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81

SĀ 81

교차 검사교차 검사 36현대역 준비 중

(八一)

(81)

주 한문 제목은 경 번호뿐이다. 팔리는 경 이름(Mahālisuttaṃ)을 단다 — 한쪽이 덜 말함(일부). 大正 교감주가 「S. 22. 60. Mahāli.」를 대응으로 단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0.3

AG:sa81/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같음.

니까야 대응 같음 SN 22.60:60.1

AG:sa81/0.2 · 교차 검사

一時,佛住毘耶離獼猴池側重閣講堂。

한때 부처님께서 비야리의 원숭이 연못 곁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주 佛=부처님[구속]. 毘耶離는 음역 — 한자 독음 「비야리」. 팔리형 Vesālī(大正 대역주 cb:tt·교감주) ↔ 근대 범어 비정 Vaiśāri(전거 표) — 음역계통이 갈린다(판정하지 않음). 음의 慧琳 0496b12〔維摩詰所說經〕: 「或作毘舍離或言維耶離亦云鞞奢隷夜…正言吠舍釐」. 獼猴池·重閣講堂은 3분할 표에 없다 — 獼猴池는 뜻 글자(獼猴=원숭이, 池=못)로 보아 「원숭이 연못」으로 옮겼다(음의 慧琳 0756b04는 獼猴를 「西國地名」이라고도 적는다). 重閣講堂은 정착어 「중각강당」으로 두었다 — 뜻은 「여러 층으로 지은 누각의 강당」(음의 慧琳 0558c07: 「閣樓也…重屋也」). 팔리는 mahāvane(큰 숲에) kūṭāgārasālāyaṃ — 강당은 같으나 그 자리를 한역은 「원숭이 연못 곁」, 팔리는 「큰 숲」으로 적는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것을 말함(엇갈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60:60.2

AG:sa81/0.3 · 교차 검사

爾時,有離車名摩訶男,日日遊行,往詣佛所。

그때 이름이 마하남인 이차가 날마다 돌아다니며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곤 하였다.

주 離車는 음역 「이차」(大正 대역주 Licchavi). 전거 표의 근대 비정 Mleccha는 ⚠다른 부(DA) 대역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摩訶男은 음역 「마하남」. 大正 대역주는 「Mahānāma?」에 물음표를 달고 팔리 Mahāli를 함께 적으며, 팔리 증언도 mahāli licchavi다 — 摩訶男의 음은 Mahānāma 쪽이고 팔리는 Mahāli라 이름 자체가 갈린다(개별 어휘, 판정하지 않음). 「日日遊行」(날마다 돌아다님)은 팔리에 없다(문장 유무). 日日을 근거로 습관(「찾아가곤 하였다」)으로 읽었으나, 이번 한 번 길을 나선 것으로도 읽힌다(다음 좌표에서 생각을 바꾼다). 有는 주어 「이차가」로 흡수했다. 팔리는 곧장 세존께 다가가 앉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3

AG:sa81/0020b29.1 · 교차 검사

時,彼離車作是念:「若我早詣世尊所者,世尊及我知識比丘皆悉禪思,我今當詣七菴羅樹阿耆毘外道所。」

그때 그 이차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일찍 세존 계신 곳에 가면, 세존과 내가 아는 비구들은 모두 선정에 들어 사유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일곱 암라나무의 아기비 외도 처소로 가겠다.」

주 팔리 60.3의 …pe…는 「다가가 … 한쪽에 앉아」 사이의 인사 정형을 접은 자리라, 세존께 가기 전의 이 생각이 놓일 자리가 아니다 — 팔리는 마하리가 곧장 세존께 다가가므로 없음 확인. 世尊=세존[구속], 比丘=비구[구속]. 若…者=「-면」, 當=「-겠다」로 흡수. 知識: 아는 이(벗). 禪思: 선정에 들어 사유함(사전 禪思 ⑥丁福保 「思惟寂靜…即禪定也」 — 후대 풀이라 참고만). 菴羅는 3분할 표 「갈림(의역/혼합)」 — 菴羅는 소리(음의 慧琳 0496b14: 「或言菴婆羅果名也…正言菴沒羅」), 樹는 뜻이라 혼합으로 보고 「암라나무」로 적었다(전거 팔리 후보 Amba). 七菴羅樹가 지명인지 나무 일곱 그루를 말하는지, 阿耆毘外道所와 어떻게 이어지는지(「~의」로 이음)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阿耆毘는 음역 「아기비」(전거 팔리 후보 Acela) — 사람 이름인지 외도 부류의 이름인지 서지 않는다. 다음 좌표에서 실제로는 富蘭那迦葉의 처소로 간다 — 한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3

AG:sa81/0020c01.1 · 교차 검사

即往詣彼富蘭那迦葉住處。

곧 저 부란나가섭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주 富蘭那迦葉은 3분할 표 「보류(5자 이상)」 — 판별: 富蘭那(음역, 전거 팔리 Purāṇa)+迦葉(성씨 음역, 음의 慧琳 0370b20 「正梵音云迦攝波即天竺國之大姓也」)로 된 사람 이름이다(大正 대역주 Pūraṇa Kassapa). 정형구 조각이 아니다. 한자 독음 「부란나가섭」. 팔리형 Pūraṇa Kassapa ↔ 근대 범어 비정 Pūraṇakāśyapa(전거 표) — 음역계통이 갈린다(판정 안 함). 음의 希麟 0952a19: 「富蘭那此云滿也迦葉姓也此云龜氏此外道計無因也」 — 이름의 뜻 「滿」은 비고에만 둔다(한역자는 소리로 옮겼다). 팔리에는 이 방문 장면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3

AG:sa81/0020c04.1 · 교차 검사

時,富蘭那迦葉——外道眾主,與五百外道前後圍遶,高聲嬉戲,論說俗事。

그때 외도 무리의 우두머리인 부란나가섭은 오백 외도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큰 소리로 떠들며 놀고 세속의 일을 논하여 말하고 있었다.

주 팔리에 없다. 外道=정착어 「외도」. 嬉戲: 웃고 놂(음의 慧琳 0393c13 「蒼頡篇戲笑也…毛詩傳曰戲逸豫也」). 圍遶: 둘러쌈 — 피동 「둘러싸여」로 옮겼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3

AG:sa81/0020c04.2 · 교차 검사

時,富蘭那迦葉遙見離車摩訶男來,告其眷屬,令寂靜住:「汝等默然!是離車摩訶男是沙門瞿曇弟子,此是沙門瞿曇白衣弟子,毘耶離中最為上首,常樂寂靜,讚歎寂靜,彼所之詣寂靜之眾,是故汝等應當寂靜。」

그때 부란나가섭은 이차 마하남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자기 무리에게 일러 고요히 머물게 하였다. 「그대들은 잠잠하라! 이 이차 마하남은 사문 고따마의 제자다. 이 사람은 사문 고따마의 흰옷 입은 제자로서 비야리에서 가장 으뜸이고, 늘 고요함을 즐기고 고요함을 찬탄하며, 그가 찾아가는 곳은 고요한 무리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고요해야 한다.」

주 瞿曇=고따마[구속](3분할 표는 음역이나 확정역이 이긴다). 沙門=정착어 「사문」 — 전거는 팔리 Samaṇa / 근대 Śramaṇa(⚠다른 부 MA 대역)로 음역계통이 갈린다(판정 안 함). 白衣: 재가자를 이르는 말(사전 白衣 ⑥丁福保 「俗人之別稱」) — 한문 글자대로 「흰옷 입은」. 眷屬: 딸린 무리. 令=「-게 하다」. 彼所之詣寂靜之眾: 「그가 찾아가는 곳은 고요한 무리다」로 읽었다 — 「그는 고요한 무리를 찾아간다」로도 읽혀 구문이 하나로 서지 않는다. 應當=「-해야 한다」 한 어미로 흡수. 이문: 寂靜【宋】【元】【明】(CBETA 채택) / 靜寂【大】 — 뜻은 같다. 부란나가 제 무리에게 하는 말이라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3

AG:sa81/0020c06.1 · 교차 검사

時,摩訶男詣彼眾富蘭那所,與富蘭那共相問訊,相慰勞已,却坐一面。

그때 마하남은 그 무리의 부란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부란나와 함께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위로하기를 마친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주 한역이 같은 개념(같은 인물)에 다른 한자를 쓴다 — 富蘭那迦葉과 富蘭那를 번갈아 적는다. 통일하지 않고 「부란나가섭」/「부란나」로 둔다. 팔리 60.3의 「ekamantaṃ nisinno」(한쪽에 앉아)는 세존 앞의 일이라 이 좌표의 대응이 아니다. 問訊: 안부를 물음(음의 慧琳 0491a09 「玉篇訊問也」). 已=「마친 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3

AG:sa81/0020c11.1 · 교차 검사

時,摩訶男語富蘭那言:「我聞富蘭那為諸弟子說法:『無因、無緣,眾生有垢;無因、無緣,眾生清淨。』

그때 마하남이 부란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부란나께서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법을 설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에게 때가 있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은 청정하다.』

주 팔리 60.4는 마하리가 세존께 「뿌라나 깟사빠가 이렇게 말합니다」라고 전하는 자리이고, 한역은 마하남이 부란나 본인에게 「들었다」며 확인하는 자리다 — 화자·청자가 다르다(엇갈림). 주장 내용은 팔리 60.5~60.8이 쌍마다 두 문장(「오염에는 원인·조건이 없다」 +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중생은 오염된다」)으로 적는 것을 한역은 한 문장씩으로 적는다(일부). 有垢↔saṃkilissanti, 清淨↔visujjhanti. 因·緣은 확정역 행이 없다 — 「원인」·「조건」으로 두었다. 清淨: 3분할 표가 의역 Sobhavatī(⚠다른 부 DA, 도시 이름)를 걸었으나 이 자리는 도시가 아니라 「깨끗함」이다 — 기계 오적중으로 보고 「청정하다」. 諸=「-들」로 흡수. 존칭: 마하남은 다음 좌표에서 부란나를 汝로 부르나, 무리를 거느린 스승을 찾아온 손님의 말이라 하십시오체로 통일하고 1인칭은 「나」로 두었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60:60.4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5~60.8

AG:sa81/0020c13.1 · 교차 검사

世有此論,汝為審有此,為是外人相毀之言?

세상에 이런 주장이 있는데, 당신에게 참으로 이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바깥 사람들이 헐뜯는 말입니까?

주 為…為…는 선택 의문(「~입니까, 아니면 ~입니까」). 相毀의 相은 「서로」가 아니라 동작이 상대(부란나)에게 미침을 보이는 쓰임으로 읽어 흡수했다. 팔리 60.9는 마하리가 세존께 「여기에 대해 세존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묻는 자리 — 한역은 같은 이음매에서 부란나에게 진위를 묻는다(엇갈림).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60:60.9

AG:sa81/0020c15.1 · 교차 검사

世人所撰,為是法、為非法,頗有世人共論、難問、嫌責以不?」

세상 사람들이 지어낸 것입니까? 이것은 법입니까, 법이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함께 논하고 따져 묻고 싫어하여 꾸짖는 일이 혹시 있습니까, 없습니까?」

주 世人所撰을 앞 좌표 「바깥 사람들이 헐뜯는 말」에 이어지는 둘째 갈래(세상이 지어낸 것인가)로 읽었다 — 부란나의 대답 「非世妄傳」(0020c17.1)이 이 읽기를 받친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 법인가 법 아닌가」로 이어 읽을 수도 있다. 頗…以不: 「혹시 ~있습니까, 없습니까」(음의 慧琳 0420a15 「字書云頗猶可也」 참고). 팔리에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9

AG:sa81/0020c16.1 · 교차 검사

富蘭那迦葉言:「實有此論,非世妄傳。

부란나가섭이 말하였다. 「참으로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세상이 거짓으로 전한 것이 아닙니다.

주 팔리에는 뿌라나가 대답하는 장면이 없다. 존칭: 부란나도 이름난 재가 제자(0020c06.1 「비야리에서 가장 으뜸」)에게 하는 말이라 하십시오체로 통일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9

AG:sa81/0020c17.1 · 교차 검사

我立此論,是如法論,我說此法,皆是順法,無有世人來共難問而呵責者。

나는 이 주장을 세웠는데, 이것은 법다운 주장입니다. 나는 이 법을 설하는데, 모두 법에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 와서 함께 따져 묻고 꾸짖는 이는 없습니다.

주 팔리에 없다. 如法=「법다운」, 順法=「법에 따르는」. 無有…者: 「~하는 이는 없다」 — 有는 無有로 묶여 부정 존재를 진다. 而=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9

AG:sa81/0020c18.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그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주 所以者何 — 까닭을 묻는 이음 정형. 팔리에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9

AG:sa81/0020c20.1 · 교차 검사

摩訶男!我如是見、如是說:『無因、無緣,眾生有垢;無因、無緣,眾生清淨。』」

마하남이여! 나는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합니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에게 때가 있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은 청정하다.』」

주 주장 문구는 0020c13.1과 같은 한문이고 그 내용은 팔리 60.5~60.8에 대응하나, 팔리는 이 주장을 마하리의 전언으로 한 번만 적는다 — 뿌라나 본인이 다시 천명하는 자리는 팔리에 없다. 如是=「이와 같이」.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9

AG:sa81/0020c20.2 · 교차 검사

時,摩訶男聞富蘭那所說,心不喜樂,呵罵已,從坐起去,向世尊所,頭面禮足,却坐一面,以向與富蘭那所論事,向佛廣說。

그때 마하남은 부란나가 말한 것을 듣고 마음이 기쁘지 않아 꾸짖어 욕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 세존 계신 곳으로 가서, 머리를 발에 대어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앞서 부란나와 논한 일을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주 부란나에게 기뻐하지 않고 꾸짖고 떠나는 대목은 팔리에 없다. 세존께 가서 한쪽에 앉는 것은 팔리 60.3에 대응하나, 팔리는 절하는 대목을 …pe…로 접었다 — 접힌 안쪽은 읽지 않았으므로 頭面禮足의 대응은 서지 않는다. 廣說은 생략 표지 목록에 오른 말이다 — 여기서는 「자세히 말하였다」는 서술이면서 앞서 오간 대화를 다시 적지 않고 접는다. 접힌 대로 두었다. 팔리는 그 전언을 60.4~60.9에 펴서 적는다(한역이 덜 말함).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 한 문장 안에 世尊(세존[구속])과 佛(부처님[구속]). 以…=「~을」(대상), 向=「앞서」. 이문: 坐【大】/座【宋】【元】【明】 — 뜻은 같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3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4~60.9

AG:sa81/0020c22.1 · 교차 검사

佛告離車摩訶男:「彼富蘭那為出意語,不足記也。

부처님께서 이차 마하남에게 말씀하셨다. 「저 부란나는 제 생각을 내어 말한 것이니, 기억해 둘 것이 못 된다.

주 팔리의 세존은 뿌라나의 말을 평하지 않고 곧장 60.10에서 「원인이 있다」고 답한다 — 이 평가 문장은 팔리에 없다. 出意語: 「제 뜻(생각)에서 낸 말」로 읽었다. 記: 기억함·기록함·답할 거리 가운데 어느 것인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사전 記 ⑥丁福保는 「見記別條」로 후대 풀이) — 「기억해 둘 것」으로 두었다. 為=계사, 也=평서 어미에 흡수. 붓다 발화는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10

AG:sa81/0020c24.1 · 교차 검사

如是富蘭那愚癡,不辨、不善、非因而作是說:『無因、無緣,眾生有垢;無因、無緣,眾生清淨。』

이처럼 부란나는 어리석어, 분별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며, 원인이 아닌 것으로 이렇게 말한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에게 때가 있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은 청정하다.』

주 팔리의 세존은 뿌라나의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如是=「이처럼」(앞 내용을 받음). 不善: 「선하지 못함」과 「능숙하지 못함(不善巧)」 두 갈래 — 不辨과 나란하여 뒤의 뜻일 수 있으나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이문: 辨【大】(분별함) / 辯【宋】【元】【明】(말 잘함) — 판본에 따라 「분별하지 못하고」/「말재주가 없고」로 뜻이 갈린다. 저본(辨)을 따랐다. 非因而作是說: 「원인 아닌 것을 근거로 이렇게 말한다」로 읽었다. 而=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10

AG:sa81/0020c26.1 · 교차 검사

所以者何?

왜 그런가?

주 所以者何 이음 정형. 팔리에 없다. 붓다 발화 평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10

AG:sa81/0020c28.1 · 교차 검사

有因、有緣,眾生有垢;有因、有緣,眾生清淨。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기에 중생에게 때가 있고,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기에 중생은 청정하다.

주 팔리는 오염 쪽(60.10~60.11)과 청정 쪽(60.12~60.13)을 각각 두 문장(「원인·조건이 있다」 + 「원인·조건과 함께 오염/청정해진다」)으로 적고 호격 mahāli를 단다; 한역은 각 한 문장이고 호격이 없다. 有因·有緣의 有는 無因·無緣과 맞서는 존재 서술이라 「있다」로 세웠다; 훈독투 「~이 있어」를 피해 「있기에」로 이었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10~60.13

AG:sa81/0020c28.2 · 교차 검사

「摩訶男!何因、何緣眾生有垢,何因、何緣眾生清淨?

「마하남이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으로 중생에게 때가 있으며, 어떤 원인, 어떤 조건으로 중생은 청정한가?

주 팔리는 이 물음을 마하리가 세존께 묻는다(60.14~60.15, bhante) — 한역은 붓다가 스스로 묻는다(화자가 다름, 엇갈림). 또 팔리는 청정 쪽 물음을 오염 설명이 끝난 뒤(60.40~60.41)에 따로 두는데, 한역은 여기서 두 물음을 함께 던진다(자리바뀜). 청정 쪽 물음은 한역 0021a11.1에서 다시 나온다.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60:60.14~60.15

니까야 대응 순서 다름 SN 22.60:60.40~60.41

AG:sa81/0020c29.1 · 교차 검사

摩訶男!若色一向是苦,非樂、非隨樂、非樂長養、離樂者,眾生不應因此而生樂著。

마하남이여! 만일 색이 한결같이 괴로움이고, 즐거움이 아니고, 즐거움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이 길러 주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은 이로 인해 즐겨 집착함을 내지 않을 것이다.

주 팔리는 ekantadukkhaṃ(한결같이 괴로움) · dukkhānupatitaṃ(괴로움에 떨어진) · dukkhāvakkantaṃ(괴로움이 스며든) · anavakkantaṃ sukhena(즐거움이 스며들지 않은)를 모두 「괴로움」 쪽으로 적는다; 한역은 「한결같이 괴로움」 하나 뒤에 「즐거움」 쪽 부정 넷(非樂·非隨樂·非樂長養·離樂)을 놓는다 — 항목 수와 방향이 다르다. 樂著↔sārajjeyyuṃ(물들어 탐착함). 色=정착어 「색」(물질). 若…者=「-라면」, 不應=「-지 않을 것이다」로 흡수, 而=흡수. 이문: 大正에는 「非」 한 자가 더 있으나 CBETA가 덜어냈다 — 교감주가 위치를 밝히지 않아 大正대로의 뜻은 서지 않는다. 저본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16

AG:sa81/0021a01.1 · 교차 검사

摩訶男!以色非一向是苦,是樂、隨樂、樂所長養、不離樂,是故眾生於色染著;染著故繫,繫故有惱。

마하남이여! 색은 한결같이 괴로움인 것이 아니고, 즐거움이고, 즐거움을 따르고, 즐거움이 길러 주는 것이고, 즐거움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중생은 색에 물들어 집착한다. 물들어 집착하기 때문에 묶이고, 묶이기 때문에 시달림이 있다.

주 팔리 60.17은 rūpaṃ sukhaṃ sukhānupatitaṃ sukhāvakkantaṃ anavakkantaṃ dukkhena — 한역은 앞머리에 「한결같이 괴로움인 것은 아니다」를 더 둔다. 사슬: 染著(sārajjanti) → 繫(saṃyujjanti, 묶임) → 惱(saṃkilissanti, 오염됨) — 한역 惱는 「시달림」 쪽 글자라 팔리 「오염됨」과 개별 어휘가 갈린다(판정 안 함). 以는 「~때문에」, 是故는 「그러므로」로 각각 세웠다. 樂所長養: 所는 관형절 「즐거움이 길러 주는」으로 풀었다. 이문: 是【CB】/非【大】(CBETA가 溫宗堃·蘇錦坤 斠勘에 따라 是로 고침) — 大正대로면 「즐거움이 아니고」가 되어 뜻이 뒤집힌다. 저본(是)을 따랐다. 팔리 60.20~60.21의 매듭(「이것이 오염의 원인·조건이다」)은 한역이 다섯 무더기 끝(0021a10.1)에 한 번만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17~60.19

AG:sa81/0021a03.1 · 교차 검사

摩訶男!若受、想、行、識一向是苦,非樂、非隨樂、非樂長養、離樂者,眾生不應因此而生樂著。

마하남이여! 만일 수·상·행·식이 한결같이 괴로움이고, 즐거움이 아니고, 즐거움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이 길러 주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은 이로 인해 즐겨 집착함을 내지 않을 것이다.

주 팔리는 vedanā(60.22) · saññā/saṅkhārā(60.28, saññā 대목은 …pe…로 접힘) · viññāṇa(60.34)를 무더기마다 따로 편다; 한역은 受·想·行·識을 한 문장에 묶는다. 60.28의 saññā 대목은 접힌 안쪽이라 그 부분의 대응은 서지 않는다. 受: 확정술어 [정형구 행](vedanā)일 뿐 낱말 확정역이 아니므로 다섯 무더기 정착어 「수·상·행·식」으로 두었다(뜻: 느낌·인식·지음·앎). 이문: 大正에는 「非」 한 자가 더 있다(CBETA 삭제, 0021a01.1과 같은 꼴의 교감).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22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28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34

AG:sa81/0021a05.1 · 교차 검사

摩訶男!以識非一向是苦,是樂,隨樂、樂所長養、不離樂,是故眾生於識染著;染著故繫,繫故生惱。

마하남이여! 식은 한결같이 괴로움인 것이 아니고, 즐거움이고, 즐거움을 따르고, 즐거움이 길러 주는 것이고, 즐거움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중생은 식에 물들어 집착한다. 물들어 집착하기 때문에 묶이고, 묶이기 때문에 시달림이 생긴다.

주 앞 좌표의 受·想·行·識을 한문이 여기서 識 하나로 받는다 — 펴지 않고 한문대로 「식」. 팔리는 무더기마다 편다. 惱 앞의 동사가 0021a03.1은 有惱, 여기는 生惱 — 한역이 같은 자리에 다른 한자를 쓴다(각각 「있다」/「생긴다」로 옮김). 이문: 是【CB】/非【大】(溫宗堃·蘇錦坤 斠勘) — 저본(是)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23~60.25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29~60.31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35~60.37

AG:sa81/0021a08.1 · 교차 검사

摩訶男!是名有因、有緣眾生有垢。

마하남이여! 이것을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기에 중생에게 때가 있다고 한다.

주 팔리는 이 매듭(「이것이 원인, 이것이 조건이다; 이렇게 원인·조건과 함께 중생은 오염된다」)을 무더기마다(60.20~60.21, 60.26~60.27, 60.32~60.33, 60.38~60.39) 되풀이한다; 한역은 다섯 무더기를 마친 뒤 한 번만 둔다. 是名=「이것을 ~라 한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38~60.39

AG:sa81/0021a10.1 · 교차 검사

「摩訶男!何因、何緣眾生清淨?

「마하남이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으로 중생은 청정한가?

주 팔리는 마하리가 세존께 묻는다(bhante); 한역은 붓다가 스스로 묻는다(0020c29.1에서 함께 던진 물음의 되풀이).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22.60:60.40~60.41

AG:sa81/0021a11.1 · 교차 검사

摩訶男!若色一向是樂,非苦、非隨苦、非憂苦長養、離苦者,眾生不應因色而生厭離。

마하남이여! 만일 색이 한결같이 즐거움이고, 괴로움이 아니고, 괴로움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근심과 괴로움이 길러 주는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은 색으로 인해 싫어하여 떠남을 내지 않을 것이다.

주 팔리 60.42는 「즐거움」 쪽 넷(ekantasukhaṃ · sukhānupatitaṃ · sukhāvakkantaṃ · anavakkantaṃ dukkhena); 한역은 「한결같이 즐거움」 뒤에 「괴로움」 쪽 부정 넷 — 0021a01.1과 같은 짜임. 오염 쪽의 「樂長養」 자리에 한역은 「憂苦」(근심과 괴로움) 두 자를 쓴다. 厭離↔nibbindeyyuṃ(염오함) — 한역은 「싫어하여 떠남」. 오염 쪽 「因此」 자리에 여기는 「因色」.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42

AG:sa81/0021a11.2 · 교차 검사

摩訶男!以色非一向樂,是苦、隨苦、憂苦長養、不離苦,是故眾生厭離於色;厭故不樂,不樂故解脫。

마하남이여! 색은 한결같이 즐거움인 것이 아니고, 괴로움이고, 괴로움을 따르고, 근심과 괴로움이 길러 주는 것이고, 괴로움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중생은 색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기 때문에 즐기지 않고, 즐기지 않기 때문에 해탈한다.

주 사슬이 갈린다: 팔리 nibbindanti(염오함) → virajjanti(사라짐) → visujjhanti(청정해짐); 한역 厭(싫어함) → 不樂(즐기지 않음) → 解脫(해탈). 不樂은 virāga 자리, 解脫은 visujjhanti 자리에 선다 — 판정하지 않는다. 오염 쪽 「樂所長養」과 달리 여기는 「憂苦長養」(所 없음)이나 같은 짜임으로 옮겼다. 解脫=정착어 「해탈」. 於=조사 「-을」로 흡수. 팔리 60.46~60.47 매듭은 한역이 0021a21.1에 한 번만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43~60.45

AG:sa81/0021a13.1 · 교차 검사

摩訶男!若受、想、行、識一向是樂,非苦、非隨苦、非憂苦長養、離苦者,眾生不應因識而生厭離。

마하남이여! 만일 수·상·행·식이 한결같이 즐거움이고, 괴로움이 아니고, 괴로움을 따르는 것이 아니고, 근심과 괴로움이 길러 주는 것이 아니고, 괴로움을 떠난 것이라면, 중생은 식으로 인해 싫어하여 떠남을 내지 않을 것이다.

주 팔리 60.48은 vedanā·saññā·saṅkhārā를 …pe…로 접고 viññāṇa만 편다 — 이 좌표의 受·想·行 대목이 접힌 안쪽에 걸리므로 미대응으로 둔다(펴진 viññāṇa 대목은 이 좌표와 같은 짜임). 주어는 受·想·行·識인데 끝은 「因識」 — 한문대로 「식으로 인해」.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22.60:60.48

AG:sa81/0021a16.1 · 교차 검사

摩訶男!以受、想、行、識非一向樂,是苦、隨苦、憂苦長養、不離苦,是故眾生厭離於識;厭故不樂,不樂故解脫。

마하남이여! 수·상·행·식은 한결같이 즐거움인 것이 아니고, 괴로움이고, 괴로움을 따르고, 근심과 괴로움이 길러 주는 것이고, 괴로움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중생은 식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기 때문에 즐기지 않고, 즐기지 않기 때문에 해탈한다.

주 팔리 60.49~60.51은 viññāṇa만 편다(受·想·行 대목은 60.48의 …pe… 안). 한역은 受·想·行·識을 주어로 세우고 대상은 「識」 하나로 받는다(厭離於識). 오염 쪽 0021a08.1은 주어도 識 하나였다 — 한문대로 둔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49~60.51

AG:sa81/0021a18.1 · 교차 검사

摩訶男!是名——有因、有緣,眾生清淨。」

마하남이여! 이것을 원인이 있고 조건이 있기에 중생이 청정하다고 한다.」

주 팔리는 이 매듭을 무더기마다 둔다(60.46~60.47, 60.48의 …pe… 안, 60.52~60.53); 한역은 한 번. 저본의 줄표(——)는 구두 표지라 옮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22.60:60.52~60.53

AG:sa81/0021a21.1 · 교차 검사

時,摩訶男聞佛所說,歡喜隨喜,禮佛而退。

그때 마하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며, 부처님께 절하고 물러갔다.

주 팔리는 「Aṭṭhamaṃ(여덟째)」로 끝나며 마하리가 기뻐하고 물러가는 맺음이 없다. 佛=부처님[구속] — 이 경 내레이션은 世尊과 佛을 섞어 쓴다(0020c22.1과 같은 사안). 歡喜隨喜: 기뻐함과 따라 기뻐함. 所說=관형절 「말씀하신 것」. 而=흡수.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22.60:60.54

AG:sa81/0021a21.2 · 교차 검사

知法及重擔往詣、觀、欲貪

법을 앎과 무거운 짐, 찾아감·관찰·욕망과 탐욕

주 섭송(이 무리에 든 경들의 이름을 묶은 노래)이다. 팔리 증언 sn22.60에는 섭송이 없다 — 팔리 품의 섭송은 품 끝에 따로 있고 이 투입물 밖이라 대조하지 않았다. 띄어쓰기가 없어 어디서 끊어 경 이름 하나로 삼는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往詣·觀은 저본의 쉼표를 따랐다). 欲貪: 3분할 표 의역(Chandarāga) — 뜻대로 「욕망과 탐욕」. 重擔: 무거운 짐(음의 慧琳 0313c21 「廣雅擔負也」). 及=「~과」.

AG:sa81/0021a23.1 · 교차 검사

生及與略說法印、富蘭那

태어남과 간략히 설함, 법의 도장·부란나

주 섭송 둘째 줄. 끝의 「富蘭那」가 이 경(부란나의 주장을 다룸)을 가리킨다. 生: 확정술어 [정형구 행](jāti)일 뿐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 경 이름으로서 「태어남」인지 다른 뜻인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 及與=「~과」. 사전의 「說法印」 표제는 기계 끊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며(이 경에만 1회), 저본 구두(略說/法印)를 따라 「간략히 설함」·「법의 도장」(법의 표지)으로 끊었다. 팔리 sn22.60에는 섭송이 없다.

AG:sa81/0021a24.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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