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期佛敎 經典叢書초기불교 경전 총서

SĀ 725

SĀ 725

교차 검사교차 검사 37현대역 준비 중

(七二七)

(727)

주 한역은 경 번호만 싣고 경 이름이 없다. 팔리는 경 이름(Tatiyagilānasutta, 「세 번째 앓음의 경」)과 번호 197을 싣는다. 번호 체계가 서로 다르다(大正 727 / 팔리 197). 산스크리트 쪽에는 이 자리에 해당하는 제목 단락이 없다.

니까야 대응 일부 SN 46.16:197.0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0.3

AG:sa725/0.1 · 교차 검사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팔리 sn46.16은 「Ekaṃ samayaṃ」으로 곧장 시작하고 개경구 「Evaṃ me sutaṃ」이 없다(대응 좌표는 그 자리가 놓일 곳을 짚은 것). 산스크리트 쪽은 이 자리에 걸리는 단락(30.1)이 편자 재구 위주(실판독 24%)라 판정 근거가 없어 미대응으로 둔다. 「如是」의 「如」는 비유·가정이 아니라 지시어 「이와 같이」로 읽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

AG:sa725/0.2 · 교차 검사

一時,佛在力士聚落人間遊行,於拘夷那竭城希連河中間住,於聚落側告尊者阿難:「令四重襞疊敷世尊欝多羅僧,我今背疾,欲小臥息。」

한때 부처님께서 역사들의 마을 사람들 사이를 두루 다니시다가, 구이나갈성 희련하 중간에 머무셨는데, 마을 곁에서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중으로 접어 세존의 울다라승을 펴라. 나는 지금 등의 병으로 조금 누워 쉬고자 한다.”

주 (1) 한역은 구이나갈(拘夷那竭)의 희련하(希連河) 가, 역사(力士)의 마을이다. 팔리는 라자가하(Rājagaha)의 벨루바나(Veḷuvana) 깔란다까니와빠(Kalandakanivāpa)로 장소가 다르다(197.1). 산스크리트 30.4는 실판독 31%로, 「hiraṇyavatīm」 「kuśi…」가 읽히고 말라(malla) 지방 앞뒤는 편자 보충이다. (2) 팔리 197.2는 세존이 앓고 있다고만 말한다. 한역은 「背疾」(등의 병)과 누워 쉬려는 뜻을 세존의 말로 싣고, 아난에게 울다라승을 펴게 하는 지시가 이 좌표에 들어 있다(산스크리트 30.5가 같은 지시를 실판독 80%로 싣는다: 「caturguṇam uttarāsaṅgaṃ … tāvad āyāmayiṣye」). 팔리에는 이 지시가 없다. (3) 음역계통: 拘夷那竭 ← Kusinārā(팔리) / Kuśinagarī(범어, 30.4 판독 「kuśi…」), 希連 ← Hiraṇyavatī(범어, 30.4 「hiraṇyavatīm」; 이 경 팔리 원문에는 이 강이 나오지 않는다), 欝多羅僧 ← Uṭṭharāsaṅga(팔리) / Uttarāsaṅga(범어, 30.5 실판독 「uttarāsaṅgaṃ」). 전거 `_전거_sa725` 欝多羅僧·拘夷那竭 행을 인용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4) 力士: 한역이 뜻으로 옮긴 부족 이름으로 보이며 산스크리트 30.4의 malleṣu(말라)와 겹치는 것으로 짐작된다. 사전 力士 ⑥(丁福保): 「拘尸那城有力士之一族」. 한 경 안의 표기 통일을 위해 「역사들의 마을」로 옮기되 유형 판별은 확정하지 않는다[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希連은 사전 連河 ⑥에 「希連禪河之略」으로 실려 있어 음역으로 보고 한자 독음 「희련하」로 적었다. 拘夷那竭은 음역이므로 독음 「구이나갈」. (5) 欝多羅僧은 음역(독음 「울다라승」). 음의 慧琳 0700b07 〔四分律〕: 「此譯云上著衣」. (6)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서술에서는 「佛」,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에서는 「世尊」으로 쓴다. 확정역(佛=부처님, 世尊=세존)이 서로 달라 각각 따랐다. (7) 阿難은 정착형 「아난」. 뜻은 「경희(慶喜)」(음의 慧琳 0482c03: 「阿難陀此云慶喜」). (8) 令은 아난에게 직접 내리는 지시라 사역 어미를 세우지 않고 명령형으로 옮겼다(앵커 令×1 참조). 一時는 「한때」. 이문: 希=凞【聖】, 襞=辟【宋】은 본문에 영향 없음.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6.16:197.1

니까야 대응 일부 SN 46.16:197.2

AG:sa725/0.3 · 교차 검사

尊者阿難即受教勅,四重襞疊敷欝多羅僧已,白佛言:「世尊!已四重襞疊敷欝多羅僧,唯世尊知時。」

존자 아난은 곧 분부를 받아, 사중으로 접어 울다라승을 펴기를 마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미 사중으로 접어 울다라승을 펴 놓았습니다. 오직 세존께서 때를 아십니다.”

주 팔리 sn46.16에는 옷을 펴는 대목이 없다(마하쭌다가 다가오는 197.3~197.5가 이 자리에 이어진다). 산스크리트 30.6은 대괄호 밖 「prajñapya bhagavantam idam avocat」(펴고서 세존께 이렇게 말하였다)만 실판독이고, 30.7은 「prajñaptas tathāgatasya caturguṇa…」(여래의 사중 옷이 펴졌다)가 읽힌다. 30.7의 「때를 아신다」에 해당하는 말은 대괄호 안이라 근거로 쓰지 않았다.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을 「佛」(白佛言)과 「世尊」(부름)으로 쓴다. 教勅은 사전 教勅 ③ sa853/0218c16.1 「即受教勅」 용례와 같은 꼴이며 「분부」로 옮겼다. 唯는 한정(오직)이 실려 「오직」을 세웠다. 아난=慶喜(음의 慧琳 0482c03). 이문: 襞=辟【宋】, 唯=惟【宋】【元】【明】.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3

AG:sa725/0195c03.1 · 교차 검사

爾時,世尊厚襞僧伽梨枕頭,右脇而臥,足足相累,繫念明相,正念正智,作起覺想,告尊者阿難:「汝說七覺分。」

그때 세존께서는 승가리를 두텁게 접어 머리를 괴고,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발과 발을 서로 포개고, 밝은 모습에 생각을 매고, 바른 생각 바른 앎으로, 깨어 일어날 생각을 지으시고,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곱 깨달음의 갈래를 말하라.”

주 팔리는 앉아 있는 마하쭌다에게 「paṭibhantu taṃ, cunda, bojjhaṅgā」(쭌다여, 깨달음의 갈래들이 그대에게 떠오르기를)라고 한다(197.5~197.6). 한역은 눕는 자세가 먼저 오고 상대가 아난이다. 산스크리트 30.8은 실판독 「dakṣiṇena pārśvena śayyāṃ kalpayati pāde pādam ādhāyālokasaṃjñī」(오른쪽 옆구리로 눕고 발 위에 발을 얹고 밝음의 생각을 지니고)가 한역과 겹치나 「僧伽梨枕頭」는 대괄호 안이다. 30.10은 「[pratibhāntu] ta ānanda bodhyaṅgāni」로 아난에게 같은 말을 한다. 30.9는 편자 재구 위주(실판독 0%)라 미대응. 「僧伽梨」는 음역(독음 「승가리」). 음의 慧琳 0439c09: 「正云僧揭胝此曰和合衣」, 翻譯名義集 1171a08. 「明相」은 한자대역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고 사전 明相 ⑥(丁福保)이 「天空始呈白色之時」로 풀며 같은 구 「繫念明相」가 sa1080/0285a17.1에 있다. 뜻으로 「밝은 모습」. 산스크리트 ālokasaṃjñī(밝음의 생각)와 겹치는 것으로 보이나 증언이다. 「正念正智」는 확정역이 없어 직역 「바른 생각 바른 앎」[불확실:술어·낱말_선택]. 「作起覺想」은 「깨어 일어날 생각을 짓다」로 옮겼다. 「覺」은 느낌이 아니라 깨어남의 뜻으로 읽었다[정형구 행 覺: 다의]. 「七覺分」은 확정역이 없어 「일곱 깨달음의 갈래」. 汝說…는 세존의 말이므로 평서. 이문: 相=想【宋】【元】【明】【聖】, 襞=辟【宋】.

니까야 대응 일부 SN 46.16:197.5

니까야 대응 일부 SN 46.16:197.6

AG:sa725/0195c06.1 · 교차 검사

時,尊者阿難即白佛言:「世尊!所謂念覺分,世尊自覺成等正覺,說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擇法、精進、喜、猗、定、捨覺分,世尊自覺成等正覺,說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

그때 존자 아난이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새김의 깨달음 갈래는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시어,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욕심 없음에 의지하고 사라짐에 의지하며 버림으로 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의 가림, 정진, 기쁨, 편안함, 선정, 버림의 깨달음 갈래도 세존께서 스스로 깨달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시어, 멀리 떠남에 의지하고 욕심 없음에 의지하고 사라짐에 의지하며 버림으로 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팔리는 일곱 요소를 한꺼번에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곧바른 앎·깨달음·열반으로 이끈다)로 말하고(197.7), 실제 나열은 「Satisambojjhaṅgo … pe … upekkhāsambojjhaṅgo」로 가운데를 접었다(197.9). 한역은 요소를 하나씩 쓰고 술어가 「依遠離·依無欲·依滅·向於捨」로 팔리와 다르다. 접힌 안쪽은 읽지 못했으므로 197.9는 미대응으로 둔다(양 끝 요소의 술어도 위와 같이 다르다). 산스크리트 30.11~30.12는 편자 재구 위주(실판독 26%·15%)라 판정 근거가 없다. 번역: 念覺分=새김의 깨달음 갈래, 擇法=법의 가림, 猗=편안함, 定=선정, 捨=버림은 모두 확정역이 없어 낱말대로 옮겼다. 捨는 같은 좌표의 「向於捨」와 같은 낱말로 통일했으나 상위 다의라 판별은 열어 둔다. 「滅」은 「사라짐」으로 옮겼다(정형구 행 확정역 아님). 「自覺」은 사전 自覺 ③ 「自覺涅槃」 등 낱말로 쓰이며 自↔他 대조는 없지만 한 낱말로 「스스로 깨달아」를 세웠다. 等正覺은 확정역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므로 「成等正覺」을 「바르게 깨달으신 분이 되시어」로 고정했다. 한자 흔들림: 「白佛言」과 「世尊」. 이른바(所謂)는 관용으로 두었다. 말하는 이가 아난이므로 존댓말. 「猗」의 음은 음의 慧琳 0777a05를 따랐다. 인용: 사전 猗息 ③ sa109/0035a09.1 「身心猗息」.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6.16:197.7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46.16:197.9

AG:sa725/0195c08.1 · 교차 검사

佛告阿難:「汝說精進耶?」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정진을 말하느냐?”

주 팔리에는 정진만 따로 묻는 문답이 없다. 산스크리트 30.13은 실판독 0%라 판정 근거가 없다. 耶는 의문 어미로 옮겼다. 아난=慶喜(음의 慧琳 0482c0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1

AG:sa725/0195c12.1 · 교차 검사

阿難白佛:「我說精進。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정진을 말합니다.

주 팔리에 대응이 없다. 산스크리트 30.14는 실판독 0%. 아난=慶喜(음의 慧琳 0482c0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1

AG:sa725/0195c13.1 · 교차 검사

世尊!說精進。

세존이시여! 정진을 말씀하셨습니다.

주 「世尊!說精進」은 주어가 호격으로만 서 있어 「말씀하셨습니다」로 옮겼으나 시제·주체는 저본이 못 박지 않는다[불확실:격·태·구문]. 이문: 說【大】 / 我說【宋】【元】【明】(교감주 「(我)+說【三】」). 이문대로 읽으면 앞 좌표와 같은 「저는 말합니다」가 되어 뜻이 갈린다. 저본(大)을 따랐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1

AG:sa725/0195c13.2 · 교차 검사

善逝!」

온전히 이루신 분이시여!”

주 善逝은 확정역 「온전히 이루신 분」(sugata)을 따랐다. 앞 좌표들과 한 발화로 이어지는 호격이다. 팔리에 대응이 없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1

AG:sa725/0195c14.1 · 교차 검사

佛告阿難:「唯精進,修習多修習,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오직 정진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주 팔리 197.11은 세존이 「Taggha, cunda, bojjhaṅgā」(참으로, 쭌다여, 깨달음의 갈래들이여)라고 긍정하는 말만 있고 정진을 지목하는 말이 없다. 산스크리트 30.15는 실판독 0%. 「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음역(독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전거 `_전거_sa725`: 팔리 Anuttara sammāsambodhi / 범어 Anuttara-samyak-saṁbodhi, 판정하지 않는다). 한자대역 3분할 표의 「菩提=Bhaddiya, 혼합」은 이 낱말 속의 글자를 사람 이름으로 오분류한 것으로 보여 따르지 않았다. 「唯」는 한정이 실려 「오직」. 「得」은 획득의 뜻으로 읽고 「얻는다」. 아난=慶喜.

니까야 대응 내용 다름 SN 46.16:197.11

AG:sa725/0195c14.2 · 교차 검사

說是語已,正坐端身繫念。

이 말을 마치시고, 바르게 앉아 몸을 곧게 하시어 생각을 매셨다.

주 산스크리트 30.16은 실판독 「ṣīdat paryaṅkam ābhujya rjuṃ kāyaṃ praṇidhāya pratimukhaṃ smṛtim upasthāpya」(가부좌하고 몸을 곧게 하여 생각을 앞에 세우고)가 「正坐端身繫念」과 같은 꼴이다. 팔리에는 이 자세 서술이 없다. 인용: 사전 繫念 ③ sa1031/0271a16.1 「專修繫念故」.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15.1 · 교차 검사

時,有異比丘即說偈言:

그때 한 다른 비구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주 산스크리트 30.17 「athānyatamo bhikṣus tasyāṃ velāyāṃ gāthā babhāṣe」(그때 한 다른 비구가 게송을 말하였다)는 대괄호 안이 반쯤이나 「gāthā babhāṣe」는 실판독이라 같은 꼴로 본다. 팔리에는 게송이 하나도 없다.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주어화(「한 … 비구가」)로 옮겼다. 「異比丘」는 「다른 비구」로, 이름이 없다. 산스크리트 쪽의 비구 신원(「śāstā bhikṣo」 등)은 이 좌표에서 판정하지 않는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16.1 · 교차 검사

「樂聞美妙法,忍疾告人說,

“아름답고 미묘한 법 듣기를 즐겨, 병을 참고 사람에게 알려 말하니,

주 주어가 한문에 서 있지 않다. 병을 참으며 말하는 이가 세존인지 아난인지 저본만으로는 가려지지 않는다[불확실:격·태·구문]. 산스크리트 30.18(실판독 93%)의 「madhuraṃ dharmaṃ śrotuṃ glāny.」(달콤한 법을 듣기 위해 앓는 …)가 같은 꼴이나 뒤가 결락이라 일부만 겹친다. 美妙=madhura 대응은 증언이다. 「忍疾」는 뒤 게송 24행과 같은 말로 통일했다. 이 좌표는 게송의 첫 행이므로 따옴표를 열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17.1 · 교차 검사

比丘即說法,轉於七覺分。

비구가 곧 법을 말하니, 일곱 깨달음의 갈래를 굴린다.

주 산스크리트 30.18의 「bhikṣo 'vadad. … bodhyaṅgāni vartante」(비구가 말하였다… 깨달음의 갈래들이 굴러간다)와 겹치는 꼴이다. 「轉」은 「굴린다」로 옮겼다(사전 轉 ⑥ 「轉是起義」는 후대 풀이로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18.1 · 교차 검사

善哉尊阿難,明解巧便說,

훌륭하다 존귀한 아난이여, 밝게 알아 교묘한 방편으로 말하니,

주 산스크리트 30.20 「sādhv ity avadat sthaviro 'py ānandaḥ」(좋다고 장로 아난도 말하였다)가 앞머리와 겹친다. 한역은 「尊阿難」으로 「尊者阿難」(앞 좌표)과 한자가 다르다. 한 사람을 두 가지로 부른다. 「巧便說」은 확정역이 없어 「교묘한 방편으로 말한다」로 옮겼다[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善哉」는 감탄 어미로 흡수했다. 아난=慶喜.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19.1 · 교차 검사

有勝白淨法,離垢微妙說。

뛰어나고 희고 깨끗한 법이 있으니, 때를 떠난 미묘한 말이다.

주 산스크리트 30.20 「śuklā hy ete dharmāḥ santi virajasaḥ pravacanena」(이 법들은 희고 때 없다)와 겹친다. 白淨은 한자대역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고 뜻으로 「희고 깨끗한」, 사전 白淨 ③ sa748/0198c06.1 「穢污、白淨」과 같은 대립쌍 용례이다. 離垢는 「때를 떠난」. 「有」는 법의 존재를 말하는 자리라 「있으니」를 두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0.1 · 교차 검사

念、擇法、精進、喜、猗、定、捨覺,

새김, 법의 가림, 정진, 기쁨, 편안함, 선정, 버림의 깨달음,

주 산스크리트 30.21 「smṛtivicayau vīryaṃ ca prītiḥ pra[srabdh]i[r …] samādhiś ca sopekṣāṇy etāni hi bodhya[ṅgāni]」(실판독 81%)는 일곱 요소가 같은 차례로 나열된다. 팔리는 일곱을 「Satisambojjhaṅgo … pe … upekkhāsambojjhaṅgo」로 접어 두어(197.9) 가운데 요소를 읽을 수 없으므로 미대응이다. 「覺」은 「覺分」의 줄임으로 읽었다. 요소 낱말 번역은 0195c08.1과 같다. 정진은 「精進」 그대로.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46.16:197.9

AG:sa725/0195c21.1 · 교차 검사

此則七覺分,微妙之善說。

이것이 곧 일곱 깨달음의 갈래이니, 미묘한 훌륭한 말씀이다.

주 산스크리트 30.21의 「bodhya[ṅgāni]」에 「此則七覺分」이 겹치고, 「微妙之善說」(미묘한 훌륭한 말씀)에 해당하는 말은 판독 범위에 없다. 「則」은 귀결이 아니라 「이것이 곧 …이다」의 지시·강조라 「곧」을 세웠다.

니까야 대응 미정렬 SN 46.16:197.9

AG:sa725/0195c22.1 · 교차 검사

聞說七覺分,深達正覺味,

일곱 깨달음의 갈래 말씀을 듣고, 바른 깨달음의 맛에 깊이 통달하여,

주 산스크리트 30.22(실판독 100%) 「bodhyaṅgakathāṃ śrutvā bodhyaṅgānāṃ rasaṃ sa vijñāya」(깨달음 갈래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 갈래의 맛을 알고)와 같다. 한역은 「正覺味」이다(증언은 bodhyaṅga=覺分). 正覺은 확정역 없음, 「바른 깨달음」. 음의 慧琳 0434b10는 글자 풀이라 쓰지 않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3.1 · 교차 검사

身嬰大苦患,忍疾端坐聽,

몸이 큰 괴로움의 병고에 걸렸으나, 병을 참고 바르게 앉아 듣는다,

주 산스크리트 30.22의 끝 「bāḍh. + + + + + + + dhād vyutthita」(심한 …에서 일어났다)는 결락이 커서 겹침이 일부만 읽힌다. 한역은 「端坐聽」(바르게 앉아 듣는다)이고 산스크리트는 「vyutthita」(일어났다)라 같은 자리에서 갈릴 가능성이 있으나 결락 때문에 단정하지 않는다. 「身嬰」은 음의 慧琳 0321c14(嬰=遭)를 참고해 「몸이 …에 걸리다」로 옮겼다. 「大苦患」은 「큰 괴로움의 병고」. 인용: 사전 身嬰 ③ sa110/0036b07.2 「身嬰眾苦」.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4.1 · 교차 검사

觀為正法王,常為人演說,

살펴보니 바른 법의 왕이 되시어, 늘 사람들을 위하여 연설하신다,

주 「觀為」의 끊음이 둘이다. 「觀」을 「살펴보니」로 따로 읽을지, 「觀為」 전체를 한 구로 읽을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불확실:구두·분절]. 이문: 王【大】 / 主【宋】【元】【明】(교감주 「王=主【三】」)[불확실:저본_이문·자형]. 산스크리트 30.23의 「dharmasvāmi」(법의 주인)는 이문 「主」와 닿고 저본 「王」과는 어긋나므로 한역의 일탈로 단정하지 않는다. 한역 「常為人演說」은 「dharmasyā + + …」 결락 앞에서 겹침이 불분명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5.1 · 교차 검사

猶樂聞所說,況餘未聞者,

말하는 것을 듣기를 오히려 즐기시니, 하물며 아직 듣지 못한 다른 이들이랴,

주 산스크리트 30.23 「icchati dharmaṃ śrotuṃ na śrotavyaḥ kathaṃ so 'nyaiḥ」(법을 듣고자 한다. 어찌 그가 다른 이들에게 들려져서는 안 되겠는가)와 「況餘未聞者」가 같은 하물며 논법이다. 「所說」은 「말하는 것」으로 관형절 처리했다. 「猶」는 「오히려」로 뜻이 실려 세웠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6.1 · 교차 검사

第一大智慧,十力所禮者,

제일가는 큰 지혜를 지닌 이, 십력께서 예로 대하시는 이,

주 산스크리트 30.24 「yo 'py [agro bhikṣuś ca prajñāvān daśa]bale[na ni]rdiṣṭaḥ」(십력에 의해 지목된, 지혜로운 으뜸 비구)에서 daśabala가 十力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이며 대괄호 안이 많다. 한역은 「十力所禮者」(십력이 예를 올리는 이)이고 증언은 「nirdiṣṭaḥ」(지목된)라 동사가 다르다. 한역에는 이름이 없고 산스크리트 30.24는 뒤에서 upatiṣya를 쓴다. 「十力」은 확정역이 없어 「십력」 그대로 두고, 「禮」는 예를 표하는 뜻으로 읽었다[불확실:다의어_판별]. 「所…者」는 관형절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7.1 · 교차 검사

彼亦應疾疾,來聽說正法,

그도 서둘러 서둘러 와서 바른 법을 설하는 것을 들어야 한다,

주 산스크리트 30.24 「so 'pi jagāma glāno dharmaśravaṇārtham upatiṣyaḥ」(그 우빠띳사도 앓으면서 법을 들으러 갔다)는 과거 서술이고 한역은 「應…聽」(들어야 한다)로 당위라 같은 자리에서 다르다. 「亦」는 「도」로 흡수했다. 「應」은 어미(「해야 한다」)가 진다. 「疾疾」은 같은 글자의 겹침이라 「서둘러 서둘러」. 「說正法」은 관형절로 얹지 않고 「바른 법을 설하는 것」으로 풀었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5c28.1 · 교차 검사

諸多聞通達,契經阿毘曇,

여러 많이 듣고 통달한 이들, 계합하는 경전과 아비담,

주 산스크리트 30.25 「śṛṇvanti te 'pi [sūtradha]rā [vinaya]dharā mātṛk[ā]dharāś caiva」(경을 지닌 이, 율을 지닌 이, 마뜨리까를 지닌 이도 듣는다)는 대괄호 안이 많다. 「契經」은 한자대역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고 사전 契經 ⑥(丁福保)은 후대 풀이이다. 뜻으로 「계합하는 경전」이라 옮겼고 확정역이 아니다[불확실:술어·낱말_선택]. 「阿毘曇」은 3분할 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글자는 abhidharma의 음역으로 보이고(음의 慧琳 0749a03: 「或言阿毗達磨…此譯云勝法」), 한국 불교계 정착어 「아비담」으로 적었다[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전거 `_전거_sa725`: 팔리 Abhidhamma(kathā) / 범어 Abhidharma가 갈리나 이 좌표에서 판정하지 않는다. 「諸」는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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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5c29.1 · 교차 검사

善通法律者,應聽況餘者,

법과 율에 잘 통달한 이도 들어야 하니, 하물며 다른 이들이랴,

주 산스크리트 30.25 후반은 「kuśalān ay.」 외에 대괄호이므로 미대응. 「法律」은 「법과 율」로 두 낱말로 읽었다(사전 律 ③ sa102/0029b07.1 「正法、律出家」). 「應」은 당위 어미가 진다. 「者」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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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1.1 · 교차 검사

聞說如實法,專心□慧聽,

사실 그대로의 법이 설해짐을 듣고, 마음을 오롯이 하여 □ 지혜로 듣는다,

주 「□」는 CBETA 결자로 한 글자가 빠져 있다. 짐작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불확실:저본_이문·자형]. 산스크리트 30.26의 「śṛṇvanti yathādharmam ājñācittaṃ + + upasthāpya」(법대로 … 마음을 … 세우고 듣는다)가 겹치는 것으로 보인다. 「如實」은 사전 如實 ⑥(丁福保)이 후대 풀이이므로 「사실 그대로」로 옮겼다. 「如」는 비유가 아니라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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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2.1 · 교차 검사

於佛所說法,得離欲歡喜,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에서 욕심을 떠나는 환희를 얻고,

주 산스크리트 30.26 「prītiṃ tathā labhante [nirāmiṣ]eṣu [buddhavacaneṣu]」(육신을 떠난 부처님의 말씀들에서 기쁨을 얻는다)와 「得…歡喜」가 겹친다. 「離欲」(욕심을 떠남)에 대응하는 nirāmiṣa는 대괄호 안이다. 「歡喜」는 「환희」(앞의 「喜」=기쁨과 구별). 「於」는 조사로 흡수. 「所說」은 「말씀하신 것」으로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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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3.1 · 교차 검사

歡喜身猗息,心自樂亦然,

환희하여 몸이 편안히 쉬고, 마음이 즐거운 것도 그러하다,

주 산스크리트 30.27 「pr[ī]timanaḥ p[r]asrabdhiḥ kāye 'smin sa su[kha]」(대괄호는 편자 보충. 기쁜 마음, 몸의 편안함, 즐거움)에 「歡喜身猗息,心…樂」이 겹친다. 「自」는 단순 재귀라 흡수(自↔他 대조 없음). 「亦然」은 「~도 그러하다」. 「猗息」은 뜻이 서는 낱말이라 「편안히 쉬고」로 옮겼다. 인용: 사전 猗息 ③ sa109/0035a09.1 「身心猗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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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4.1 · 교차 검사

心樂得正受,正觀有事行,

마음이 즐거워 바른 받아들임을 얻고, 일이 있는 행들을 바르게 관찰한다,

주 「正受」는 확정역이 없어 낱말대로 「바른 받아들임」(사전 正受 ⑥은 삼매의 이명으로 풀지만 후대 풀이)[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有事行」은 사전 有事 ⑥(丁福保)이 「有為法之異名」이라 하나 후대 풀이라 낱말대로 「일이 있는 행」으로 옮겼고, 「有事」와 「行」을 한 낱말로 볼지 끊을지 저본만으로 서지 않는다[불확실:구두·분절]. 산스크리트 30.28 「citte samāhite viśve saṃskā[ra]śaraṇa[ṃ] na gacchanti」(마음이 집중되면 모든 행에서 귀의처를 찾지 않는다)에서 「saṃskāra」가 「行」과 닿는다. 「得」은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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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5.1 · 교차 검사

厭惡三趣者,離欲心解脫,

세 갈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는 욕심을 떠나 마음이 해탈한다,

주 산스크리트 30.28 「v[i]raktacittā vimucyante」(대괄호는 편자 보충. 마음이 욕을 떠나 해탈한다)와 「離欲心解脫」이 겹친다. 「三趣」는 삼악도인지 삼계인지 저본이 말하지 않아 「세 갈래」로 옮겼다[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厭惡」는 음의 慧琳 0328a25·0373c18 「心不忻也」를 참고해 「싫어하고 미워하다」. 이문: 者【大】 / 有【宋】. 「心解脫」은 한자대역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고 「마음이 해탈한다」로 풀었다(전거: 팔리 Cetovimu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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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6.1 · 교차 검사

厭惡諸有趣,不集於人天,

여러 존재의 갈래를 싫어하고 미워하여 사람과 하늘에 모이지 않는다,

주 산스크리트 30.28 「saṃsāra]bh[a]vag[a]ti[bh]y[o]」(윤회·존재·갈래들로부터)가 「諸有趣」와 겹치는 것으로 보이나 대괄호가 섞여 일부만 읽힌다. 「集」은 정형구 행(samudaya, 일어남)이 아니라 「모이다」의 뜻으로 읽었다[불확실:다의어_판별]. 「諸有」는 사전 諸有 ⑥을 후대 풀이로 보고 「여러 존재」. 「有」는 존재 서술이 아니라 「諸有」의 낱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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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7.1 · 교차 검사

無餘猶燈滅,究竟般涅槃,

남음 없이 등불이 꺼지듯, 끝내 반열반에 든다,

주 산스크리트 30.29#1 「nirupādāna iva śikhī p[arinirvāsyanti bhūtvārhan]」(연료 없는 불꽃처럼 … 반열반하리라)의 앞머리가 「無餘猶燈滅」과 같은 비유로 겹친다. 한역은 「燈」(등불)이고 산스크리트는 「śikhī」(불꽃)다. 「猶」는 「~듯」으로 흡수. 「般涅槃」은 한자대역 3분할이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글자는 parinirvāṇa의 음역으로 보고 정착형 「반열반」으로 적었다. 전거 `_전거_sa725` 般涅槃 행(팔리 Parinibbuta·Parinibbānam·Parinibbāyī)을 인용한다[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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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8.1 · 교차 검사

聞法多福利,最勝之所說,

법을 들으면 복과 이익이 많으니, 가장 뛰어난 분이 설하신 것이다,

주 산스크리트 30.29#2 「iha dharmaśravaṇaṃ jinena nirdiṣṭa[m]」(여기서 법 듣기를 승리자가 가리켰다)가 「聞法…最勝之所說」과 겹친다. 「多福利」에 해당하는 말은 앞이 결락(「m」)이라 읽히지 않는다. 「最勝」은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로 읽었다(확정역 없음). 「所說」은 「설하신 것」. 음의 慧琳 0499b17은 글자 풀이라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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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sa725/0196a09.1 · 교차 검사

是故當專思,聽大師所說。」

그러므로 오롯이 생각하여 큰 스승이 말씀하신 것을 들으라.”

주 산스크리트 30.29#2의 끝 「+ + + + + + stu」는 결락이라 판정 근거가 없다. 「是故」는 「그러므로」. 「當」은 「-하라」 어미가 진다. 「大師」는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로 읽었다(사전 大師 ③ sa1016/0266c25.2 「得聞大師教授」). 게송의 마지막 행이므로 따옴표를 닫았다.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3

AG:sa725/0196a10.1 · 교차 검사

異比丘說此偈已,從座起而去。

다른 비구는 이 게송을 말하고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주 팔리 197.13 「Idamavocāyasmā cundo」(쭌다는 이렇게 말하였다)와 「說此偈已」가 끝맺음 꼴로 겹친다. 팔리 197.14~197.16(스승이 기뻐하고 앓던 병에서 일어나 병이 가셨다)은 한역에 없다. 한역은 병이 나았다는 말 없이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산스크리트는 30.29#2가 결락으로 끝나 다음 단락(31.1)이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므로 이 자리의 겹침은 읽을 수 없다. 「從座起而去」는 「而」를 흡수.

니까야 대응 일부 SN 46.16:197.13

니까야 대응 대응 없음 SN 46.16:197.14~197.16

AG:sa725/0196a11.1 · 교차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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