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Vīriyārambhañāṇaniddeso
38.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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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서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이 되는가? 이 통찰지는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 애써 굳게 붙드는 통찰지이다.
Kathaṃ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어떻게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인가?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이 생기지 않도록,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 애써 굳게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것이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이다. 이미 생긴 나쁘고 해로운 법을 버리도록 붙드는 통찰지도 그렇다. 아직 생기지 않은 좋은 법이 생기도록 붙드는 통찰지도 그렇다. 이미 생긴 좋은 법이 머물고 사라지지 않도록, 더욱 자라고 넓어지도록, 닦아서 완전해지도록 붙드는 통찰지도 그렇다.
An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anuppād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Uppannānaṃ pāpakānaṃ akusalānaṃ dhammānaṃ pahān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이미 일어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An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uppād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Uppannānaṃ kusalānaṃ dhammānaṃ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같은 방식으로 감각적 욕망을 두고도 말할 수 있다. 아직 생기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생기지 않도록,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 애써 굳게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미 생긴 감각적 욕망을 버리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것이 모두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이다. 출리를 두고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생기지 않은 출리가 생기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미 생긴 출리가 머물고 사라지지 않도록, 더욱 자라고 넓어지도록, 닦아서 완전해지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것도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 간다.[불확실]
Anuppannassa kāmacchandassa anuppād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Uppannassa kāmacchandassa pahān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Anuppannassa nekkhammassa uppād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아직 일어나지 않은 출리를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Uppannassa nekkhammassa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pe….
이미 일어난 출리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악의를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의 없음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악의 없음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해태와 혼침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해태와 혼침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광명의 인식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광명의 인식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들뜸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들뜸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산란하지 않음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산란하지 않음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의심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의심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법의 판별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법의 판별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무명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앎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앎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싫어함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싫어함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기쁨을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이미 일어난 기쁨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28:87.13 ~ PN:ps28/87.18에서 되살렸습니다.
아직 생기지 않은 모든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미 생긴 모든 번뇌를 버리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렇게 이어 가면 끝에 이른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아라한의 길이 생기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미 생긴 아라한의 길이 머물고 사라지지 않도록, 더욱 자라고 넓어지도록, 닦아서 완전해지도록 붙드는 통찰지가 있다. 이 모두가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 애써 굳게 붙드는 통찰지이며,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이다.[불확실]
Anuppannānaṃ sabbakilesānaṃ anuppād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든 오염원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Uppannānaṃ sabbakilesānaṃ pahān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pe… anuppannassa arahattamaggassa uppādāya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이미 일어난 모든 오염원을 버리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라한도를 일으키기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불확실]
불확실 판단 근거가 부족한 자리입니다.
Uppannassa arahattamaggassa ṭhitiyā asammosāya bhiyyobhāvāya vepullāya bhāvanāya pāripūriyā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이미 일어난 아라한도의 지속과 잊히지 않음과 더욱 많아짐과 광대해짐과 닦음과 완성을 위하여,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알았기 때문에 앎이라 하고, 꿰뚫어 알기 때문에 통찰지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 애써 굳게 붙드는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이다.”
Taṃ ñātaṭṭhena ñāṇaṃ, pajānanaṭṭhena paññā.
그것은 알려졌다는 뜻에서 앎이고,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통찰지이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asallīnattapahitattapaggahaṭṭhe paññā vīriyārambhe ñāṇaṃ’’.
“위축되지 않음과 스스로를 다잡음과 떠받쳐 세움이라는 뜻에서의 통찰지가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이다.”
정진을 일으키는 데 대한 앎의 해설, 서른여덟째.
Vīriyārambhañāṇaniddeso aṭṭhatiṃsatimo.
정진을 일으킴에 대한 앎의 해설, 서른여덟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