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九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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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목 좌표. 경 번호를 아라비아 숫자로 옮겼다(한자 병기 없음). 팔리 대응 점검: 투입된 후보 sn1.27(물·땅·불·바람이 발붙이지 못하는 곳을 묻는 게송 문답)과 보조 sn1.3(‘수명은 다해 간다’는 게송)을 끝까지 읽었으나 어느 쪽도 이 경(송아지가 부처님께 다른 사문·바라문과 달리 답하지 않는 까닭을 묻고, 색·수·상·행·식에 대한 앎으로 답을 듣는 문답)의 내용과 맞지 않았다. 진짜 대응 팔리는 이번 투입에 없으므로 전 좌표를 미결(unaligned)로 적는다. 산스크리트 증언은 투입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에 계셨다. 그때 밧차 범지가 부처님을 찾아와 안부를 여쭙고 한쪽에 앉았다.[불확실]
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주 개경 정형구. 한문 그대로 옮겼다.
一時,佛在王舍城迦蘭陀竹林。
한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대숲에 계셨다.
주 佛=부처님 [구속]. 王舍城=왕사성(정착어: 王舍은 ‘왕의 집’을 뜻하는 이름; 3분할표는 의역으로 분류했으나 왕사성이 정착형이라 정착형을 썼다). 迦蘭陀=가란타(음역, 한자 독음; 전거표 팔리 Kalandaka·근대 비정 Kāraṁḍava, 판정하지 않음), 竹林=대숲(의역). 음의 인용: 慧琳 0478b08 〔大般涅槃經音義〕 迦蘭陀는 새·산쥐·나라 이름.
爾時,犢子梵志往詣佛所,問訊佛已,在一面坐。
그때 범에 뜻을 둔 송아지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문안하고 나서 한쪽에 앉았다.[불확실]
불확실 犢子=송아지(뜻으로, 표에 없는 이름이라 직접 판별 — 한국 정착형 ‘독자’도 있어 ``), 梵志=범에 뜻을 둔 이(3분할표 의역; 사전 犢子梵志·음의 慧琳 0480c10 인용). 問訊=문안하다(음의 慧琳 0428c12: 訊=問). 問訊佛已=문안하고 나서. 在一面坐=한쪽에 앉았다.
밧차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문들과 바라문들은 질문을 받으면 왜 하나같이 물음에 맞추어 대답합니까? 이런 물음입니다. 나는 죽어서 여기서 저기에 나는가. 나지 않는가.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하는가.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닌가."
白佛言:「世尊!以何因緣,諸餘沙門,及婆羅門,若有所問,皆稱順答說,我死此生彼,我死此不生彼,我死此亦生彼亦不生彼,我非生彼非非生彼。」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그 밖의 여러 사문과 바라문은, 묻는 것이 있으면 모두 알맞게 따라 답하여 말합니까: 나는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난다, 나는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한다, 나는 저기서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주 한역이 같은 분을 이 좌표 안에서 佛(사뢰는 대상)과 世尊(호칭)으로 달리 적는다(한자 흔들림): 한국어는 각각 부처님/세존으로 고정. 沙門=사문(음역, 한자 독음; 음의 慧琳 0477b19), 婆羅門=바라문 [구속]. 以何因緣=무슨 인연으로. 諸餘=그 밖의 여러. 若有所問=묻는 것이 있으면(有=존재 서술, ‘~이 있어’ 피함). 稱順答說=알맞게 따라 답하여 말하다 — 稱順은 사전에 표제가 없어 稱(맞춤)+順(따름)으로 풀었다. 非非生彼=‘저기서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非生彼의 부정이 아니라 非(非生彼)). 인용 부호가 한문에 없어 쌍점으로 이었다. 生은 확정역 없는 정형구 행이라 문맥에 따랐다.
밧차가 다시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데도 어찌하여 물음에 맞추어 대답해 주지 않으십니까?"[불확실]
犢子復言:「瞿曇!如斯之難,何故不能稱順而答?」
송아지가 다시 말하였다. “고따마여! 이와 같은 어려운 물음에는 무슨 까닭으로 알맞게 따라 답하실 수 없습니까?”[불확실]
불확실 瞿曇=고따마 [구속]. 한역이 같은 분을 앞 좌표에서 世尊, 여기서 瞿曇이라 부른다(한자 흔들림). 如斯之難: 難은 ‘어려운 물음’ 또는 ‘힐난’ 둘 다 서므로 ``(이 경 투입만으로는 가르지 못한다). 何故=무슨 까닭으로. 不能=‘-ㄹ 수 없다’. 稱順은 c06.1과 같다. 復=다시.
부처님께서 밧차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사문들과 바라문들은 색이 무엇으로 생겨나는지 알지 못한다. 색이 사라지는 것도, 색의 허물도, 색의 달콤함도 알지 못한다. 색에서 벗어나는 길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알지 못하니, 색을 두고 이런 견해에 모두 매달린다. 나는 죽어서 여기서 저기에 난다. 나지 않는다.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한다.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佛告之曰:「諸餘沙門、婆羅門,不知色從因生,不知色滅,不知色過,不知色味,不知色出要。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밖의 여러 사문과 바라문은 색이 원인으로부터 생기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색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색의 허물을 알지 못하고, 색의 맛을 알지 못하고, 색의 벗어남의 요체를 알지 못한다.
주 色=색(오온의 정착형; 확정역 없음). 滅=소멸(확정역 없음). 色過=색의 허물, 色味=색의 맛(순서가 허물→맛이다; 한문대로). 出要=벗어남의 요체(3분할표 의역, 팔리 Nissaraṇa; 사전 出要 ⑥ 丁福保 ‘生死를 벗어나는 긴요한 길’). 從因生=원인으로부터 생김. 告之曰의 之=그에게. 붓다 발화는 평서.
以不能知色從因生,乃至不知色出要故,而於色,我死此生彼,死此不生彼,死此亦生彼亦不生彼,非生彼非非生彼,悉皆取著。
색이 원인으로부터 생김을 알 수 없고 내지 색의 벗어남의 요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색에 대하여 나는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난다,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지 않는다,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한다, 저기서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모두 다 집착한다.
주 乃至=내지: 한문이 스스로 접은 자리라 접힌 대로 두었다 `[생략표지]`(앞 c10.1에 풀려 있는 다섯 항목 중 가운데를 접은 것이나 펴지 않았다). 以不能知…故: 能=‘-ㄹ 수 있다’, 以…故=‘때문에’. 而於色: 而는 흡수, 於=‘~에 대하여’. 取著=집착(사전 取著). 悉皆 두 글자는 ‘모두 다’ 하나로.
수, 상, 행, 식도 마찬가지다.
受想行識,亦復如是。」
수·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다.”
주 受想行識=수·상·행·식(오온 이름의 정착형; 受는 정형구 행(vedanā)과 겹치나 오온의 이름이라 한자음을 따랐다). 亦復如是: 亦復은 이중 부사이나 ‘또한’ 하나 — 앞 말(색)에 견주는 뜻이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 밧차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여래는 그렇지 않다. 여래는 색의 원인을 안다. 색이 사라지는 것과 색의 달콤함, 색의 허물도 안다. 색에서 벗어나는 길도 안다. 모두 있는 그대로 안다. 그래서 색을 두고 어떤 견해에도 매달리지 않는다. 나는 죽어서 저기에 난다는 견해에서부터,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견해까지 모두 그렇다."
復告犢子:「如來不爾,知色因,知色滅,知色味,知色過,知色出要。
다시 송아지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그렇지 않다. 색의 원인을 알고, 색의 소멸을 알고, 색의 맛을 알고, 색의 허물을 알고, 색의 벗어남의 요체를 안다.
주 如來=여래 [구속]. 같은 분을 이 경에서 佛·世尊·瞿曇·如來로 달리 적는다(한자 흔들림). 復告=다시 말씀하셨다. 不爾=그렇지 않다. 色因=색의 원인(c10.1은 ‘從因生’ 풀이였고 여기는 명사구).
如實知之,如來如實能知色因、色滅、色過、色味、色出要,能知色,我死此生彼,乃至非生非非生彼,悉皆不著。
있는 그대로 그것을 안다. 여래는 있는 그대로 색의 원인, 색의 소멸, 색의 허물, 색의 맛, 색의 벗어남의 요체를 알 수 있으며, 색을 알 수 있어, 나는 여기서 죽어 저기서 난다는 것에서 내지 나는 것도 아니고 저기서 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까지 모두 다 집착하지 않는다.
주 如實知之: 사전 如實知 ⑥ 丁福保 ‘實相대로 앎’ — ‘있는 그대로 안다’. 能知가 두 번(알 수 있다)으로 나온다. 乃至=내지: 접힌 대로 두었다 `[생략표지]`. 乃至非生非非生彼는 ‘나는 것도 아니고 (저기서) 나지 않는 것도 아닌’까지 이른다는 뜻으로 읽었다. 不著=집착하지 않음.
수, 상, 행, 식도 마찬가지다.
受想行識,亦復如是。」
수·상·행·식도 또한 이와 같다.”
주 c15.1과 같은 접음의 되풂. 다만 이번에 걸리는 앞 내용은 c17.1(여래의 앎)이다.
부처님께서 밧차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뜻은 매우 깊고 넓다.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으며, 셈으로는 미칠 수 없다."
佛告犢子:「是故此義甚深廣大,無量無邊,非算數所及。」
부처님께서 송아지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뜻은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어 셈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 是故=그러므로. 甚深廣大=매우 깊고 넓고 크다(廣大 사전 항목은 있으나 인용할 용례는 이 경에 없다). 無量無邊=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다. 非算數所及: 所를 ‘바’로 옮기지 않고 ‘셈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밧차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른 사문들과 바라문들은 뜻의 취지를 깨치지 못한 채 묻는 대로 억지로 대답한다. 그러나 여래에게는 이렇게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내가 저기에 나는가. 나지 않는가.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하는가.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닌가. 그런 물음에는 이치가 없으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나는 이미 저기에 났느냐는 물음에서부터,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냐는 물음까지 모두 대답하지 않는다."[불확실]
復告犢子:「以是因緣,諸餘沙門、婆羅門等,不達義趣,隨問強答。
다시 송아지에게 말씀하셨다. “이 인연으로 그 밖의 여러 사문과 바라문 등은 뜻의 귀결을 통달하지 못하고 묻는 대로 억지로 답한다.
주 義趣=뜻의 귀결(사전 義趣 ⑥ 丁福保 ‘義理가 돌아가 향하는 곳’). 不達=통달하지 못함. 隨問=묻는 대로, 強答=억지로 답함. 等=‘등’(사문·바라문 말고도 있다는 뜻이 실린 자리).
若問如來,我色生彼,不生彼,亦生彼亦不生彼,非生彼非非生彼,以無義理,置而不答。
만약 여래께 나의 색이 저기에 난다, 나지 않는다, 나기도 하고 나지 않기도 한다,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고 물으면, 뜻과 이치가 없기 때문에 놓아두고 답하지 않는다.[불확실]
불확실 我色生彼: 앞 c12.1의 ‘我死此生彼’와 달리 ‘나의 색이 저기에 난다’로 읽었다 — 我와 色의 관계(‘나의 색’인지 ‘나는 … 색이’인지)는 한문만으로 정해지지 않아 ``. 若問如來=‘여래께 물으면’(若=‘-면’). 以無義理=뜻과 이치가 없기 때문에. 置而不答: 而는 흡수, ‘놓아두고 답하지 않는다’. 인용 부호가 한문에 없어 ‘하고’로 이었다.
我已生彼,乃至非生非非生,悉皆不答。」
나는 이미 저기에 났다 내지 나는 것도 아니고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에 모두 답하지 않는다.”
주 我已生彼=나는 이미 저기에 났다(사전 已生 항목 있음). 乃至=내지: 접힌 대로 두었다 `[생략표지]`. 悉皆不答=모두 답하지 않는다. 이 좌표는 따옴표가 닫히며 붓다 발화가 끝난다.
밧차가 말씀드렸다. "희유한 일입니다. 고타마시여, 당신과 제자분들은 뜻도, 뜻의 구절도, 구절의 맛도, 말씀하시는 내용도 똑같습니다.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불확실]
犢子言:「希有。
송아지가 말하였다. “드문 일입니다.
주 希有=드문 일(의역으로 옮겼다; 음의 慧琳 0326a11: 希=罕. 사전 希有: 이 아함 18회, 대개 상대를 찬탄하는 말). 有는 ‘~이 있어’가 아니라 낱말 ‘希有’의 일부.
瞿曇!汝及弟子,義與義句,及與句味,所說之事,等無差別。」
고따마여! 당신과 제자는 뜻과 뜻의 구절, 그리고 구절의 맛, 말하는 일이 같아 차별이 없습니다.”[불확실]
불확실 瞿曇=고따마 [구속]. 義與義句,及與句味: ‘뜻과 뜻의 구절, 그리고 구절의 맛’으로 끊었으나 句味를 한 낱말로 읽는 끊음도 있어 ``(사전에 句·味 표제는 따로 있다). 汝及弟子=당신과 제자(제자는 뒤 좌표의 목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이 좌표만으로는 정해지지 않는다). 所說之事=말하는 일. 等無差別=똑같아 차별이 없다.
밧차가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다른 때에 사문 목건련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지금과 같은 구절과 맛으로 목건련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지금 말씀과 같은 뜻과 구절과 맛으로 제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犢子復言:「我於異時,至沙門目犍連所,我於爾時,以此句味問彼目連,彼以此義句味而答於我。
송아지가 다시 말하였다. “저는 다른 때에 사문 목건련이 계신 곳에 이르러, 그때 이 구절의 맛으로 저 목련에게 물었고, 그는 이 뜻과 구절의 맛으로 저에게 답하였습니다.
주 目犍連=목건련, 目連=목련(음역, 한자 독음): 같은 사람을 한 문장 안에서 두 가지로 적는다(한자 흔들림). 이문: 大正은 ‘犍’, 宋본은 ‘揵’(교감주) — 저본 ‘犍’을 따랐다. 我於異時=다른 때에. 以此句味問彼目連: 以=수단 조사 ‘-로’. 彼以此義句味而答於我: 而·於 흡수. 沙門=사문.
밧차가 말씀드렸다. "고타마시여, 당신께서 지금 설하시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희유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예전에는 없었고 설해진 적도 없습니다. 이치가 서로 들어맞아, 이 물음에 훌륭히 답해 주셨습니다." 밧차 범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떠나갔다.
瞿曇!汝今所可宣說,與彼無異,是故我今稱為希有。
고따마여! 당신께서 지금 펼쳐 말씀하시는 것은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 드문 일이라 일컫습니다.
주 瞿曇=고따마 [구속]. 汝今所可宣說: 所可를 ‘바’로 옮기지 않고 ‘펼쳐 말씀하시는 것’으로 풀었다. 稱為希有=드문 일이라 일컫다(為는 ‘~라고’). 是故=그러므로.
如此教法,昔所未有,亦未曾說,義理相順,善答斯問。」
이와 같은 가르침의 법은 예전에 있지 않았고, 또한 말해진 적도 없으며, 뜻과 이치가 서로 따라 이 물음에 잘 답하셨습니다.”
주 教法=가르침의 법(사전 教法 항목 있음). 昔所未有=예전에 있지 않았다. 亦未曾說=또한 일찍이 말해진 적이 없다(亦=앞 ‘없었다’를 잇는 뜻). 義理相順=뜻과 이치가 서로 따른다. 善答斯問=이 물음에 잘 답하다.
犢子梵志聞佛所說,歡喜而去。
범에 뜻을 둔 송아지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고 기뻐하며 떠나갔다.
주 聞佛所說=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듣다. 歡喜而去: 而는 흡수(‘기뻐하며 떠나갔다’). 앞 두 경은 ‘奉行’으로 끝나나 이 경은 ‘而去’다 — 한문 그대로. 음의 歡喜 慧琳 0753a01: 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