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二八)
(328)
주 저본 `(三二八)`은 경 번호 표기다. 한자 자릿수 숫자(三二八)를 아라비아 숫자로 옮겼다. 이 경의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물에 없어 두 증언 모두 미대응(아직 안 잡음)으로 둔다. 사전 `二八`(이 경: 0.1)은 `三二八`이 기계로 잘려 걸린 것이라 뜻의 근거로 쓰지 않았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如是我聞`(이 아함 전권 1332경, 이 경 1회 — `_정형구_생략표지`). 앵커의 `如`는 비유·가정 자리가 아니라 정형구 `如是`의 일부이므로 「이와 같이」로 옮겼다. 전체 정형구 용례: 사전 如是我聞 ① 잡아함 1333회·1332경.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주 (1) `佛`=부처님은 확정 술어 [구속]. (2) `舍衛`(유형: 정착어)=사위: 코살라 지방의 도시·나라 이름을 소리로 옮긴 음역이며 정착형 「사위국」을 그대로 썼다. 음의: 一切經音義(慧琳) 0367c24 — 「正梵音云室羅伐悉底國 此譯云聞者城 … 善見律云舍衛者人名也」(원문은 병기된 이설을 함께 들며 `訛`라 한다). 전거표: 팔리 후보 `Sāvatthī` / 당대 범어 후보 `śravasthi`로 갈린다 → `갈림: 음역계통`으로 신고하되 판정하지 않는다. ⚠다른 부(DA)의 대역이라는 전거표의 주의가 붙어 있다. (3) `祇樹給孤獨園`: 투입물 표는 「보류(5자 이상, 정형구 조각일 수 있음)」로 두었으나, 하나의 동산 이름이며 정착형 「기수급고독원」이 있으므로 유형을 정착어로 판별했다(§⑤의 예시와 같은 이름). 구성은 `祇樹`(기타 태자의 숲 — 慧琳 0368a03: 祇陀=誓多, 그 나무를 부처와 승가에 공양했으므로 祇樹라 줄여 부른다) + `給孤獨`(뜻으로 옮긴 이름,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 — 慧琳 0368a05: 梵云阿那陀, 古經 阿那邠邸라고도 함) + `園`(동산). 전거표 팔리 후보 `Jetavana, Anāthapiṇḍika`는 참고로만 인용한다(한역의 저본은 팔리가 아니다). 한 경 안의 표기는 사위국·기수급고독원으로 통일했다. `一時`는 확정역이 없으나 「한때」로 옮겼다(사전 一時 ① 뒤 佛住 1265). 내레이션이므로 평서, 부처님께는 주체 높임(-시-)을 썼다.
爾時,世尊告諸比丘:「有六想身。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섯 인식의 몸이 있다.
주 (1) `世尊`=세존, `比丘`=비구는 확정 술어 [구속]·정착어. 이 경은 같은 분을 0.3과 21.1에서 `佛`로, 여기서 `世尊`으로 쓴다 — 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서로 달라(부처님/세존) 한 문자열로 고정하지 않고 저본 한자를 따라 옮겼다. (2) `諸比丘`의 `諸`는 복수 표지로 「비구들」의 `-들`이 지므로 따로 「모든」을 세우지 않았다. (3) `有`는 앵커가 훈독투를 경계하는 자리지만 여기서는 인용 첫머리에서 존재 자체를 서술하므로(사전 有 ① 발화 첫머리 297/3521, 이 경 0092a19.1) 「있다」로 옮겼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4) `想`(이 경 4회, 이 좌표·0092a20.1)은 `[정형구 행]`·`[참고]` 어디에도 확정역이 없다. 「인식」으로 옮기고 이 경에서 통일했으며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후보: 인식·지각·생각). 사전 想 ①은 잡아함 849회이고 `受想行識` 오온 자리가 다수(뒤 行識 449)라 이 경의 쓰임과 다르다. (5) `身`은 「몸」으로 두었다. 이 자리에서 무리·모임의 뜻인지는 저본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증보하지 않았다. (6) 인용은 여는 따옴표만 이 좌표에, 닫는 따옴표는 0092a20.1에 있다. 증언은 투입물에 없다.
云何為六?
무엇이 여섯인가?
주 `云何`는 의문사구로 의문형 어미가 지므로 「무엇이 … 인가?」로 옮겼다. 앵커의 `為`는 `為…所` 피동이 아니라 `云何為六`의 계사(「~이다」)로 읽었다. 이 구조에 걸리는 확정 술어는 없다.
謂眼觸生想,耳、鼻、舌、身、意觸生想,是名六想身。」
곧 눈의 접촉에서 생기는 인식, 귀·코·혀·몸·마음의 접촉에서 생기는 인식이니, 이것을 여섯 인식의 몸이라 한다.”
주 (1) `謂`는 「곧」으로 옮겼다(뒤에 오는 여섯을 풀어 나열하는 자리). (2) `眼觸生想`은 「눈의 접촉에서 생기는 인식」으로 읽었다(眼觸/生/想). `生`을 타동(「접촉이 인식을 낳는다」)으로 읽을 여지가 있어 [불확실:구두·분절]을 남긴다. 근거: 사전 生 ① 앞 眼觸 39, 사전 觸 ① 뒤 生受 38 — 접촉 다음에 `生`이 오는 연쇄가 많으나, 모두 「접촉에서 受가 생긴다」 구조의 쓰임으로 이 좌표의 `生`을 같은 방향으로 읽는 참고에 그친다. (3) `耳、鼻、舌、身、意觸生想`은 다섯 근이 `觸生想`을 공유하는 나열로 읽어 「귀·코·혀·몸·마음의 접촉에서 생기는 인식」으로 옮겼다(나열 순서·수 유지). (4) `觸`=접촉, `生`=생기다는 `[정형구 행]`이며 낱말 확정역이 아니다 — 문맥으로 옮기고 [불확실:술어·낱말_선택]을 남긴다. `意`는 「마음」으로 옮겼으나 확정역이 없다(후보: 뜻·마음). 사전 意 ① 앞 舌身 186(육근 나열 자리가 많다). 이 경에서 통일했다. (5) `是名`은 「이것을 … 이라 한다」로 옮겼다. 붓다의 발화이므로 평서. 닫는 따옴표는 0092a19.1에서 연 인용의 끝이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시기를 마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 (1) 이 좌표는 `佛`(부처님, 확정 [구속]), 앞 좌표들은 `世尊`(세존) — 같은 분을 다른 한자로 부른다(한역이 같은 개념에 다른 한자를 쓴다). 확정역이 달라 통일하지 않았다. (2) `所說`의 `所`는 「~하는 바」 대신 관형절 「설하신 것」으로 풀었다. (3) `已`는 완료로 「마치시자」에 담았다. (4) `歡喜`=기뻐하며, `奉行`=받들어 행하였다 — 결말 정형구(사전 歡喜 ① 잡아함 1340회, 뒤 奉行 829; 사전 奉行 ① 앞 歡喜 829)이며 낱말 확정역은 없다. (5) 생략 표지(`乃至`·`如上` 등)는 이 경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