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Parinibbānañāṇaniddeso
35.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의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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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분명히 알아차리는 사람에게 통찰지가 생기는가? 일어남을 다 없애서 생기는 그 통찰지가 어떻게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이 되는가?
Kathaṃ sampajānassa pavattapariyādāne paññā parinibbāne ñāṇaṃ?
어떻게 하여 또렷이 아는 이의, 일어남을 다 없앰에 대한 통찰지가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인가?
분명히 알아차리는 사람은 먼저 출리로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다 없앤다. 악의 없음으로는 악의를, 빛에 대한 인식으로는 해태와 혼침을, 산란하지 않음으로는 들뜸을 없앤다. 법을 분별해 확정함으로 의심을, 앎으로 무명을, 기쁨으로 불쾌감을 없앤다. 첫째 선정으로는 장애들을 없앤다. 이렇게 한 단계씩 나아가, 마침내 아라한의 길로 모든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다 없앤다.
Idha sampajāno nekkhammena kāmacchand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abyāpādena byāpād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ālokasaññāya thinamiddh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avikkhepena uddhaccassa pavattaṃ pariyādiyati, dhammavavatthānena vicikicchāya…pe… ñāṇena avijjāya… pāmojjena aratiyā … paṭhamena jhānena nīvaraṇānaṃ pavattaṃ pariyādiyati…pe… arahattamaggena sabbakilesānaṃ pavattaṃ pariyādiyati.
여기 또렷이 아는 이는 출리로써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악의 없음으로써 악의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밝음에 대한 인식으로써 해태와 혼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산란하지 않음으로써 들뜸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법을 가려냄으로써 의심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앎으로써 무명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기쁨으로써 싫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초선으로써 장애들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제2선으로써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제3선으로써 희열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제4선으로써 행복과 괴로움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으로써 물질에 대한 인식과 부딪힘의 인식과 갖가지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증득으로써 허공이 무한한 경지의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증득으로써 의식이 무한한 경지의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인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의 증득으로써 아무것도 없는 경지의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무상을 거듭 살핌으로써 항상하다는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괴로움을 거듭 살핌으로써 행복하다는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무아를 거듭 살핌으로써 자아라는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싫어하여 떠남을 거듭 살핌으로써 즐김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탐욕이 사라짐을 거듭 살핌으로써 탐욕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소멸을 거듭 살핌으로써 일어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놓아버림을 거듭 살핌으로써 취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다함을 거듭 살핌으로써 덩어리라는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사라짐을 거듭 살핌으로써 쌓아 감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변하여 감을 거듭 살핌으로써 견고하다는 인식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표상 없음을 거듭 살핌으로써 표상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원함 없음을 거듭 살핌으로써 원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공함을 거듭 살핌으로써 고집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높은 통찰지로 법을 꿰뚫어 봄으로써 탐착하여 고집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있는 그대로 알고 봄으로써 미혹에 고집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위험을 거듭 살핌으로써 애착에 고집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성찰하여 거듭 살핌으로써 성찰하지 않음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돌아섬을 거듭 살핌으로써 결박에 고집함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흐름에 듦의 도로써 견해와 함께 자리한 오염원들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한 번 돌아옴의 도로써 거친 오염원들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돌아오지 않음의 도로써 미세하게 남은 오염원들의 일어남을 다 없애고, 아라한도로써 모든 오염원의 일어남을 다 없앤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98:48.218에서 되살렸습니다.
이런 사람이 남음 없는 열반의 영역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 때가 있다. 그때 눈에서 일어나던 것은 모두 여기서 사라진다. 다른 눈의 일어남은 다시 생기지 않는다. 귀도 마찬가지이고, 코와 혀와 몸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던 것도 여기서 모두 사라지며, 다른 마음의 일어남은 다시 생기지 않는다.
Atha vā pana sampajānassa anupādisesāya nibbānadhātuyā parinibbāyantassa idañceva cakkhupavattaṃ pariyādiyati, aññañca cakkhupavattaṃ na uppajjati.
또는 다시, 남김 없는 열반의 요소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또렷이 아는 이에게는 바로 이 눈의 일어남이 다 없어지고, 다른 눈의 일어남은 생기지 않는다.
Idañceva sotapavattaṃ…pe… ghānapavattaṃ… jivhāpavattaṃ… kāyapavattaṃ… manopavattaṃ pariyādiyati, aññañca manopavattaṃ na uppajjati.
바로 이 귀의 일어남이 다 없어지고 다른 귀의 일어남은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 코의 일어남이 다 없어지고 다른 코의 일어남은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 혀의 일어남이 다 없어지고 다른 혀의 일어남은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 몸의 일어남이 다 없어지고 다른 몸의 일어남은 생기지 않는다. 바로 이 마음의 일어남이 다 없어지고, 다른 마음의 일어남은 생기지 않는다.
생략 복원 원문의 …pe…를 PS 27:86.3에서 되살렸습니다.
이것이 앞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분명히 알아차리는 사람이 일어남을 다 없애서 얻는 통찰지, 그것이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이다. 알았기 때문에 앎이라 하고, 꿰뚫어 알기 때문에 통찰지라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알아차리는 사람에게, 일어남을 다 없애는 데서 생기는 통찰지가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이다.”
Idaṃ sampajānassa pavattapariyādāne paññā parinibbāne ñāṇaṃ.
이것이 또렷이 아는 이의, 일어남을 다 없앰에 대한 통찰지인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이다.
Taṃ ñātaṭṭhena ñāṇaṃ, pajānanaṭṭhena paññā.
그것은 알려진다는 뜻에서 앎이고, 꿰뚫어 안다는 뜻에서 통찰지다.
Tena vuccati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sampajānassa pavattapariyādāne paññā parinibbāne ñāṇaṃ’’.
“또렷이 아는 이의, 일어남을 다 없앰에 대한 통찰지가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이다.”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의 해설, 서른다섯째.
Parinibbānañāṇaniddeso pañcatiṃsatimo.
완전한 열반에 대한 앎의 해설, 서른다섯째.