은 경 제10

주 제목. 【明】은 「佛說長阿含」을 뺀다(교감주). 한역 제목은 「부처님이 설한 장아함 제2분」이 앞에 붙고 「제10」이라는 번호를 지니며, 팔리 쪽은 「8」이라는 번호에 경 이름(석제환인의 물음)만 있다 — 번호 체계가 다르다. 「석제환인」은 소리 옮김(음역)이므로 한자 독음으로 적었고, 「問經」의 問은 뜻대로 「물은」으로 옮겼다(「문경」 음독 회피). 「장아함」은 3분할표의 음역(長阿含=Dīgha-nikāya)·정착어로 보아 정착형을 쓴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은 이 경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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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da14/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29회, 이 경 1회). 앵커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이와 같이」의 정형구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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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da14/0062b29.1 · 교차 검사

一時,佛在摩竭國菴婆羅村北,毘陀山因陀娑羅窟中。

한때 부처님이 마갈국 암바라촌 북쪽, 비타산의 인다사라 굴 가운데 있었다.

주 고유명은 모두 음역으로 보아 한자 독음을 따랐다(마갈=摩竭·Magadha, 암바라=菴婆羅·Amba, 비타=毘陀·Vediyaka, 인다사라=因陀娑羅·Indasāla; 3분할표·전거 대장). 3분할표는 毘陀를 「의역」으로 분류하나 팔리 Vediyaka의 소리를 옮긴 것으로 보여 표 분류보다 저본의 소리 옮김을 따랐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한역은 「암바라촌 북쪽」만 말하고 팔리의 「라자가하 동쪽」·「바라문 마을」·「이름하는」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한역 이 좌표 안에 없음). 「在」는 위치를 서술하는 동사로 「있었다」. 一時는 사전 一時 ① 이 경 0062b29.2의 쓰임(한 번의 시점을 여는 말).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4.2

AG:da14/0062b29.2 · 교차 검사

爾時,釋提桓因發微妙善心,欲來見佛:「今我當往至世尊所。」

그때 석제환인이 미묘하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 와서 부처님을 뵙고자 하였다: 「이제 내가 가서 세존 계신 곳에 이르리라.」

주 釋提桓因은 3분할표가 「의역/혼합」으로 갈라 두었으나, 釋提=Sakka(ra)·桓因=Inda(ra)로 두 마디가 모두 소리이므로 음역으로 판별하고 한자 독음 「석제환인」으로 적었다. 근거: 一切經音義(慧琳) 0482c21 「釋迦提婆因達羅…即釋中天帝也」(전거 대장은 팔리형과 근대 범어형을 함께 싣는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팔리는 석제환인에게 부처님을 뵙고자 하는 열의가 일어난 뒤 「세존은 지금 어디 계신가」 하고 생각한다(344.5); 한역은 이미 가기로 정하고 말한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이다. 팔리의 「신통(천안)으로 마가다에 계심을 봄」(344.6)에 해당하는 말은 이 좌표에 없다. 世尊(확정 세존)·佛(확정 부처님)이 한 좌표에 갈마들어 쓰이므로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 當은 어미 「-리라」로 흡수, 所는 「계신 곳」으로 처소화. 微妙는 정착어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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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da14/0062c01.1 · 교차 검사

時,諸忉利天聞釋提桓因發妙善心,欲詣佛所,即尋詣帝釋,白言:「善哉!帝釋!發妙善心,欲詣如來,我等亦樂侍從詣世尊所。」

그때 여러 도리천이 석제환인이 미묘하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 계신 곳에 가고자 함을 듣고, 곧 이어 제석에게 나아가 아뢰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제석이여! 미묘하고 선한 마음을 일으켜 여래께 가고자 하시니, 저희도 또한 기꺼이 모시고 따라 세존 계신 곳에 가고자 합니다.」

주 팔리는 석제환인이 도리천의 신들을 불러 「우리가 세존을 뵈러 가면 어떻겠는가」 하고 제안하고(344.7-344.9) 신들이 따르겠다고 답한다(344.10). 한역은 방향이 반대다 — 신들이 석제환인의 마음을 듣고 먼저 찾아와 동행을 청한다. 팔리의 제안문(344.8-9)은 한역에 없다. 忉利天=도리천은 음역으로 한자 독음(전거: 慧琳 0465b04 「此云三十三天」), 「諸忉利天」은 어순대로 「여러 도리천」. 帝釋은 釋提桓因의 줄임으로 같은 존재를 다른 한자로 부른다 — 한자 흔들림. 佛所·如來·世尊도 한 좌표에 쓰였다(확정 부처님·여래·세존). 善哉는 사전 善哉 ①의 칭찬 응답, 감탄 어미(哉)가 진다. 신들의 말은 윗사람 제석에게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로 통일. 即尋의 두 「곧」은 사전 尋 ①(즉시)에 따라 「곧 이어」로 합친다. 亦는 석제환인의 뜻에 신들도 같이한다는 병렬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이문: 【宋】【元】【明】은 「發」을 「發微」로 읽는다(저본은 大正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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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4.10

AG:da14/0062c03.1 · 교차 검사

時,釋提桓因即告執樂神般遮翼曰:「我今欲詣世尊所,汝可俱行,此忉利諸天亦當與我俱詣佛所。」

그때 석제환인이 곧 음악을 쥔 신 반차익에게 일러 말하였다: 「나는 이제 세존 계신 곳에 가고자 하니, 그대는 함께 가라. 이 도리의 여러 천도 또한 나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에 가리라.」

주 팔리는 「판차시카여, 세존께 가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형이고(345.3) 한역은 「그대는 함께 가라」는 명령에 도리의 여러 천이 동행한다는 말이 더해진다. 執樂神은 3분할표가 음역(Gandhabba)으로 분류하나 한자는 「음악을 쥔 신」이라는 뜻을 옮긴 의역으로 읽혀 뜻으로 옮겼다(乾沓和가 소리 옮김 짝)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般遮翼은 3분할표가 의역으로 두었으나 般遮=pañca(다섯)의 소리, 翼=sikha(상투·볏)의 뜻을 옮긴 音義合璧으로 보여 「반차익」으로 적고 판별을 신고한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忉利諸天은 3분할 혼합이며 忉利(음)+諸天(뜻)을 「도리의 여러 천」으로 적었다. 世尊·佛 흔들림. 석제환인의 말은 평서(해라체) — 상대가 아랫사람이다. 可는 명령으로, 當은 -리라로 흡수. 亦는 「그대에 더하여 천들도」라는 첨가가 실려 「또한」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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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da14/0062c06.1 · 교차 검사

對曰:「唯然!」時,般遮翼持琉璃琴,於帝釋前忉利天眾中鼓琴供養。

대답하여 말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때 반차익이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제석 앞, 도리천의 무리 가운데에서 거문고를 타 공양하였다.

주 唯然은 사전 唯然 ① 「발화 첫머리 36/37」의 응낙 정형이라 앵커의 한정 「唯」로 풀지 않았다. 윗사람 제석에게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 琉璃琴: 琉璃는 3분할표가 의역으로 두나 보석 이름으로 굳은 말이어서 정착형 「유리」를 쓰고, 琴은 「거문고」로 옮겼다. 음의 근거: 慧琳 0666b13 「以吠瑠璃寶作之琴亦天樂具也」. 팔리 쪽은 beluva(벨루바 나무)로 만든 누런 비나(beluvapaṇḍuvīṇā)라 재질이 다르다(3분할 주석 gloss Beluva) — 한역자가 다른 재료로 읽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팔리는 「스승 곁에 따르러 갔다」(anucariyaṃ upāgami)이고 한역은 천들 앞에서 거문고를 타 공양한다 — 鼓琴供養은 팔리 이 자리에 없다. 이문: 琉璃를 【聖】은 「流離」로 쓴다. 供養은 정착어 「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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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da14/0062c08.1 · 교차 검사

時,釋提桓因、忉利諸天及般遮翼,於法堂上忽然不現,譬如力士屈伸臂頃,至摩竭國北毘陀山中。

그때 석제환인, 도리의 여러 천, 그리고 반차익이 법당 위에서 갑자기 나타나지 않게 되었으니, 비유하면 힘센 사람이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와 같이 마갈국 북쪽 비타산 가운데에 이르렀다.

주 팔리는 비유(힘센 사람이 굽힌 팔을 펴듯)를 먼저 세우고 「도리천 신들 가운데서 사라져」 나타난다(346.1-2). 한역은 서술을 먼저, 비유를 뒤에 놓고 「법당 위에서」라는 장소를 단다 — 팔리 346.1에는 장소가 「도리천 신들 가운데」로 되어 있다. 法堂은 3분할 혼합(Sudhammā)이나 이 좌표에는 法만 있어 「법당」으로 적었다 — 한국어 「법당」은 일반 불전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라 오독 소지가 있어 신고한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力士는 사전 ⑥에 말라족을 가리키는 용례가 있으나 이 좌표의 譬如 문맥에서는 「힘센 사람」으로 새겼다. 譬如는 「비유하면…같이」. 팔리의 「사라짐-나타남」 쌍이 한역에서는 「나타나지 않음-이름」 쌍으로 나타난다(번역기법: 인도어 동사 antarahita/paccuṭṭhāsi를 한문이 풀어 옮긴 꼴).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6.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6.2

AG:da14/0062c10.1 · 교차 검사

爾時,世尊入火焰三昧,彼毘陀山同一火色,時國人見,自相謂言:「此毘陀山同一火色,將是如來諸天之力。」

그때 세존이 불꽃 삼매에 들었다. 저 비타산이 하나같이 불의 빛이었다. 그때 나라 사람들이 보고 서로 일러 말하였다: 「이 비타산이 하나같이 불의 빛이니, 아마 여래와 여러 천의 힘일 것이다.」

주 팔리는 산이 「지나치게 빛났다」(obhāsajāta)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비디야카 산이 타고 있다, 불붙고 있다」며 놀라 털이 곤두선다(346.5). 한역은 世尊이 火焰三昧(사전: 이 경에만 나오는 낱말)에 들었다는 원인 서술이 더해지고, 산이 「불의 빛」이라 하며 사람들의 말도 「여래와 여러 천의 힘」으로 갈린다 — 팔리는 천들의 위력(devānubhāva)만 든다. 「如來諸天之力」은 「여래와 천」의 병렬인지 「여래의 천들」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병렬로 옮기고 신고한다 [불확실:구두·분절]. 三昧는 정착어 「삼매」(마음이 하나로 모인 선정의 상태). 火焰은 뜻대로 「불꽃」. 自相謂言의 自는 단순 재귀(사전 自相 ① 13회가 謂言 11회와 쓰임)라 흡수하고 「서로」만 세웠다. 將是는 추측이 실려 「아마…일 것이다」. 國人은 「나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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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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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da14/0062c12.1 · 교차 검사

時,釋提桓因告般遮翼曰:「如來、至真甚難得覩,而能垂降此閑靜處,寂默無聲,禽獸為侶,此處常有諸大神天侍衛世尊,汝可於前鼓琉璃琴娛樂世尊,吾與諸天尋於後往。」

그때 석제환인이 반차익에게 일러 말하였다: 「여래, 아라한은 매우 뵙기 어렵다. 그러나 이 한가롭고 고요한 곳에 내려올 수 있으니, 고요히 잠잠하여 소리가 없고 새와 짐승이 벗이 된다. 이곳에는 늘 여러 큰 신과 천이 세존을 모시고 호위한다. 그대는 앞에서 유리 거문고를 타 세존을 즐겁게 하라. 나는 여러 천과 함께 곧이어 뒤에 가리라.」

주 팔리 347.2는 「나 같은 이가 여래께 다가가기 어렵다, 선정에 들어 즐기시고 고요히 홀로 계신다」이고, 347.3은 「그대가 먼저 세존을 기쁘게 하면 우리가 뒤에 간다」이다. 한역의 「새와 짐승이 벗」·「큰 신과 천이 호위」는 팔리 이 자리에 없다. 如來·至真(확정 여래·아라한)과 世尊이 한 말 안에서 같은 분을 가리킨다 — 한자 흔들림. 앵커 能은 「수 있다」로 지고(而能垂降 → 「그러나…내려올 수 있으니」, 而의 역접은 어미 「-으나」가 진다), 難得覩의 得은 「뵙기 어렵다」에 흡수. 垂降의 垂(드리워)는 낱말 하나로 풀리지 않아 「내려올」로 두었다. 常有의 有는 「이곳에는 늘 …이」로 주어화했다. 「諸大神天」은 「큰 신」+「천」인지 「큰 신천」인지 갈려 병렬로 옮겼다 [불확실:구두·분절]. 侍衛는 「모시고 호위한다」. 可는 명령으로 흡수, 尋은 사전 尋 ①의 「곧」.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47.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7.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7.3

AG:da14/0062c14.1 · 교차 검사

對曰:「唯然!」即受教已,持琉璃琴於先詣佛。

대답하여 말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곧 가르침을 받고 나서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먼저 부처님께 나아갔다.

주 팔리는 「그리하겠습니다, 대덕이여」 하고 벨루바 비나를 들고 인다사라 굴로 간다. 唯然은 사전 唯然 ① 응낙 정형. 受教已의 已는 「받고 나서」로 종결을 세웠다. 於先의 於는 흡수. 教는 이 자리에서 석제환인의 분부로 읽혀 「가르침」으로 적었다 — 사전 教 ①의 뒤 연어 「已即」(11회)이 이 자리의 짜임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7.4

AG:da14/0062c18.1 · 교차 검사

去佛不遠,鼓琉璃琴,以偈歌曰:

부처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유리 거문고를 타며 게송으로 노래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 347.5는 「이만큼이면 세존께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아 내 소리를 들으시리라」는 생각을 밝히고 한쪽에 서며, 348.1은 노래가 「불·법·승·아라한·애욕과 이어진」 게송이라고 열거한다 — 한역에는 이 두 말이 없다. 去佛不遠의 去는 「~에게서 떨어짐」, 以는 「게송으로」의 도구격.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7.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

AG:da14/0062c20.1 · 교차 검사

「跋陀禮汝父,汝父甚端嚴;

「발타여, 그대의 아버지께 예를 올리니, 그대의 아버지는 매우 단정하고 엄숙하다;

주 跋陀는 호격으로 쓰인 여인의 이름(팔리 Bhaddā)의 소리 옮김이라 한자 독음 「발타」. 팔리 348.2는 아버지의 이름(팀바루)과 딸의 다른 이름(수리야밧차사)을 들지만 한역에는 이름이 없고 「매우 단정하고 엄숙하다」(端嚴; 사전: 이 경 외 2경)가 대신 선다. 팔리 348.28-29의 「절하며 예배한다」(vandamāno namassāmi)가 한역 禮에 겹친다. 禮는 「예를 올리다」(頭面禮足의 禮와 같은 쓰임, 음독 회피). 이 게송은 노래하는 이의 말로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8

AG:da14/0062c21.1 · 교차 검사

生汝時吉祥,我心甚愛樂。

그대를 낳을 때 길하고 상서로웠으니, 내 마음이 몹시 사랑하고 즐거워한다.

주 팔리 348.3은 「그대를 낳았으니 어여쁜 이여, 나에게 기쁨을 낳는 이」다. 한역 「吉祥」은 이 자리에서 길하고 상서로운 일로 읽혔고, 3분할표가 올린 팔리형(Assattha)은 다른 부의 대역이라 여기에 쓰지 않았다. 愛樂은 3분할 혼합(Rāga)이나 보통 복합어로 「사랑하고 즐거워한다」. 이문: 【宋】【元】【明】은 汝를 女로 읽어 「딸을 낳을 때」가 된다 — 저본은 汝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따옴표는 0063a15.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3

AG:da14/0062c22.1 · 교차 검사

本以小因緣,欲心於中生;

본래 작은 인연으로 욕망의 마음이 그 가운데서 생겼고;

주 팔리 348.16은 「나의 욕망은 본래 작았는데, 곱슬머리 여인이여」로 호격이 있고 「작은 인연」에 해당하는 말은 없다. 한역은 小因緣(작은 인연)을 원인으로 든다. 이 게송 구간의 배열이 팔리와 다르다(한역 0062c23-28은 팔리 348.16-17·22-25에 해당). 欲心은 「욕망의 마음」, 於中은 「그 가운데서」. 이문: 【宋】【元】【明】은 因緣을 「緣故」로 읽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6

AG:da14/0062c23.1 · 교차 검사

展轉遂增廣,如供養羅漢。

거듭 굴러 마침내 늘고 넓어져, 아라한에게 공양하는 것 같다.

주 팔리 348.17은 「여러 모양으로 일어났다, 아라한들에게 올리는 보시처럼」이다. 한역 展轉은 「거듭 굴러」로, 遂는 결과가 실려 「마침내」를 세웠다. 팔리 dakkhiṇā(보시)와 한역 供養은 겹치지만 같은 낱말은 아니다. 羅漢은 아래 0063a05.1 등과 함께 쓰이며 확정술어 至真(=아라한)과 한자가 다르다 — 한자 흔들림(같은 개념을 至真/羅漢으로 쓴다)을 이 구간에서 한 번 신고하고 「아라한」으로 고정한다. 如는 비유 「~ㄹ 것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7

AG:da14/0062c24.1 · 교차 검사

釋子專四禪,常樂於閑居;

석가의 아들이 사선에 전념하고 늘 한적한 거처를 즐기며;

주 팔리 348.22는 「샤카의 아들(sakyaputta)이 선정으로 한마음이 되어 슬기롭고 새김이 있다」이다. 釋子의 釋은 석가족의 이름이며 子는 아들이므로 「석가의 아들」로 새겼다. 한국어 「석자」(불제자)는 부처님의 제자 일반을 뜻하는 말이어서 쓰지 않았으나, 한문이 석가족 출신의 사람을 뜻하는지 불제자 일반을 뜻하는지는 문맥으로 서지 않는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四禪은 정착어 「사선」(네 단계의 선정). 專은 「전념하고」, 樂於의 於는 흡수. 閑居는 「한적한 거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2

AG:da14/0062c25.1 · 교차 검사

正意求甘露,我專念亦爾。

바른 뜻으로 감로를 구하니, 나의 오로지 하는 생각도 또한 그러하다.

주 팔리 348.23은 「무니가 죽음 없음(amata)을 얻으려 한다 — 나는 그대를 (얻으려 한다), 수리야밧차사여」다. 甘露는 정착어 「감로」(죽음 없음을 비유하는 말). 亦爾는 앞 구절(석가의 아들의 구함)과 나의 생각을 견주는 병렬이라 亦를 「~도 또한」으로 세웠다. 專念은 「오로지 하는 생각」.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3

AG:da14/0062c26.1 · 교차 검사

能仁發道心,必欲成正覺;

능인이 도의 마음을 일으켜 반드시 정각을 이루고자 하였으니;

주 팔리 348.24는 「무니가 더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어 기뻐했듯이」다. 能仁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뜻 옮김 이름(석가모니의 번역어)이므로 앵커의 能(가능)으로 풀지 않고 정착형 「능인」으로 적었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正覺은 정착어 「정각」. 必은 결의가 실려 「반드시」를 세웠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4

AG:da14/0062c27.1 · 교차 검사

我今求彼女,必欲會亦爾。

나는 이제 저 여인을 구하여 반드시 만나고자 함도 또한 그러하다;

주 팔리 348.25는 「그대와 하나가 되어 기뻐하리라, 어여쁜 이여」(missībhāva)다. 한역 彼女는 앞 게송에서 부른 跋陀를 삼인칭으로 가리킨다. 會는 「만나다」로 옮겼으며 팔리의 합일(missībhāva)의 뜻까지 지는지는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亦爾는 앞 줄(능인의 바람)과의 견줌이라 「도 또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5

AG:da14/0062c28.1 · 교차 검사

我心生染著,愛好不捨離;

내 마음에 물들어 집착함이 생겨, 사랑하고 좋아하여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니;

주 팔리 348.12는 「내 마음은 그대에게 붙들려 있고 마음이 변했다」다. 染著은 「물들어 집착함」, 愛好는 「사랑하고 좋아하여」, 不捨離는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바로 아래 欲捨不能去의 不能과 구별하여 不는 단순 부정).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2

AG:da14/0062c29.1 · 교차 검사

欲捨不能去,如象為鈎制。

버리고자 해도 갈 수 없음이, 코끼리가 갈고리에 제압되는 것 같다.

주 팔리 348.13은 「돌아갈 수 없다, 굽은 낚시를 삼킨 물고기(ambuja)처럼」이다.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코끼리와 갈고리로 비유를 바꾼다(코끼리와 갈고리는 팔리 348.10에서 따로 나온다). 能은 不能이라 「갈 수 없다」, 為鈎制는 為…制의 피동이라 「갈고리에 제압되는」.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48.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0

AG:da14/0063a01.1 · 교차 검사

如熱遇涼風,如渴得冷泉;

더위가 서늘한 바람을 만난 것 같고, 목마름이 찬 샘을 얻은 것 같으며;

주 팔리 348.4는 「땀 흘리는 이에게 바람처럼, 목마른 이에게 마실 물처럼」이다. 한역은 열(熱)·갈(渴)을 주어로 세워 「만남·얻음」의 구조로 옮겼고, 이 비유 묶음의 배열이 팔리와 다르다 — 한역 0063a02→03→04→05는 팔리 348.4→7→6→5의 순서에 해당한다(자리바뀜). 得은 「얻다」(획득), 遇는 「만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4

AG:da14/0063a02.1 · 교차 검사

如取涅槃者,如水滅於火。

열반을 취하는 이 같고, 물이 불을 꺼뜨리는 것 같다;

주 팔리 348.7은 「나를 식혀 다오, 어여쁜 이여, 타오르는 불을 물이 끄듯」(parinibbāpaya)이다. 涅槃은 정착어 「열반」(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이며 3분할표는 혼합으로 분류한다. 한역 「열반을 취하는 이」는 팔리 이 자리에 없다 — 팔리 동사 parinibbāpaya(식히다·꺼지게 하다)가 한역 쪽에서는 명사 涅槃으로 옮겨졌다(번역기법 가능성). 者는 「~하는 이」로 명사화, 滅於火의 於는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7

AG:da14/0063a03.1 · 교차 검사

如病得良醫,飢者得美食;

병든 이가 좋은 의사를 얻은 것 같고, 굶주린 이가 맛있는 음식을 얻은 것 같으며;

주 팔리 348.6은 「병든 이에게 약처럼, 굶주린 이에게 음식처럼」이다. 두 쌍의 내용은 같고 한역은 동사 得(얻다)를 두 번 세워 구문을 갖춘다. 배열은 앞 좌표(0063a03.1) 비고를 참조.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48.6

AG:da14/0063a04.1 · 교차 검사

充足生快樂,如羅漢遊法。

가득 차 만족하여 상쾌한 즐거움이 생기니, 아라한이 법에 노니는 것 같다;

주 팔리 348.5는 「앙기라사(빛나는 이)여, 아라한들에게 법이 사랑스럽듯 그대는 내게 사랑스럽다」이다. 한역 羅漢遊法은 법을 사랑하는 아라한의 모습을 「법에 노닒」으로 옮겼고, 팔리의 「사랑스럽다」(piya)에 해당하는 말은 充足生快樂에서 갈린다. 快樂은 한국어 「쾌락」의 부정 어감을 피해 「상쾌한 즐거움」으로 풀었다. 充足은 「가득 차 만족하여」.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5

AG:da14/0063a05.1 · 교차 검사

如象被深鈎,而猶不肯伏;

코끼리가 깊은 갈고리를 입고도 오히려 엎드리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주 팔리 348.10은 「갈고리를 넘어선 코끼리처럼, 창에 찔린 나는 이겨졌다」다. 한역은 갈고리가 깊이 박혀도 복종하지 않는 코끼리로 그려 팔리의 「넘어섬」과 같은 방향이다. 而猶의 而는 어미로 흡수되고 猶는 「오히려」로 뜻이 실려 세웠다. 不肯은 「기꺼이 하지 않는다」의 뜻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被는 「입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0

AG:da14/0063a06.1 · 교차 검사

𩣺突難禁制,放逸不自止。

내달려 부딪쳐 막아 제어하기 어렵고, 방일하여 멈추지 못한다;

주 팔리 348.11은 「까닭을 알지 못한다, 곱고 긴 허벅지의 여인에게 취하여」다. 한역은 코끼리 비유를 이어 그 거침을 서술한다. 첫 글자 「𩣺」는 저본의 희귀자이며 【宋】【元】【明】은 奔으로 읽는다 — 「𩣺突」를 「내달려 부딪침」으로 새기되 글자 판정은 하지 않는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放逸은 정착어 「방일」, 不自止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0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1

AG:da14/0063a07.1 · 교차 검사

猶如清涼池,眾花覆水上;

마치 맑고 시원한 못에 뭇 꽃이 물 위를 덮은 것과 같다;

주 팔리 348.8은 「꽃가루로 덮인 차가운 물의 연못」이다. 한역은 「뭇 꽃이 물 위를 덮는다」로 꽃가루(kiñjakkha)를 꽃으로 옮겼다. 猶如는 비유 표지로 「마치…같다」. 清涼은 「맑고 시원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8

AG:da14/0063a08.1 · 교차 검사

疲熱象沐浴,舉身得清涼。

지치고 더운 코끼리가 목욕하니, 온몸에 맑은 시원함을 얻는다;

주 팔리 348.9는 「더위에 시달린 코끼리처럼 그대의 젖가슴과 배로 들어가고 싶다」이다. 한역은 코끼리의 목욕과 청량함으로 줄여 옮겼고 「그대의 가슴과 배」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舉身은 「온몸」, 得清涼은 「시원함을 얻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9

AG:da14/0063a09.1 · 교차 검사

我前後所施,供養諸羅漢;

내가 앞뒤로 베푼 것으로 여러 아라한께 공양하였으니;

주 팔리 348.18은 「그러한 아라한들에게 내가 지은 공덕이 있다면」이다. 한역은 「베푼 것으로 공양하였다」(施·供養)는 사실을 서술로 세우고 팔리의 조건·공덕(puñña) 구조와 다르다. 所는 관형절 「베푼」으로 풀었고, 諸는 「여러」.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18

AG:da14/0063a10.1 · 교차 검사

世有福報者,盡當與彼供。

세상에 복의 과보가 있는 것은 모두 저이에게 공양으로 주리라;

주 팔리 348.19는 「그 공덕이 그대와 함께 익어 가기를, 온몸이 아름다운 이여」(tayā saddhiṃ vipaccataṃ)이다. 한역은 공덕이 함께 익는다는 말이 없고 「그에게 공양으로 준다」로 돌린다. 팔리 348.20-21의 「이 땅에서 지은 공덕」 구절에 해당하는 행은 한역 이 구간에 없다. 彼는 앞 게송의 彼女(0062c28.1)를 받는 것으로 보아 「저이」로 옮겼으나 앞 줄의 아라한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者는 「~는 것」, 當은 「-리라」. 이문: 【宋】【元】【明】은 供을 共으로 읽어 「함께 주리라」가 된다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48.19

AG:da14/0063a11.1 · 교차 검사

汝死當共死,汝無我活為?

그대가 죽으면 함께 죽으리라, 그대 없이 내가 살아서 무엇하랴?

주 팔리 게송(348.2-29)과 그 반복(349.12-16, 349.14의 …pe… 안쪽은 348.4-27과 같은 본문)을 읽었으나 「함께 죽겠다」는 말이 없다 — 이 줄과 다음 줄은 팔리에 없다. 汝無我活為는 「汝無 / 我活為(내가 사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로 끊어 읽었다. 為가 의문 종결인지 「위하여」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 當은 「-리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48.2

AG:da14/0063a12.1 · 교차 검사

寧使我身死,不能無汝存。

차라리 내 몸이 죽게 할지언정 그대 없이는 살아 있을 수 없다;

주 앞 좌표와 같은 사안. 팔리 게송 348.2-29에 해당 구절이 없다 [불확실:앞자리와_동일]. 寧使는 선택의 뜻이 실려 「차라리…게 할지언정」, 不能은 「~ㄹ 수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48.2

AG:da14/0063a13.1 · 교차 검사

忉利天之主,釋今與我願;

도리천의 주인인 석이 지금 나에게 소원을 주니;

주 팔리 348.26은 「만일 도리천의 주인 삭카가 내게 소원을 준다면」(ce, 가정)이다. 한역은 가정 표지 없이 평서로 서술한다 — 구문 유형이 갈린다. 釋은 釋提桓因의 줄임(한자 흔들림)이며 「석」으로 적었다. 忉利天之主의 之는 소유 관계로 「도리천의 주인」.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8.26

AG:da14/0063a14.1 · 교차 검사

稱汝禮節具,汝善思察之。」

그대의 예절이 갖추어졌음을 일컬으니, 그대는 잘 생각하여 살피라.」

주 팔리 348.27은 「나는 그대를 (아내로) 선택하리라, 그만큼 내 욕망은 굳세다」이다. 한역 稱汝禮節具는 「그대의 예절이 갖추어졌다고 일컫는다」로 읽었으나 稱을 「걸맞다」로 읽으면 「그대의 예절 갖춤에 걸맞게」가 되어 갈린다 [불확실:뜻_판별불가]. 汝善思察之는 상대에게 생각을 권하는 말로 팔리 이 자리에 없다. 따옴표는 이 좌표에서 닫힌다(0062c21.1에서 열림). 禮節具의 具는 「갖추어짐」.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48.27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21:348.29

AG:da14/0063a15.1 · 교차 검사

爾時,世尊從三昧起,告般遮翼言:「善哉!善哉!般遮翼!汝能以清淨音和琉璃琴稱讚如來,琴聲、汝音,不長不短,悲和哀婉,感動人心。

그때 세존이 삼매에서 일어나 반차익에게 일러 말하였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반차익이여! 그대는 맑고 깨끗한 소리로 유리 거문고에 맞추어 여래를 칭찬할 수 있구나. 거문고 소리와 그대의 목소리가 길지도 짧지도 않고, 슬프면서 화평하고 애처로우면서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주 팔리 349.1-3은 세존이 「판차시카여, 그대의 현의 소리와 노래의 소리가 어울리고 서로 넘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역은 「삼매에서 일어났다」와 「훌륭하다! 훌륭하다!」의 칭찬이 앞에 서고, 「슬프면서 화평하고 애처로우면서 부드러워 사람 마음을 감동시킨다」는 팔리 이 자리에 없다. 팔리의 현-노래의 어울림(saṃsandati)이 한역에서는 和(맞추다)와 不長不短으로 옮겨졌다(번역기법).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善哉는 감탄 어미가 지는 칭찬 응답(사전 善哉 ① 발화 첫머리 32/54). 能은 「-ㄹ 수 있다」, 以는 도구 조사 「으로」. 三昧는 정착어 「삼매」. 따옴표는 0063a19.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3

AG:da14/0063a16.1 · 교차 검사

汝琴所奏,眾義備有,亦說欲縛,亦說梵行,亦說沙門,亦說涅槃。」

그대의 거문고가 연주한 것에는 여러 뜻이 갖추어져 있으니, 욕망의 속박도 말하고, 청정한 삶도 말하고, 사문도 말하고, 열반도 말한다.」

주 팔리 349.4는 세존이 「판차시카여, 불·법·승·아라한·애욕과 이어진 이 게송들을 언제 엮었는가」라고 묻는다. 한역은 질문 대신 연주의 내용을 평가하는 서술(욕망의 속박·청정한 삶·사문·열반을 말한다)이 선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이다. 梵行은 3분할표에서 의역(brahmacariya)이며 정형구 행은 「청정한 삶」이라 했으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이 자리의 뜻(사문·열반과 나란한 수행)을 따라 「청정한 삶」으로 옮기고 신고한다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亦說 네 번의 亦는 병렬을 한국어 조사 「~도」가 지므로 부사 「또한」을 세우지 않았다. 所奏는 관형절 「연주한」. 沙門·涅槃은 정착어 「사문」·「열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49.4

AG:da14/0063a19.1 · 교차 검사

爾時,般遮翼白佛言:「我念世尊昔鬱鞞羅尼連禪水邊,阿遊波陀尼俱律樹下初成佛道時,有尸漢陀天大將子及執樂天王女,共於一處,但設欲樂,我於爾時見其心爾,即為作頌,頌說欲縛,亦說梵行,亦說沙門,亦說涅槃。

그때 반차익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세존께서 예전에 울비라 니련선 물가의 아유파타 니구율 나무 아래에서 처음 부처님의 도를 이루셨을 때를 생각합니다. 그때 시한타 하늘 대장의 아들과 음악을 맡은 천왕의 딸이 한곳에서 함께 다만 욕망의 즐거움을 갖추고 있었는데, 저는 그때 그 마음이 그러함을 보고 곧 그들을 위해 송을 지어, 송으로 욕망의 속박을 말하고, 청정한 삶도 말하고, 사문도 말하고, 열반도 말하였습니다.」

주 산스크리트 증언 투입물은 이 경에 없다(팔리만 대조). ① 장소: 한역 鬱鞞羅·尼連禪·阿遊波陀·尼俱律은 팔리 uruvelā·nerañjarā·ajapālanigrodha(349.5)의 음역(전거 대장·cb:tt 대역주 Uruveīā/Nerañjarā/Ajapāla/Nigrodha)이라 한자 독음으로 적었다. 水邊은 팔리 tīre(강가)에 해당. ② 인물: 팔리는 판짜시카가 팀바루 간답바 왕의 딸 밧다 수리야밧차사를 연모했으나 그녀가 마탈리 마부의 아들 시칸디(sikhaṇḍī)를 연모했다고 하며(349.6-8), 한역은 尸漢陀天大將子(cb:tt Sikhaddhi)와 執樂天王女로 적어 이름과 짝 구도가 다르다 — 팔리의 sikhaṇḍī nāma mātalissa saṅgāhakassa putto와 한역 尸漢陀天大將子의 대응은 판정하지 않고 둘 다 신고한다. 尸漢陀天大將子의 끊음(尸漢陀 / 天大將 또는 尸漢陀天 / 大將)이 갈려 [불확실:구두·분절]. ③ 執樂天王: 執樂은 「음악을 맡은」 뜻으로 옮긴 의역으로 판단했다 — 전거 표가 執樂神을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한자가 뜻을 옮긴 것으로 읽혀 표와 어긋난다(저본이 이긴다). 팔리형은 gandhabba. ④ 般遮翼: 般遮=pañca의 음, 翼=sikha 자리의 뜻이 섞인 音義合璧으로 판단해 「반차익」으로 적었다(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 표와 어긋남 — 정도평 판정 요망). 팔리형 pañcasikha. ⑤ 팔리는 가타가 「부처·법·승가·아라한·욕망에 연결된」 것이었다고 하고(349.11) 한역은 欲縛·梵行·沙門·涅槃을 말했다고 한다 — 문장 유무·개별 어휘. 梵行은 정형구 행 한자(brahmacariya)이므로 확정역이 아니라 문맥으로 「청정한 삶」이라 옮겼다. 頌은 정형구 행 한자(udāna)이나 여기서는 송(가타)의 뜻이어서 「송」으로 옮겼고, 같은 개념을 이후에 偈로 적는 한자 흔들림이 있다(0063a26.1·0063c06.1: 偈 → 게송). 白佛言과 世尊이 한 좌표에 함께 나오는 佛/世尊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확정역 부처님·세존 유지). 設欲樂의 設은 「갖추다」로 읽었다(베풀다·차리다 가능). 사문·열반은 정착어: 사문=걸식·수행의 출가 수행자(음의 沙門 勤懇/止息), 열반=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음의 圓寂).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49.6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11

AG:da14/0063a20.1 · 교차 검사

時,彼天女聞我偈已,舉目而笑語我言:『般遮翼!我未見如來,我曾於忉利天法講堂上,聞彼諸天稱讚如來,有如是德,有如是力。

그때 저 천녀가 제 게송을 듣고 나서 눈을 들어 웃으며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반차익이여! 나는 아직 여래를 보지 못하였다. 나는 일찍이 도리천 법 강당 위에서 저 천신들이 여래를 칭찬하여 이러한 덕이 있고 이러한 힘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주 팔리 349.18은 「나는 그 세존을 직접 뵙지 못했으나 도리천의 선법당(sudhammā sabhā)에서 춤추며(upanaccantiyā) 들었다」이다. 한역에는 舉目而笑(눈을 들어 웃음)와 有如是德·有如是力(덕·힘의 서술)이 있고 팔리에는 없다. 반대로 팔리의 upanaccantiyā(춤추며)는 한역에 없다. 講堂 ↔ sabhā, 忉利天 ↔ tāvatiṃsa(정착어 도리천은 「서른셋」의 뜻 — 음의 忉利=怛唎奢 卅, 須彌山頂 帝釋이 사는 서른세 곳). 法講堂은 선법당 sudhammā에 해당하는 자리로 보이나 法堂(0063b27.1)과 한자가 흔들린다(법 강당 / 법당). 偈는 앞 좌표의 頌과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다. 是 가리킴은 저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1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18

AG:da14/0063a26.1 · 교차 검사

汝常懷信,親近如來,我今意欲與汝共為知識。』

그대는 늘 믿음을 품고 여래를 가까이한다. 나는 지금 마음으로 그대와 함께 벗이 되고자 한다.』

주 팔리 349.19는 「그대가 그 세존을 찬탄하니(kittesi) 오늘 우리 만남이 있기를」이다. 한역 汝常懷信·親近如來는 팔리에 없고(찬탄 ↔ 믿음·친근), 共為知識(벗이 됨) ↔ samāgamo(만남)로 어휘가 갈린다. 知識은 사전상 이 뜻(친구, 선지식)과 名色의 識 쪽 용례가 섞이므로 여기서는 「벗」으로 읽었다(사전 知識 ① 장아함 20회). 信은 정형구 행 한자(saddhā)이나 여기서는 일반 「믿음」으로 옮겼다. 意欲은 「마음으로 바란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19

AG:da14/0063a29.1 · 교차 검사

世尊!我時與一言之後,不復與語。」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한마디를 건넨 뒤로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 팔리 349.20-21은 「그것이 그 누이와의 단 한 번의 만남이었고 그 뒤로는 없었다」이다. 한역 與一言(한마디를 건넴) ↔ samāgama(만남). 不復與語(다시 말하지 않음) ↔ na ca dāni tato pacchā(그 뒤로는 없음). 한역은 말의 교환, 팔리는 만남으로 갈린다. 이 좌표의 닫는 따옴표(」)는 저본의 표지를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20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49.21

AG:da14/0063b01.1 · 교차 검사

時,釋提桓因作是念:「此般遮翼已娛樂如來訖,我今寧可念於彼人。」

그때 석제환인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이 반차익이 이미 여래를 즐겁게 해 드리기를 마쳤다. 내가 이제 저 사람을 생각해 봄이 좋겠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350.1-2는 「샥까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났다 — 판짜시카가 세존과 인사를 나눈다(paṭisammodati), 세존도 판짜시카와」이다. 한역 娛樂如來訖(여래를 즐겁게 해 드리기를 마침)은 paṭisammodati(서로 반갑게 인사)와 뜻이 갈리고, 我今寧可念於彼人(내가 저 사람을 생각해 봄이 좋겠다)은 팔리에 없다. 寧可는 어미 「-봄이 좋겠다」로 흡수했다. 釋提桓因은 전부 음역(석제=sakka, 환인=inda)이라 한자 독음하되 한국 정착형 석제환인으로 적었다 — 3분할 표는 의역/혼합으로 갈라 두었으므로 . 이 경은 같은 인물을 釋提桓因·天帝釋·帝釋으로 달리 적는다(한자 흔들림 신고; 확정 아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0.2

AG:da14/0063b02.1 · 교차 검사

時,天帝釋即念彼人。

그때 천제석이 곧 저 사람을 생각하였다.

주 팔리 350.3은 샥까가 판짜시카를 불러 말을 건넨다(āmantesi). 한역은 「생각한다(念)」로 적고 부르는 말이 없다. 天帝釋은 3분할 표에서 음역으로 분류되어 「천제석」으로 적었다(帝=주인의 뜻이 든 音義合璧일 수 있음). 釋提桓因(앞 좌표)·帝釋과 한자가 흔들린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0.3

AG:da14/0063b03.1 · 교차 검사

時,般遮翼復生念言:「今天帝釋乃能念我。」

그때 반차익이 다시 생각을 일으켜 말하였다. 「이제 천제석이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주 팔리 350.1-6에는 판짜시카의 이런 생각이 없다(…pe…로 접힌 구간 없음, 읽음). 乃能은 「능히」를 세우지 않고 어미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0.3

AG:da14/0063b04.1 · 교차 검사

即持琉璃琴詣帝釋所。

곧 유리 거문고를 들고 제석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주 팔리 350.6에는 거문고를 들고 가는 장면이 없고 판짜시카는 승낙한 뒤 세존께 인사만 한다(앞서 345.4·347.4에서 beluvapaṇḍuvīṇā를 이미 들었다). 琉璃琴 ↔ beluvapaṇḍuvīṇā(발바나무로 만든 황백색 비나)는 이 좌표 밖에서 대응하며, 琉璃는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국 정착형 「유리」로 적었다. 琴은 「거문고」로 옮겼으나 현악기 일반을 가리킨다. 帝釋所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詣는 「이르렀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0.6

AG:da14/0063b05.1 · 교차 검사

帝釋告曰:「汝以我名并稱忉利天意,問訊世尊:『起居輕利,遊步強耶?』」

제석이 일러 말하였다. 「그대는 내 이름으로 아울러 도리천의 뜻을 일컬어 세존께 문안드려라. 『일어나고 앉으심이 가볍고 날래시며, 거니는 걸음이 굳세십니까?』」

주 팔리 350.4-5는 「나를 위해 세존께 인사드려라 — 샥까가 신하·권속과 함께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한다」이다. 한역은 안부를 묻는 말 起居輕利,遊步強耶(몸이 가볍고 걸음이 굳센가)로 갈리고 팔리에는 이 안부 정형구가 없다. 并稱忉利天意 ↔ sāmacco saparijano(신하·권속과 함께)는 비슷하나 한역은 「도리천의 뜻」이다. 以는 「으로」, 耶는 의문 어미로 흡수했다. 輕利는 「가볍고 날랜」(利=예리·민첩), 起居는 「일어나고 앉음」으로 풀었다. 問訊은 사전상 합장 인사의 뜻도 있으나 여기서는 「문안」으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4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5

AG:da14/0063b05.2 · 교차 검사

時,般遮翼承帝釋教,即詣世尊所,頭面禮足,於一面住,白世尊言:「釋提桓因及忉利諸天故,遣我來問訊世尊:『起居輕利,遊步強耶?』」

그때 반차익은 제석의 분부를 받들어 곧 세존이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한쪽에 머물러 세존께 아뢰었다. 「석제환인과 도리천의 여러 천신들 때문에 저를 보내어 와서 세존께 문안하게 하였습니다. 『일어나고 앉으심이 가볍고 날래시며, 거니는 걸음이 굳세십니까?』」

주 팔리 350.6-7은 판짜시카가 분부를 받아 세존께 인사하며 「샥까가 … 발에 머리를 대어 절합니다」라고 말한다. 한역은 판짜시카 자신이 頭面禮足·於一面住하고 안부(起居輕利…)를 전한다. 故는 「까닭/때문」으로 옮겼는데 「~를 위해」일 수도 있다 — 지은이(보낸 이)가 생략되어 [불확실:격·태·구문]. 教는 사전상 [가르침/분부]이며 여기서는 제석의 명으로 읽어 「분부」. 住는 「머물러」(立·坐가 아님)로 두었다. 존칭: 반차익→세존 존댓말.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6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7

AG:da14/0063b07.1 · 교차 검사

世尊報曰:「使汝帝釋及忉利天壽命延長,快樂無患。

세존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대 제석과 도리천이 수명이 길게 늘어나고, 즐거워 근심이 없게 하라.

주 팔리 350.8은 「판짜시카여, 샥까가 신하·권속과 함께 이처럼 행복하기를(sukhī hotu)」이다. 한역 使는 사역(「-게 하라」)으로 옮겼으나 기원(「-기를」)일 수도 있어 [불확실:격·태·구문]. 壽命延長(수명이 늘어남)은 팔리 sukhī(행복)에 없는 요소이고, 快樂無患 ↔ sukhī가 겹친다. 壽命은 3분할 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한국어 「수명」이 한역의 뜻을 그대로 담는다. 無患의 患은 근심·병 양쪽이 가능해 「근심」으로 풀었다. 快樂은 한국어 「쾌락」의 나쁜 뉘앙스를 피해 「즐거워」.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8

AG:da14/0063b10.1 · 교차 검사

所以然者?

그렇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 350.9는 곧바로 hi(왜냐하면)로 이유를 단다. 한역 所以然者(그렇게 되는 까닭은)는 문답식의 스스로 던진 물음으로, 팔리에는 이 물음 문장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9

AG:da14/0063b11.1 · 교차 검사

諸天、世人及阿須輪諸眾生等,皆貪壽命、安樂、無患。」

여러 천신, 세상 사람, 그리고 아수륜의 여러 중생들은 모두 수명과 안락과 근심 없음을 탐낸다.」

주 팔리 350.9는 「천신·인간·아수라·용(nāga)·간답바와 그 밖의 여러 무리는 행복을 바란다(sukhakāmā)」이다. 한역은 諸天·世人·阿須輪諸眾生等으로 용·간답바가 없고, 바람의 대상이 壽命·安樂·無患(탐냄 貪)으로 다르다. 阿須輪은 음역(아수륜; 음의 梵語天名訛也, 정범음 阿素囉)이라 한자 독음했고 팔리형은 asura. 이문 輪=倫(宋·元·明)이 있으나 대정 본문을 따랐다. 眾生等의 等은 복수 어미 「-들」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0.9

AG:da14/0063b11.2 · 교차 검사

爾時,帝釋復自念言:「我等宜往禮覲世尊。」

그때 제석이 다시 생각하여 말하였다. 「우리는 가서 세존께 예배하고 뵈어야 한다.」

주 팔리 351.1-2에는 샥까가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없고, 인사받은 샥까가 곧바로 동굴에 들어간다(351.2). 宜는 어미 「-어야 한다」로,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禮覲은 「예배하고 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1.2

AG:da14/0063b12.1 · 교차 검사

即與忉利諸天往詣佛所,頭面禮足,却住一面。

곧 도리천의 여러 천신과 함께 가서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러,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주 팔리 351.2-3은 샥까와 도리천의 천신들이 인다살라 동굴에 들어가 세존께 인사하고 한쪽에 섰다(ekamantaṃ aṭṭhāsi)이다. 한역은 頭面禮足·却住一面으로 대체로 같다(却=물러남은 팔리에 없음). 도리천은 정착어로 「서른셋」(음의 忉利=怛唎奢=卅)이며 帝釋이 사는 수미산 정상의 천이다. 佛과 世尊이 이 경에서 번갈아 쓰인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1.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1.3

AG:da14/0063b13.1 · 교차 검사

時,帝釋白佛言:「不審我今去世尊遠近可坐?」

그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세존에게서 얼마나 멀리 또는 가까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주 팔리 351.2-5에는 앉을 자리를 묻는 문답이 없다. 不審은 사전상 「문안·의문 도입」(불심, 사전 不審 ① 장아함 9회 중 발화 첫머리 5)이라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로 옮겼다. 去世尊遠近은 「세존에게서의 멀고 가까움」으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1.3

AG:da14/0063b15.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曰:「汝天眾多,但近我坐。」

부처님이 제석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의 천신 무리가 많으니, 다만 내 가까이에 앉으라.」

주 팔리에는 이 대답이 없다. 但은 「그저」에 가까우나 뜻이 실린 자리로 보아 「다만」을 남겼다(앵커: 한정). 天眾은 「천신 무리」(사전 天眾 7회).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1.3

AG:da14/0063b16.1 · 교차 검사

時,世尊所止因陀羅窟,自然廣博,無所障碍。

그때 세존이 머무시는 인타라 굴은 저절로 넓고 크게 되어, 가로막는 것이 없었다.

주 팔리 351.5는 「인다살라 동굴이 울퉁불퉁하던 것이 평평해지고, 좁던 것이 넓어지고,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났다 — 천신의 위신력으로」이다. 한역 自然廣博 ↔ samā·urundā(평평·넓어짐)이 겹치고, 無所障碍는 sambādhā(좁음)의 부정에 맞닿는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났다는 부분(andhakāro … āloko)은 한역에 없다. 因陀羅窟은 전거 대장에 因陀娑羅窟(Indasāla-guhā)도 올라 있으나 여기 저본은 因陀羅(음의 帝主 Indra; 근대 비정 Iṁdra)이므로 「인타라 굴」로 적는다 — 팔리 indasāla와 한역 因陀羅의 음역 계통 차이를 신고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自然은 「저절로」, 所止는 관형절.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1.5

AG:da14/0063b16.2 · 교차 검사

爾時,帝釋與忉利諸天及般遮翼皆禮佛足,於一面坐,帝釋白佛言:「一時,佛在舍衛國婆羅門舍,爾時世尊入火焰三昧,我時以少因緣,乘千輻寶車,詣毘樓勒天王所,於空中過,見一天女叉手在世尊前立,我尋語彼女言:『若世尊三昧起者,汝當稱我名字,問訊世尊:起居輕利,遊步強耶?』

그때 제석은 도리천의 여러 천신 및 반차익과 함께 모두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바라문의 집에 계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불꽃 삼매에 드셨는데, 저는 그때 작은 인연으로 천 개 바퀴살의 보배 수레를 타고 비루륵 천왕이 있는 곳으로 가다가 허공 가운데를 지나면서, 한 천녀가 두 손을 모아 세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곧 그 여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삼매에서 일어나시면 그대는 내 이름을 일컬어 세존께 문안하라: 일어나고 앉으심이 가볍고 날래시며, 거니는 걸음이 굳세십니까?』

주 ① 장소: 舍衛國은 정착어 「사위」(팔리 sāvatthī; 음의: 무엇이든 있는 나라 / 들은 이의 성). 婆羅門舍(바라문의 집) ↔ salaḷāgāraka(살랄라 나무의 집)는 어휘가 갈린다. ② 삼매: 火焰三昧(불꽃 삼매)는 팔리 aññatarena samādhinā(어떤 삼매)에 이름이 없다. 三昧는 3분할 표가 혼합(三=samādhi 음)이나 한국 정착어이므로 그대로. ③ 천왕: 한역 毘樓勒天王(음역; 전거 팔리형 Virūḷhaka)은 팔리 vessavaṇassa mahārājassa paricārikā(웨사와나 대왕의 시녀 부자티)와 갈린다 — 한역은 이름 없는 천녀가 서 있고, 팔리는 이름 있는 시녀 bhūjatī가 서 있다. ④ 이동: 乘千輻寶車·於空中過(허공을 지남)는 팔리에 없고 팔리는 sāvatthiṃ agamāsiṃ(사위에 갔다). 이는 문장 유무이자 구조·배열이다. ⑤ 叉手 ↔ pañjalikā namassamānā(합장하여 절하며): 叉手는 사전상 「손을 교차함·합장」이라 「두 손을 모아」로 옮겼다. ⑥ 若世尊三昧起者의 者는 가정 어미로 흡수, 當은 명령 어미로, 尋은 「곧」. ⑦ 一時·白佛言(佛) / 世尊이 한 좌표에 섞인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 見은 정형구 행 한자(dassana)이나 여기서는 보는 동작이라 문맥으로 옮겼다. 坐 ↔ aṭṭhāsi(섰다)는 개별 어휘의 차이.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1.4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6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2.8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1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16

AG:da14/0063b18.1 · 교차 검사

不審彼女後竟為我達此心不?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여인이 나중에 마침내 저를 위하여 이 마음을 전해 주었습니까?

주 팔리 352.17은 「그 누이가 나를 위해 세존께 인사드렸습니까(abhivādesi)?」이다. 한역은 達此心(이 마음을 전함)으로 인사(abhivādeti)가 아니라 마음의 전달로 적는다. 不審은 앞의 0063b15.1과 같이 의문 도입. 竟은 「마침내」. 문말 不은 의문 어미로 흡수. 彼女는 팔리의 bhaginī(누이)에 대응하나 팔리는 앞에서 부자티라는 이름을 밝혀 두었다(352.8).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17

AG:da14/0063b24.1 · 교차 검사

世尊!寧能憶此事不?」

세존이시여! 이 일을 기억하실 수 있겠습니까?」

주 팔리 352.18은 「세존께서는 그 누이의 말을 기억하십니까(sarati)?」이다. 한역은 「이 일(此事)」, 팔리는 「그 누이의 말(vacana)」로 대상이 다르다. 寧能은 어미 「-실 수 있겠습니까」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18

AG:da14/0063b25.1 · 교차 검사

佛言:「憶耳!彼女尋以汝聲致問於我,吾從定起,猶聞汝車聲。」

부처님이 말하였다. 「기억한다! 저 여인이 곧 그대의 소리로 나에게 문안을 전했고, 나는 선정에서 일어나서도 여전히 그대의 수레 소리를 들었다.」

주 팔리 352.19-20은 「그 누이는 나에게 인사했고 나는 그 누이의 말을 기억한다. 또 나는 그대의 바퀴 소리(nemisaddena)로 그 삼매에서 일어났다」이다. 한역은 彼女以汝聲致問於我(그대의 소리로 문안을 전함)와 吾從定起,猶聞汝車聲(선정에서 일어나서도 여전히 수레 소리를 들음)으로, 팔리에서 「소리로 삼매에서 일어난다」는 원인 관계가 한역에서는 「일어난 뒤에도 소리를 듣는다」는 시간 관계에 가깝다. 以汝聲의 聲은 소리·말·이름이 가능해 「소리」로 두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앞 좌표의 三昧와 여기의 定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라 한자 흔들림을 신고한다(三昧=삼매 / 定=선정). 耳는 단정 어기사라 평서로 흡수, 尋은 「곧」. 吾/我가 한 발화에 함께 쓰인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1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20

AG:da14/0063b26.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昔者,我以少緣,與忉利諸天集在法堂,彼諸舊天皆作是言:『若如來出世,增益諸天眾,減損阿須輪眾。』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전에 저는 작은 인연으로 도리천의 여러 천신과 함께 법당에 모여 있었는데, 저 옛 천신들이 모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면 여러 천신의 무리를 늘려 더하고 아수륜의 무리를 줄여 덜어낸다.』

주 팔리 352.21-22는 「우리보다 먼저 도리천에 태어난 그 천신들에게서 직접 듣고 받았다 — 여래들이 세상에 나오면 천신의 무리가 가득 차고 아수라의 무리가 줄어든다」이다. 彼諸舊天 ↔ ye te devā amhehi paṭhamataraṃ … upapannā(먼저 태어난 천신들)는 대응하고, 한역의 集在法堂(법당에 모임)과 以少緣(작은 인연으로)은 팔리에 없다. 增益·減損은 한문에서 타동(여래가 늘리고 줄임)인 반면 팔리 paripūrenti·hāyanti는 자동이다. 法堂은 3분할 표가 혼합(법=sudhammā 의역)으로 분류했고, 앞 좌표 法講堂과 한자가 흔들린다. 阿須輪眾은 cb:tt 대역주 Asura-kāyā에 맞춰 아수륜의 무리. 若如來出世의 若은 「-면」으로 흡수했고 「만약」을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2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22

AG:da14/0063b27.1 · 교차 검사

今我躬見世尊,躬見自知,躬自作證,如來、至真出現於世,增益諸天眾,減損阿須輪眾。

지금 저는 몸소 세존을 뵙고, 몸소 보아 알며, 몸소 직접 확인하니, 여래, 아라한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여러 천신의 무리를 늘려 더하고 아수륜의 무리를 줄여 덜어내십니다.

주 팔리 352.23은 「세존이시여, 여래·아라한·정등각자가 세상에 나타나셨으니 천신의 무리가 가득 차고 아수라의 무리가 줄어드는 것을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sakkhidiṭṭhaṃ)」이다. 躬見自知,躬自作證(몸소 보아 알고, 몸소 직접 확인함)은 sakkhidiṭṭha(증인으로 봄)에 대응한다. 躬이 세 번 쓰이나 躬↔他 대조가 없어 自는 「스스로」를 세우지 않았다. 作證의 證은 「확인」으로 읽었다(증득의 뜻도 가능). 見은 정형구 행 한자(dassana)이나 여기서는 보는 동작이어서 문맥으로 옮겼다. 한역은 호칭을 如來·至真 둘만 들고, 팔리의 sammāsambuddha(등정각)에 해당하는 자리는 없다. 至真은 확정 술어 「아라한」. 出現於世의 於는 조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2.23

AG:da14/0063c01.1 · 교차 검사

此有瞿夷釋女,於世尊所淨修梵行,身壞命終,生忉利天宮,即為我子。

여기 구이 석가족의 딸이 세존이 계신 곳에서 청정한 삶을 깨끗이 닦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도리천궁에 태어나서 곧 저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주 팔리 353.1-3은 「바로 이곳 카필라밧투에 고피카라는 사캬의 딸이 있었다 — 부처·법·승가에 맑은 믿음이 있고 계를 원만히 지켰다. 여자임을 벗고 남자임을 닦아 몸이 무너진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 도리천 천신들 가운데 우리의 아들이 되었다」이다. 한역은 카필라밧투·세 보배에 대한 믿음·계의 원만함·여자임을 벗고 남자임을 닦음이 없고, 淨修梵行(청정한 삶을 닦음)이 대신 선다. 瞿夷는 cb:tt 대역주 Gopikā에 맞춘 음역이지만 음의는 瞿夷를 라훌라의 어머니 이름(야소다라)으로도 풀이하므로 이 이름이 이 자리에서 가리키는 사람은 저본·대역주를 따른다. 釋女의 釋은 釋迦의 약칭이며 정착형 「석가족」으로 옮기고 음의 釋迦=能. 梵行은 정형구 행 한자(brahmacariya)라 확정역이 아니라 문맥으로 「청정한 삶」. 生은 정형구 행 한자(jāti)이나 여기서는 「태어나」의 동사이다. 此有는 존재문이나 주어를 세워 「여기 … 딸이」로 풀었다. 身壞命終은 정형구(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함). 天宮은 「천궁」.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3

AG:da14/0063c03.1 · 교차 검사

忉利諸天皆稱言:『瞿夷大天子有大功德,有大威力。』

도리천의 여러 천신이 모두 일컬어 말하였습니다. 『구이 큰 천자는 큰 공덕이 있고 큰 위력이 있다.』

주 팔리 353.4-5는 「그곳에서도 그를 이렇게 안다 — 고파카 천자, 고파카 천자라고」이다. 한역은 稱言(일컬어 말함)에 大功德·大威力(큰 공덕·큰 위력)의 칭찬을 붙이고, 팔리는 이름을 안다(jānanti)는 사실만 적는다. 한역의 瞿夷(여성형 고피카)와 팔리의 gopako(남성형)가 갈리므로 개별 어휘로 신고한다. 大天子 ↔ devaputto(천자): 「큰 천자」로 옮겼다. 有는 소유의 서술로 「있고」.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4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5

AG:da14/0063c05.1 · 교차 검사

復有餘三比丘,於世尊所淨修梵行,身壞命終,生於卑下執樂神中,常日日來為我給使,瞿夷見已,以偈觸嬈曰:

또 다른 세 비구가 세존이 계신 곳에서 청정한 삶을 깨끗이 닦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낮고 천한 음악을 맡은 신들 가운데 태어나, 항상 날마다 와서 저를 위해 시중을 들었는데, 구이가 보고 나서 게송으로 건드려 놀리며 말하였습니다.

주 팔리 353.6-8은 「다른 세 비구도 세존 아래서 청정한 삶을 닦고 낮은 간답바 무리에 태어났다. 그들은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갖추고 즐기며 우리의 시중을 들러 온다. 고파카 천자가 그들을 꾸짖었다(paṭicodesi)」이다. 한역에는 五欲을 갖추고 즐긴다는 구절이 없고, 常日日來(항상 날마다 옴)와 以偈(게송으로)가 있다. 執樂神은 팔리 gandhabbakāya에 대응하며 의역(「음악을 맡은」)으로 옮겼다. 觸嬈는 음의(慧琳 0409b10)에 擾戲弄(놀리며 건드림)으로 풀려 「건드려 놀리며」로 옮겼다. 이문 日=夕(宋·元·明·聖)이 있으나 대정 본문 日을 따랐다. 使는 시종의 뜻(給使)이라 사역으로 읽지 않았다. 復有의 有는 「또 다른 … 비구가」로 주어화. 梵行(청정한 삶)·生(태어나)은 앞 좌표와 같은 정형구 행 한자 처리.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6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3.8

AG:da14/0063c06.1 · 교차 검사

「『汝為佛弟子,我本在家時,

「『그대는 부처님의 제자였고, 내가 본래 집에 있을 때에

주 팔리 게송(354.9-12)은 「전에 보았던 비구들이 간답바 무리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 이들은 고따마의 제자들이고, 나는 전에 사람이었을 때」이다. 한역 汝為佛弟子(그대는 부처님의 제자였다)와 我本在家時(내가 본래 집에 있을 때)가 이에 대응한다. 한역은 팔리와 줄 순서가 다르다(한역 供養 줄이 팔리 354.13-14에 놓이고, 한역 순서 전체가 팔리와 갈린다). 為는 계사, 佛弟子의 佛은 확정 술어 「부처님」. 在家는 「집에 있을 때」로 풀었다(재가 출가의 대립). 我/汝 호칭: 구이가 옛 비구들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2

AG:da14/0063c10.1 · 교차 검사

以衣食供養,禮拜致恭恪。

옷과 음식으로 공양하고, 절하여 공경을 다하였다.

주 팔리 354.13-14는 「음식과 마실 것으로 모시고, 내 집에서 발을 붙잡았다(pādūpasaṅgayha)」이다. 한역은 衣食(옷과 음식)으로 옷이 더 들고, 禮拜致恭恪(절하고 공경을 다함)은 pādūpasaṅgayha(발을 붙잡음)와 닿는다. 供養은 정착어 「공양」. 恭恪은 음의(慧琳 0374c20: 恪=敬, 肅)에 敬으로 풀려 「공경」, 致는 음의(致問 條: 至也)를 참고해 「다하였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4

AG:da14/0063c11.1 · 교차 검사

汝等名何人?躬受佛教誡;

그대들은 어떤 사람이라 불리는가? 몸소 부처님의 가르침과 훈계를 받았다;

주 팔리 354.15-16은 「이 어르신들은 어디를 향한(kutomukhā) 이들이기에 부처님의 법을 받아들였는가」이다. 名何人(어떤 사람이라 불리는가)과 kutomukhā nāma(어느 쪽을 향한 이)는 닿으나 완전히 같지 않다 — 名何人은 「이름이 누구인가/어떤 사람이라 불리는가」 둘로 읽혀 뜻이 결정되지 않는다. 躬受佛教誡의 教는 사전상 [가르침]이 우세하며(教 ① 장아함 102회), 教誡는 「가르침과 훈계」. 受는 정형구 행 한자(vedanā)이나 여기서는 「받다」의 동사이다. 佛은 확정 술어 「부처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6

AG:da14/0063c12.1 · 교차 검사

淨眼之所說,汝不觀察之。

깨끗한 눈이 말한 것을 그대는 살피지 않는다.

주 팔리 354.17-18은 「법은 스스로 알아야 하는 것이며, 눈 있는 분(cakkhumā)이 잘 설했고 깨달았다」이다. 淨眼(깨끗한 눈) ↔ cakkhumā(눈 있는 분)로 부처님을 가리키는 칭호이며, 한역은 그 법을 「그대가 살피지 않는다」는 질책으로 적고 팔리는 법의 성질(자기 안에서 알아야 함)을 서술한다. 淨眼은 의역이라 뜻으로 옮겼다. 之所說은 「~가 말한 것」의 관형절로 풀었다. 觀察之의 之는 대명사로 목적어 「그것을」을 생략했다. 汝(단수)와 앞뒤의 汝等(복수)을 구별해 「그대/그대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8

AG:da14/0063c13.1 · 교차 검사

我本禮敬汝,從佛聞上法;

나는 본래 그대를 예배하고 공경하였고, 부처님께 으뜸가는 법을 들었다;

주 팔리 354.19-20은 「나는 바로 그대들을 섬기며 성자들의 잘 설해진 말씀을 들었다」이다. 한역 我本禮敬汝(내가 본래 그대를 예배함)는 upāsamāno(섬기며)에, 從佛聞上法은 sutvāna ariyāna subhāsitāni(성자들의 좋은 말씀을 듣고)에 대응하나, 한역은 들은 곳이 「부처님」이고 팔리는 「성자들」이다. 上法의 上은 「으뜸가는」으로 읽었으나 「위의·높은」도 가능하다. 佛은 확정 술어 「부처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1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0

AG:da14/0063c14.1 · 교차 검사

生三十三天,為帝釋作子。

삼십삼천에 태어나 제석의 아들이 되었다.

주 팔리 354.21-22는 「나는 큰 위신력을 지닌 샥까의 아들이며, 큰 광휘로 삼십삼천(tidiva)에 태어났다」이다. 한역은 위신력·광휘(mahānubhāvo, mahājutīko)가 없고 生三十三天,為帝釋作子만 남는다. 三十三天은 3분할 표가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이름 자체가 「삼십삼」을 뜻하는 숫자 이름이라 「삼십삼천」으로 적었다. 같은 천을 앞에서는 忉利天(도리천)으로 적어 한역이 같은 대상에 다른 한자를 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음). 為帝釋作子의 為는 「-로서」에 가까워 「제석의 아들이 되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2

AG:da14/0063c15.1 · 교차 검사

汝等何不觀?我所有功德;

그대들은 어찌 보지 않는가? 내가 가진 공덕을;

주 팔리 354.31-32는 「집에 살고 있는 내게서 이 뛰어남을 보라(passa)」이다. 何不觀(어찌 보지 않는가)은 passa(보라)의 명령을 반어로 바꾼 것이고, 我所有功德(내가 가진 공덕)은 visesataṃ(뛰어남)과 어휘가 갈린다. 所有는 「가진」의 관형절로 풀었다. 팔리의 agāre vasato(집에 살며)는 한역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3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32

AG:da14/0063c16.1 · 교차 검사

本為女人身,今為帝釋子。

본래 여인의 몸이었고, 지금은 제석의 아들이다.

주 팔리 354.33-34는 「여자였다가 오늘은 남자 천신이 되어 천상의 욕망의 대상을 갖추었다」이다. 本為女人身,今為帝釋子는 itthī hutvā svajja pumomhi devo와 대응하나, 한역은 「제석의 아들」, 팔리는 「남자 천신」으로 서술한다. 팔리의 dibbehi kāmehi samaṅgibhūto(천상의 욕망 대상을 갖춤)는 한역에 없다. 為는 계사.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3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34

AG:da14/0063c17.1 · 교차 검사

汝等本俱共,同修於梵行;

그대들은 본래 함께하여 같이 청정한 삶을 닦았다;

주 팔리 354.23-24는 「그러나 그대들은 가장 훌륭한 분을 섬기며 위없는 청정한 삶을 행했다」이다. 한역의 本俱共,同修於梵行(본래 함께였고 같이 청정한 삶을 닦음)은 caritvā(행하고)에 대응하나, 팔리의 seṭṭhaṃ(가장 훌륭한)·anuttaraṃ(위없는)이 한역에 없고 한역의 同(같이)·俱共(함께)이 팔리에 없다. 梵行은 정형구 행 한자이므로 확정역이 아니라 문맥으로 「청정한 삶」. 於는 조사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4

AG:da14/0063c18.1 · 교차 검사

今獨處卑賤,為吾等給使。

지금 홀로 낮고 천한 곳에 머물며, 우리를 위해 시중을 든다.

주 팔리 354.25는 「그대들은 낮은 몸(hīnaṃ kāyaṃ)에 태어났다」, 354.29-30은 「간답바의 몸으로 가서 천신들을 시중든다(pāricariyaṃ)」이다. 卑賤 ↔ hīna(낮음)이고 給使 ↔ pāricariyaṃ(시중)이다. 獨處(홀로 머묾)의 獨은 팔리에 대응이 없다 — 「오직 그대만」의 뜻일 수 있다. 吾等은 「우리」. 使는 시종의 뜻이라 사역으로 읽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30

AG:da14/0063c19.1 · 교차 검사

本為弊惡行,今故受此報;

본래 못되고 악한 행을 한 까닭에, 지금 이 과보를 받는다;

주 팔리 354.26은 「그대들의 태어남은 (그 행에) 알맞지 않다(anānulomā bhavatūpapatti)」이다. 한역 本為弊惡行,今故受此報(본래 못되고 악한 행을 하여 지금 이 과보를 받는다)는 원인과 결과(業報)의 서술인데 팔리에는 이 서술이 없고, 서 있는 자리에서 의미가 엇갈린다. 弊惡은 음의(慧琳 0471c19: 惡性也)를 참고해 「못되고 악한」, 為는 「하다」, 今故의 故는 「까닭/그러므로」로 읽었으나 為와 故가 다의라 [불확실:다의어_판별].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4.26

AG:da14/0063c20.1 · 교차 검사

獨處於卑賤,為吾等給使。

홀로 낮고 천한 곳에 머물며, 우리를 위해 시중을 든다.

주 앞 좌표 0063c19.1과 거의 같은 줄(今 → 於 차이)이며 같은 팔리 줄 354.29-30(pāricariyaṃ)에 대응한다. 獨處於卑賤의 於는 조사로 흡수. 두 줄이 반복되는 구조는 팔리에는 없다(구조·배열).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30

AG:da14/0063c21.1 · 교차 검사

生此處不淨,為他所觸嬈;

이곳에 태어남은 깨끗하지 않아, 다른 이에게 건드려져 괴롭힘을 당한다;

주 팔리 354.25 hīnaṃ kāyaṃ upapannā(열등한 몸에 태어난)와 짝으로 보았다(AI 추정, 사람 확인 전). 不淨↔hīna는 개별 어휘 차이이고, 為他所觸嬈(다른 이에게 건드려져 괴롭힘을 당함)에 해당하는 구절은 354.25-26에서 보이지 않는다. 為…所는 피동으로 읽었고, 他는 自와 짝이 아니므로 「남」이 아니라 「다른 이」로 적었다. 觸嬈=건드려 괴롭힘(음의 觸嬈 慧琳 0409b10·0487c15, 嬈=戲弄·擾). 此處가 가리키는 자리는 이 구간 앞의 문맥에 있어 여기서는 확정하지 못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6

AG:da14/0063c22.1 · 교차 검사

聞已當患厭,此處可厭患。

듣고 나서는 근심하고 싫어해야 하니, 이곳은 싫어하고 근심할 만하다.

주 팔리 354.27-28 duddiṭṭharūpaṃ vata addasāma(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을 보았다)는 한탄이고 한문은 「싫어하라」는 당위여서 같은 자리의 다른 서술로 보아 일부로 달았다(AI 추정). 當=당위 어미(-해야 한다), 可=-ㄹ 만하다로 옮겼다. 患厭과 厭患은 같은 두 글자의 순서만 바뀐 것이며 한문 안의 흔들림이라 통일하지 않았다(患厭=근심하고 싫어함, 厭患=싫어하고 근심함).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28

AG:da14/0063c23.1 · 교차 검사

從今當精勤,勿復為人使;

이제부터 부지런히 힘쓰라, 다시는 남에게 부림받는 이가 되지 말라;

주 팔리 handa viyāyāma byāyāma(자, 힘쓰자)·mā no mayaṃ parapessā ahumhā(우리가 남의 하인이 되지 말자)와 같은 자리이다. 이문: 勤을 【宋】【元】【明】은 進으로 적어 精進이 되나 대정본 勤을 따랐다. 앵커는 使를 [사역]으로 표시했으나 為人使는 「남에게 부림받는 이」(명사 使, 팔리 parapessā와 짝)로 읽었다. 勿=금지 「-지 말라」이며 當 구절도 명령형으로 맞췄다(주어가 한문에 없다). 復=다시, 從今=이제부터.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37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38

AG:da14/0063c24.1 · 교차 검사

二人勤精進,思惟如來法。

두 사람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여래의 법을 곰곰이 생각한다.

주 如來는 확정 술어 여래(구속)이다. 앵커의 如[비유·가정]는 如來의 글자일 뿐 허사가 아니다. 思惟는 3분할표(의역)에 따라 뜻으로 「곰곰이 생각하다」로 옮겼다. 팔리 anussaraṃ gotamasāsanāni(고따마의 가르침들을 기억하며)와 비교하면 호칭(고따마↔여래), 가르침↔法, 기억↔思惟가 갈린다. 전거 思惟는 Bhāvana(다른 부 MA의 대역)로 이 자리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3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0

AG:da14/0063c25.1 · 교차 검사

捨彼所戀著,觀欲不淨行;

그 연연하고 집착하는 것을 버리고, 욕망의 깨끗하지 못한 행을 관찰하며;

주 捨彼所戀著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戀著=연연하여 집착함(음의 戀著 慧琳 0325b23, 係也). 觀欲不淨行은 「欲의 不淨行을 觀한다」로 끊었으나 「觀欲」/「不淨行」으로 끊어 「욕망을 관하고, 깨끗하지 못한 행을」로 읽는 길도 열려 있다. 팔리 kāmesu ādīnavaṃ addasaṃsu(욕망들에서 허물을 보았다)의 ādīnava는 不淨과 다른 말이며, cittāni virājayitvā(마음에서 탐욕을 떠나)는 捨彼所戀著와 짝으로 추정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2

AG:da14/0063c26.1 · 교차 검사

欲縛不真實,誑惑於世間。

욕망의 속박은 진실하지 않아 세간을 속여 미혹시킨다;

주 欲縛=욕망의 속박. 誑惑=속여 미혹시킴(음의 誑惑 慧琳 0326a20은 앞 권의 풀이를 가리키기만 해 인용만 표시).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世間은 3분할표(의역)와 한국 불교 정착어를 따라 「세간」으로 적었다. 팔리 kāmasaṃyojanabandhanāni(욕망의 결박과 묶임)는 欲縛 하나로 접혔고, pāpimayogāni duraccayāni(악마의 멍에, 건너기 어려움)에 해당하는 구절은 한문에 보이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4

AG:da14/0063c27.1 · 교차 검사

如象離羈靽,超越忉利天;

코끼리가 굴레와 묶는 줄을 벗어나듯, 도리천을 뛰어넘는다;

주 如=비유 「~듯」으로 어미에 흡수했다. 羈靽의 靽은 【宋】【元】【明】에 絆으로 되어 있고 대정본 靽을 따랐다(羈=굴레, 靽·絆=발을 묶는 줄). 超越=뛰어넘음(음의 超越 慧琳 0369a19는 자형 풀이). 忉利天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 「도리천」으로 적었다(전거 Tāvatiṃsa, 음의 忉利天 慧琳 0440c06·0465b04는 三十三天). 팔리 sannāni guṇāni chetvā(묶는 줄들을 끊고)는 한문 離(벗어나)와 어휘가 갈린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45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46

AG:da14/0063c28.1 · 교차 검사

釋及忉利天,集法講堂上。

제석과 도리천이 법 강당 위에 모였다.

주 集法講堂上은 「集 + 法講堂上(법 강당 위에 모이다)」로 끊었다. 「集法(법을 모으는) + 講堂」으로 끊는 길도 있다(사전 講堂 ① 앞 集法 4회). 이 경은 善法·法堂(혼합 3분할)도 쓰나 이 자리는 講堂이다. 釋은 帝釋의 줄임이며 같은 대상을 帝釋·釋으로 달리 적는 것은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는 것이다. 팔리 saindā devā sapajāpatikā(인드라와 신들, 배우자들과 함께)의 배우자 구절은 한문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8

AG:da14/0063c29.1 · 교차 검사

彼已勇猛力,超越忉利天;

그들은 이미 용맹한 힘으로 도리천을 뛰어넘었으니;

주 彼는 수(數) 표지가 없으나 앞뒤 구절(二人·三人)을 따라 「그들」로 옮겼다. 已는 「이미」로 옮겼으나 以(~으로)의 통용일 수 있어 그렇게 읽으면 「그들은 용맹한 힘으로」가 된다. 음의 彼已 慧琳 0445c19는 글자 풀이일 뿐 뜻을 정하지 못한다. 팔리 vīrā virāgā virajaṃ karontā(용맹한 이들, 탐욕을 떠나 번뇌의 먼지를 없애며)에서 勇猛은 vīra와 짝이고 超越은 abhikkamiṃsu(다가갔다)와 어휘가 갈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4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0

AG:da14/0064a01.1 · 교차 검사

釋歎未曾有,諸天亦見過。

제석은 일찍이 없던 일에 감탄하고, 여러 하늘도 또한 지나감을 보았다.

주 未曾有는 3분할표(의역)에 따라 「일찍이 없던 일」로 옮겼다. 見過는 「지나감(超越)을 보았다」와 「허물을 보았다」로 읽힐 수 있어 앞 구절의 超越과 이어 전자로 옮겼으나 못 정했다. 팔리 saṃvegamakāsi vāsavo(와사바가 경각심을 일으켰다)는 歎未曾有와 어휘가 갈리고 諸天亦見過에 해당하는 구절은 보이지 않는다. 釋은 帝釋의 줄임이라 「제석」으로 적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2

AG:da14/0064a02.1 · 교차 검사

此是釋迦子,超越忉利天;

이들은 석가의 아들로서 도리천을 뛰어넘었다;

주 釋迦는 음역이며 한국 정착형 「석가」(석가족)로 적었다. 子는 「아들」로 옮겼다(0064a06.1 彼子와 같은 글자). 此는 수 표지가 없다. 팔리 imehi te hīnakāyūpapannā(열등한 몸에 태어난 이들이)는 釋迦子와 어휘가 갈리고, deve tāvatiṃse abhikkamanti는 超越忉利天과 짝으로 추정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4

AG:da14/0064a03.1 · 교차 검사

患厭於欲縛,瞿夷說此言。

욕망의 속박을 근심하고 싫어하여, 구이가 이 말을 하였다;

주 瞿夷는 3분할표(음역)에 따라 한자 독음 「구이」로 적었다. 전거는 팔리형 Gopikā, 근대 편자 비정 Gopī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음의 瞿夷 慧琳 0397c02는 羅侯羅의 어머니 이름(耶輸陀羅)과 같은 이름으로도 풀어 동형이의 가능성이 있다. 한문은 여성 瞿夷이고 팔리의 이 자리는 gopaka(남성 천자)라 성(性)이 갈린다. 팔리 354.55 saṃvegajātassa vaco nisamma(경각심이 일어난 이의 말을 듣고)는 患厭於欲縛과 어휘가 갈린다. 於는 조사로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6

AG:da14/0064a04.1 · 교차 검사

摩竭國有佛,名曰釋迦文;

마갈국에 부처님이 계시니, 이름하여 석가문이라 한다;

주 摩竭은 음역이라 「마갈」, 國은 뜻이라 「마갈국」으로 적었다(전거 Magadha, 사전 摩竭國 ① 이 경 0062b29.2 외).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계시다」로 옮겼다. 釋迦文은 釋迦牟尼의 줄임이다(음의 釋迦文 慧琳 0485b20, 근대 비정 Śakyamuni). 한국 정착형 석가모니와 대응하나 한역자를 따라 한자 독음 「석가문」으로 적었다. 팔리 manussaloke(인간 세상에서)는 한문에서 摩竭國(장소)으로 갈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8

AG:da14/0064a05.1 · 교차 검사

彼子大失意,其後還得念。

그 아들은 크게 뜻을 잃었고 그 뒤 도로 생각을 얻었다.

주 이문: 大를 【宋】【元】【明】【聖】은 本으로 적는다(「본래 뜻을 잃었다」). 대정본 大를 따랐다. 失意는 낙담을 뜻할 수도 있으나 뒤의 「念을 얻었다」와 대조되는 자리라 「뜻을 잃다」로 옮겼고 팔리 satiyā vihīnā(마음챙김을 잃은)와 짝으로 추정했다. 得은 획득으로 읽었고 還은 「도로」이다. 彼子는 단수·복수 표지가 없다. 팔리 coditā mayā(내게 꾸짖음을 받아)에 해당하는 구절은 한문에 보이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5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60

AG:da14/0064a06.1 · 교차 검사

三人中一人,故為執樂神;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그러므로 음악을 잡는 신이 되었다;

주 3분할표는 執樂神을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저본에서 執(잡다)+樂(음악)+神의 의역으로 판별해 뜻으로 옮겼다(전거 Gandhabba). 樂을 「즐거움」으로 읽는 길도 있다. 故는 「그러므로」로 옮겼으나 「여전히(仍)」의 뜻일 수 있어 못 정했다. 앵커의 為[위하여·피동]는 여기서는 「~이 되다」의 계사이다. 乾沓和(음역)와 달리 한 경 안에서 같은 간다르바를 두 가지 방식으로 적은 것이다(0064a14.1 참조).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61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4.62

AG:da14/0064a07.1 · 교차 검사

二人見道諦,超越忉利天。

두 사람은 도의 진리를 보고 도리천을 뛰어넘었다.

주 道諦는 확정 술어에 없어 「도의 진리」로 풀어 옮겼다. 見道諦를 「見道 + 諦」로 끊는 길도 있다. 팔리 sambodhipathānusārino(바른 깨달음의 길을 따르는)는 見道諦와, devepi hīḷenti samāhitattā(안정된 마음으로 신들마저 경시하는)는 超越忉利天과 어휘가 갈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6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64

AG:da14/0064a08.1 · 교차 검사

世尊所說法,弟子不懷疑;

세존께서 설하신 법에 제자는 의심을 품지 않는다;

주 世尊은 확정 술어(구속) 세존이다. 앞의 0064a05.1에서는 같은 대상을 佛로 적으나 여기서는 世尊이라 적는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쓰며 통일하지 않았다. 所說法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팔리 koci sāvako(어떤 제자도)는 弟子와 짝이고 kiṃkaṅkhati(의심한다)는 懷疑와 짝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6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66

AG:da14/0064a09.1 · 교차 검사

俱共同聞法,二人勝彼一。

모두 함께 같이 법을 듣고, 두 사람이 저 한 사람보다 뛰어났다.

주 俱共同은 세 글자가 모두 「함께」 뜻이라 순서대로 「모두 함께 같이」로 옮겼다. 勝彼一은 「저 한 사람보다 뛰어났다」로 읽었다. 팔리 yaṃ te dhammaṃ idhaññāya(그들이 이곳에서 법을 알고)와 duve tesaṃ visesagū(그들 중 둘이 특별함에 이르렀다)에 짝으로 추정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69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72

AG:da14/0064a10.1 · 교차 검사

自見殊勝已,皆生光音天;

빼어남을 보고 나서 모두 광음천에 태어났다;

주 自見殊勝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했다. 殊勝은 3분할표(의역)에 따라 「빼어남」으로 옮겼다. 光音天은 3분할표가 음역으로 분류했으나 光音(빛과 소리)은 뜻으로 옮긴 말에 가까워 판별이 갈린다. 한국 불교 정착어 「광음천」을 썼다(전거 Ābhassara, ⚠다른 부 EA의 대역). 팔리 kāyaṃ brahmapurohitaṃ(범보천의 몸)과 한문 光音天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하늘이 서므로 엇갈림으로 달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70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4.71

AG:da14/0064a11.1 · 교차 검사

我觀見彼已,故來至佛所。』」

내가 그들을 살펴보고 나서, 그러므로 부처님 계신 곳에 와서 이르렀다.’”

주 닫는 따옴표 』」를 ’”로 옮겼다. 여는 따옴표는 이 구간 밖이다. 佛所의 所는 처소(계신 곳)로 읽어 앵커의 [피동·명사화]와 달리 옮겼다. 觀見=살펴봄, 已=~하고 나서, 故=그러므로. 팔리 354.73 tassa dhammassa pattiyā āgatamhāsi(그 법을 얻기 위해 왔습니다)는 온 까닭이 「법을 얻으려고」이고, 한문은 「그들을 보았기에」여서 같은 자리에서 까닭이 엇갈린다. 佛所(장소)는 팔리에 없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4.7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54.74

AG:da14/0064a12.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願開閑暇,一決我疑。」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바라건대 한가한 때를 열어 주시어, 제 의심을 한 번에 결단해 주십시오.”

주 帝釋은 帝(뜻)와 釋(Śakra의 음)이 합친 말로 한국 정착형 「제석」으로 적었다(음의 帝釋 慧琳 0417a09). 佛은 확정 술어 부처님이다. 閑暇는 한가한 때(음의 閑暇 慧琳 0401a22, 暇=閑). 팔리 katāvakāsā bhagavatā(세존께서 기회를 주시어)는 완료분사이고 한문은 願으로 청하는 말이다. 팔리 pañhaṃ pucchemu(질문을 하겠습니다)와 한문 一決我疑(의심을 결단함)는 어휘가 갈린다. 제석→부처님이라 문말을 합쇼체로 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7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4.76

AG:da14/0064a13.1 · 교차 검사

佛言:「隨汝所問,吾當為汝一一演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묻는 대로 내가 너를 위하여 하나하나 설하겠다.”

주 當=-겠다로 어미에 흡수, 為汝의 為는 「~을 위하여」이다. 所問의 所는 「묻는 대로」로 풀었고 演說은 「설하다」, 一一은 「하나하나」이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로 했다. 팔리 356.2-3은 게송(puccha vāsava maṃ pañhaṃ…)이고 한문은 산문이다. 팔리 355(세존의 속생각)는 이 좌표 앞뒤의 한문 구간에서 보이지 않아 없음으로 달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6.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6.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5.1

AG:da14/0064a13.2 · 교차 검사

爾時,帝釋即白佛言:「諸天、世人、乾沓和、阿須羅及餘眾生等,盡與何結相應,乃至怨讐、刀杖相向?」

그때 제석이 곧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여러 하늘, 세상 사람, 건답화, 아수라 및 그 밖의 중생 등은 모두 어떤 결박과 상응하기에, 내지 원수가 되어 칼과 몽둥이로 서로 맞섭니까?”

주 乃至는 앵커가 생략 표지로 표시한 자리라 펴지 않고 「내지」로 접힌 대로 두었다(이 경 乃至 1회, 이문 乃生·及生). 한문이 열거를 접은 것인지 「~에 이르기까지」의 뜻인지 못 정했다. 結은 「결박」으로 옮겼으나 怨結의 「맺힘」과 같은 글자라 다의 가능성이 있다. 앵커의 應[당위]은 相應(상응)의 글자라 어미로 읽지 않았다. 乾沓和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건답화」, 阿須羅는 음역 「아수라」(이문 修)이다. 팔리 357.2-3은 천·인·아수라·용·간다르바 순으로 용(nāga)이 있으나 한문 열거에는 없고 순서도 다르다. 팔리 averā adaṇḍā…(원한 없이 지내자)는 한문에 보이지 않는다. 即=곧, 諸=여러, 等=등.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7.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7.3

AG:da14/0064a14.1 · 교차 검사

佛告釋言:「怨結之生,皆由貪嫉,故使諸天、世人、阿須羅、餘眾生等,刀杖相加。」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원한의 맺힘이 생김은 모두 탐욕과 질투에서 말미암으니, 그러므로 여러 하늘, 세상 사람, 아수라, 그 밖의 중생 등이 칼과 몽둥이를 서로 가하게 한다.”

주 貪嫉은 「탐욕과 질투」로 옮겼다. 팔리 issāmacchariya(질투와 인색)는 嫉과 짝이나 貪(탐욕)↔macchariya(인색)는 어휘가 갈린다. 故使는 「그러므로 ~로 하여금 ~하게 한다」, 相加는 「서로 가하다」이다. 佛告釋에서 釋은 帝釋의 줄임이며 0064a23.2 佛告帝釋과 같은 대상을 달리 적는다(【明】은 帝釋).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로 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7.6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7.7

AG:da14/0064a16.1 · 교차 검사

爾時,帝釋即白佛言:「實爾!世尊!怨結之生,由貪嫉故,使諸天、世人、阿須羅、餘眾生等,刀杖相加。

그때 제석이 곧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원한의 맺힘이 생김은 탐욕과 질투 때문이며, 여러 하늘, 세상 사람, 아수라, 그 밖의 중생 등으로 하여금 칼과 몽둥이를 서로 가하게 합니다.

주 이 좌표의 인용은 닫히지 않고 0064a23.1까지 이어진다. 實爾는 「참으로 그렇다」이다. 팔리 357.10 evametaṃ bhagavā(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는 짧은 긍정이지만 한문은 붓다의 답을 되풀이한다(문장 유무). 같은 문장에서 佛과 世尊이 같은 대상을 달리 부른다(한자 흔들림, 世尊은 확정 술어 세존). 由…故는 「~ 때문에」로 옮겼다. 제석→부처님이라 합쇼체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7.10

AG:da14/0064a18.1 · 교차 검사

我今聞佛所說,疑網悉除,無復疑也,但不解此貪嫉之生,何由而起?

저는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듣고 의심의 그물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다만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탐욕과 질투의 생김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까?

주 疑網悉除, 無復疑也는 팔리 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ṃkathā(의심을 건넜고 의혹이 사라졌다)와 같다. 疑網=의심의 그물. 無復의 復=다시(음의 無復 慧琳 0482a21은 글자 음 풀이). 也는 평서 어미에 흡수했다. 但은 이어지는 말이 앞과 대조되어 「다만」으로 두었다. 不解는 「이해하지 못한다」(음의 不解 慧琳 0647b05는 음 풀이). 而는 흡수했다. 한문의 ?가 끝에 있어 두 문장으로 나누어 질문 형식을 살렸다. 팔리 issāmacchariyaṃ kiṃnidānaṃ…(질투와 인색은 무엇을 원인으로)에 짝이다. 인용은 0064a23.1에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7.1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

AG:da14/0064a20.1 · 교차 검사

何因何緣?

무슨 원인이고 무슨 조건입니까?

주 因=원인, 緣=조건으로 옮겼다. 팔리 358.2는 nidāna·samudaya·jātika·pabhava 네 항이고 한문은 因·緣 두 항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

AG:da14/0064a22.1 · 교차 검사

誰為原首?

누가 근원이며 우두머리입니까?

주 誰는 「누구」로 옮겨 사람 의문사 형태를 그대로 두었고 팔리의 kiṃ·kismiṃ(무엇)과 갈린다. 原首=근원이며 우두머리이다. 앵커의 為[위하여·피동]는 여기서 계사 「~이다」이다. 팔리 kiṃjātikaṃ kiṃpabhavaṃ(무엇에서 태어나고 무엇에서 생겨나는가)과 짝으로 추정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

AG:da14/0064a22.2 · 교차 검사

從誰而有?

누구로부터 있습니까?

주 從誰而有의 而는 흡수했다. 有는 존재 서술이다. 팔리 kismiṃ sati issāmacchariyaṃ hoti(무엇이 있을 때 질투와 인색이 있는가)는 처격 절대구이고 한문은 「~로부터」 구문이어서 인도어 구문이 한문에 없어 생긴 차이이므로 번역기법으로 달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3

AG:da14/0064a22.3 · 교차 검사

從誰而無?」

누구로부터 없습니까?”

주 닫는 따옴표(0064a18.1에서 열린 인용). 從誰而無의 而는 흡수했다. 팔리 kismiṃ asati…na hoti(무엇이 없을 때 없는가)는 처격 절대구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4

AG:da14/0064a23.1 · 교차 검사

佛告帝釋:「貪嫉之生,皆由愛憎,愛憎為因,愛憎為緣,愛憎為首,從此而有,無此則無。」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일러 말씀하셨다. “탐욕과 질투가 생김은 모두 사랑과 미움에서 말미암으니, 사랑과 미움이 원인이 되고, 사랑과 미움이 조건이 되고, 사랑과 미움이 으뜸이 되니,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다.”

주 愛憎은 「사랑과 미움」으로 옮겼다(음의 愛憎 慧琳 0327b02, 憎=惡). 팔리 piyāppiya(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와 어휘가 갈린다. 팔리의 네 항이 한문은 因·緣·首 셋이다. 則은 「~면 ~한다」에 흡수했다. 앵커의 為[위하여·피동]는 여기서 계사이다. 帝釋은 0064a16.1의 釋과 같은 대상이다(한자 흔들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6

AG:da14/0064a23.2 · 교차 검사

爾時,帝釋即白佛言:「實爾。

그때 제석이 곧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주 팔리는 358.6과 358.7 사이에 이런 긍정 응답이 없다(358.7은 곧바로 다음 질문이다). 이 좌표의 인용은 닫히지 않고 이어진다. 實爾는 0064a18.1의 實爾!와 같은 말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7

AG:da14/0064a25.1 · 교차 검사

世尊!貪嫉之生,皆由愛憎,愛憎為因,愛憎為緣,愛憎為首,從此而有,無此則無。

세존이시여! 탐욕과 질투가 생김은 모두 사랑과 미움에서 말미암으니, 사랑과 미움이 원인이 되고, 사랑과 미움이 조건이 되고, 사랑과 미움이 으뜸이 되니,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습니다.

주 제석이 0064a23.2의 붓다의 답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팔리에는 이 되풀이가 없다(358.6과 358.7 사이). 같은 발화 안이므로 합쇼체로 통일했다. 世尊은 확정 술어(구속) 세존이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7

AG:da14/0064a26.1 · 교차 검사

我今聞佛所說,迷惑悉除,無復疑也。

저는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를 듣고 미혹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주 0064a20.1의 疑網悉除 대신 迷惑悉除로 적는 점이 다르다(한문 안의 어휘 차이이며 통일하지 않았다). 팔리는 이 자리(358.6과 358.7 사이)에 대응 구절이 없다. 無復疑也는 0064a20.1과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7

AG:da14/0064a27.1 · 교차 검사

但不解愛憎復何由而生?

다만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랑과 미움은 다시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깁니까?

주 이문: 復를 【宋】【元】【明】은 빼 적는다. 대정본 復를 따라 「다시」로 옮겼다. 而는 흡수했다. 한문의 ?가 끝에 있어 0064a20.1과 같이 두 문장으로 나누었다. 팔리 358.7 piyāppiyaṃ kiṃnidānaṃ(좋아함과 좋아하지 않음은 무엇을 원인으로)에 짝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7

AG:da14/0064a28.1 · 교차 검사

何因何緣?

무슨 원인이고 무슨 조건입니까?

주 앞의 0064a22.1과 같은 사안이다. 팔리 358.7은 네 항이고 한문은 두 항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7

AG:da14/0064a29.1 · 교차 검사

誰為原首?

누가 근원이며 우두머리입니까?

주 앞의 0064a22.2와 같은 사안이다. 誰는 「누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7

AG:da14/0064a29.2 · 교차 검사

從誰而有?

누구로부터 있습니까?

주 앞의 0064a22.3과 같은 사안이다. 이 좌표의 인용은 닫히지 않고 이 구간 밖으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8

AG:da14/0064a29.3 · 교차 검사

從誰而無?」

누구로부터 없습니까?”

주 앞 질문(사랑과 미움)의 끝 항이다. 팔리 358.9 `kismiṃ asati piyāppiyaṃ na hoti`는 처격 절대구(「무엇이 없을 때 사랑과 미움이 없는가」)인데 한역은 `從誰而無`(「누구로부터 없는가」)로 옮겼다 — 처격 절대구가 한문에 없어 생긴 번역기법 자리이고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의문대명사도 한역은 `誰`(누구), 팔리는 중성 `kiṃ`(무엇)이다. 한역자의 선택대로 「누구」로 옮기고 이하 `誰`는 같다. 산스크리트는 이번 투입물에 없어 SF 항은 미대응이다(이하 같다). 따옴표가 닫히는 끝 조각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8.9

AG:da14/0064b01.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愛憎之生,皆由於欲,因欲緣欲,欲為原首,從此而有,無此則無。」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사랑과 미움이 생겨나는 것은 모두 욕망에서 말미암는다. 욕망으로 인하고 욕망을 연으로 삼으니, 욕망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다.”

주 팔리 358.10은 chanda(욕망)를 `nidāna · samudaya · jātika · pabhava` 네 항으로 늘어놓는데 한역은 `由於欲`·`因欲緣欲`·`欲為原首` 세 항이다. 항 수가 달라 일부로 달고 항 짝짓기는 하지 않는다. `從此而有,無此則無`는 358.11·358.12(`chande sati … hoti` / `asati … na hoti`)와 같은 꼴이다. 제석: 정착어이며 신들의 왕 샥까(`Sakka devānamindo`)를 가리킨다. 음의 慧琳 0417a09는 「帝是唐言釋是梵語略也」라 하여 帝=왕(뜻), 釋=샥까(소리의 줄임)로 푼다(인용이며 확정 아님). 欲·愛憎·原首·因/緣은 확정 술어가 없어 욕망·사랑과 미움·근원의 첫머리(原=근원, 首=첫머리, 한자대로)·인하다/연으로 삼다로 옮기고 이 경 안에서 고정한다. 佛은 확정역 「부처님」. 부처님 발화는 청자와 무관하게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0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2

AG:da14/0064b01.2 · 교차 검사

爾時,帝釋白佛言:「實爾!世尊!愛憎之生,皆由於欲,因欲緣欲,欲為原首,從此而有,無此則無。

그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랑과 미움이 생겨나는 것은 모두 욕망에서 말미암습니다. 욕망으로 인하고 욕망을 연으로 삼으니, 욕망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습니다.

주 제석이 앞 좌표의 부처님 답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팔리는 358.12 뒤 358.13에서 곧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며 제석의 되풀이가 없다. 이 구간은 `…pe…`로 접히지 않고 온전히 적혀 있어 없음확인이다. `實爾`의 `實`은 뜻이 실린 부사라 「참으로」, `爾`는 「그렇습니다」. `白佛言`은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白=아뢰다, 言=인용 표지). 世尊은 확정역 「세존」(호칭). 제석의 발화는 부처님께 존댓말.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12

AG:da14/0064b03.1 · 교차 검사

我今聞佛所說,迷惑悉除,無復疑也。

저는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들으니 미혹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주 의혹이 풀렸다는 제석의 정형 문장이다. 팔리의 같은 정형(`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ṃkathā bhagavato pañhaveyyākaraṇaṃ sutvā`)은 357.11·363.4·364.31·366.17처럼 한 질문 묶음이 끝날 때에만 나오고 358.12와 358.13 사이에는 없다. 이 자리는 없음확인이며 정형이 서는 다른 자리와의 대응은 c10.1에서 단다. `所說`은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고, `迷惑悉除`는 悉=모두, 除=제거되어. `無復疑也`는 `復`가 「다시는」, `也`는 평서 어미가 져서 따로 옮기지 않는다. 迷惑은 한국어에 정착한 낱말이라 「미혹」.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12

AG:da14/0064b05.1 · 교차 검사

但不知此欲復何由生?

다만 이 욕망이 다시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 알지 못합니다.

주 팔리 358.13 `chando kho pana … kiṃnidāno kiṃsamudayo kiṃjātiko kiṃpabhavo`는 네 의문사를 한 문장에 늘어놓는데 한역은 이를 `何由生`(b06.1)·`何因何緣`(b06.2)·`誰為原首`(b07.1) 세 좌표로 나눈다. 이 좌표는 그 첫 조각이라 일부. `但`은 「다만」(이미 풀린 것 밖에 이것만 남았다는 한정의 뜻이 실려 세움), `復`는 「다시」(앞 단계에 이어 또 묻는 반복). 이문: 大正 `由`, 宋·元·明 `由而` — `而`는 접속이라 옮김은 같다. 여기서 질문 대상은 `欲`인데 답(b07.4)의 주어는 `愛`로 바뀐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3

AG:da14/0064b06.1 · 교차 검사

何因何緣?

무슨 인이며 무슨 연입니까?

주 `何因何緣`은 팔리 `kiṃnidāno kiṃsamudayo`(358.13)와 짝지을 수 있으나 짝짓기는 하지 않는다(한역 항 수가 적다). 因·緣은 한국어에 정착한 술어라 「인」「연」으로 옮긴다(확정역은 없음). 답에서 `因欲緣欲`은 동사로 풀어 「인하고 …을 연으로 삼아」.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3

AG:da14/0064b06.2 · 교차 검사

誰為原首?

누가 근원의 첫머리입니까?

주 `原首`는 팔리 `pabhava`(358.13)와 맞물릴 수 있으나 짝짓기는 하지 않는다. 誰는 「누구」로 두었다(b01.1 비고).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3

AG:da14/0064b07.1 · 교차 검사

從誰而有?

누구로부터 있습니까?

주 팔리 358.14 `kismiṃ sati chando hoti`(처격 절대구)를 한역이 `從誰而有`로 옮겼다. 처격 절대구가 한문에 없어 생긴 번역기법 자리이며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습니까」.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8.14

AG:da14/0064b07.2 · 교차 검사

從誰而無?」

누구로부터 없습니까?”

주 팔리 358.15 `kismiṃ asati chando na hoti`(처격 절대구)를 `從誰而無`로 옮겼다. b07.2와 같은 번역기법 자리이며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8.15

AG:da14/0064b07.3 · 교차 검사

佛告帝釋:「愛由想生,因想緣想,想為原首,從此而有,無此而無。」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사랑은 생각에서 생기니, 생각으로 인하고 생각을 연으로 삼아 생각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358.16-18은 `chando vitakka-nidāno …`로 chanda(욕망)가 vitakka에서 난다고 한다. 한역 질문(b06.1)도 `欲`을 묻는데 답은 `愛由想生`으로 주어가 `愛`다 — 같은 자리에서 한자가 欲→愛로 바뀐다. 같은 개념인지 판정하지 않고 §⑧에 따라 통일하지 않아 愛는 「사랑」(愛憎의 愛와 같은 글자), 想은 「생각」으로 옮겼다. 愛가 「사랑」인지 욕망의 자리인지는 이다. 想은 확정 술어가 없어 문맥으로 「생각」(이 경 안에서 고정). 항 수(한역 셋/팔리 넷)는 b01.2와 같다. 이문: 大正 `無此而無`의 `而`가 宋·元·明에는 `即` — 어느 쪽이든 「이것이 없으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6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8

AG:da14/0064b07.4 · 교차 검사

爾時,帝釋白佛言:「實爾!世尊!愛由想生,因想緣想,想為原首,從此而有,無此則無。

그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랑은 생각에서 생기니, 생각으로 인하고 생각을 연으로 삼아 생각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습니다.

주 제석이 b07.4의 답을 되풀이한다. 팔리는 358.18 뒤 358.19에서 곧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欲→愛 문제는 b07.4와 같다. 이 되풀이는 `無此則無`로 적어 b07.4의 `無此而無`와 한자가 다르다(大正 안에서 而↔則이며, 宋·元·明은 b07.4에서 `即`이라 이 좌표와 맞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18

AG:da14/0064b09.1 · 교차 검사

我今聞佛所說,無復疑也。

저는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들으니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주 b05.1과 같은 정형인데 `迷惑悉除`가 빠진 짧은 꼴이다(한역 안의 차이). 팔리에는 358.18과 358.19 사이에 이 정형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18

AG:da14/0064b11.1 · 교차 검사

但不解想復何由而生?

다만 생각이 다시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 팔리 358.19 `vitakko kho pana … kiṃnidāno kiṃsamudayo …`의 첫 조각이다(분할 방식은 b06.1과 같다). 여기서 질문 대상은 `想`. `不解`는 b06.1의 `不知`와 다른 글자라 「이해하지 못합니다」/「알지 못합니다」로 구별했다. `而`는 접속이라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9

AG:da14/0064b11.2 · 교차 검사

何因何緣?

무슨 인이며 무슨 연입니까?

주 b06.2와 같은 처리(想에 대한 질문). 팔리 358.19의 `kiṃnidāno kiṃsamudayo`와 짝짓기는 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9

AG:da14/0064b12.1 · 교차 검사

誰為原首?

누가 근원의 첫머리입니까?

주 b07.1과 같은 처리(想에 대한 질문). `原首`는 팔리 `pabhava`와 맞물릴 수 있으나 짝짓기는 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19

AG:da14/0064b12.2 · 교차 검사

從誰而有?

누구로부터 있습니까?

주 팔리 358.20 `kismiṃ sati vitakko hoti`(처격 절대구)를 `從誰而有`로 옮겼다. b07.2와 같은 번역기법 자리이며 저본 차이의 증거가 아니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8.20

AG:da14/0064b12.3 · 교차 검사

從誰而無?」

누구로부터 없습니까?”

주 팔리 358.21 `kismiṃ asati vitakko na hoti`(처격 절대구)를 `從誰而無`로 옮겼다. b07.3과 같은 번역기법 자리이며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58.21

AG:da14/0064b13.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想之所生,由於調戲,因調緣調,調為原首,從此而有,無此則無。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생각이 생겨나는 것은 희롱에서 말미암으니, 희롱으로 인하고 희롱을 연으로 삼아 희롱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있고, 이것이 없으면 없다.

주 팔리 358.22는 `vitakko … papañcasaññāsaṅkhā-nidāno …`로 vitakka의 근원이 papañca-saññā-saṅkhā라는 복합어인데 한역은 `調戲`(이하 줄여 `調`) 하나로 옮겼다 — 복합어 압축과 항 수(한역 셋/팔리 넷)가 다르다. `調戲`는 확정 술어가 없고 사전에도 표제가 없다. 음의 慧琳 0599b05는 調=嘲, 戲=相調戲로 풀고 경에 따라 `掉戲`로도 적는다고 한다(인용이며 확정 아님). 이에 한자대로 「희롱」으로 옮기고 이 경 안에서 고정한다. 한역이 같은 개념에 `調戲`와 줄임형 `調`를 함께 쓰는 한자 흔들림이 있으나 둘 다 「희롱」으로 옮긴다. `想之所生`의 `所`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4

AG:da14/0064b13.2 · 교차 검사

帝釋!若無調戲則無想,無想則無欲,無欲則無愛憎,無愛憎則無貪嫉,若無貪嫉,則一切眾生不相傷害。

제석이여! 희롱이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욕망이 없고, 욕망이 없으면 사랑과 미움이 없고, 사랑과 미움이 없으면 탐욕과 시기가 없고, 탐욕과 시기가 없으면 모든 중생은 서로 해치지 않는다.

주 한역이 부처님 말씀으로 연쇄를 희롱에서 위로 거슬러(희롱→생각→욕망→사랑과 미움→탐욕과 시기→해치지 않음) 한 문장에 모아 읊는다. 팔리에는 이 연쇄가 한 번에 모인 말씀이 없고 각 단계의 `asati … na hoti`가 358.24 · 358.18 · 358.12 · 358.6에 흩어져 있으며 순서도 반대(질투·인색에서 희론 쪽으로 내려감)라 자리바뀜으로 단다. 끝 항 `一切眾生不相傷害`는 팔리 357.3의 소망(`averā adaṇḍā asapattā abyāpajjā`)과 닿을 수 있으나 짝짓기는 하지 않는다. `貪嫉`은 팔리 `issāmacchariya`(358.6)와 맞물리는 자리로 보이나(嫉≈issā, 貪≈macchariya 가능) 본문은 한자대로 「탐욕과 시기」. `若…則`은 연결어미 「-면」이 져서 따로 옮기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24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18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1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6

AG:da14/0064b15.1 · 교차 검사

帝釋!但緣調為本,因調緣調,調為原首,從此有想,從想有欲,從欲有愛憎,從愛憎有貪嫉;以貪嫉故,使群生等共相傷害。」

제석이여! 다만 희롱을 연하여 근본이 되니, 희롱으로 인하고 희롱을 연으로 삼아 희롱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생각이 있고, 생각으로부터 욕망이 있고, 욕망으로부터 사랑과 미움이 있고, 사랑과 미움으로부터 탐욕과 시기가 있다. 탐욕과 시기 때문에 뭇 생명들로 하여금 함께 서로 해치게 한다.”[불확실]

불확실 연쇄를 이번에는 바른 순서(희롱→…→해침)로 모은 말씀이다. 팔리의 `sati … hoti` 쪽이 358.22 · 358.16 · 358.10 · 358.5에 흩어져 있고 순서가 반대이며, 끝의 `使群生等共相傷害`는 357.7(`saverā sadaṇḍā sasapattā sabyāpajjā viharanti saverino`)에 닿으므로 자리바뀜으로 단다. `但緣調為本`은 `[緣調]為本`(희롱을 연하여 근본이 됨)과 `緣[調為本]` 두 갈래로 끊길 수 있어 앞의 것으로 옮기고 로 둔다. `群生等`의 `群生`은 b15.1의 `眾生`과 다른 글자(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라 「중생」과 구별해 「뭇 생명」. `使`는 「~로 하여금 ~하게 한다」, `以貪嫉故`는 「~ 때문에」, `等`은 복수 표지 「들」.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다」. `但`은 한정의 뜻이 실려 「다만」.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2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16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10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5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7.7

AG:da14/0064b17.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實爾!世尊!由調有想,因調緣調,調為原首,從此有想由調而有,無調則無。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희롱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있으니, 희롱으로 인하고 희롱을 연으로 삼아 희롱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이로부터 생각이 있으며 희롱으로 말미암아 있고, 희롱이 없으면 없습니다.

주 제석이 b13.2의 답을 되풀이한다. 팔리 358.24 뒤에는 다음 질문 358.25가 곧 이어진다. 되풀이의 꼴이 b13.2와 달라 `從此有想由調而有`처럼 `由調`가 겹치는데 한역 안의 차이이므로 원문대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24

AG:da14/0064b20.1 · 교차 검사

若本無調者則無想,無想則無欲,無欲則無愛憎,無愛憎則無貪嫉,無貪嫉則一切群生不相傷害。

본래 희롱이 없다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욕망이 없고, 욕망이 없으면 사랑과 미움이 없고, 사랑과 미움이 없으면 탐욕과 시기가 없고, 탐욕과 시기가 없으면 모든 뭇 생명은 서로 해치지 않습니다.

주 제석이 b15.1을 되풀이한다. `若本無調者`의 `若…者`는 조건 구문이라 「-다면」에 흡수하고 `者`를 명사화로 세우지 않았다. `本`은 뜻이 실려 「본래」. `群生`은 b17.1과 같은 처리이며 b15.1은 `眾生`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24

AG:da14/0064b22.1 · 교차 검사

但想由調生,因調緣調,調為原首,從調有想,從想有欲,從欲有愛憎,從愛憎有貪嫉,從貪嫉使一切眾生共相傷害。

다만 생각은 희롱으로 말미암아 생기니, 희롱으로 인하고 희롱을 연으로 삼아 희롱이 근원의 첫머리가 되어, 희롱으로부터 생각이 있고, 생각으로부터 욕망이 있고, 욕망으로부터 사랑과 미움이 있고, 사랑과 미움으로부터 탐욕과 시기가 있으며, 탐욕과 시기로부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함께 서로 해치게 합니다.

주 제석이 b17.1을 되풀이한다. 이문: 大正 `眾生`, 宋·元·明 `群生` — 大正대로 「중생」으로 옮겼다(b17.1·b22.1은 `群生`이라 한 경 안에서 `眾生`/`群生`이 섞인다). `使`는 「~로 하여금 ~하게 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24

AG:da14/0064b25.1 · 교차 검사

我今聞佛所說,迷惑悉除,無復疑也。」

저는 이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들으니 미혹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주 b05.1과 같은 정형이다. 연쇄 전체를 맺는 자리이고 팔리 358.24 뒤에는 이 정형이 없다.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58.24

AG:da14/0064b28.1 · 교차 검사

爾時,帝釋復白佛言:「一切沙門、婆羅門盡除調戲在滅迹耶?

그때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모든 사문과 바라문은 희롱을 다 제거하여 소멸의 자취에 있습니까?[불확실]

불확실 같은 자리(제석이 「모든 사문·바라문이 …한가」를 묻는 질문)에서 내용이 다르다. 팔리 366.2는 `sabbeva nu kho …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ekantasīlā ekantachandā ekantaajjhosānā`(모두가 한결같이 주장하고 계행하고 …한가)이고 한역은 `盡除調戲在滅迹`(희롱을 다 제거하고 소멸의 자취에 있는가)이다. 이 짝짓기는 질문 → 「모두는 아니다」 → 이유(여러 영역)의 틀이 같다는 데에 기댈 뿐 확정이 아니라 이다. 滅迹: 滅=소멸, 迹=자취로 옮겼다. 팔리 358.25의 `nirodhasāruppagāminī paṭipadā`(소멸에 알맞게 가는 길)와 맞물릴 수 있어 c10.2에서 따로 단다. 迹는 「자취」 외에 「길」일 수 있으나 한자대로 두었고 확정 술어가 없어 [불확실]이다. 沙門은 음역으로 한국 불교계에 정착한 「사문」(출가 수행자), 婆羅門은 확정역 「바라문」. `復`는 「다시」(제석의 새 질문), `耶`는 의문 어미가 져서 따로 옮기지 않는다. `盡`은 뜻이 실려 「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6.2

AG:da14/0064b28.2 · 교차 검사

為不除調戲在滅迹耶?」

아니면 희롱을 제거하지 않고 소멸의 자취에 있습니까?”[불확실]

불확실 앞 좌표의 질문에 「아니면」으로 이어지는 반대쪽 선택지다. 팔리 366.2에는 이런 양자택일의 뒷절이 없다. `為`는 앵커의 「위하여·피동」이 아니라 선택 접속 「아니면」으로 읽었다(앞 좌표의 `盡除`↔`不除` 대비가 근거). 이 읽기는 이다.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6.2

AG:da14/0064c01.1 · 교차 검사

佛告帝釋:「一切沙門、婆羅門不盡除調戲在滅迹也。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문과 바라문이 희롱을 다 제거하여 소멸의 자취에 있는 것은 아니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366.3 `na kho … sabbe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모두가 …인 것은 아니다)와 같은 자리이고 부정하는 내용이 다르다. `不盡除調戲在滅迹`의 부정 범위가 둘로 읽힌다. (가) 「희롱을 다 제거하고 소멸의 자취에 있는 것이 아니다」(不이 전체에 걸림, 팔리 `na … sabbe`의 부분 부정과 같은 꼴) (나) 「희롱을 다 제거하지 않은 채 소멸의 자취에 있다」(不이 盡除에만 걸림). (가)로 옮기고 로 둔다. 이어지는 c03.2의 이유(제 영역에 매여 버리지 못함)는 두 읽기 모두에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6.3

AG:da14/0064c01.2 · 교차 검사

所以然者?

그러한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 366.4는 제석이 `kasmā pana … na sabbe …`(왜 모두는 아닙니까)라고 묻고 부처님이 366.5에서 답한다. 한역은 부처님이 스스로 `所以然者`(그러한 까닭은)로 묻고 곧 답한다 — 질문자가 옮겨 있다. `所以`는 「까닭」, `然`은 「그러한」, `者`는 의문 어조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6.4

AG:da14/0064c03.1 · 교차 검사

帝釋,世間有種種界,眾生各依己界,堅固守持,不能捨離,謂己為實,餘者為虛。

제석이여, 세상에는 갖가지 영역이 있고, 중생은 각각 자기 영역에 의지하여 굳게 지키고 지니며 버리고 떠날 수 없어, 자기는 참되다 하고 나머지는 헛되다 한다.[불확실]

불확실 항마다 짝이 선다. `世間有種種界`↔`anekadhātu nānādhātu … loko`, `眾生各依己界`↔`sattā yaṃ yadeva dhātuṃ abhinivisanti`, `堅固守持,不能捨離`↔`thāmasā parāmāsā abhinivissa`, `謂己為實,餘者為虛`↔`idameva saccaṃ moghamaññaṃ`. `界`는 한자대로 「영역」으로 옮겼으나 팔리는 `dhātu`(요소·성향)이고 한문 `界`에도 요소의 뜻(十八界)이 있어 갈래가 둘이므로 이다. `世間`은 3분할 표의 의역 처리에 따라 「세상」. `堅固`는 표에 `Kevaddha·Sāla`로 실린 이름용 항목이지만 여기서는 일반 부사라 저본이 이겨 「굳게」. `能`은 「-ㄹ 수 없다」에 흡수했다. `己`는 「자기」, 實·虛는 「참되다」「헛되다」. `有`는 존재 자체를 서술하는 자리라 「있고」.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6.5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6.6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6.7

AG:da14/0064c03.2 · 교차 검사

是故,帝釋!一切沙門、婆羅門不盡除調戲而在滅迹。」

그러므로 제석이여! 모든 사문과 바라문이 희롱을 다 제거하고서 소멸의 자취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주 팔리 366.8 `tasmā na sabbe samaṇabrāhmaṇā ekantavādā …`와 같은 맺음 자리이고 내용이 다르다(c01.2와 같음). `不盡除…而在`의 부정 범위는 c01.2와 같은 두 읽기가 있어 (가)로 옮겼다. `是故`는 「그러므로」, `而`는 접속이라 「-고서」로 흡수.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6.8

AG:da14/0064c05.1 · 교차 검사

爾時,帝釋白佛言:「實爾!世尊!世間有種種眾生,各依己界,堅固守持,不能捨離,謂己為是,餘為虛妄。

그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갖가지 중생이 있고 각각 자기 영역에 의지하여 굳게 지키고 지니며 버리고 떠날 수 없어, 자기는 옳다 하고 나머지는 허망하다 합니다.

주 제석의 되풀이이며 팔리 366.8 뒤 366.9는 곧 다음 질문이다. 되풀이는 부처님 말씀(c03.2)과 글자가 다르다. `種種界`→`種種眾生`, `謂己為實,餘者為虛`→`謂己為是,餘為虛妄`이다. 한역 안의 차이로 두고 본문은 글자대로 「갖가지 중생」·「옳다」·「허망하다」로 옮겼다. 堅固는 c03.2와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6.8

AG:da14/0064c06.1 · 교차 검사

是故一切沙門、婆羅門不盡除調戲而在滅迹。

그러므로 모든 사문과 바라문은 희롱을 다 제거하고서 소멸의 자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 제석이 c05.1의 맺음을 되풀이한다. c06.1과 함께 366.8 뒤에 놓이는 자리이며 팔리에는 이 되풀이가 없다. 부정 범위는 c01.2와 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6.8

AG:da14/0064c08.1 · 교차 검사

我聞佛言,疑惑悉除,無復疑也。」

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의혹이 모두 제거되어 다시는 의심이 없습니다.”

주 의혹이 풀렸다는 제석의 정형 맺음이다. 팔리 366.15-17은 `attamano … abhinandi anumodi` · `evametaṃ, bhagavā …` · `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ṃkathā …`로 길고, 한역은 `疑惑悉除,無復疑`로 줄였다(한쪽이 더). 앞의 b05.1과 달리 `迷惑`이 아니라 `疑惑`, `佛所說`이 아니라 `佛言`이다(한역 안의 글자 차이). `我聞佛言`의 `言`은 명사로 「말씀」. 따옴표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6.16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6.17

AG:da14/0064c10.1 · 교차 검사

帝釋復白佛言:「齊幾調在滅迹耶?」

제석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어느 한도까지 희롱이 소멸의 자취에 있습니까?”[불확실]

불확실 팔리 358.25 `kathaṃ paṭipanno … bhikkhu papañcasaññāsaṅkhānirodhasāruppagāminiṃ paṭipadaṃ paṭipanno hoti`(비구가 어떻게 닦아야 희론의 소멸에 알맞은 길을 가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보이나 팔리에서는 연쇄 직후(358.25)에 서고 한역에서는 사문·바라문 문답(팔리 366에 닿음) 뒤에 선다. 내용도 완전히 같지는 않아 자리바뀜으로 단다. `齊幾`는 음의 慧琳 0400b24(`齊`=限齊, 한계)를 인용해 「어느 한도까지」로 옮겼다(확정 아님). `調在滅迹`은 「희롱이 소멸의 자취에 있다」로 직역했으나 누가 무엇을 제거해야 하는지 문장에 없어 뜻은 이다. 滅迹은 b28.2 비고 참조. `復`는 「다시」, `耶`는 의문 어미가 져서 따로 옮기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8.25

AG:da14/0064c10.2 · 교차 검사

佛告帝釋:「調戲有三:一者口,二者想,三者求。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희롱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입이요, 둘째는 생각이요, 셋째는 구함이다.[불확실]

불확실 팔리 364.3-8의 `kāyasamācāra · vacīsamācāra · pariyesanā`(몸의 행실·말의 행실·구함) 세 항과 항 수가 같다. `口`↔`vacī`, `求`↔`pariyesanā`는 서지만 `想`은 팔리 `kāya`(몸)와 짝이 서지 않는다. 한 항이 엇갈리므로 일부로 달고 로 둔다. 팔리 359.1-5의 세 항(`somanassa · domanassa · upekkhā`)도 셋이라 후보가 되나 항목이 맞지 않는다. 口는 「입」(다음 좌표 `彼口所言`의 口와 같은 자). 求는 사전 求 ①(이 경 0064c11.1 외)을 참고해 「구함」. `一者`의 `者`는 「~는」으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4.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4.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4.7

AG:da14/0064c11.1 · 교차 검사

彼口所言,自害、害他,亦二俱害。

그 입이 말하는 것은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한 둘 다 해친다.

주 팔리 364.17 `vacīsamācāra`의 기준은 「불선법이 늘고 선법이 준다」(`a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로, 한역의 기준 「자신을 해친다·남을 해친다·둘 다 해친다」와 다르다. 같은 자리(말)에서 판별 기준이 다른 것이다. `所言`의 `所`는 「~하는 바」를 피해 관형절로 풀었다. `自`↔`他` 대조가 실재하므로 「자신」「남」으로 세운다(「스스로」는 쓰지 않음). `亦`은 셋째 경우를 더하는 뜻이 실려 「또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4.17

AG:da14/0064c12.1 · 교차 검사

捨此言已,如所言,不自害、不害他、不二俱害。

이 말을 버리고 나서, 말하는 대로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해치지도 않는다.

주 팔리 364.18의 기준 「불선법이 줄고 선법이 는다」(`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kusalā dhammā abhivaḍḍhanti`)와 같은 자리에서 달라진다(c12.1과 같음). `如所言`은 `捨此言已`(이 말을 버리고 나서) 뒤에 이어지므로 「버린 뒤의 말하는 대로」로 읽어 「말하는 대로」로 옮겼다(`如`=「~대로」, `所`는 관형절로 풀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4.18

AG:da14/0064c13.1 · 교차 검사

知時比丘如口所言,專念不亂,想亦自害、害他,亦二俱害;捨此想已,如所想,不自害、不害他,二俱不害,知時比丘如所想,專念不亂。

때를 아는 비구는 입으로 말하는 대로 오롯이 새겨 어지럽지 않고, 생각도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한 둘 다 해친다. 이 생각을 버리고 나서 생각하는 대로 자신을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해치지 않으니, 때를 아는 비구는 생각하는 대로 오롯이 새겨 어지럽지 않다.

주 `想`의 항이 팔리 어느 항에 걸리는지 아직 못 정했다. c11.1에서 `口`↔`vacī`(364.14-20), `求`↔`pariyesanā`(364.21-26)는 서지만 `想`의 후보인 `kāya`(364.9-13)는 뜻이 맞지 않아 미대응으로 두고 후보 좌표(364.10·364.11)만 짚는다. `知時比丘`(때를 아는 비구)에 해당하는 팔리 문장은 364.9-26에서 찾지 못했으나 이를 없음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專念은 사전 專念 ①(장아함 54회, 뒤 不亂 17)에서 `專念不亂`이 굳은 짝으로 나타나므로 「오롯이 새겨 어지럽지 않다」로 옮겼고, 想의 「생각」과 겹치지 않게 念을 「새기다」로 풀었다. `亦`은 첫째 「도」, 둘째 「또한」. 比丘는 확정역 「비구」. 이 좌표는 따옴표가 열린 채 다음 구간으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21:364.10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21:364.11

AG:da14/0064c14.1 · 교차 검사

帝釋!求亦自害、害他,亦二俱害;捨此求已,如所求,不自害、不害他,不二俱害,知時比丘如所求,專念不亂。」

제석이여! 구함도 스스로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 둘 다를 해친다. 이 구함을 버리고 나서 구하는 대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둘 다를 해치지 않는다. 때를 아는 비구는 구하는 대로 오롯이 생각하여 어지럽지 않다.」

주 팔리 364.21~27(pariyesanā 구함)은 선하지 않은 법이 늘고 선한 법이 줄어드는지로 가르는 틀이고, 한역은 같은 자리에서 「스스로 해침·남을 해침·둘 다 해침」으로 가른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이므로 엇갈림이다. 「如所求」가 앞 절을 닫는지 뒤 절을 여는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구하는 대로」로 두 절 사이에 걸어 옮겼다. 「亦」은 앞 항들(이 구간 밖)과 같은 틀의 나열을 잇는 뜻이 실려 「-도」로 세웠고, 「自」는 「他」와 대조가 실재해 「스스로」를 세웠다. 이문: 他=彼 (宋·元·明). 比丘는 확정역(비구). 專念은 사전 「專念」(장아함 54회, 뒤: 不亂 17·不忘 16)에서 한 대상에 오롯이 두는 쓰임이라 「오롯이 생각하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4.24

AG:da14/0064c17.1 · 교차 검사

爾時,釋提桓因言:「我聞佛所說,無復狐疑。」

그때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더는 여우 같은 의심이 없습니다.」

주 팔리 364.29~31은 「세존의 답을 듣고 기뻐하며 …… 의심과 혼란이 사라졌다」(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ṃkathā)로, 의심이 사라졌다는 점이 닿는다. 釋提桓因은 3분할 표에서 「갈림(의역/혼합)」인데 釋提(Sakka)·桓因(inda)가 모두 소리로 옮긴 것이라 음역으로 판별하여 「석제환인」으로 독음했다. 전거: 釋提桓因 — 팔리 Sakka devānaṃ inda / 근대 Śākradevānāmiṁdra(근대 비정이며 계통 판정은 하지 않는다); 음의 釋提桓因 慧琳 0482c21(釋迦提婆因達羅 …… 此云能也提婆天也因達羅帝也). 狐疑는 여우가 의심이 많다는 데서 온 한문 관용어이나 한 글자도 줄이지 않으려 「여우 같은 의심」으로 두었다. 「所說」은 훈독투 「설하신 바」를 피해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존칭: 제석→부처님 존댓말.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4.31

AG:da14/0064c20.1 · 교차 검사

又白佛言:「齊幾名賢聖捨心?」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느 정도에 이르면 현성의 버림의 마음이라 이름합니까?」

주 팔리에서 이 자리에 걸리는 물음은 358.25(papañcasaññāsaṅkhā를 멎게 하는 길로 나아감)이고 이어 359~362가 somanassa·domanassa·upekkhā를 가른다. 한역은 같은 물음을 「捨心」으로 세우고 (이 구간 앞의 身行·口行·求 다음에) 놓았으니, 팔리와 배열이 다르다. 捨는 이 구간 안에서 「捨此喜已」처럼 동사 「버리다」로 쓰이므로 「버림의 마음」으로 옮기고, 팔리 upekkhā(평정)에 닿는지는 판정하지 않았다. 齊幾: 사전이 아닌 음의 「齊幾」(慧琳 0400b24 「齊祭反 限齊也」)에 한정·한도의 뜻이 있어 「어느 정도에 이르면」으로 옮겼다. 賢聖은 정착형 「현성」. 존칭: 제석→부처님 존댓말.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58.25

AG:da14/0064c21.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捨心有三:一者喜身,二者憂身,三者捨身。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버림의 마음에는 셋이 있다. 첫째는 기쁨의 몸이고, 둘째는 근심의 몸이며, 셋째는 버림의 몸이다.

주 喜身·憂身·捨身의 셋은 팔리 somanassa(기쁨)·domanassa(근심)·upekkhā(평정)의 순서와 같이 짝지어진다. 다만 팔리는 이 셋(359~363)이 계율(364)과 감관(365)보다 앞서고, 한역은 구함(求) 뒤·諸根具足 앞에 놓아 자리가 바뀌었다. 身을 팔리가 갖지 않으므로 「몸」으로 그대로 두고 풀지 않았다. 「捨身」의 捨는 이 구간 안에서 「버리다」로 읽히므로 「버림」이며, upekkhā의 「평정」으로 단정하지 않는다(위 0064c21.1과 같음). 「有三」의 有는 셋이 있음 자체를 서술하여 「있다」로 세웠다. 一者·二者·三者의 者는 서수 표지라 「첫째·둘째·셋째」로 흡수했다. 佛·帝釋: 佛은 확정역(부처님), 帝釋은 정착어 「제석」(천제석 Sakka 줄임; 신들의 제왕 Sakka)으로 하되 釋提桓因·天帝釋과 한 경 안에서 한자가 흔들린다 — 한자 흔들림(帝釋/釋提桓因/天帝釋).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9.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9.3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59.5

AG:da14/0064c22.1 · 교차 검사

帝釋!彼喜身者,自害、害他,亦二俱害;捨此喜已,如所喜,不自害、害他,二俱不害,知時比丘專念不忘,即名受具足戒。

제석이여! 저 기쁨의 몸은 스스로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 둘 다를 해친다. 이 기쁨을 버리고 나서 기뻐하는 대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해치지 않는다. 때를 아는 비구는 오롯이 생각하여 잊지 않으니, 곧 구족계를 받음이라 이름한다.」

주 팔리 360은 「이 기쁨을 누릴 때 선하지 않은 법이 늘고 선한 법이 줄면 누리지 말아야 하고, 반대면 누려야 한다」는 틀이고, 한역은 자타 해침의 틀이다. 저본 「不自害、害他」는 두 번째 不이 없어 문면대로는 「자기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친다」로도 읽히나, 이어지는 「二俱不害」와 앞 항(0064c17.1의 不自害、不害他)에 비추어 不이 두 항에 걸린 것으로 읽었다. 이문 {害→不害} (宋·元·明)는 이 읽기와 같은 방향이다. 受具足戒는 정착형 「구족계」를 쓰되 「곧(即)」은 같음을 나타내는 뜻이 실려 세웠다. 彼는 「저」, 者는 주제 표지 「-은」.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0.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0.3

AG:da14/0064c23.1 · 교차 검사

帝釋!彼憂身者,自害、害彼,亦二俱害;捨此憂已,如所憂,不自害、害他,二俱不害,知時比丘專念不忘,即名受具足戒。

제석이여! 저 근심의 몸은 스스로를 해치고 상대를 해치며 또 둘 다를 해친다. 이 근심을 버리고 나서 근심하는 대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해치지 않는다. 때를 아는 비구는 오롯이 생각하여 잊지 않으니, 곧 구족계를 받음이라 이름한다.」

주 앞 좌표와 같은 틀(팔리 361은 domanassa의 선·불선 증감 틀).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앞은 「害他」, 여기 앞 항은 「害彼」, 뒤 항은 「害他」. 한국어에서 한자를 가르기 위해 彼를 「상대」, 他를 「남」으로 옮겼다. 이문: 害→不害 (宋·元·明, app_id 미표시)가 있으나 위치가 확정되지 않아 저본대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1.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1.4

AG:da14/0064c26.1 · 교차 검사

復次,帝釋!彼捨身者,自害、害他,亦二俱害;捨此身已,如所捨,不自害、不害他,二俱不害,知時比丘專念不忘,是即名為受具足戒。」

다음으로 제석이여! 저 버림의 몸은 스스로를 해치고 남을 해치며 또 둘 다를 해친다. 이 몸을 버리고 나서 버리는 대로, 스스로를 해치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으며 둘 다 해치지 않는다. 때를 아는 비구는 오롯이 생각하여 잊지 않으니, 이를 곧 구족계를 받음이라 이름한다.」

주 팔리 362는 upekkhā의 선·불선 증감 틀. 復次는 「다음으로」(열거를 잇는 접속 표지). 「捨此身已」의 身은 宋·元·明에서 捨로 읽혀 「捨此捨已」가 된다 — 저본대로 「이 몸」을 옮겼다. 「是即名為」의 爲는 「~라고(이름)」을 잇는 계사.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2.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2.3

AG:da14/0064c28.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我聞佛所說,無復狐疑。」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더는 여우 같은 의심이 없습니다.」

주 0064c20.1과 같은 정형 문장(주어 표기만 「제석」). 팔리 363.4(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ṃkathā …)는 upekkhā 답 뒤의 같은 기능의 환희 문장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3.4

AG:da14/0065a03.1 · 교차 검사

又白佛言:「齊幾名賢聖律諸根具足?」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느 정도에 이르면 '현성의 율에서 여러 감관이 갖추어짐'이라 이름합니까?」

주 팔리 365.2는 「어떻게 나아가는 비구가 indriyasaṃvara(감관의 단속)로 나아가는 것인가」이고, 한역은 「賢聖律諸根具足」로 묻는다 — 단속(saṃvara)이 아니라 갖춤(具足)이라는 어휘가 갈린다. 根은 확정역이 없어 정착어 「감관」으로 옮겼고 팔리 indriya와의 일치는 판정하지 않는다. 律은 정착형 「율」. 諸는 여러 근(눈·귀 …)의 복수가 실려 「여러」. 齊幾는 0064c21.1과 같다(음의 慧琳 0400b24).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2

AG:da14/0065a03.2 · 교차 검사

佛告帝釋:「眼知色,我說有二:可親、不可親。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눈이 형색을 아는 것에 둘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가까이할 만함과 가까이할 수 없음이다.

주 팔리 365.3~4는 「눈으로 알 수 있는 형색을 두 가지로 말하니, 가까이할 만함·가까이할 수 없음(sevitabbampi asevitabbampi)」이다. 한역 可親/不可親은 sevitabba/asevitabba에 닿으나 親(가까이함)은 sevati(받들어 씀·익힘)보다 좁은 어휘다. 「我說有二」의 有는 둘이 있음을 서술하여 「둘이 있다」로 세웠다. 色은 「형색」.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4

AG:da14/0065a04.1 · 교차 검사

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我說有二:可親、不可親。」

귀의 소리, 코의 향기, 혀의 맛, 몸의 닿음, 뜻의 법에는 둘이 있다고 나는 말한다. 가까이할 만함과 가까이할 수 없음이다.」

주 팔리는 다섯 감관마다 문장을 따로 세우나(365.5~14), 한역은 한 문장에 나열한다. 「耳聲」 등은 「知」가 생략된 자리이나 한문에 없는 동사를 넣지 않고 「귀의 소리」로 옮겼다. 觸은 「닿음」(phoṭṭhabba 자리), 法은 「법」으로 옮겼다. 원문에 亦이 없으므로 「-도」를 세우지 않고 「-에는」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13

AG:da14/0065a05.1 · 교차 검사

爾時,帝釋白佛言:「世尊!如來略說,未廣分別,我以具解。

그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간략히 설하시고 아직 널리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로써 갖추어 이해합니다.

주 팔리 365.16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이것의 뜻을 저는 이렇게 자세히 압니다」와 닿는다. 「我以具解」의 以는 「이로써」로 옮겼으나 以=已(이미)일 가능성이 있다 — 저본 글자대로 두었다. 世尊·如來는 확정역. 未廣分別은 「아직 널리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未=아직 ~하지 않음).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16

AG:da14/0065a07.1 · 교차 검사

眼知色,我說有二:可親、不可親。

눈이 형색을 아는 것에 둘이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가까이할 만함과 가까이할 수 없음입니다.

주 팔리 365.16에서 17로 건너갈 때 제석이 부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문장이 없다(365 전체를 읽고 확인했다). 「我說」의 我가 부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자리인지 제석 자신의 말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문면대로 「나는 말합니다」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5.16

AG:da14/0065a08.1 · 교차 검사

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有二:可親、不可親。

귀의 소리, 코의 향기, 혀의 맛, 몸의 닿음, 뜻의 법에는 둘이 있습니다. 가까이할 만함과 가까이할 수 없음입니다.

주 앞 좌표와 같은 되풀이. 앞 문장과 달리 「我說」이 없다 — 저본대로 두었다. 「-에는」도 亦이 없는 저본대로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5.16

AG:da14/0065a09.1 · 교차 검사

世尊!如眼觀色,善法損減,不善法增,如此眼知色,我說不可親;耳聲、鼻香、舌味、身觸、意知法,善法損減,不善法增,我說不可親。

세존이시여! 눈이 형색을 살펴보아 선한 법이 줄어들고 선하지 않은 법이 늘어난다면, 이러한 눈의 형색 앎을 나는 가까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귀의 소리, 코의 향기, 혀의 맛, 몸의 닿음, 뜻이 법을 아는 것에서 선한 법이 줄어들고 선하지 않은 법이 늘어난다면, 나는 가까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주 팔리 365.17 「그러한 형색을 누릴 때 선하지 않은 법이 늘고 선한 법이 줄면 누리지 말아야 한다」와 닿으나 한역은 선한 법이 앞에 선다(어순이 뒤집혔다). 팔리 365.19는 …pe…로 접혀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꼴을 미대응으로 둔다. 「如眼觀色」의 如는 「~라면」(yathārūpa 자리의 가정·한정)으로 어미에 흡수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眼觀色(여기)/眼見色(0065a13.1), 如此(여기)/如是(0065a13.1), 意法(앞)/意知法(여기). 觀은 「살펴보다」, 見은 「보다」로 갈라 옮겼다. 善法·不善法은 「선한 법·선하지 않은 법」.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17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21:365.19

AG:da14/0065a10.1 · 교차 검사

世尊!如眼見色,善法增長,不善法減,如是眼知色,我說可親;耳聲、鼻香、舌味、身觸、意知法,善法增長,不善法減,我說可親。」

세존이시여! 눈이 형색을 보아 선한 법이 자라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줄어든다면, 이와 같은 눈의 형색 앎을 나는 가까이할 만하다고 말합니다. 귀의 소리, 코의 향기, 혀의 맛, 몸의 닿음, 뜻이 법을 아는 것에서 선한 법이 자라나고 선하지 않은 법이 줄어든다면, 나는 가까이할 만하다고 말합니다.」

주 팔리 365.18(선하지 않은 법이 줄고 선한 법이 늘면 누려야 한다)과 닿으나 어순이 뒤집힌 점은 앞 좌표와 같다. 한자 흔들림은 앞 좌표에 적었다(見/觀, 如是/如此, 增長/增). 增長(자라남)과 앞의 增(늘어남)은 같은 한국어로 합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18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20

AG:da14/0065a13.1 · 교차 검사

佛告帝釋:「善哉!善哉!是名賢聖律諸根具足。」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이것을 '현성의 율에서 여러 감관이 갖추어짐'이라 이름한다.」

주 팔리는 제석의 말(365.20) 다음 곧 제석의 환희 문장(365.21)으로 이어지고 부처님의 인가 문장이 없다 — 그 자리가 놓일 곳(365.20과 365.21 사이)을 짚었다. 哉는 감탄 어미 「-구나」가 지므로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5.21

AG:da14/0065a16.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我聞佛所說,無復狐疑。」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더는 여우 같은 의심이 없습니다.」

주 0064c20.1·0065a03.1과 같은 정형 문장. 팔리 365.21(tiṇṇā mettha kaṅkhā vigatā kathaṃkathā …)에 닿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5.21

AG:da14/0065a17.1 · 교차 검사

復白佛言:「齊幾比丘名為究竟、究竟梵行、究竟安隱、究竟無餘?」

다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비구는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궁극, 궁극의 청정한 행, 궁극의 안온, 궁극의 남음 없음이라 이름합니까?」

주 팔리 366.9는 「모든 사문·바라문이 accantaniṭṭhā·accantayogakkhemī·accantabrahmacārī·accantapariyosānā인가」를 묻는다. 네 항이 모두 「accanta(끝까지 이른)+X」인데 한역은 「究竟」이 네 항에 반복된다. 항의 순서는 팔리 (끝맺음·안온·청정한 삶·마침)와 한역 (궁극·청정한 행·안온·남음 없음)에서 梵行과 安隱이 맞바뀐다. 또 팔리는 사문·바라문 전체에 대한 물음이고 한역은 비구에 대한 물음이다. 梵行은 3분할 표(의역)에 따라 뜻으로 「청정한 행」을 쓰고, 정형구 행의 「청정한 삶」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쓰지 않았다. 究竟은 확정역이 없어 「궁극」으로, 安隱은 정착형 「안온」으로 하였다. 無餘는 「남음 없음」. 齊幾는 음의 慧琳 0400b24. 比丘는 확정역. 「復白」의 復은 「다시」(앞 물음에 이은 반복).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21:366.9

AG:da14/0065a17.2 · 교차 검사

佛告帝釋:「為愛所苦,身得滅者,是為究竟、究竟梵行、究竟安隱、究竟無餘。」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애욕에게 괴로움을 당하여 몸이 소멸함을 얻은 이, 이를 궁극, 궁극의 청정한 행, 궁극의 안온, 궁극의 남음 없음이라 한다.」

주 팔리 366.12는 「갈애의 다함으로 풀려난 비구들이 accanta …」(taṇhāsaṅkhayavimuttā)이고 한역은 「애욕에게 괴로움을 당하여 몸이 소멸함을 얻은 이」다. 「為愛所苦」의 爲…所는 피동이라 「-에게 괴로움을 당하여」로 옮겼다. 끊는 자리가 둘이다 — 「爲愛所苦身」(애욕에 괴로움을 당한 몸)이 滅을 얻는 것으로도 읽힌다. 愛는 확정역이 없어 「애욕」으로 두었고 팔리 taṇhā와의 일치는 판정하지 않는다. 得은 「얻다」. 이문: 大正 「減者,是」, 宋·元·明·CB 「滅者」 — 저본 표기 「滅者,是」를 따랐다. 「是為」의 爲는 계사 「이를 ~라 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6.12

AG:da14/0065a19.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我本長夜,所懷疑網,今者如來開發所疑。」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본래 긴 밤 동안 의심의 그물을 품어 왔습니다. 이제 여래께서 그 의심하던 것을 열어 밝혀 주셨습니다.」

주 팔리 367.5 「오래도록 잠재해 있던 의심과 혼란의 화살을 세존께서 뽑아 주셨다」(dīgharattānusayitaṃ vicikicchākathaṃkathāsallaṃ … abbuḷhaṃ)와 닿는다. 팔리의 sallaṃ(화살·가시)이 한역에서는 網(그물)이고, 뽑는다(abbuḷha)가 열어 밝힌다(開發)이다. 長夜는 「긴 밤」(dīgharattaṃ에 닿음). 今者의 者는 시간어 표지라 「이제」. 所懷·所疑는 「품어 온」「의심하던 것」으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5

AG:da14/0065a21.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汝昔頗曾詣沙門、婆羅門所問此義不?」

부처님께서 제석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옛날에 혹시 일찍이 사문과 바라문의 처소에 나아가 이 뜻을 물은 적이 있는가?」

주 팔리 367.6 「그대는 이 물음들을 다른 사문·바라문에게 물은 일을 기억하는가」(abhijānāsi)와 닿는다. 頗…不은 「혹시 …있는가」 의문을 어미로 진다. 沙門은 정착어 「사문」(음의 慧琳 0420a16 「勤懇」 · 0439c20 「止息」의 음역), 婆羅門은 확정역(바라문). 詣…所는 「~의 처소에 나아가」.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6

AG:da14/0065a22.1 · 교차 검사

帝釋白佛言:「我自憶念:昔者,曾詣沙門、婆羅門所諮問此義。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기억합니다. 옛날에 일찍이 사문과 바라문의 처소에 나아가 이 뜻을 여쭈어 물었습니다.

주 팔리 367.7 「저는 기억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물음들을 다른 사문·바라문에게 물었음을」과 닿는다. 「自憶念」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다. 昔者의 者는 시간어 표지.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7

AG:da14/0065a23.1 · 교차 검사

昔我一時曾集講堂,與諸天眾共論:『如來為當出世,為未出世?』

옛날 저는 한때 일찍이 강당에 모여, 여러 하늘 무리와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여래께서는 세상에 나오실 것인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으셨는가?』

주 팔리 367.8~11(어떻게 대답했는지 물음과 허락) 다음 367.12(숲속의 사문·바라문을 찾아가 묻는 것)로 이어지며, 천신들이 강당에 모여 여래의 출현을 의논하는 대목이 없다(367을 읽어 확인했다). 「為當…,為未…」는 선택 의문 표지라 어미로 옮겼고 「마땅히」는 세우지 않았다. 一時는 「한때」. 講堂은 「강당」, 諸天眾은 「여러 하늘 무리」. 이문: 曾→曾二 (宋·元·明·聖).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7.12

AG:da14/0065a25.1 · 교차 검사

時共推求,不見如來出現于世,各自還宮,五欲娛樂。

그때 함께 헤아려 구하였고, 여래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을 보지 못하여 저마다 궁으로 돌아가 오욕으로 즐겼습니다.

주 앞 좌표와 같은 한역 고유 대목. 推求는 「헤아려 구하다」, 五欲은 정착형 「오욕」. 娛樂은 음의 慧琳 0360c18 「娛亦樂也」를 보아 「즐기다」. 「各自」는 합성어라 「저마다」로 한 번만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7.12

AG:da14/0065a26.1 · 교차 검사

世尊!我復於後時見諸大神天,自恣五欲已,漸各命終。

세존이시여! 저는 뒷날 다시, 여러 큰 신령한 하늘들이 오욕을 마음껏 누리고 나서 차츰 저마다 목숨이 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 앞 좌표와 같은 한역 고유 대목. 「大神天」의 神이 「신령한」인지 「신(神)」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아 「큰 신령한 하늘들」로 두었다(사전 「神」: 장아함 이 경 2회). 自恣는 합성어라 自를 따로 세우지 않았다. 命終은 「목숨이 다하다」. 復於後時의 於는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7.12

AG:da14/0065a27.1 · 교차 검사

時我,世尊!懷大恐怖,衣毛為竪。

그때 저는, 세존이시여, 큰 두려움을 품었고 옷과 털이 곤두섰습니다.

주 팔리에 대응하는 문장이 없다. 「衣毛」를 「옷과 털」로 끊었으나 「옷 속의 털」(합성어)로 읽을 수도 있어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為는 「~이 되다」의 뜻으로 為…所 피동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7.12

AG:da14/0065a29.1 · 교차 검사

時,見沙門、婆羅門處在閑靜,去家離欲,我尋至彼所問言:『云何名究竟?』

그때 사문과 바라문이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며 집을 떠나고 욕망을 여읜 것을 보고, 저는 곧 그들이 있는 곳에 이르러 물어 말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궁극이라 이름합니까?』

주 팔리 367.12는 「숲속 외딴 처소에 머무는 사문·바라문을 찾아가 이 물음들을 물었다」이고 물은 내용이 한역은 「云何名究竟」(궁극이란 무엇인가) 하나다. 「去家離欲」의 欲이 宋·元·明·聖에서 俗이다(去家離俗) — 저본 欲을 옮겼다. 尋은 「곧」. 處在는 「머물다」. 閑靜은 「한적하고 고요함」.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12

AG:da14/0065a29.2 · 교차 검사

我問此義,彼不能報。

제가 이 뜻을 물었으나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주 팔리 367.12 「그들은 제가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였다」(na sampāyanti)와 닿는다. 能은 「-ㄹ 수 있다」 어미가 진다. 報는 「대답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12

AG:da14/0065b02.1 · 교차 검사

彼既不知,逆問我言:『汝為是誰?』

그들은 이미 알지 못하여 도리어 저에게 물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주 팔리 367.12~13 「대답하지 못하고 도리어 저에게 묻기를 '존자의 이름이 무엇이오'」와 닿는다. 팔리는 이름을 묻고 한역은 「누구냐(汝為是誰)」를 묻는다. 逆問은 「도리어 묻다」. 彼既不知의 既는 「이미」.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12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13

AG:da14/0065b03.1 · 교차 검사

我尋報言:『我是釋提桓因。』

저는 곧 대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저는 석제환인입니다.』

주 팔리 367.15 「저는 신들의 왕 삭까입니다」(ahaṃ kho, mārisa, sakko devānamindo)와 같다. 釋提桓因은 0064c20.1과 같이 독음했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개념에 釋提桓因(여기)·天帝釋(0065b04.2)·帝釋(앞)을 번갈아 쓴다. 전거: 釋提桓因 — 팔리 Sakka devānaṃ inda / 근대 Śākradevānāmiṁdra (계통은 판정하지 않는다). 尋은 「곧」. 존칭: 제석→사문·바라문 존댓말.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7.15

AG:da14/0065b03.2 · 교차 검사

彼復問言:『汝是何釋?』

그들이 다시 물어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어떤 석인가?』

주 팔리 367.16~17은 「존자는 신들의 왕이여, 어떤 업을 지어 이 자리를 얻었는가」로 묻고, 한역은 「汝是何釋」(그대는 어떤 석인가)로 묻는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물음이다. 釋은 석제환인의 줄임으로 읽어 「석」으로 옮겼다. 復은 「다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7.17

AG:da14/0065b04.1 · 교차 검사

我時答言:『我是天帝釋,心有所疑,故來相問耳。』

저는 그때 대답하여 말하였습니다. 『저는 천제석입니다. 마음에 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와서 묻는 것일 뿐입니다.』

주 팔리 367.18은 「저는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설하였다」로, 대답의 내용이 갈린다. 한역은 자기 소개와 찾아온 까닭(의심)을 말한다. 天帝釋은 3분할 표(음역)에 따라 「천제석」으로 독음했다. 「相問」의 相은 서로가 아니라 방향을 나타내는 부사라 「와서 묻다」로 흡수했다. 有所疑는 의심이 존재함을 서술하여 「의심이 있다」로 세웠다. 耳는 「~일 뿐」.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7.18

AG:da14/0065b04.2 · 교차 검사

時,我與彼如所知見,說於釋義。

그때 저는 그들에게 알고 본 대로 석의 뜻을 말해 주었습니다.

주 팔리 367.18(yathāsutaṃ yathāpariyattaṃ dhammaṃ desemi, 들은 대로 배운 대로 법을 설함)과 닿는다. 「釋義」가 앞 문답의 「何釋」을 받아 「석(釋)의 뜻」인지, 「풀이한 뜻」(해석한 뜻)인지 한문만으로 서지 않는다. 팔리가 dhamma(법)이므로 후자일 수 있다 — 본문은 한문의 글자대로 「석의 뜻」으로 두었다. 如所知見의 如는 「~대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18

AG:da14/0065b06.1 · 교차 검사

彼問我言:『更為我弟子,我今是佛弟子,得須陀洹道,不墮餘趣,極七往返,必成道果,唯願世尊記我為斯陀含。』

그들이 나에게 물어 말하였습니다. 『다시 내 제자가 되라. 나는 지금 부처님의 제자이고 수다원의 도를 얻어 다른 갈래에 떨어지지 않으며, 길어야 일곱 번 오가면 반드시 도의 결과를 이룬다. 오직 세존께서 저를 사다함으로 수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팔리 367.21~22는 「그들은 오히려 저의 제자가 되었으나 저는 그들의 제자가 아니다. 저는 세존의 제자로 흐름에 든 이(sotāpanno)다」로, 제자 관계의 방향이 한역과 반대다. 한역 『…』 안에는 「更為我弟子」(그들의 말)와 「我今是佛弟子 … 唯願世尊記我」(제석의 말)가 섞여 있어, 말하는 이가 바뀌는 자리를 한문 표점만으로 가를 수 없다. 저본 따옴표대로 한 인용으로 옮기되 마지막 소원 문장은 부처님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로 하였다. 이문: 問→聞 (宋·元·明) — 저본 問을 옮겼다. 須陀洹·斯陀含은 3분할 표(음역)에 따라 독음하였고 정착형은 수다원·사다함이다 (음의 慧琳 0441b25 「入流」, 0441c02 「一來」). 極七往返의 極은 「길어야」. 記는 「수기하다」. 唯는 「오직」.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7.21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7.22

AG:da14/0065b06.2 · 교차 검사

說此語已,復作頌曰:

이 말을 하고 나서 다시 게송을 지어 말하였습니다.

주 팔리는 370.1에서 곧 게송이 시작되고 게송을 알리는 문장이 없다. 說此語已의 已는 완료 「-고 나서」. 頌은 「게송」, 復은 「다시」. 앞 따옴표(「)가 닫히지 않았으므로 제석의 말 안이라 존댓말로 하였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70.0

AG:da14/0065b09.1 · 교차 검사

「『由彼染穢想,故生我狐疑;

『저 물들고 더러운 생각으로 말미암아 내게 여우 같은 의심이 생겼다.

주 팔리 370.1 「뜻이 다 이뤄지지 않은 생각, 의심하는 자, 혼란한 자」(apariyositasaṅkappo vicikiccho kathaṃkathī)와 닿는다. 「染穢想」은 팔리의 saṅkappa(생각)에 닿으나 한역은 「물들고 더러운」이라는 질을 더했다. 由…故는 한 쌍의 인과 표지라 「말미암아」 하나로 옮겼다. 게송이라 어미를 평서로 하고 행을 유지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

AG:da14/0065b11.1 · 교차 검사

長夜與諸天,推求於如來。

긴 밤 동안 여러 하늘과 함께 여래를 헤아려 구하였다.

주 팔리 370.2 「오랜 세월을 헤매며 여래를 찾았다」(vicariṃ dīghamaddhānaṃ anvesanto tathāgataṃ)와 닿는다. 「여러 하늘과 함께(與諸天)」는 팔리 게송에 없다. 長夜는 「긴 밤」, 推求는 「헤아려 구하다」(0065a26.1과 같음), 如來는 확정역. 於는 조사가 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2

AG:da14/0065b12.1 · 교차 검사

見諸出家人,常在閑靜處;

집을 떠난 여러 사람이 늘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있는 것을 보고;

주 팔리 370.3~4 「외딴 곳에 머무는 사문들을 부처라 생각하여 섬기러 갔다」(samaṇe pavivittavihārino)와 닿는다. 出家人은 3분할 표(의역)에 따라 「집을 떠난 사람」으로 옮겼다. 한역의 出家人은 팔리의 samaṇa보다 넓다. 이 구간에서 문장이 끝나지 않아(세미콜론) 뒤 구간의 서술과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3

AG:da14/0065b13.1 · 교차 검사

謂是佛世尊,故往□首言:

이분이 부처님 세존이라 여기어, 그러므로 나아가 □ 머리로 말하였다:

주 저본에 결자 □가 있다(CBETA). 往 뒤 □과 首가 이어지지만 稽首 따위로 메우지 않았다(추측 금지). 謂는 「여기다」로 읽었으나 「이르다」(발화)일 가능성이 남는다. 주어 생략 — 제석 자신의 서술로 읽었으나 따옴표의 시작이 이 구간 밖이라 화자·문말 높임을 확정하지 못했다(평서로 둠). 故는 「그러므로」로 읽었다(b15 故來는 다른 읽기 — 같은 글자의 두 읽기가 불확실). 팔리 370.4 「삼붓다라 여기며 그들을 섬기러 간다」와 「부처로 여겨 갔다」가 겹친다. 이 구간에는 산스크리트 투입물이 없어 SF는 미대응(unaligned)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4

AG:da14/0065b14.1 · 교차 검사

我今故來問,云何為究竟?

내가 이제 일부러 와서 묻습니다. 무엇이 궁극입니까?

주 故來問의 故를 「일부러」로 읽었다(b14 故往과 읽기가 갈림). 究竟은 「궁극」으로 옮겼다(음독 「구경」 아님). 이문: 宋元明聖은 「今我」. 云何為는 「무엇이 …인가」로 읽음. 팔리 370.5는 「성취는 어떠하고 실패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의 보고이고, 한문은 「무엇이 궁극인가」로 같은 자리에서 물음의 내용이 다르다(엇갈림). 제석이 부처님께 하는 말이므로 문말을 존댓말로 통일했다(§⑦).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70.5

AG:da14/0065b15.1 · 교차 검사

問已不能報,道迹之所趣。

물어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도의 자취가 나아가는 곳은.

주 問已의 已는 완료로 흡수했다. 道迹之所趣는 앞 구와 문법 관계가 한문에 드러나지 않아(물음의 대상인지 별개 주제인지) 「…은」으로 주제만 세웠다. 주어(대답하지 못하는 쪽)도 생략되어 있다. 所는 관형절 「나아가는 곳」으로 풀었다. 이문: 已=以(宋元). 팔리 370.6 「이렇게 물으면 그들은 길과 실천에 대해 대답하지 못한다」와 같은 내용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70.6

AG:da14/0065b16.1 · 교차 검사

今日無等尊,是我久所求;

오늘 견줄 이 없는 존귀한 분이, 내가 오래 구해 온 분입니다.

주 無等尊을 「견줄 이 없는 존귀한 분」으로 옮겼다. 是我久所求의 所는 관형절로 풀고 머리말 「분」을 보충했다(한문에 명사 없음). 팔리 370.13의 appaṭipuggala(견줄 이 없는 이)가 無等에, 370.2의 여래를 찾아 헤맴이 久所求에 겹친다. 투입물 앵커의 이 좌표 글자는 깨져 보이나 저본은 「今日無等尊」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2

AG:da14/0065b17.1 · 교차 검사

已觀察己行,心已正思惟。

자기의 행을 관찰하였고, 마음은 바르게 사유하였습니다.

주 已(…已…已)는 완료로 흡수했다. 觀察·思惟는 한국어에 정착한 낱말이라 그대로 썼다. 己行의 行은 「행(실천·행위)」로 두었고 더 좁히지 않았다. 팔리 370 게송군에서 이 행에 맞는 행을 짚지 못했다 — 없음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못 잡은 것이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21:370.1

AG:da14/0065b18.1 · 교차 검사

唯聖先已知,我心之所行;

오직 성인만이 이미 먼저 아십니다, 내 마음이 행하는 것을.

주 唯는 한정이 실린 자리라 「만」으로 세웠다. 先已知는 「이미 먼저 안다」. 心之所行의 所는 관형절로 풀었다. 聖은 문맥상 부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읽히나 한문은 「성인」이라고만 쓴다. 팔리 370 게송군에 대응하는 행이 보이지 않아 「없음확인」으로 적되, 게송 배열이 한문과 크게 달라 이 판정은 행 단위 확인에 그친다.

AG:da14/0065b19.1 · 교차 검사

長夜所修業,願淨眼記之。

긴 밤 동안 닦은 업을, 바라건대 맑은 눈이시여, 기억해 주십시오.

주 記之의 記를 「기억하다」로 읽었다. 「기록하다」·「수기(記別)하다」로도 읽힐 수 있어 확정하지 못했다. 長夜는 「긴 밤」(오랜 세월을 뜻하는 관용)이며 풀지 않고 두었다. 淨眼은 부처님을 부르는 호칭(호격)으로 읽었다. 팔리 370.2의 긴 세월 헤맴(dīgham addhānaṃ)이 후보이나 업을 닦음과 겹치는지 못 잡았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21:370.2

AG:da14/0065b20.1 · 교차 검사

歸命人中上,三界無極尊;

목숨 바쳐 귀의합니다, 사람 가운데 으뜸이신 분, 삼계의 끝없는 존귀한 분께.

주 이문: 大正 원문은 「雖」, 저본(CBETA)은 「歸」이다(宋元明도 歸). 저본 글자 歸를 따랐다. 歸命은 「목숨 바쳐 귀의한다」로 풀었다. 無極尊의 無極은 「끝없는」으로 두었고 「삼계의 끝없는」이 尊을 꾸미는지 三界에 걸리는지 한문이 가르지 않아 한국어도 같은 모호함으로 두었다. 팔리 370.14 vande(예배한다)가 歸命에, 370.17의 anuttara(위없는 이)가 人中上·無極尊에 겹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4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7

AG:da14/0065b21.1 · 교차 검사

能斷恩愛刺,今禮日光尊。』」

은혜와 사랑의 가시를 끊을 수 있는 분, 이제 해의 빛이신 존귀한 분께 예배합니다.’”

주 恩愛를 「은혜와 사랑」으로 풀었다(두 낱말의 축자). 팔리 370.13의 taṇhāsalla(갈애의 화살)가 恩愛刺에, 370.14의 ādiccabandhu(태양의 친족)가 日光尊에 대응해 보이나, 恩愛=taṇhā와 日光=ādicca-bandhu의 일치는 낱말 수준에서 확정하지 않았다. 팔리의 appaṭipuggala·mahāvīra는 이 행에 없다. 닫는 따옴표 ’”는 저본의 』」이며 여는 따옴표는 이 구간 밖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4

AG:da14/0065b22.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汝憶本得喜樂、念樂時不?」

부처님이 제석에게 이르셨다. “너는 예전에 기쁨과 즐거움, 생각의 즐거움을 얻었던 때를 기억하는가?”

주 時不의 不은 문말 의문 허사라 의문 어미로 흡수했다. 喜樂·念樂을 「기쁨과 즐거움」·「생각의 즐거움」 둘로 끊었으나, 喜 / 樂 / 念樂 셋으로 끊을 가능성도 남는다(b27에서 明本이 「喜樂念樂」을 바로잡아 읽은 교감주가 있다). 念樂의 念은 풀지 않고 「생각」으로 두었다. 팔리 368.1의 vedapaṭilābha·somanassapaṭilābha(느낌의 얻음·기쁨의 얻음)와 喜樂·念樂의 일치는 낱말 수준에서 확정하지 못했다. 帝釋은 「제석」(한자 독음, 확정역 없음). 붓다의 발화는 평서.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8.1

AG:da14/0065b23.1 · 교차 검사

帝釋答曰:「如是,世尊!憶昔所得喜樂、念樂。

제석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옛날에 얻은 기쁨과 즐거움, 생각의 즐거움을 기억합니다.

주 如是는 응답어로 「그렇습니다」. 所得은 관형절. 제석→부처님이므로 존댓말. 닫는 따옴표는 이 좌표에 없다(발화가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8.2

AG:da14/0065b23.2 · 교차 검사

世尊!我昔曾與阿須輪共戰,我時得勝,阿須輪退,我時則還,得歡喜、念樂,計此歡喜、念樂,離有穢惡刀杖喜樂、鬪訟喜樂。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아수륜과 함께 싸웠는데, 그때 제가 이겼고 아수륜이 물러났으며, 그때 제가 돌아와 환희와 생각의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이 환희와 생각의 즐거움을 헤아리니, 더럽고 나쁜 칼과 몽둥이의 기쁨과 즐거움, 싸움과 송사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음을 떠나 있습니다.

주 저본의 「離有穢惡刀杖喜樂」는 문자대로는 「(칼·몽둥이의 즐거움이 있음)을 떠난다」이다. 이는 팔리 368.8의 sadaṇḍāvacaro sasatthāvacaro(몽둥이와 칼을 수반함)와 뜻이 반대로 읽히고, 곧 b27의 「無有刀杖…之樂」(지금은 없다)이 앞 문장에 칼·몽둥이의 즐거움이 있었음을 전제하는 것과도 어긋난다. 이문: 宋元明은 離가 아니라 「唯」(「唯有…」, 오직 …만 있다)이며 이 읽기는 팔리·b27과 맞는다. 離를 「罹」(만나다·겪다)로 읽을 길도 있다. 본문은 저본 글자 離의 기본 뜻으로 옮기고 판단은 정도평에게 남긴다. 阿須輪은 한자 독음 「아수륜」(이문 倫). 曾·則은 어미로 흡수. 팔리 368.6~7의 천상의 정기(ojā)를 두고 한 생각은 한문에 없다. 팔리 368.8의 싫어함·사라짐 등(nibbidā…)의 열거는 이 좌표에 이어지는 말이 한문에는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8.4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8.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8.8

AG:da14/0065b24.1 · 교차 검사

今我於佛所得喜、念樂,無有刀杖、諍訟之樂。」

이제 제가 부처님 계신 곳에서 얻은 기쁨과 생각의 즐거움에는 칼과 몽둥이, 다툼과 송사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주 이문: 明本은 「喜樂念樂」, 교감주(orig)는 「明校譌曰喜念樂當喜樂念樂」. 저본 「喜、念樂」을 따라 「기쁨과 생각의 즐거움」으로 옮겼다. 於佛所의 所는 처소어(부처님 계신 곳)로 읽었고 「~하는 바」가 아니다. 無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부정이라 「없다」로 흡수했다. 팔리 368.9는 몽둥이·칼을 수반하지 않으며 싫어함·사라짐·소멸·고요·곧바른 앎·바른 깨달음·열반으로 이끈다고 열거하는데 한문은 이 열거 없이 칼·몽둥이·다툼의 즐거움이 없다고만 하고, 다툼과 송사(諍訟)는 팔리 이 자리에 없는 항목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8.9

AG:da14/0065b27.1 · 교차 검사

佛告帝釋:「汝今得喜樂、念樂,於中欲求何功德果?」

부처님이 제석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제 기쁨과 즐거움, 생각의 즐거움을 얻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공덕의 열매를 구하고자 하는가?”

주 功德果를 「공덕의 열매」로 옮겼다(果=결과·열매의 축자). 팔리 369.1의 atthavasa(이유·이익)와 功德果가 같은 낱말인지는 확정하지 못해 대응은 일부(partial)로 둔다. 欲求는 「구하고자 한다」. 於中은 「그 가운데서」.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1

AG:da14/0065b28.1 · 교차 검사

爾時,帝釋白佛言:「我於喜樂、念樂中,欲求五功德果,何等五?」

그때 제석이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제가 기쁨과 즐거움, 생각의 즐거움 가운데서 다섯 가지 공덕의 열매를 구하고자 합니다. 어떤 것이 다섯입니까?”

주 한문은 「다섯(五)」, 팔리 369.2는 「여섯(cha)」 atthavasa이다. 이후 게송은 한문에서도 여섯 묶음으로 읽혀(c03~c14) 「다섯」이라는 선언과 게송 묶음 수가 한문 안에서 맞지 않는다 — 판정하지 않고 신고한다. 何等五는 「어떤 것이 다섯인가」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9.2

AG:da14/0065c01.1 · 교차 검사

即說偈言:

곧 게송을 설하여 말하였다:

주 팔리는 369.2에서 369.3의 게송으로 바로 넘어가며 「게송으로 말하였다」는 틈입구가 없다. 한문의 즉(即)은 「곧」으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69.3

AG:da14/0065c02.1 · 교차 검사

「我後若命終,捨於天上壽;

“제가 뒤에 목숨을 마치면, 하늘 위의 수명을 버리고,

주 若은 연결어미 「-면」으로 흡수했다. 捨於天上壽의 於는 목적격 조사로 흡수. 한문은 첫째 이로움을 이 묶음(胎에 듦)으로 시작하나, 팔리는 369.3~4의 「여기서 하늘의 몸으로 머물며 수명을 다시 얻음」을 첫째로 세우고 이 묶음(369.6~7)을 둘째로 둔다. 한문에서는 「이곳에서 하늘의 몸을 받음·수명을 늘림」(c13~c14)이 맨 끝으로 가 있다 — 묶음 순서가 다르다. 팔리 369.6 cutāhaṃ diviyā kāyā āyuṃ hitvā amānusaṃ(하늘의 몸에서 떠나 인간 아닌 수명을 버리고).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9.6

AG:da14/0065c03.1 · 교차 검사

處胎不懷患,使我心歡喜。

태에 머물러도 근심을 품지 않아, 내 마음을 환희하게 합니다.

주 이문: 聖本은 喜 대신 「樂」. 使는 사역 「-게 하다」이고, 사역의 주어(앞 구)가 한문에 드러나지 않아 앞 구의 사태를 주어로 읽었다. 不懷患(근심을 품지 않음)은 팔리 369.7의 amūḷho(미혹하지 않은 채)와 같은 낱말인지 확정하지 못했다. 팔리 yattha me ramatī mano(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곳)가 使我心歡喜에 겹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7

AG:da14/0065c04.1 · 교차 검사

佛度未度者,能說正真道;

부처님은 건너지 못한 이를 건네주시니, 바르고 참된 도를 설하실 수 있습니다.

주 能은 「-ㄹ 수 있다」로 흡수, 者는 「이」로 명사화했다. 佛을 주어로 한 일반 서술로 읽었으나 「(부처님이 나오실 때) …」의 바람으로 읽을 여지도 있다. 팔리 369.9는 지혜롭고 미혹하지 않으신 분의 가르침을 즐거워한다는 말로, 한문의 「건네주고 도를 설함」과 겹치는 부분이 일부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9

AG:da14/0065c05.1 · 교차 검사

於三佛法中,我要修梵行。

세 가지 부처님 법 가운데서, 저는 청정한 행을 닦고자 합니다.

주 三佛法을 「세 가지 부처님 법」으로 옮겼으나 「세 부처님의 법」(삼세불)·「불·법·승」 등으로 읽힐 여지가 있어 한문이 가르지 않는 것을 한국어가 가른 자리다. 梵行은 3분할표대로 뜻으로 옮겨 「청정한 행」(梵=청정, 慧琳 음의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 인용); 정형구 행(51)이 「청정한 삶」을 보이나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 쓰지 않았다. 要는 「~하고자 하다」. 於는 처소 조사로 흡수. 팔리 369.10 ñāyena viharissāmi sampajāno paṭissato(바른 방법으로 알아차림·새김을 지니고 지내리라)는 梵行을 닦음과 같은 자리이나 다른 말이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9.10

AG:da14/0065c06.1 · 교차 검사

以智慧身居,心自見正諦;

지혜의 몸으로 머물러, 마음이 바른 진리를 봅니다.

주 이문: 宋元明은 「以智慧自居」(身 대신 自) — 저본 身을 따라 「지혜의 몸」으로 옮겼다(慧身은 3분할표상 의역). 自見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했다. 以는 조사 「-로」. 正諦는 「바른 진리」. 팔리 369.12 ñāyena me carato(내가 바른 방법으로 닦으면)·sambodhi(바른 깨달음)와 겹치는 정도는 일부로 보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12

AG:da14/0065c07.1 · 교차 검사

得達本所起,於是長解脫。

근본이 일어나는 곳에 이르게 되어, 이에 길이 해탈합니다.

주 이문: 宋元明은 起 대신 「趣」(本所趣, 근본이 향하는 곳). 저본 起를 따랐다. 本所起의 所는 처소어로 풀었고(일어나는 곳) 本이 「근본」인지 「본래」인지는 한문만으로 가르지 못했다. 得達은 「이르게 되다」(획득 쪽). 於是는 「이에」, 長은 「길이」. 팔리 369.13 aññātā viharissāmi sveva anto bhavissati(알게 된 자로 지내리라, 그것이 끝이 되리라)와는 일부만 겹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13

AG:da14/0065c08.1 · 교차 검사

但當勤修行,習佛真實智;

다만 부지런히 닦아 행하며, 부처님의 진실한 지혜를 익히겠습니다.

주 當은 「-겠-」으로 흡수했다. 但은 뒤 행의 「설령 도의 증득을 얻지 못하더라도」와 짝을 이루는 한정이 실려 있어 「다만」으로 두었다. 이 행에 겹치는 팔리 행을 짚지 못했다: 묶음 순서상 팔리 369.15(인간의 수명을 버리고)가 놓이는 자리와 대비해 엇갈림으로 적되, 한문의 묶음 순서가 팔리와 다르다(c03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9.15

AG:da14/0065c09.1 · 교차 검사

設不獲道證,功德猶勝天。

설령 도의 증득을 얻지 못하더라도, 공덕이 오히려 하늘보다 뛰어납니다.

주 이문: 聖本은 德 대신 「福」. 設는 양보 어미 「-더라도」로 흡수. 猶는 「오히려」로 두었다(뜻이 실림). 勝天은 「하늘보다 뛰어나다」. 팔리 369.16 puna devo bhavissāmi devalokamhi uttamo(다시 하늘 사람이 되어 하늘 세계에서 으뜸이 되리라)가 勝天과 겹치는 부분이 있으나, 한문의 「도의 증득을 얻지 못하더라도」 조건은 팔리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16

AG:da14/0065c10.1 · 교차 검사

諸有神妙天,阿迦尼吒等;

신묘한 여러 하늘, 아가니타 등.

주 諸有神妙天의 諸·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여러 …」 수식으로 보아 풀었다(「…이 있어」 회피). 서술어가 없어 다음 행(c12)이 서술어를 진다. 阿迦尼吒는 한자 독음 「아가니타」(음역). 전거 표: 팔리형 Akaniṭṭha(Akaniṭṭhā)·근대 비정 Akaniṣṭha — 확인된 두 계통으로 판정하지 않는다(교감주 tt_id 0065016은 팔리형을 단다). 팔리 369.18 te paṇītatarā devā akaniṭṭhā yasassino(더 뛰어난 하늘 사람들, 아카니타의 영광스러운 이들)와 같은 자리.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9.18

AG:da14/0065c11.1 · 교차 검사

下至末後身,必當生彼處。

아래로 마지막 몸에 이르러, 반드시 저곳에 태어나겠습니다.

주 下至는 「아래로 …에 이르다」이고 이 「아래」가 어느 기준(윗 하늘들의 아래·몸의 순서)인지는 한문이 가르지 않는다. 末後身은 「마지막 몸」. 當은 「-겠-」으로 흡수, 必은 뜻이 실려 「반드시」. 彼處는 「저곳」. 팔리 369.19 antime vattamānamhi(마지막에 이르러)·so nivāso bhavissati(그것이 거처가 되리라)와 겹친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69.19

AG:da14/0065c12.1 · 교차 검사

我今於此處,受天清淨身;

저는 지금 이곳에서 하늘의 청정한 몸을 받고 있습니다.

주 이문: 宋元明聖은 「今我」. 清淨은 3분할표가 도시 이름으로 걸렸으나(전거 주의 ⚠) 이 자리는 일반 형용사 「청정한」으로 읽었다. 受는 상태 진행으로 「받고 있다」로 읽었다. 이 묶음은 팔리에서는 첫째 이로움(369.3~4)이고 한문에서는 맨 끝에 놓인다(c03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3

AG:da14/0065c13.1 · 교차 검사

復得增壽命,淨眼我自知。」

다시 늘어난 수명을 얻었으니, 맑은 눈이시여, 저는 압니다.”

주 自知의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흡수했다. 淨眼은 호격으로 읽었다 — 「淨眼我自知」를 「맑은 눈이(여), 나는 안다」로 끊었으나 「맑은 눈(을 가진) 내가 스스로 안다」로 읽을 여지가 있다. 팔리 369.4 evaṃ jānāhi mārisa(그렇게 아십시오, 존자여)는 부처님께 아시라는 요청인데 한문은 제석 자신이 안다고 하여 같은 자리에서 아는 주체가 다르다. 增壽命의 壽命은 「수명」. 닫는 따옴표는 저본의 」(제석 발화의 끝).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69.4

AG:da14/0065c14.1 · 교차 검사

說此偈已,白佛言:「我於喜樂、念樂中,欲得如是五功德果。」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부처님께 아뢰어 말하였다. “제가 기쁨과 즐거움, 생각의 즐거움 가운데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공덕의 열매를 얻고자 합니다.”

주 한문은 「다섯 가지 공덕의 열매」, 팔리 369.21은 「여섯 가지 이유(cha atthavase)」를 맺음으로 한다(c01 서술 참조). 如是는 「이와 같은」. 說此偈已는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69.21

AG:da14/0065c15.1 · 교차 검사

爾時,帝釋語忉利諸天曰:「汝於忉利天上梵童子前恭敬禮事,今於佛前復設此敬者,不亦善哉!」

그때 제석이 도리천의 여러 하늘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도리천 위 범동자 앞에서 공경하며 예로 섬기는데, 이제 부처님 앞에서 다시 이 공경을 베푸는 것은 좋지 않은가!”

주 梵童子는 3분할표상 의역이나 梵은 소리를 줄여 쓴 글자라 뜻으로 풀 수 없어 「범」으로 두고 童子만 옮겨 「범동자」로 적었다(판별 근거: 梵이 단독 낱말로 뜻을 가지지 않음). 忉利諸天은 3분할표상 혼합(音義合璧) — 忉利는 음역(慧琳 음의 0440c06 「忉利…怛唎耶怛唎奢…此云三…卅」), 諸天은 뜻: 「도리천의 여러 하늘」. 天上은 「위」. 汝는 청중이 여럿이라 「너희」로 옮기고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로 했다. 恭敬禮事는 「공경하며 예로 섬김」. 者는 「것은」으로 풀었고 不亦善哉는 반문 어미 「좋지 않은가」로 흡수(亦·哉). 팔리 370.15~16 yaṃ karomasi brahmuno samaṃ devehi(우리가 범천께 하는 것을 하늘 사람들과 함께 …)는 제석이 부처님께 직접 하는 게송이고, 한문은 제석이 하늘들에게 하는 말로 바뀌어 있다(발화 대상이 다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5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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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語未久,時,梵童子忽然於虛空中天眾上立,向天帝釋而說偈曰:

그 말이 오래되지 않아, 그때 범동자가 홀연히 허공 가운데 하늘 무리 위에 서서, 천제석을 향하여 게송을 말하였다:

주 팔리 DN21(투입된 증언)에는 범동자의 등장과 그의 게송이 보이지 않는다. 天帝釋은 3분할표 음역이라 한자 독음 「천제석」(帝釋 「제석」과 통일), 한 경 안에서 표기를 통일했다. 其語未久는 「그 말이 오래되지 않아」. 於…上立은 「…위에 서다」, 而은 흡수. 天眾은 「하늘 무리」. 說偈曰은 「게송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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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王清淨行,多利益眾生;

“하늘 왕의 청정한 행은 중생을 많이 이롭게 한다;

주 天王을 「하늘 왕」으로 옮겼다(3분할표 의역). 「天王 / 清淨行 / 多利益眾生」을 한 문장(왕의 청정한 행이 중생을 이롭게 한다)으로 읽었으나 「하늘 왕이여, 청정한 행으로 …」의 호격 읽기도 가능해 확정하지 못했다. 利益은 「이롭게 하다」. 범동자가 제석보다 윗자리이면서 제석을 3인칭으로 일컫고 있어 평서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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摩竭帝釋主,能問如來義。」

마갈 제석의 주인이 여래의 뜻을 물을 수 있다.”

주 摩竭帝釋主는 「摩竭 / 帝釋 / 主」를 평열로 읽었다. 摩竭은 음역(한자 독음 「마갈」)이며 전거 표에는 팔리 후보 Magadha(Māgadha)·근대 비정 Makara(음의 慧琳 0577a24 「海中大魚」)가 갈려 실려 있다 — 확인된 두 계통으로 판정하지 않는다. 摩竭이 나라 이름인지 제석의 별칭인지는 투입물로 못 정해 불확실로 남긴다. 能問은 「물을 수 있다」. 如來는 확정역 「여래」(구속). 닫는 따옴표 ”는 저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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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梵童子說此偈已,忽然不現。

그때 범동자가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홀연히 나타나지 않았다.

주 팔리 DN21에 범동자의 등장·사라짐이 없다. 不現은 「나타나지 않았다」로 축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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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時,帝釋即從座起,禮世尊足,遶佛三匝,却行而退,忉利諸天及般遮翼亦禮佛足,却行而退。

이때 제석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뒷걸음쳐 물러났다. 도리천의 여러 하늘과 반차익도 부처님 발에 절하고 뒷걸음쳐 물러났다.

주 같은 자리(제석이 소원과 찬탄을 마친 뒤)에서 팔리는 제석이 손으로 땅을 짚고 「그 세존께 귀의합니다」를 세 번 읊는 감흥어(371.5~6)를 두고, 한문은 일어나 절하고 돌며 물러가는 의례를 둔다. 般遮翼은 3분할표상 의역이나 般遮는 소리(전거: 팔리 Pañcasikha, 세 한자)이고 뜻으로 풀 한문 의미가 없어 한자 독음 「반차익」으로 옮기고 불확실로 남긴다(판별 근거: 般遮의 글자 뜻이 문맥에 맞지 않음). 禮足은 頭面이 없어 「발에 절하고」. 遶佛三匝은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却行而退는 「뒷걸음쳐 물러났다」. 亦는 「~도」, 即은 「곧」. 世尊은 확정역.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71.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21: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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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天帝釋少復前行,顧語般遮翼曰:「善哉!善哉!汝能先於佛前鼓琴娛樂,然後我及諸天於後方到,我今知汝補汝父位,於乾沓和中最為上首,當以彼拔陀乾沓和王女與汝為妻。」

그때 천제석이 조금 더 앞으로 가다가, 돌아보며 반차익에게 말하였다. “좋구나! 좋구나! 너는 먼저 부처님 앞에서 거문고를 타며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었고, 그런 뒤에 나와 여러 하늘이 뒤에 비로소 이르렀다. 나는 이제 네가 네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 건답화 가운데서 가장 우두머리가 됨을 안다. 저 발타 건답화 왕의 딸을 너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겠다.”

주 이문: 知=以(宋元明), 首=昔(聖), 拔陀=跋陀(宋元明; 한자 독음은 둘 다 「발타」), 聖本은 汝 하나가 없음. 저본 知를 따랐다. 乾沓和는 한자 독음 「건답화」(음역, 팔리 gandhabba), 拔陀는 「발타」(팔리 Bhaddā — 교감주 tt_id 0065019). 鼓琴을 「거문고를 타다」, 娛樂을 「즐겁게 하다」로 옮겼다. 能은 「-ㄹ 수 있었다」, 善哉는 「좋구나」, 少復는 「조금 더」. 上首는 「우두머리」. 補는 「이어」(메우다). 팔리 371.4의 gandhabbarājā bhavissasi(건달바 왕이 되리라)와 최상수(上首)는 같은 말이 아니며, sā hi te abhipatthitā(그녀는 네가 바라던 이이니)는 한문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1.2

니까야 대응 같음 DN 21:37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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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說此法時,八萬四千諸天遠塵離垢,諸法法眼生。

세존께서 이 법을 설하실 때, 팔만 사천의 여러 하늘이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떠나, 여러 법에 법의 눈이 생겼다.

주 팔리 371.7은 제석에게 티끌 없고 때 없는 법의 눈이 생겼다는 것이고, 371.9는 그 밖에 팔만 하늘 신들(asīti devatāsahassa)을 말한다 — 한문은 八萬四千(팔만 사천)이며 제석 개인에 대한 말이 없다. 팔리 371.8의 「일어나는 성질의 것은 모두 소멸하는 성질의 것이다」는 한문에 없다. 諸法法眼生은 「여러 법에 법의 눈이 생겼다」로 읽었으나 諸法이 法眼의 대상인지 주제인지는 한문이 가르지 않는다. 遠塵離垢는 축자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떠나」.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1.7

니까야 대응 일부 DN 2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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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釋提桓因、忉利諸天及般遮翼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석제환인과 도리천의 여러 하늘, 그리고 반차익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釋提桓因은 3분할표상 의역/혼합이 갈리는 이름이나 한국어 정착형 「석제환인」으로 한자 독음했고(慧琳 음의 0482c21: 「釋迦…此云能也 提婆天也 因達羅帝也」, 곧 능한 하늘들의 제왕) 같은 경의 帝釋·天帝釋 표기와 이름은 같은 존재를 일컫되 표기는 한자대로 따로 둔다. 聞佛所說의 所는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歡喜奉行은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팔리 DN21은 이름의 유래(371.10)와 맺음(371.11)으로 끝나며 「듣고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는 맺음 정형구가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21: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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