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七三)
(273)
주 저본 표제 「二七三」은 경 번호 표시이며 좌표 id(sa271)의 숫자와 다르다(사실 신고, 본문은 저본 그대로). 이번 투입물에는 팔리·산스크리트 증언이 없다(직역단독 국면) — 따라서 모든 좌표의 두 증언 항은 「없음확인」(absent)이 아니라 「미대응」(unaligned)이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如是我聞은 개경 정형구(이 아함 전권 1332경, 이 경 1). 如는 「이와 같이」, 我聞은 「나는 들었다」. 정형구 표(_정형구_생략표지) 참조.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한때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물렀다.
주 佛=부처님(확정술어 [구속]). 舍衛=사위(정착어 — 한자 대역표 분류). 이름의 뜻: 음의 慧琳 0367c24 〔金剛般若波羅蜜經〕은 梵音 室羅伐悉底를 「聞者城」·법경경 「聞物國」으로 옮기고, 善見律을 인용해 「舍衛者人名也… 因以其名而為國號」(사람 이름이 나라 이름이 됨)라 한다. 음역계통: 전거표는 舍衛 ↔ 팔리 `Sāvatthī` / 범어 당대 `śravasthi`로 갈린다 — 판정하지 않고 두 계통만 인용(⚠다른 부(DA)의 대역). 祇樹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정착형 그대로. §⑤ 정착어 예시와 같은 이름). 한자 대역표는 5자 이상이라 「보류」로 두었으나 이름임을 확인했다 — 祇樹: 祇陀 태자의 나무(음의 慧琳 0368a03 「太子自留其樹供養佛僧故略云祇樹」), 給孤獨: 외로운 이를 돌보는 이의 뜻옮김(음의 慧琳 0368a05 「亦義譯也… 誓救孤獨」), 園: 동산. 팔리형 `Jetavana, Anāthapiṇḍika`는 비고에만(전거표, ⚠다른 부(DA)의 대역). 정착형 채택에 따른 유형 신고로 [불확실:고유명·표기_유형]. 一時=한때, 住=머물다(「…이 있어」 아님).
時,有異比丘獨靜思惟:「云何為我?
그때 어떤 다른 비구가 홀로 고요히 생각하였다: “무엇이 나인가?
주 時=그때. 有는 새 인물을 들이는 제시문이며 「~이 있어」 대신 주어 「어떤 다른 비구가」로 흡수했다(存在 서술 아님). 異=다른 — 이문: 大正은 異를 두고 【明】은 異가 없다(교감주 〔異〕-【明】); 본문은 大正대로. 比丘=비구(확정 [구속]); 음역계통: 전거표 比丘 ↔ 팔리 `bhikkhu` / 범어 근대 비정 `Bhikṣu`(당대 실담 없음) — 판정하지 않음. 獨靜思惟: 獨=홀로, 靜=고요히, 思惟=생각하다(한자 대역표 의역, 음독 「사유」 아님). 云何為我: 為는 「…이다」(판단) 또는 「…이 되다」 두 갈래가 선다 — 저본만으로 정하지 못해 「…인가」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후자로 읽으면 「어떻게 나가 되는가」. 云何=무엇(의문사, 어미 의문형이 진다).
我何所為?
나는 무엇을 하는가?
주 我何所為: 所為의 所는 「~하는 바」(훈독투)로 세우지 않고 의문 관형절로 흡수. 為=「하다」(행위)로 옮겼으나 「…이 되다」·「…을 위하다」도 설 수 있어 [불확실:다의어_판별]. 앞 좌표 云何為我와 구문이 다르다.
何等是我?
어떤 것이 나인가?
주 何等=어떤 것. 是는 계사. 云何為我(앞)·何法是我(0072b25.1)와 같은 물음의 다른 꼴이라 「무엇이 / 어떤 것이 / 어떤 법이」로 갈라 두었다.
我何所住?」
나는 어디에 머무는가?”
주 何所住: 何는 「어디」·「무엇」 두 갈래가 서나 住의 처소로 보아 「어디에」로 옮겼다. 저본만으로 가려지지 않아 [불확실:뜻_판별불가]. 所는 관형절로 흡수(「~하는 바」 아님). 인용 속 자기 사유는 평서로 유지.
從禪覺已,往詣佛所,稽首禮足,退住一面,白佛言:「世尊!我獨一靜處,作是思惟:『云何為我?
선정에서 깨어나서 부처님의 처소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러 부처님께 아뢰어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홀로 한 고요한 곳에서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나인가?
주 從禪覺已: 禪=선정(정착), 覺=깨다 —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覺(=느낌 vedanā)과 다른 쓰임이라 [불확실:다의어_판별]. 已는 완료의 어미(「깨어나서」)로 흡수. 사전 覺已 ③ 용례 sa1221/0335c23.1 「從禪覺已,往詣佛所,稽首」 같은 정형. 往詣佛所: 佛所=부처님의 처소, 往詣=나아가. 稽首禮足=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두면예족」식 음독 금지, 음의 慧琳 0698c05 「稽首…頭至地」 참고). 退住一面=물러나 한쪽에 머물러(住를 坐로 바꾸지 않음). 白佛言: 白=윗사람에게 아뢰다, 言=말하다. 世尊=세존(확정 [구속]), 호격 「세존이시여」. 我→「저」: 청자가 윗사람이라 존댓말(문말 합쇼체); 인용 속 사유 『…』는 평서. 獨一靜處=홀로 한 고요한 곳. 作是思惟=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我何所為?
나는 무엇을 하는가?
주 0072b21.2와 같은 구문(我何所為). 앞자리와 번역 동일. 인용 속 사유(평서).
何法是我?
어떤 법이 나인가?
주 何法是我: 何法=어떤 법(法은 「법」 그대로), 是 계사. 0072b22.1 何等是我와 짝.
我於何住?』」
나는 어디에 머무는가?’”
주 我於何住: 於는 조사로 흡수, 何=어디(0072b22.2와 같은 판별, 거기서 신고). 『』와 「」를 이어서 닫는다.
佛告比丘:「今當為汝說於二法。
부처님이 비구에게 일렀다: “이제 그대를 위해 두 법을 설하겠다.
주 佛=부처님, 比丘=비구(확정). 告=일렀다. 今當為汝說: 今=이제, 當은 「마땅히」를 세우지 않고 어미 「-겠다」가 지며, 為汝=그대를 위해(為=위하여). 說於二法: 於 조사 흡수, 二法=두 법, 說=설하다. 붓다의 발화는 청자와 무관하게 평서.
諦聽,善思,云何為二?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무엇이 둘인가?
주 諦聽=자세히 듣고(음의 希麟 0949c19 「諦審也」), 善思=잘 생각하라(善=잘). 사전 諦聽 ① 뒤에 善思 107/122로 이어지는 정형. 云何為二=무엇이 둘인가(為=이다/되다의 판단, 둘째 물음이라 뜻이 분명).
眼色為二。
눈과 형색이 둘이다.
주 眼色: 色은 눈의 대상으로 쓰인 자리라 「형색」(색깔·형상). 為二=둘이다. 色에는 확정술어 행이 없다.
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為二,是名二法。
귀와 소리, 코와 향기, 혀와 맛, 몸과 접촉, 뜻과 법이 둘이니, 이것을 두 법이라 이름한다.
주 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 각각 앞이 감관, 뒤가 대상(為二). 身觸의 觸은 여기서 몸이 닿는 대상이고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觸(접촉)과 같은 글자이나 쓰임이 다를 수 있다 — 같은 한국어 「접촉」으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意=뜻(이하 같은 글자는 「뜻」). 是名=이것을 …이라 이름한다(관용). 二法=두 법.
比丘!若有說言:『沙門瞿曇所說二法,此非為二,我今捨此,更立二法。』
비구여! 어떤 이가 말한다면: ‘사문 고따마가 설한 두 법은 이것이 둘이 아니다. 나는 이제 이것을 버리고 다시 두 법을 세운다.’
주 比丘=비구. 若有說言: 若는 「거든」을 쓰지 않고 연결어미 「-면」이 지며, 有는 「~이 있어」 대신 주어 「어떤 이가」로 흡수. 沙門=사문(음역, 한자 독음). 瞿曇=고따마(확정술어 [구속]이 음역 독음보다 위). 음역계통: 전거표 沙門 ↔ 팔리 `Samaṇa` / 범어 근대 `Śramaṇa`, 瞿曇 ↔ 팔리 `Gotama` / 범어 근대 `Gautama`(둘 다 ⚠다른 부의 대역) — 판정하지 않고 인용. 所說=설한(관형절). 此非為二=이것이 둘이 아니다. 今=이제, 更=다시, 捨=버리다, 立=세우다.
彼但有言數,問已不知,增其疑惑,以非境界故。
그는 다만 말의 수가 있을 뿐이어서, 물은 뒤에는 알지 못하고, 그 의혹을 늘리니,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 但有: 但은 한정의 뜻이 실린 자리라 「다만 … 뿐」으로 세웠고, 有는 존재 서술(말의 수가 있을 뿐). 言數=말의 수 — 數의 뜻(헤아림·셈·이름)이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직역하고 [불확실:뜻_판별불가]. 問已=물은 뒤. 不知=알지 못하고. 增其疑惑=그 의혹을 늘리니. 以非境界故: 以…故는 「…이기 때문이다」로 흡수. 境界=경계(정착). 사전 非境 ③ 용례 sa39/0009a11.1 「增益生癡,以非境界故」 같은 꼴.
所以者何?
까닭은 무엇인가?
주 所以者何: 所以=까닭(「~하는 바」 아님), 者=주제 표지, 何=무엇. 관용구.
緣眼、色,生眼識。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하여 눈의 의식이 생긴다.
주 緣=조건으로 하여, 眼識=눈의 의식, 生=생기다(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生=태어남 자리가 아니다). 色=형색(0072b26.2와 같게).
「比丘!彼眼者,是肉形、是內、是因緣、是堅、是受,是名眼肉形內地界。
“비구여! 저 눈이란 살의 형상이고, 안이고, 인연이고, 단단함이고, 받은 것이니, 이것을 눈의 살의 형상, 안의 땅의 요소라 이름한다.
주 彼眼者=저 눈이란(者는 주제). 肉形=살의 형상, 內=안, 因緣=인연(정착), 堅=단단함. 是受: 受는 나열 항목 가운데 놓여 「느낌」(vedanā, 확정술어 [정형구 행])인지 「받은 것·받아들여진 것」인지 저본만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 중립적으로 「받은 것」으로 옮기고 [불확실:다의어_판별]. 地界=땅의 요소(界=요소; 확정역 없어 [불확실:확정역_부재], 이하 水·火·風界도 같은 방식). 이문: 이 좌표의 內는 【宋】【元】【明】에 肉으로 되어 있다(교감주 內=肉【三】) — 어느 內인지 교감주가 위치를 주지 않으며 본문은 大正대로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比丘!若眼肉形,若內、若因緣、津澤、是受,是名眼肉形內水界。
비구여! 만약 눈의 살의 형상이고, 안이고, 인연이고, 진액과 윤택함이고, 받은 것이라면, 이것을 눈의 살의 형상, 안의 물의 요소라 이름한다.
주 若眼肉形,若內,若因緣…: 若가 셋 선다. 한 문장의 조건 병렬(「…이고 …이고 …이라면」)로 읽어 「-면」 하나가 진다고 보았으나, 「…이든 …이든」의 선택 병렬로도 읽힌다 — [불확실:격·태·구문]. 津澤=진액과 윤택함, 是受=받은 것(0072c02.2의 신고 참조). 水界=물의 요소.
比丘!若彼眼肉形,若內、若因緣、明暖、是受,是名眼肉形內火界。
비구여! 만약 저 눈의 살의 형상이고, 안이고, 인연이고, 밝고 따뜻하고, 받은 것이라면, 이것을 눈의 살의 형상, 안의 불의 요소라 이름한다.
주 0072c04.1과 같은 구문(若 셋의 병렬 읽기는 거기서 신고). 彼=저. 明暖=밝고 따뜻함. 火界=불의 요소.
比丘!若彼眼肉形,若內、若因緣、輕飄動搖、是受,是名眼肉形內風界。
비구여! 만약 저 눈의 살의 형상이고, 안이고, 인연이고, 가볍고 나부끼고 움직이고 흔들리고, 받은 것이라면, 이것을 눈의 살의 형상, 안의 바람의 요소라 이름한다.
주 輕飄動搖: 輕·飄·動·搖 네 글자를 한 묶음으로 보고 「가볍고 나부끼고 움직이고 흔들리고」로 풀었으나 輕飄/動搖 두 묶음, 또는 輕/飄動搖로도 끊을 수 있다 — [불확실:구두·분절]. 구문은 0072c04.1과 같다. 風界=바람의 요소. 음의 慧琳 0492a14 動搖=樹動(참고).
「比丘!譬如兩手和合相對作聲。
“비구여! 비유하면 두 손이 합하여 서로 마주 대해 소리를 낸다.
주 譬如=비유하면(如는 비유 어미로 흡수). 兩手和合=두 손이 합하여, 相對=서로 마주 대해, 作聲=소리를 낸다. (0072c28.1 合手聲의 근거.)
如是緣眼、色,生眼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
이와 같이 눈과 형색을 조건으로 하여 눈의 의식이 생기고, 세 가지 일이 화합한 것이 접촉이며, 접촉과 함께 느낌, 인식, 의도가 생긴다.
주 如是=이와 같이(앞 비유에 대응). 三事和合觸: 觸을 명사로 읽어 「세 가지 일이 화합한 것이 접촉」(뒤의 觸俱生이 명사 觸을 받는다). 觸=접촉(확정술어 [정형구 행] 觸), 受=느낌(同 受), 俱生=함께 생기다. 想=인식, 思=의도 — 두 글자는 확정역이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思는 사전 思 ⑥(丁福保 「使心造作」)을 가볍게 참고했다. 受想思 세 항 나열.
此等諸法非我、非常,是無常之我,非恒、非安隱、變易之我。
이러한 모든 법은 나가 아니고 항상하지 않으며, 이것은 무상한 나이며, 항구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으며 변하고 바뀌는 나이다.
주 此等諸法=이러한 모든 법. 非我,非常 뒤에 是無常之我,非恒、非安隱、變易之我가 와서 「나가 아니다」와 「…한 나이다」가 한 문장에 선다 — 之를 관형 어미로만 풀어 한문대로 두고 판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非常=항상하지 않다(無常=무상과 글자가 달라 가르고, 사전 非常 ⑥ 후대(丁福保 1922) 「猶言無常,謂世相之無常也」 참조), 恒=항구(하다), 安隱=편안(전거표 당대 `svastha`), 變易=변하고 바뀌다(음의 慧琳 0325c11 「變易也異也」).
所以者何?
까닭은 무엇인가?
주 所以者何 — 0072c01.1과 같은 관용구. 앞자리와 번역 동일.
比丘!謂生、老、死、沒、受生之法。
비구여! 이른바 태어남, 늙음, 죽음, 사라짐, 생을 받는 법이다.
주 謂=이른바. 生·老·死·沒·受生之法: 生=태어남, 老=늙음, 死=죽음, 沒=사라짐(확정역 없어 [불확실:술어·낱말_선택]), 受生=생을 받다(受는 동사), 之法=…하는 법. 앞 所以者何에 대한 답으로 읽히나 한문대로 두고 연결어는 세우지 않았다.
「比丘!諸行如幻、如炎,剎那時頃盡朽,不實來實去。
“비구여! 모든 행은 환영 같고 불꽃 같아서, 찰나의 시간 사이에 다하고 썩으며, 실답지 않게 오고 실답게 간다.
주 諸行=모든 행(行은 「행」 그대로, 諸는 한 묶음이라 「모든」). 如幻=환영 같고, 如炎: 炎=불꽃으로 옮겼으나 「아지랑이(陽焰)」의 줄임일 수 있다 [불확실:다의어_판별]. 剎那=찰나(음역, 한자 독음), 時頃=시간 사이, 盡朽=다하고 썩으며. 不實來實去: 實의 뜻(참됨·결실)이 저본만으로 서지 않아 「실답지 않게 오고 실답게 간다」로 직역하고 [불확실:뜻_판별불가]. 전거표 剎那 ↔ 당대 `kṣana`.
是故,比丘!於空諸行當知、當喜、當念:『空諸行常、恒、住、不變易法空,無我、我所。』
그러므로 비구여! 공한 모든 행에 대해 알라, 기뻐하라, 마음에 새기라: ‘공한 모든 행은 항상함, 항구함, 머묾, 변하고 바뀌지 않는 법이 공하고, 나가 없으며 내 것이 없다.’
주 是故=그러므로. 於空諸行: 於는 조사로 흡수, 空=공한(형용). 當知·當喜·當念: 當 세 번 모두 어미 「-라」로 흡수(「마땅히」 금지), 知=알라, 喜=기뻐하라, 念=마음에 새기라. 空諸行常、恒、住、不變易法空: 「常·恒·住·不變易法」이 空의 주어인지 앞 空諸行의 서술인지 끊는 자리가 둘 이상이다 — [불확실:구두·분절]. 常=항상함, 恒=항구함, 住=머묾, 不變易法=변하고 바뀌지 않는 법. 無我、我所: 無가 둘에 걸린다(나가 없고 내 것이 없다). 我所=내 것(所는 「~하는 바」가 아니라 소유 표지).
譬如明目士夫,手執明燈,入於空室,彼空室觀察。
비유하면 눈 밝은 사내가 손에 밝은 등불을 들고 빈 방에 들어가, 그 빈 방을 살펴본다.
주 譬如=비유하면(如 흡수). 明目=눈 밝은, 士夫=사내, 執=들다, 於 조사 흡수, 空室=빈 방. 觀察=살펴보다(한자 대역표 의역 — 음독 「관찰」 아님).
「如是,比丘!於一切空行,心觀察歡喜,於空法行,常、恒、住、不變易法,空我、我所。
“이와 같이, 비구여! 일체의 공한 행에 대해 마음으로 살펴보고 기뻐하며, 공한 법의 행에 대해서는 항상함, 항구함, 머묾, 변하고 바뀌지 않는 법이 나와 내 것에 대해 공하다.
주 如是=이와 같이. 於一切空行: 於 흡수, 一切=일체. 心觀察歡喜=마음으로 살펴보고 기뻐하며(心은 수단). 於空法行…: 空我、我所는 「나와 내 것에 대해 공하다」로 읽었으나 「나와 내 것을 비운다」로도 서서 판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이문: 大正에는 空이 있고 【宋】【元】【明】에는 없다(교감주 〔空〕-【三】, 〔-〕【宋】【元】【明】, 空【大】) — 어느 자리의 空인지 교감주가 위치를 주지 않으며 본문은 大正대로 [불확실:저본_이문·자형]. 所(我所)는 0072c13.1과 같다.
如眼,耳、鼻、舌、身、意法因緣生意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諸法無我、無常,乃至空我、我所。
눈과 같이, 귀, 코, 혀, 몸, 뜻과 법을 인연으로 하여 의식이 생기고, 세 가지 일이 화합한 것이 접촉이며, 접촉과 함께 느낌, 인식, 의도가 생기니, 이 모든 법은 나가 없고 무상하며, 내지 나와 내 것에 대해 공하다.
주 乃至는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 — 無常 뒤가 접혀 있고 펴지 않았다([생략표지]). 如眼,耳、鼻、舌、身、意法因緣生意識: 「눈과 같이」가 耳鼻舌身에도 걸리고 意法因緣生意識은 意와 법을 인연으로 한 의식으로 읽었으나 끊는 자리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 因緣=인연으로 하여, 意識=의식. 三事和合觸 이하는 0072c09.1과 같다(受=느낌·想=인식·思=의도). 此諸法=이 모든 법, 無我=나가 없다. 空我、我所=0072c16.1과 같은 읽기.
比丘!於意云何?
비구여! 생각에 어떠한가?
주 於意云何: 관용구. 於는 조사로 흡수, 意=생각(마음), 云何=어떠한가(어미 의문형).
眼是常、為非常耶?」
눈은 항상한가, 항상하지 않은가?”
주 眼是常、為非常耶: 是=계사, 為는 「위하여·피동」이 아니라 선택의문(…인가, …인가)으로 읽어 흡수, 耶=의문어미로 흡수. 非常=항상하지 않다. 붓다의 발화는 평서(의문은 「-가」). 여기서 붓다의 발화를 닫는다.
答言:「非常。
답하여 말했다: “항상하지 않습니다.
주 답하는 이는 비구, 청자는 붓다(윗사람)라 합쇼체. 答言=답하여 말했다. 非常=항상하지 않다(0072c10.1과 같게).
世尊!」
세존이시여!”
주 世尊=세존(확정 [구속]), 호격 「이시여」.
復問:「若無常者,是苦耶?」
다시 물었다: “무상하다면 괴로움인가?”
주 復=다시(되풀이되는 물음). 若無常者: 若는 「-면」이 지고 者는 가정의 주제 표지로 흡수, 無常=무상. 是苦耶=괴로움인가(耶 흡수). 묻는 이는 붓다라 평서.
答言:「是苦。
답하여 말했다: “괴로움입니다.
주 是苦=괴로움입니다(是 계사). 합쇼체(비구→붓다).
世尊!」
세존이시여!”
주 앞자리와 번역 동일(0072c21.3).
復問:「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我、異我、相在不?」
다시 물었다: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라면,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그 가운데서 나, 나와 다름, 서로 있음을 보겠는가, 보지 않겠는가?”
주 若無常、苦,是變易法: 若=「-면」 흡수, 變易法=변하고 바뀌는 법. 多聞聖弟子=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확정역 없음). 寧…不: 寧은 따로 부사를 세우지 않고 끝의 不과 함께 「보겠는가, 보지 않겠는가」의 의문형으로 흡수. 於中=그 가운데서. 見我、異我、相在: 異我는 「다른 나」·「나와 다름」, 相在는 「서로 있음」·「서로 안에 있음」(상호 내재)으로 읽힐 수 있다 — 한문대로 직역하고 판정하지 않는다 [불확실:격·태·구문]. 사전 相 ③ 용례 sa1017/0267b17.1 「色即是我、異我、相在不」 같은 정형.
答言:「不也,世尊!」
답하여 말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주 不也=아닙니다(也는 평서 어미로 흡수). 합쇼체(비구→붓다).
「耳、鼻、舌、身、意亦復如是。
“귀, 코, 혀, 몸, 뜻도 이와 같다.
주 亦復如是: 亦=조사 「도」로 흡수, 復은 亦復 한 짝으로 흡수, 如是=이와 같다. 이 정형은 앞 눈의 물음·답을 가리키며 한문이 스스로 접은 것이 아니다(乃至·如上 같은 생략 표지 없음).
如是多聞聖弟子於眼生厭,厭故不樂,不樂故解脫,解脫知見:『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이와 같이 많이 들은 성스러운 제자는 눈에 대하여 싫어함이 생기고, 싫어하므로 즐기지 않고, 즐기지 않으므로 해탈하고, 해탈하여 알고 본다: ‘나의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행은 세워졌으며, 할 일은 하였고,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안다.’
주 如是=이와 같이. 於眼生厭: 於=조사로 흡수, 生=생기다(일으키다로도 설 수 있음), 厭=싫어함. 厭故不樂,不樂故解脫: 故=…하므로, 樂=즐기다, 解脫=해탈(정착). 解脫知見: 고정 명사(해탈지견)일 수도 있으나 앞 解脫을 이어 「해탈하여 알고 본다」로 읽었다 — 끊는 자리가 정해지지 않아 [불확실:구두·분절]. 『我生已盡…』 정형구: 生=태어남, 梵行=청정한 행(한자 대역표 의역; 梵은 음의 慧琳 0698c19 「梵…此云清淨」), 已盡·已立·已作의 已는 어미로 흡수, 所作=할 일(所 「~하는 바」 아님), 自知: 自는 自↔他 대조가 없어 단순 재귀로 흡수, 不受後有=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 확정술어 [정형구 행]의 生·梵行은 낱말 확정역이 아니라 [불확실:다의어_판별] — 이 자리에서는 정형구의 뜻으로 옮겼다. 사전 生已 ① 143회·所作 ① 242회 같은 정형.
耳、鼻、舌、身、意亦復如是。」
귀, 코, 혀, 몸, 뜻도 이와 같다.”
주 0072c24.2와 같은 亦復如是. 여기서 붓다의 발화를 닫는다.
時,彼比丘聞世尊說合手聲譬經教已,獨一靜處,專精思惟,不放逸住,乃至自知不受後有。
그때 그 비구는 세존이 설한 합친 손의 소리 비유의 경의 가르침을 듣고서, 홀로 한 고요한 곳에서 오로지 힘써 생각하며 불방일에 머물러, 내지 뒤의 존재를 받지 않음을 알았다.
주 乃至自知不受後有: 앞 0072c25.1의 정형구(我生已盡…) 머리가 접혀 있고 펴지 않았다([생략표지]). 自知=알았다(自 흡수, 0072c25.1과 같게). 한자 흔들림: 한역이 같은 분(붓다)을 앞에서는 佛(0072b25.3), 여기서는 世尊으로 부른다 — 확정술어가 각각 부처님·세존이라 한국어를 통일하지 않고 한자대로 옮겼다. 聞世尊說合手聲譬經教已: 合手聲=합친 손의 소리(0072c08.1), 譬=비유, 經教=경의 가르침(사전 經教 ⑥ 「經典之教訓」) — 合手聲譬經教의 끊는 자리가 하나로 서지 않는다 [불확실:구두·분절]. 已=듣고서(어미). 獨一靜處=홀로 한 고요한 곳. 專精思惟=오로지 힘써 생각하며(사전 專精 ① 뒤 思惟 65/87). 不放逸住: 不放逸=불방일(확정술어 [참고], 뜻이 서는 것을 확인) + 住=머물러. 時=그때.
成阿羅漢。
아라한이 되었다.
주 阿羅漢=아라한(음역, 한자 독음). 음역계통: 전거표 阿羅漢 ↔ 팔리 `Arahatta / Arahaṁ`(⚠다른 부(DA/EA)의 대역) / 범어 근대 `Arhat(Arhan)` — 판정하지 않고 인용. 음의 慧琳 0441b10은 應供·殺賊·不生 등 뜻을 든다(참고). 成=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