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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Ā 26

DĀ 26

교차 검사교차 검사 172현대역 준비 중

(二六)佛說長阿含第三分三明經第七

(이십육)부처님이 설한 장아함 제삼분의 삼명경, 제칠

주 팔리는 제목이 「Tevijjasuttaṃ」 하나이고, 한문 제목에는 일련번호(二六)·장아함·제삼분·제칠 같은 편차 표지가 더 붙는다. 이문: 宋·元은 「佛說長阿含經」, 明은 「佛說長阿含」 넷째 자리 결(교감주). 三明은 三+明으로 소리 요소가 없는 뜻글자라 한자대역표의 「혼합(音義合璧)」 분류와 맞지 않는 듯하나, 표가 기계 1차 분류이므로 저본대로 「삼명」으로 옮기고 유형 판별은 남긴다(팔리 Te-vijjā는 전거표 기재). 長阿含·阿含은 음독(阿含: 음의 慧琳 0473c17 「此云教也亦云法藏也眾善所歸也」, 참고 지위).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0.3

AG:da26/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Evaṃ me sutaṃ」과 같은 정형 서두. 제공된 산스크리트 행은 「bhagavān…」으로 시작하고 서두 정형구 행이 없어 이 좌표에는 산스크리트 대응을 잡지 않았다(없음을 확인한 것이 아니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18.1

AG:da26/0104c17.1 · 교차 검사

一時,佛在俱薩羅國人間遊行,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詣伊車能伽羅俱薩羅婆羅門村,止宿伊車林中。

한때 부처님이 구살라국의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큰 비구 무리 천이백오십 사람과 함께 이차능가라 구살라 바라문 마을에 이르러 이차 숲 가운데 머물러 묵었다.

주 (1) 수: 한문은 천이백오십 사람, 팔리는 「pañcamattehi bhikkhusatehi」(오백 남짓). (2) 지명: 한문 「伊車能伽羅(마을)」·「伊車(숲)」, 팔리 마을은 Manasākaṭa(「kosalānaṃ brāhmaṇagāmo」는 한문 「俱薩羅婆羅門村」과 맞물림), 숲은 Aciravatī 강가의 망고 숲(ambavane).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manassālā[yā]ṃ … uttareṇa grāmaṃ śiṃśapāvane」(마을 북쪽 신사파 숲). 세 계통이 서로 다른 지명이므로 같은 이름의 음역계통 차이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다 — 판정하지 않는다. 전거표는 伊車能伽羅를 Icchānaṅkala로 적는다(참고 지위). (3) 伊車能伽羅는 한자 5자 보류 항목: 소리로 읽히는 음역으로 보아 「이차능가라」로 독음했고, 같은 경에서 「伊車林」(약칭)이 따로 나와 마을 이름의 일부로 본다. 「俱薩羅」는 이후 「拘薩羅」로도 쓰여 한자 흔들림이다(둘 다 구살라). 人間遊行은 사전 「遊行 ① 人間 앞뒤 결합」 용례, 팔리 cārikaṃ caramāno에 해당(대응 판정은 비고에만). 一時=한때.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18.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18.3

AG:da26/0104c17.2 · 교차 검사

時,有婆羅門名沸伽羅娑羅、婆羅門名多梨車,以小緣詣伊車能伽羅村。

그때 이름이 불가라사라인 바라문과 이름이 다리차인 바라문이 작은 인연으로 이차능가라 마을에 이르렀다.

주 팔리는 두 바라문이 Manasākaṭa에 거주하는 여러 명망 바라문(Caṅkī·Tārukkha·Pokkharasāti·Jāṇusoṇi·Todeyya 등) 가운데 든다고 하고, 한문은 작은 인연(以小緣)으로 마을에 찾아왔다고 해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한다. 沸伽羅娑羅(5자, 보류 항목)는 소리 음역으로 판별했다 — 팔리 Pokkharasāti(전거표). 多梨車=Tārukkha(cb:tt). 두 이름 모두 한자 독음(불가라사라·다리차). 산스크리트 대응 행은 제공되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19.1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19.2

AG:da26/0104c19.1 · 교차 검사

此沸伽羅娑羅婆羅門,七世以來父母真正,不為他人之所輕毀,異典三部諷誦通利,種種經書善能分別。

이 불가라사라 바라문은 칠 세 이래 부모가 진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벼이 여겨지거나 헐뜯기지 않았고, 다른 경전의 세 부를 외워 읽는 데 통달했으며, 갖가지 경서를 잘 분별할 수 있었다.

주 팔리 DN13에는 스승 바라문의 혈통·학식 묘사가 없다(519.2는 이름만 열거). 산스크리트에는 같은 정형(「upeto mātṛtaḥ pitṛtaḥ … yāvad āsaptamaṃ … caturṇām vedānāṃ pāragau」, U197:013 W 실판독)이 있으나 주어가 두 마납(젊은 바라문)이어서 이 좌표에는 걸지 않았다. 異典三部(여기)와 異學三部(이후 좌표)는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三部=삼명(Te-vijjā)의 세 부로 보이나 저본에 그 설명은 없고, 산스크리트는 사베다(caturṇām vedānām)라 수가 갈린다. 輕毀는 전거표 당대 범어 후보 paribhuta(참고). 通利는 사전 通利 ① 「諷誦 앞 18회」 용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19.2

AG:da26/0104c21.1 · 교차 검사

又能善於大人相法、觀察吉凶、祭祀儀禮,有五百弟子,教授不廢。

또한 대인의 상법과 길흉을 살피는 일과 제사의 의례에 잘 능했고, 오백 제자가 있었으며 가르쳐 줌을 그치지 않았다.

주 팔리 DN13에 대응하는 묘사가 없다. 산스크리트 제공 행에도 대인상·길흉·제사·오백 제자에 해당하는 읽기가 없으나 사본이 단편이라 「없음」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大人相法=대인(큰 사람)의 상을 보는 법으로 옮겼고 대인의 뜻풀이는 저본에 없다. 教授는 사전 「教授 ① 뒤: 不廢 8」 용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19.2

AG:da26/0104c24.1 · 교차 검사

其一弟子名婆悉咤,七世以來父母真正,不為他人之所輕毀,異學三部諷誦通利,種種經書盡能分別,亦能善於大人相法,觀察吉凶,祭祀儀禮,亦有五百弟子,教授不廢。

그 한 제자는 이름이 바실타였다. 칠 세 이래 부모가 진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벼이 여겨지거나 헐뜯기지 않았고, 다른 학문의 세 부를 외워 읽는 데 통달했으며, 갖가지 경서를 모두 분별할 수 있었고, 또한 대인의 상법, 길흉을 살피는 일, 제사의 의례에도 잘 능했으며, 또한 오백 제자가 있었고 가르쳐 줌을 그치지 않았다.

주 팔리 520.1은 두 마납(Vāseṭṭha·Bhāradvāja)이 소요하며 걷다 길·길 아님의 말이 일어난다고만 하고 혈통·학식 묘사는 없다(한문이 더). 산스크리트는 두 마납을 주어로 같은 정형(W 실판독: 「upeto mātṛtaḥ pitṛtaḥ … gṛ|h[i]ṇyā anākṣipto jātivādena gotravādena yāvad āsaptamaṃ … caturṇām vedānāṃ pāragau」)을 가진다. 한문 三部와 산스크리트 caturṇām vedānām(네 베다)의 수가 갈린다. 婆悉咤는 팔리 Vāseṭṭha(cb:tt)·산스크리트 W 실판독 vāsiṣṭha — 두 계통 표기를 인용할 뿐 판정하지 않는다. 한역 異學三部는 앞 좌표 異典三部와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異典/異學)를 쓴 것이다. 산스크리트가 「manaḥkā◊◊lāyā[ṃ] … prativasataḥ」(마을에 거주)를 말하는 부분은 한문에 대응이 없다. 亦能·亦有는 스승과 같다는 뜻이 실려 「또한」을 세웠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1

AG:da26/0104c25.1 · 교차 검사

多梨車婆羅門,亦七世已來父母真正,不為他人之所輕毀,異學三部諷誦通利,種種經書盡能分別,亦能善於大人相法、觀察吉凶、祭祀儀禮,亦有五百弟子,教授不廢。

다리차 바라문도 또한 칠 세 이래 부모가 진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벼이 여겨지거나 헐뜯기지 않았고, 다른 학문의 세 부를 외워 읽는 데 통달했으며, 갖가지 경서를 모두 분별할 수 있었고, 또한 대인의 상법, 길흉을 살피는 일, 제사의 의례에도 잘 능했으며, 또한 오백 제자가 있었고 가르쳐 줌을 그치지 않았다.

주 이문: 已(大)/以(宋·元·明), 盡(大)/善(宋·元·明) — 저본(大)대로 옮겼고 뜻 차이는 없다. 지식 묘사의 주어가 스승(다리차)인 자리다. 산스크리트의 같은 정형은 두 마납을 주어로 하므로 AG 결속(c25.1~a04.1 범위)이 이 좌표에 걸리더라도 주어가 다름을 적는다. 팔리는 스승의 묘사가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19.2

AG:da26/0104c29.1 · 교차 검사

其一弟子名頗羅墮,七世已來父母真正,不為他人之所輕毀,異學三部諷誦通利,種種經書盡能分別,亦能善於大人相法、觀察吉凶、祭祀儀禮,亦有五百弟子,教授不廢。

그 한 제자는 이름이 파라타였다. 칠 세 이래 부모가 진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벼이 여겨지거나 헐뜯기지 않았고, 다른 학문의 세 부를 외워 읽는 데 통달했으며, 갖가지 경서를 모두 분별할 수 있었고, 또한 대인의 상법, 길흉을 살피는 일, 제사의 의례에도 잘 능했으며, 또한 오백 제자가 있었고 가르쳐 줌을 그치지 않았다.

주 頗羅墮는 한자대역표가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저본의 글자는 소리 옮김(팔리 Bhāradvāja, 산스크리트 W 실판독 bharadvāja)이라 저본을 따라 음역으로 독음했다(표의 기계 1차 분류와 어긋남). 유형 판별을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로 남긴다. 이문: 已(大)/以(明). 다른 대응은 앞 좌표와 같다. 頗羅墮가 산스크리트 쪽에서는 두 마납 가운데 하나로 나온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1

AG:da26/0105a04.1 · 교차 검사

時,婆悉咤、頗羅墮二人於清旦至園中,遂共論義,更相是非。

그때 바실타와 파라타 두 사람이 이른 아침 동산 가운데 이르러, 마침내 함께 뜻을 논하며 번갈아 서로 옳으니 그르니 했다.

주 팔리는 두 마납이 산책(jaṅghavihāra)하며 길과 길 아님에 대한 말이 일어났다고 하고, 한문은 이른 아침 동산에 이르러 뜻을 논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 실판독은 「tayor ayam evaṃrūpontarā utpanno nānāvādo vi◊ pra|tyanakāvādaḥ」(둘 사이에 이런 갖가지 말·논쟁이 일어났다)로 論義·更相是非와 맞물리나 vi◊ 자리는 훼손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1

AG:da26/0105a08.1 · 교차 검사

時,婆悉咤語頗羅墮:「我道真正,能得出要,至於梵天,此是大師沸伽羅娑羅婆羅門所說。」

그때 바실타가 파라타에게 말했다. 「나의 길은 진정하여 벗어남의 요체를 얻을 수 있고 범천에 이르니, 이것은 큰 스승 불가라사라 바라문이 설한 것이다.」

주 팔리 「ayameva ujumaggo, ayamañjasāyano niyyāniko niyyāti takkarassa brahmasahabyatāya」(곧은 길·바로 가는 길·벗어나게 하는 길, 이를 행하는 이를 범천과 한 몸 됨으로 이끈다)에 한문은 「真正」「得出要」「至於梵天」로 맞서며 어휘가 갈린다. 出要는 한자대역표가 의역으로 분류해 뜻으로 「벗어남의 요체」로 옮겼다(전거표 팔리 후보 Nissaraṇa, 참고). 산스크리트 W 실판독 「ayaṃ mārga iyaṃ pratipad … niryāti brahmalokasabhāgatāyā yo deśito brāhma|ṇena pauṣkarasāreṇābhi」(U197:005~007)는 범천의 세계와의 동류됨(brahmaloka-sabhāgatā)으로 말해 한문 「至於梵天」보다 구체적이다. 沸伽羅娑羅: 팔리 Pokkharasāti, 산스크리트 W는 pauṣkarasāreṇa(E 교정은 pauṣkarasādinā) — 끝 음절이 한자 娑羅(sā-ra)와 맞물리는 읽기가 W에 있으나 판정하지 않는다. 大師=큰 스승(사전 大師 ① 「又 8, 此是 4」 용례). 能得에서 能은 가능 어미로 흡수. 道=길.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3

AG:da26/0105a10.1 · 교차 검사

頗羅墮又言:「我道真正,能得出要,至於梵天,此是大師多梨車婆羅門所說。」

파라타가 또 말했다. 「나의 길은 진정하여 벗어남의 요체를 얻을 수 있고 범천에 이르니, 이것은 큰 스승 다리차 바라문이 설한 것이다.」

주 이문: 出(大)/此(宋·元) — 宋·元 읽기는 「能得此要」가 되어 뜻이 달라지나 저본(大) 出要를 따랐다. 앞 좌표와 같은 팔리 정형. 산스크리트 U197:008~010의 실판독은 「bharadvājo … māṇam āha」「iyaṃ mārga iyaṃ pratipad ṛjunairyāṇiko」이고, 다리차에 해당하는 이름은 E의 괄호 보충(tārākṣeṇa)에만 있어 근거로 쓰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4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5

AG:da26/0105a12.1 · 교차 검사

如是,婆悉咤再三自稱己道真正,頗羅墮亦再三自稱己道真正,二人共論,各不能決。

이와 같이 바실타는 거듭 자기 길이 진정하다고 일컬었고, 파라타도 거듭 자기 길이 진정하다고 일컬었으며, 두 사람이 함께 논했으나 각자 결정하지 못했다.

주 팔리 520.6 「neva kho asakkhi vāseṭṭho … saññāpetuṃ, na pana asakkhi bhāradvājo」(서로를 납득시키지 못했다)와 맞물리며, 「거듭 자기 길을 일컬음(再三自稱)」은 한문이 더 가진 요소다. 산스크리트 W 실판독은 「bhāradvājo pi māṇavo na śaknoti vāsiṣṭhaṃ māṇava …」이고 앞 절의 부정사(na)는 E 보충이다. 再三=거듭(두세 번). 自稱의 自는 己道와 겹치는 단순 재귀라 흡수. 能決(사전 能決 ④ 뒤 者).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0.6

AG:da26/0105a14.1 · 교차 검사

時,婆悉咤語頗羅墮曰:「我聞沙門瞿曇釋種子出家成道,於拘薩羅國遊行人間,今在伊車能伽羅林中,有大名稱,流聞天下,如來、至真、等正覺,十號具足。

그때 바실타가 파라타에게 말했다. 「나는 들었다. 사문 고따마는 석종의 아들로 출가하여 도를 이루고, 구살라국에서 인간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지금 이차능가라 숲 가운데 계시며, 큰 명성이 있고 천하에 흘러 들리니, 여래이고 아라한이고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며 십호를 갖추셨다.

주 팔리는 「samaṇ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 kalyāṇo kittisaddo abbhuggato」와 호칭 열 가지를 푼다. 한문은 釋種子出家(맞물림)에 成道를 더하고, 호칭은 如來·至真·等正覺 셋과 「十號具足」으로 접었다 — 호칭 요약이며 乃至가 아니라 펴지 않는다. 확정 술어를 그대로 썼다(至真=아라한, 等正覺=바르게 깨달으신 분, 瞿曇=고따마). 이문: 等(CBETA 교감)/第(大) — 저본은 등정각으로 읽는다. 拘薩羅는 앞의 俱薩羅와 같은 이름의 다른 표기(한자 흔들림, 구살라). 釋種=석 종족의 이름으로, 釋은 소리로 옮긴 석가의 줄임이다(저본에 뜻풀이 없음). 산스크리트 U199:001은 E 판본 교정문 위주(실판독 86%)로 「śramaṇo gautamaḥ kausaleṣu janapadeṣu cārikāṃ caran manaḥsālām anuprāpto … śiṃśapāvane」 — 지명이 한문 伊車能伽羅와 다르다. 出家는 한자대역표 유형 의역이나 한국 불교 정착어 「출가」로 옮겼다(뜻으로 옮긴 「집을 떠나」와 같은 것).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1.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1.4

AG:da26/0105a15.1 · 교차 검사

於諸天、世人、魔、若魔天、沙門、婆羅門中,自身作證,為他說法,上中下言,皆悉真正,義味具足,梵行清淨。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 마, 혹은 마천, 사문, 바라문 가운데서 자신이 몸소 증득하고 남을 위해 법을 설하니, 위·가운데·아래의 말이 모두 진정하고, 뜻과 맛이 갖추어졌고, 범행이 청정하다.

주 팔리 521.4의 호칭 열거에는 이 정형(세계에서 몸소 증득하고 설하는 법의 처음·중간·끝)이 들어 있지 않다. 같은 정형은 팔리 556.2의 「…pe… (yathā 190-212 anucchedesu)」로 접힌 안쪽에 있을 수 있으나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다. 上中下言을 처음·중간·끝으로 옮기면 증언에서 알게 된 뜻을 본문에 들이는 것이라 글자대로 옮겼다. 若魔天의 若은 「~면」이 아니라 「또는」으로 읽었다(魔 혹은 魔天). 自身作證·為他說法은 自↔他 대조가 실재해 「자신이」「남」을 세웠다. 梵行은 한자대역표가 「의역(뜻으로)」, 정형구 행이 「확정역 없음」으로 표시해 정착형 「범행」으로 쓰고 유형 판별을 [불확실:술어·낱말_선택]로 남긴다(梵=清淨, 음의 慧琳 0698c19 「梵言梵摩此云清淨」, 참고). 義味는 사전 義味 ⑥ 「義者言義,味者趣意」(후대, 가벼운 근거)를 참고만 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21.4

AG:da26/0105a19.1 · 교차 검사

如是真人,宜往覲現。

이와 같은 진인은 가서 뵈어야 한다.

주 팔리 521.5의 「āyāma, bho bhāradvāja, yena samaṇo gotamo tenupasaṅkamissāma」는 앞 좌표의 뜻에 해당하나 「이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평가문은 DN13 팔리에 이 자리에 없다. 真人은 확정 술어에 없다 — 사전 真人 ① 앞 글자 「如此 6, 如是 2」와 음의(慧琳 0497c07, 참고)의 풀이에 따르면 아라한을 가리키는 쓰임이 있으나 저본에 아라한(至真)이 따로 있으므로 「진인」으로 독음했다. 宜는 당위 어미로, 覲現은 「뵙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21.4

AG:da26/0105a21.1 · 교차 검사

我聞彼瞿曇知梵天道,能為人說,常與梵天往返言語,我等當共詣彼瞿曇,共決此義。

나는 들었다. 저 고따마는 범천의 길을 알아 사람들을 위해 설할 수 있고, 항상 범천과 오가며 말을 나눈다고. 우리는 함께 저 고따마에게 가서 함께 이 뜻을 결정하자.

주 팔리 521.5~6 「Āyāma … upasaṅkamitvā etamatthaṃ samaṇaṃ gotamaṃ pucchissāma」(가서 이 일을 묻자)와 맞물리고, 「범천의 길을 알고 범천과 항상 말을 오간다」는 부분은 이 자리 팔리에 없다(팔리 553.2에서 바실타가 「sutaṃ me … brahmānaṃ sahabyatāya maggaṃ jānāti」라 말하는 자리와 비슷하나 위치가 다르다). 共決此義의 義는 「뜻(문제)」로 옮겼고 팔리 etamatthaṃ과 맞물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1.5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1.6

AG:da26/0105a22.1 · 교차 검사

若沙門瞿曇有所言說,當共奉持。」

사문 고따마가 말하는 것이 있으면 함께 받들어 지니자.」

주 팔리 「yathā no samaṇo gotamo byākarissati, tathā naṃ dhāressāmā」(사문 고따마가 우리에게 설명하는 대로 그것을 지니겠다)와 같은 내용. 奉持=받들어 지니다(dhāressāma). 앞 좌표들에서 열린 바실타의 인용이 여기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21.7

AG:da26/0105a24.1 · 교차 검사

爾時,婆悉咤、頗羅墮二人相隨到伊車林中,詣世尊所,問訊已,一面坐。

그때에 바실타와 파라타 두 사람이 서로 따라 이차 숲 가운데 이르러, 세존이 계신 곳에 나아가 문안을 마치고 한쪽에 앉았다.

주 팔리는 「sammodiṃsu. sammodanīyaṃ kathaṃ sāraṇīyaṃ vītisāretvā ekamantaṃ nisīdiṃsu」(인사와 정중한 이야기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이고 한문은 「問訊已」로 줄였다. 산스크리트 U199:002(실판독 75%, E 위주)는 saṃmodanīṃ saṃraṃjanīṃ kathāṃ을 가진다. 한문의 「이차 숲에 이름」은 이 자리 팔리에 없다. 앞에서 佛이던 주어가 여기서 世尊으로 바뀐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확정역 세존/부처님은 각각 고정). 詣世尊所 사전 ① 「詣世尊所 앞 侍從」, 음의 慧琳 0574a11 「詣到也」(참고). 一面坐의 一面=한쪽.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2.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2.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2.3

AG:da26/0105a25.1 · 교차 검사

爾時,世尊知彼二人心中所念,即告婆悉咤曰:「汝等二人清旦至園中,作如是論,共相是非。

그때에 세존이 저 두 사람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알고 곧 바실타에게 일러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이 이른 아침 동산 가운데 이르러 이와 같은 논의를 하며 함께 서로 옳으니 그르니 했다.

주 팔리는 바실타가 스스로 논쟁의 내용을 세존께 아뢰고(522.5~10) 세존이 이를 되받아 확인한다(523.1~). 한문은 세존이 마음을 알고 먼저 말하는 구조이고 「세존이 마음을 알았다」는 문장이 팔리 이 자리에 없다. 산스크리트 U199 후반 행은 팔리처럼 마납이 아뢰는 꼴(U199:023~026 등)이나 AG 결속이 없어 대응을 잡지 않았다. 世尊(여기)·佛(다른 좌표)은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다. 即=곧.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2.5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3.1

AG:da26/0105a26.1 · 교차 검사

汝一人言:『我法真正,能得出要,至於梵天,此是大師沸伽羅娑羅所說。』

너희 한 사람이 말했다. 『나의 법은 진정하여 벗어남의 요체를 얻을 수 있고 범천에 이르니, 이것은 큰 스승 불가라사라가 설한 것이다.』

주 앞의 「我道」가 여기서 「我法」으로 바뀐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道/法). 이문: 羅(大)/羅婆羅門(宋·元·明) — 저본(大)대로 두었다. 沸伽羅娑羅: 팔리 Pokkharasāti, 산스크리트 U199:003 실판독 「pauṣkarasādineti」(두 계통을 인용할 뿐 판정하지 않는다). 이 좌표는 팔리 523.2의 같은 정형에 해당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3.2

AG:da26/0105a28.1 · 교차 검사

彼一人言:『我法真正,能得出要,至於梵天,此是大師多梨車所說。』

저 한 사람이 말했다. 『나의 법은 진정하여 벗어남의 요체를 얻을 수 있고 범천에 이르니, 이것은 큰 스승 다리차가 설한 것이다.』

주 이문: 出(大)/此(宋). 多梨車: 팔리 Tārukkha, 산스크리트 U199:004 실판독 「tārākṣeṇeti」(두 계통을 인용할 뿐 판정하지 않는다). 앞의 沸伽羅娑羅가 「婆羅門」을 붙인 꼴과 달리 여기서는 이름만 쓴다(宋·元·明은 앞 좌표에서 「婆羅門」을 붙여 읽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3.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3.4

AG:da26/0105b01.1 · 교차 검사

如是再三,更相是非,有如此事耶?」

이와 같이 거듭 서로 옳으니 그르니 했다니, 이러한 일이 있었느냐?」

주 팔리 523.5는 「Atha kismiṃ pana vo, vāseṭṭha, viggaho, kismiṃ vivādo」(무엇을 두고 다툼이냐)로 다툼의 내용을 묻고, 한문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로 사실을 확인한다 —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묻는다. 산스크리트 U199:053 「kutra nu yuvayor māṇavau antarā utpanno nānāvādo vivādo」는 팔리 쪽 물음과 닮았으나 AG 결속이 없어 대응을 주장하지 않는다. 耶는 의문 어미로 흡수.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23.5

AG:da26/0105b03.1 · 교차 검사

時,婆悉咤、頗羅墮聞佛此言,皆悉驚愕,衣毛為竪,心自念言:「沙門瞿曇有大神德,先知人心,我等所欲論者,沙門瞿曇已先說訖。」

그때 바실타와 파라타가 부처님의 이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라 옷과 털이 곤두서고, 마음에 생각하여 말했다. 「사문 고따마는 큰 신묘한 덕이 있고 먼저 사람의 마음을 안다. 우리가 논하고자 한 것을 사문 고따마가 이미 먼저 말해 마쳤다.」

주 팔리에는 두 마납이 놀라는 장면이 없다(523.5 다음은 바로 대답 524.1). 衣毛為竪의 衣毛는 「옷과 털」/「옷의 털」 둘로 끊을 수 있어 「옷과 털」로 읽었다. 為竪의 為는 「~이 되다」로 읽었다(피동 為…所가 아님). 驚愕은 음의 慧琳 0385c17 「驚也」(참고). 佛(여기)과 世尊(앞 좌표)은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 것이다. 神德은 확정 술어 「신통」과 무관한 일반어로 「신묘한 덕」으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23.5

AG:da26/0105b03.2 · 교차 검사

時,婆悉咤白佛言:「此道、彼道皆稱真正,皆得出要,至於梵天,為沸伽羅娑羅婆羅門所說為是?

그때 바실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길과 저 길이 모두 진정하다고 일컬어지고 모두 벗어남의 요체를 얻어 범천에 이르는데, 불가라사라 바라문이 설한 것이 옳습니까?

주 팔리에는 「누구의 말이 옳으냐」를 묻는 문장이 없다(522.10은 다툼이 있다고만 말한다). 산스크리트 U199:035 실판독 「kasyāvayo bho gautama subhāṣitam iti」(우리 둘 중 누구의 말이 잘 설해졌는가)는 이 물음과 닮았으나 AG 결속이 없다. 為沸伽羅娑羅婆羅門所說為是의 為…所는 피동 형식이나 관형절로 풀어 「바라문이 설한 것」으로 옮겼다. 佛(여기)·世尊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22.10

AG:da26/0105b06.1 · 교차 검사

為多梨車婆羅門所說為是耶?」

다리차 바라문이 설한 것이 옳습니까?」

주 앞 좌표의 물음의 둘째 짝이다. 산스크리트 U199:052 「kasyāvayor bho gautama subhāṣitam iti」가 같은 물음을 다시 가진다(AG 결속 없음). 耶는 의문 어미.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22.10

AG:da26/0105b09.1 · 교차 검사

佛言:「正使,婆悉咤!此道、彼道真正出要,得至梵天,汝等何為清旦園中共相是非,乃至再三耶?」

부처님이 말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바실타여! 이 길과 저 길이 진정한 벗어남의 요체여서 범천에 이르게 된다면, 너희는 어찌하여 이른 아침 동산 가운데서 함께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두세 번에 이르기까지 했느냐?」

주 정사(正使)는 양보로 읽었다(사전 正使 ① 「發話 첫머리 5/17」). 팔리에서는 세존이 바로 다음에 길과 길 아님을 묻는 524.1 이하로 진행하며, 「설령 둘 다 옳다면 왜 다투느냐」는 문장은 이 자리에 없다. 乃至再三은 여기서 「두세 번에 이르기까지」의 정도 표현으로 읽혀 접힌 안쪽이 따로 있는지 저본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앵커가 생략 표지로 표시하므로 신고하고 펴지 않았다. 得至梵天의 得은 가능으로 흡수. 佛 한자 흔들림(世尊).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23.5

AG:da26/0105b09.2 · 교차 검사

時,婆悉咤白佛言:「諸有三明婆羅門說種種道,自在欲道、自作道、梵天道,此三道者盡向梵天。

그때 바실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삼명 바라문들은 갖가지 길을 설합니다 — 자재욕의 길, 스스로 짓는 길, 범천의 길입니다. 이 세 길은 모두 범천을 향합니다.

주 팔리 524.2는 바라문 학파 넷(addhariyā·tittiriyā·chandokā·bavhārijjhā)을 열거하고 한문은 세 길(自在欲道·自作道·梵天道)을 열거해 항목이 갈린다. 自在欲道는 「自在欲 / 道」로 한 항목으로 읽었으나 「自在 / 欲道」로 끊을 수도 있다. 自作의 自는 「스스로 짓다」의 뜻이 실렸다고 보아 「스스로」를 세웠다. 三明(삼명 바라문, 팔리 tevijjā)은 한자대역표 혼합이나 소리 요소가 없어 뜻글자대로 옮겼다. 諸有는 「~하는 모든」으로 보고 복수는 「들」로 흡수했다. 佛 한자 흔들림(世尊).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4.2

AG:da26/0105b12.1 · 교차 검사

瞿曇!譬如村營,所有諸道皆向於城,諸婆羅門雖說種種諸道,皆向梵天。」

고따마여! 비유하면 마을 진영에 있는 모든 길이 다 성을 향하는 것처럼, 바라문들이 갖가지 모든 길을 설한다 해도 모두 범천을 향합니다.」

주 팔리는 「gāmassa vā nigamassa vā avidūre」(마을이나 읍 가까이에 여러 길이 있어도 모두 마을 어귀로 모인다)이고 한문은 村營과 城이다. 營은 「진영」「주둔지」 쪽으로 읽었으나 다의어일 수 있다. 瞿曇는 호칭 자리지만 확정역 「고따마」를 그대로 썼다. 譬如=비유하면. 雖=해도.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4.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4.4

AG:da26/0105b14.1 · 교차 검사

佛告婆悉咤:「彼諸道為盡趣梵天不?」

부처님이 바실타에게 일렀다. 「저 모든 길이 다 범천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냐?」

주 팔리 525.1~6은 같은 물음을 세 번 되풀이하고(Niyyantīti vāseṭṭha vadesī?), 한문은 이 물음과 다음의 「再三重問」 두 번으로 줄었다. 為…不는 의문 형식으로 읽었고 為는 「위하여」「피동」이 아니다. 佛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25.1

AG:da26/0105b15.1 · 교차 검사

答曰:「盡趣。」

대답했다. 「모두 나아갑니다.」

주 팔리 「Niyyantīti, bho gotama, vadāmi」(나아간다고 말합니다)와 같은 대답. 한문은 이 대답을 두 번만 적는다(525.4·525.6 접힘).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25.2

AG:da26/0105b16.1 · 교차 검사

佛復再三重問:「種種諸道盡趣梵天不?」

부처님이 다시 두세 번 거듭 물었다. 「갖가지 모든 길이 다 범천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냐?」

주 팔리는 같은 물음을 따로 두 번 더 적고, 한문은 「再三重問」으로 접어 한 번의 인용만 둔다. 復=다시(반복의 뜻이 실림). 佛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5.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5.5

AG:da26/0105b17.1 · 교차 검사

答曰:「盡趣。」

대답했다. 「모두 나아갑니다.」

주 앞 좌표에서 접힌 되풀이 대답에 해당한다. 한문이 접은 것이므로 펴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5.4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5.6

AG:da26/0105b18.1 · 교차 검사

爾時,世尊定其語已,告婆悉咤曰:「云何三明婆羅門中,頗有一人得見梵天者不?」

그때에 세존이 그 말을 확정하고 바실타에게 일러 말했다. 「어떠한가, 삼명 바라문들 가운데 범천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

주 팔리 525.7 「atthi koci tevijjānaṃ brāhmaṇānaṃ ekabrāhmaṇopi, yena brahmā sakkhidiṭṭho」(범천을 눈앞에서 본 이가 한 바라문이라도 있느냐)와 맞물린다. 「그 말을 확정하고(定其語已)」는 한문이 더 가진 서술이다. 頗有=혹시 있느냐 하는 물음. 得見=볼 수 있었던. 世尊(여기)과 佛(앞 좌표)은 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5.7

AG:da26/0105b18.2 · 교차 검사

答曰:「無有見者。」

대답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주 팔리 「No hidaṃ, bho gotama」(그렇지 않습니다)와 같은 부정 대답. 無有見者의 有는 존재 서술이라 「없습니다」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25.8

AG:da26/0105b20.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三明婆羅門先師,頗有得見梵天者不?」

「어떠한가, 바실타여! 삼명 바라문들의 선사 가운데 범천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이 있느냐?」

주 팔리 525.9 「ekācariyopi」(한 스승이라도)가 맞물린다. 팔리는 이어서 스승의 스승(525.11)과 일곱 대에 이르는 스승 계통(525.13)을 묻는데 이 자리 한문에는 그 두 물음이 없다. 先師=앞선 스승. 云何=어떠한가.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5.9

AG:da26/0105b20.2 · 교차 검사

答曰:「無有見者。」

대답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주 팔리 525.10의 같은 부정 대답.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25.10

AG:da26/0105b21.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乃往三明仙人舊婆羅門,諷誦通利,能為人說舊諸讚誦,歌詠詩書,其名阿咤摩婆羅門、婆摩提婆婆羅門、毘婆審婆羅門、伊尼羅斯婆羅門、蛇婆提伽婆羅門、婆婆悉婆羅門、迦葉婆羅門、阿樓那婆羅門、瞿曇摩婆羅門、首脂婆羅門、婆羅損陀婆羅門,彼亦得見梵天不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지난 옛적 삼명의 선인인 옛 바라문들이 외워 읽기에 통달하여 사람들을 위해 옛 여러 찬송을 설할 수 있었고 시서를 노래하여 읊었으니, 그 이름은 아타마 바라문, 바마제바 바라문, 비바심 바라문, 이니라사 바라문, 사바제가 바라문, 바바실 바라문, 가섭 바라문, 아루나 바라문, 구담마 바라문, 수지 바라문, 바라손타 바라문이다. 그들도 또한 범천을 볼 수 있었느냐?」

주 팔리 526.1~2는 mantānaṃ kattāro(진언의 작자) 옛 선인으로 aṭṭhako vāmako vāmadevo vessāmitto yamataggi aṅgīraso bhāradvājo vāseṭṭho kassapo bhagu 열 이름을 들고, 한문은 열한 이름을 다른 순서로 든다(선인의 규정도 「진언의 작자」와 「찬송을 설하고 시서를 읊음」으로 갈린다). 팔리 526.3~4는 선인들이 「우리는 범천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했느냐고 묻고, 한문은 「그들도 범천을 보았느냐」로 묻는다. cb:tt 대역주: 阿咤摩=Aṭṭhaka, 婆摩提婆=Vāmadeva, 毘婆審=Vāseṭṭha, 伊尼羅斯=Aṅgiras, 蛇婆提伽=Yamaṭaggi, 迦葉=Kassapa. 이문: 門(大)/門婆摩婆羅門(宋·元·明) — 宋·元·明은 婆摩婆羅門(cb:tt Vāmaka) 한 이름을 더해 열두 이름이 된다. 저본(大)대로 열한 이름. 전거표는 婆婆를 Bhāradvāja(다른 부 주의 없음)로, 阿樓那를 대정 편자 비정 Aruṇa로만 싣는다(참고). 정착어 迦葉(가섭): 팔리 Kassapa, 음의 慧琳 0441a01 「具云迦攝波此曰飲光 … 以姓為名」, 0480c17 「此云姓龜氏也」 — 이름의 뜻은 「음광」이라는 풀이와 「거북 성」이라는 풀이가 있으며 지위는 참고다. 瞿曇摩는 확정 술어 瞿曇(고따마)을 품고 있으나 선인 이름 복합이어서 독음 「구담마」로 옮기고 유형 판별을 남긴다(확정역 적용 여부는 정도평 판단). 이 선인들의 이름은 모두 한자 독음. 能為人說의 能은 가능 어미로 흡수. 彼亦得見梵天不耶에서 不과 耶는 의문을 이룬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6.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6.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26.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26.4

AG:da26/0105b22.1 · 교차 검사

答曰:「無有見者。」

대답했다. 「본 사람이 없습니다.」

주 팔리 526.5 「No hidaṃ, bho gotama」와 같은 부정 대답.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26.5

AG:da26/0105b29.1 · 교차 검사

佛言:「若彼三明婆羅門無有一見梵天者,若三明婆羅門先師無有見梵天者,又諸舊大仙三明婆羅門阿咤摩等亦不見梵天者,當知三明婆羅門所說非實。」

부처님이 말했다. 「저 삼명 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범천을 본 이가 없고, 삼명 바라문들의 선사 가운데도 범천을 본 이가 없으며, 또 옛 여러 대선인 삼명 바라문 아타마 등도 범천을 보지 못했다면, 삼명 바라문들이 설한 것은 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주 팔리 527.1~6은 바라문 한 사람·스승·스승의 스승·일곱 대·옛 선인의 다섯 층으로 되풀이해 확인한다(한문은 세 층). 팔리 527.7~10은 「그들이 모른다 하면서 알지 못하는 것의 동류됨을 위해 길을 설한다」는 취지의 말이 이어지는데 한문 이 좌표에는 없고, 대신 「설한 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라(當知…非實)」로 매듭짓는다. 이문: 彼(大)/使(宋·元·明), 師 삭제(宋·元·明) — 저본(大)대로 두었다. 若은 두 번 「~면」 구조로 흡수하고, 當知의 當은 당위 어미로 흡수했다. 大仙은 전거표 참고 없음, 사전 大仙 ① 「彼諸 5」 용례. 世尊 대신 佛 — 한자 흔들림은 앞 좌표들과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7.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7.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27.5

AG:da26/0105b29.2 · 교차 검사

又告婆悉咤:「如有婬人言:『我與彼端正女人交通,稱歎婬法。』

또 바실타에게 일렀다. 「가령 음탕한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저 단정한 여인과 정을 통한다』 하며 음욕의 법을 칭찬한다고 하자.

주 팔리 534.1~2는 「나는 이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고 바란다」는 사람의 비유이고 한문은 「단정한 여인과 정을 통한다고 음욕의 법을 칭찬하는 음탕한 사람」으로 같은 비유의 세부가 갈린다. 팔리 528~533(눈먼 줄·해와 달 비유)에 해당하는 한문은 이 좌표 앞에 없다. 이문: 有(CBETA 교감)/是(大) — 저본은 「如有」로 읽는다. 交通은 「정을 통하다」(성적 관계)로 읽었으나 다의어일 수 있다. 如有의 有는 가정적 존재 서술이라 「가령 ~이 …한다고 하자」로 옮겼다. 婬人은 「음탕한 사람」, 婬法은 「음욕의 법」. 이 인용은 닫히지 않고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4.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4.2

AG:da26/0105c04.1 · 교차 검사

餘人語言:『汝識彼女不?

다른 사람들이 말했다. 『그대는 저 여인을 아느냐, 모르느냐?

주 팔리 534.4~5 「jānāsi taṃ janapadakalyāṇiṃ — khattiyī vā brāhmaṇī vā vessī vā suddī vā」(그 여인이 무사·바라문·평민·노예 중 누구인지 아느냐)에 한문은 「그 여인을 아느냐」만 묻는다. 四姓 자리는 이 좌표 바깥이므로 四姓에 대한 확정 술어(찰리·수타라·거사)는 쓰지 않았다. 餘人=다른 사람들. 識=알다. 不=의문.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4.4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4.5

AG:da26/0105c05.1 · 교차 검사

為在何處?

어느 곳에 있느냐?

주 팔리 534.9 「amukasmiṃ gāme vā nigame vā nagare vā」(어느 마을·읍·도시에 있느냐)가 이 물음에 해당한다. 為在何處의 為는 「위하여」「피동」이 아니라 의문 계사로 보았으나 구문이 확정되지 않는다. 주어(그 여인)는 저본에 없어 보충하지 않았다. 인용은 다음 좌표로 이어질 수 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4.9

AG:da26/0105c06.1 · 교차 검사

東方、西方、南方、北方耶?』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주 앞 좌표(0105c06.1, 이 구간 밖)에서 시작한 물음의 뒷부분이라 문두가 잘려 있다. 耶는 의문 어미(-냐)가 지므로 따로 옮기지 않았다. 팔리는 이 여인 비유(dn13/534-537)를 일광·월광 비유(530-533) 뒤에 두는데 한역은 앞에 둔다 — 비유 덩어리 단위의 자리바뀜이다(이 덩어리의 좌표들은 같은 꼴 `reordered`로 단다). 이 좌표의 내용은 팔리의 같은 물음 자리(534.9: 어느 마을·읍·도시냐)에서 팔리가 묻는 것(마을·읍·도시)과 한역이 묻는 것(동서남북 방위)이 서로 다르다 — 엇갈림. 산스크리트는 이 경 단편(길기트 447-451)에서 이 구간에 결속된 행이 없다. 결속 행은 개경~0105b01.1에서 끝나고, 결속 없는 행에도 여인·사다리·강 비유가 보이지 않는다. 단편이라 「없음」을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unaligned`로 둔다(이하 이 구간 전 좌표 동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34.9

AG:da26/0105c06.2 · 교차 검사

答曰:『不知。』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주 한역은 물음마다 「알지 못한다」로 대답을 따로 세운다(다섯 번). 팔리는 물음 묶음 뒤에 `Iti puṭṭho 'no'ti vadeyya`를 한 번씩만 둔다(534.6 · 534.10). 팔리 534.10에 가장 가깝게 걸어 두되 한역의 대답 횟수가 더 많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10

AG:da26/0105c07.1 · 교차 검사

又問:『汝知彼女所止土地城邑村落不?』

또 물었다. 『너는 저 여인이 머무는 땅과 성읍과 마을을 아느냐, 모르느냐?』

주 所止는 「머무는」 관형절로 풀었다(「~하는 바」 회피). 不는 문말 부정으로 「아느냐, 모르느냐」의 선택 물음이다. 이문: 又=為【元】【明】 — 대정장 又를 따랐다(뜻이 선다). 팔리 534.9는 gāma·nigama·nagara(마을·읍·도시) 셋을 말하는데 한역은 土地·城邑·村落이다. 한역의 土地(땅)는 팔리에 대응어가 없다. 사전 村落 ①: 장아함 3회 · 이 경 0105c07.2, 사전 止 ① 이 경 0105c07.2 참조(쓰임 확인용이며 뜻을 정하지는 않았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9

AG:da26/0105c07.2 · 교차 검사

答曰:『不知。』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주 앞 좌표(0105c07.1)와 같은 사안 — 한역이 물음마다 대답을 세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10

AG:da26/0105c08.1 · 교차 검사

又問:『汝識彼女父母及其姓字不?』

또 물었다. 『너는 저 여인의 부모와 그 성과 자를 아느냐, 모르느냐?』

주 姓字는 성과 자(통칭 이름)로 옮겼다. 이문: 字=家【宋】 — 대정장 字를 따랐다. 팔리 534.9의 `evaṃnāmā evaṃgottā`(이러이러한 이름·이러이러한 성)와 대응하나, 한역의 「부모」는 팔리에 없다. 사전 父母 ①: 이 경 0105c08.2 포함.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9

AG:da26/0105c08.2 · 교차 검사

答曰:『不知。』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주 0105c07.1과 같은 사안.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10

AG:da26/0105c09.1 · 교차 검사

又問:『汝知彼女為是剎利女,為是婆羅門、居士、首陀羅女耶?』

또 물었다. 『너는 저 여인이 찰리 여인인지, 바라문·거사·수타라 여인인지 아느냐?』

주 剎利=찰리 · 婆羅門=바라문 · 居士=거사 · 首陀羅=수타라(확정역 `[구속]`). 居士는 四姓 자리이므로 vessa의 번안이다 — 팔리 534.5 `vessī`(바이샤 여자)를 한역이 중국 사회의 「거사」로 갈아 끼웠다. 거사는 다의어이므로 여기서는 문맥(네 계급의 나열)으로 四姓 쪽이라 가렸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팔리 순서(khattiyī brāhmaṇī vessī suddī)와 한역 순서는 같으나, 팔리는 이 물음을 이 덩어리의 맨 처음에 두고 한역은 방위·땅·부모 다음에 둔다. 為是…為是…耶는 선택 물음이다. 음의 쪽 剎利(慧琳 0466a05)·首陀羅(慧琳 0446a06)의 풀이는 계급의 뜻풀이로, 인용만 한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5

AG:da26/0105c09.2 · 교차 검사

答曰:『不知。』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주 팔리 534.6 `Iti puṭṭho 'no'ti vadeyya`는 계급 물음 바로 뒤의 대답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6

AG:da26/0105c11.1 · 교차 검사

又問:『汝知彼女為長短、麤細、黑白、好醜耶?』

또 물었다. 『너는 저 여인이 길고 짧은지, 거칠고 가는지, 검고 흰지, 아름답고 추한지 아느냐?』

주 長短(길고 짧음)은 사람의 키를 가리키는 말로 보이나 본문은 한문 그대로 두고 풀이는 비고로 민다. 팔리 534.9 `dīghā vā rassā vā majjhimā vā, kāḷī vā sāmā vā maṅguracchavī vā`는 키 셋(큼·작음·중간)과 살빛 셋(검음·갈색·황금빛)이다. 한역은 네 쌍(長短·麤細·黑白·好醜)이고 麤細(거칠고 가늚)·好醜(아름답고 추함)는 팔리에 대응이 없다. 사전 長短 ① 이 경 0105c11.2.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9

AG:da26/0105c11.2 · 교차 검사

答曰:『不知。』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주 0105c07.1과 같은 사안.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4.10

AG:da26/0105c12.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彼人讚嘆為是實不?」

「어떠한가, 바실타여! 저 사람의 찬탄은 사실인가, 아닌가?」

주 婆悉咤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바실타)으로 적었다(팔리형 `Vāseṭṭha`는 비고에만). 云何는 어미 의문형으로 옮겼고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았다. 讚嘆은 여인을 칭찬하는 말을 가리키는 듯하나 이 구간 밖 문맥이 없어 단정하지 않는다. 팔리 535.1은 「그렇다면 저 사내의 말은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i)」로, 같은 자리에서 묻는 것이 다르다(한역은 찬탄의 사실 여부, 팔리는 말의 근거 없음).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5.1

AG:da26/0105c12.2 · 교차 검사

答曰:「不實。」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실이 아닙니다.」

주 화자 바실타가 붓다께 하는 말이라 존댓말(합쇼체)로 통일했다. 팔리 535.2는 `Addhā kho, bho gotama`(분명히 그렇습니다)로 긍정의 꼴이 다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5.2

AG:da26/0105c13.1 · 교차 검사

「如是。

「그러하다.

주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如是는 앞 대답을 받는 동의 표지로 옮겼다. 팔리 536.1의 `Evameva kho`(이와 같이)와 같은 자리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6.1

AG:da26/0105c13.2 · 교차 검사

婆悉咤!三明婆羅門所說亦爾,無有實也。

바실타여! 삼명 바라문이 설한 것도 또한 그러하여 사실이 없다.

주 三明은 일단 「삼명」으로 적었다. 이 경에서 三明婆羅門은 팔리 `tevijjā brāhmaṇā`(세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에 해당하나 한역 三明은 불교의 삼명(宿命·天眼·漏盡)과 같은 글자이므로, 뜻이 걸리는 자리라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한자대역 3분할은 「혼합」으로 표시). 所說은 「설한 것」으로 풀었다. 亦爾의 「또한」은 앞의 찬탄과 견주는 뜻이 실려 있어 세웠다. 팔리 536.1은 이 자리에서 선생·스승의 스승·7대 조상·옛 선인(알렛타까 등)까지 이어서 나열하는데 한역은 이 구간에서 그 나열이 없다(「문장 유무」). 또 팔리 쪽은 여인 비유 결론 뒤에 이 나열이 오고, 한역은 일월 비유에서 이 나열 없이 곧장 간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6.1

AG:da26/0105c13.3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汝三明婆羅門見日月遊行出沒處所,叉手供養,能作是說:『此道真正,當得出要,至日月所。』

어떠한가, 바실타여! 너의 삼명 바라문은 해와 달이 돌아다니며 뜨고 지는 곳을 보고 두 손을 맞잡아 공양하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 길은 참되고 바르니 벗어남의 요체를 얻어 해와 달이 있는 곳에 이르리라.』

주 이 좌표부터 일월 비유 덩어리다. 팔리는 530(보고 예배하는가)과 531(길을 보일 수 있는가)을 둘로 나누는데 한역은 한 문장에 합쳤다. 이 덩어리는 팔리에서 여인 비유보다 앞에 있다. 能作是說의 能은 「-ㄹ 수 있다」가 지므로 「능히」를 세우지 않았고, 當得出要의 當은 어미 「-리라」가 진다. 得出要는 「벗어남의 요체를 얻다」(得은 획득). 出要는 한자대역 3분할에서 의역이라 음독하지 않고 뜻으로 옮겼다 — 팔리 `nissaraṇa`와 맞는 어휘(이 경 11회). 사전 出要 ①: 장아함 93회 · 이 경 0105a10.1 외. 遊行은 해와 달의 운행으로, 사전 遊行 ① 이 경 0105c14.1을 확인했다. 叉手는 「두 손을 맞잡아」(팔리 pañjalikā 합장과 걸림). 供養은 한국 불교계 정착어다. 팔리 531.1의 질문은 `ayameva ujumaggo…niyyāti takkarassa candimasūriyānaṃ sahabyatāyā`(이것이 곧은 길, … 해와 달과 함께함으로 이끈다)로 한역 「벗어남의 요체를 얻어」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다음 좌표 0105c17.1의 不와 이어지는 문장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0.1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1

AG:da26/0105c14.1 · 교차 검사

不?」

없는가?」

주 앞 좌표(0105c14.1) 문장의 끝 낱말 不다. `能…不`는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선택 물음이므로 不를 「없는가」로 옮겼다(좌표가 갈라져 문두는 앞 좌표에 있다). 팔리는 이 선택 물음을 쓰지 않고 `pahonti…desetuṃ`(할 수 있는가)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2

AG:da26/0105c17.1 · 교차 검사

報曰:「如是。

대답하였다. 「그러합니다.

주 報曰은 「대답하였다」. 화자 바실타이므로 존댓말. 한역의 如是(그러합니다)는 앞 물음 「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이) 그러하다」로 동의하는 꼴이고, 팔리 531.3 `No hidaṃ`(그렇지 않습니다)은 부정으로 답한다 — 같은 뜻이나 꼴이 다르다. 한역에서 「그러합니다」가 가리키는 명제는 다음 좌표에 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3

AG:da26/0105c17.2 · 교차 검사

三明婆羅門見日月遊行出沒處所,叉手供養,而不能言:『此道真正,當得出要,至日月所。』

삼명 바라문은 해와 달이 돌아다니며 뜨고 지는 곳을 보고 두 손을 맞잡아 공양하면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길은 참되고 바르니 벗어남의 요체를 얻어 해와 달이 있는 곳에 이르리라.』

주 而不能言의 而는 역접의 뜻(보고 공양하면서도 말하지 못함)이 실려 「-면서도」로 옮겼다. 能은 「-ㄹ 수 있다」가 진다. 한역은 14.1의 同文을 대답에서 되풀이하는데, 팔리는 `No hidaṃ` 한 마디 뒤 붓다가 531.4에서 결론을 한 번 더 말한다. 말하다를 나타내는 한자가 여기는 言, 0105c19.3은 說이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본문은 통일하지 않고 言=말하다, 說=설하다로 갈랐다. 處所(여기)와 之處(0105c19.3)도 같은 사안.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3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4

AG:da26/0105c17.3 · 교차 검사

也。」

입니다.」

주 也 하나만 있는 좌표다. 也는 앞 좌표 인용구 뒤에 붙은 판단 종결로, 한국어 서술 어미(-ㅂ니다)가 지므로 부사로 옮기지 않았다. 좌표가 갈라져 어미만 남은 꼴이다 — 앞 좌표 「…이르리라.」와 이어 읽는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3

AG:da26/0105c19.1 · 교차 검사

「如是。

「그러하다.

주 붓다의 발화라 평서. 바실타의 「그러합니다」(17.2)를 받는 확인이다. 팔리 531.4 `Iti kira, vāseṭṭha`(그렇다면 바실타여)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4

AG:da26/0105c19.2 · 교차 검사

婆悉咤!三明婆羅門見日月遊行出沒之處,叉手供養,而不能說:『此道真正,當得出要,至日月所。』

바실타여! 삼명 바라문은 해와 달이 돌아다니며 뜨고 지는 곳을 보고 두 손을 맞잡아 공양하면서도 설할 수 없다. 『이 길은 참되고 바르니 벗어남의 요체를 얻어 해와 달이 있는 곳에 이르리라.』

주 한역이 같은 개념(말하다)에 다른 한자를 쓴다 — 17.3은 不能言, 여기는 不能說. 處所(14.1·17.3)도 여기서는 之處로 바뀌어 있다. 확정역이 없으므로 통일하지 않고 言=말하다, 說=설하다, 處所·之處=곳으로 두었다. 팔리 531.4는 `nappahonti…desetuṃ`(길을 보일 수 없다)로 닫는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1.4

AG:da26/0105c19.3 · 교차 검사

而常叉手供養恭敬,豈非虛妄耶?」

그러면서도 늘 두 손을 맞잡고 공양하고 공경하니, 어찌 허망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 而는 접속이라 흡수하되 앞 좌표와의 역접 흐름을 「그러면서도」로 살렸다. 豈非…耶는 반어 「어찌 ~이 아니겠는가」로, 耶는 의문 어미가 진다. 虛妄은 「허망」. 恭敬은 「공경」(사전 恭敬 ① 이 경 0105c22.1). 팔리 533.1의 `nanu evaṃ sante…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i`(그렇다면 … 말이 근거 없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와 같은 자리이나 팔리는 「허망」이라는 낱말이 없고 appāṭihīrakata를 쓴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3.1

AG:da26/0105c22.1 · 교차 검사

答曰:「如是。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주 바실타의 대답. 팔리 533.2 `Addhā kho, bho gotama`(분명히 그렇습니다)와 같은 자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3.2

AG:da26/0105c22.2 · 교차 검사

瞿曇!彼實虛妄。」

고따마여! 저것은 참으로 허망합니다.」

주 瞿曇은 확정역 「고따마」(`[구속]`). 彼實虛妄의 實은 「참으로」(뜻이 실린 부사, 앞의 명사 實(사실)과 다른 쓰임). 호격이므로 「고따마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33.2

AG:da26/0105c23.1 · 교차 검사

佛言:「譬如有人立梯空地,餘人問言:『立梯用為。』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빈 땅에 사다리를 세웠는데, 다른 사람이 물어 말하였다. 『사다리를 세워 어디에 쓰는가?』

주 이 좌표부터 사다리 비유 덩어리다(팔리 538-541, 순서는 같다). 佛은 확정역 「부처님」. 譬如有人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도입이라 「어떤 사람이」로 풀었다. 立梯空地: 팔리는 `cātumahāpathe`(네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든다고 하나 한역은 空地(빈 땅)다 — 장소가 다르다. 立梯用為의 為는 문말 의문 조사로 보여 「어디에 쓰는가」로 옮겼으나 의문사(何)가 한문에 없다 `[불확실:구두·분절]`. 팔리 538.2는 사다리의 용도(pāsādassa ārohaṇāya 궁전에 오르기 위해)를 서술문으로 먼저 말하고, 용도를 묻는 말은 두지 않는다. 사전 空 ①·用 ① 이 경 0105c23.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8.1

AG:da26/0105c23.2 · 교차 검사

答曰:『我欲上堂。』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는 당에 오르고자 한다.』

주 堂은 큰 건물의 정청을 뜻하는 글자로 「당」으로 옮겼다. 팔리는 `pāsāda`(궁전·누각)이다. 上堂은 사전 上堂 ① 이 경 0105c24.1·0105c26.1 용례(장아함 4회)와 같이 건물에 오르는 뜻. 欲은 「-고자 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8.2

AG:da26/0105c24.1 · 교차 검사

又問:『堂何所在?

또 물었다. 『당은 어디에 있느냐?

주 所在는 「있는 곳」인데 何所在가 「어디에 있느냐」가 된다(所 회피). 팔리 538.4 `jānāsi taṃ pāsādaṃ`(그 궁전을 아는가) 뒤 538.5에 방위(동서남북)와 높이(높음·낮음·중간)를 묻는다. 한역에는 높이가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8.4

AG:da26/0105c25.1 · 교차 검사

東、西、南、北耶?』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주 이문: 西、南=南西【宋】【元】【明】 — 대정장 東、西、南、北 순서를 따랐다(뜻은 같다). 팔리 538.5의 `ucco vā nīco vā majjhimo vā`(높은가 낮은가 중간인가)는 한역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8.5

AG:da26/0105c25.2 · 교차 검사

答云:『不知。』

대답하여 말하였다. 『알지 못한다.』

주 답을 여는 낱말이 앞에서는 答曰인데 여기는 答云이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둘 다 「대답하여 말하다」로 두었다. 팔리 538.6 `Iti puṭṭho 'no'ti vadeyya`.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8.6

AG:da26/0105c25.3 · 교차 검사

云何?

어떠한가?

주 云何는 어미 의문형 「어떠한가」로 옮겼다. 이 좌표는 붓다가 청자에게 판단을 구하는 물음의 머리말이다. 팔리 539.1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바실타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9.1

AG:da26/0105c25.4 · 교차 검사

婆悉咤!此人立梯欲上堂者,豈非虛妄耶?」

바실타여! 사다리를 세워 당에 오르고자 하는 이 사람은 어찌 허망하지 않은가?」

주 者는 앞 구절을 주제로 묶는 명사화로 「~하는 이」로 옮겼다. 豈非虛妄耶는 반어의 「허망하지 않은가」. 팔리 539.1은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i`로 말의 근거 없음을 묻고 「허망」이라는 말은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9.1

AG:da26/0105c26.1 · 교차 검사

答曰:「如是,彼實虛妄。」

대답하여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저것은 참으로 허망합니다.」

주 如是는 앞 물음에 대한 동의 「그러합니다」. 彼實虛妄의 實은 「참으로」. 팔리 539.2는 `Addhā kho, bho gotama, evaṃ sante tassa purisassa appāṭihīrakataṃ bhāsitaṃ sampajjati`로 「허망」을 말하지 않고 말의 근거 없음을 확인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9.2

AG:da26/0105c27.1 · 교차 검사

佛言:「三明婆羅門亦復如是,虛誑無實。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삼명 바라문도 이와 같아 허황되고 속이며 사실이 없다.

주 亦復如是의 亦·復은 고정된 비교 정형이라 「~도 이와 같아」로 합쳐 옮기고 따로 「또한」「다시」를 세우지 않았다(반복의 뜻이 실리지 않음). 虛誑은 「허황되고 속이며」, 無實은 「사실이 없다」(사전 虛誑 ① 이 경 0105c27.2, 사전 無實 ① 이 경 0105c27.2; 音義 虛誑 慧琳 0516b04는 「誑=欺」). 팔리 540.1은 `na kira tevijjehi brāhmaṇehi brahmā sakkhidiṭṭho`(삼베다 바라문이 범천을 직접 본 적이 없다)와 선생·7대 조상·옛 선인의 나열이 이어진다. 한역에는 그 나열과 `brahmā sakkhidiṭṭho`(범천을 직접 봄)가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0.1

AG:da26/0105c27.2 · 교차 검사

婆悉咤!五欲潔淨,甚可愛樂。

바실타여! 오욕은 깨끗하여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하다.

주 이 좌표부터 오욕과 강 비유 덩어리다. 한역은 팔리 542-544(강 건너편을 불러도 오지 않음)의 비유를 뒤로 미루거나 합치고 오욕을 먼저 말한다 — 구조 갈림. 팔리 546.1은 오욕을 「성자의 율에서 족쇄·속박이라 불린다」고 먼저 말하고 546.3에서 오욕을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원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며 사랑스러운 모습이고 욕망에 닿고 매혹적인 것)로 풀이한다. 한역의 潔淨(깨끗함)은 팔리에 대응어가 없다. 甚可愛樂은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하다」. 愛樂은 한자대역 3분할이 「혼합」으로 표시했으나 이 자리에서는 두 글자 모두 뜻으로 옮겨진 말로 보아 뜻으로 옮겼다. 五欲은 한국 불교계 정착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3

AG:da26/0105c28.1 · 교차 검사

云何為五?

무엇이 다섯인가?

주 云何為五는 「무엇이 다섯인가」(云何=어미 의문형, 為=계사). 팔리 `Katame pañca`와 같다. 두 증언의 순서가 달라 PN 좌표는 546.2이나 한역은 오욕을 먼저 말하고 묻는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46.2

AG:da26/0105c29.1 · 교차 검사

眼見色,甚可愛樂;耳聲、鼻香、舌味、身觸,甚可愛樂。

눈으로 형색을 보는 것이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하며, 귀의 소리, 코의 향기, 혀의 맛, 몸에 닿는 것이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하다.

주 眼見色은 「눈으로 형색을 보는 것」, 耳聲·鼻香·舌味·身觸은 「귀의 소리」 등으로 옮겼다(耳聲 등은 동사 없는 명사 나열이므로 본문도 명사로 둔다). 色聲香味觸은 불교 술어이나 이 구간에서는 감각 대상으로 쓰였으므로 풀어 옮겼다. 팔리 546.3은 눈으로 아는 형색(cakkhuviññeyyā rūpā)에 이어 546.4에서 `sotaviññeyyā saddā…pe… ghānaviññeyyā gandhā… jivhāviññeyyā rasā… kāyaviññeyyā phoṭṭhabbā`로 나머지를 줄여 적는다(팔리 쪽이 …로 접은 자리이며, 그 안쪽 어구는 읽을 수 있어 `unaligned`가 아니다). 한역은 다섯을 모두 쓰지만 팔리의 수식어(iṭṭhā kantā…)를 한 마디 甚可愛樂으로 줄였다. 사전 色·聲·味 ① 이 경 0105c29.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4

AG:da26/0105c29.2 · 교차 검사

於我賢聖法中,為著、為縛,為是拘鎖。

나의 현성의 법 가운데서는 집착이요, 속박이요, 구속하는 사슬이다.

주 賢聖法은 「현성의 법」(賢聖=성자들, 사전 賢聖 ① 이 경 0106a01.1·0106a08.2). 於我…中은 「나의 … 가운데서」(於=조사가 진다). 為著、為縛,為是拘鎖의 為는 「~이 되다」의 계사로 셋을 병렬했다. 팔리 546.1·546.5는 `ariyassa vinaye andūtipi vuccanti, bandhanantipi vuccanti`(성자의 율에서 족쇄라고도 불리고 속박이라고도 불린다)로 이름이 둘이고 「율」(vinaye)이다. 한역은 셋(著·縛·拘鎖)이고 「법」(法)이다. 이는 한역의 번역기법(이름 셋을 나열)일 가능성도 있으나 저본 차이일 수도 있어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5

AG:da26/0106a01.1 · 교차 검사

彼三明婆羅門為五欲所染,愛著堅固,不見過失,不知出要,彼為五欲之所繫縛。

저 삼명 바라문은 오욕에 물들어 애착이 단단하고 굳으며,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의 요체를 알지 못하니, 그는 오욕에 얽매이고 묶인다.

주 為五欲所染은 피동 「오욕에 물들어」, 為五欲之所繫縛은 피동 「오욕에 얽매이고 묶인다」(「~하는 바」 회피). 愛著은 「애착」(사전 愛著 ① 이 경 0106a02.1·0106a09.1), 堅固은 의역이라 「단단하고 굳으며」로 옮겼다. 不見過失은 「허물을 보지 못하며」(팔리 `anādīnavadassāvino` 허물을 보지 못함에 걸린다). 不知出要는 「벗어남의 요체를 알지 못하니」(팔리 `anissaraṇapaññā` 벗어남을 알지 못하는 지혜). 이문: 失=矣【宋】 — 대정장 失을 따랐다(과실이라는 뜻이 선다). 팔리 546.6의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탐착하고 미혹하고 몰입함)는 한역 愛著堅固로 줄었다. 팔리 546.7은 이 뒤에 「죽어서 범천과 함께함에 이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 이어지는데 한역은 다음 좌표로 간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6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7

AG:da26/0106a02.1 · 교차 검사

正使奉事日月水火,唱言:『扶接我去生梵天者。』

설령 해와 달과 물과 불을 받들어 섬기며 외쳐 말할지라도, 『나를 부축하여 범천에 가서 태어나게 해 줄 이여.』

주 正使는 앞 구절을 양보로 받는 「설령 ~할지라도」(사전 正使 ① 이 경 0106a04.1; 앵커가 가리킨 사역의 뜻이 아니라 양보로 읽었다 `[불확실:격·태·구문]`). 奉事는 「받들어 섬기며」(사전 奉事 ① 이 경 0106a04.1). 日月水火는 「해와 달과 물과 불」. 唱言은 「외쳐 말하다」. 者는 「~하는 이」의 명사화로 부르는 말이 된다. 梵天은 확정역 「범천」. 팔리 544.2는 `indamavhayāma, somamavhayāma, varuṇamavhayāma, īsānamavhayāma, pajāpatimavhayāma, brahmamavhayāma, mahiddhimavhayāma, yamamavhayāmā`(인드라·소마·바루나·이사나·쁘라자빠띠·범천·마히따·야마를 부른다)로 부르는 대상이 신들이고, 한역은 해·달·물·불이라 대상이 엇갈린다. 또 팔리 544.2는 강 건너편 사람의 비유와 짝이 되는 신 호명이며 한역은 오욕 뒤에 놓았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44.2

AG:da26/0106a04.1 · 교차 검사

無有是處。

그러한 경우는 없다.

주 無有是處는 「그러한 경우는 없다」. 處는 가능성·경우를 가리켜(사전 處 ① 이 경 0106a05.1) 팔리 `netaṃ ṭhānaṃ vijjati`(그러한 경우는 있지 않다)와 걸린다.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부정 숙어 속의 낱말이라 「있다」로 세우지 않았다. 팔리는 544.3과 546.7에서 같은 맺음을 두 번 쓰는데 한역은 한 번이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46.7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44.3

AG:da26/0106a05.1 · 교차 검사

譬如阿夷羅河,其水平岸,烏鳥得飲,有人在此岸身被重繫,空喚彼岸言:『來渡我去。』

비유하자면 아이라 강은 그 물이 언덕과 평평하여 까마귀와 새가 마실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이쪽 언덕에서 몸이 무겁게 묶여 헛되이 저 언덕을 부르며 말하였다. 『와서 나를 건네어 가라.』

주 阿夷羅는 음역이라 한자 독음 「아이라」(팔리형 `Aciravatī`는 비고에만). 烏鳥得飲의 得은 가능 「-ㄹ 수 있다」, 烏鳥는 까마귀와 새로 두고 풀이는 비고로 둔다(팔리 `kākapeyyā` 까마귀도 마실 수 있는). 팔리 545.1의 `pūrā udakassa samatittikā`(물이 가득 차 언덕과 같은 높이)와 걸린다. 有人在此岸身被重繫는 「어떤 사람이 이쪽 언덕에서 몸이 무겁게 묶여」(被=피동). 팔리 545.3은 `daḷhāya anduyā pacchābāhaṃ gāḷhabandhanaṃ baddho`(튼튼한 사슬로 뒷짐 결박)로 묶인 모습이다. 空喚彼岸言은 「헛되이 저 언덕을 부르며 말하였다」. 팔리 542.3-4의 `pārimaṃ tīraṃ avheyya "ehi pārāpāraṃ"`(건너편 언덕을 부름)과 걸린다. 한역은 팔리의 두 비유(542의 부름, 545의 결박)를 한 사람에게 합쳤다 — 구조 갈림. 渡는 이문 度【宋】【元】【明】가 있으나 대정장 渡를 따랐다. 河 앞 阿夷羅는 음역계통 신고 대상(팔리 `Aciravatī` — 범어형은 이 전거 표에 없다). 사전 烏 ① 이 경 0106a05.2·0106a13.2, 此岸 ①(이 경에만 나옴), 彼岸 ①.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5.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5.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2.3

AG:da26/0106a05.2 · 교차 검사

彼岸寧來渡此人不?」

저 언덕이 와서 이 사람을 건네 주겠는가, 아니 주겠는가?」

주 寧은 의문 어미 속에 흡수했다(과장된 부사로 세우지 않음). 문말 不는 「주겠는가, 아니 주겠는가」. 이문: 渡=度【宋】【元】【明】 — 대정장 渡를 따랐다. 팔리 543.1은 `api nu tassa purisassa avhāyanahetu vā āyācanahetu vā patthanahetu vā abhinandanahetu vā…pārimaṃ tīraṃ orimaṃ tīraṃ āgaccheyya`(부름·간청·바람·찬탄 때문에 건너편 언덕이 이쪽으로 오겠는가)로 이유 넷을 열거하고, 545.4는 `gaccheyya`(그 사람이 저쪽 언덕으로 가겠는가)로 주어가 사람이다. 한역은 주어가 「언덕」이라 543.1에 더 가깝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3.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5.4

AG:da26/0106a07.1 · 교차 검사

答曰:「不也。」

대답하여 말하였다. 「아닙니다.」

주 不也는 부정 대답 「아닙니다」(也는 평서 어미가 져서 따로 옮기지 않음). 팔리 `No hidaṃ, bho gotama`와 같다.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43.2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45.5

AG:da26/0106a08.1 · 교차 검사

「婆悉咤!五欲潔淨,甚可愛樂,於賢聖法中猶如拘鎖。

「바실타여! 다섯 욕망은 깨끗하고 맑아 매우 사랑하고 즐길 만하지만, 현성의 법 가운데에서는 마치 구속하는 쇠사슬과 같다.

주 앞 구간에서 이어지는 부처님의 발화로 읽어 평서로 옮겼다(화자 표지는 이 구간 밖). 五欲은 확정역이 없어 「다섯 욕망」으로 옮겼다(팔리 kāmaguṇā에서 kāma 뒤의 요소에 걸리는 글자는 한문에 없다). 拘鎖는 한 낱말로 팔리 andu와 bandhana 두 낱말에 걸린다 — 한역자가 줄여 옮긴 것이다(번역기법). 「구속하는 쇠사슬」은 拘(구속)+鎖(쇠사슬)의 분석 직역이며 확정 술어가 아니다. 賢聖法은 팔리 ariyassa vinaye(성자의 율)와 법/율로 갈린다. 팔리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rajanīyā(546.3)는 한문 潔淨·甚可愛樂과 일부만 겹친다. 3분할 표의 `愛樂`(혼합·Rāga)은 이름이 아니라 「甚可愛樂」의 형용이므로 오적중으로 보았다. 於…猶如의 대조(역접)는 어미 「-지만」으로 풀었다. 산스크리트: 투입물에 이 구간 좌표와 결속된 행이 없다 — 이하 모든 좌표의 SF는 없음확인이 아니라 미대응이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3

AG:da26/0106a08.2 · 교차 검사

彼三明婆羅門為五欲所染,愛著堅固,不見過失,不知出要。

저 삼명 바라문은 다섯 욕망에 물들어 애착이 견고하고, 허물을 보지 못하며, 벗어나는 요체를 알지 못한다.

주 팔리 gadhitā mucchitā ajjhopannā(세 낱말)가 한문 愛著堅固 한 구로, anādīnavadassāvino가 不見過失로, anissaraṇapaññā(벗어남에 대한 지혜 없음)가 不知出要로 걸린다. 出要는 3분할 표가 의역(Nissaraṇa)으로 분류했으므로 「벗어나는 요체」로 뜻을 옮겼다 — 사전 出要 ① 장아함 93회(앞 「賢聖」·「諦苦」 등, 이 경 0105a10.1 외), ⑥丁福保 「出離生死之要道」(후대·참고). 확정 술어가 없다. 三明은 3분할 표가 혼합으로 분류한 낱말인데 三·明이 모두 뜻글자이므로 한자 독음 「삼명」으로 두었다. 팔리 tevijjā(세 베다에 통달한 이)에 걸리는 바라문의 호칭이지만, 한역 아함의 三明은 宿命·天眼·漏盡의 세 지혜를 가리키기도 한다(사전 三明 ③ da10/0053b04.2 「宿命智、天眼智」) — 같은 글자가 두 갈래다. 堅固는 표의 의역 행(Kevaddha/Sāla)이 아니라 형용(굳셈)으로 읽었다(오적중). 為…所染은 피동 「물들어」로 흡수했다. 婆羅門·三明의 「저」는 彼.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6

AG:da26/0106a09.1 · 교차 검사

彼為五欲之所繫縛,正使奉事日月水火,唱言:『扶接我去生梵天上。』

그는 다섯 욕망에 얽매이고 묶여 있으니, 설령 해와 달과 물과 불을 섬기며 외쳐 말하기를 『나를 부축해 이끌어 가서 범천 위에 태어나게 하소서.』 한다 해도,

주 팔리는 해·달에 대한 예배(530.1)와 인드라·소마 등을 부르는 기원(544.2), 그리고 욕망의 사슬(546.7)을 서로 다른 세 자리에 두는데, 한역은 한 문장에 몰았다(구조·배열). 섬기는 대상도 한문은 日月水火(해·달·물·불)이고 팔리는 신들의 이름 열거다(같은 자리의 다른 것 — 엇갈림). 正使는 「설령 …해도」의 양보라서(사전 正使 ① 17회 중 발화 첫머리 5), 뒤 좌표 0106a13.1과 이어 한 문장이 된다. 正使 절에 맺음말이 없어 「-한다 해도」로 양보를 어미로 풀었다. 彼는 앞 좌표의 三明婆羅門을 가리켜 「그」로 옮겼다. 繫縛은 「얽매이고 묶여」(音義: 繫縛 계=連綴·拘束, 慧琳 0323b19 — 인용만). 奉事는 「섬기며」. 이문: 上=者【明】 — 明본은 「生梵天者」로 읽혀 「범천에 태어나는 이」가 되는 자리라, 大正 본문 「범천 위」를 따랐다. 扶接의 「부축해 이끌어」는 扶(붙듦)+接(이끎)의 분석 직역이며 去와 이어 읽을지(이끌어 가서) 끊을지 갈린다 [불확실:구두·분절].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6.7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44.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30.1

AG:da26/0106a11.1 · 교차 검사

亦復如是,終無是處。

또한 이와 같아, 끝내 그런 경우는 없다.

주 無是處는 팔리 netaṃ ṭhānaṃ vijjati(544.3·546.7)와 같은 정형이며 이 경에서 「그런 경우」로 통일했다(같은 글자 無有是處 0106a16.1, 有是處 0106a23.1). 亦復如是가 가리키는 앞 비유는 이 구간 밖이다 — 사전에 0106a05.2·0106a07.1의 繫·烏·彼岸이 보여 앞 구간에 묶인 사람의 강 건너기 비유가 있는 듯하나, 이 구간 밖이라 단정하지 않는다. 亦는 앞 비유와의 같음을 싣는 자리라 「또한」으로 세웠고, 復는 如是와 함께 흡수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4.3

AG:da26/0106a13.1 · 교차 검사

婆悉咤!譬如阿夷羅河,其水平岸,烏鳥得飲,有人欲渡,不以手足身力,不因船栰,能得渡不?」

바실타여! 비유하면 아이라 강은 그 물이 언덕과 나란하여 까마귀와 새가 마실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건너려 하면서 손발과 몸의 힘을 쓰지 않고 배와 뗏목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건널 수 있겠는가?」

주 팔리의 비유는 강이 가득 차 까마귀가 마실 만한데(542.1 kākapeyyā ≈ 烏鳥得飲, samatittikā ≈ 其水平岸) 건너려는 사람이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을 불러 오게 하는 것(542.3-.4, 543.1)이다. 한역은 같은 강·같은 상황에서 시험을 바꾸어, 손발·몸의 힘과 배·뗏목 없이 건널 수 있느냐고 묻는다(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 팔리의 pāratthiko pāragavesī pāragāmī 같은 거듭 수식은 한문에 없다. 阿夷羅는 음역으로 보아 한자 독음 「아이라」(3분할 표 Aciravatī, 전거 표 팔리 후보). 河는 팔리 nadī. 以…는 「쓰고」로 푼 수단 표지, 因은 「의지하고」. 能得渡不의 能·得 둘은 가능으로 겹치므로 「-ㄹ 수 있겠는가」 하나로 흡수. 不는 의문 종결로 「-ㄴ가」. 이문: 婆=彼婆【宋】【元】, 渡=度【宋】【元】【明】(두 곳), 船=舡【宋】【元】 — 大正을 따랐다. 앞 좌표 0106a08.2부터 이어진 부처님 발화는 여기서 닫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2.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2.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43.1

AG:da26/0106a13.2 · 교차 검사

答曰:「不能。」

대답하여 말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주 팔리 No hidaṃ, bho gotama(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여)는 부정 응답이고, 한역 不能은 앞 물음의 能得渡不를 받아 「할 수 없다」를 답한다 — 호칭(bho gotama)은 한문에 없다. 답하는 이가 한문에 밝혀지지 않았다(앞 문맥상 바실타로 읽힌다). 높임: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합쇼체.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43.2

AG:da26/0106a15.1 · 교차 검사

「婆悉咤!三明婆羅門亦復如是,不修沙門清淨梵行,更修餘道不清淨行,欲求生梵天者,無有是處。

「바실타여! 삼명 바라문도 또한 이와 같다. 사문의 청정한 범행을 닦지 않고 다시 다른 길의 청정하지 않은 행을 닦으면서 범천에 태어나기를 구하고자 하는 이는, 그런 경우가 없다.

주 팔리 544.1은 「바라문을 만드는 법(brāhmaṇakārakā dhammā)을 버리고 바라문이 아니게 하는 법을 취한다」이고, 한역은 「사문의 청정한 범행을 닦지 않고 다른 길의 청정하지 않은 행을 닦는다」다 — 같은 자리의 다른 말이다(엇갈림). 無有是處는 544.3 netaṃ ṭhānaṃ vijjati와 같다. 梵行은 3분할 표가 의역(Brahmacariya)으로 분류하나 「범행」은 한국 불교계 정착형이라 그대로 쓰고, 정형구 행(梵行)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신고한다. 淸淨梵行의 清淨은 3분할 표의 `清淨`(Sobhavatī) 행이 아니라 형용이다(오적중, 전거 표 ⚠뜻일치미확인). 更修餘道의 更은 「다시」로 두었으나 「도리어」의 뜻일 수도 있다. 欲求生梵天者의 者는 「이」. 亦는 앞 비유와의 같음이 실려 「도」로 세웠다. 沙門은 음역이라 한자 독음(팔리 samaṇa).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44.1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44.3

AG:da26/0106a16.1 · 교차 검사

婆悉咤!猶如山水暴起,多漂人民,亦無船栰,又無橋梁,有行人來,欲渡彼岸,見山水暴起,多漂人民,亦無船栰,又無橋梁,彼人自念:『我今寧可多集草木,牢堅縛栰,自以身力渡彼岸耶?』

바실타여! 마치 산의 물이 갑자기 일어나 많은 사람을 떠내려 보내는데, 배와 뗏목도 없고 또 다리도 없을 때, 길 가는 사람이 와서 저편 언덕으로 건너려 하다가, 산의 물이 갑자기 일어나 많은 사람을 떠내려 보내고 배와 뗏목도 없고 또 다리도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사람이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차라리 풀과 나무를 많이 모아 단단히 뗏목을 묶어 자기 몸의 힘으로 저편 언덕을 건너면 어떨까?』

주 팔리 DN13(투입물 전체)에는 산 물이 불어 뗏목을 묶는 비유가 없다 — 강 비유는 542·545·547 세 번이고 모두 건너려는 이가 묶이거나 덮여 있는 모양이다. 짚은 자리 545.1은 두 번째 강 비유의 자리다. 접힌 546.4(감각 대상 열거)·556.2(점진적 수행 정형구) 안쪽은 이 비유가 설 자리가 아니라고 보았다. 猶如는 「마치」, 暴起는 「갑자기 일어나」, 多漂人民은 「많은 사람을 떠내려 보내」(人民=사람들). 亦無船栰의 亦는 앞 구절과 더함이 실려 「도」로 풀었다. 自念의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했고, 自以身力의 自는 배·다리(바깥의 힘)와 몸의 힘이 대조되어 「자기」로 세웠다. 寧可…耶는 「차라리 …면 어떨까」. 이문: 牢堅=堅牢【宋】【元】【明】, 船=舡【宋】, 渡=度【宋】【元】【明】 —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45.1

AG:da26/0106a18.1 · 교차 검사

即尋縛栰,自以身力安隱得渡。

곧바로 뗏목을 묶고 자기 몸의 힘으로 편안히 건널 수 있었다.

주 앞 좌표 0106a18.1의 뗏목 비유의 결말이며 팔리에 대응이 없다(위 좌표 서술 참조). 即尋은 두 글자가 모두 「곧」이라 「곧바로」 하나로 옮겼다. 安隱은 「편안히」(사전 安隱 ① 61회), 得渡는 결과를 이룬 「건널 수 있었다」. 自以身力은 앞 좌표와 같이 「자기 몸의 힘으로」. 이 문장은 부처님 발화 안의 비유 서술이라 평서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45.1

AG:da26/0106a22.1 · 교차 검사

婆悉咤!此亦如是,若比丘捨非沙門不清淨行,行於沙門清淨梵行,欲生梵天者,則有是處。

바실타여! 이 또한 이와 같아, 만약 비구가 사문이 아닌 청정하지 않은 행을 버리고 사문의 청정한 범행을 행하여 범천에 태어나고자 하면, 그런 경우가 있다.

주 팔리 557.14는 비구가 범천과 어울리는 마음(apariggaha 등)을 갖추고 몸이 무너진 뒤 범천과 함께함에 이른다는 긍정 결론(ṭhānametaṃ vijjati)이고, 한역은 앞의 바라문 부정 문장(0106a16.1)을 뒤집은 짝으로 비유(0106a18.1~0106a22.1) 뒤에 선다. 구조·배열 쪽에서 팔리와 갈린다. 比丘: 팔리 bhikkhu, 범어 후보 Bhikṣu(전거 표 근대 비정) — 팔리형과 범어형이 갈리는 확인된 두 계통이며 판정하지 않는다. 若은 연결어미 「-면」, 則는 귀결로 흡수, 於는 조사로 흡수. 非沙門不清淨行은 「사문이 아닌 청정하지 않은 행」. 이문: 行·梵을 【宋】【元】【明】이 뺀다 — 大正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7.14

AG:da26/0106a23.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恚心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주 팔리는 범천에 대한 다섯 물음(550.1-.10)을 먼저 묶고 삼명 바라문에 대한 다섯 물음(550.11-.20)을 뒤에 묶지만, 한역은 항목마다 범천과 바라문을 번갈아 묻는다(자리바뀜). 항목 순서도 팔리는 pariggaha·vera·byāpāda·saṃkilesa·vasavattī, 한역은 恚·瞋·恨·家屬產業·自在로 다르다. 恚·瞋·恨은 서로 다른 세 글자이므로 「노여워하는 마음」「성내는 마음」「원한을 품은 마음」으로 가르되, 팔리 vera(원한)·byāpāda(악의)·saṃkiliṭṭha(오염)와의 낱말 대응은 순서 자리로만 짚었고 뜻의 대응은 확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구조·배열]. 3분할 표의 `無恚`(혼합·Nigrodha)는 「恚心이 없음」이므로 이름이 아니다(오적중). 云何는 「어떠한가」, 耶는 의문 어미, 有는 「있는가」로 존재를 서술하는 자리다. 이 물음은 0106a26.1과 한 문장이 둘로 쪼개져 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3

AG:da26/0106a25.1 · 교차 검사

無恚心耶?」

노여워하는 마음이 없는가?」

주 앞 좌표(0106a25.1)와 한 물음(「…있는가, …없는가」)이 한문 구두로 둘로 갈린 것이며, 팔리 saveracitto vā averacitto vā 한 문장에 걸린다. 이 좌표에서 부처님의 발화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3

AG:da26/0106a26.1 · 교차 검사

答曰:「無恚心也。」

대답하여 말하였다. 「노여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 팔리 Averacitto, bho gotama에 걸린다(호칭은 한문에 없다). 답하는 이는 한문에 밝혀지지 않았다(바실타로 읽힌다). 也는 판단 종결로 평서 어미에 흡수.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4

AG:da26/0106a26.2 · 교차 검사

又問:「三明婆羅門有恚心、無恚心耶?」

또 물었다. 「삼명 바라문은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13 saveracittā vā averacittā vā에 걸린다. 이문: 心→心耶【宋】【元】【明】(耶가 더해진 읽기) — 大正을 따라 의문 어미는 문말 하나로 두었다. 又問의 주어는 한문에 없다(부처님으로 읽힌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3

AG:da26/0106a27.1 · 교차 검사

答曰:「有恚心。」

대답하여 말하였다.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 팔리 Saveracittā, bho gotama에 걸린다. 有는 존재를 서술한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4

AG:da26/0106a28.1 · 교차 검사

「婆悉咤!梵天無恚心,三明婆羅門有恚心,有恚心、無恚心不共同,不俱解脫,不相趣向,是故梵天、婆羅門不共同也。

「바실타여! 범천은 노여워하는 마음이 없고 삼명 바라문은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으니, 노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과 노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함께 같지 않고, 함께 해탈하지 않으며, 서로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은 함께 같지 않다.

주 팔리의 결론은 항목별로 서지 않고 551.1-.4(pariggaha)와 551.5(vera·byāpāda·saṃkilesa·vasavattī, 중간에 …pe… 포함)에 묶이는데, 한역은 항목마다 결론을 단다. 551.5의 접힌 안쪽은 읽지 못해 이 좌표의 대응을 551.5의 vera 항에만 걸었다. 팔리 saṃsandati sametī(어울리고 합치는가)는 한문 不共同·不俱解脫·不相趣向 세 구로 풀린 듯하나 판정하지 않는다. 한역이 같은 결론에 이 좌표에서는 「不共同/不俱解脫/不相趣向」을, 뒤 좌표(0106b04.2부터)에서는 「不同趣/不同解脫」를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통일하지 않고 각각 「함께 같지 않고/함께 해탈하지 않으며/서로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와 「같이 나아가지 않고/같이 해탈하지 않으며」로 옮겼다. 俱解脫은 3분할 표에 의역(Ubhatobhāgavimutta)으로 올랐으나 여기서는 不同解脫과 짝인 부사 俱(함께)+解脫로 읽었다 — 술어 「양면 해탈」이 아니다(전거 표 ⚠다른 부(MA)의 대역) [불확실:다의어_판별]. 也는 평서 어미에 흡수. 是故는 「그러므로」. 梵天·婆羅門은 [구속] 확정역(범천·바라문).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1.5

AG:da26/0106a28.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瞋心、無瞋心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성내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5 sabyāpajjacitto vā abyāpajjacitto vā에 순서 자리로 걸었다. 이 항목부터 한역은 「있는가, 없는가」를 한 문장에 묻는다(앞의 恚 항은 둘로 갈려 있었다). 瞋은 앞 항의 恚와 다른 글자라 「성내는 마음」으로 가르고 恚는 「노여워하는 마음」으로 두었다. 이 좌표에서 부처님 발화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5

AG:da26/0106b02.1 · 교차 검사

答曰:「無瞋心。」

대답하여 말하였다. 「성내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 팔리 Abyāpajjacitto, bho gotama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6

AG:da26/0106b03.1 · 교차 검사

又問:「三明婆羅門有瞋心、無瞋心耶?」

또 물었다. 「삼명 바라문은 성내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15 sabyāpajjacittā vā abyāpajjacittā vā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5

AG:da26/0106b03.2 · 교차 검사

答曰:「有瞋心。」

대답하여 말하였다. 「성내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 팔리 Sabyāpajjacittā, bho gotama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6

AG:da26/0106b04.1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瞋心,三明婆羅門有瞋心,有瞋心、無瞋心不同趣,不同解脫,是故梵天、婆羅門不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성내는 마음이 없고 삼명 바라문은 성내는 마음이 있으니, 성내는 마음이 있는 것과 성내는 마음이 없는 것은 같이 나아가지 않고, 같이 해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은 함께 같지 않다.

주 이 좌표의 결론 문형은 0106a28.2의 「不共同/不俱解脫/不相趣向」과 달리 「不同趣/不同解脫」 둘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통일하지 않음). 팔리 551.5의 byāpāda 항에 순서 자리로 걸었고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다. 佛은 [구속] 확정역 「부처님」, 佛言은 「말씀하셨다」로 옮겼다. 趣는 「나아가다」(향해 감)로, 사전 趣 ① 77회(이 경 0106b04.2 포함)를 참고한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1.5

AG:da26/0106b04.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恨心、無恨心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원한을 품은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7은 saṃkiliṭṭhacitto vā asaṃkiliṭṭhacitto vā(오염된 마음인가 아닌가)로, 한역 恨(원한)과 뜻이 갈릴 가능성이 있다 — 순서 자리로만 걸었고 낱말 대응은 확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구조·배열]. 恨心은 앞의 恚·瞋과 다른 글자라 「원한을 품은 마음」으로 가른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7

AG:da26/0106b07.1 · 교차 검사

答曰:「無恨心。」

대답하여 말하였다. 「원한을 품은 마음이 없습니다.」

주 팔리 Asaṃkiliṭṭhacitto, bho gotama에 순서 자리로 걸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8

AG:da26/0106b07.2 · 교차 검사

又問:「三明婆羅門有恨心、無恨心耶?」

또 물었다. 「삼명 바라문은 원한을 품은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17 saṃkiliṭṭhacittā vā asaṃkiliṭṭhacittā vā에 순서 자리로 걸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7

AG:da26/0106b08.1 · 교차 검사

答曰:「有恨心。」

대답하여 말하였다. 「원한을 품은 마음이 있습니다.」

주 팔리 Saṃkiliṭṭhacittā, bho gotama에 순서 자리로 걸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8

AG:da26/0106b09.1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恨心,三明婆羅門有恨心,有恨心、無恨心不同趣,不同解脫,是故梵天、婆羅門不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원한을 품은 마음이 없고 삼명 바라문은 원한을 품은 마음이 있으니, 원한을 품은 마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같이 나아가지 않고, 같이 해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은 함께 같지 않다.

주 결론 문형이 0106b04.2와 같다(「不同趣/不同解脫」) — 0106a28.2의 세 구 형과 다르다(한자 흔들림, 통일하지 않음). 팔리 551.5의 saṃkiliṭṭha 항에 순서 자리로 걸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1.5

AG:da26/0106b09.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家屬產業不?」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가족과 재산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1 sapariggaho vā brahmā apariggaho vā(소유물을 가졌는가 아닌가)가 한역에서는 다섯 항목 중 네 번째에 선다(팔리는 첫째). 家屬產業은 「가족과 재산」으로 분석해 옮겼다 — 家屬(식솔·친속)+產業(재산·생업)이 팔리 pariggaha 한 낱말에 걸리는 번역기법 차이다. 확정 술어가 없다. 不는 의문 종결(「있는가, 없는가」). 이 좌표에서 부처님 발화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

AG:da26/0106b11.1 · 교차 검사

答曰:「無。」

대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pariggaho, bho gotama에 걸린다. 한문은 「無」 한 글자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2

AG:da26/0106b12.1 · 교차 검사

又問:「三明婆羅門有家屬產業不?」

또 물었다. 「삼명 바라문은 가족과 재산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11 sapariggahā vā tevijjā brāhmaṇā apariggahā vā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1

AG:da26/0106b12.2 · 교차 검사

答曰:「有。」

대답하여 말하였다. 「있습니다.」

주 팔리 Sapariggahā, bho gotama에 걸린다. 한문은 「有」 한 글자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2

AG:da26/0106b13.1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家屬產業,三明婆羅門有家屬產業,有家屬產業、無家屬產業不同趣,不同解脫,是故梵天、婆羅門不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가족과 재산이 없고 삼명 바라문은 가족과 재산이 있으니, 가족과 재산이 있는 것과 가족과 재산이 없는 것은 같이 나아가지 않고, 같이 해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은 함께 같지 않다.

주 팔리 551.1-.4는 이 항목(sapariggaha)의 결론을 따로 세운 유일한 자리이며(551.2 saṃsandati sametī), 한역은 그 자리에 걸린다. 결론 문형은 「不同趣/不同解脫」로 0106a28.2의 세 구 형과 다르다(한자 흔들림).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1.2

AG:da26/0106b13.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得自在、不得自在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은 자재를 얻었는가, 얻지 못했는가?」

주 팔리 550.9 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뜻대로 다루는 자인가 아닌가)에 걸린다. 自在는 확정 술어가 없어 「자재」(자유자재)로 두고 得을 「얻었는가」로 옮겼다 — 사전 自在 ① 장아함 58회(앞 「不得」 7·「最得」 6 — 얻는 자재), 이 경 0105b12.1 외. 得自在·不得自在 안의 自는 합성어 안의 글자라 흡수했다. 이 좌표에서 부처님 발화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9

AG:da26/0106b16.1 · 교차 검사

答曰:「得自在。」

대답하여 말하였다. 「자재를 얻었습니다.」

주 팔리 Vasavattī, bho gotama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0

AG:da26/0106b17.1 · 교차 검사

又問:「三明婆羅門得自在、不得自在耶?」

또 물었다. 「삼명 바라문은 자재를 얻었는가, 얻지 못했는가?」

주 팔리 550.19 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19

AG:da26/0106b17.2 · 교차 검사

答曰:「不得自在。」

대답하여 말하였다. 「자재를 얻지 못했습니다.」

주 팔리 Avasavattī, bho gotama에 걸린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20

AG:da26/0106b18.1 · 교차 검사

佛言:「梵天得自在,三明婆羅門不得自在,不得自在、得自在不同趣,不同解脫,是故梵天、婆羅門不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자재를 얻었고 삼명 바라문은 자재를 얻지 못했으니, 자재를 얻지 못함과 자재를 얻음은 같이 나아가지 않고, 같이 해탈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범천과 바라문은 함께 같지 않다.」

주 팔리 551.5의 avasavattī 항과 551.7(Sādhu…netaṃ ṭhānaṃ vijjati)에 걸린다. 결론 문형은 「不同趣/不同解脫」로 0106a28.2의 세 구 형과 다르다(한자 흔들림). 이 좌표에서 부처님 발화가 닫힌다. 한역은 다섯 항목을 모두 같은 틀로 끝내지만, 팔리는 551.5 이후를 …pe… 연쇄로 접어 두었다 — 한역은 접히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1.5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1.7

AG:da26/0106b19.1 · 교차 검사

佛言:「彼三明婆羅門,設有人來問難深義,不能具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삼명 바라문은 설령 사람이 와서 깊은 뜻을 따져 물어도 갖추어 대답할 수 없다.

주 이 문장은 팔리에서 짚을 자리가 서지 않았다. 후보는 552.1(삼명 바라문이 가라앉고 허우적댄다는 결론)과 554.3-.7(마나사카타에서 자란 사람은 길을 물어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여래는 범천의 길을 물어도 머뭇거리지 않는다)인데, 어느 쪽도 한문 「깊은 뜻을 따져 물어도 갖추어 대답하지 못함」과 같은 말이 아니라서 미대응으로 두었다. 設有人來는 「설령 사람이 와서」(有는 주어화로 흡수), 問難은 「따져 묻다」, 具答은 「갖추어 대답하다」, 不能은 「-ㄹ 수 없다」. 義(여기서는 「뜻」, 사전 義 ① 143회 중 이 경 0106b21.1)는 낱말 확정이 없다. 부처님 발화이므로 평서.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13:554.7

AG:da26/0106b21.1 · 교차 검사

實如是不?」

실로 이와 같은가?」

주 앞 좌표(0106b21.1)의 확인 물음이며 팔리에는 이 확인 물음이 없는 듯하나 앞 좌표와 같은 자리가 아직 서지 않아 미대응으로 둔다. 實은 「실로」, 如是는 「이와 같다」, 不는 의문 종결. 이 좌표에서 부처님 발화가 닫힌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13:554.7

AG:da26/0106b23.1 · 교차 검사

答曰:「如是。」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와 같습니다.」

주 앞 좌표의 응답이다. 답하는 이는 한문에 밝혀지지 않았다(바실타로 읽힌다). 대응 처리는 앞 좌표와 같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13:554.7

AG:da26/0106b23.2 · 교차 검사

時,婆悉咤、頗羅墮二人俱白佛言:「且置餘論,我聞沙門瞿曇明識梵道,能為人說,又與梵天相見往來言語,唯願沙門瞿曇以慈愍故,說梵天道,開示演布。」

그때, 바실타와 파라타 두 사람이 함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다른 논의는 놓아 두십시오. 제가 듣기로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의 길을 밝게 알아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하실 수 있고, 또 범천과 서로 만나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신다고 합니다. 오직 바라오니 사문 고따마께서는 자비와 연민으로 범천의 길을 설하여 열어 보이시고 널리 펴 주십시오.」

주 팔리는 이 청을 두 번에 나눈다 — 553.2(「고따마께서 범천과 함께함에 이르는 길을 안다고 들었다」), 555.2-.3(「설한다고 들었다 … 설해 주십시오」). 한역은 마나사카타 물음(0106b28.1)보다 앞서 한 번에 청한다. 「다른 논의는 놓아 두라(且置餘論)」「범천과 서로 만나 오가며 이야기한다(又與梵天相見往來言語)」「자비와 연민으로(以慈愍故)」는 팔리에 없다(문장 유무).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梵道(앞)와 梵天道(뒤). 통일하지 않고 「범의 길」「범천의 길」로 옮겼다. 梵 단독은 확정역이 없어 「범」으로 두었다. 頗羅墮는 3분할 표가 의역(Bhāradvāja)으로 분류했으나 소리를 옮긴 이름으로 보아 한자 독음 「파라타」로 적었다(전거 표: 팔리 후보 Bhāradvāja 한 건, 음절 3:4)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婆悉咤는 음역(팔리 Vāseṭṭha)으로 「바실타」. 沙門은 팔리 samaṇa / 범어 후보 Śramaṇa, 瞿曇은 팔리 Gotama / 범어 후보 Gautama로 팔리형과 범어형이 갈리는 확인된 두 계통이다(전거 표) — 판정하지 않는다. 瞿曇의 확정역은 「고따마」다. 俱白佛言은 「함께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以…故는 이유 「-으로」. 높임: 청자가 부처님이므로 합쇼체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3.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5.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5.3

AG:da26/0106b23.3 · 교차 검사

佛告婆悉咤:「我今問汝,隨意報我。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이르셨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겠으니, 뜻에 따라 나에게 대답하라.

주 팔리 553.3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서는 자리에 한역은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묻겠으니 뜻에 따라 나에게 대답하라」를 둔다 — 같은 자리의 다른 말이다(엇갈림). 佛告는 「이르셨다」. 隨意報我는 「뜻에 따라 나에게 대답하라」(報=답함)로 옮겼다. 부처님의 발화이므로 평서이고, 이 좌표에서 발화는 다음 좌표로 이어진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3.3

AG:da26/0106b27.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彼心念國,去此遠近?」

어떠한가, 바실타여! 저 마음으로 생각한 나라는 여기서 멀리인가 가까이인가?」

주 팔리 553.4 Āsanne ito manasākaṭaṃ, na ito dūre manasākaṭaṃ(마나사카타는 여기서 가까운가, 멀지 않은가)에 걸린다. 心念은 大正 대역주(cb:tt)가 Manasākata로 단 이름이고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므로 「마음으로 생각한」으로 뜻을 옮겼다 — 이름임이 한문에 표지되어 있지 않아 이름인지 형용인지 판별은 대역주에 기댄 것이다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國은 팔리 gāma(바라문 마을)와 갈린다(개별 어휘). 去此遠近의 去는 이곳으로부터 떨어짐을 가리켜 「여기서」로 흡수했다. 이문: 遠近=近遠【宋】【元】【明】, 大正을 따랐다. 산스크리트 증언의 지명(manaḥsālā 계통)은 앞 구간 행에 있고 이 구간에 결속된 행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3.4

AG:da26/0106b28.1 · 교차 검사

答:「近。」

대답하였다. 「가깝습니다.」

주 팔리 553.5 Evaṃ, bho gotama, āsanne ito manasākaṭaṃ, na ito dūre manasākaṭaṃ(그렇습니다, 고따마여, 가깝고 멀지 않습니다)에 걸린다 — 한문은 「近」 한 글자다. 이문: 答+曰【宋】【元】【明】 — 大正의 「答」을 따라 「대답하였다」로 옮겼다(「答曰」은 「대답하여 말하였다」). 답하는 이는 한문에 밝혀지지 않았다(바실타로 읽힌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3.5

AG:da26/0106b28.2 · 교차 검사

「若使有人生長彼國,有餘人問彼國道徑,云何,婆悉咤!彼人生長彼國答彼道徑,寧有疑不?」

「어떤 사람이 저 나라에서 나고 자랐고 다른 사람이 저 나라의 길을 묻는다면, 어떠한가, 바실타여! 저 나라에서 나고 자란 그 사람이 그 길을 대답하는 데 의심이 있겠는가?」

주 팔리 554.1–.3은 마나사카타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 「마나사카타에서 막 떠나온 이가 그곳의 길을 묻는다」(tāvadeva avasaṭaṃ)고 하고 「머뭇거림이나 지체(dandhāyitatta·vitthāyitatta)가 있겠는가」를 묻는다. 한역은 지명을 쓰지 않고 「저 나라」로 말하며, 「막 떠나온 이」에 해당하는 말이 없고, 머뭇거림·지체가 「의심(疑)」 한 낱말로 선다 —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若使는 가정 복합(-ㄴ다면)으로 읽어 使를 사역으로 옮기지 않았다(앵커의 使[사역]와 달리 읽은 자리: 사역 대상이 뒤에 없음). 有人·有餘人의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부정칭(어떤·다른)이라 「~이 있어」로 옮기지 않았다. 寧…不은 반문 의문이라 어미(-겠는가)에 흡수했다. 云何, 婆悉咤는 팔리 Taṃ kiṃ maññasi, vāseṭṭha에 놓인다. 婆悉咤: 3분할 표가 음역으로 분류 — 한자 독음 「바실타」(婆羅門→바라문 확정의 婆=바에 맞춤). 팔리형은 Vāseṭṭha(전거 `Vāsettha`), 산스크리트 증언 실판독(U197:001 W)은 vāsiṣṭha-로 서며, 두 계통을 판정하지 않는다. 道徑: 「길」(음의 慧琳 0806b06 〔釋迦譜〕「小路」은 작은 길의 뜻이나 彼國道徑은 길 일반으로 읽음).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4.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4.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4.3

AG:da26/0106b29.1 · 교차 검사

答曰:「無疑。

답하여 말하였다: 「의심이 없습니다.

주 팔리 No hidaṃ, bho gotama(「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여」)는 질문에 대한 부정 응답이고 한역은 「無疑」로 직접 답한다 — 같은 뜻이다. 호격(bho gotama) 탈락은 번역기법으로 신고한다. 答曰의 주어는 한문에 없다(앞 문맥상 질문받은 바실타로 보이나 본문에 넣지 않았다). 붓다에게 답하므로 존댓말.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4.4

AG:da26/0106c02.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주 팔리 Taṃ kissa hetu에 같음. 所以者何: 所以→까닭, 者→주제(-은)로 흡수, 何→의문 어미. 화자가 답하는 바실타라서 존댓말.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4.5

AG:da26/0106c02.2 · 교차 검사

彼國生長故。」

저 나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주 팔리 554.6은 「그에게는 마나사카타의 모든 길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sabbāneva manasākaṭassa maggāni suviditānī)까지 말한다. 한역은 「나고 자랐기 때문」에서 끝나며 「길이 잘 알려져 있다」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문장 유무).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故→「-기 때문」.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4.6

AG:da26/0106c02.3 · 교차 검사

佛言:「正使彼人生長彼國,或可有疑;若有人來問我梵道,無疑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령 저 사람이 저 나라에서 나고 자랐다 해도 혹 의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나에게 범천의 길을 물으면 의심이 없다.

주 팔리 554.7은 「(그 사람에게는) 머뭇거림이나 지체가 있을 수 있으나, 여래에게는 범천세계와 범천세계로 가는 길(brahmaloke vā brahmalokagāminiyā vā paṭipadāya)을 물었을 때 머뭇거림이나 지체가 없다」로 대조한다. 한역은 「梵道」 한 낱말로 압축했다 — 복합어 압축이라 번역기법으로 신고하며 저본 차이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疑와 머뭇거림·지체는 낱말이 다르나 한역이 옳을 수 있어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正使: 「가령 …라 해도」 양보 복합으로 읽어 使를 사역으로 옮기지 않음(사전 正使 ① 발화 첫머리 5/17). 或可의 「혹」은 가능성의 뜻이 실려 남겼다. 梵道: 梵 단독의 확정역은 없고(梵天만 구속) 梵道도 술어집에 없어 「범천의 길」로 옮겼다 — 梵을 梵天으로 읽은 것은 문맥 판단이다. 若有人來問我梵道: 若→-면, 有人→「어떤 사람」, 我→간접 목적(나에게). 也→평서 어미에 흡수. 佛言: 佛은 구속 「부처님」. 붓다 발화라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4.7

AG:da26/0106c03.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 554.7과 554.8 사이에 「까닭이 무엇인가」에 해당하는 물음이 없음을 확인했다(없음확인). 한역이 스스로 던진 자문이다. 所以者何: 0106c02.2 서술과 같은 처리. 붓다 발화라 평서계 의문(-는가).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DN 13:554.8

AG:da26/0106c04.1 · 교차 검사

我常數數說彼梵道故。」

나는 늘 자주 저 범천의 길을 설하기 때문이다.」

주 같은 자리에서 내용이 갈린다 — 팔리 554.8은 「나는 범천들을, 범천세계를, 범천세계로 가는 길을, 그리고 어떻게 행하면 범천세계에 태어나는지를 안다」(pajānāmi)고 앎을 말하고, 한역은 「늘 자주 그 길을 설한다」(說)고 설함을 말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常數數: 사전에 數數가 없고 음의(慧琳 0355a13 〔大般若波羅蜜多經〕「數數頻繁也」)만 있어 「자주」로 옮겼다; 常→「늘」. 彼梵道: 彼→「저」. 故→「-기 때문」.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4.8

AG:da26/0106c04.2 · 교차 검사

時,婆悉咤、頗羅墮俱白佛言:「且置此論,我聞沙門瞿曇明識梵道,能為人說,又與梵天相見往來言語,唯願沙門瞿曇以慈愍故,說於梵道,開示演布。」

그때 바실타와 파라타가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논의는 잠시 제쳐 두십시오. 저희는 사문 고따마께서 범천의 길을 밝게 아시어 사람들을 위해 설하실 수 있고, 또 범천과 서로 만나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사문 고따마께서 자애와 연민으로 범천의 길을 설하시어 열어 보이시고 널리 펴 주십시오.」

주 팔리는 바세타 혼자 두 번 말한다(555.2 「사문 고따마가 범천과 함께하는 길을 안다/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555.3 청원). 한역은 두 사람이 함께(俱) 한 번에 말한다. 한역에만 있는 것: 「且置此論」(이 논의를 제쳐 둠; 음의 慧琳 0441b24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置捨也」), 「범천과 서로 만나 오가며 말한다」(又與梵天相見往來言語), 청원의 이유 「慈愍故」. 팔리에만 있는 것: 「바라문 사람들을 끌어올려 주소서」(ullumpatu … brāhmaṇiṃ pajaṃ). 我聞: 사전 我聞 ① 발화 첫머리 13/22에 맞는 쓰임. 我는 단수형이나 화자가 둘(俱)이라 「저희」로 옮겼다. 能→-ㄹ 수 있다. 唯願의 唯는 청원 정형이라 흡수했다(한정의 뜻이 따로 실리지 않음). 沙門瞿曇: 沙門=음역(정착형 사문), 瞿曇=구속 「고따마」. 梵道는 0106c03.1 서술 참조. 開示演布: 「열어 보이시고 널리 펴 주십시오」(두 동사 병렬). 頗羅墮: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이름(姓)이라 음역으로 판별(음의 翻譯名義集 1064b04「姓也」)해 한자 독음 「파라타」로 옮겼다 —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팔리 Bhāradvāja, 산스크리트 증언 bhāradvāja와 형이 같아 계통 갈림은 없다.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 以…故→「-로」로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5.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5.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5.3

AG:da26/0106c05.1 · 교차 검사

佛言:「諦聽,善思,當為汝說。」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를 위해 설하겠다.」

주 팔리 tena hi, vāseṭṭha, suṇāhi / sādhukaṃ manasi karohi / bhāsissāmi에 짝이 맞는다. 접속어 tena hi와 호격 vāseṭṭha는 한역에 없다(번역기법). 諦聽의 諦: 음의 希麟 0949c19 〔守護國界主陀羅尼經〕「諦審也」 → 「자세히」. 當為汝說의 當은 미래·결의 어미(-겠다)에 흡수. 汝: 청자가 둘이라 「너희」. 붓다 발화라 평서.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5.4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5.5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5.6

AG:da26/0106c08.1 · 교차 검사

答言:「唯然,願樂欲聞。」

답하여 말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원하고 즐거이 듣고자 합니다.」

주 팔리 555.7은 서술문(「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바세타가 세존께 대답했다」)이고 한역은 직접 화법이다(번역기법). 「願樂欲聞」(원하고 즐거이 듣고자 함)은 팔리에 없다(문장 유무). 唯然: 응답사(음의 慧琳 0316a03 〔大般若波羅蜜多經〕「唯者應辭」) → 「예, 그렇습니다」. 答言의 주어(바실타·파라타)는 한문에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5.7

AG:da26/0106c09.1 · 교차 검사

佛言:「若如來、至真、等正覺出現於世,十號具足,乃至四禪,於現法中而自娛樂。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세상에 출현하여 십호를 갖추면, 내지 사선, 현재의 법 가운데서 즐긴다.

주 한문이 乃至로 스스로 접은 자리(십호 이하 사선까지)는 접힌 대로 두었다 — [생략표지]. 팔리 556.2·556.3도 …pe…로 접혀 있어 접힌 안쪽을 읽지 못했으므로 556.3은 미대응이다(없음확인 아님). 如來·至真·等正覺: 구속 「여래」·「아라한」·「바르게 깨달으신 분」. 十號具足: 사전 十號 ① 뒤에 具足 26/26. 「십호」는 정착 술어로 썼다. 乃至: 사전 乃至 ① 이 경 0105b09.2, 0106c10.1. 四禪→「사선」. 於現法中: 現法을 「현재의 법」으로 옮겼으나 「현세(이 삶)」의 뜻일 수 있어 [불확실:다의어_판별]. 自娛樂: 自는 단순 재귀(自↔他 대조 없음)라 흡수, 娛樂→「즐긴다」(음의 慧琳 0450b03 〔新譯大方廣佛花嚴經音義〕「娛樂也」). 而 흡수. 若→-면.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2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13:556.3

AG:da26/0106c10.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인가?

주 팔리 556.3이 …pe…로 접혀 안쪽을 읽지 못해 짝을 짚지 못했다(미대응). 한역이 스스로 던진 자문이다. 0106c02.2와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13:556.3

AG:da26/0106c11.1 · 교차 검사

斯由精勤,專念不忘,樂獨閑靜,不放逸故。

이는 부지런히 힘쓰고, 오롯이 생각하여 잊지 않으며, 홀로 한적하고 고요함을 즐기고, 불방일하기 때문이다.

주 팔리 556.3 접힌 안쪽을 읽지 못해 짝을 짚지 못했다(미대응). 斯由…故: 斯→「이」, 由…故→「-기 때문」. 精勤→부지런히 힘씀. 專念不忘→생각을 오롯이 하여 잊지 않음. 樂獨閑靜→홀로 한적하고 고요함을 즐김. 不放逸: [참고] 확정 문자열 「불방일」을 썼다(항목이 넷째로 서는 명사 자리라 뜻이 선다).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확정 술어가 위다(§⓪-2).

니까야 대응 미정렬 DN 13:556.3

AG:da26/0106c12.1 · 교차 검사

彼以慈心遍滿一方,餘方亦爾,廣布無際,無二、無量,無恨、無害,遊戲此心而自娛樂:悲、喜、捨心遍滿一方,餘方亦爾,廣布無際,無二、無量,無有結恨,無惱害意,遊戲此心以自娛樂。

그는 자애로운 마음으로 한 방향에 두루 가득 채우고, 다른 방향도 그러하며, 널리 펴져 끝이 없고, 둘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원한이 없고 해침이 없어, 이 마음에 노닐며 즐긴다: 연민·기쁨·버림의 마음으로 한 방향에 두루 가득 채우고, 다른 방향도 그러하며, 널리 펴져 끝이 없고, 둘이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맺힌 원한이 없고 괴롭히고 해치려는 뜻이 없어, 이 마음에 노닐며 즐긴다.

주 팔리는 자애를 한 방향에 채운 뒤(556.4) 「둘째도, 셋째도, 넷째도」(556.5–.7), 위·아래·옆·모든 곳·온 세상을 채우고(556.8 uddhamadho tiriyaṃ sabbadhi … sabbāvantaṃ lokaṃ) 소라 고둥 비유로 맺는다(556.9–.11). 연민·기쁨·평정은 같은 틀을 되풀이한다(556.12–.19; 556.12는 팔리 자체가 …pe…로 접었다). 한역은 慈 한 단락과 悲喜捨 한 단락으로 줄이고, 네 방향 반복을 「餘方亦爾」로 접으며, 위·아래·옆과 「온 세상」, 소라 비유(556.9–.11 · 556.17–.19)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 한역에 없는 것을 증언에서 들여오지 않았다. 팔리의 다섯 수식어(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에 한역 廣布無際·無二·無量·無恨·無害 다섯이 놓이나 낱말 짝짓기는 정하지 않는다(無二가 어느 낱말에 해당하는지 못 정함; 無量=appamāṇa, 無恨=avera, 無害=abyāpajja는 추정). 뒷 단락은 無有結恨·無惱害意로 낱말이 늘었다. 悲·喜·捨는 확정역이 없어 「연민·기쁨·버림」으로 옮겼고, 捨를 「버림」으로 둔 것은 직역이다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慈心→「자애로운 마음」(慈 확정역 없음). 悲、喜、捨心遍滿一方은 앞의 「彼以」가 이어지는 것으로 읽어 「…마음으로」로 옮겼다 — 心이 주어일 가능성도 있어 [불확실:격·태·구문]. 遊戲此心: 遊戲→「노닐다」(음의 慧琳 0408b05 〔再譯三十五佛名經〕「逸豫也」), 此心을 처소로 옮김. 自娛樂의 自는 재귀 흡수(음의 自娛 慧琳 0488c14「樂也」). 亦爾의 亦→「도」로 흡수. 以·而 흡수. 無二는 「둘이 없고」로 직역(뜻을 풀지 않음). 이문: 爾(宋·元 결)·恨(宋·元 限)·餘方(宋·元 결) — 저본 大正본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4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5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6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7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8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12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13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14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15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6.16

AG:da26/0106c13.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恚心、無恚心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성내는 마음이 있는가, 성내는 마음이 없는가?」

주 한역은 이 자리에서 범천과 행자 비구를 짝지어 묻는다(범천 먼저). 팔리는 범천의 성질을 550.1–.10(바라문과 견주는 자리)에서 따로 묻고, 비구는 557.1–.10에서 묻는다 — 배열이 다르다. 팔리의 다섯 항목 순서(소유 apariggaha·원한 avera·악의 byāpajja·오염 saṃkiliṭṭha·자재 vasavattī)가 한역에서는 恚·瞋·恨·家屬產業·自在로 서고, 恨은 avera(0106c13.1의 無恨과 같은 한자), 家屬產業은 pariggaha, 自在는 vasavattī에 놓이나, 恚·瞋이 byāpajja·saṃkiliṭṭha 중 어느 쪽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이 좌표는 恚를 byāpajja(550.5)로 짚었다 — 추정. 恚·瞋·恨은 서로 다른 한자이므로 「성내는/화내는/원한의」로 구별해 옮겼다. 有恚心、無恚心耶: 두 항 병렬, 耶→의문 어미. 梵天: 구속 「범천」. 云何, 婆悉咤: 云何→「어떠한가」,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음역계통).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5

AG:da26/0106c17.1 · 교차 검사

答曰:「無恚心也。」

답하여 말하였다: 「성내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 앞 질문(0106c17.1)의 답. 팔리 Abyāpajjacitto, bho gotama에 해당(항목 순서와 짝짓기는 0106c17.1 서술과 같다).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也→평서 어미 흡수(존댓말 -습니다).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6

AG:da26/0106c18.1 · 교차 검사

又問:「行慈比丘有恚心、無恚心耶?」

또 물으셨다: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성내는 마음이 있는가, 성내는 마음이 없는가?」

주 팔리 557.5(Sabyāpajjacitto vā abyāpajjacitto vā)와 짝. 팔리 557.1의 대상은 「이처럼 머무는 비구」(evaṃvihārī bhikkhu)이고 한역은 行慈比丘다. 行慈→「자애를 행하는」, 比丘→구속 「비구」. 又問의 주어는 한문에 없다 — 앞뒤로 붓다가 묻는 자리라 「물으셨다」로 옮겼다(주어는 문맥 판단).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5

AG:da26/0106c18.2 · 교차 검사

答曰:「無恚心。」

답하여 말하였다: 「성내는 마음이 없습니다.」

주 팔리 Abyāpajjacitto, bho gotama(557.6)에 해당.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짝짓기는 0106c17.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6

AG:da26/0106c19.1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恚心,行慈比丘無恚心,無恚心、無恚心同趣,同解脫,是故梵天、比丘俱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성내는 마음이 없고,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성내는 마음이 없으니, 성내는 마음 없음과 성내는 마음 없음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같이 해탈하므로 범천과 비구는 모두 함께 같다.

주 팔리 558.1은 「비구도 범천도 …」로 짝을 지은 뒤 「합치하고 어울리는가(saṃsandati sametī)」라고 묻는 질문이고, 이어 응답(558.2)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범천과 함께하게 된다 — 그것은 가능하다」(558.3)로 맺는다. 한역은 질문 없이 「同趣, 同解脫, 俱共同」으로 단언한다 — 문장 유무. 同趣·同解脫이 saṃsandati sametī에 해당하는지는 추정이다. 趣: 사전 趣 ①(장아함 77회·15경). 「같은 곳으로 향하고」로 옮겼으나 동사(향하다)와 명사(가는 곳) 갈래를 한문이 정하지 않는다 — [불확실:다의어_판별]. 同解脫→「같이 해탈하고」. 俱共同→「모두 함께 같다」. 是故→「그러므로」(연결 흡수). 無恚心、無恚心: 「성내는 마음 없음과 성내는 마음 없음」으로 직역. 也→평서 어미. 항목 짝짓기는 0106c17.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8.1

AG:da26/0106c19.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瞋心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화내는 마음이 있는가?

주 瞋을 팔리 saṃkiliṭṭhacitto(550.7)로 짚은 것은 추정이다 — 瞋(분노)과 saṃkiliṭṭha(오염된)는 낱말이 다르고, 恚·瞋이 byāpajja·saṃkiliṭṭha의 어느 쪽인지 못 정했다(0106c17.1 서술 참조). 有瞋心耶와 다음 좌표 無瞋心耶가 한 물음을 둘로 나눈 형태다.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7

AG:da26/0106c21.1 · 교차 검사

無瞋心耶?」

화내는 마음이 없는가?」

주 앞 좌표(0106c21.1)와 한 물음의 뒷부분. 瞋의 짝짓기는 0106c21.1 서술 참조. 耶→의문 어미.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7

AG:da26/0106c22.1 · 교차 검사

答曰:「無也。」

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saṃkiliṭṭhacitto, bho gotama(550.8)에 해당(추정). 팔리는 항목을 되풀이해 답하고 한역은 「無」로 줄인다.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也→평서 어미.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8

AG:da26/0106c22.2 · 교차 검사

又問:「行慈比丘有瞋心、無瞋心耶?」

또 물으셨다: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화내는 마음이 있는가, 화내는 마음이 없는가?」

주 팔리 557.7(Saṃkiliṭṭhacitto vā asaṃkiliṭṭhacitto vā)과 짝(추정; 0106c21.1 서술 참조). 又問의 주어는 0106c18.2와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7

AG:da26/0106c23.1 · 교차 검사

答曰:「無。」

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saṃkiliṭṭhacitto, bho gotama(557.8)에 해당(추정).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8

AG:da26/0106c23.2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瞋心,行慈比丘無瞋心,無瞋心、無瞋心同趣,同解脫,是故梵天、比丘俱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화내는 마음이 없고,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화내는 마음이 없으니, 화내는 마음 없음과 화내는 마음 없음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같이 해탈하므로 범천과 비구는 모두 함께 같다.

주 0106c19.2와 같은 구조·같은 처리(질문 없는 단언, 同趣의 갈래 미정, 짝짓기 추정). 팔리 558.1의 saṃkiliṭṭha 짝(…pe… 뒤)에 놓인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8.1

AG:da26/0106c24.1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恨心、無恨心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원한의 마음이 있는가, 원한의 마음이 없는가?」

주 恨心을 팔리 saveracitto vā averacitto vā(550.3)에 짚었다 — 앞의 無恨(0106c13.1)이 avera와 짝지어지는 같은 한자다(추정). 팔리 차례는 둘째, 한역은 셋째라 자리바뀜. 恚·瞋·恨 구별은 0106c17.1 서술 참조(「원한의 마음」).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3

AG:da26/0106c26.1 · 교차 검사

答曰:「無。」

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veracitto, bho gotama(550.4)에 해당.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4

AG:da26/0106c27.1 · 교차 검사

又問:「行慈比丘有恨心、無恨心耶?」

또 물으셨다: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원한의 마음이 있는가, 원한의 마음이 없는가?」

주 팔리 557.3(Saveracitto vā averacitto vā)과 짝. 이문: 大正본은 「間」, 저본(CBETA)은 「問」(교감주: 問【CB】【麗-CB】【磧乙-CB】【北藏-CB】) — 저본을 따랐다. 又問의 주어는 0106c18.2와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3

AG:da26/0106c27.2 · 교차 검사

答曰:「無。」

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veracitto, bho gotama(557.4)에 해당.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4

AG:da26/0106c28.1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恨心,行慈比丘無恨心,無恨心、無恨心同趣,同解脫,是故比丘、梵天俱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원한의 마음이 없고,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원한의 마음이 없으니, 원한의 마음 없음과 원한의 마음 없음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같이 해탈하므로 비구와 범천은 모두 함께 같다.

주 0106c19.2와 같은 구조·같은 처리. 팔리 558.1의 첫 짝(averacitto bhikkhu, averacitto brahmā)에 놓인다. 맺음에서 한역은 「比丘、梵天」 순서로 서서 앞 좌표들의 「梵天、比丘」와 순서가 다르다(한자 흔들림 아님; 옮긴 순서대로 「비구와 범천」).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8.1

AG:da26/0106c28.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有家屬產業不?」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에게 식구와 재산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0.1(sapariggaho vā brahmā apariggaho vā)과 짝이나 둘이 다르다 — 팔리는 「바라문 어른·스승들에게서 들은 바로는」(kinti te sutaṃ brāhmaṇānaṃ vuddhānaṃ … ācariyapācariyānaṃ bhāsamānānaṃ)을 앞세우고 소유(pariggaha)를 첫 항목으로 두며, 한역은 家屬產業을 넷째로 둔다(자리바뀜). 家屬產業은 확정역이 없어 「식구와 재산」으로 옮겼다 — 家屬=식구, 產業=재산(생업의 뜻도 가능)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有…不: 不는 부정 의문의 종결이라 「있는가, 없는가」로 옮겼다. 梵天: 구속 「범천」.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0.1

AG:da26/0107a01.1 · 교차 검사

答曰:「無也。」

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pariggaho, bho gotama(550.2). 팔리는 긍정형 형용사(소유 없음)로 답하고 한역은 「無」로 답한다 — 같은 뜻.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也→평서 어미.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0.2

AG:da26/0107a02.1 · 교차 검사

又問:「行慈比丘有家屬產業不耶?」

또 물으셨다: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식구와 재산이 있는가, 없는가?」

주 팔리 557.1(evaṃvihārī bhikkhu sapariggaho vā apariggaho vā)과 짝. 不耶: 不와 耶가 겹쳐 선 의문 종결이라 한 번만 옮겼다(이문: 耶는 宋·元·明에 없음; 저본 大正본을 따랐다). 又問의 주어는 0106c18.2와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1

AG:da26/0107a02.2 · 교차 검사

答曰:「無也。」

답하여 말하였다: 「없습니다.」

주 팔리 Apariggaho, bho gotama(557.2)에 해당.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DN 13:557.2

AG:da26/0107a03.1 · 교차 검사

佛言:「梵天無家屬產業,行慈比丘亦無家屬產業,無家屬產業、無家屬產業同趣,同解脫,是故梵天、比丘俱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식구와 재산이 없고, 자애를 행하는 비구도 식구와 재산이 없으니, 식구와 재산 없음과 식구와 재산 없음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같이 해탈하므로 범천과 비구는 모두 함께 같다.

주 팔리 557.11은 「소유 없는 비구, 소유 없는 범천」이라 짝짓고 557.12는 「합치하고 어울리는가」라고 묻는다. 한역은 질문 없이 「同趣, 同解脫, 俱共同」으로 단언한다(0106c19.2와 같은 처리). 亦無家屬產業의 亦→「도」로 흡수(이 자리에만 亦가 선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7.11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7.12

AG:da26/0107a03.2 · 교차 검사

云何,婆悉咤!梵天得自在不耶?」

어떠한가, 바실타여! 범천은 자재를 얻었는가, 얻지 못했는가?」

주 팔리 550.9(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와 항목 위치(다섯째)가 같다. 팔리는 형용사(자재한 이)이고 한역은 「得自在」(자재를 얻음)다. 自在: 확정역이 없어 정착어 「자재」를 썼다 —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사전 自在 ① 장아함 58회·15경. 自在는 복합어이므로 自를 재귀로 읽지 않았다(앵커의 自[재귀]와 달리 읽은 자리). 得은 획득(얻다). 不耶는 0107a02.2와 같은 처리.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0.9

AG:da26/0107a06.1 · 교차 검사

答曰:「得自在。」

답하여 말하였다: 「자재를 얻었습니다.」

주 팔리 Vasavattī, bho gotama(550.10).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得自在의 처리는 0107a06.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0.10

AG:da26/0107a06.2 · 교차 검사

又問:「行慈比丘得自在耶?」

또 물으셨다: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자재를 얻었는가?」

주 팔리 557.9(vasavattī vā avasavattī vā). 한역은 앞(0107a06.1)과 달리 「不」 없이 묻는다. 又問의 주어는 0106c18.2와 같은 처리.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7.9

AG:da26/0107a07.1 · 교차 검사

答曰:「得自在。」

답하여 말하였다: 「자재를 얻었습니다.」

주 팔리 Vasavattī, bho gotama(557.10). 호격 탈락은 번역기법.

니까야 대응 같음 DN 13:557.10

AG:da26/0107a07.2 · 교차 검사

佛言:「梵天得自在,行慈比丘得自在,得自在、得自在同趣,同解脫,是故梵天、比丘俱共同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범천은 자재를 얻었고,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자재를 얻었으니, 자재를 얻음과 자재를 얻음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같이 해탈하므로 범천과 비구는 모두 함께 같다.」

주 0106c19.2와 같은 구조·같은 처리. 팔리 558.1의 끝 짝(vasavattī bhikkhu, vasavattī brahmā)에 놓인다. 得×4·自×4는 모두 「자재를 얻다」의 복합이므로 自를 재귀로 읽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8.1

AG:da26/0107a08.1 · 교차 검사

佛告婆悉咤:「當知行慈比丘身壞命終,如發箭之頃,生梵天上。」

부처님께서 바실타에게 이르셨다: 「알라, 자애를 행하는 비구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화살을 쏘는 사이와 같이 범천 위에 태어난다.」

주 팔리 557.14·558.3은 「그 비구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소유 없는/자재한) 범천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sahabyūpago bhavissati, ṭhānametaṃ vijjati)다. 한역은 같은 사안을 「범천 위에 태어난다」로 말하고, 「가능한 일이다」에 해당하는 말이 없으며, 「화살을 쏘는 사이」(속도)는 한역에만 있다. 生梵天上은 「범천 위에 태어난다」로 직역했고 「범천의 위」인지 「범천의 하늘」인지 한문이 정하지 않아 풀지 않았다. 當知: 當→명령 어미(-라), 知→「알라」. 如發箭之頃: 如→「같이」, 頃→「사이」. 身壞命終→「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하여」. 告婆悉咤: 「바실타에게 이르셨다」. 婆悉咤는 0106b29.1 서술 참조. 붓다 발화라 평서.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7.14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8.3

AG:da26/0107a10.1 · 교차 검사

佛說是法時,婆悉咤、頗羅墮即於座上遠塵離垢,諸法法眼生。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셨을 때, 바실타와 파라타가 곧 자리 위에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에 법의 눈이 생겼다.

주 팔리 559.1(Evaṃ vutte, vāseṭṭhabhāradvājā māṇavā bhagavantaṃ etadavocuṃ)은 때(이렇게 말씀하시자)와 인물이 맞는다. 한역은 이어서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생겼다」는 정형을 두는데, 팔리 559.1–.6에는 이 문구가 없음을 읽어 확인했다(559.2 이하는 찬탄과 귀의) — 문장 유무. 諸法法眼生: 諸法과 法眼의 관계가 한문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모든 법에」는 처소 읽기이며, 明본 이문 「於諸法中得…淨」이 이 읽기를 받쳐 주나 저본은 大正본이다 — [불확실:격·태·구문]. 이문: 宋 「離塵」(遠離塵垢로 읽음), 明 「於諸法中得」·「淨」 — 저본을 따랐다. 即→「곧」(사전 即 ① 이 경 0107a11.1). 於座上: 처소 조사(-에서)로 흡수. 佛說是法時: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셨을 때」. 婆悉咤·頗羅墮 표기는 0106b29.1·0106c05.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일부 DN 13:559.1

AG:da26/0107a11.1 · 교차 검사

爾時,婆悉咤、頗羅墮聞佛所說,歡喜奉行。

그때 바실타와 파라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같은 자리에서 내용이 갈린다 — 팔리 559.2–.6은 찬탄(「훌륭하십니다, 고따마여」), 비유(엎어진 것을 일으키듯 …), 귀의와 재가신자 선언(upāsake no bhavaṃ gotamo dhāretu …)이고, 한역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歡喜奉行)의 정형 종결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판정하지 않는다. 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관형절로 풂, 「~하는 바」 회피). 爾時→「그때」. 奉行→「받들어 행하였다」. 婆悉咤·頗羅墮 표기는 0106b29.1·0106c05.1 서술 참조.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9.2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9.3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9.4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9.5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DN 13:559.6

AG:da26/0107a13.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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